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군 핵잠수함 출동과 인민군 선제타격연습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핵타격으로 북측 주민 65만 명을 무차별 학살하려던 미국의 만행

1969년 4월 15일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에 순환배치된 F-4 전폭기 조종사 브루스 찰스(Bruce Charles)는 지휘관의 긴급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군산 공군기지를 담당한 대령급 지휘관은 브루스 찰스에게 인민군 공군기지를 공습할 출격준비를 갖추라는 상부 명령을 전달하였다.

당시 브루스 찰스는 미국의 핵전쟁계획인 ‘단일통합작전계획(Single Integrated Operational Plan, SIOP)’의 실전연습에 F-4 전폭기를 몰고 참가하기 위해 군산 공군기지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폭격연습이 아니라 인민군 공군기지를 실제로 폭격하라니, 이건 무슨 소린가?

미국 군부가 브루스 찰스에게 인민군 공군기지를 공습할 출격준비를 갖추라는 긴급명령을 내리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1시 22분, 미국 해군 정찰기 EC-121M 한 대가 정찰비행을 하던 중, 함경북도 청진시로부터 167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인민군 전투기가 쏜 공대공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어 탑승자 31명이 몰살당했다. 미국 군부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인민군 공군기지를 공습하려는 것이었다.

브루스 찰스가 출격준비를 갖춘 F-4 전폭기에 실리는 타격수단은 B61 열핵탄이라고 부르는 수소폭탄이었다. 미국의 핵전쟁계획에 따르면, 전시에 F-4 전폭기의 임무는 B61 열핵탄을 탑재하고 적진에 들어가 전략핵공습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B61 열핵탄의 폭발력은 무려 330킬로톤이나 된다. 만일 330킬로톤급 열핵탄 한 발이 터진다면, 1945년 8월 6일 피폭 당시의 히로시마(廣島)만한 도시 20개가 파괴되는 상상을 초월한 핵참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미국 군부는 그런 열핵탄으로 인민군 공군기지를 공습할 출격준비를 갖추라고 F-4 전폭기 조종사에게 명령한 것이다. 미국 군부가 공습목표로 정해준 인민군 공군기지는 함경북도 어랑에 있는 어랑공군기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인민군 전투기가 EC-121M을 격추하였기 때문에, 미국 군부는 그 곳을 공습목표로 정한 것이다. 북에는 지하요새화된 공군기지가 22개소 있는데, 어랑공군기지는 그 가운데 하나다.

지도를 펼치면, 어랑공군기지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청진시와 남쪽으로 92km 떨어진 김책시가 시야에 들어온다. 항만공업도시인 청진은 북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북에서 가장 큰 제철공장인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청진제강소가 있어서 ‘북방의 대야금기지’라고 불리는데, 1968년 당시 청진시 인구는 50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북방의 공업도시 김책시의 당시 인구는 15만 명에 이르렀다.

만일 공습에 나선 F-4 전폭기가 B61 열핵탄으로 어랑공군기지를 폭격하면, 그 공군기지만 파괴되는 게 아니라 청진시와 김책시도 핵폭풍과 방사능으로 파괴되어 65만 명 주민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것이다. 330킬로톤급 열핵탄이 폭발할 때 방출되는 거대한 핵폭풍과 방사능은 폭심지를 중심으로 반경 120km의 범위를 파괴하고,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살상한다. 그처럼 끔직스런 핵타격으로 청진시와 김책시의 주민 65만 명을 몰살시키려는 그들은 누가 보더라도 살인악마가 아닐 수 없었다.

1969년 4월 15일 당시 핵타격공습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던 전폭기 조종사 브루스 찰스가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2010년 7월 6일 미국 <전국공영라디오(NPR)>에 털어놓은 충격적인 회고담은 위와 같은 출격대기태세를 갖춘 장면에서 끝나지만, 같은 해 미국 정부가 기밀해제한 비밀문서들은 그의 출격대비 이후에 발생한 더욱 충격적인 사건을 밝혀주었다.

