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의 당위성,

그리고 한(조선)반도 전략균형의 변동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주한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의 당위성

(2)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의 파탄

(3)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 파탄 이후의 주한미군

(4) 한(조선)반도 전략균형의 변동과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

(5)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조선)반도 통일 문제의 상관성

(6) 통일과도기와 주한미군 철수

(7) 미국은 과연 남(한국) 지배전략을 포기할 수 있을까?

(1) 주한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의 당위성

지금까지 남(한국)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공식적, 공개적인 논의는 주한미군 유지론과 유지정책의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였다. 주한미군 유지론과 유지정책에 대해서 는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제기하거나 비판할 수 없었으며, 언제나 무조건 인정·찬 동하기를 강요받는 억압적 분위기가 가득차 있었다. 남(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 은 그것이 단지 북(조선)의 견해·주장과 같다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 법적, 사회적으로 금기사 항이 되었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은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비판을 철저하게 금압하는 그야말로 광기어린 '우상숭배'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그 금압의 어둠 속에서도 불빛이 꺼지지 않고 있으 니 그것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다. 그 누구도 주 한미군을 철수하라는 말조차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민족 민주운동만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험난한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미국이므로 미국에서, 특히 워싱턴 정가에서 주한미 군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느냐 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장래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남(한국)과 달리 주한미군 철수론을 원천적으로 금압·봉쇄하는 광기어린 '우상숭배'는 찾아볼 수 없지만, 유지론과 유지정책이 철수론과 철군 정책을 압도하여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워싱턴 정가의 유지론과 유지정책은 주한미군이 미국의 국익추구에 사활적이라는 주장을 들고나와 여론몰이에 성공함으로써 언제나 철수론을 제압하곤 하였다. 돌이켜보면,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세가 뒤바뀌던 전환기에 워싱턴 정가 에서 철수론과 철군정책이 한때나마 유지론과 유지정책에 맞서 힘을 겨룬 적도 있었지만, 종당 에는 유지론과 유지정책을 추진하는 세력들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현상유지로 되돌아가곤 했음 을 알 수 있다.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워싱 턴 정가의 철수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워싱턴 정가의 소수파 철수론자들은 미국의 안보이 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손익계산을 꼼꼼이 따진 뒤에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 장했지만,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은 주한미군 철수를 민족자주운동의 핵심과제로 여기고 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라!" 이 짧은 구호 한 마디를 민족적 양심으로 지키기 위해 해내외 민족 민주운동이 철수론과 철수운동을 금압하는 세력들과 맞서싸우며 견뎌야 했던 나날은 얼마나 험 난한 고난의 세월이었던가. 이 짧은 구호 한 마디 속에 이름 없이 투쟁한 민족자주운동의 투사 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이 스며들어 있는가. 그 구호는 곧 투쟁 그 자체였다. 해내 외 민족민주운동이 민족자주운동의 관점에서 제기한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전투적 구호는 연 구와 검토의 대상이 될 여유조차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투쟁의 동력으 로 바뀌어 철수론과 철수운동을 금압하는 세력들을 위협하곤 하였다.

