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평양견문록(1)

잔디열풍과 현대적 건축물로 달라진 평양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평양에 잔디열풍 불고 있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달라진 평양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2005년 6월에 열렸던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간 적이 있으니, 8년 만에 평양과 재회한 셈이다.  
 
중국 베이징을 떠난 고려항공 여객기가 순안공항에 내려앉자, 이전의 낯익은 공항역사는 보이지 않고, 임시로 건설한 공항역사가 서 있었다. 임시역사 옆에서는 공항역사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새 공항역사의 일부로 보이는 훌륭한 건물이 거의 완공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01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순안공항을 현대적으로 개건하라고 지시하였고, 2012년 7월 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건공사 중인 순안공항을 현지지도하였다. 북측 최고영도자들의 지시와 현지지도에 따라 국제공항역사를 새로 짓는 것은, 세계로 통하는 북의 길목이 더욱 넓어진다는 뜻이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북측 구호가 어디를 지향하는지 나는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임시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나갔을 때, 어디선가 우렁찬 합창소리가 내 귓전에 울렸다. 짙은 청색 작업복을 입고 붉은 색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 근로자 50여 명의 대오가 작업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붉은 기를 치켜든 근로자 한 사람이 대오의 앞장에 걸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형트럭과 건설장비들이 길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그들 근로자 대오는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행진하고 있었다. 평양은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해외동포 한 사람을 그렇게 맞아주었다. 나를 맞으려 공항에 나온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는, 붉은 기를 앞세우고 ‘발걸음’을 합창하며 행진하는 근로자 대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을 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평양에 부는 잔디열풍. 보통강 기슭에도 나무를 심고 잔디밭을 가꾸어놓았다.     © 한호석

 
키 높은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진녹색 나뭇잎들이 내게 반가운 손인사를 건넸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측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심었던 그 나무들이 어느덧 크게 자라 이제는 멋진 풍치림을 이루었다.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으로 모내기를 막 끝낸 논배미들이 푸른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2013년 2월 9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화성-13은 왜 흰 옷으로 갈아입었을까?’(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1882) 에서 나는 평양에 건립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고 그 글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다고 썼고, 그 때 내친 김에 북측 당국에 나의 방북의사를 전하였다.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북측 당국으로부터 초청의사를 전달받았다. 나의 평양방문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이번 방북목적은 무장장비관 참관이었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내게 주어진 평양체류기간은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을 빼면 단 사흘뿐이었다. 8년 만에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사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 생각은 잠시 깊어졌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나는 평양체류 중에 무장장비관 참관 이외에 내가 가보고 싶었던 다른 곳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체류일정이 즉각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향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중심부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지나는 거리가 동평양 북쪽 서성구역에 있는 버드나무거리다. 버드나무거리에 척 들어서면, 왼쪽에 3대혁명전시관이 보이고, 오른쪽에 련못관이라는 식당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네거리가 있다. 그 네거리를 지나는 순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길고 푸른 주단을 길거리마다 펼쳐놓은 도로변 잔디밭이다. 나중에 평양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보니, 버드나무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평양 시내 곳곳에 수많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가 푸르싱싱하게 잘 자란 거리도 있었고, 얼마 전에 뿌려놓은 잔디씨가 햇볕에 마르지 않게 잔디밭에 비닐막박을 덮어놓은 거리도 있었다.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각 직장별, 인민반별로 잔디밭 담당구역을 정하여 자발적으로 관리한다고 한다.(사진) 거리를 지날 때마다 잔디밭에 물을 주는 살수차도 보였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커다란 비닐물통이 실린 손수레도 보였고, 양동이와 물조리개로 물을 주거나,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사람들도 보였다. 잔디밭 가꾸기를 군중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평양시민들이 군중운동으로 가꾸는 잔디밭과 화초. 회계과 근무자들이 가꾼다는 나무표지가 보인다.              © 한호석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들에는 잔디만이 아니라 맥문동 같은 지피식물, 키 작은 관상목, 각종 화초들도 조형미 나게 심어놓았다.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친환경 잔디밭이므로 도시생태환경에 아주 적합하다. 평양 전체를 원림록화하는 거창한 사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한 마디로, 2013년 6월의 평양은 잔디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평양은 주민 1인당 공공 잔디밭 면적이 전 세계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넓은 원림록화도시로 빠르게 변모하는 중이다. 
 
