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혁명과 전쟁의 시대, 쿠바와 헤즈볼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쿠바와 헤즈볼라의 최근 정세를 주시해야 하는 까닭

제국주의자들과 독점자본가들의 손에 놀아나는 서방언론들이 쿠바와 헤즈볼라의 장래운명을 놓고 저속하게도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고 있다. 쿠바혁명의 수령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병세가 위중하여 쿠바의 사회주의체제가 마비되기 시작하였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이스라엘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헤즈볼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되었다는 식의 보도 아닌 보도를 내오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런 따위의 언론보도들은, 21세기 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아니 손사래를 치며 그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제국주의자들과 독점자본가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조작된 악성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전세계 인민들의 눈과 귀는 그런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니는 왜곡선전망을 뚫고 나아가 쿠바의 사회주의후계위업과 헤즈볼라의 반제민족해방전쟁에 집중되었다.

쿠바의 장래운명이, 그리고 헤즈볼라의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21세기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좌우할 최대의 격전지로 떠오른 한(조선)반도의 장래운명을 내다보는 정세전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제국주의자들과 독점자본가들이 반테러전쟁과 신자유주의세계화를 떠들어대며 세계 곳곳에서 대량살육과 대량약탈을 저지르는 엄중한 시기에 자주적 사회주의와 반제민족해방의 승리를 외치며 투쟁하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과제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처럼 하나로 연결된 정치적 과제를 의식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만나는 쿠바와 헤즈볼라의 참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물론 쿠바와 헤즈볼라 사이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이라는 사상적 차이, 국가와 정당이라는 조직위상적 차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이라는 지역적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그렇지만 쿠바와 헤즈볼라는 명백하게도 서반구와 중동에서 각각 투쟁의 깃발을 휘날리며 21세기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헤쳐 가는 두 개의 전략거점이다. 쿠바는 제국주의 미국의 집요한 봉쇄와 압박을 물리치고 꿋꿋이 사회주의혁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으며, 헤즈볼라는 제국주의 이스라엘의 영토강점과 전쟁범죄에 저항하며 반제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카리브해와 중동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동반구 끝에 자리잡은 한(조선)반도에서 쿠바와 헤즈볼라를 혁명적으로 다시 만날 때, 그 만남의 '화두'는 마땅히 사회주의후계위업과 반제민족해방전쟁이어야 하리라.

2. 쿠바의 사회주의후계위업과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혁명

드넓은 북미대륙이 동남쪽으로 굽이치다가 급하게 카리브해로 길게 뻗어나간 플로리다 반도의 끝자락에서 1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이 있으니, 그곳이 쿠바이다. 그 조그만 섬나라가 라틴아메리카 정세에서 가지는 혁명적 의의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라틴아메리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21세기 장래운명이 사회변혁에, 오로지 사회변혁의 승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논하려면 먼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경제적, 사회계급적 현실에 관한 기초지식이 요구된다. 제국주의자들과 독점자본가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조작된 언론보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줄이거나 감추려는 의도가 뚜렷이 보이지만,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억압, 착취, 수탈이 만연되었음은 굳이 통계자료를 살펴보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다.

19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에는 이른바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어서, 사회계급의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극단화가 상당히 은폐되어 있었고, 그 덕택에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체제는 상대적 안정기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 안정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내부모순이 지구적 범위로 확산되면서 라틴아메리카에 몰아친 대량수탈, 대량착취, 대량파산의 광풍은 그 지역의 수 억 명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능멸,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사상 최악의 대량실업사태가 일어난 해였다. 평균 실업률은 10.7%이었고, 20%가 넘는 살인적인 실업률을 기록한 나라들도 많았다.

