다시 평양회담을 논함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민족대단결운동과 양국론 책략의 전면대립

(3) 정치적 상상력으로 내다보는 통일회담의 미래

(4) 민족대단결운동은 평양회담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5)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2000년 4월 10일 전파를 타고 날아온 속보.

이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소식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언젠가는 한 번쯤 오고야 말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오고야 말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조국통일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바쳐온 이 땅의 활동가들에 앞에 남북 당국이 6월의 평양회담 개최를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 때를 무심히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분단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질 역사적인 평양회담을 눈앞에 두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서 가신 통일열사들의 뒤를 이어 걸어온 조국통일의 그 머나먼 험로에 서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분단이라는 민족적 재난에서 벗어나려는 칠천만 겨레의 애끓는 호소를 듣고 있는가. 남북으로 찢겨진 이 강토의 흙 위에, 저 바람결 속에 영웅적 투사의 넋을 드높히며 모든 힘을 오로지 통일조국 건설에 온통 쏟아붓고 있는가.

앞으로 우리 민족대단결운동에 주어진 시간은 길게 잡아 대여섯해. 이 길지 않은 기간 안에 반통일세력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 총공세기가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민족대단결운동과 민족분열주의세력의 결전이다. 그 때를 맞이하기 위하여 이 땅의 조국통일운동사는 그토록 피눈물 흘리는 역사의 모진 시련을 헤쳐와야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 오천명 민족간부를 키워내지 못했는데, 아직 민족대단결운동의 단일한 대오를 이루지 못했는데, 그 결전의 때는 이렇게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통일조국 건설을 위한 이 성스러운 싸움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확정적이다. 자주통일위업을 위하여 일해온 민족대단결운동의 위대한 승리,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분단영구화·합법화정책을 추진하는 아메리카 합중국과 그 외세를 추종하는 반통일세력의 참담한 패배가 있을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절충이나 타협을 허용할 틈새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 민족대단결운동은 반통일세력이 쌓아놓은 분열·지배의 아성을 깨부수고 통일조국의 푸른 하늘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며 위대한 통일조국 만세를 목메어 부를 것이다. 반백년이 넘도록 분단과 전쟁과 예속으로 찢기고 피흘리고 짓눌려왔던 동방의 칠천만 민족. 세계는 바로 그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위대한 통일조국 건설을 만방에 장엄하게 선포하는 감격의 외침을 듣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정세를 왜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는가? 혹시 정세인식에서 주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해 우리 민족대단결운동은 이런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가 민족대단결운동의 승리를 낙관하는 것은, 그 운동에는 민족분열주의세력에게는 없는, 아니 저들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위력은 우뢰소리처럼 쩌렁쩌렁 승리의 전선길 울리며 나아갈 신념과 의지에서 나온다. 그 위력은 용광로 열기처럼 뜨거운 투쟁력이 맥동치는 심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위력은 분단이라는 민족적 재난을 없애고 칠천만의 미래에 희망과 행복을 깃들이기 위해, 통일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든든한 각오와 결심에서 나온다. 바로 거기에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2) 민족대단결운동과 양국론 책략의 전면대립

지금 한(조선)반도의 현실은 매우 불안정하며 위태로운 정전체제 위에 놓여있는데, 이 분단·정전체제를 넘어서는 길은 세 갈래길 밖에 없다. 하나는 미국과 남(한국) 당국이 추구하고 있는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체제에 기초한 국가연합 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해외 민족대단결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연방제 평화통일의 실현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통일전쟁이다.

