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매매 촌극이 막을 내릴 무렵

이해할 수 없는 전투기 선정 과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F-15SE, 시험 기종 외엔 아직 실전배치 되지 않은 기종이어서 보잉에서 만든 소개 동영상도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다.     © 자주민보
 

특정전투기에 집착하는 방위사업청


남측 정부당국이 추진해오는 차기전투기도입사업은 외국산 전투기 60대를 8조3,000억 원(74억 달러)를 주고 구입하는 대형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그 동안 차기전투기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을 진행해왔는데, 2013년 8월 13일과 14일에 진행한 입찰은 총사업비 74억 달러 이내로 입찰가를 써낸 입찰기업이 하나도 없어서 유찰되었다.

그런데 2013년 8월 16일에 진행한 입찰에서는 방위사업청이 요구한 입찰가를 써낸 입찰기업이 드디어 나타났다. 그 날 방위사업청 백윤형 대변인은 “16일 차기전투기구입사업 3개 후보기종에 대한 가격입찰을 마감한 결과, 총사업비 8조3,000억 원 이내로 진입한 기종이 있어 이후 기종선정을 위한 다음절차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그는 총사업비 74억 달러 이내로 진입한 기종이 어느 기종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 보잉의 전투기 F-15SE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이 총사업비 이내로 진입한 양대 기종이라고 일제히 지적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2013년 9월 중순에 열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F-15SE와 유로파이터 타이푼 가운데 어느 하나가 최종적으로 선택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그런 예상을 뒤집어버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2013년 8월 18일 방위사업청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이 조건을 임의로 축소, 완화하여 입찰가를 써냈다고 지적하면서 그처럼 합의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것은 남측 정부당국이 기종선정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사실상 배제하였음을 뜻한다. 같은 날 남측 언론매체들은 방위사업청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보잉의 전투기 F-15SE가 2013년 9월 중순에 열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차기전투기 단독후보로서 최종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과연 막판에 합의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여 탈락을 자초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방위사업청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2명이 탑승하는 복좌기 판매대수를 15대에서 6대로 줄이는 등 조건을 임의로 변경하여 입찰가격을 맞추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 8월 19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해외사업본부장은 자기들이 방위사업청과의 계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방안을 방위사업청에 제시한 것이므로, 계약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면서, 방위사업청이 8월 19일과 8월 20일에 자기들과 다시 협의하자고 해놓고 갑자기 8월 18일에 ‘계약위반설’을 들고 나왔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런 해명과 불평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한 기업으로부터 2개의 제안서를 받아 검토할 수 없으므로,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이 이전에 제시한 조건을 입찰가격에 맞춰 변경한 최종제안서는 무효이며 그 이전에 제출한 제안서만 인정된다고 하면서, 그 이전에 제출한 제안서에 나온 입찰가격은 총사업비를 초과한 것이므로 결국 입찰가격초과로 사실상 탈락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의 그런 주장에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보잉도 입찰과정에서 F-15SE의 꼬리날개 설계를 변경하는 방안을 나중에 제출하였는데, 방위사업청이 그런 보잉의 변경은 관대하게 눈감아주고,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변경에 대해서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이다. 방위사업청의 그런 행동은 보잉에게 치우친 편파적 행동으로 보인다.

둘째, 2013년 4월 25일과 29일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서울에 있는 어느 무기중개업체 사무실을 급습하여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무기중개업체가 방위사업청의 차기전투기도입사업에 관련된 비밀문서를 빼냈다는 정황을 포착한 기무사가 두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이다. <세계일보> 2013년 4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무기중개업체가 빼낸 군사비밀문서들 가운데는 2012년에 한국공군평가단이 차기전투기 후보기종들에 대한 운용적합성을 평가한 내용과 시험평가점수가 수록된 문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무기중개업체는 보잉이 F-15K를 남측에 판매하였던 2002년에 보잉의 무기중개 업무를 맡아보았던 기업체다.