라틴아메리카 인구 가운데 10%밖에 되지 않는 부유층의 평균소득은 그 인구의 40%나 되는 빈곤층의 평균소득에 비해 20배가 넘는다.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CEPAL)가 내놓은 2004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극빈인구가 20년 전보다 4천만 명이나 늘어났으며, 하루 평균 생계비가 2달러도 되지 않는 빈곤인구가 무려 2억2천600만 명이라 한다. 최근 6년 동안 2천300만 명이 중산층에서 빈민층으로 파산, 전락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어린이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굶주리고 있으며,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해마다 17만 명에 이른다.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도시들에서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몰려 구걸로 목숨을 이어가는 이른바 '거리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은 이러한 생존파탄의 현실을 가리켜 이른바 '남미의 질병'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브라질은 1억8천500만 명의 인구대국이지만 7천700만 명이 끼니를 잇지 못할 소득인 월 65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시장에서 팔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게도, '남미의 질병'은 미국의 제국주의금융자본,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이 라틴아메리카에 마구 밀려가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이전보다 더 가혹하게 쥐어짜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생존파탄은 신자유주의세계화를 떠들며 착취와 수탈의 올가미를 미친 듯이 조여대는 제국주의자들과 독점자본가들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의 결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비단 라틴아메리카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2004년 8월 26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지역 전체 인구의 60%에 이르는 19억 명이 하루 생계비 2달러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극빈인구이다.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조차 없지만, 오늘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실질임금 격감, 비정규직 확산, 실업증가에 짓눌리고 빚더미와 연쇄파산에 시달리며 생존의 벼랑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막다른 길로 마구 내몰리는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실인 것이다.

짓밟히고 빼앗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격렬한 투쟁에 나서는 것은 정당하고 필연적이다. 볼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에콰도르에서는 대중투쟁에 견디지 못한 대통령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쫓겨나는 정치격변이 일어났으며,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자는 혁명세력과 언제까지나 이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반동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콜롬비아, 페루, 과테말라, 멕시코에서는 8개 군사조직들이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중이다.

자신과 자기 아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모는 착취와 수탈에 맞서 싸우는 라틴아메리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은, 앞으로 100년 동안 이어질 21세기의 기나긴 시간대를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가득 채우겠거니와, 그들이 펼치는 투쟁의 정당성과 필연성이 줄곧 지향하는 전략목표는 소름끼치도록 지긋지긋한 낡고 썩은 세상을 뒤집어엎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주인으로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일으켜 세우는 것, 곧 사회변혁이다. 21세기 세계사를 새로 쓰게 될 그러한 사회변혁을 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21세기 사회변혁은 민주주의혁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예속과 수탈에서 벗어나는 과업 곧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과 국내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과업 곧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인 것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예속과 수탈, 국내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길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살아갈 21세기의 앞날이라고 할 때, 그 앞날은 민주주의혁명의 승리적 미래 이외의 것으로 될 수 없다.

오늘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정권의 열풍'이 불고 있다거나 '반미공조전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는 바로 그러한 민주주의혁명의 주객관적 정세가 한창 무르익고 있음을 말해준다. 1970년대 초 쌀바돌 아옌데가 이끌었던 칠레의 민주주의혁명이 제국주의 미국과 국내반동세력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좌절한 뒤로, 군부와 문민을 가릴 것 없이 악랄, 포악하였던 다종다양한 계급독재 아래 짓눌릴 대로 짓눌린 라틴아메리카에서 한 동안 명맥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민주주의혁명이 재생의 활력을 얻어 힘있게 되살아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만일 민주주의혁명의 단계를 거쳐 더 높은 사회변혁의 단계로 상승, 발전한 쿠바의 사회주의혁명이 제국주의 미국이 조여대는 봉쇄와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그리하여 세기의 전환기에 모스크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아바나에서도 혁명의 깃발이 내려진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조직, 전개하는 모든 투쟁이 줄곧 지향하는 민주주의혁명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쿠바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혁명적 임무를 수행하는 길에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혁명을 승리의 길로 힘있게 떠밀어주는 중대한 요인으로 된다. 그러한 뜻에서, 사람들은 쿠바를 '라틴아메리카의 민주기지'라 부른다.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지만, 제국주의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기지를 파괴하기 위해서 1959년에 쿠바혁명이 승리한 뒤로 지금까지 하루도 멈추지 않고 봉쇄, 제재, 압박, 침투를 저지르고 있다. 제국주의 미국의 만행은 집요하기 이를 데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과 쿠바망명자 테러단체들은 카스트로 의장을 암살하기 위한 테러공작을 1959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638번이나 시도했다고 한다.

