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주의선동이 불러일으키는 착시현상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럼스펠드가 보여준 위성사진

얼마 전, 국방장관직에서 밀려난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악명 높은 제국주의전쟁광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1977년부터 1993년까지 다국적 제약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군림하는 동안 자본주의언론시장이 내세우는 '영예의 최고경영자'로 두 차례나 뽑힌 제국주의독점자본의 하수인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전쟁광이자 제국주의독점자본의 하수인인 럼스펠드가 2006년 10월 11일에 자본주의언론시장에 넘겨준 위성사진 한 장이 100만 부나 찍어내는 극우성향의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 2006년 10월 12일자에 실렸다. 2006년 10월초에 한(조선)반도 전역의 야경을 군사정찰위성이 촬영한 그 특이한 위성사진을 보면,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은 전기불빛이 환한 불야성인 반면, 이북지역은 캄캄한 암흑지대이다.

2006년 10월 11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럼스펠드의 등뒤에는 크게 확대한 한(조선)반도의 위성사진이 걸려있었다. 럼스펠드가 『데일리 메일』에 넘겨준 바로 그 사진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럼스펠드는 그 위성사진을 가리키면서 "전력난으로 고통을 겪는 북(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고, "경제성장이 멈춘 북(조선)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수치이며 비극"이라고 떠들어댔다.

반사회주의선동에서 서로 첫 자리를 다투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남(한국)의 반동언론들이 그 위성사진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럼스펠드의 목소리를 흉내내기에 바빴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목하는 것은, 럼스펠드가 보여준 위성사진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이다.

첫째, 그 위성사진이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 걸려있는 그 위성사진에는 동해와 서해의 남측 해역에 매우 환한 불빛이 나타나있다. 그 위성사진을 찍은 때가 오징어잡이철인 10월초이므로, 그 사진에 나타난 바다 위의 환한 불빛은 남(한국)의 오징어잡이배들이 켜놓은 집어등 불빛일 것이다. 동해의 집어등 불빛이 서해의 집어등 불빛보다 훨씬 크고 환하게 나타난 것을 보면, 지구온난화현상으로 한(조선)반도 주변의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찬 바닷물이 흐르던 동해에 난류성 어족인 오징어가 몰려들면서 커다란 오징어어장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해에서 오징어잡이배들이 집어등을 켜놓을 때 쓰는 전력소비량보다 북(조선)의 전력소비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럼스펠드가 보여준 위성사진에서는 북(조선) 도시들의 불빛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집어등의 불빛만 환하게 보인다. 이것은 북(조선)의 전력소비량이 집어등의 전력소비량보다 훨씬 적은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데일리 메일』이 보도한 위성사진에서는 동해의 집어등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집어등 불빛을 지워버린 것이다. 북(조선)의 전력소비량이 마치 집어등의 전력소비량보다 훨씬 적은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대해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지워버린 것이 분명하다.

한(조선)반도의 위성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착시현상을 자본주의언론시장에서 증폭시켜 사람들을 무지와 몽매에 묶어두는 수법은, 사회주의는 어둠이며 악이고 자본주의는 빛이며 선이라고 선동하는 제국주의전쟁광들과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너무도 익숙한 행위가 아닌가.

둘째, 자본주의도시환경의 화려한 야경은, 자기가 생산한 상품을 소비해달라고 목청을 높이는 자본들 사이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상품광고시장의 각축장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상품광고시장도 팽창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도시환경의 야경을 눈부시게 장식하는 전력소비량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야경 뒤에서 자본가들끼리 서로 물고 뜯는 야만적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자본주의도시환경의 화려한 야경은 결코 문명적인 현상이 아니다.

북(조선)에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본들 사이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상품광고시장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화려한 도시야경도 찾아볼 수 없다. 남(한국)의 화려한 도시야경은 자본들이 벌이는 야만적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며, 북(조선)에서 그러한 화려한 도시야경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한 단면이다.