때마침 올해는 미군이 한(조선)반도 전쟁에 참전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50년이라는 시점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그 전쟁에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 만 행이 세상에 폭로되었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 국제전범재판 피고석에 끌려나와 인류 양심 의 심판을 받았어야 할 양민학살범이 뻔뻔스럽게도 자기의 범죄사실을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 다. 범인이 어떻게 자기 범죄를 수사할 수 있으며, 설사 수사를 진행한들 제대로 하겠는가. 그 들은 양민학살 진상조사를 하는 척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덮어두고 그만둘 것이라는 사실은 쉽 게 예상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이 계속되던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양민 5백4명을 학살했던 밀라이 마을 학살사건을 나중에 미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되짚어본다면 우리땅에서 저지른 양민학살 사건을 저들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지금 미국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노근리 사건 진상조사'는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 민족적 자존심과 양심을 걸고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 만행을 인류의 양심 앞에 폭로·고발하 고 전범자를 국제전범재판에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정치촌극이다. 미 국방부, 국무부 가 보낸 조사단이 노근리에서 진상조사를 한답시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이 비 무장지대에서 1968년부터 이태동안 독성이 강해 사람에게 치명적인 다이옥신이 들어있는 고엽 제를 뿌린 사실이 폭로되었고, 주한미군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이태원에서는 미군 병사가 동 포여성을 살해하는 범죄가 있었다. 이러한 미군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주한미군이 해마다 늘리고 있는, 연간 20억달 러가 넘는 주둔경비 부담금, 주한미군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자기들 기지로 쓰고 있는 연간 1조5천9백억원에 이르는 토지 사용료, 주한미군이 누리고 있는 각종 특전과 특혜에 따른 경 제적 손실도 심각하고, 계속되는 포악한 미군 범죄, 미군기지 주변의 자연환경파괴와 저 질퇴폐문화 유입 같은 사회적 피해도 심각하지만, 그러한 일련의 현상은 미국의 남(한국) 지 배전략이라는 본질에서 계속 파생되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본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50년 전 전쟁 중에 일어났던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도 해결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은 일차적으로 주한미군에 의 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존재하고 있는 한, 미국의 지배전략은 변 함이 없을 것이며, 주한미군에 의한 경제적 손실, 사회적 피해 같은 현상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는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전략에서 벗어나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를 결정하는 핵심문제다. 주한미군 철수운동은 이 민족을 미국의 지배전략에서 벗어나게 하는 민족자주운동의 핵이다.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 주한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을 선택이 아 니라 당위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투에서 피아 사이의 전세를 분석하고 작전계획을 세워야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철수론과 철수운동을 금압하는 세력들과 맞서싸우는 민족민주운동의 운동력은 주한미 군을 철수하라는 투쟁구호와 더불어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이론전개력을 요구한다. 비유를 들 어 말하자면, 민족자주사상과 민중민주사상이라는 두 필의 말이 끌고 가는 민족민주운동의 운 동력은 투쟁구호과 이론이라는 두 바퀴에 실려 전진하는 것인데, 그 동안 민족민주운동에게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투쟁구호의 바퀴만 있었을 뿐, 다른 바퀴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남 (한국)에서는 미군 주둔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민족민주운동을 짓눌러왔기 때 문에 주한미군 철수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운동은 크게 제 약을 받으면서 완강한 운동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의 당면과업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투쟁구호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론을 서울과 워싱턴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며, 그로써 주한미군 철수운동을 민족자주운 동의 본궤도에 확실하게 올려놓는 일이다.

 

(2)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의 파탄

미국은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 냉전시기에 남(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목적은 소련이 극 동에 배치한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른바 대소 전진배치론이다. 소련 이 해체된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은 북(조선)의 군사적 공격을 억지하여 남(한국)을 보호 하고 한(조선)반도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하여 남(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고 강변해왔 다. 이른바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북(조선)은 군사적 공격목표를 남 (한국)에 두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되며, 미국은 남(한국)을 지켜주는 보호자, 한(조선)반도 평화 의 유지자가 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전쟁억지론은 거짓명분이었음이 차츰 드러나면서 파탄상태에 빠지고 있다. 놀랍게도, 전쟁억지론에 치명상을 입힌 장본인은 미국 자신이었다. 미국이 제 손 으로 전쟁억지론을 파탄시킨 두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걸프전과 유고전에서 미국은 국제법과 유엔의 권위를 마구 짓밟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전쟁광 신자의 야만적 폭력과 제국주의적 침략만행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로써 미국이 해외에 주둔 시키고 있는 군사력, 해외에 출동시킨 무력은 동맹국, 주둔국의 안보가 아니라 철저하게 미국 자신의 국익을 위한 것이며, 전쟁을 억지하는 평화의 유지자가 아니라 전쟁의 화근이라는 사실 이 입증되었다. 바로 여기서 미국이 남(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군사력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 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태평양사령부와 그 하부단위인 주한미군사령부는 북(조선)을 선제공격하여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전쟁전략에 기초하여 한(조선)반도 핵전쟁계획(Operation Plan 5027)을 세우고 해마다 이를 수정·보완해 왔으며, 바로 이 전쟁계획에 의거하여 해마다 몇 차례씩 미·한연합 군을 동원한 대규모 전쟁급 실전훈련을 계속해 왔다. 역사적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인 중동과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매우 위태로운 정전상태에 놓여있는 한(조 선)반도에서도 북(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여러 차례 획책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 에 널리 알려진 바있다. 이로써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은 더 이상 발붙일 틈이 없게 되었다.