2003년 10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이른바 '쿠바 민주화를 위한 행동강령'을 내놓았고, 2004년에는 미국에 사는 쿠바인들이 쿠바에 송금하는 것을 제한하였으며, 2006년 7월 10일에는 미국 국무장관을 우두머리로 하는 이른바 '자유 쿠바를 지원하는 미국위원회(USAFC)'가 작성한 '쿠바 인민과의 협정'이라는 문서가 부시의 서명으로 발효되었다. 그 '협정'이라는 것은 쿠바의 사회주의체제를 뒤집어엎기 위한 각종 체제전복공작에 2007년부터 2008년까지 7천만 달러를 지출하기로 한 것에 더하여 8천만 달러를 추가로 지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쿠바는 그처럼 집요한 미국의 사회주의전복책동을 물리치고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쿠바가 미국의 사회주의전복책동을 물리칠 수 있는 정치적 요인은 카스트로 의장을 지도핵심으로 하는 쿠바혁명의 수뇌부와 혁명적 쿠바인민이 철통같이 다져놓은 정치적 단결력이다. 바로 그 단결력이 제국주의침투공작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지적한 대로, 쿠바침투공작에 실패하여 고급정보를 얻지 못한 미국은 '까막눈'이 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의 민주기지를 강력한 물리력으로 지키는 보위자는 쿠바혁명군(FAR)이다. 이를테면, 2004년 12월 12일부터 쿠바혁명군은 전시체제를 선포하고 한 주간 동안 육해공군 3군사령부 휘하의 정규군 10만 명, 예비군 40만 명이 참가하는 '전략요새 2004'라는 작적명의 정규군, 예비군, 민간인 3자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미국이 이라크에서처럼 쿠바에서도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도발하려는 책동에 대처한 이 군사훈련은 쿠바혁명군이 20년만에 실시한 최대 규모의 반제국주의군사훈련이었다.

오늘 쿠바혁명의 전진도상에서 제기된 가장 중대한 문제는, 사회주의에 무지한 서방언론들이 흔히 '권력이양'이라고 보도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수령과 혁명 1세대가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는 사회주의후계위업이다. 노동계급의 수령과 혁명 1세대가 개척한 혁명위업을 사회변혁의 두 단계를 거치며 끊임없이 완성해나가는 과업이 수령의 후계자에 의해서, 혁명의 후대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이 전진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사회주의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정치적 운명을 함께 나누는 그런 후계자를 중심으로 단결한 혁명의 2세대, 3세대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노동계급의 수령과 그를 중심으로 단결한 혁명의 1세대가 피와 땀을 흘리며 개척한 혁명위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자주적 사회주의의 핵심과제 속에는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수령의 후계자와 후세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최대의 과업 곧 사회주의후계위업이 놓여있는 것이다.

