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 엄습한 핵피격 공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군부가 겪은 12분간의 핵피격 악몽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경보도 없었고, 예고도 없었다. 나는 ‘국가군사합동정보센터(National Military Joint Intelligence Center)’에서 근무하던 기간 중에 처음으로, 유일하게 미국군의 모든 무장체계가 몇 초 사이에 긴장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당시 (북이 발사한) 그 미사일이 어떤 종류의 미사일인지 알지 못했고, (피격범위가) 미국 전역일 것으로 직감하였다. 우리가 12분 동안 어떻게 행동해야 했겠는지 생각해보라. 미국의 도시 한 개를 잃어버릴 판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했을까? 우리는 12분 안에 해답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우리는 태평양 연안이 피격범위에 든 것으로 판단하였다가, 곧바로 하와이가 피격범위에 들었다고 판단하였다. 그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되었기 때문에, (북의) 1993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위의 인용문은 북이 미국을 향해 중거리미사일을 위협발사하였던 1993년 5월 30일, 당시 미국 국가군사합동정보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미국 해군 정보장교 마크 커크(Mark Kirk)가 들려준 경험담을 <AP통신>이 2001년 4월에 보도한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마크 커크는 북이 불시에 미국 본토를 향해 핵타격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직감한 미국 군부가 “끔직스러운 체험”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북이 미국과 남측에게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을 선포하고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 본토를 조준한 핵타격미사일을 발사대기상태에 진입시킨 오늘, 미국 군부가 20년 전에 겪은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북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때로부터 꼭 40년이 되던 1993년 봄, 두 나라의 정전상태는 전면전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극심하게 격화되었다. 오늘도 그렇지만 20년 전에도 전면전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협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3년 1월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초기부터 북미관계를 악화시키며 전쟁위기지수를 고의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북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녕변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날려버리겠다고 협박, 공갈하였다.

북은 미국의 그런 협박과 공갈에 강경하게 맞서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즉각 전시동원령을 선포하며 전면전 태세에 돌입하였다. 그런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속에서 북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 미국에게 불시에 결정타를 날렸으니, 그것이 바로 중거리미사일 위협발사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데이빗 생어(David E. Sanger)는 <뉴욕 타임스> 1993년 6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북이 1993년 5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서술하였는데, 당시 북의 중거리미사일 발사로 혼비백산한 미국이 쉬쉬하며 관련정보를 은폐하는 바람에, 데이빗 생어도 부정확한 정보만 갖고 그 보도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던 관련정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실상이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당시 북은 사거리 1,300km의 준중거리미사일 화성-7, 사거리 2,000km의 준중거리미사일 화성-8, 그리고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미사일 화성-9를 각각 실전배치하고 있었다.

북이 1993년에 그처럼 준중거리미사일과 중거리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는데도, 미국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미국 정찰위성이 제아무리 북측 상공에서 감시, 정찰을 계속한다 해도 인민군의 은폐활동과 기만활동 앞에서는 그처럼 실효가 없는 것이다.

1993년 5월 29일 화성-7 한 기를 위협발사한 북은 5월 30일에도 화성-8과 화성-9를 각각 한 기씩 위협발사하였다. 5월 29일 북이 동해 쪽으로 위협발사한 화성-7은 일본 자위대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었는데, 5월 30일에 위협발사한 화성-8과 화성-9는 일본 자위대의 반항공레이더 탐지범위를 뛰어넘은 강력한 미사일이었다. 그 날 북은 화성-8을 남서쪽으로, 화성-9를 동북쪽으로 각각 쏘았는데, 함경북도에서 남서쪽으로 발사된 화성-8은 동중국해 상공을 넘어 서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거점 괌(Guam)을 향해 날아가더니, 괌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서태평양 해상에 탄착하였다. 그리고 함경북도에서 동북쪽으로 발사된 화성-9는 일본 쓰가루 해협(津輕海峽) 상공을 넘고, 북태평양의 미국 영토 미드웨이제도(Midway Islands) 상공을 넘어 하와이(Hawaii)를 향해 날아가더니,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해상에 탄착하였다.