둘째, 북(조선)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주된 상대는 남(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 실이 밝혀졌다. 한(조선)반도의 전쟁위기는 선차적으로 북(조선)과 미국의 군사적 대립구조에 의해서 조성되어왔으며 북(조선)과 남(한국)의 군사적 대립구조는 부차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93년과 1994년에 미국이 북(조선)을 상대로 일으켰던 전면전 위기에서 뚜렷이 입증되었다. 주한미군사령관 존 틸럴리는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나가서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미국이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라고 증언했다. 북(조선)이 남(한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려는 전쟁위험을 억지하기 위하여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전쟁억지론은 파탄의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3)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 파탄 이후의 주한미군

전쟁억지론이 파탄된 뒤에 드러나게 된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은 무엇인가? 이 글은 이 문제 를 다음과 같이 세 각도에서 살펴보면서 그 답변을 정리한다.

첫째, 미국은 북(조선)을 전술핵무기를 동원한 선제공격으로 격파·점령하려는 전쟁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1950년의 한(조선)반도 전쟁 이 후 지난 반세기 동안 북(조선)과 날카롭게 대치해오는 과정에서 북(조선)에 대한 대량보복의지 를 버린 적이 없었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 핵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행동에 옮길 기회를 노려온 것이다. 핵공격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놓고 있는 미국의 엄청난 공격력에 대해서 단독으로 맞 서 있는 북(조선)이 전쟁위협을 얼마나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설명하 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요컨대 주한미군은 전쟁억지력이 아니라, 북(조선)을 겨냥한 대량보복전 략의 첨병이며,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해주는 인계철선 (tripwire) 역할을 맡고 있다.

둘째, 주한미군은 동아시아 약소국들에 대한 지배력, 태평양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유지하 는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물리적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한(조선)반도 전쟁억지론이 더 이 상 통하지 않게 되자 새로 나타난 주장이 있으니,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것이다. 이 이 론의 요체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강의 정치·군사력이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팽팽하 게 맞서면서 동북아지역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만일 미국의 군사력이 남(한국)에서 철수하면 그 전략균형이 깨지면서 지역의 갈등·분쟁이 격화되리라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전쟁 억지론이 파탄된 뒤에, 동북아의 전략균형을 보장해주는 균형자(balancer)로 둔갑된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검토해보면, 동북아 균형자론에 들어있는 기만성이 금방 드러난다. 그것은 사 강 중심의 전략균형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논리가 아니라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궤변은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이 마치 미, 중, 일, 러 사강의 정치·군사력이 전략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꾸미려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이 궤변을 그대로 인 정할 경우, 동북아지역의 전략구도를 논할 때 한(조선)반도가 들어설 자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다. 북(조선)과 남(한국)은 동북아 전략구도에서 아예 그 존재 자체가 배제되고 오로지 주변 사 강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궤변의 밑바탕에는 매우 해로운 지역안보관이 자리잡고 있으니, 그것이 강대국 중심주의다.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력과 일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 있 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조선)도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 있으므로 동북아지역의 전략구도를 논하는 데서 한(조선)반도의 역량은 논의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보는 허무맹랑한 주 장이 그것이다. 우리가 사강 중심의 전략균형론을 궤변이라고 지목하면서 배격하는 까닭은, 그 궤변이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힘의 중심'이 바로 미국 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감추면서 사람들을 속이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강 중심의 전략균형론은 다음 여섯 가지 사실을 감추고 있다.

1) 북(조선)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안에 있지 않았고 일관되게 자주노선을 지켜왔다는 사실.

2)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가장 치열하게 도전하며 맞서온 것은 북(조선)이라는 사실.

3) 러시아는 소연방 해체 이후 동북아지역에서 영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는 사실.

4) 일본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권 안에 포섭되어 있는 하위동맹국이므로 한(조선)반도 에 대한 영향력은 미국의 허용범위 안에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

5)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비교할 때, 한(조선)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

6) 미국은 남(한국)을 군사·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사강 중심의 전략균형론은 위의 여섯 가지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약소 국들과 태평양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은밀히 감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유지하는 지탱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에서 가장 주되는 측면은 군사적인 것이다. 미국이 자국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하위동맹국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남(한국)은 매우 특수한 지위에 놓여있다. 남(한국)은 미국의 하위동맹국이 아니라 미국이 군사적으로 통제·관리하는 피지배국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연합군 체제를 통하여 주둔국 군대의 작전지휘권과 전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는 남(한국) 밖에 없다. 미군 주둔을 영구히 보장하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이 전시에 주둔국의 인력, 자원, 물자를 마음대로 징발·처분할 수 있게 되어있는 '전시주류국지원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남(한국) 밖에 없다. 미국이 주둔군 지위협정을 맺은 85개 나라 가운데, 미군이 주둔국에서 거의 초법적인 특권과 지위를 누리게 되어 있는 주둔군 지위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이 지구 위에서 오로지 남(한국) 밖에 없다. 현대전의 총아라고 하는 미사일을 연구·개발하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철저한 감시·통제를 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나라, 군사정보를 거의 전적 으로 주둔군에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남(한국) 밖에 없다. 미국이 3년 동안 군정을 실시하여 주둔국의 군대를 직접 창군했으며 창군 뒤에도 '군사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육성·관리한 나라는 남(한국) 밖에 없다.