이런 정황을 보면, 군사비밀문서를 빼낸 무기중개업체와 보잉의 내밀한 관계를 당연히 수사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사는커녕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만일 이번에 기무사가 군사기밀유출사건을 수사하였더라면, 보잉의 F-15SE는 후보기종에서 탈락하였을 것이다.

2002년에 있었던 차기전투기 입찰과정 중에 기무사는 당시 전투기 라팔(Rafale)을 유력한 후보기종으로 내놓았던 프랑스의 전투기생산기업 다쏘(Dassault)가 서울에서 진행한 라팔 홍보행사를 수사하였고, 그 수사가 벌어지자 결국 라팔은 후보기종에서 탈락하였고, 라팔에게 밀렸던 보잉의 F-15K가 후보기종으로 선정되는 이변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홍보행사가 아니라 군사기밀유출이라는 더 엄청난 사건이 터졌는데도, 기무사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이변 중의 이변이 일어났다. 기무사가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방위사업청이 검찰에 고소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들도 잠잠하였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정보는 차기전투기 도입사업을 책임진 방위사업청이 보잉의 F-15SE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말해준다.


후보기종선택에서 드러난 방위사업청의 이상한 행동

전 투기성능을 비교하면 최신예 전투기 F-35의 성능은 F-15SE의 성능이나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성능보다 더 우수하다. <방위소식(Defense News)> 2010년 7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공군은 예산부족 때문에 F-15SE 구입계획을 중단하였지만 현재 운용 중인 F-15와 F-16이 수명주기를 넘겨 퇴역한 이후 F-35를 실전배치할 때까지 중간공백기를 메워줄 기종으로 F-15SE를 배치하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이것은 성능 면에서 F-15SE가 F-35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보잉은 이전에 남측에 판매한 F-15K를 개량하여 F-15SE를 만들려는 것이므로, 두 전투기의 부품은 85%가 서로 똑같다. 성능을 개량하였다고 하지만, F-15SE가 차세대전투기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은 F-15SE를 차기전투기 선정대상에 아예 올려놓지도 않았다. 일본은 F-35 구입결정을 2011년 12월 20일에 내렸는데, 그들의 선정대상에는 F-35 이외에 FA-18E/F와 유로파이터 타이푼이 올려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측 정부당국은 F-15SE에 집착하면서 F-15SE의 가격이 총사업비에 적합하다고 말하였다. 그에 따라 세간에는 F-35가 F-15SE보다 훨씬 더 비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항공주간(Aviation Week)> 2013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와 록히드마틴이 최근 합의한 해외수출용 F-35의 대당 가격은 F-35A의 경우 1억910만∼1억1,310만 달러 선에서 결정될 것이고, F-35B의 경우 1억3,850만∼1억4,280만 달러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일본이 구입하는 F-35 대당 가격은 1억3,400만 달러인데, 그 가격에는 전투기기체를 구입하는 비용만이 아니라 각종 부대비용들도 포함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F-35의 가격이 고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공군보도국(Air Force News Agency) 2013년 6월 20일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 19일 연방 상원 예산배정위원회 국방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국방부의 조달, 기술, 병참담당 부장관 프랭크 켄달(Frank Kendall)은 개발 중인 F-35의 설계를 변경하고 그에 따라 가격도 조정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것은 F-35의 가격이 떨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 발언이다.

미국 법에 따르면, 미국산 전투기는 전투기생산기업이 남측에 직접 판매할 수 없고 미국 정부가 남측 정부에게 판매하는데, 이것을 대외군사판매(FMS)라 한다. 대외군사판매를 통해 전투기를 구입해온 남측 정부당국의 과거경험을 보면, 원래 제시된 가격보다 더 싸게 구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CBS 노컷뉴스> 2013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F-35 대남판촉활동을 담당한 록히드마틴 관계자들은, 전투기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가격도 떨어지게 되므로 F-35는 대당 가격이 8,5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들이 말한 8,500만 달러는 F-35기체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므로, 기타 부대비용까지 합하면 그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종합하면, F-35 해외수출가격은 대당 1억1,000만 달러 선에서 책정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면 F-35보다 싸다는 소문이 난 F-15SE의 가격은 얼마일까? <내일신문> 2012년 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국방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2010년 당시 1달러를 1,050원으로 환산할 때 F-35 가격은 1,040억 원(9,904만 달러), F-15SE 가격은 1,100억 원(1억476만 달러)이고, 전투기기체 60대의 가격만 따져보면 F-35 가격은 66억200만 달러, F-15SE 가격은 79억5,400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이처럼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보고서는 F-35가 F-15SE보다 더 비쌀 것이라는 소문을 뒤집고 되레 F-15SE가 더 비쌀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제인정보집단(Jane's Information Group)>은 2009년 3월 18일에 발표한 자료에서 F-15SE 가격을 대당 1억 달러로 추산한 바 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는 F-15SE 가격은 각종 부대비용까지 포함하여 1억3,670만 달러다.