우선 이 세 가지 경로 가운데서 통일전쟁은 피해야 한다. 지금 한(조선)반도의 통일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는 북(조선)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만일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동안 다져온 무력을 총동원하여 미국을 남(한국)에서 몰아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는 것은 북(조선)의 통일전쟁은 남북 사이의 내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한(조선)반도 전체는 미국의 핵공격과 일본 자위대의 내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은 미국의 핵공격으로 인한 대참화 속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설령 무력으로 통일을 실현한다고 해도 통일전쟁 이후에 남아있게 될 민족역량은 허약해질 것이 분명하며, 그 틈을 노린 외세가 또다시 밀려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평화통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우리 민족 앞에 주어진 과업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전쟁의 방도가 아니라 평화적 방도로 분단체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길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 한 갈래는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통하여 국가연합을 실현하는 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민족대단결운동을 통하여 연방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길이다. 여기서 생기는 쟁점의 핵심은 양국론이냐 일국론이냐 하는 것이다. 설명할 것도 없이, 국가연합 건설 방안은 양국론에 기초하고 있고, 연방제 평화통일 방안은 일국론에 기초하고 있다. 앞의 것은 통일 없이 평화부터 실현하려는 평화우선방안(또는 통일 없이 평화만 실현하려는 방안)이고, 뒤의 것은 통일과 평화를 동시적으로 추구하려는 평화통일 방안이다.

양국론에 기초한 국가연합 건설방안은 분열·대립하고 있는 남북의 정치적 실체를 두 개의 주권국가로 상호인정함으로써 정전체제를 마감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점은 국가연합 건설방안이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서로 분리하고 그 가운데서 분단체제를 영구화·합법화하는 한편 정전체제만을 마감하려는 데 근본목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론에 기초한 국가연합 건설방안에 따라 만일 한(조선)반도에 두 주권국가가 세워지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조·미 사이에서 정전체제가 해소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그에 따라 남북관계도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국가연합으로 변화될 수 있겠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남(한국)과 북(조선)은 서로에 대해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다. 국가연합의 건설은 어디까지나 두 나라의 평화공존이지 한 나라로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국가연합을 건설하는 것과 더불어 남(한국)과 북(조선)의 통일정책은 사라지게 되는, 또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남북이 국가연합 단계에 들어갔는데도 만일 어느 한 쪽이 상대에 대해서 통일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그것은 국제법에 의하여 남의 나라에 대한 부당한 내정간섭이며 더 나아가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병합하려는 행위로 규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국가연합은 민족의 통일의지를 국제법적으로 완전히 원천봉쇄할 것이며 통일정책마저 소멸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연합 이후에 무슨 수로 연방제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몇몇 사람들이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서 연방제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연합 건설이 마치 통일의 단계적 실현과정에서 거쳐야 할 중간단계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궤변이며 기만이다. 국가연합 단계에 들어가면 민족의 통일의지가 법적으로 원천봉쇄당하고 통일정책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뒤에 감춰두고 국가연합 단계가 연방제 통일의 전 단계이니, 국가연합 건설론과 연방제 평화통일론 사이에는 일정하게 공통분모가 있으므로 타협·절충할 수 있다느니 하는 궤변을 토해내면서 세상을 속이려는 것이다.