이처럼 미국의 군사적 지배 아래에 있는 나라가 정치·외교부문의 자주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만한 대제국 미국은 남(한국)을 정치적 자주권이 없는 '변방의 속국'으로 여기고 있다. 남(한국)에서 통치권력을 개편·재편(또는 유지·연장)했던 모 든 대선과 총선에 미국의 비밀 정치공작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생 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착각일 것이다. 남(한국) 정부의 외교가 미국이 쳐놓은 행동반경 안에서만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에 비해서 남(한국)의 경제는 미 국과 일본에게 이중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미국보다 일본에게 더 심하게 종속되어있다. 다 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구도에서 중심축은 군사부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남(한국) 지배전략 을 수립하고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그 전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말하는 동북아 전략균형은 사강의 힘이 동북아지역을 균점하고 있다는 뜻의 전략균형이 결코 아니며, 미국이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포함하고 있는 동아시아·태평양 전략구도를 안정상태로 유 지하고 있다는 뜻의 전략균형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주한미군의 성격과 임무가 드러나게 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동아시아·태평 양 전략구도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는 미국의 남(한국) 지배력을 물리적인 힘으로 안받침하고 있는 실체다. 미국은 동아시아 약소국들과 태평양에 배치한 유력한 전략거점들 가운데 하나인 남(한국)을 군사·정치적으로 장악·지배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남(한국)을 지배하려면 자국의 물리적인 힘, 곧 군사력을 현지에 배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을 주둔 시키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핵강국은 중국과 러시아다. 일본, 남(한국), 대만은 핵무장 잠재력 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핵무장 잠재력이 위험수위에 접근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극도의 안보불안감에 빠진 남(한국)은 당장 핵 무장을 추진하려 할 것이며, 그 파장은 곧 일본의 핵무장 욕구를 자극할 것이다. 대만도 이러한 추세에 주저없이 합류하리라는 것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동 북아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무장 경쟁지역으로 뒤바뀔 것이며,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에 서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이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남(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군을 남(한국)에 주둔 시키면서 남(한국)을 군사·정치적으로 지배·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4) 한(조선)반도 전략균형의 변동과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

한(조선)반도의 전략구도는 1953년 7월 27일 정전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변동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은채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었다. 한(조선)반도 전략구도의 장기적 응고화 현상은 주한 미군 철수론과 철수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없도록 금압해오고 있는 외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조선)반도와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지역의 정치·군사 전 략균형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지각변동의 중심권에는 핵무장 군사강국 북(조선) 의 등장이라는 대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1998년 10월에 북(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의 국제전략 문제연구소(IISS) 소장 존 치프먼은 『98/99 국제 군비·군사력 보고서』에서 북(조선)이 1998 년 8월에 발사한 인공위성은 북(조선)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준 '비장의 수'였다고 하면서 북(조선)이 '팽팽한 줄'에 의지함에 따라 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이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한미군 문제는 바로 이 지각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가피하게 철수하 는 방향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북(조선)을 선제 핵공격으로 격파·점령하려는 미국의 기존 전쟁전략이 뒤바뀌지 않으 면 안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은 북(조선)의 재래식 전 력을 상대로 수립된 전략이었다. 그런데 북(조선)은 미국의 핵공격에 맞서 핵탄두를 장착한 전 략미사일을 일본 열도, 오키나와, 괌, 알래스카, 하와이에 배치되어 있는 태평양 지역의 미군 전 략기지들과 워싱턴, 뉴욕을 비롯한 미국 본토의 대도시들을 향해 발사할 수 있는 대량보복능력 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태평양지역에 배치한 핵전력과 북(조선)의 핵전력이 맞붙는 상황이므로 지상군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는 주한미군 3만7천명을 가지고서는 북(조선) 의 대량보복을 막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조선)의 핵무장 이후에 생겨난 전략균형의 변동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 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시기 주한미군은 미국의 기존 전쟁전략에 동원되는 전진배치 무력으로 존재해 왔다. 북(조선)이 재래식 전력만을 지니고 있었 던 시기에 주한미군은 북(조선)의 재래식 전력을 최전선에서 격파하기 위한 돌격대 역할을 하 였지만, 이제 북(조선)의 핵무장력은 주한미군의 기존 전쟁전략을 쓸모 없게 만들었으며, 더 중 요한 사실은 주한미군이 북(조선)의 대량보복공격 앞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지난날처럼 미국의 대량보복전쟁에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인계철선으 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의 대량보복능력에 볼모로 붙잡혀 있는 처지로 바뀌어 진 것이다. 지금 주한미군은 한(조선)반도에 주둔한 이래 최대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은 북(조선)이 재래식 전력만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수립했던 기존 전쟁전략을 새로운 전략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새로운 전략을 세 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수립할 새로운 전략은 한(조선)반도에서 볼모 신세로 전락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을 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북(조선)의 핵무장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으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의 핵무장은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는 미국의 지배전략구도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만 일 북(조선)의 핵무장이 공식화되면서 역내 핵무장 군사강국으로 등장한다면, 남(한국)과 일본 에게는 그로 인해 터져나올 대혼란을 견딜 수 있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으며, 미국에게도 그 러한 대혼란을 책임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만일 북(조선) 이 핵무장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이 공식화된다면, 주한미군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공중분해될 것 이며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대혼란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지난 10년 동안 중단되었던 주한미군의 삼단계 철수구상을 다시 논의하고 실행함 으로써 북(조선)의 핵무장이 공식화되지 않도록 설득하는 예방조치 밖에 없다.