물론 도시야경의 밝기는 상품광고시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가로등 설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북(조선)의 도시들에서도 남(한국)의 도시들처럼 수많은 가로등을 켜놓아 도시야경을 좀더 환하게 할 수 있겠으나, 북(조선)에서 생산한 전력을 가지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북(조선)이 전력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럼스펠드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2002년 현재 북(조선)의 전력생산량은 336억2천만 kWh, 소비량은 312억6천만 kWh인데 비하여, 2003년 현재 남(한국)의 전력생산량은 3천225억 kWh, 소비량은 2천936억 kWh이다. 남(한국)의 전력생산이 북(조선)의 전력생산에 비해 대략 열 배가 많다. 남(한국)의 인구가 북(조선)의 인구에 비해 대략 두 배가 많다는 점을 계산에 넣더라도, 남(한국)의 전력생산량이 다섯 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격차가 생겨난 까닭은, 북(조선)이 중유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현재 북(조선)의 전력생산은 수력발전 71%, 화력발전 29%인데 비해, 남(한국)의 전력생산은 수력발전 0.8%, 화력발전 62.4%, 원자력발전 36.6%, 기타 0.02%이다. 북(조선)의 화력발전이란 주로 석탄발전이고, 남(한국)의 화력발전이란 주로 중유발전이다.

북(조선)이 수력발전과 석탄발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비해, 남(한국)이 중유발전과 원자력발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까닭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전력생산이 동력자원을 해외에서 수입하지 않고 국내에서 개발하는 자립노선에 기초한 반면,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전력생산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틀어쥔 국제시장에서 막대한 동력자원을 사들이는 대외의존성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셋째, 럼스펠드가 보여준 위성사진이 촬영되고 공개된 때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5년 3월 16일 박근혜를 비롯한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이 워싱턴의 국방부를 찾아갔을 때, 럼스펠드는 자기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판유리 밑에 보관하던 위성사진을 보여주었고, 그 사진의 사본을 박근혜에게 선물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면, 럼스펠드는 2005년 3월 16일 이전에 찍은 사진과 2006년 10월초에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주목하는 것은, 위성사진을 찍은 때가 2006년 10월초 어느 날이었고, 그것을 자본주의언론시장에 공개한 때가 2006년 10월 11일이었다는 점이다.

2006년 10월 3일은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여 워싱턴이 발칵 뒤집어진 날이다.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그 발표가 나오기 이전부터 북(조선)을 감시, 정찰하고 있었는데, 그 발표가 나오자마자 모든 첩보활동과 정찰작전을 황급히 북(조선)에 집중시켰다. 미국의 군사정찰위성이 문제의 그 사진을 찍은 것은,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진행된 정찰작전의 일환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럼스펠드가 그 위성사진을 영국 일간지에 넘겨준 2006년 10월 11일은, 그가 북(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에 관한 정보를 받고 경악과 충격에 빠졌던 10월 9일로부터 이틀 뒤이다. 사회주의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제국주의지배체제에 붕괴의 파열구를 뚫고 있는 북(조선)을 향해 적개심이 끓어오른 럼스펠드가 그 위성사진을 극우언론에 공개한 것은 반사회주의를 선동하는 정치행위였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윤을 수탈한 덕분에 자기들끼리 즐기는 호화스럽고 낭비적이며 방탕한 '상류생활'에 익숙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하수인들의 눈에는 사회주의가 캄캄한 어둠으로 보인다. 럼스펠드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빈곤, 식량난, 억압, 독재와 동의어이다. 그들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너무 피폐해져 회생할 가망이 없다느니,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주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느니, 조중국경을 넘어서 탈북자들이 엄청나게 밀려나온다느니 하는 따위의 얼빠진 소리를 끝없이 되풀이해오고 있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왜곡하거나 조작한 통계수치를 들먹이면서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낙후성'을 '입증'하고, '정치범수용소'와 '식량난'의 비극, 그리고 '탈북자의 증언' 따위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헛소문을 자본주의언론시장에 퍼뜨리고, 그로써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려는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으려는 차단행위는, 일찍이 1917년 사회주의10월혁명 이후부터 전세계 사회주의나라들을 중상, 비방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90년 묵은 반사회주의선동의 전형이다. 럼스펠드가 보여준 위성사진에서는 북(조선)을 중상, 비방하는 반사회주의선동의 교활한 모습이 드러난다.