일단 국가연합이 실현되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적 통합이라는 불확실성과 실현불가능성 밖에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인류역사는 국가와 국가가 정치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통합된 사례를 알지 못한다. 더욱이 미국과 남(한국) 집권세력이 어떻게 해서든지 통일을 지연·회피하고 평화공존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있으므로 국가연합의 실현은 통일과업의 완전 포기를 정당화·합법화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평화통일의 원칙 안에서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되어있다. 한(조선)반도의 분단을 극복해가는 경로는 평화정착단계를 거쳐 조국통일단계로 옮겨가는 경로가 될 수 없으며, 오직 평화통일 밖에는 없다. 한(조선)반도의 미래는 평화통일과정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진전하는 역사발전의 경로를 따라 펼쳐질 것이다. 통일 없는 평화란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가 아니라 통일에 대한 완전 포기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란 한 나라가 두 나라로 갈라져 있는 양국관계가 아니라, 한 민족이 두 정치적 실체로 갈라져 있는 특수관계다. 남(한국)과 북(조선)이 만일 그런 특수관계에서 무력에 의한 통합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통일전쟁이 되겠지만, 일단 국가연합을 실현한 뒤에 무력통합을 추진하면 그것은 외세의 침략과 병합이 된다. 통일전쟁은 어디까지나 내전(civil war)이므로 통일전쟁을 일으킨 주체는 국제법상 침략자로 규정되지 않지만, 무력으로 국가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은 국제법상 명백하게 침략자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일단 국가연합 단계로 들어가면 통일전쟁마저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을 오늘의 대제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고 해서 미국인의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의 반란세력이 연방국가에서 분리·이탈하려고 할 때 무력으로 그 반란세력을 진압·소멸하고 아메리카 연방제를 지켜냈다. 그리하여 미국 역사에서 링컨은 통일전쟁의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이 통일전쟁을 우리는 흔히 남북전쟁이라고 부르고, 미국인 자신들은 내전(American Civil War)이라고 부른다. 뉴욕주 웨스트 포인트에 있는 미 육군사관학교 마당에는 링컨의 통일전쟁에서 전사한 군지휘관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있는데 그 정면에는 반란전(war of rebellion)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군지휘관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링컨은 통일의지가 강했으므로 통일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연방제를 유지하려고 했는데, 그가 만일 연방제 유지냐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남북 평화공존을 선택했더라면 남부의 반란세력이 합중국에서 분리·이탈하는 것을 용납·묵인하고 남북이 국가연합체제를 유지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더라면 아메리카 합중국은 남북 두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링컨의 통일전쟁은 합중국이 연방제를 유지하기 위해 택해야 했던 최선의 길이었으며, 반면에 링컨시대에 남북의 평화공존론은 차선책이 아닌 반역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절대절명의 위기에 있어서 평화공존은 반역이요 죄악이며 오로지 통일만이 최선이라는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국가연합이란 결국 남(한국)과 북(조선)을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으로 이끌어내어 분단체제를 영구화·합법화하려는 양국론 책략을 구현한다는 최종목표로 설정된 것이지, 연방제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중간단계로 설정된 것이 결코 아니다. 국가연합 건설방안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양국론은 정전체제를 해소함으로써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고 강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통일정책을 파기하고 민족분열을 영구화·합법화하려는 미국의 양국론 책략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연합 건설론이 이처럼 명백하게 민족분열주의적 반통일론인데도 워싱턴과 서울에서 널리 떠돌아다니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 현상의 원인을 두 각도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첫째, 민족분열주의세력은 국가연합 건설론을 냉전체제론과 밀접히 결부시키고 있다. 국가연합 건설론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까닭은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를 냉전체제라고 규정하는 착오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냉전체제란 나라와 나라의 대립, 체제와 체제의 대립, 진영과 진영의 대립 위에 서있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므로 냉전체제의 대립성을 극복하는 방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 또는 체제(진영)과 체제(진영) 사이의 평화공존이다. 오늘 한(조선)반도에서 국가연합을 건셴록려는 민족분열주의세력이 한결같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그들이 분단체제를 냉전체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를 냉전체제로 보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왜냐하면 남(한국)과 북(조선)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단체제는 체제 사이의 대립이나 나라 사이의 대립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러한 대립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조선)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 나라들 안에서 생겨난 대립구도의 본질이나 그 나라들 안에서 일어난 내전의 본질은 체제대립이 아니라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의 충돌이었다. 그러므로 한(조선)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 나라들 안에서 일어난 대립구도는 냉전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지배와 약탈을 반대하는 치열한 싸움 곧 열전으로 전개되었다. 1953년 3월에 체결된 정전협정 위에 서있는 정전체제라는 것도 냉전의 산물이 아니라 열전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1950년 6월 한(조선)반도에서 일어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그 전쟁은 체제대립 때문에 일어난 내전이 아니었다. 그 전쟁의 본질은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분할·지배전략 사이에서 일어난 전면대립과 무력충돌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는 남(한국)과 북(조선) 사이의 체제 대립성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유지되어온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분단체제는 현상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체제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민족자주역량과 분단영구화·합법화를 실현하려는 지배주의 및 민족분열주의세력 사이의 대립이다. 물론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는 남(한국)과 북(조선) 사이의 체제 대립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 대립성이 분단체제를 발생시키고 유지하는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분단체제는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 사이에서 일어난 대립과 충돌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바로 그 대립구도 때문에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단체제를 냉전체제로 보아서는 안되며, 남(한국)과 북(조선)의 대립을 체제대립이나 국가대립으로 규정해서도 안되며, 진영대립의 하부단위로 규정해서도 안된다. 국가연합 건설론의 교활성은 그것이 분단체제의 본질이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 사이에서 생겨난 대립구도에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데 있으며. 또한 그것이 분단체제의 본질이 자본주의 체제인 대한민국과 사회주의 체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대립이라고 강변하면 할 수록, 아메리카의 지배주의가 추진하고 있는 한(조선)반도 분할·지배전략은 감추어진다는 데 있다.