그런데 F-15SE 구입자는 전 세계에서 남측과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으므로, 보잉이 남측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려고 생산하는 F-15SE는 총215대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남측이 F-15SE를 구입한 뒤 40년 동안 그 전투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드는 차후비용은 끝없이 오르게 될 것이다. 전투기의 경우, 구입비 대 유지보수비는 1:3의 비율로 계산되므로, 유지보수비가 구입비보다 3배나 더 많다. 215대밖에 만들지 않는 소량생산기종인 F-15SE의 유지보수비에 비해 3,000대나 만드는 대량생산산기종인 F-35의 유지보수비가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위에 서술한 정보를 종합하면, 남측 정부당국은 최신예 전투기 F-35를 1억1,000만 달러 선에 구입할 수 있는데도,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개량형 전투기 F-15SE를 더 비싸게 주고 구입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최신예 전투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개량형 전투기를 되레 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하다니, 그런 바보짓이 또 어디에 있을까.

차기전투기구입사업에서 방위사업청이 보여준 F-15SE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은 아래의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방위소식> 2013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록히드마틴은 남측이 F-35를 구입하는 경우, 남측에게 군사통신위성을 개발하여 발사해주고, 공군조종사를 위한 실전급 모의훈련체계를 제공하겠다는 특혜조건을 제시하였다. 록히드마틴의 국제통신부문 책임자 에릭 쉬네이블(Eric Schnaible)은 록히드마틴이 남측에 제시한 특혜는 “고도의 기술(high technology)”을 남측 군부에게 이전해주는 “전략적 동반사업(strategic partnership program)”이라고 자평하였다.

<아전스 프랑스 프레스(AFP)> 2013년 7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남측이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구입하는 경우, 남측의 F-16급 전투기개발사업(KFX사업)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고, 판매하려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60대 가운데 53대를 남측에서 면허생산하게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특혜조건을 제시하였다. 외국산 전투기 면허생산은 전투기생산기술을 상당부분 전수받게 된다는 뜻이므로,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면허생산제안은 그야말로 특혜 중의 특혜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보잉은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하는 전투기부품을 구입해주고, 공군조종사를 위한 실전급 모의훈련체계를 제공하고, 2,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경상북도 영천에 항공전자부품 유지보수개조센터를 건설해주겠다는 특혜조건을 제시하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하는 12억 달러의 전투기부품이란 F-15K와 F-15SE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위에 열거한 특혜조건들을 비교해보면, 남측이 F-15SE를 구입하는 것보다 F-35나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방위사업청은 F-15SE에만 비이성적으로 집착하였다. 그런 비이성적인 집착에는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는 법인데,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원인을 파헤치면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다급해진 보잉의 F-15SE 해외판촉활동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항공기전시회인 파리항공전시회(Paris Air Show)가 2013년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었는데, 그 전시회에서 미국산 전투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산 전투기가 전시회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국제무기시장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미국이 국제무기시장 판매품목 가운데 제1순위에 오르는 최고가 품목인 전투기를 국제항공기전시회에 한 대도 출품하지 못했다니, 선뜻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다.