2010년에 기밀해제된 비밀문서들에 따르면, EC-121M이 격추된 때로부터 두 달이 지난 1969년 6월 중순 어느 날, 백악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 대책회의는 당시 대통령에 취임한지 다섯 달밖에 되지 않은 신임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국방장관 멜빈 레어드(Melvin Laird), 합참의장 얼 윌러(Earle Wheeler)가 정밀핵타격 작전계획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른바 ‘자유투하(Freedom Drop)’라는 작전명으로 작성된 그 작전계획은, 미국이 북의 EC-121M 격추에 보복하기 위해 북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정밀핵타격으로 파괴하려는 것이었다.

백악관 대책회의에서 그들이 검토한 정밀핵타격 계획은 세 가지였다. 제1타격계획은 0.2∼1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핵타격 미사일들을 발사하여 인민군 지휘소 한 곳, 공군기지 세 곳, 해군기지 두 곳, 미사일기지 여섯 곳을 파괴하려는 것이고, 제2타격계획은 10∼7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핵타격 미사일들을 발사하여 인민군 공군기지 16개소를 파괴하려는 것이고, 제3타격계획은 10∼7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핵타격 미사일들을 발사하여 북의 군사력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책회의에서 그들은 위에 열거한 식의 정밀핵타격을 감행할 경우, 북측 사망자는 “최소한 약 100명에서 많게는 수 천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미국 군부는 EC-121M이 격추된 직후에 전폭기를 동원한 전략핵타격 공습을 감행하려고 하였는데, 그 이후 새로 작성한 대북 핵타격 계획은 전략핵이 아니라 전술핵으로 이른바 외과수술식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69년 당시 북은 미국의 정밀핵타격을 막아낼 방어수단을 갖지 못했고, 미국 본토에 반격을 가할 보복수단도 갖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미국은 대북 핵타격을 행동에 옮기려고 획책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대북 핵타격 계획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기밀해제된 비밀문서들에 따르면, 만일 미국이 북의 군사거점들을 정밀핵타격으로 파괴하는 경우, 북이 즉각 전면전을 개시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대북 핵타격 계획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북의 전면전 능력을 두려워한 미국은 핵탄을 들고 북에게 덤벼들려고 하다가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미국이 1969년에 ‘자유 투하’라는 작전명의 대북 핵타격 준비태세에 돌입하였던 것과 올해 2013년에 ‘키 리졸브’라는 작전명의 대북 핵타격 연습을 감행한 것을 생각하면, 핵탄으로 북을 위협하며 핵타격 기회를 노리는 미국의 침략적 본성이 44년 전이나 오늘에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집필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선제핵타격을 노리는 북침전쟁 도발음모가 꾸며지고 있을지 모른다.

핵폭풍과 방사능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무참히 파괴하려는 미국의 잔인한 ‘핵우산’ 아래서 누가 감히 미국의 대남 ‘안보공약’을 떠들고 있는가? 미국의 핵타격 위협을 60년 동안 받아온 북에게 핵억지력을 갖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핵타격 위협 속에 살아가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북의 ‘강철지붕’ 뚫지 못한다

미국 군부는 ‘키 리졸브’ 북침전쟁연습에 2013년 3월 13일부터 핵추진 잠수함 한 척을 참가시켰다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3월 20일에 가서야 언론에 슬그머니 공개하였다. 이번에 한반도 근해에서 북침전쟁연습에 참가한 미국 해군 핵추진 잠수함은 샤이엔호(USS Cheyenne)다. 만재배수량이 6,927t인 샤이엔호는 선제타격수단인 토마호크(Tomahawk) 순항미사일을 12발 싣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무력침공하던 날 새벽, 이라크 전략거점들을 향해 불시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쏘면서 가장 먼저 선제타격을 개시한 것이 바로 샤이엔호였다. 미국군 태평양사령부 휘하에 핵추진 잠수함이 여러 척인데, 그 가운데서 하필이면 그런 침공경력이 있는 핵추진 잠수함을 이번 북침전쟁연습에 참가시킨 것은, 선제타격연습으로 북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싣고 한반도 근해에서 한가로이 유람하는 게 아니라 북침전쟁 선제타격을 노리는 것이다.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무력침공할 때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725발을 쏘며 선제타격을 감행하였고, 2011년 3월 19일 리비아를 무력침공할 때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24발을 쏘며 선제타격을 감행하였다.