내가 사는 뉴욕 맨해튼에서는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잔디밭을 조성할 공간이 없을 만큼 도시공간이 번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잔디밭 조성과 관리에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정부나 시정부의 재정은 사실상 파산위기에 빠졌으니, 잔디밭 조성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뉴욕시 녹지대에 잡초가 무성해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른 한 편, 대도시 근교에 사는 미국 중산층은 자기의 단독주택 마당에 예외 없이 잔디를 심는다. 그런데 잔디밭을 일주일에 한 차례씩 계속 깎아주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자동관수체계를 돌리고, 잔디밭에 때로 비료도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도 주고, 잔디가 죽은 곳에는 새로 잔디씨를 뿌려주는 등 잔디밭 관리에 들어가는 노력과 경비는 상당하다. 휘발유를 쓰는 제초기 및 송풍청소기(blower) 사용, 전기를 쓰는 자동관수체계 가동, 그리고 비료 및 제초제 생산과 유통 등에서 많은 분량의 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잔디밭은 친환경적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도시의 모든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생태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인데,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그 사업을 실천행동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평양의 도시생태환경을 바꾸어 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치방식은 인민들 속에서 자신의 실천행동으로 잔디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인민들이 자발적인 군중운동으로 도시생태환경을 바꾸도록 이끄는 것이다.
 
북측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관저 앞마당에 잔디포전을 만들어놓고 새로운 잔디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5월 4일 국가과학원 생물과학분원 잔디연구소를 현지지도하였는데, 그 연구소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토종잔디품종인 금잔디에 우수한 유전자를 전이하여 사철 푸른 새로운 잔디품종인 ‘선들밀’을 시험재배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 북측 도시들에서 맨땅이 드러난 곳마다 심고 가꾸는 왕꿰미풀, 김의털, 겨이삭 같은 토종잔디품종은 녹색기간이 연중 280일 이상이라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의 동부지역, 중부지역, 서부지역에 각각 잔디연구소를 세우고 각 지방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우수한 잔디품종을 육성하여 모든 지방도시들에 보급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렇게 하면, 평양에서 불러일으킨 잔디열풍이 북측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잔디열풍은 평양과 지방도시들을 ‘인민 중심의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나를 태운 승용차는 서성구역 버드나무거리를 벗어나 어느새 모란봉구역 개선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60m 높이로 서 있는 웅장한 개선문이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개선거리는 잊지 못할 추억 속으로 나를 끌어갔다. 8년 전 그 날, 평양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6.15 북측 위원회가 급히 마련한 비옷을 덧입고 개선거리 한 복판을 걸으며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노래하고 외치는 빗물 젖은 행진대오 속에 나도 있었다. 이 민족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분단시대가 60년에 접어든 2005년 6월 14일 저녁, 한반도 각지와 해외 각지에서 6.15 민족통일축전에 모여든 남북해외 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고 통일기 휘날리며 걸었던, 환성이 차 넘치던 개선거리에 8년 만에 내가 다시 왔다. 개선거리 도로변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화초들과 가로수들, 새로 교체된 가로등이 8년 전의 추억에 젖은 나를 어서 오라는 듯 반겨주고 있었다.
 
8년 전 그 날, 비 내리는 개선거리를 행진했던 민족통일축전 참가자들은 통일의 문을 함께 열자고 마음속에 다졌건만, 8년이 지난 오늘 이 민족은 남과 북을 이어주었던 하늘길과 뱃길과 땅길을 모두 끊어버린 내외 반통일세력의 집요한 방해를 6년 동안 물리치지 못한 채, 해마다 열어오던 민족통일축전도 더 이상 열지 못하는 분단의 어둠을 헤쳐 가는 중이다.  
 