2.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에 나타난 반사회주의착시현상

미국 중앙정보국이 내놓은 통계자료에서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를 기준으로 한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per capita)을 살펴보면, 2005년 현재 남(한국)은 2만2천600 달러로, 북(조선)은 1천700 달러로 나타나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말에 이르러서야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이 2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였고, 그것도 환율이 달러당 920 원 대로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2만 달러로 높아졌는데, 미국 중앙정보국은 2005년에 벌써 남(한국)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을 구매력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2만2천600 달러로 크게 올려잡았다. 과장과 왜곡의 수법이 좀 서툰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2만 달러 시대'를 외치기 시작한 2003년의 평균환율은 달러당 1천192 원이었으므로, 당시 평균환율이 2006년까지 변동 없이 유지된 것으로 계산하면 2006년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은 1만5천 달러 수준에 머물게 된다. 환율변동에 따라 3년만에 5천 달러나 늘어난 것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성장지표로 등장하는 국내총생산은, 환율을 변동시킴으로써 마치 국내총생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환율변동으로 남(한국)의 국내총생산에 더해진 거품을 빼고,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 지표를 비교해 보면, 남(한국)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이 북(조선)의 그것보다 8.8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남(한국)사회가 북(조선)사회보다 8.8배나 더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또 물질적으로 풍요한 만큼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산 고급자동차를 몰면서 외국산 명품으로 치장하고 호화스러운 해외여행을 즐기며 낭비와 방탕에 빠진 남(한국)의 최고부유층에게는 자기들이 사는 사회가 참으로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름진 웃음을 흘리며 떵떵거리는 반대쪽에서는 수많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고통스러운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민은행이 내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남(한국)에서 집값이 11.6%나 뛰어올랐고, 전세값도 6.5%나 올랐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5년 말까지 남(한국)의 부동산가격은 1천153조 원이나 올랐다. 2006년 한 해 동안 남(한국) 전역의 아파트 시가총액은 308조 원이나 늘어났는데, 이것은 국내총생산 840조 원의 37%에 이르며, 연간 정부예산 144조8천 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통화단위가 조에 이르면 일반인의 화폐감각을 완전히 뛰어넘는 까닭에 그것이 얼마나 많은 액수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그냥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한다.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경제붕괴의 위기감에 가위눌리게 된 사회가 이 세상에 남(한국)사회 이외에 또 있을까.

예로부터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 했는데, 평생을 뼈빠지게 일해본들 집 한 칸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집 없는 설움은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되었다. 서울시 가구의 10.7%인 35만 가구는 바람도 통하지 않고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나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서울시 빈곤층 가운데 15%는 뒷간이 없고, 13%는 상수도가 없고, 4.5%는 부엌이 없이 살고 있다. 움막, 동굴, 판잣집에 사는 주민은 11만 명이나 되고, 지하방과 옥탑방에서 사는 주민은 160만 명이나 되고, 남(한국) 주민의 41%에 이르는 1천700만 명이 셋방살이로 떠도는 고통스러운 세상의 반대쪽에 있는 '행복한 세상'에서 다주택보유자 상위층 100명은 집을 한 사람 당 평균 155채나 가지고 있다.

2006년 12월 13일과 14일 남(한국)의 엠비씨(MBC) 텔레비전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소비자 물가를 뉴욕과 도쿄의 소비자 물자와 비교하였더니 서울의 물가가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이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임을 뜻한다. 남(한국)사회에서 물가폭등은 저임금과 짝을 이루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숨통을 조여대고 있다.