위에 인용한 마크 커크의 경험담은, 북이 불시에 위협발사한 중거리미사일 화성-9가 서태평양 상공을 건너 하와이를 향해 초고속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12분 동안 미국 군부가 겪은 실제경험을 수록한 것이다. 북이 핵타격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쏜 것으로 직감한 미국 군부는 기겁하고 당황망조하였다. 그들을 향해 화성-9가 날아간 12분은 그들의 숨통이 막히는 듯한 핵피격 악몽의 시간이었다.

화성-9 위협발사로 핵피격 악몽을 겪으며 혼비백산한 미국은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양자회담에 황망히 끌려 나갔으며, 북이 요구한 대로 미국은 북의 주권을 존중하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공동성명에 굴욕적으로 서명하였다. 북이 위협발사한 중거리미사일 화성-9는, 미국을 혼비백산케 하고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게 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북은 녕변핵시설 정밀타격을 노리던 강적을 중거리미사일 한 방으로 단숨에 굴복시켰으니, 당시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던 핵강국들인 러시아나 중국이 따라할 수 없는 기습공격력을 과시한 것이다.

세계 최강이라 자처하던 미국은 그 날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의 위력 앞에서 너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상 처음 북미양자회담에 끌려 나가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한 것이 자기들에게 너무 큰 치욕이었기 때문에, 화성-9 존재 자체를 은폐하였으며, 북미공동성명 채택에 대해서도 쉬쉬하며 넘어갔다.

화성-9의 기억을 재생해야 하는 까닭

지난 20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서방세계의 끝없는 오판과 착오는, 미국이 자기를 굴복시킨 화성-9 존재 자체를 철저히 은폐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서방세계의 언론계와 군사전문가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오는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오판과 착오를 넘어서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북이 화성-9를 위협발사하여 녕변핵시설 정밀타격을 노리던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20년 전 경험에 대한 재인식이다. 재인식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1993년 5월 당시 북은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미사일 화성-9를 실전배치하고 있었는데, 그에 관한 정보가 서방세계에 처음 알려진 때는 2004년이다. 서방세계에서 인민군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가 2004년 8월 4일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se Weekly)>에 발표한 글에서 북의 중거리미사일 실전배치에 관해 서술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이 화성-9를 위협발사하여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때로부터 무려 11년이나 지난 뒤에 화성-9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서방세계의 오판과 착오가 얼마나 심한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의 중거리미사일 실전배치에 관한 버뮤디즈의 서술도 사실은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 초에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중앙일보> 2003년 9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찰위성은 북의 공화국 창건 55주년 열병식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인근 미림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낸 중거리미사일(화성-9)을 촬영하였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북은 화성-9를 열병식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미국 정찰위성이 보내온 영상자료에 따르면, 당시 미림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낸 화성-9는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있었다.

또한 서방세계 언론매체들은 북이 2005년에 화성-9 18기를 이란에 수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북이 화성-9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 것은, 그 중거리미사일을 대량생산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중거리미사일보다 성능이 한 급 높은 화성-10을 이미 실전배치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2010년 3월 9일 <연합뉴스>는 남측 정보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여, 북측이 사거리 3,000km 이상의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2007년에 실전배치하여 중거리미사일 사단을 창설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것은 화성-9를 배비한 인민군 사단이 편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화성-9를 배비한 사단이 있으므로, 화성-10, 화성-11, 화성-12, 화성-13을 각각 배비한 사단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위에 언급한 다섯 종의 핵타격미사일을 각각 배비한 여러 사단들로 편성되어 있는 것이다.