오늘 쿠바공산당과 쿠바의 혁명적 인민들이 수행하는 사회주의후계위업은 지난 시기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겪었던 실패경험이나 중국의 사회주의체제가 겪었던 우여곡절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논점을 좀더 명확하게 세우기 위해, 여기서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겪었던 실패경험을 잠깐 돌이켜 보자. 1956년 2월 25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비공개로 열렸던 소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 얼굴을 내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후르시쵸프가 스탈린을 정치적 범죄자로 비방, 중상하는 연설을 토해내는 바람에 전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충격을 받아 몇 사람이 현장에서 실신하였고, 그의 연설문이 외부로 흘러나가자 여러 차례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레닌과 혁명 1세대가 개척한 러시아의 사회주의 10월 혁명에서 수령과 인민 사이에 형성되어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에게로 이어졌던 정치적 운명공동체를 일거에 깨뜨려버린 전대미문의 대사건으로 하여 소련의 사회주의체제는 결정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소련공산당은 1991년 8월에 해체되었으며, 1922년 12월 30일에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나라로 건설되어 15개 공화국과 20개 자치공화국을 하나로 결집하였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별개의 주권국가들로 갈라진 것이 못내 아쉬워 국가연합체 수준으로나마 느슨하게 손잡은 독립국가협동체가 1992년 1월 1일에 형성되었다.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겪은 그와 같은 실패보다 덜 하였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사회주의체제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자주적 사회주의의 길에서 떠나 시장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인민대약진공사와 사회주의문화대혁명의 실패, 그리고 천안문 사태는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의 정치적 운명공동체에 균열이 생겼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오늘 중국의 시장사회주의는 샤오캉(小康)사회 건설과 중화민족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농민의 토지상실, 날로 확대되는 도농격차와 빈부격차, 만성화된 실업난, 관료집단의 부정부패, 지방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군중폭동, 불안정이 심화되는 금융체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이른바 개혁과 개방을 허용, 추구하는 시장사회주의노선으로 돌아선 뒤로 중국혁명의 승리와 함께 사라졌던 자본계급이 다시 출몰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의 노동계급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95년에 노동법을 시행할 당시 12만3천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하였던 3만3천 건의 노동쟁의는 10년만에 60만 명이 참가하는 18만 건의 노동쟁의로 확대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류사오치(劉少奇), 린뱌오(林彪), 화궈펑(華國鋒)으로 이어진 사회주의후계위업의 수행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였고, 덩샤오핑(鄧小平)체제가 세워져 가까스로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 듯하였으나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으로 이어진 사회주의후계위업의 제2차 수행과정에서도 실패를 면치 못하였다. 이처럼 중국공산당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0년 동안 이어진 사회주의후계위업의 수행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2년 11월 8일 베이징에서 소집된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는 후진타오 주석을 지도핵심으로 하는 제4세대에게 중국혁명의 계주봉을 넘겨주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혁명의 계주봉을 이어받아야 할 3억6천70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의 청소년들은, 2004년 3월 22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합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혁명을 계승, 발전시키기는커녕 사기, 미신, 포르노, 약물중독, 금전숭배, 부정부패로 타락한 영향권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중국혁명의 계주봉을 틀어쥐고 투쟁하여야 할 중국의 대학생 가운데 70%가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있다. 현재 중국공산당 당원이 7천만 명이나 되지만, 우울증 환자가 2천600만 명, 조직폭력배가 100만 명이나 된다.

그에 비해, 쿠바는, 아니 쿠바의 혁명적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쿠바혁명의 1세대 수령 피델 카스트로 의장의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공식 후계자로 쿠바혁명을 이끌어 가는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회주의후계위업에 무지한 서방언론은 해괴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지만, 그것은 1세대 수령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쿠바혁명 앞에 바치는 신뢰와 충성과 존대의 표시인 것이다.

국가권력이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전락, 변질된 자본주의체제는 정권교체기를 지날 때마다 권좌를 차지하려는 정치권 내부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거나, 대중에게 자신의 위세를 보란 듯이 드러내면서 인기몰이에나 열중하는 정객들의 졸렬한 행동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쿠바의 사회주의체제가 선택한 세대교체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 방식은 암투, 인기몰이, 졸렬함이 뒤섞인 더러운 흙탕물이 아니라, 신뢰와 충성과 존대가 흐르는 한 줄기 맑은 강물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쿠바공산당이 전진시키는 사회주의후계위업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혁명의 깃발을 들고 투쟁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희망의 미래인 것이다.

3. 헤즈볼라의 민족해방전쟁과 중동의 반제자주화위업

지금 중동에서는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제국주의 미국과 이스라엘이 도발한 침략전쟁과 무력강점으로 지역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중동의 정세변화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헤즈볼라 대 이스라엘의 무력대결이다.