2013년 3월 19일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을 이륙하여 대북 선제타격연습에 참가한 미국 공군의 B-52 전략핵폭격기가 한반도로 접근하는 동선(動線)은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반항공 레이더망에 즉각 탐지되지만,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동해 200m 수심에서 은밀히 잠항하는 것은 인민군이 탐지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미국 공군의 전략핵폭격기보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북에게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핵추진 잠수함도 인민군에게 치명적인 허점을 노출하기 마련이다.

첫째, 다른 나라와 달리, 북측은 미국 핵추진 잠수함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에 있다. 핵추진 잠수함이 남해에서 북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쏘기는 힘들고, 서해나 동해에 들어가서 쏠 수밖에 없다. 미국 해군 핵추진 잠수함이 비좁은 바다인 서해나 동해에 들어가서 북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쏘면, 그 미사일의 최대 강점인 1,700∼2,500km에 이르는 장거리 순항기능이 사실상 쓸모가 없게 될 뿐 아니라, 서해와 동해를 원격감시하는 인민군 반항공 레이더에 자기 위치를 노출하게 된다. 발사위치를 파악한 인민군 대잠헬기 편대와 구잠함(submarine chaser)이 핵추진 잠수함 작전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대잠어뢰를 집중발사하고 폭뢰를 집중투하하면 핵추진 잠수함을 격침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바다 상공에서는 위성항법(GPS)에 따라 유도비행을 하다가, 육지 상공에 들어서면 지형대조항법(TERCOM)으로 바꾸어 유도비행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민군이 강력한 방해전파를 바다 쪽으로 쏘면 위성항법에 따라 바다 상공을 날아오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비행 도중 바다에 추락하게 된다. 또한 육지 상공에서 지형대조항법에 따라 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은 사전에 입력된 지형영상정보에 따라 순항비행을 하면서 방해전파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형대조항법에 따른 유도비행은 사전에 정해진 비행경로로만 날아가야 하는 약점이 있다. 이를테면, 인민군 반항공 레이더가 탐지하기 힘든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비행경로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 입력해놓으면, 그 미사일은 반드시 그 경로로만 비행하는 것이다. 인민군 반항공 레이더를 피해 주요 군사전략거점들로 접근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비행경로를 인민군이 미리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민군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발사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날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비행경로에 지대공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음속 이하의 속도로 날아오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려는 것이다.

2013년 3월 20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인민군 포병부대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격추훈련을 지도하였고, 같은 날 미국 군부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 한 척이 한반도 근해에서 진행되는 북침전쟁연습에 참가하고 있음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런데 그 날은 미국군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725발을 쏘며 이라크를 무력침공하였던 날로부터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연한 시간적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

북측 보도기사에 따르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가정한 표적미사일이 훈련장 상공에 날아오자, 인민군 포병부대들이 쏜 지대공 미사일이 그 표적미사일을 “단방에 박산냈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에 나오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격추한 반항공 타격수단은 차량탑재 지대공 미사일 체계(vehicle-mounted SAM system)인데, 북에서는 자행고사로케트라고 부른다.

북측 보도사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행고사로케트는 수륙양용 무한궤도 장갑차량에 지대공 미사일 4기와 미사일추적레이더를 설치한 위력적인 무기다. 북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인민군 열병식에서 자행고사로케트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였다.

자행고사로케트의 특징은 발사차량이 시속 60km로 고속주행하다가, 강을 만나면 시속 6km로 도강한다는데 있다. 하천이 많은 한반도 지형에 적합한 무기다. 인민군이 보유한 자행고사로케트 발사차량은 러시아군이 보유한 스트렐라(Strela)-10과 겉모습이 비슷한데, 그처럼 겉모습이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 탑재된 지대공 미사일의 성능도 같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3년 3월 20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지도한 자행고사로케트 발사훈련장면을 촬영한 보도사진과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에 등장한 자행고사로케트 행진장면을 촬영한 보도사진을 비교하면, 지대공 미사일 발사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2년 태양절 열병식에 등장한 자행고사로케트 발사관이 2013년 발사훈련에 참가한 자행고사로케트 발사관보다 더 최신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인민군이 보유한 최신형 자행고사로케트 지대공 미사일이 러시아군이 보유한 스트렐라-10 지대공 미사일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인민군이 보유한 최신형 자행고사로케트 발사관에 들어있는 지대공 미사일은 고폭탄두를 탑재한 저고도-단거리 미사일인데, 그보다 한 급 낮은 스트렐라-10 지대공 미사일과 비교하면 사거리가 20km, 사고도가 10km, 비행속도가 마하 3으로 성능이 개량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수한 성능을 지닌 자행고사로케트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20km 밖에서 격추할 수 있다.