국제무기시장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미국은 올해에 왜 국제항공기전시회에 자국산 전투기를 출품하지 못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의 전투기생산기업들이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sequestration)의 충격파에 밀려 신형전투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파리항공전시회의 전투기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상을 펼쳐 보인 것은, 국제전투기시장에서 미국산 전투기 F-35와 경쟁해온 러시아산 전투기 수호이(SU)-35S였다.

미국은 ‘제국의 체면’을 지켜야하기에 그냥 쉬쉬하고 넘어갔지만,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으로 손발이 묶인 미국의 전투기생산기업들은 국제항공기전시회에 신형전투기를 출품하지 못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밀려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표현은 과장어법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회연구소(CRS)가 2013년 5월 1일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의 충격파를 입은 미국공군은 수명주기가 끝나가는 B-52, B-1, B-2 같은 전략폭격기들을 대체할 신형전략폭격기를 개발할 수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B-52와 B-1의 작전수명을 2040년까지 연장하고, B-2의 작전수명을 2058년까지 연장하는 궁여지책에 의존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공군보도국 2013년 8월 15일 자료에 따르면,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의 충격파로 미국공군 우주사령부의 우주정찰작전이 2013년 9월 30일부터 무기한 중단된다. 우주정찰작전이란 지구궤도를 도는 세계 각국 인공위성들과 지구궤도에 출현하는 각종 비행물체를 발견하고 감시하는 군사활동이다. 또한 <국제비행(Flight International)> 2013년 7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의 충격파로 미국공군은 전술비행대대 5개와 C-130수송기비행대 1개를 해체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처럼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이라는 치명적인 ‘돈맥경화증’에 걸린 미국의 내상(內傷)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하다. <방위담화(Defense Talk> 2012년 10월 3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부터 10년 동안 국제전투기시장은 전투기생산국들의 재정적자와 연속적인 가격변동 때문에 거래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 동안 국제전투기시장을 쥐락펴락해온 미국의 양대 전투기생산기업들인 보잉과 록히드마틴은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의 충격파와 국제전투기시장의 거래부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투기생산부문의 동향을 보면, 록히드마틴보다 보잉이 더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록히드마틴은 ‘세계 최강 전투기’라는 F-35를 개발하는 사업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보잉은 F-35와 경쟁할 신형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을 아직 시작하지도 못해 탈출구마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시장에서는 경쟁에서 뒤지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수밖에 없다. 다급해진 보잉에게는 기존 F-15를 개량하여 판매하는 비상자구책을 취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09년 6월 3일 보잉의 군용기생산부 경영자인 크리스 채드윅(Chris Chadwick)이 언론대담을 통해 F-15개량사업에 동참할 다른 나라 전투기생산기업들을 찾고 있다고 밝힌 것은 보잉의 다급한 내부사정을 배경으로 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연방정부예산자동삭감의 충격파로 전투기구입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미국공군은 F-15SE를 구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전투기 최대구입자인 미국공군이 F-15SE를 구입해주리라고 믿었던 보잉은 미국공군이 그 전투기를 구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보잉에게는 F-15SE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해외판로를 뚫는 것밖에 살아남을 길이 없게 되었다. 2009년 6월 14일 파리항공전시회에 나타난 보잉의 통합방위체계(Integrated Defense Systems)최고경영자 짐 앨버그(Jim Albaugh)는 해외판매를 위해 F-15SE를 개발하겠다고 공식선언하였다.

보잉의 시각에서 보면, F-15SE 해외판로는 이전에 F-15를 수입하여 운용해오는 대상들로 좁혀지는데, 남측, 일본, 이스라엘,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런 대상들이다. <국제비행> 2009년 6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보잉은 기존 F-15를 운용하고 있는 남측,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상으로 F-15SE 판매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이스라엘, 싱가포르가 구입하는 차기전투기는 보잉의 F-15SE가 아니라 록히드마틴의 F-35다. 영국, 호주, 캐나다도 F-35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자 보잉의 F-15SE 해외판로는 남측과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폭 축소되고 말았다. 보잉이 F-15SE를 남측과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 보잉의 전투기생산설비는 도태되어 고철로 팔릴 폐쇄위기에 내몰릴 판이었으므로, 보잉은 회사의 명운을 걸고 F-15SE 해외판촉활동에 달라붙었다. 남측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직접 조준한 보잉의 F-15SE 해외판촉활동이 2009년부터 공세적으로 전개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보잉은 2010년 초에 미국정부에게 F-15SE 해외수출허가를 신청하였고, 미국정부는 2010년 7월 8일에 F-15SE 해외수출허가를 내주었는데, 보잉은 사정이 얼마나 다급했던지 해외수출허가를 받기도 전에 해외판촉활동부터 벌여놓았다.