2006년 7월 12일 중동의 깡패국가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전사들이 자국의 병사 두 명을 체포, 구금한 것을 구실로 하여 레바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체포, 구금한 레바논인 반제투사들을 풀어줄 것, 이스라엘이 타고 앉은 레바논 영토를 돌려줄 것,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지역에 설치한 지뢰지대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것, 이스라엘군의 무력침공을 전면적으로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반격에 나섰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헤즈볼라는 레바논인으로 구성된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이다. 이슬람주의 정당인 헤즈볼라는 자기의 강령에서 레바논에 이슬람국가를 세운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레바논의 다른 이슬람주의 정당과 통일전선을 형성한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에 진출하여 128석 가운데서 14석을 차지하였고, 레바논 내각 15명의 장관 가운데서 에너지 및 수자원장관과 노동부장관을 차지하였다. 헤즈볼라는 병원 4개, 의원 12개, 학교 12개, 친환경농업교육기관 2개, 텔레비전방송국과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주목하는 것은, 헤즈볼라 산하에 이슬람 저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군사조직이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 이스라엘은 이슬람 저항을 테러집단이라 부르지만, 명백하게도 그 군사조직은 비정규군사조직이다. 일제식민지시기 만주에서 항일유격대가 일제침략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던 것처럼, 이슬람 저항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침략군에 맞서 유격전을 벌이는 반제국주의군사조직이다. 이슬람 저항이 수행하는 유격전의 성격을 반제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남부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의 점령지를 더 확장하려고 북진공격을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중동의 현대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영국으로부터 적극적인 비호와 배후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영토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1948년에 세워진 제국주의국가이며, 영국의 힘이 약화된 뒤에는 제국주의 미국의 돌격대로 자처하면서 아랍인민들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깡패국가의 전형이다. 지금 레바논에는 이스라엘의 무력점령정책에 밀려 자기 땅에서 강제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인민 35만 명이 12개 난민촌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남부지역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그 지역의 아랍인민들을 짓누르는 한, 제국주의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아랍인민들의 모든 형태의 군사행동은 정규전이건 비정규전이건 가릴 것 없이 반제민족해방전쟁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이슬람 저항은 반제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는 아랍인민의 비정규군사조직들 가운데서 무장력이 가장 강한 군사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저항의 병력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축소하여 발표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미국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천-4천 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만 명에 이른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모든 유형의 인민유격대가 그러하듯이 병참지원, 무기보관, 정보통신 등을 맡은 비무장대오까지 합한다면 2만 명이 넘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레바논 정규군은 7만2천 명이며, 핵무기까지 보유한 이스라엘 정규군은 16만8천 명이다. 헤즈볼라 인민유격대와 이스라엘침략군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2만 명 대 16만8천 명이 맞붙은 이른바 '비대칭 전쟁'인 셈이다.

이스라엘의 무력침공이 노리는 목적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이다. 저들이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하려는 까닭은, 이스라엘의 무력강점정책에 맞서 싸우는 아랍계 반제국주의군사조직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이슬람 저항을 궤멸시킴으로써 아랍인민들이 수행하는 반이스라엘 민족해방전쟁의 예봉을 아예 꺾어버리고, 레바논 영토를 30km 정도 더 깊숙이 침공, 강점하여 이른바 '완충지대'라는 이름을 붙인 점령지를 영구히 타고 앉으려는 데 있다.

그러한 깡패국가 이스라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30억 달러나 되는 막대한 원조를 대주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맹국들과 같은 지위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경제부문에서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캐나다, 멕시코와 똑같이 특별대우를 해주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일동맹이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짓밟는 침략적 군사동맹인 것처럼, 중동에서 미국-이스라엘동맹은 아랍인민들의 자주성을 짓밟는 침략적 군사동맹이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며 한(조선)반도의 재침기회를 노리고, 이스라엘은 미국과 손잡고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정치, 군사적 행패를 일삼는다. 일본 자위대의 일차적 점령목표가 독도와 그 주변해역이라면, 이스라엘군의 일차적 점령목표는 레바논 남부지역이다.