셋째, 북(조선)의 핵무장 이후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은 붕괴의 위험에 밀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북(조선)의 핵무장 사실이 공식화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이 아니라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남(한국)의 핵무장을 억제·저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북(조 선)의 핵무장 공식화는 남(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장 욕구 폭발→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 붕 괴→주한미군 존재근거의 완전 소멸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 로 북(조선)이 이미 핵무장을 끝낸 현재 조건에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을 동북아지역에서 유지하기 위해 미군을 주둔시킨다는 주한미군의 존재근거는 소멸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주한미군 계속 주둔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이 그 둘 가운데서 하나를 택한다면 당연히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을 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주한미군의 존재근거와 목적 세 가지는 북(조선)이 핵무장 이후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주한미군 3만7천명은 존재근거를 잃어버린 '길 잃은 아이'의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길 잃은 아이'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이는 새로운 전략적 방침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정책을 수정하는 일은 적어도 동아시아·태 평양 전략구도 전반을 수정하는 문제이고, 그러한 수정작업은 간단치 않은 워싱턴 정치권 안팎 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적 방침이 구체화되기까지 앞으로 일정한 시 간이 흐를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전략적 방침 속에는 '길 잃은 아이'로 전락한 주한미군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이는 철군계획이 포함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 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5)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조선)반도 통일 문제의 상관성

미국이 북(조선)이 핵무장을 이미 끝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북(조선)의 핵무장을 공 식적으로 인정하기를 극력 꺼려하고 있는 까닭은, 북(조선)의 핵무장을 공식 인정할 경우 동아 시아·태평양 전략구도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남 (한국)의 이름난 보수논객은 북(조선)이 "미사일 발사준비설 하나로 강대국 지도자들을 이리 뛰 고 저리 뛰게 만드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는데, 그는 북(조선)의 핵무장을 둘러싸 고 벌어지고 있는 조·미 역학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왜 그러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생기게 되 는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미관계의 동학(動學)을 이해하는 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북(조선)이 핵무기 와 전략미사일을 가지고 미국을 위협하면서 50년 묵은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벼랑끝 으로 차츰 밀어부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기의 동아시아·태평양 전 략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게 된다. 그 길은 미국이 거부해왔던 북(조선)의 정 치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993년 6월 13일 뉴욕에서 발표된 조·미 공동발표문, 1994년 10월 24일 제네바에서 발표된 조·미 기본합의문은 미국이 북(조선)의 일방적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음을 입 증하는 외교문서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조선)반도의 운명에 관련되어 있는 이 두 외교문서가 북(조선)과 미국이 서로 타협하여 만들어낸 산물이 아니라 북(조선)이 내놓은 일방 적인 요구를 미국이 거의 모두 받아들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 두 외교문서가 채택 될 때, 그동안 '깡패국가'라고 깔보며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를 울 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고, 대북정책을 새로 세워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남 (한국)의 보수논객조차도 '김정일 외교의 큰 업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정일 외교의 큰 업적'이 북(조선)이 극심한 경제난을 견뎌야 했던 '고난의 행군' 속에서 이루 어졌다는 점이다.