옥류교 가슴에 안은 평양의 중심가에서
 
창전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현대식 고층아파트들(사진) 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을 통해 이미 보아왔지만, 실제 현장에 가서 보니 감흥이 한결 새롭다. 창전거리에 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은 낡은 아파트들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식 고층아파트 단지와 지하상가를 거기에 번듯하게 건설하였다. 해가 저물어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그 고층아파트 외벽마다에는 불장식이 켜져 화려한 느낌을 한층 더 돋운다.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도 다른 거리들과 마찬가지로 잔디와 화초를 잘 가꾼 푸른 주단 위에 들어앉아 있다. 
 

▲ 창전거리에 늘어선 고층아파트와 도로변 잔디밭     ©한호석
 

도시건축적 시각에서 보면, 원래 평양의 도시중심은 만수대동상과 만수대의사당이 있는 만수대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개건되기 이전에는 도시중심은 있었지만 중심가(downtown)라고 부를 수 있는 거리는 없었다. 그런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훌륭히 개건되면서 평양에 중심가가 생겨났다. 푸른 물결 굽이도는 대동강을 가로지르며 서평양과 동평양을 이어주는 옥류교를 가슴에 안은 명당자리에 수도의 새로운 중심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창전거리가 마주 바라보이는, 만수대의사당 광장 바로 옆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만수대언덕 한 쪽에 우뚝 서 있다.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지어 2012년 4월 17일에 개관한 인민극장(사진)이다. 평양에 생겨난 새로운 중심가에 음악공연을 위한 공간이 없을 리 없다.
 

▲ 만수대언덕에 있는 인민극장. 사진에는 옆문이 찍혔고, 정문은 오른쪽에 보인다.     © 한호석

 
인민극장을 개관할 당시 은하수관현악단이 개관공연을 하였다. 1,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 있고, 지하층에는 500석 규모의 극장이 있으며, 음악공연과 무대예술에 필요한 각종 현대적 시설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요즈음 북측 인민들 속에서 최상의 인기를 누리는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의 수준 높은 음악공연이 바로 그 인민극장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곤 한다. 내가 거기에 간 날에는 공연이 없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음악공연을 볼 수 없었다. 
 
날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인민극장도 주변의 다른 고층건물들과 함께 평양의 밤을 수놓는 멋진 불장식으로 몸단장을 하고 나선다. 개관 당시 북측 언론매체들은 인민극장을 ‘현대적 건축미의 절정’이라고 격찬하였는데,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보니 과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사각형 건축물인 만수대의사당, 원통형 건축물인 인민극장, 높이가 서로 다른 직입면체 건축물인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이 한 데 어울려 평양의 새로운 중심가를 형성한 것이다.
 
인민극장 정문에서 내려다보면 오른쪽 길 건너편에 금성제2중학교가 보인다. 마침 학과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인지, 그 학교 재학생들이 교정에 나와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정겹게 안겨온다. 그 학교 옆으로 난 길 건너편에서도 대규모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무슨 공사인가 살펴보았더니, ‘만수대 화초, 분수공원 및 지하편의상점 공사’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다. 화원과 분수대가 어우러진 큰 공원을 만들고, 그 공원 밑에 지하편의상점들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전부터 녹지대가 많은 평양을 이제는 공원 속의 도시로 개건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나를 태운 승용차가 창전거리 지하도로에 들어서니, 북에서 봉사망이라 부르는 식당, 청량음료점(cafe), 편의점(convenient store)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창전해맞이식당으로 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여름에 시찰하였던 식당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 최고영도자가 시찰한 단위는 그 부문에서 본보기로 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위들이다.
 
