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년 묵은 악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전격방문과 극비방문

2005년 12월 6일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니노이 아퀴노 국제공항은 삼엄한 경계로 물샐 틈이 없었다. 기사거리를 찾아내는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언론의 추적을 보기 좋게 따돌린 영화장면 같은 현실이 거기서 펼쳐졌다. 존 니그로폰테(John D. Negroponte)가 공항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인 그는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하여 15개나 되는 국가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분야의 우두머리이다. 국가정보국장직이 생겨나기 전에는 중앙정보국장이 모든 국가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였다. 니그로폰테의 마닐라 전격방문은 제국주의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을 지휘하는 총책다운 행위였다.

니그로폰테가 왜 필리핀에 나타났는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서 알 길이 없다. 추측만 나돌았을 뿐인데, 필리핀 정치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현실에 비춰볼 때, 필리핀의 친미예속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밀회담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니그로폰테의 필리핀 전격방문이 아니라 그의 남(한국) 극비방문이다. 필리핀 전격방문을 마친 12월 8일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서울에 들어갔다. 그가 언론의 추적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서울을 방문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드러난 때는 그가 워싱턴에 있는 자기의 국가정보국장실로 돌아간 뒤인 12월 18일이다.

궁금한 것은 니그로폰테가 서울에 들어가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서울에서 벌인 그의 잠행내막을 알 길이 없지만, 그의 극비방문이 있은 지 열흘 뒤에 나온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청와대에서 대통령 노무현과 만나 비밀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니그로폰테와 노무현이 청와대 비밀회담에서 주고받은 것은 요즈음 한미관계에서 불거진 가장 민감한 정치문제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 인권공세와 금융제재를 강행하는 문제와 남(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짐작컨대, 청와대 비밀회담에서 니그로폰테는 인권공세와 금융제재를 따르라는 강요와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다그치라는 재촉을 쏟아냈을 것이고, 노무현은 그의 강요와 재촉에 굴욕적으로 순응하였을 것이다.

2. 그가 누린 특권은 불법행위이다

니그로폰테의 서울방문이 그처럼 감쪽같이 극비로 진행된 것은 그가 탄 전용기가 인천국제공항이나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 내리지 않고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국군 공군기지에 내리고, 거기서 헬기를 이용하여 서울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제 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관리하는 치외법권지역인 주한미국군 공군기지를 통해서 서울에 들어가므로 출입국기록도 남지 않고, 언론에 노출될 위험도 없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을 때는 누구나 그 나라가 정한 출입국관리법이 규정하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총책이 남(한국)의 출입국관리법을 적용 받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은 없다.

반면, 만일 남(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 들어오려면 미국 정부가 정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서 입국사증을 제시해야 하고 입국장을 통과할 때 얼굴과 지문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인체정보를 미국 정부기관에 내주어야 한다. 그 무슨 국가정보원장이라고 해서 예외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니그로폰테는 그 따위 출입국관리법쯤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명백하게도, 그의 극비방문은 남(한국)의 출입국관리법을 통째로 어긴 불법행위였다. 만일 니그로폰테가 중국에 간다면, 그러한 불법행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런 불법적인 극비방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1948년에 세워진 남(한국)정부가 출입국관리를 맡아본 뒤로 지금까지 58년 동안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출입국관리권을 위반하면서 오산의 공군기지를 통해 들락날락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비방문이었으므로 기록조차 남겨놓지 않는 것이다.

극비방문의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 백악관에 들어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 단독비밀회담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은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단독비밀회담을 가질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러한 사실만 살펴보아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은 일제식민지 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의 궁궐을 마음대로 드나들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누렸던 것에 버금가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일제식민지 강점에서 해방된 지 60년이 지난 남(한국)사회가 여전히 제국주의 미국에게 예속된 식민지적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3. 해외첩보원 10만 명, 예산규모 440억 달러

니그로폰테가 다른 나라에서 그처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지휘하는 국가정보기관들이 세계정보의 거대한 흐름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오늘 미국 밖에서 암약하는 미국 첩보원이 무려 1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첩보원이란 고상한 느낌을 주는 말인데, 흔히 쓰는 상스러운 말로 부르면 간첩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 간첩 10만 명이 전세계에 퍼져서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밖에서 암약하는 해외첩보원이 10만 명이라면, 미국 안에 있는 15개 국가정보기관에서 일하는 국내요원들은 또 얼마나 많다는 말인가. 미국 안팎의 인원을 모두 합하면 아마도 15만 명쯤은 되지 않을까 추산된다.

15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거느린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이 퍼다가 쓰는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동안 비밀에 부쳐져서 알 길이 없었다. 다만 1997년에 중앙정보국장이 1998년의 중앙정보국 예산이 267억 달러라고 밝힌 적이 있을 뿐이다. 미국 정부는 국가정보기관들이 요즈음에 쓰는 정보예산은 말할 것도 1940년대에 썼던 정보예산에 관해서도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2005년 11월 국가정보국 부국장이 어떤 모임에서 실수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한 해에 무려 440억 달러나 쓴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은 15만 명에 이르는 인원과 440억 달러에 이르는 연간예산을 동원하여 세계 곳곳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보력을 가지고 전세계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것이다.

4. 조지 포크와 그의 후예들

해외첩보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미국인이 얼마 전 중앙정보국에 낸 자료에 따르면, 1883년에 미국이 첫 번째 해외첩보원을 보낸 나라는 조선(Kingdom of Corea)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조선에 첫 번째 해외첩보원을 보낸 까닭은, 조선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나라라고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가치평가는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하다.

