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국 진보정당 압살은 반복되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진보당의 평화통일강령과 미국의 대북테러강령

“조봉암 피고가 검찰당국에 구속되기 얼마 전, 미국첩보 관계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니코라스’ 중령이 오제도 검사에게 제공한 정보가 있었다. ‘니코라스’ 중령이 보내온 정보는 조봉암 피고가 국제공산계와 관계가 있다는 단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정보가 조봉암 피고의 간첩사건 처형에 관련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박태균 교수가 1995년에 쓴 책 ‘조봉암 연구’에 나오는 인용문이다.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밝히지는 못하였지만, 이 인용문은 진보당 사태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 중요한 단서는, 이승만 정권이 조봉암을 사형에 처하고 진보당을 강제해산하였던 진보당 사태가 ‘니코라스’라고 불리는 미국군 중령의 ‘제보’로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진보당 사태에 깊숙이 연관된, ‘니코라스’라고 불린 미국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진보당 사태에 왜 미국군이 연관되었을까?

‘니코라스’의 정체에 대해 박태균 교수는 <중앙일보> 1995년 6월 20일자 보도를 인용하여 이렇게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니코라스’의 실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단지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국과 토오꾜오의 유엔군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공군정보국 소속 ‘니콜스(Donald Nichols)’와 동일인으로 추측된다. 그는 이승만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로 대북 첩보공작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한국전쟁 이후에도 한국의 정치상황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17년 전 <중앙일보>가 보도기사에서 그처럼 모호하게 기술하였던 도널드 니콜스의 정체는, 2008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 ‘우리 아버지의 전쟁(My Father's War)’에서 드러났다. 이 책은 황하영이 남긴 기록을 그의 아들 황성이 정리하고 관련인물들의 증언으로 보완하고 풍부한 사진자료까지 곁들여 펴낸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정보에 따르면, 도널드 니콜스는 미국 제5공군사령부 예하 6006 항공정보군무대대(Air Intelligence Service Squadron) 지휘관이었다. 정전협정을 체결한 직후에 편성된 6006 항공정보군무대대는 북측에 침투하여 시설파괴, 무기탈취, 저격, 납치, 살해 같은 극악한 테러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대북테러군사조직이었다.

6.25 전쟁 전후로 대북첩보공작과 대북테러작전을 자행한 기관은 6006 항공정보군무대대 이외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미국 군부는 1949년에 주한미국군을 잠시 철군하는 척하면서 ‘한국연락소(Korean Liaison Office)’라는 대북테러조직을 서울에 남겨두었는데, 그 조직은 영어명칭 머릿글자를 따서 ‘케일로(KLO)부대’라고도 불렸다.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케일로부대’를 전시편제로 확충, 강화하면서 ‘극동사령부 연락분견대 8240(Far East Command Liaison Department Unit 8240)’으로 이름을 바꿨다. 더욱이 전쟁 중에 이 땅에서는 한국, 미국, 영국이 운영하는 각종 대북기관들이 난무하였다. 이를테면, ‘고등정보분견대(Higher Intelligence Detachment/HID)’는 한국 육군사령부 정보국이 운영하였고, ‘해군정보실(Office of Naval Intelligence/ONI)’은 한국 해군이 운영하였고, ‘DALD’는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였고, ‘한국합동자문위원회(Joint Advisory Commission, Korea/JACK)’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운영하였고, ‘케논(Kennon)’은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운영하였고, ‘NICK’은 영국 해병대가 운영하였고, ‘NEPARTA’는 영국 육군이 운영하였다.

정전협정 직후 미국이 도널드 니콜스를 지휘관으로 내세워 6006 항공정보군무대대을 창설하여 대북테러를 자행한 것은 그 협정에 대한 난폭한 파기행위였다. 니콜스의 정체가 서술된 책 ‘우리 아버지의 전쟁’에 따르면, 그는 현역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들 가운데서 적격자를 선발하여 집중훈련을 통해 테러범을 육성하였고, 테러범들이 대북테러작전에 성공하면 미국 정부로부터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미국에 유학까지 할 수 있다고 꼬드기면서 인민군 복장을 입힌 그들을 대북테러에 내몰았다.