둘째, 국가연합 건설론은 평화통일 실현불가론을 전제조항으로 삼고 있다. 국가연합 건설론이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를 냉전체제로 규정하고 있는 한, 그 논리는 냉전체제를 해소하는 길을 국가대립 또는 체제대립을 해소하는 길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국가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전쟁을 통한 침략과 병합이 아니면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 밖에 없으며, 체제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내전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상호수렴에 의한 체제통합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실현될 수 없는 가상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냉전체제를 해소하는 방도에는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배제되며 전쟁이 아니면 평화공존 밖에는 가능성이 없게 된다.

이에 반해서 민족대단결운동은 전쟁과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평화통일 원칙 위에서 연방제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따라서 국가연합 건설론과 민족대단결운동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있다. 민족대단결운동은 분단체제의 본질이 이중적 대립구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아야 한다. 첫째는 분단체제가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가 충돌한 대립구도(정전체제) 위에 세워진 특수한 체제이며, 둘째는 한 나라 안에서 두 정치적 실체가 충돌한 대립구도(민족분열상태) 위에 세워진 특수한 체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단체제의 대립구도는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 사이의 대립, 그리고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특수관계에 있는 두 정치적 실체인 남(한국)과 북(조선)의 대립이 겹쌓여 있다. 여기서 주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 사이의 대립이다.

그러므로 민족자주운동과 아메리카의 지배주의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분할·지배체제를 마감하는 자주화의 길이며, 남북의 정치적 실체 사이의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연방화의 길이다. 민족자주화와 민족연방화, 오직 이 길만이 평화통일 원칙을 실현하는 길이다.

(3) 정치적 상상력으로 내다보는 통일회담의 미래

1994년 7월 평양회담을 얼마 앞두었던 때, 평양회담을 준비하고 있던 김일성 주석이 당간부들에게 지시했던 사항 가운데 세상에 알려진 것이 하나 있다. 남북의 끊어진 철도를 이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씨알의 힘』(일문) 발행인 정경모 선생은 1996년에 도쿄에서 열렸던 몽양 여운형 선생 50주기 기념강연회에서 「남북의 현상에 대한 몇가지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이 사실을 밝히고, 김일성 주석이 서울에 갈 때는 이 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계획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남북의 끊어진 철도를 잇고 그 철도를 이용해 서울에 가려고 했던 김일성 주석의 생각은 지금 김정일 총비서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에 평양회담을 하기 위해 승용차가 아니면 서해를 디귿자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북행길에 오르겠지만, 김정일 총비서는 앞으로 끊어진 남북종단 철도의 연결·복원공사를 마치고 나서 첫 남행 통일열차를 타고 판문점을 거쳐 서울역에 내릴 구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평양회담을 마치면 남북종단 철도의 연결·복원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