북(조선)이 외교 승리를 거두고 미국이 외교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그 과정에서 미국은 초 강대국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꼴을 감추어야 했으므로 북(조선)의 일방적인 요구를 거의 전면적 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조·미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라고 강변하면서 패배의 수치를 감추었다. 한때 세상의 눈과 귀를 쏠리게 했던 '페리보고서'는 미국이 북(조선)에게 외교적으로 패배한 뒤에 진행하게 될 미국의 대북정책구도를 세상에 드러낸 문건이다. 그리하여 지금 미국은 이 문건에 따라 조·미 고위급 정치회담을 추진하는 일정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요구하고 기어이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 로 무엇일까? 1993년의 뉴욕 공동발표문,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그 윤곽이 드러나있다.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를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그것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략을 근본적으 로 바꾸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북(조선) 적대전략을 버리라는 것이다. 여기 에는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을 포기하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략에서 북(조선) 적대전략과 남(한국) 지배전략은 동전 앞뒤면처럼 뗄 수 없는 것인데,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없애버리면 다른 한 쪽도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미국에게 북(조선) 적대전략을 버 리라고 하는 요구는 곧 미국에게 남(한국) 지배전략도 포기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 국 한(조선)반도의 자주화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북(조선)의 전략목표와 일치한다. 미국의 남(한 국) 지배전략 포기는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급속히 진전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 의 견지에서 볼 때, 당면한 과제는 미국의 북(조선) 적대전략을 제거하는 문제로 집약되는데, 이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함으로써 한·미 동맹체제(실제로는 남(한국) 지배체제)를 해체하는 문 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 조·미 사이에서 진행될 고위급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은 주한미군 철 수 문제를 의제로 올려놓고 이 문제를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방향에서 타 결지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며, 다른 한 편에서 미국은 싫든 좋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타결짓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전망적으로 말하자면,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조·미 고위급 정 치협상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타결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 지 않으면 미국의 대북 적대전략과 대남 지배전략이 제거될 수 없고,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구 조 속에 묶여 있는 한 한(조선)반도의 자주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북(조선)은 보고 있기 때 문이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주한미군 철수는 북(조선)을 미국의 적대관계에서 벗어나게 하고, 남(한국)을 미국의 지배구도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한(조선)반도 자주화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현단계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즉각 전면적으로 철수하 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아니된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지금과 같 이 남북이 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치한 상황에서 만일 미국이 주한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함으 로써 사실상 남(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포기한다면, 남(한국)은 즉각 핵무기와 장거리 미 사일 개발을 추진할 것이고, 남(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군사적 결합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며, 따라서 한(조선)반도의 전쟁위험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 악화는 이미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말기에 현실로 입증된 바있다. 그 무렵 베트남전쟁에서 패전 의 쓴 잔을 마시고 간신히 빠져나온 닉슨정권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 고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전격적으로 철수했고, 뒤이어 대통령 카터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려 하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반대·저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핵무기와 미 사일을 개발하려 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함으로써 남(한국)의 권력구조가 군사·정치적으로 탈미화(脫 美化)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민족자주와 조국통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탈미화한 남(한국)의 권력이 여전히 반통일세력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남 (한국) 권력구조의 탈미화는 자주화의 외적 형식이다. 남(한국) 권력구조의 자주화는 어디까지 나 자주적 통일실현을 그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한국)의 자주화는 주한미군이 철 수되고 미국의 군사·정치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남북의 적대관계가 확대재생 산하여온 민족분열구조에서 벗어나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연방화 과업과 분리되어서 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주한미군 철수는 남(한국) 권력구조의 자 주화와 함께 남북 권력구조의 연방화라는 두 개의 과업과 연동되어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명백하게 인식해야 할 문제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그에 따른 남(한국)의 자주화는 남 북관계가 적대관계, 분열구조에서 벗어나서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업, 곧 연방화 의 원칙에 따라 국가주권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남북의 현존 하는 권력구조가 연방화의 원칙에 따라 국가주권을 단일한 연방권력으로 통합하는 평화통일의 조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만일 주한미군이 전면적으로 철수하여 남(한국)의 권력구 조가 탈미화한다면, 그것은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더욱 첨예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 서 주한미군의 철수는 남(한국)의 자주화와 한(조선)반도의 연방화라는 이중적 발전과정과 단계 적으로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철수가 단계적, 점진적 과정을 밟아가지 않 을 수 없는 까닭이다.