인민군 미사일부대 외곽경비 근무경험이 있다는 탈북자가 2013년 3월 16일 언론대담에서 꺼내놓은 경험담에 따르면, 중거리미사일 여단에 배속된 1개 대대마다 중거리미사일 9기씩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 인민군 미사일부대 편제를 보면, 1개 여단에 배속된 5개 대대 가운데 미사일을 운용하는 대대는 3개이므로, 1개 중거리미사일 여단에 배치된 화성-9는 총 27기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2010년 3월 9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는 북이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2007년에 증강하여 기존의 중거리미사일 여단을 사단으로 확대, 개편하였다고 하였으므로, 2007년에 신설된 1개 중거리미사일 사단에 미사일을 운용하는 대대를 5개씩 배속시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개 중거리미사일 사단에 배치된 화성-9는 총 45기로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htol)은 2010년 10월 13일 미국 언론보도기사에서 북의 중거리미사일 총보유량이 200기 이상이라고 추산한 바 있으므로, 그의 추산에 따르면, 화성-9 45기를 배비한 중거리미사일 사단이 5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1993년 5월에 미국을 향해 화성-9를 위협발사하였던 북이 그로부터 20년 동안 그 미사일의 보유량을 꾸준히 늘려왔으므로, 2013년 4월 현재 225기에 이르는 화성-9가 실전배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1993년 5월 30일 북이 하와이 쪽으로 위협발사한 화성-9 탄두부에는 모의탄두가 들어있었다. 실전발사가 아니라 위협발사였으므로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화성-9에는 실제로 어떤 탄두가 탑재된 것일까?

북만 그러한 게 아니라, 다른 미사일강국들도 일반폭약으로 만든 재래식 탄두를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운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비용 대 효과’를 따져보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중거리미사일에 파괴력이 약한 재래식 탄두를 탑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거리미사일은 산화제를 1분당 60kg씩 연소하며 비행하는데, 산화제 값은 1kg에 60달러나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성-9가 하와이 쪽으로 날아가 태평양 해상에 탄착하기까지 12분 동안 비행하였으므로 화성-9가 연소한 산화제 총량은 720kg이며, 그것을 가격으로 환산하면 43,200달러다. 중거리미사일에 들어간 다른 비싼 핵심부품들은 그만두고, 산화제 값만 보더라도 화성-9가 얼마나 값비싼 무기인지 알 수 있다.

그처럼 값비싼 화성-9에 값싼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면, 겨우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대상물밖에 타격할 수 없게 된다. 4,000km를 날아가는 중거리미사일에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대상물밖에 타격하지 못하는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는 어리석은 나라는 없다. 이런 사실만 봐도 화성-9가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런데 북이 그런 화성-9를 1993년 5월에 위협발사하였다면, 20년 전에 벌써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화성-9를 위협발사하였던 1993년 당시 북이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은 20년 전에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물론 1993년 당시 북이 보유한 핵탄두는 질량이 1,000kg 정도가 되는 1세대 핵탄두였을 것이다.