첫 남행 통일열차가 서울역에 들어서는 날, 김정일 총비서의 역사적인 서울 방문을 보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이다. 그 인파는 환영인파와 반대인파로 나누어지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반대인파의 돌발적인 행동을 우려한 경찰이 그들을 통제하는 가운데, 남(한국)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대사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 대사변은, 이번 평양회담이 잘 풀려나가면 내년쯤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찌르고 할퀴며 옥죄어왔던 만고의 악법 국가보안법은 그 환영인파의 발길에 채이고 짓밟혀 형체도 없이 부서지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국가보안법의 소멸과 그에 따른 남북 사이의 정치적 화해는 그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가보안법이 사라진 정치적 화해의 공간에서 민족대단결운동은 위력적으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갈 것이며, 민족대단결의 기치 아래 민족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해방공간을 상기함으로써 미래전망의 눈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극악무도한 일제침략자가 무릎을 꿇은 해방공간에서 자주독립운동세력의 건국사업이 엄청난 위력으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삼천리 방방곡곡에 자생적으로 인민위원회를 세웠던 그 감격스러운 역사를 돌아보자는 말이다. 일제 식민지 서른여섯해 동안 죽은 듯이 역사의 맨 밑바닥에 깔려있었던 민족자주역량은 해방공간 안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거대한 창조의 위력으로 터져나오며 자주독립시대를 백두에서 한라로 활짝 열어제겼던 것이다. 무릇 천지개벽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려니, 망해서 붸겨가던 일제침략자도 그 위력의 분출에 놀랐고 조선총독부 깃대에서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매달아 올리던 아메리카 점령군도 그 창조력의 휘황한 불꽃을 보고 놀랐다. 바로 엊그제까지 일제의 총칼 아래 짓눌려왔던 자기들 그 어디에 그토록 강한 힘이 내장되어 있었던가를 생각하며 이 땅의 민중 자신도 놀랐다. 사회와 역사의 복잡다기한 현상과 운동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전망한다는 수천 수만권 책과 논문에 담긴 학문의 업적이라는 것도 그 위력 앞에서는 빛을 잃고 꼬리를 감추어야 했다. 우리가 민중의 창조력이라는 말 앞에, 민족의 자주역량이라는 말 앞에 위대하다는 말을 덧붙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민중의 창조력과 민족의 자주역량이 일으키는 사회역사의 대전환. 그것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놀랍고 위대하다. 그것은 탐구와 관찰의 촉수로는 감히 더듬을 수 없는 현실의 심연에서 암장(巖漿)처럼 분출하는 새로운 운명의 개척이요 새로운 역사의 창조다. 그것은 민족사의 운명을 개척하고 위대한 통일조국을 창조하기 위하여 낡은 것들과 싸우고 있는 투사들의 순결한 마음 속에 깃들어있는 정치적 상상력에게만 자신을 엿볼 수 있게 허락한다.

낡은 것이 힘을 잃고 사라져가고 새로운 것이 힘을 얻어 일어서는 역사의 대전환은 이토록 가슴 벅찬 감격이 아니고서는 맞이할 수 없나니, 자주통일시대의 지평을 열어제끼고 위대한 통일조국을 세우는 그 날도 꼭 그렇게 다가오리라. 그렇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진 정치적 화해의 공간에서 민족자주역량은 폭발적인 기세로 창조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2000년 6월에 열릴 평양회담은 국가보안법으로 유지되어온 체제가 무너진 정치적 화해의 공간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중대한 사변이다.