(6) 통일과도기와 주한미군 철수

이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주한미군 철수가 구체적으로 한(조선)반도 연방화 단계의 어떤 지점과 맞물리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 마디로 말하여, 주한미군 철수는 '통일과도기' 에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과도기란 지금과 같은 분단상태에서는 벗어났으되 아직 연방제 통일실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의 기간을 뜻한다. 통일과도기는 조·미 사이에서 한(조 선)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조·미 국교가 수립되며 남북이 통일회담을 진행하는 단계, 곧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기 직전 단계에 이르기는 기간이다.

베트남의 평화협정 체결과 통일실현 과정을 보면, 베트남과 미국이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 를 회복하기 위한 결정적 조치로 이루어낸 1973년 1월 27일의 '베트남 휴전 및 평화협정'이 베 트남의 자주적 평화통일문제를 직접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 협정의 제15조는 "베트남의 재통일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협의 와 합의를 바탕으로 어느 일방이 타방을 강요하거나 통합함이 없이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단계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상태→평화협정 체결에 의한 종전과 평 화 회복기 진입→미군 철수→통일실현이라는 네 단계를 밟아갔는데, 우리는 정전상태→조· 미 평화협정 체결 및 국교수립 이후 통일과도기 진입, 미군의 단계적 철수 시작→남북 통일회 담 시작, 미군 철수 완료→연방제 통일실현이라는 네 단계를 밟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조·미 두 나라는 우선 고위급 정치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 수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조·미 고위급 정치회담에서 두 나라는 북(조선)을 무력 으로 위협하지 않는 상태로 무해화된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일과도기에 잠정적으로 허용하는 협 정을 맺을 가능성도 있다. 조·미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하게 되면, 주한미군의 철수는 더욱 촉 진될 것이다. 조·미 국교수립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를 크게 자극할 것이 분명하고, 그로 써 남북 정부당국의 통일회담이 진행되고 남·북·해외 통일운동역량의 민족대단결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는 통일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이러한 통일정세는 통일과도기의 마지막 단계, 곧 남(한국)의 권력구조가 대북 적대관계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민족분열구조에서 벗어 나서 연방화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권력구조로 전환·대체되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인데, 바로 이 단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는 완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곧 한·미 동맹체제의 해체를 뜻한다. 연방화의 원칙에 따라 국가주권을 통합한 새로운 연방국가는 미국의 적대국도 피지배국도 동맹국도 아닌 전혀 새로운 길로 나아 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길이란 영세중립화(permanent neutralization)를 말한다.

(7) 미국은 과연 남(한국) 지배전략을 포기할 수 있을까?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은 알래스카→일본 열도→남(한국)→대만→오키나와→괌→필 리핀→인도네시아→싱가포르까지 전략거점들을 길게 이어놓은 이른바 '동아시아 방위선'을 그어 놓고 태평양 전체를 '미국의 호수'로 만들어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지배전략이다. 주한미군 철 수가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고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을 포기하는 것임은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미국이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수행에서 중요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한·미 동맹체제를 과연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하 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은 태평양에 배치해놓은 전략 거점을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지만, 어느 특정한 전략거점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력관계 의 변동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해지게 될 때는 그 전략거점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1970년대의 격변기에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역사 적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첫째, 미국은 태평양 전략거점들 가운데 대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중국과 국교 를 수립하면서 중국의 강한 요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대만에 주둔시켰던 미군을 전면 철수하 고 대만과 맺은 방위조약을 폐기함으로써 대만을 포기하였다. 1972년 2월 27일 상하이 중·미 회담에서 발표된 '중화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공동성명'은 이렇게 지적했다.

"대만문제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정상화를 방해하는 결정적인 문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전 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다. 대만은 오래 전에 모국에 귀속되었던 중국의 한 성이다. 대만의 해방 은 어떠한 간섭도 할 권리가 없는 중국의 내정문제이다. 그리고 모든 미군과 군사시설은 대만으로부 터 철수해야 한다. (줄임) 미국은 대만해협 양안의 중국인들이 다같이 오직 하나의 중국이었으며 대 만은 그 일부라는 주장을 인정한다. 미국 정부는 그러한 입장에 도전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인 자 신들에 의한 대만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있음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전망에 유의하면서, 미국 은 대만으로부터 모든 미군과 군사시설을 철수하는 것이 종국적 목표임을 확인한다. 미국은 대만지 역에 긴장이 감소됨에 따라 이 지역 주둔 미군 및 군사시설을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이다."