2012년을 기준으로 러시아군은 스트렐라-10을 350대나 실전배치하였는데, 인민군은 자행고사로케트를 얼마나 많이 실전배치하였을까? <연합뉴스> 2012년 3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대공 미사일 보유량을 종류에 따라 많게는 20배나 늘렸다고 하므로, 자행고사로케트 보유량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인민군 자행고사로케트는 지대공 미사일기지에 배치되지는 않지만, 지대공 미사일의 한 종류이므로 당연히 반항공무력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인민군의 지대공 미사일 보유수준에 대해 알아보면, 인민군의 자행고사로케트 보유수준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위성영상자료에서 찾아낸 인민군 지대공 미사일기지는 88개소이며, 반항공 레이더기지는 34개소다. 인공위성에 노출되지 않은 것까지 추가하면, 인민군 지대공 미사일기지는 실제로 100개소 정도가 될 것이고, 인민군 반항공 레이더기지는 실제로 50개소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위성영상자료에서 찾아낸 한국군 지대공 미사일기지가 37개소이고, 반항공 레이더기지가 17개소라는 사실을 보면, 인민군 반항공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6.25 전쟁 시기 미국의 대규모 공습에 맞서 싸운 북의 전쟁경험이 지난 60년 동안 그처럼 강력한 반항공무력을 건설하도록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민군 지대공 미사일기지가 약 100개소나 되고, 반항공 레이더기지가 약 50개소나 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강철지붕’이 북의 영공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의 영공을 지키는 거대한 ‘강철지붕’을 뚫을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습경보 방송은 선제타격 직전에 나온다

미국이 올해 ‘키 리졸브’ 북침전쟁연습 기간에 B-52 전략핵폭격기와 핵추진 잠수함 샤이엔호를 동원하여 대북 선제타격연습을 감행하였으므로, 북도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북침전쟁 선제타격연습을 하는데 북은 그에 대응해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반미대결전에서 북이 뒤로 밀리는 것이 된다. 북은 반미대결전에서 자기들이 뒤로 밀리는 것을 한 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고, 정전 이후 60년 동안 실제로 북의 반미대결전은 불패의 기록을 남겼다.

이번에 북의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이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아래와 같은 사실을 살펴보면 북이 미국의 북침전쟁 선제타격연습에 대응하여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을 실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3월 21일, 이 날은 한미연합군이 10일 동안 진행해온 ‘키 리졸브’ 북침전쟁연습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런데 그 날 오전 9시 30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공습경보를 발령하였다. 라디오방송국인 <조선중앙방송>에서는 “조선인민군 방송입니다”라고 방송주체를 밝히면서,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이 “각급 부대들과 단위들에서 적의 공중타격으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하겠습니다”고 알리는 긴급방송을 내보냈다. 공습경보를 알리는 긴급방송은 약 10분 동안 계속 반복되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공습경보가 이전 공습경보와 다른 방식으로 발령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유선방송(북에서는 ‘3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하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북에서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측 주민들이 항상 라디오를 켜놓고 청취하는 것이 아니므로, 유선방송이 라디오방송보다 전달효과가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왜 전달효과가 훨씬 적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한 것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 유선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하는 경우, 북의 유선방송을 엿듣지 못하는 한미연합군 감청부대는 북의 공습경보 발령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하면, 한미연합군 감청부대가 북의 공습경보 발령에 대해 금방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북이 이번에 이례적으로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한 것은 자기들의 공습경보 발령을 한미연합군에게 일부러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북은 왜 한미연합군에게 공습경보 발령을 알려준 것일까?