일제 식민지 체제가 갑가지 무너진 1945년의 해방공간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피눈물 어린 역사의 갈피에서 두 가지 소중한 가르침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민중의 폭발적인 창조력, 민족의 거대한 자주역량을 짓밟고 꺾으려 했던 최대의 강적은 아메리카 점령군이었다는 사실이다. 수정주의 역사가로 불리는 미국인 교수 부르스 커밍스의 연구에 따르면, 해방 직후 아메리카의 한(조선)반도 분할·점령정책은 민족자주역량의 조직적 실체, 곧 인민위원회를 깨부수는 데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 역사적 사실은 미국의 점령정책과 민족자주역량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극단적 대립관계로 맞서있었음을 증언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만일 아메리카 점령군이 인민위원회를 마구 깨부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말조차 몰랐을 것이며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바로 그 아메리카 주둔군이 남(한국)의 군사주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지배구도가 유지되는 한, 민족자주역량과 아메리카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여전히 대립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페리보고서가 나온 1999년 이후에 미국이 전쟁전략에서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화공존전략이 가동된다고 해도 그것은 양국론 책략의 교묘한 변형일 뿐이며, 그 속에는 한(조선)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를 세우고 평화공존관계를 맺게하여 분단체제를 합법화·영구화하려는 가증스런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평화전략은 약소민족에 대한 분할·지배정책과 동류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민족자주역량은 평화의 이름으로 분단체제의 무한정한 연장을 획책하는 반통일세력과 싸워야 한다. 21세기의 통일정세를 열어가는 민족자주역량은 아메리카의 양국론 책략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해방공간에서 서울의 중앙권력은 각양각색 분파세력??애국자로 자처하는 사이비 정객들이 제각기 정국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혼란스러운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지방권력은 인민위원회라는 단일대오로 민족자주역량과 민중창조력을 결집하면서 아메리카의 점령정책을 시시각각 위협하고 있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국난의 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무패무능한 중앙정부는 침략자에게 투항하거나 달아나기에 바빴지만, 지방에서는 민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전투력(의병)을 조직하고 일치단결하여 반외세 구국항쟁의 길로 나섰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민족민주운동이 지방권력을 민족자주역량과 민중창조력으로 이끌어내는 정치사업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방권력은 민중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속에서 민족자주역량과 민중창조력을 조직하고 결집하는 가장 위력한 통로가 된다.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속에서 민중의 힘을 조직하고 결집하는 정치사업이야말로 민중 자신의 일이며, 민족민주운동이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다.

오늘 서울의 비겁한 중앙권력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아메리카 주둔군에게 바른 말 한 마디도 못하고 굴종하고 있지만, 민중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지방자치권력이 주둔군의 행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이 용산구와 대구시의 지방권력에서 일어났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머지 않은 장래에 다가올 통일정세에서 이 땅의 민족민주운동이 누구와 손을 잡고 무엇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여기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4) 민족대단결운동은 평양회담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2000년 6월의 평양회담은 통일회담이 되어야 한다. 그 회담은 평화회담이 되어서는 안된다.평양회담에서는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합의서가 채택되어야 한다. 남북의 최고위급 책임자들이 평양에서 만나게 되면,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를 논의한 결과를 합의문 형식에 담아 칠천만 민족 앞에 내놓아야 한다. 합의서도 없이 그대로 헤어진다면 그 회담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아니라 칠천만 겨레의 요구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 관심의 초점은 평양회담 합의서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나 경제협력 문제 따위는 민족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부차적인 것이다. 이번 평양회담에서 조국통일위업을 뒤로 미뤄두고 곁가지인 이산가족 상봉문제나 경제협력 문제 만을 논의한다면 그것은 칠천만 겨레의 기대와 숙원을 저버리고 민족적 양심을 또다시 좌절과 실망에 빠뜨리는 것이요, 반만년 민족사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나 남북 경제협력 문제 따위는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해결되고 이루어질 하부단위의 실행과제에 지나지 않는다. 어렵사리 마련된 역사적인 평양회담은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데 철두철미 복무하는 책임있는 정치협상의 자리가 되어야 하며, 하부단위의 실행과제들이나 논의하는 무책임한 자리로 품위와 격을 낮추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런데 남(한국) 정부당국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베를린 선언의 사대 과제를 합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 사대 과제란 경제공동체 건설, 냉전종식과 평화정착,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대화창구 상설화로 요약된다. 어느 것 하나도 평화통일 원칙에 부합하는 과제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사실 베를린 선언이라는 것 자체가 국가연합 건설을 위한 선언이지 평화통일을 위한 선언은 아니었다. 베를린 선언의 사대 과제가 국가연합 건설론의 당면과제라고 할 때, 그것은 민족대단결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조국통일 삼대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임박한 평양회담을 앞두고 민족대단결운동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은 결국 민족대단결운동이 평양회담에 대해 무엇을 촉구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민족대단결운동은 평양회담에 대해서 칠천만 겨레가 정치적으로 요구하는 바를 분명하게 대변·제시하여야 한다. 그 정치적 요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갈래에서 나올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남(한국)과 북(조선)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이 실질적인 조치는 대립을 해소하고 정치적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가 될 것이다. 정치적 화해에 관한 기본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밝혀져 있으므로, 이번 평양회담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한국)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있는대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한 목적에서 국가보안법을 이른 시일 안에 철폐하겠다는 약속을 평양회담의 합의서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북(조선)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있는대로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남(한국)을 무력으로 통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 합의서에 넣어야 한다.