2006년 현재 남(한국)의 단기외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일어났을 때보다 많은 1천억 달러에 이르고, 개인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 사람 당 1천300만 원을 넘어섰다.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이 1만5천 달러 수준인데, 개인빚이 한 사람 당 1만4천 달러나 되는 그런 사회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처럼 남(한국)에서 집값, 세금, 물가가 오르고, 부채, 교육비, 의료비에 쪼들리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생존파탄의 위기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고통을 겪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남(한국)사회는 북(조선)사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그만큼 행복한 사회가 전혀 아니다.

다음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에 눈길을 돌려보자.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발전수준은 이질적인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설정한 평가기준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발전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임금형태로 지급되는 소득총액에 대한 사회주의공공혜택의 가치총액의 비율이다. 사회주의공공혜택(socialist public benefits)이란 북(조선)에서 식량, 기초식품, 의복 같은 생활필수품과 주택, 전기, 수도, 교통 같은 공공서비스를 아주 낮은 값으로 전체 인민에게 공급하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근로인민에게 정기적인 유급휴가, 무상정양, 무상휴양, 산전산후휴가, 연로보장을 제공하고, 무의탁자, 노동재해를 당한 사람, 사고나 병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직한 사람에 대한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고, 납세제도를 없애는 등의 사회적 혜택을 뜻한다. 사회주의공공혜택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산한 사회적 소비자금(social consumption fund)을 공평하게 분배하여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이익의 실체이다.

사회주의공공혜택의 가치총액의 비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발전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며, 사회주의공공혜택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질적으로 발전함으로써 임금형태로 지급되는 소득이 거의 무의미하게 되면, 사회주의건설이 물질적 측면에서 완성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건설이 물질적 측면에서 그처럼 고도화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는 공산주의이상사회(communist ideal society)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과 문화의 측면에서도 사회주의건설이 높은 수준에 올라서야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주목하는 것은, 2005년 현재 북(조선)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을 1천700 달러로 추산한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수치에는 사회주의계획경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산한 사회적 소비자금, 그리하여 근로인민 전체에게 되돌려져서 그들의 생활을 집단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주의공공혜택이 중앙정보국이 내놓은 통계자료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사회주의공공혜택의 가치총액을 인구수로 나누고, 거기에 임금형태로 지급되는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을 더하면 북(조선)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을 산출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2006년 한 해 동안 생산한 사회적 소비자금의 총액이 얼마인지를 밝혀주는 통계자료를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통계자료는 없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주택, 의료, 교육, 보험, 납세 등에 들어가는 평균총액을 소득의 50% 정도로 추산하면, 북(조선)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남(한국)의 한 사람 당 국내총생산이 2만 달러나 되는데 비해, 북(조선)의 그것은 1천700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착시현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3. 국내유민(IDP)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 중앙정보국이 내놓은 통계자료에는, 북(조선)에서 "정부의 억압과 기근으로" 2005년 현재 국내유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이 5만-25만 명이나 떠도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물론 이 통계자료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추산의 결과이다.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전세계를 마음대로 쏘다니면서 첩보활동을 벌이지만, 북(조선)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북(조선)은 중앙정보국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역사상 유일한 나라라는 자랑거리를 또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에서 첩보활동을 벌이지 못하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북(조선)의 국내유민에 관하여 작성한 통계자료를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중국에서는 폭동이나 시위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만일 북(조선)사회에서도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단 한 차례라도 들려온다면, 국내유민에 관한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자료를 부정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소식은 애써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 사회주의의 최대 시련이었던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조선)에서는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북(조선)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일으키는 폭동이나 시위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 공안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9월까지 곳곳에서 일어난 폭동 또는 시위투쟁에 참가한 중국 농민은 38만5천 명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2006년 11월 8일 중국 광둥성 포산시 선더구에서 진행된 대규모 식량저장소 준공식장에 난입한 중국 농민 1만여 명은 자기들의 토지를 지방정부가 강탈하였다고 하면서 준공식장에 나와있던 정부관리들과 독일, 영국에서 온 외국기업인 300여 명을 억류하였는데, 이튿날 무장경찰 2천 여명이 몰려가서 최루탄을 쏘아대며 겨우 진압하였다.