▲ 창전해맞이식당의 커피점과 빵집 간판들. 우리말 밑에 국제공용어(영어)가 쓰여 있다.  © 한호석
창전해맞이식당에는 현대적 미감이 나게 실내를 장식한 방들이 주런히 있는데, ‘김정은 원수님께서 2012년 8월 31일에 다녀가신 방’이라는 현판이 있는, 10명이 들어가는 식사실도 있다. 미국에서 핫덕(hotdog)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쏘세지구이라 부르는 간식은 한 개에 북측 돈으로 250원이고, 미국에서 팝콘(pop corn)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강냉이튀기라 부르는 간식은 한 봉지에 북측 돈으로 300원이다.
 
창전해맞이식당 바로 옆에는 커피, 맥주, 칵테일, 각종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해맞이커피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미국에 있는 스타벅스, 레드맹고, 칵테일 바를 하나로 합쳐놓은 곳이다. 카페를 북에서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직 적당한 우리말을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해맞이커피는 고급화된 실내장식으로 꾸며졌다. 둥근 벽시계를 머리에 인 커다란 선녀상이 한 쪽에 다소곳이 서서 손님을 맞아주고, 그 옆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는데,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소녀의 기도’나 ‘뻐꾹왈츠’ 같은 귀에 익은 서양음악들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 곳을 찾은 몇몇 손님들의 손전화에서 울리는 착신음이 간간이 들렸고, 옆자리에서는 여자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세 사람이 시원한 병맥주를 한 병씩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자니, 뉴욕 맨해튼에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거기서 나는 북측 돈으로 350원 하는 오렌지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안내자는 360원 하는 커피를 마셨다. 
 
옥류교에서 바라본 대동강은 눈부신 6월의 햇살이 반짝이는 물결을 껴안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수천년 기나긴 세월을 그렇게 흘러온 잔잔한 강물 위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실려 추억의 세계로 떠나갔을까. 창전거리와 승리거리가 사귀는 길목에서 청기와를 합각지붕에 곱게 얹은 옥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민족의 음식문화사에 명품국수로 첫 자리를 차지하는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이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진 미각으로 맛보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좀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냉면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미각을 되살리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에서는 깊고 은은한 맛이 난다. 
 
평양의 기념비적 건축물 류경원,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서평양에서 옥류교를 건너면 동평양으로 들어서는데,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면 주체사상탑이 있고,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밀려오는 바다파도를 연상케 하는 파상형 지붕을 머리에 얹은 커다란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섯 개 굵은 기둥이 그 거대한 파상형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북에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라 부르는 시설들 가운데 하나인 류경원(사진)이다. 하루에 7,200명이 목욕, 한증, 사우나, 미용, 미안, 이발, 안마, 치료체육을 할 수 있고, 오락장과 탁구장, 식당과 청량음료실도 갖춰놓은 지상 4층, 지하 1층의 현대식 종합문화후생시설이다. 2012년 11월 9일에 준공식을 하였으니, 개장한지 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류경원에 간 날은 마침 휴장일이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 류경원의 파상형 지붕. 명품가방(샤넬)을 어깨에 메고 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북측 여성의 모습이 우연히 카메라에 잡혔다.     ©한호석

 
류경원 뒤쪽에 붙어있는 시설이 인민야외빙상장이다. 보도사진에서는 야외빙상장이 아니라 실내빙상장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야외빙상장이라고 부를까? 빙상장 건물 안에 들어가서 눈여겨보니, 벽체에 지붕을 살짝 얹어놓은 형태로 설계되어 외부와 실내가 서로 통하게 지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곳에 간 날은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무척 더운 날씨였으므로, 외부의 더운 공기가 건물 안으로 몰려들어올 텐데 아주 말끔한 빙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부와 통하는 그처럼 넓은 빙상장을 무더운 여름철에 관리하려면 강력한 냉동설비를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그곳에 간 시각, 인민야외빙상장 은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백인 할머니도 있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은반 위를 계속 돌아다니는 통에 그 백인 할머니에게 더 이상 말을 걸기 힘들었다. 
 