이스라엘군은 미국군이 침략전쟁을 도발하는 작전방식을 따라서, 무력침공을 개시할 때 먼저 해군 함정을 동원하여 지중해에서 레바논으로 들어가는 해상수송로를 모두 봉쇄하였다. 식량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수송로가 막힌 레바논에서 전체 인민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해상봉쇄작전을 내민 이스라엘군은 우세한 공중전력을 동원한 공습전과 우세한 지상화력을 동원한 포격전, 그리고 특공대를 들이밀어 상대의 전략거점을 기습하는 특수전을 배합한 군사작전에 날뛰고 있다. 어디 그것 뿐 인가. 이스라엘군은 적외선 감지기, 감시카메라, 통신감청기를 장착한 첨단무기인 무인항공기(UAV)를 정찰작전에 들이밀었으며, 미사일을 장착한 무인공격기를 침투시켜 공습을 가하였다. 이스라엘의 연간 군사비가 80억 달러나 되고, 제국주의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그러한 첨단무기들을 동원한 침략전쟁을 내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동을 제패할 최강의 군대라고 큰 소리 치며 최신무기로 무장한 정규군인 이스라엘군이 구식 로켓포나 보유한 정도로 군사장비가 보잘 것 없고 병력수도 2만 명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군 전사들로 이루어진 이슬람 저항이 퍼붓는 맹렬한 반격작전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전투다운 전투도 하지 않고 몇 일 안에 헤즈볼라를 궤멸시켜 싱겁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헤즈볼라의 강인한 전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스라엘의 편에 기울어진 서방언론조차 헤즈볼라의 강한 반격이 '중동전쟁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보도하였겠는가.

이슬람 저항에 소속된 헤즈볼라 전사들은 12-15명으로 결사대를 편성하여 매복작전, 기습작전, 기만작전을 동원하는 전형적인 유격전으로 맞서면서 이스라엘군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무력침공에 대한 아랍인민들의 저항과 규탄,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이스라엘은 정치적 패배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레바논에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이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를 제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군사적 '이변'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물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군사적 '이변' 속에 들어있는 반제민족해방전쟁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면, 레바논 남부지역은 사막이 아니라 온통 구릉지이다. 헤즈볼라 전사들은 그러한 지리적 조건에 매우 익숙하므로 구릉지대의 유격전술에서는 누구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헤즈볼라 전사들은 이스라엘군의 무력침공에 대비하여 구릉지대 곳곳에 정교하게 설계한 지하군사시설을 많이 건설해놓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지상군이 구릉지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군사시설 곳곳에서 갑자기 헤즈볼라 전사들이 뛰어나오면서 전후좌우에서 불의의 타격으로 들이치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빠지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헤즈볼라 전사들에게 이스라엘군과 맞서 싸운 전투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1982년에 레바논을 침공하여 남부지역을 강점한 이스라엘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결성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철군한 2000년 5월까지 18년 동안이나 굴하지 않고 중동 최강의 침략군대에 맞서 무장투쟁을 조직, 전개하였다. 이스라엘의 철군은 헤즈볼라의 승리였다. 헤즈볼라 전사들은 이스라엘군이 철군한 뒤에도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지난 6년 동안 맹렬히 군사훈련을 계속하여 일당백의 실전능력을 키워왔다. 이번 전쟁에서 그 실전능력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를테면, 레바논 항구를 봉쇄하기 위한 해상작전에 나선 이스라엘 해군함정은 해안에 매복하였던 헤즈볼라 전사들이 순항미사일로 공격하는 바람에 크게 파손되었으며, 장갑능력을 높였다고 자랑하는 이스라엘 지상군의 최신형 전차는 구릉지에 매복하였던 헤즈볼라 전사들이 쏘아대는 대전차 미사일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헤즈볼라 전사들을 구식 소총이나 쏠 줄 아는 시골농민들의 무장집단으로 깔보았던 이스라엘군은 순항미사일이나 대전차 미사일까지 동원하여 정규군의 실전능력을 능가하는 기습공격을 퍼붓는 유격작전에 그만 아연실색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헤즈볼라 전사들은 이스라엘군이 갖지 못한 최강의 무기를 두 개나 더 가지고 있다. 헤즈볼라가 가진 최강의 무기는 제국주의침략군을 소멸하고 자기 조국을 지키는 전투에서 한 목숨을 바치겠다는 필승불패의 전투의지와 자폭정신이다. 죽음을 각오한 헤즈볼라 전사들에게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으며, 죽음의 공포를 일찌감치 뛰어넘은 자폭정신의 전사들을 당할 상대가 없다.