1993년 당시 북이 질량 1,000kg 정도의 1세대 핵탄두를 보유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파키스탄의 핵탄두 개발경험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글로벌 시큐리티(Global Security)>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다섯 단계에 걸쳐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핵무력 강화과정을 밟아갔는데, 파키스탄의 1세대 핵탄두 질량은 1,158∼850kg이었고, 2세대 핵탄두 질량은 900∼750kg이었고, 3세대 핵탄두 질량은 750∼500kg이었고, 4세대 핵탄두 질량은 500∼400kg이었고, 현재 보유한 5세대 핵탄두 질량은 450∼200kg이다. 핵무기부문과 미사일부문에서 기술수준이 북보다 뒤쳐진 파키스탄이 지난 15년 동안 그처럼 다섯 단계에 걸쳐 핵탄두를 소형화하였으므로, 북은 시기적으로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앞서서, 그리고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핵탄두를 소형화하며 20년 동안 핵무력 강화를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의 핵탄두 소형화에 비례하여 북의 중거리미사일 사거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화성-9의 사거리를 4,000km라고 2004년에 추정하였는데, 인민군 미사일부대 외곽경비 근무경험이 있다는 탈북자가 2013년 3월 16일 언론대담에서 꺼내놓은 경험담에 따르면, 그가 북에서 군복무를 할 때 참석한 인민군 학습강연에서는 화성-9의 사거리가 5,000km라고 언급되었다고 한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오래 전에 추정한 사거리보다 인민군 학습강연에서 비교적 근래에 언급한 사거리가 1,000km 더 늘어난 까닭은, 화성-9의 핵탄두를 소형화한 것에 비례하여 사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한 화성-9의 사거리는 이전보다 1,000km가 더 늘어난 5,000km인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북이 외부에 공개한 중거리미사일은 화성-9와 화성-10 두 종류이며, 외부에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3 한 종류다. <글로벌 시큐리티>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북이 만든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3)의 핵탄두 질량은 650kg이고, 최대 사거리는 12,000km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화성-9와 화성-10의 차이는 단탄두와 다탄두의 차이이며, 도로이동식 발사체계와 잠수함 발사체계의 차이다. 1993년 5월 30일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는 지상에서 이동하는 자행발사대에서 쏘는 단탄두 중거리미사일이었고,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북이 처음 공개하였고,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서 또 다시 등장시킨 화성-10은 바다속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에서 쏘는 다탄두 중거리미사일이다. 북은 지난 20년 동안 중거리미사일 성능을 부단히 향상시켜 잠수함 발사 다탄두 중거리미사일까지 만들어냈던 것이다.

잠수함 발사 다탄두 중거리미사일을 만들어낸 것은, 북의 기술력이 핵무력 강화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의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는 바람에 오판과 착오에 빠진 서방세계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오늘 북이 실전배치한 각종 핵타격미사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적국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왜곡선전은 미국의 관행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만큼 미사일 개발의 진척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미사일 능력은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것은 <워싱턴 포스트> 1977년 8월 24일 보도기사에 인용된, 1970년대 후반 중국 미사일 능력에 관한 미국 국방정보국의 전망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미사일 개발경험이 입증한 대로, 미국 국방정보국의 그런 전망은 엉터리였다. 중국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5(DF-5)를 1981년에 실전배치하였다. 둥펑-5의 성능을 계속 향상시킨 중국은 1983년 11월에 사거리를 종전의 12,000km에서 15,000km로 늘렸고, 종전의 단탄두를 다탄두로 대체하였다. 이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4년 뒤에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1987년 이후에나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77년 당시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몇 해 뒤에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이미 1971년에 사거리 10,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을 곧 완료하고 몇 해 뒤에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정보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국방정보국은 위와 같은 정보판단을 내렸으면서도,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왜 그처럼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것일까? 1977년 당시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중국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곧 실전배치할 것이라는 정보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 핵피격 공포가 미국 사회 전반을 엄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내돌렸던 것이다.

적국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내돌리는 미국의 관행은 36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하다. 이번에는 미국 국방정보국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여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하였다.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에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미국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 느끼는 핵피격 공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2013년 3월 16일에 방영된 미국 NBC 텔레비전방송 대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제껏 정보당국이 분석한 내용에 근거하여 말하면, 나와 행정부가 내린 결론은 북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가졌다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배배 꼬아서 말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북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갖지 못했노라고 공언한 것이다.