▲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한호석
류경원 옆쪽으로 나 있는 주체사상탑거리를 가로질러 건너면, 금릉운동원과 평양보링관이 줄지어 있는데, 바로 그 곁에서 지상 6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해당화관(사진) 이 나를 맞았다. 밀짚모자처럼 생긴 거대한 철제구조물을 앞머리에 눌러쓴 그 건물은 외모부터 특색이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지열수로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을 보장하는 친환경 첨단설비가 갖춰진 것만 봐도, 해당화관이 평양의 현대적 건축물을 대표할 만한 시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당화관에는 식당, 연회방(banquet room), 커피점, 상점, 실내물놀이장(indoor swimming pool), 운동실, 당구장, 요리견습실 등이 들어있는데, 모두 고급화된 설비와 내장재를 썼다.
 
승강기에서 나오니, ‘료리는 과학이며 예술입니다 김정일’이라고 쓰인 글발 아래, 어느 주방에서 하얀색 요리모자를 쓰고 튀김을 조리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탈한 풍모가 담긴 천연색 사진이 걸려 있고, 그 밑에 누가 놓았는지 꽃다발들이 주런히 놓여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4월 27일 개업을 앞둔 해당화관을 부인과 함께 시찰하였다.
 
1층에 들어서니, 상점도 있고 연회방도 있다. 상점에서는 외국산 고급상품을 팔고 있었고, 연회방은 각 주제별로 실내를 장식한 송학방, 해당화방, 봉선화방, 코스모스방으로 나뉘어졌다. 실내장식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연회방에서는 손님들이 요리를 즐기면서 해당화관 전속 여성공연조가 출연하는 30분짜리 음악공연을 감상한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서 여성공연조가 음악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공연연습을 하고 있었다. 
 
▲ 해당화관 2층에 있는 철판구이집. 반원형으로 설계된 실내공간 곳곳에 10개의 철판식사대가 늘어서 있다.     © 한호석

 
2층에는 철판구이를 봉사하는 철판구이집(사진) 이 있다. 미국 식당의 철판구이는 일본사람들이 보급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말을 그대로 써서 테판야키(teppanyaki) 또는 히바치(hibachi)라 부른다. 원래 철판구이란, 요리사가 손님들이 둘러앉은 널따란 철판 위에 식용유를 두르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워내는 동안, 불을 지펴 올리는 묘기동작이나 요리도구를 가지고 부리는 묘기동작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해당화관 연회방에서 요리와 음악공연을 즐기려면 한 사람 당 50달러에서 70달러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고급식당 연회방에서는 음악공연을 위해 별도로 많은 비용을 내야하고 요리를 즐길 수 있는데, 해당화관 연회방 비용보다 훨씬 더 비싸다.
 
3층과 4층에는 실내물놀이장, 당구장, 운동실, 탁구장이 있고, 5층에는 전자도서실을 갖춘 요리견습실이 있다. 또한 6층에는 실내공간을 반원형으로 만들어놓은 멋진 커피점이 있는데, 거기서 봉사하는 에쓰쁘레쏘(espresso) 한 잔은 북측 돈으로 420원이다. 평양의 다른 식당들이 따라오지 못할 고급식당이므로 좀 비싸지만 그 정도 비용은 내야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현대적인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건축열풍
 
