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를 동맹관계로 착각한 새로나기특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치욕스런 날 2012년 6월 18일

2012년 6월 18일은 통합진보당에게 치욕스런 날이었다. 왜냐하면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새로나기특별위원회가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하는 일마다 무조건 비난해오던 수구언론매체들은, 그 날 새로나기특위가 발표한 ‘패권적 정파주의 청산과 노동가치 중심성 회복을 위한 새로나기 방향과 과제’(이하 발표문으로 약칭함)를 읽어보고 매우 이례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를테면 “현실인식이 돋보인다”느니, “패권과 종북을 넘는다”느니, “폐쇄진보를 벗고 대중진보로 나갔다”느니 하면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수구언론매체들은 통합진보당을 와해시키려는 악질적인 모략선동에 발벗고 나선 수구세력의 편에 언제나 서 있는데, 통합진보당이 그런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새로나기특위가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까닭은, 발표문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패권적 정파주의을 청산하고 노동가치 중심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수구언론매체들이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까닭은, 새로나기특위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가치를 혁신하고, 재정립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진보적 가치를 훼손하려는 태도를 취했다고 수구언론매체들이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발표문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가치 전반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을 전부 검토하는 것은 이 글의 지면제약으로 힘들기 때문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라는 소제목으로 서술한 부분만 다룬다. 발표문은 “주권국가에 외국의 군대가 상시 주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 시점에서 남북 간의 군사력의 측면에서는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미일상호방위조약에 없는 조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있다

미국이 자국군을 주둔시키면서 군사동맹조약을 맺은 조약체결대상은 필리핀, 한국, 대만, 일본밖에 없다. 체결순서대로 열거하면, 1951년 8월 30일에 체결된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1954년 12월 2일에 체결된 미국-대만상호방위조약, 1960년 1월 19일에 체결된 미일상호방위조약이다.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시기가 1950년대에 몰려있고 그 대상이 동북아시아에 몰려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1950년대는 맥카시즘 반공광풍에 휘말려 6.25전쟁을 벌이고 최악의 암흑기였다.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맥카시즘 반공광풍, 6.25전쟁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연속적인 사건들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은 극우반공주의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위에 열거한 상호방위조약들 가운데서, 미국-대만상호방위조약은 1980년 1월 1일에 자동폐기되었으므로, 지금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대상은 한국, 일본, 필리핀이다.

미국이 자국군을 주둔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은 아니다. 독일, 이탈리아, 터키, 태국에도 미국군이 상시 주둔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 나라들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국군이 주둔하면서 상호방위조약까지 맺은 한국, 일본, 필리핀은 미국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조약의 공식명칭을 상호방위조약이라고 일률적으로 정해놓는 바람에 각 조약들 간의 차별성이 은폐되고 말았지만, 조약의 차별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체결한 같은 종류의 상호방위조약이라 해도, 조약의 유효기간에 대한 규정에서 차별성이 드러나 보인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와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 제8조는 “본 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규정하였다. 국제관계에서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나라 관계가 영구불변이라는 말은 궤변이다. 조약이 무기한으로 유효하다는 궤변이야말로 제국주의국가가 약소국의 주권을 빼앗을 때 써먹는 전형적인 주권탈취수법이 아닌가. 예컨대 1910년 8월 22일 일제가 조선국의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병합조약’에 그런 영구성 조항이 들어있다. ‘병합조약’ 제1항은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조적으로, 미일상호방위조약 제10조는 “본 조약은, 일본 지역에서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충분한 유엔의 조치가 유효하다는 견해를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가질 때까지 유효하다”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유효기간의 제한적 규정은 미일상호방위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말해준다.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하지 않은 미일상호방위조약은 동맹조약이지만,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예속조약인 것이다.

미국군 영구배치권 규정한 유일무이한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지상군, 공군, 해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이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일상호방위조약과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에는 미국군 배치권 조항이 없다. 미국군 배치권을 규정한 조약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한미상호방위조약밖에 없다.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에 관한 조항과 미국군 배치권에 관한 조항을 연결하면, 조약의 핵심내용이 드러난다. 그 핵심내용은 미국군 배치권이 영구히 유효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오직 이 땅에서만 미국군을 영구히 배치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이 자국군대를 주둔시키는 여러 나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한국과 맺은 조약에서만 미국군 영구배치권을 명문화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동맹관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설명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1953년의 한반도 상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남측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두 달 전에 북측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한반도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떼어놓을 수 없는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교전쌍방이 종전에 이르지 못하고 적대행위를 정지시킨 협정이다. 종전에 이르지 못한 정전상태에서 한국의 군사주권은 미국에게 넘어갔으므로, 미국이 군사주권 없는 한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주권국가들 사이의 동맹조약과 동일한 지위의 조약을 맺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약의 국제법적 지위를 엄밀히 따져 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권국가인 미국이 주권을 상실한 한국과 비정상적으로 맺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약 아닌 조약이다. 다시 말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 세계 군사동맹조약 체결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영구히 보장하는 예속조약으로 체결된 것이다. 그런 예속조약에 의해 유지되는 한미관계야말로 주권국가들 사이에 형성되는 동맹관계가 아니라 종주국과 예속국 사이에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미국은 1953년 10월 1일에 한국을 상대로 예속조약을 체결하면서 그 조약의 명칭을 마치 동맹조약인 것처럼 ‘상호방위조약’으로 위장해놓았고, 더 중요하게는 1953년 이후 자기들의 한국지배정책을 교묘히 은폐해왔고, 이 땅에서 종미수구세력이 장기적으로 집권하면서 종주국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체질화해왔기 때문에, 한미관계를 동맹관계로 보는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나기특위는 엉뚱하게도 그런 착각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한반도 군사정세 거꾸로 읽은 새로나기특위