북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핵탄두를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시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가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미국 군부가 핵피격 공포에 빠져 혼비백산하였는데, 20년이 지난 이제 와서 북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인용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궤변이라는 점은, 미국 국방정보국이 2013년 3월에 작성하여 2013년 4월 11일에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일곱 장짜리 군사정보보고서 ‘역동적 위협 평가 8099: 북의 핵무기 프로그램(Dynamic Threat Assessment 8099: North Korea Nuclear Program)’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하원의원 한 사람이 인용하는 바람에 언론에 유출된 그 보고서 내용을 보면, “국방정보국은 현재 북이 탄도미사일로 운반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중간 정도의 자신을 가지고(with moderate confidence) 내린 평가다. 하지만 (북의 핵타격 미사일의) 신뢰도는 낮을 것”이라고 서술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정보평가내용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화들짝 놀란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그 날 저녁에 서둘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내가 덧붙여 말하는 것은, 하원의원이 읽은 그 대목이 미국 국가정보계에서 공식 채택된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은 핵타격미사일에 필요한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부인하였다. 조지 리틀(George Little) 국방부 대변인도 황급히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북의 정권이 위의 평가보고서 인용구절에서 언급한 핵능력을 완전하게 시험하고, 개발하고, 시위하였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한 판단”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부인하였다.

이튿날인 2013년 4월 12일 제이 카니(Jay Carney) 백악관 대변인도 백악관 출입기자단 앞에서 “북이 핵탑재 미사일을 배치할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평가”라고 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확실하게 부인하였다. 북이 실전배치한 핵타격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비롯한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한다”고 규정한 법령까지 북의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되었는데도, 미국 국가정보국장, 국방부 대변인, 백악관 대변인은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부인하는 헛소리를 이구동성으로 늘어놓았다.

그런데 <중앙일보> 2013년 3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윈펠드(James Winnefeld) 미국 합참본부 부의장은 2013년 3월 15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서 화성-13에 대해 언급하면서 “열병식 때 나온 KN-08 미사일 6기가 가짜란 주장이 있었지만,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 미사일이) 미국까지 도달할 사거리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교도통신> 2013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3월 20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찰스 재코비(Charles H. Jacoby) 미국 북부사령부 사령관도 화성-13에 대해 언급한 대목에서 “(화성-13이) 미국 본토에 직접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처럼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미국 합참본부 부의장이나 미국 북부사령부 사령관은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 핵타격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였는데, 4월에 들어와서 미국 국가정보국장, 국방부 대변인, 백악관 대변인은 그런 사실을 부인하였고,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언론에 나서서 그런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워싱턴에서 그처럼 상충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 까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핵타격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날려버리겠다는 발언이 미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핵피격 공포가 미국 사회 전반을 엄습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북이 2013년 4월 1일 화성-10 두 기를 실은 특별수송열차를 원산 인근으로 보내고, 강원도와 함경남도 각지에서 핵타격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를 7대씩 민활하게 기동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미국에서 핵피격 공포가 더욱 확산된 것이다.

미국에 핵피격 공포가 얼마나 심각하게 확산되었는지는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워싱턴 포스트> 2013년 4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 검색창인 <구글(Google)>에서 북과 관련된 검색조회수가 2013년 4월에 들어와 갑자기 폭증하였는데, 북이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던 2006년 10월에 비해 무려 일곱 배나 많은 검색조회수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사용되는 <트위터(Twitter)>에서 북에 관한 사용자들의 관심도가 2013년 4월에 들어와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한다. 또한 미국 성인인구 가운데 약 36%가 북에 관련된 보도기사를 일상적으로 검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처럼 핵피격 공포가 조성된 분위기 속에서,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인정한 미국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이 미국 언론에 흘러나왔으니, 미국 군부는 물론 백악관까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에 나서서 북의 미사일 능력에 관한 미국 국방정보국 평가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핵타격미사일 발사단추를 누르기 직전의 사격대기상태에 돌입해 있다. 이것은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지난 3월 29일 최고사령부 긴급작전회의에서 내린 사격대기명령을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즉각 수행한 것이다.

오늘 전시상황에 처한 북미관계의 급박한 움직임을 살펴보면, 미국의 운명을 결정할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핵타격미사일 발사시각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1814년 9월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 함대가 미국 수도의 관문인 볼티모어를 함포사격으로 초토화한 이래 200년 동안 외국군대의 총알 한 발도 떨어지지 않았던 미국 본토에 핵피격 공포의 시간이 악몽처럼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자주민보 2013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