상하이 공동성명이 나온 뒤로부터 이태가 지난 1974년 미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기 위해 대만에 주둔시키고 있는 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1974년 안에 대만에 배 치한 미군 첩보기와 핵무기를 철거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모색하겠다고 중국에게 밀약하였다. 그로부터 다시 네 해가 지난 1978년 12월 15일에 미국이 발표한 '미·중 외교관계 수립에 대한 미국의 성명'에서는 "1979년 1월 1일에 미합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고 하면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함과 미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상호방위조약이 동조약의 조항 규정에 따라 종결되었음을 통고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대만으로부터 잔여 주둔 미군을 4개월 안에 철수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내용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둘째,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전함으로써 태평양 전략거점들 가운데 남베트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회담에서 체결된 '베트남 휴전 및 평화협정'은 제4조 에서 "미국은 남베트남의 내정에 대한 군사적인 개입이나 간섭을 중지한다"고 명문화하였으며, 제9조에서는 "남베트남 인민들의 자결권은 신성불가침이며 모든 국가에 의해 존중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는 남베트남 인민에게 어떠한 정치적 경향이나 개성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미국의 이른바 '동아시아 방위선'은 태평양 지역에 있는 여러 거점들을 연결하는 것인데, 대 륙에 연결된 반도에까지 전진배치한 두 개의 태평양 전략거점, 곧 인도차이나반도의 남베트남 과 한(조선)반도의 남(한국) 가운데서 남베트남은 미국의 패전으로 미국의 지배구도에서 벗어나 일찌감치 통일되었으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륙 배치 거점은 남(한국)이다.

셋째, 미국이 동북아의 대만과 동남아의 남베트남이라는 유력한 전략거점을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중국의 정치적 공세와 베트남의 군사적 공세에 각각 밀렸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남베트남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물러났던 결정적인 이유는 군사적 패배였지만, 남베 트남이라는 거점을 포기하더라도 동아시아·태평양 전략구도가 치명상을 입지 않게 된 두 가지 안전장치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베트남전쟁에 동원했던 무력을 철수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안전 장치란, 통일된 베트남은 절대로 중국의 피지배국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베트남을 포기 하더라도 인도네시아라는 동남아 전략거점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미국이 대만 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물러났던 결정적 이유는 중·미 국교수립이라는 정치적 변화였지만, 대만이라는 전략거점을 포기하더라도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잇는 '동아시아 방위선'이 변함없이 유지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만에 주둔시켰던 무력을 철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남(한국)의 경우는 베트남형의 군사적 공세 가 아니라 대만형의 정치적 공세에 의하여 미국의 지배구도가 해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서 대만 주둔 미군이 중·미 국교수립이라는 정치적 변화에 의해서 철수했던 것과 마찬가 지로 주한미군은 조·미 국교수립이라는 정치적 변화에 의하여 철수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이 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면서 남(한국)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동 아시아·태평양 전략구도가 치명상을 입는 사태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더라도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를 잇는 '동아시아 방위선'은 그대로 살아있을 것이며, 통일된 한(조선)반도는 중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지 않고 미국을 적대하지 않는 영세중 립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이 노리고 있는 주요목표는 중국 포 위전략이므로,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 포기가 중국 포위망을 훼손하지 않고, 미·일 동맹관 계를 현상태로 계속 유지시킨다면 미국은 남(한국) 지배전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이러한 구도에서 본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사태가 되지 않을 것이며, 한(조선)반도가 자주화, 중립화, 연방화된 뒤에도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구도는 여전히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보면, 미국의 남(한국) 지배전략 포기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조선)반도 안팎의 정세가 질적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미국이 만일 주한미 군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조·미 대립관계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남(한국)이라는 전략거 점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남(한 국)이라는 전략거점을 포기하지 않으면 남(한국)이라는 전략거점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동 아시아 최대의 사활적인 전략거점인 일본마저 미국의 포섭망에서 빠져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 다. 그렇지만 미국이 남(한국)이라는 전략거점을 포기하는 경우, 지금 미국의 하위동맹체제에서 벗어나서 독자노선을 가려고 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전보다 더욱 견고하게 포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이라는 전략거점을 포기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 추구에 더 부합하 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서 우리는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과 미국이 남(한국) 지배전략을 포기할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 2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