위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는 해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하고 아무런 첩보경험도 없고 첩보교육도 받지 못한 27살 난 해군소위 조지 포크(George Foulk)를 조선주재 미국대사관 해군무관이라는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하여 서울에 첩보원으로 침투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때는 1882년 4월이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이 서구제국주의나라로서는 처음으로 맺은 불평등한 식민지조약이었다. 미국 첩보원의 조선침투는 식민지조약에 따른 하나의 후속조치였던 셈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조선에 들여보낸 최초의 첩보원 포크는 식민지조약이 맺어진 직후 조선이 미국에 보냈던 보빙사라는 이름의 방미사절단이 귀국하던 1883년 12월에 보빙사를 따라서 조선에 침투하였다. 그로부터 3년 동안 그는 조선의 군사부문, 정치부문, 사회부문에 관련한 갖가지 정보를 긁어모아 미국으로 보냈다. 그가 보낸 정보는 미국의 제국주의전략가들이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하는 제국주의반동정책을 결정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19세기말 조지 포크가 홀로 조선에 침투하여 암약하였던 때로부터 12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된 오늘, 남(한국)에서는 포크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미국 첩보원들이 암약하고 있다. 남(한국)에 들어가 암약하는 미국 첩보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의 중요도에 비춰볼 때 수 백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국가정보기관의 첩보원은 자기가 암약하는 현지에서 자기의 첩보활동을 도와주는 방조자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법이다. 방조자란 고상한 느낌을 주는 말인데, 흔히 쓰는 상스러운 말로는 끄나풀이라 한다.

남(한국)에서 암약하는 수 백 명의 미국 첩보원들이 정계, 관계, 군부,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학계, 사회단체 등에서 선발한 현지인 방조자들로 조직된 방대한 끄나풀 첩보망에는 아마 수 천 명이 망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국)사회는 수 백 명의 미국 첩보원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수 천 명의 방조자들이 각계각층에 깊숙이 침투하여 암약하는 '미국 간첩의 천국'이다. 그들이 긁어모아서 정리한 각양각색 정보들은 워싱턴으로 보내지고, 워싱턴의 국가정보기관들은 그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한 정보자료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정보자료에 바탕을 두고 한(조선)반도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정책과 전략을 내오고 있다.

5. 끄나풀은 꼭지점에 있었다

원래 다른 나라에 들여보내는 첩보원은 먼저 현지의 언어, 풍습, 지리, 문화를 미리 배우거나 몸에 익힌 다음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최초 첩보원이었던 조지 포크에게는 그러한 사전교육과 준비훈련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첩보원으로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문외한이었다.

조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는 말도 통하지 않고 글자도 읽을 수 없는 물설고 낯선 곳에서, 연고자도 없는 불리한 조건에서 어떻게 첩보활동을 벌였을까?

조지 포크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봉건관료들이 그의 첩보활동을 적극 방조하는 끄나풀로 나서주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사대주의가 가득하였던 봉건관료들은 서구제국주의나라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수교한 미국의 외교관을 크게 반겼고, 그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영예로 여겼다. 당시 국왕이었던 고종마저도 조지 포크를 절대적으로 신임하여 그에게 군사고문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니 고종의 휘하에 있는 봉건관리들은 오죽하였을까. 미국 첩보원의 끄나풀들은 왕조권력의 꼭지점에 있었던 것이다.

조지 포크는 봉건관료의 그러한 사대주의적 심리상태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자기의 첩보활동에 적극 이용하였다. 포크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봉건관료들의 입에서는 결정적인 정보들이 줄줄이 새어나왔다. 이것이 문외한 조지 포크가 첩보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형편은 120여 년 전과 얼마나 다를까? 오늘 제국주의 미국은 고작 문외한 한 명을 첩보원으로 조선에 들여보낼 정도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정보력을 가졌던 19세기말의 미국이 아니다. 10만 명에 이르는 해외첩보원과 440억 달러에 이르는 국가정보기관의 연간예산은 21세기의 제국주의정보력이 어떠한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그처럼 거대한 정보력 앞에서 주눅이 들고 제국주의 미국에게 충성을 바치는 추악한 친미관료들이 오늘 노무현정권 안에 수없이 많다. 그 정권의 꼭지점에서도 우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6. 악연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19세기말 조선의 봉건왕조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청나라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뒤로 조선에서 차츰 커져 가는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고심하였다.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는 조선에서 미국의 첩보망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 첩보원 조지 포크를 조선에서 내쫓는 것을 뜻하였다.

청나라는 조선의 봉건관료들에게 압력을 넣어 조지 포크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소환공작을 밀어붙였다. 청나라의 압박에 밀린 미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최초의 첩보원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과 미국을 얽어맨 악연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미국에게 조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배대상이요, 수탈대상이었다. 청나라와 제정러시아를 상대로 벌인 두 차례 식민지강탈전쟁에서 승리하여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고 나선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였던 36년을 빼놓고, 미국은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악연은 123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남아 21세기 한(조선)민족과 미국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평택 미국군기지 확장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같은 한(조선)반도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굵직굵직한 현안들은 제국주의 미국이 틀어쥐고, 노무현정권이 매달려있는 123년 묵은 악연의 고리들이다. 한(조선)민족은 오늘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제 살에 박혀있는 악연의 고리를 아직 끊어버리지 못한 채 끝없이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23년 묵은 악연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벌이는 날선 투쟁에 의해서, 더 나아가서 한(조선)민족이 분단선을 뛰어넘어 연대하며 일으켜 세우는 거대한 반제자주역량에 의해서 그 악연의 고리는 남김없이 끊어질 것이다.

오늘 평택 미국군기지 확장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현장에서는 123년 묵은 악연의 고리를 탕탕 끊어버리는 대중항쟁의 진군가가 울려 퍼지고 있지 아니한가. (2006년 5월 1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