 
차기전투기 입찰경쟁은 촌극이다

2012 년 9월 3일 경상북도도청 제1회의실에서 김관용 도지사, 김영석 영천시장, 조셉 송 보잉 아태지역사업개발부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가 체결되었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보잉은 F-15K항공전자부품을 공급할 항공전자수리정비개조센터를 도내 경제자유구역인 경상북도 영천에 건설한다는 것이다. 양해각서가 체결된 때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2013년 5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제임스 맥너니(W. James McNerney) 보잉최고경영자가 영천 항공전자수리정비개조센터 설립투자서에 서명하였다. 보잉은 2,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항공전자수리정비개조센터를 설립하려는 것인데, 2013년 10월에 착공하여 1년 뒤에 완공될 예정이다.

보잉이 한국공군의 차기전투기입찰을 눈앞에 둔 시기에 항공전자수리정비개조센터를 설립해주는 것은, 차기전투기입찰경쟁에서 보잉의 F-15SE 대남판촉활동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보잉의 F-15SE 대남판촉활동을 추적하면 아래의 사실이 드러난다.

2010 년 6월 25일 <국제비행>은 ‘F-15SE를 남측에 수출하려는 보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서 보잉의 F-15SE개발책임자 브래드 존스(Brad Jones)는 남측을 “서열 제1순위(the first in queue)”라고 지칭하였다. 보잉의 F-15SE 대남판촉활동은 앞으로 6년 뒤 전투기 약 100대가 부족하게 될 한국공군의 다급한 사정을 뒤흔들며 그야말로 공세적으로 전개되었다. 2011년 4월 7일 공군본부 전력소요처장 송택환 대령이 토론회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한국공군은 전투기 400대를 유지해야 하는데, 2019년에는 전투기 약 100대가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방위소식> 2010년 7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보잉의 F-15SE개발책임자 브래드 존스와 대변인 대미언 밀스(Damien Mills)는 보잉이 남측을 F-15SE 판매대상으로 일찌감치 점찍어놓고 2009년부터 남측 정부당국과 판매협의를 진행해왔으며, F-15SE 관련정보를 보내달라는 남측 정부당국의 요청을 2009년 말에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2009년 3월에 F-15SE의 실물축소모형을 처음 세상에 공개한 보잉은 시제기도 아닌 실물축소모형을 앞에 놓고 남측 정부당국과 판매를 협의한 것이다.

<항공주간> 2009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보잉의 F-15SE개발책임자 브래드 존스는 2010년 중반부터 2011년 사이 어느 시점에 남측 정부당국으로부터 F-15SE를 구입하겠다는 요청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F-15SE 대남판촉활동에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드러낸 발언이다. 그가 그처럼 자신만만한 까닭은, 미국공군이 보잉의 F-15SE 대남판촉활동에 가세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2010년 9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공군 관계자들이 9월 16일 충청남도 계룡대에 있는 한국군 3군통합기지에 가서 한국공군 관계자들에게 F-15SE의 성능을 해설해주고, 9월 17일에는 방위사업청에 가서 같은 내용을 해설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잉은 F-15SE의 시험비행기로 제작한 F-15E1을 2010년 7월에 처음으로 하늘에 띄웠는데, 아직 시제기도 만들지 못한 그들은 시험비행기의 첫 비행을 마치자마자 한국공군과 방위사업청을 찾아가 실물로 존재하지도 않는 F-15SE의 성능을 설명하는 촌극을 공연한 것이다.