위의 책에 서술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6.25 전쟁 전후로 북측에서 남측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고, 북측에서 배운 초보적인 러시아어만 조금 할 줄 알았던 한국인 대원들이 니콜스라는 미국식 이름을 니콜라스(Nikolas)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박태균 교수의 책에 들어 있는 인용문에 서술된 것처럼, 진보당 탄압에 앞장선 악질반공검사 오제도에게 조봉암에 관한 ‘비밀정보’를 제공하여 그를 구속하게 만든 바로 그 ‘니코라스’ 중령이 니콜라스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불렸던 니콜스 중령이었던 것이다. 원래 니콜스는 1948년에 미국 육군 정보국(CIC) 요원으로 서울에 와서 우리말은 물론 우리 문화, 지리, 역사, 문학 등을 배웠으므로 주한미국군 지휘관들 가운데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극소수 지휘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위의 책에 따르면, 니콜스가 지휘하는 대북테러조직 6006 항공정보군무대대 본부는 서울 오류동에 있었는데, 6.25 전쟁 중에 대북테러작전에 동원되었던 경력자들과 월남도주자(지금은 탈북자)들, 석방된 ‘반공포로’들, 남쪽으로 피난한 북측 주민들 가운데서 엄선한 ‘정예요원’들로 편성되었다. 니콜스는 대북테러작전으로 북측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흉계를 최전선에서 실행에 옮기는 대북테러군사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기에 반공광증에 사로잡혀 대북테러를 자행하며 북측 정권 전복을 노리고 있었던 미국의 시각으로 보면, 정전 이후 처음으로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하고 대중적 지지를 받기 시작한 진보당은 미국의 눈을 찌르는 ‘눈엣가시’였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았지만, 진보당의 평화통일강령과 미국의 대북테러강령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진보당을 계속 방치하면 평화통일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점차 더욱 강렬해질 것이고, 더욱이 진보당이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을 대선에서 꺾고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되면 자기들의 대북테러강령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였다.

그렇게 판단한 미국에게 진보당 파괴는 불가피한 조치로 되었다. 세계 진보정당사를 살펴보면, 미국이 다른 나라의 반미성향 진보정당들을 비밀공작으로 파괴한 사례가 드러나는데, 진보당이 바로 그런 사례에 속한다. 미국이 진보당을 파괴하는 방도는 그 당의 대표인 조봉암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대북테러범들을 동원하여 조봉암을 암살하는 것은 테러 배후조종자로서의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너무 컸으므로, 조봉암의 정적인 이승만을 앞에 내세워 그를 제거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미국의 조봉암 제거공작에는 이승만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니콜스가 적임자였다. 위의 책에 따르면, “이승만은 니콜스를 100% 지원해주었”고, 정전 직후 그에게 한국 공군 명예 대령계급을 수여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니콜스와 이승만이 밀착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박태균 교수의 책에 인용된 자료가 말해주는 것처럼, 니콜스가 반공검사로 악명 떨친 오제도에게 조봉암에 관한 ‘비밀정보’를 넘겨준 것은 미국의 조봉암 제거공작이라는 정치음모를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조봉암을 제거하고 진보당을 파괴한 이승만의 등뒤에서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던 배후조종자는 미국이었던 것이다.

작전계획 5029와 민주노동당의 평화통일강령

북측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 최대 시련을 겪고 있었던 1990년대 후반, 미국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경험을 되살려냈다. 그것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 도널드 니콜스를 현지 책임자로 내세워 추진하였던 대북테러작전이었다. 북측에서 전기공급이 끊겨 수많은 공장들이 동음을 멈추고 식량공급이 끊겨 수많은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였던 시련기에, 미국 군부의 머리 위에서는 니콜스의 테러망령이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개념계획 5029’라고 부르는 대북테러계획을 1990년대 후반에 작성하였고, 그것을 수정, 보완하여 마침내 ‘작전계획 5029’를 몇 해 뒤에 완성하였다. ‘작전계획 5029’는 대북테러로 급변사태를 일으켜 북측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전형적인 국가테러계획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그런 국가테러계획을 미국 언론에서는 정권교체(regime change)라는 외교용어로 바꿔 부른다. 리비아 정권전복사태와 시리아 테러사태는 미국이 국가테러계획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작전계획 5029’를 실행에 옮기는 대북테러군사조직인 주한미국군 특수작전사령부가 현재 대북침투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극비정보가 그 사령부 지휘관 닐 톨리(Neil Tolley)의 공식발언으로 미국 언론에 보도되었고, 게다가 미국이 탈북자들로 조직된 대북테러단체 ‘동까모’에게 운영자금과 무기조달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난 것은, 미국이 ‘작전계획 5029’라는 국가테러계획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처럼 대북테러와 북측 정권 전복을 노린 ‘작전계획 5029’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이 땅에서는 미국에게 예상치 못한 사변이 일어났다. 미국의 대북테러강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평화통일강령을 든 진보정당이 건설된 것이다.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진보당이 1956년 11월에 창당되었던 것처럼,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민주노동당이 2000년 1월에 창당되었다. 지난 시기 진보당은 반미성향을 드러낼 수 없는 엄혹한 시대환경에서 창당되었던 반면, 민주노동당은 반미자주화를 강령에 담았다. 미국의 대북관계 시야에서 바라보면,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반미성향의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것은 대북테러강령을 추진하는 미국에게 ‘도전’이었다.