오늘 중국에서는 농민만이 아니라 노동계급도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격렬한 생존권사수투쟁에 나서고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일어난 노동계급의 생존권사수투쟁은 18만 건이며, 참가인원은 60만 명이다.

2006년에 중국에서 일어난 폭동과 시위투쟁은 8만7천 건인데, 해마다 20-30%씩 늘어나면서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사태를 방치하는 경우, 2010년쯤에 가서는 경찰력으로 진압할 수 없는 전국적 범위의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04년 현재 중국 농민들 가운데 1년에 석 달 이상 도시를 떠돌면서 막노동을 하거나 향진기업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인구는 중국 인구의 15%에 이르는 2억 명이다. 그들을 '농민공(農民工)'이라 부른다.

중국의 농민공들이야말로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적한 국내유민이지만, 중앙정보국이 중국에 관하여 펴낸 통계자료에는 국내유민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2억 명에 이르는 국내유민에 대해서 눈을 감아버린 중앙정보국의 자료는 그들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뚜렷이 입증한다.

그렇다면 오늘 남(한국)사회에는 국내유민이 없을까? 실업과 빈곤이 너무 심해져서 이른바 '사회양극화현상'으로 신음하는 남(한국)사회에도 국내유민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관한 통계자료는 찾기 힘들다. 국내유민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쉬운 대로, 국내유민의 양적 규모를 추산할 수 있는 근거는 남(한국)의 통계청이 내놓은 실업자에 관한 통계자료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통계자료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남(한국)사회의 실업자는 2005년 현재 89만 명이다. 그러나 그 수치에는 구직을 아예 포기하거나 직업을 얻지 못한 무직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남(한국)에서 취업할 생각이나 계획이 없는 구직포기자는 2005년 현재 127만7천 명, 취업준비자는 52만 명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갖지 못한 무직인구는 268만7천 명이다. 또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5년 현재 727만 명이다. 그러므로 통계청의 자료에 나타난 무직인구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975만5천 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남(한국)사회에서 빈곤선(poverty line) 이하의 인구비율은 2003년 현재 15%이다. 2006년 7월 현재 남(한국)의 총인구가 4천884만 명이므로, 그것의 15%인 빈곤층 인구는 732만 명이다.

남(한국)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남(한국)에서 생활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71.1%이다. 또한 남(한국) 인구의 10.3%는 2006년 한 해 동안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자살충동을 느꼈다.

무직인구 268만7천 명, 비정규직 노동자 727만 명, 빈곤인구 732만 명, 그리고 생활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71.1%의 인구, 자살충동을 느끼는 10.3%의 인구 속에 국내유민이 들어있을 것이다.

『월간중앙』 2006년 12월호의 기사는, 남(한국)사회에서 들리는 절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하였다. "IMF 때는 그래도 IMF만 극복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김형진 씨) "다섯 살 짜리 고만고만한 녀석 둘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무능력한 내가 이 땅에서 아이 둘을 낳은 것이 참 죄스럽게 여겨졌어요. 아이 낳는 것은 죄악이죠." (김정애 씨) "군대 갈 아들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가 갈립니다. 죽도록 공부하고 일해도 내 집 한 칸 마련할 길이 없는 이따위 나라를 위해 내 아들이 군대에 가야 하다니..." (강문용 씨)

'2만 달러 시대'의 외화내빈이 불러일으킨 착시현상에서 깨어나 남(한국)의 사회현실을 다시 보아야 하는 까닭이 국내유민의 목소리에서 묻어 나온다.