보잉과 미국공군이 남측에서 ‘합동작전’으로 전개한 공세적인 대남판촉활동의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2010년 11월 3일 보잉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기술된 것처럼, 보잉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이 F-15SE의 내부무기탑재실(internal weapon carriage)을 공동으로 “설계-개발-제작하기 위한 합의각서(Memorandum of Agreement)”를 2010년 11월 3일에 체결한 것이다. 보잉이 생산한 AH-64D아파치(Apache) 공격헬기와 피스아이(Peace Eye)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구입하는 사업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깊이 관여하고 있었던 것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보잉의 F-15SE 대남판촉활동에 그처럼 쉽게 끌려들어간 원인들 가운데 하나다. 보잉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이 F-15개량사업에서 핵심과제로 제기된 내부무기탑재실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각서를 체결한 것은, 방위사업청이 추진해오던 차기전투기구입사업의 향방이 이미 2010년 11월 3일에 F-15SE를 구입하는 쪽으로 정리되었음을 말해준다.

<공군기술(Air Force Technology)> 2013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방위안보협력국(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은 총16억1,600만 달러에 이르는 각종 공대공미사일, 각종 고성능폭탄, 각종 훈련탄 및 관련 장비를 남측에 판매하는 수출허가신청을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는데, 이 무기들과 장비들은 모두 F-15SE에 탑재되거나 설치되는 것들이다. 만일 남측 정부당국의 F-15SE 구입여부가 사실상 정리되지 않았다면, 미국방위안보협력국이 그 전투기에 탑재 또는 설치될 각종 무기와 장비들을 그처럼 남측에 수출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 열거한 정보를 종합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과 보잉을 각각 앞에 내세운 남측의 방위사업청과 미국의 방위안보협력국은 F-15SE를 팔고 사기로 사실상 합의해놓고서도 그 동안 차기전투기 입찰경쟁을 벌이는 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차기전투기 수입사업의 내막이 그러하였으니, 록히드마틴과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이 제아무리 좋은 조건을 각각 제시해도 남측 정부당국이 F-35나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차기전투기로 선택할 리 만무하다. 입찰경쟁은 연출가의 극본에 따라 펼쳐진 촌극이었던 것이다.


▲ f-15se의 장점으로 내세운 점이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무기를 내부에 숨긴다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연료통이 작아져 항속거리가 1/3로 줄었다. 일본은 커녕 대구 기지에서 독도도 왕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 자주민보



전투기매매촌극이 막을 내릴 무렵

보잉이 과대포장 해놓은 F-15SE의 특징적 성능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보잉은 F-15SE에 내부무기탑재실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보잉이 2010년 7월 9일과 7월 20일에 각각 발표한 보도자료들에 따르면, 보잉은 내부무기탑재실을 설치한 시험비행기(F-15E1)를 제작하고, 2010년 7월 8일에 시험비행을 마친 다음, 내부무기탑재실에 탑재한 중거리공대공미사일(AIM-120 암람)을 비행 중에 발사하는 실험을 2010년 7월 14일에 실시하였다. 보잉이 풍동실험(wind tunnel test)을 통해 F-15E1 내부무기탑재실의 항공역학적 설계에 대한 최종적인 기술확증을 얻은 때는 2012년 6월이다.

내부무기탑재실을 설치하는 목적은, 미사일과 폭탄을 기체 외부에 장착하지 않게 하여 레이더반사면적(radar cross section)을 그만큼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무기탑재실을 기체 안에 들여놓는 바람에 항공연료저장공간이 그 만큼 줄어들어 F-15SE의 작전반경이 대폭 축소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게 되었다. 보잉이 발표한 F-15K의 작전반경은 1,800km인데, <중앙일보> 2013년 8월 24일 보도기사에서 지적한 F-15SE의 작전반경은 600km다. 성능을 개량했다고 하면서 작전반경은 되레 3분의 1로 줄어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작전반경이 600km밖에 되지 않는 F-15SE는 대구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독도상공까지 날아가 작전하지 못한다.