둘째, 평양회담의 합의에는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대단결 원칙을 재확인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지금 남(한국) 정부당국은 '한(조선)반도 평화선언'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평양회담에서는 평화공존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해야 한다.

셋째, 평양회담의 합의에는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하여 두 정부당국이 힘쓴다는 약속이 들어가야 한다. 통일방안을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국통일방안 합의는 평양회담에서 단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합의를 위하여 힘쓰겠다고 약속하면 될 것이다. 이 약속을 이행하는 길은 조국통일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민족적 통일방안협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나름대로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서 합의절차를 밟아가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민족대단결운동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의견수렴과 합의도 반드시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통일운동과 통일논의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다. 평양회담의 열기로 더욱 달아오를 올 여름에는 남·북·해외의 민족대단결운동이 모두 모이는 민간급 통일방안협상회의를 열어 전민족적인 통일논의를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이 민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조국통일운동사의 역정 위에 너무 많은 피눈물과 구슬땀을 흘렸다. 역사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오늘, 이 민족의 분단상처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 원한의 눈물을 거두고 행복의 웃음꽃을 피워야 하며, 고통의 땀방울이 아니라 창조의 열정으로 일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21세기에는 그 시련과 고난의 역사 위에 위대한 통일조국을 세워야 한다.

민족대단결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연방제 평화통일의 실현은 우리 민족이 자주강국, 경제부국, 문화대국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당당하게 나서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조국통일은 아메리카 주둔군이 떠나간, 자주의 햇살 눈부신 삼천리 강토 위에서 남북 동포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민족사의 최고 전성기를 이 민에에게 안겨주게 될 것이다.

연방제 평화통일이 실현되면, 미국이 책임지고 지어주기로 약속한 신포땅의 경수로 두 기는 통일된 한(조선)반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통일 경수로가 될 것이다. 아메리카 주둔군이 떠나가면 그들을 유지하기 위해 대주고 있는 이른바 '방위비 분담금'이 연방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비용으로 쓰여지게 될 것이며, 조·일 수교에 따라 받게 될 식민지 피해 배상금도 연방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비용으로 쓰여질 것이다.

민족대단결운동의 정치적 상상력은, 내일의 당위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로 우리 앞에 그 장엄한 모습의 한 자락을 조금씩 펼쳐보이고 있는 연방제 평화통일의 실현경로를 내다보아야 한다. 민족대단결운동에 앞장선 이 땅의 활동가들이 통일열사들의 뒤를 이어 일치단결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연방제 평화통일을 위해 힘쓴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힘으로 위대한 통일조국을 세울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글이 여기에 이르니 문득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마음 누를 길 없으매, 그 마음을 담아 이렇게 적는다.

소리쳐 부르리라. 백두에서 한라까지 목메인 소리로 부르리라. 붉은 노을 눈부신 동해에서 만경창파 설레이는 서해까지 위대한 통일조국을 소리쳐 부르리라.

일제침략자에게 짓밟힌 조국의 운명을 구하려는 만주항일전쟁이 이어졌던 무렵, 백두밀림 속에 울려퍼졌던 항일열사들의 넋이 깃든 노래 한 구절을 옮기며 이 글을 맺는다.

"일어나라 단결하라 노력대중아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싸워나가자" (2000년 5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