발표문은 “현 시점에서 남북 간의 군사력의 측면에서는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서술하였는데, 이것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오판한 것이다. 이 문장은 한국군 군사력이 인민군 군사력과 비등하므로 주한미국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서, 그 문장에는 주한미국군이 지난 시기에 한국군의 약한 군사력을 보완해주기 위해 주둔하였다고 보는 전제가 깔려있고, 그런데 지금은 한국군의 군사력이 이전보다 더 강화되어 인민군 군사력과 비등한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미국군 주둔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새로나기특위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서술하였는지 논거를 적시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은 한국군의 부족한 전투력을 메워주는 ‘보완전력’으로 주둔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한국군이 미국군 전쟁수행력의 일부를 메워주는 ‘보완전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전투종심이 매우 짧고 산악지형이 발달되어서, 드넓은 개활지 전투에 맞게 개발된 미국군 무기체계는 한반도 지상전에서는 성능제한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 군부는 자기들에게 불리한 지상전에는 한국군을 내보내고, 자기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해전과 공중전을 맡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군부는 한국군을 자기들이 기피하는 지상전의 ‘보완전력’으로 전선에 앞세워 놓은 것이다.

미국 군부는 불과 28,500명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국군만 가지고 인민군을 상대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미국 군부가 인민군을 상대하는 전력은 주한미국군에게는 없는 해군력이다.

미국은 주한미국군만으로 전쟁을 하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은 개전 초기에 인민군의 집중공격으로 궤멸되는 것이다. 순전히 전쟁전략으로만 판단하면, 미국군 28,500명을 이 땅에 고정배치한 것은 궤멸을 자초하는 바보짓이다. 이런 견해를 처음 접하고 이해하기 힘든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 동안 내가 발표해온 한반도 군사정세에 관한 여러 글들에서 주한미국군 궤멸의 불가피성을 논증하였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미국이 궤멸위험을 무릅쓰고 자국군 28,500명을 이 땅에 고정배치하는 까닭은, 그들을 고정배치해두어야 평시에 전쟁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에게 있어서 주한미국군의 존재가치는 전시 전쟁수행에 있는 게 아니라 평시의 전쟁준비에 있다. 이 땅에서 미국이 계속해온 평시의 전쟁준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전쟁을 위한 군사정보수집이다. 그래서 주한미국군은 다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군들에 비해 군사정보기능이 기형적으로 발달하였다.

미국 군부는 인민군의 군사시설동향과 부대이동상황을 24시간 정밀감시하는 정찰위성, 고공정찰기, 통신감청장비, 정찰병력 대북침투를 통해 얻은 정보자료를 분석하여 군사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 군부는 그런 대북정보를 한국군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읽고, 자기들끼리 작전계획을 작성한다. 군사정보가 없으면 작전계획을 세울 수 없고, 작전계획이 없으면 전쟁을 하지 못한다. 대북군사정보가 없는 한국군은 작전계획을 세울 수 없고, 작전계획이 없으니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한국군이 아무리 많은 미국산 첨단무기를 쥐고 있어도,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넘겨준다 해도, 미국의 군사정보와 작전계획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군은 단독으로 전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 군사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에 따라 작전계획도 작성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고공정찰기, 통신감청시설, 대북정찰부대가 다른 주한미국군 부대들과 함께 철수한 뒤에도 미국 정찰위성은 여전히 북측을 감시하겠지만, 위성사진자료만으로는 전쟁계획을 작성하지 못하고, 전쟁도발의지를 접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군이 대만에서 철군한 뒤에도 미국 정찰위성이 계속 중국을 감시하지만, 철군 이후 미국은 중국을 침략하는 전쟁계획을 작성하지 않는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는 까닭은, 전쟁을 위한 정보력 확보에 집착하면서 전쟁능력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한국군은 단독으로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 군부가 주한미국군 철군을 완강히 반대하는 까닭은, 철군으로 한국군의 전쟁수행력이 상실되는 것을 심히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침위험설’에 속지 말고, ‘균형자설’에 속지 말고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인민군이 전쟁수행력을 상실한 한국군을 얕잡아보고 남침하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철군을 반대하는 종미수구세력의 ‘남침위험설’에 속아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주한미국군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을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과정에 맞물려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란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관계 정상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정상화가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철군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관계 정상화란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이행하는 자주적 평화통일 국면에 불가역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철군 이후 북측이 남침할 것이라는 종미수구세력의 ‘남침위험설’은, 철군으로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자주적 평화통일 국면에 불가역적으로 진입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만일 북측에게 무력통일 이외에 다른 통일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경우, 인민군의 ‘남침’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철군은 모든 전쟁조건을 제거하고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철군과 ‘남침’을 결부시킨 주장은 궤변이다.

다른 한 편, 발표문에는 “동북아평화안보체제의 구축과정 그리고 그 이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귀기울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이 문장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국군의 역할이 철군 이후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역할’로 전환될 것이라는 이른바 ‘균형자설’을 언급한 것이다.

원래 ‘균형자설’은 미국이 안팎에서 조성될 철군압력을 피하기 위해 미리 조작해놓은 기만논리다.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 글의 지면제약상 피하지만, 새로나기특위가 그런 기만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꺼내놓은 것은 ‘균형자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의 노출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한미동맹은 동맹관계로 위장된 예속관계이고, 주한미국군은 전쟁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배치된 것이므로,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체제를 수립하는 과제는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여야 그 과제의 실현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균형자 역할’이나 들먹이며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철군압력을 회피하려는 기만발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민중의 소리 2012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