둘째, 수직으로 서 있는 기존 F-15 꼬리날개의 직립각을 밖으로 15도 기울여 설계함으로써 방공레이더에 노출되는 레이더반사면적을 줄이고, F-15SE의 비행거리를 138∼185km 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거리를 그렇게 늘였다고 해도 작전반경이 600km밖에 되지 않으므로, 꼬리날개 설계변경은 무의미하게 보인다.

셋째, 기존 F-15기체 앞부분에 전파흡수도료(RAM)를 칠하여 방공레이더에 노출되는 레이더반사면적을 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체 앞부분에만 전파흡수도료를 칠한 전투기는 스텔스기종이 아니다. 스텔스전투기를 만들려면, 기존 전투기기체를 전면적으로 새로 설계해야 한다.

넷째, F-15SE조종석에는 헬멧장착현시장치, 사격통제장치, 적외선탐지추적장치, 목표식별자동추적장치, 전천후야간항법장치, 능동전자주사배열(AESA)레이더를 비롯한 신형전자장비들이 갖춰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남측 정부당국이 구입하려는 F-15SE에는 위에 열거한 신형장비들이 모두 설치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남측과 마찬가지로 F-15SE를 구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구입방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제비행> 2012년 3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는 F-15SE 가격은 부대비용까지 포함하여 대당 1억3,670만 달러다. 그런데 남측 정부당국이 F-15SE 60대 구입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74억 달러이므로, 미국이 남측에 판매하는 F-15SE 가격은 부대비용까지 포함하여 대당 1억2,330만 달러가 될 것이다. 똑같은 기종을 구입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남측보다 대당 1,340만 달러나 더 주고 비싸게 구입하는 것일까? 얼핏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보잉의 F-15SE 해외판매전략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방위소식> 2010년 7월 7일 보도기사에서 보잉의 F-15SE개발책임자 브래드 존스는 구매자가 전투기에 들어갈 어떤 장비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F-15SE 판매가격이 정해질 것이라고 하면서, 신형항공장비들은 구매자의 선택에 따라 선별적으로 설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F-15SE에 어떤 신형항공장비가 설치되느냐 하는 문제는 구매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하는 F-15SE에는 보잉이 그 전투기에 설치해주는 모든 종류의 신형장비가 구비되기 때문에 대당 판매가격이 1억3,670만 달러로 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석유수출수익금(oil money)을 챙기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투기구입에 그처럼 막대한 예산을 지출할 재정능력이 있지만, 재정적자압박에 시달리는 남측은 그보다 1,340만 달러나 싼 값으로 F-15SE를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겉모습은 똑같이 생긴 F-15SE이지만, 남측이 구입하게 될 F-15SE의 성능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하는 F-15SE의 성능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일보> 2012년 1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록히드마틴 관계자는 보잉이 기존 F-15의 성능을 “약간 업그레이드해 (남측에) 납품할 수밖에 없을 거라 주장했다”는데, 이것은 기존 F-15K와 성능에서 대동소이한 F-15SE를 개량형전투기라는 명목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는 남측 정부당국의 처지를 지적한 말로 들린다.

F-15SE를 남측에 판매하기 위해 미국방위안보협력국과 보잉은 남측의 방위사업청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을 판촉활동에 끌어들였고, 거기에 끌려들어간 방위사업청은 K-15K와 비교하여 별반 개량되지도 않을 F-15SE를 F-35보다 비싸게 구입하면서도 신형전투기를 구입하는 것처럼 연막을 쳤다. 미국방위안보협력국이 제작을 맡고, 보잉이 총연출을 맡고, 방위사업청이 주연배우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조연배우로 각각 출연하고, 청와대가 관객으로 관람한 전투기매매촌극이 막을 내릴 무렵 미국이 남측에서 걷어갈 흥행수익은 막대할 것이다.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남측 노동자들이 땀 흘려 창출한 재부는 전체 근로대중의 민생안정에 쓰여야 마땅한데, 전투기매매촌극이 막을 내릴 무렵 그 재부가 미국의 먹잇감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참담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자주민보 2013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