지난해에 새로 세워진 류경원과 해당화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평양에는 건축열풍이 불고 있다. 곳곳에서 건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뜨거운 건축열풍에 휩싸여 있는 듯이 보였다. 평양의 건축열풍은 흔히 외부에서 생각하는 도시재개발 같은 게 아니라, 현대적으로 개건된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안에 평양의 오래된 아파트들을 철거하고, 현대식 아파트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방대한 도시환경 개조사업을 추진하자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어디서 그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과제이지만, 해결해야 할 다른 과제도 있다. 이번 방문 중에 내 눈에 띈 것이 외장도료다. 건축물을 잘 지었어도, 볼품없는 외장재를 쓰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외장재 중에서도 특히 외장도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남측에서 ‘에나멜’이라 부르는 유성도료(oil-based paint)인 이내멀 페인트(enamel paint)가 북에서 대량생산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제품인 이내멀 페인트를 대량생산하려면, 막대한 양의 석유를 다른 산유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북은 제한된 자원으로 수입한 석유를 공업원료나 차량연료로 우선 배정해야 하므로, 도시 전체를 칠할 외장도료를 대량생산할 만큼 많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북에서는 자기 땅에 나는 천연광물에서 추출한 무기화합물로 만든 무기질 도료 ‘현무’를 개발하여 외장도료로 쓴다. 하지만 무기질 도료는 광택이 나지 않고 색상이 다채롭지 못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햇빛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변색되는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북에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건설된 대동강타일공장이 대량생산하는 각종 타일(사진) 이나 인조대리석으로 건축물 외장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색으로 마감하는 것이 훨씬 더 밝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도시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서 외장도료는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북에서는 아직 그 문제를 자원부족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평양에 부는 건축열풍. 대동강타일공장에서 생산하는 돋을무니 타일이 카메라에 잡혔다.     © 한호석

 
북에서 외장도료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것이 또 있으니, 도로표지판과 간판이다. 뉴욕 맨해튼 같은 자본주의도시환경에는 형형색색 상품광고판이 뒤덮여 있는 데 비해, 평양 같은 사회주의도시환경에는 당연히 상품광고판이 없다. 자본주의도시환경에서 생활하는 외부인들이 평양에 가서 도시환경이 왠지 좀 썰렁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현란한 자본주의상품광고판에 익숙해진 고정시선을 평양에까지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평양에 상품광고판은 있을 필요가 없지만, 도로표지판과 간판은 긴요하다. 이번에 평양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와 함께 다니는 안내자도 평양의 거리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해 행인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보았다. 그런데 도로표지판과 간판도 외장도료처럼 석유화학공업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청춘남녀 타고 달리는 ‘모터찌클’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평양 거리를 돌아보던 중에 내 시선을 끌어당긴 유별난 광경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유별난 광경들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은 영어로는 모터싸이클이라 부르고, 남측에서 쓰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말로는 ‘오토바이’라 한다. 평양에는 차량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었고, 그에 따라 ‘모터찌클’도 많아졌다. 얼마 전 ‘유투브’에서 우연히 찾아낸 북측 영화에서 주인공이 ‘모터찌클’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화적 설정인가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평양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젊은 남녀 한 쌍이 탄 ‘청춘남녀 모터찌클’이 평양 거리에서 눈에 뜨인다는 점이다. 헬멧을 쓴 남자가 앞에 타고 운전하는 ‘모터찌클’ 뒷자리에 헬멧을 쓴 여자가 타고 가는 정다운 모습(사진)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일상사로 된 듯하였다. 
 
▲ 도로변 잔디밭을 가꾸는 평양시민들, 그리고 거리를 달리는 '청춘남녀 모터찌클'     © 한호석

 
그러고 보니, 평양 거리를 오가는 북측 여성들이 거의 모두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도 시선을 끌었다. 지난 시기에는 여성들이 작업장에서나 바지를 입었고, 나들이할 때는 대체로 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활동하기에 편리한 바지를 거의 모두 입고 다닌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었으니 ‘청춘남녀 모터찌클’도 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측 여성들은 직장에서 작업화를 신고 일하다가 하루일과를 마치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귀갓길에 나선다. 원래 남이나 북에 사는 우리 여성들이 전 세계에서 비만유전자 보유율이 가장 낮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데, 그처럼 바지를 입고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나서니 다리가 길어 보이고 더 날씬하게 보이는 실효를 거두게 된다.(자주민보 2013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