4. 북(조선)의 탈북자와 남(한국)의 재외유민

중국에는 북(조선)에서 파견한 해외취업자들이 있는 반면, 북(조선)을 탈출한 불법월경자들도 있다. 그런데 남(한국)의 반동언론들은 해외취업자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불법월경자들에 대해서만 온갖 유언비어를 쏟아놓고 있다.

불법월경자를 남(한국)사회에서는 탈북자라 부른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탈북자를 '난민(refugee)'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난민이란 국제법이 규정한 난민조건에 들어맞아야 하므로, 국경을 넘나드는 불법월경자에게 무차별적으로 난민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유민(流民)이라는 비정치적 개념을 쓴다. 유민이란 한 곳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남(한국)에서는 중국에서 곧장 남(한국)으로 들어가거나, 태국, 베트남을 거쳐서 남(한국)으로 들어간 북(조선)의 유민을 국내탈북자라고 부르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떠도는 북(조선)의 유민을 재외탈북자라고 부른다.

남(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그러한 것처럼, 『연합뉴스』 2007년 1월 12일자 사설은 그들을 "북한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고향을 떠나온 탈북자"라고 불렀다.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까닭은, 그 사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경제붕괴'와 '식량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조선)의 경제가 무너지고 식량이 부족해서 북(조선)에서 탈출하였다는 따위의 주장은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깔고 있는 반사회주의선동과 일맥상통한다. 북(조선)에서 발생한 유민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인식이 요구된다.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북(조선)은 사회주의건설에서 '간고분투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강조해왔다. 북(조선)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이 헤쳐 가는 사회주의건설의 기나긴 노정은 호화스럽고 안락한 휴가여행 같은 것이 아니다. 무자비한 경제제재와 무력봉쇄를 가하면서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덤벼드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에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나라에서, 간고분투와 자력갱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사회주의건설을 포기하는 것으로 된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간고분투와 자력갱생의 길에서 낙오자나 배반자가 생길 수 있음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남(한국)에서 탈북자라고 부르는 유민들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간고분투와 자력갱생의 길에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뒤떨어진 낙오자가 아니면 그 투쟁대오를 거부하고 이탈한 배반자이다.

남(한국)에 들어간 북(조선)의 유민들 가운데 10.7%가 인신매매, 강도, 절도, 성폭행, 마약밀매 또는 복용, 폭력, 공금횡령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경력자이며,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남(한국)에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235 건이다. 남(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2등 시민이라면 탈북자는 3등 시민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판이 아닌가.

2004년의 조사에 따르면, 북(조선)의 재외유민 가운데 83%가 중개인(broker)을 통하여 남(한국)에 들어갔는데, 중개인들은 유민 한 사람 당 평균 4천200 달러를 받아 챙겼다고 한다. 중개인이 밖으로 유인한 북(조선)의 주민을 중국, 태국, 베트남을 경유하여 남(한국)에 들여보내는 것을 '기획탈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중개인의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기획탈북'은 주로 낙오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자료는 중국에서 떠도는 북(조선)의 재외유민을 2005년 현재 3만-5만 명으로 추산하였다. 그와 달리 중국 공안당국은 중국에서 떠도는 북(조선)의 재외유민을 1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북(조선)에 관한 중앙정보국의 통계는 반사회주의를 선동하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서 상당히 부풀려져 있으므로, 중국 공안당국이 현지에서 추산한 것이 현실에 더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53년 7월 정전 이후 2007년 1월 현재까지 54년 동안 남(한국)에 들어간 북(조선) 재외유민의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재외유민은 모두 합해 약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에서 재외유민 2만 명이 생겨난 것이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가 머지 않아 무너질 징조인 것처럼 목청을 높여 떠들어대는 반사회주의선동이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떠도는 베트남의 재외유민은 2005년 현재 29만9천287명이나 된다. 단위가 아주 구체적이므로 근거 없는 추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조선)과 베트남의 재외유민에 관한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를 비교할 때 드러나는 논리적 모순이다. 30만 명에 이르는 재외유민이 생겨난 베트남에 대해서는 체제붕괴의 위기를 떠들지 않으면서, 2만 명에 이르는 재외유민이 생겨난 북(조선)에 대해서만 체제붕괴의 위기를 떠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가 아닌가.