주목하는 것은, 실제 전쟁상황에서 북의 공습경보 발령이 한미연합군의 공습을 피하는 대피행동만이 아니라 인민군의 선제타격을 위한 긴급행동이라는 점이다.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지휘하는 통일대전은 미국의 ‘급소’를 불시에 찔러 제압하려는 선제타격으로 개시될 것으로 보이는데,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은 각급 타격부대들이 선제타격을 개시하기 직전에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유선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할 것이다. 이처럼 선제타격 직전에 공습경보를 발령하면, 조선인민군, 로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는 즉시 갱도진지에 들어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인민들은 지하대피소에 들어가 한미연합군의 대응타격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군이 통일대전을 개시하기 직전에 최고사령부가 공습경보를 발령하는 것은, 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이 10분 뒤에 선제타격을 개시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실상의 개전신호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에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공습경보를 발령한 순간, 인민군 선제타격부대들은 즉각 타격준비태세에 돌입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를테면, 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은 방사포와 중장거리포로 한미연합군 전방부대들을 조준하는 타격준비태세에 돌입했고, 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전술미사일와 무인타격기로 한미연합군기지들을 조준하는 타격준비태세에 돌입했고,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지역 미국군기지들을 조준하는 핵타격준비태세에 돌입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공습경보 발령은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의 일부였던 것이다. 북의 공습경보 발령을 대피훈련으로만 보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며,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의 일부로 보아야 실제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전처럼 유선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하였더라면, 한미연합군은 인민군이 통일대전연습에 돌입하며 선제타격준비태세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연합군의 선제타격연습에 대응하여 인민군도 선제타격연습을 실시한다는 사실을 한미연합군에게 즉각 알려주어 그들이 공포를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함으로써 인민군의 선제타격연습을 한미연합군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미연합군이 그런 긴박한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한미연합군이 인민군의 통일대전이 실제로 시작되는 게 아니냐고 직감하였다면 공포와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 날, 북에서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습경보가 발령된 때로부터 1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30분에 공습경보가 해제되었다는 라디오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대연평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대는 북에서 공습경보가 해제된 때로부터 1시간 45분이 지난 오전 11시 45분에 가서야 뒤늦게 전투태세에 돌입하였다. 한국군 연평부대가 실수로 확성기방송을 켜놓은 채 전투태세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전하는 바람에,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작전상황이 연평도 주민들에게 확성기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처럼 한국군은 인민군의 통일대전 선제타격연습이 끝난 때로부터 1시간 45분이 지난 뒤에 가서야 뒤늦게 허겁지겁 전투태세에 돌입하였으니, 실제 전쟁이 터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민군 선제타격부대들은 막강한 화력을 총동원한 기습적인 선제타격을 전 전선에 걸쳐 퍼부었을 것이며, 한미연합군 전략거점들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인민군이 지난 몇 달 동안 치열하게 실시해오던 통일대전연습을 2013년 3월 17일에 갑자기 평년의 동계훈련 수준으로 축소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한국군 국방부 대변인이 3월 18일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밝혀줌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 축소동향을 바라보면서, 인민군의 통일대전연습에 대한 한미연합군의 긴장감이 다소 풀렸을 것이다. 북은 통일대전연습을 축소한 때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에, 한미연합군이 예상하지 못한 선제타격연습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여 그들의 허를 찔렀다.

이번에 한미연합군의 허를 찌른 인민군은 자기들의 통일대전 선제타격에 대응하는 한미연합군의 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간파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군이 실제로 통일대전 선제타격을 개시할 때는, 한미연합군이 알아채지 못하게 유선방송을 통해 공습경보를 발령하고 즉각 선제타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3월 21일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미국은 전략폭격기 <B-52>가 리륙하는 괌도의 앤더슨 공군기지도, 핵동력 잠수함들이 발진하는 일본 본토와 오끼나와의 해군기지들도 우리 정밀타격수단들의 타격권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로골적인 핵공갈과 위협이 시작된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원쑤들이 핵으로 위협하면 그보다 더 강한 핵공격으로 맞설 것이라는 우리의 선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2013년 3월 2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