헤즈볼라가 가진 또 하나 최강의 무기는 레바논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이다. 레바논 인민들 가운데 86.9%가 헤즈볼라의 반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다. 세계전쟁사에서 수없이 입증된 것처럼, 인민유격대에 대한 인민의 지지와 협력은 그들의 전투력을 천만 배 강화시켜주는 무한정한 힘의 원천이다.

레바논 인민의 지지와 협력이란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헤즈볼라 전사들과 그들의 군사거점은 레바논 인민들 속에 깊숙이 은폐되어 있어서, 이스라엘군의 정보망에 포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의 정보망은 누가 유격대원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어디가 군사거점이고 어디가 민간시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까막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적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는 군대에게는 전쟁공포가 스며들어 전의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군사정보망이 기능마비로 휘청거릴 때, 이스라엘군에게 내려지는 작전지침은 무차별 공습과 포격이다.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이 헤즈볼라의 군사거점이 아니라 레바논의 민간시설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지상군의 포격이 헤즈볼라 전사들이 아니라 레바논 인민을 죽이는 것은 전술적 실수가 빚어내는 오폭이 아니라 대량살육의 전략적 의도로 저지르는 잔혹한 전쟁범죄이다.

그러나 무차별 공습과 포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군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영토를 파괴하고 레바논 인민을 살육할 때마다 이스라엘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밀려드는 '분노의 바다'이다. 제국주의침략군대의 군사장비가 아무리 고성능이라 해도 침략전쟁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식민지인민의 가슴속에 수 십 년 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와 저항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거대한 폭발력을 절대로 당해내지 못한다. 최신무기만을 믿고 우쭐대며 전쟁범죄를 일삼는 침략군대가 결국 '분노의 바다'에 빠져 침몰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 레바논에서도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헤즈볼라의 전쟁수행방식은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는 반제민족해방전쟁의 공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하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전쟁사는 제국주의침략군대가 제아무리 최신무기와 방대한 병력을 들이민다 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반제민족해방전쟁에 나선 인민유격대를 이겨본 적이 없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레바논 인민, 중동지역 인민, 전세계 진보적 인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와 성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이미 정치적 승리를 거두고 있다.

전투가 한 달째 접어든 지금, 헤즈볼라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기민하게 들이치는 유격전으로 '까막눈' 이스라엘군의 눈과 귀를 교란시켜 레바논 영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 뒤에, 최후 결전에서 사용하려고 그 동안 감춰두었던 강력한 성능의 미사일을 꺼내어 들고 총공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기간이 자기들이 애초에 예상한 것보다 길어지자 초조와 불안을 느낀 이스라엘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지상전을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헤즈볼라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전쟁이 중동의 정세를 뒤바꾸어놓을 것이라는 점이다. 헤즈볼라의 약진과 이스라엘의 곤경은,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 이스라엘을 반대, 배격하는 아랍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운동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아랍인민의 반제자주화위업은 헤즈볼라 전사들의 전투에서 승리의 첫 번째 문을 열어놓고 있다. (2006년 8월 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