남(한국)에 들어간 북(조선)의 유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극빈자로 살아간다. 남(한국)에 들어간 북(조선)의 유민 가운데 49.7%는 기회가 오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설문조사에 응한 유민 가운데 33%는 북(조선) 당국이 처벌하지 않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북(조선)의 재외유민을 체제붕괴와 연결시키려는 발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를 말해주는 요소이다.

그러면 해외에서 떠도는 남(한국)의 재외유민은 얼마나 많을까? 남(한국)의 재외유민이 얼마인지는 미국 이민통계국(OIS)이 2006년 8월 11일에 발표한 자료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그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월 현재 미국에 있는 남(한국) 출신 불법체류자는 모두 21만 명이다. 2000년 1월에 남(한국) 출신 불법체류자가 18만 명이었는데, 다섯 해 동안 3만 명이 늘어남으로써 연평균 6%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민통계국이 내놓은 자료는, 관광이나 유학 같은 합법적인 경로로 미국에 들어온 뒤 입국사증 유효기간이 지난 뒤에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은 불법체류자들만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나 캐나다의 국경을 넘어서 입국사증도 없이 미국에 들어가는 남(한국)의 불법입국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파악조차 할 수 없어서 이민통계국의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의 이민자단체들은 실제로 불법체류자가 이민통계국이 발표한 수치보다 두 배가 많을 것으로 추산하는데, 그러한 추산방식을 따르면 남(한국) 출신 불법체류자는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0만 명에 이르는 재미동포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이 연방정부가 발표한 빈곤선 아래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재미동포 극빈자 인구는 28만5천 명이다. 극빈자와 불법체류자는 동의어이다.

2006년 11월 2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남(한국)과 미국의 법무부 관리들의 범죄수사협력회의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는 1천 개 이상이 되고, 그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동포여성은 최소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에서 떠도는 남(한국)의 재외유민이 40만 명이니, 일본, 유럽연합,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에서 떠도는 재외유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2007년 현재 남(한국)의 재외유민은 줄잡아 보더라도 50만 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

북(조선)의 불법월경자는 걸어서 두만강을 건너간 유민이고, 남(한국)의 불법체류자는 항공편을 이용하여 태평양을 건너간 유민이다. 이동경로와 탈출방식이 다를 뿐, 불법월경자나 불법체류자의 성격은 동일하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규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떠도는 남(한국)의 불법체류자는 난민이지만, 아무도 그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남(한국)의 언론과 사회단체들은 북(조선)의 재외유민 2만 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도, 실업과 빈곤을 견디다 못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떠밀려간 남(한국)의 재외유민 50만 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남(한국)의 재외유민을 보살펴주는 인권단체들이 출현해야 하고, 유엔도 남(한국) 인권특별보고관이라는 직책을 내와야 마땅하지만, 이상하게도 '탈북자 인권단체'들만 설쳐대고, 유엔은 '북(조선) 인권특별보고관'만 임명하였다. 이것은 북(조선) 재외유민에 대한 행동이 그들의 인권을 지키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반사회주의선동의 일환으로 나온 것임을 말해준다. 반사회주의선동에 의해서, 남(한국)에는 단 한 사람의 유민도 없고 북(조선)에서만 수많은 유민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반사회주의선동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착시현상은,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환상과 사회주의사회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가 뒤엉킨 무지와 몽매의 늪으로 사람들을 떠밀고 있다. (2007년 1월 1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