그러나 ‘도전’의 대척점에 역사적 필연이 있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분단국가에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진보정치세력이 정당으로 조직화되고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인 것이다. 미국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바로 그 역사적 필연이다.

민주노동당을 주시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또 한 차례 놀라운 사변이 일어났으니, 그 사변은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당적 기반을 크게 확대한 통합진보당이 창당된 것이다. 1950년대 후반기에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진보당과 대북테러공작을 자행한 미국 사이에 모순관계가 조성된 것처럼, 2012년 현재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통합진보당과 대북테러공작을 자행하는 미국 사이에는 1950년대 후반기보다 더 날카로운 모순관계가 조성되었다.

더욱이 통합진보당은 창당 직후 실시된 총선에서 야권연대에 성공하여 제3당으로 부상하더니, 대선에서 야권연대전략을 추진하려는 준비태세를 취하였다. 1950년대 후반기에 진보당 창당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처럼, 2012년 현재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007년에는 이명박 당선, 2012년 미국의 목표는?

한국에서 대선이 실시될 때마다 미국이 기존 공작망을 총가동하면서 선거국면에 깊숙이 개입하여 선거판세를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컨대, ‘위킬릭스’가 폭로한, 2007년 대선기간에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93편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얼마나 치밀하게 전개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실시되는 대선은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실시되는 자유선거가 아니라,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으로 좌우되는 선거라고 말할 수 있다.

‘위킬릭스’가 폭로한 비밀전문 93편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2007년에 미국이 자행한 대선개입공작의 기본방향이 이명박 당선이었다면, 2012년 현재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대선개입공작의 기본방향은 새누리당 집권연장과 수구우파정권 재창출일 것이다.

그런데 제3당으로 부상한 통합진보당이 대선국면에서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는 경우,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평화통일강령을 제기한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 의한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정권의 한 축을 떠맡게 되는 경우, 앞으로 2013년부터 5년 동안 남북관계는 미국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급변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권 시기의 청와대가 미국의 ‘작전계획 5029’를 반대하면서 미국과 갈등을 빚은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정권은 미국의 대북테러강령을 무력화시킬 것이며, 그에 따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전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미국이 야권연대 차단공작에 나서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한국 사회 각 분야에 깔아놓은 공작망을 가동하여 야권연대 차단공작을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 통합진보당 내분사태가 터진 것이다. 내분사태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한 통합진보당에게 이 땅의 수구우파세력들은 일제히 ‘종북제거’를 외치며 집중공세를 퍼부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을 와해시킴으로써 야권연대전략까지 파탄시키려는 집요한 공세였다. 그 집요한 공세에 미국이 어떻게 개입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는 아직 찾을 수 없지만,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53년 전 미국이 대북테러작전을 은밀히 추진하는 가운데, 니콜스의 결정적인 제보로 조봉암을 구속한 이승만 정권은 대선 8개월 전인 1959년 7월 31일 사형집행으로 그를 제거하였다.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올해 미국이 대북테러작전을 은밀히 추진하는 가운데,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제거하려는 음해모략이 계속되고 있다. 53년 전 조봉암에게 이른바 ‘간첩죄’를 들씌운 수구우파세력은 오늘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에게 이른바 ‘종북죄’를 들씌웠고, 대선 4개월 전인 2012년 8월 21일 그 두 의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자격심사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땅에서 미국의 범죄사는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민중의 소리 2012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