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더 꼬이나 아니면 차츰 풀리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미관계에서 대립과 충돌이 반복되는 이유

한반도 정세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변화되지만, 그 요인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북미관계다. 북미관계 변화는 북측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북미관계 변화 이외에 다른 그 어떤 요인도 한반도 전체에 그처럼 강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정세변화는 힘과 힘이 충돌하는 역학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북측의 국가역량과 미국의 국가역량이 충돌하는 북미관계가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기 때문에 그러하다. 국가역량은 여러 가지 역량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물리적 역량은 군사력이다. 군사력이 폭력적 양상으로 충돌하는 것이 전쟁인데, 전쟁은 정세를 가장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북측과 미국이 전쟁위기를 몇 차례 넘기며 대결과 충돌을 거듭해온 한반도 핵문제는 정세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요인인데, 그 두 나라는 한반도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또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의 필연성은 한반도 정세변화의 필연성과 일치한다.

한반도 정세를 전체적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쓰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이라는 말을 가장 포괄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지시하는 개념이 바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이다.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명시된 것은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것을 공약하였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이 가까워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미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고, 북미관계가 진전을 보는 듯하다가도 대립과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이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이 실현되지 못한 책임이 북측에게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미국은 자신이 9.19 공동성명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북측에게 떠넘기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그 내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북측은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대로 녕변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미국 사찰단이 불능화 현장을 검증하도록 공개하였으며, 핵물질 생산량에 관한 극비정보까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 통보하였다.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조건에서 북측의 그런 공약이행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공약이행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갔다.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측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는데,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란 정전상태를 마감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적대관계를 국제법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첫 조치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서 대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명백히 약속하였으면서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북측의 제안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한반도 정전상태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가는 북침전쟁연습을 계속하였다.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하였으면서도, 그 공약을 전면적으로 위반한 북침핵전쟁연습을 계속한 것이다. 이것은 공약불이행 수준을 넘어 공약파기를 자행한 것이다. ‘핵억지’라는 말로 자기들의 선제핵공격전략을 은폐하는 기만술책을 펴온 미국이 ‘핵억지’라는 종래 개념을 ‘확장된 핵억지’라는 개념으로 바꾼 것만 봐도, 그들이 자행한 공약파기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이 북미 양자회담 개최를 한사코 거부하고 공약을 파기해버리는 실로 험악한 상황에서 북측이 선택할 수 있는 방도는 하나 뿐이었다. 초강경한 대미압박공세로 미국의 공약파기를 저지하고, 미국을 9.19 공동성명 이행의 길로 끌어가는 것, 이것이 북측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북측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하핵실험을 두 차례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미국의 책임 떠넘기기 술책에 속은 사람들은 북측이 왜 자꾸 핵실험을 강행하여 위기를 조성하는가 하고 반발하지만, 미국의 공약파기와 북측의 핵실험이 어떻게 연관되었는가 하는 내막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위성발사 사전통보와 2.29 북미합의 채택

어떤 사람들은 북측의 위성발사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시험발사일지 모른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지만, 그런 의혹은 북측의 미사일전력에 대한 미국의 고의적인 과소평가만 듣고 상황을 오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짚어보면, 북측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고 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한 다음에 이전의 개발과정에서 축적해온 군사과학기술을 우주 개발에 전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군사과학기술강국들도 그런 경로를 밟아왔고, 북측도 그러하다.

더욱이 북측은 ‘선군정치’를 시행해오면서 민간과학기술 발전보다 군사과학기술 발전을 더 앞세웠는데, 그런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한 채 위성운반로켓부터 개발하였다거나 또는 우주 개발을 추진하는 척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식의 추론은 북측 내부사정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고 우주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북측은 북측에서 최대 경축일이었던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자체의 우주과학기술로 만든 첫 실용위성을 쏘아올리려고 하였다. 지구관측위성인 광명성 3호를 쏘아올린 배경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북측은 2012년 4월 경축기간에 지구관측위성을 쏘아올리겠다는 점을 2011년에 미국에게 미리 통보하였다. 만일 그런 통보도 하지 않고 갑자기 광명성 3호를 쏘아올릴 준비를 시작하면 미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전통보를 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북측이 평화적 우주과학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당연히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도 반대하지만, 2012년 4월의 특별한 경축기간에 진행할 평화적 위성발사까지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으므로 북측의 사전통보를 받고 나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이 북측으로부터 평화적 위성발사에 관한 사전통보를 받고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측과 미국이 2011년 7월 하순부터 2012년 2월 하순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북미고위급회담을 진행하고 마침내 2.29 북미합의까지 채택한 것에서 입증된다. 만일 미국이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관한 사전통보를 받고 반발하였다면, 2.29 북미합의 채택은 고사하고 북미고위급회담마저 일찌감치 결렬되었을 것이다.

북측은 평화적 위성발사에 관한 사전통보를 미국 정부당국에게 보내고서도 미국의 사회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조성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서해위성발사장과 광명성 3호 실물을 외국 전문가들과 취재진에게 공개하였을 뿐 아니라 위성관제종합지휘소까지 공개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북측은 첫 실용위성으로 제작한 광명성 3호를 2012년 4월 13일에 쏘아올렸으나, 은하 3호는 1단 추진체가 성공적으로 분리되고 나서 고도상승비행 도중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구궤도진입에 실패하였다.

북측이 미국에게 평화적 위성발사를 사전통보한 가운데 2.29 북미합의가 채택되었고, 북측이 위성발사에 관련된 시설들을 외부에 공개하였고, 광명성 3호가 지구궤도진입에 실패하였으므로 미국으로서는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를 트집잡고 대북강경조치를 취할 만한 명분도 실리도 없었다. 물론 미국이 북측의 위성발사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으므로, 반대의사나 몇 차례 밝히고 적당히 넘어가면서 북측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상책이었다.

미국은 왜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적대행동을 취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를 ‘미사일발사’라고 왜곡하더니 그 문제를 유엔안보리로 끌고가서 위성발사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여 상황을 악화시켰다. 공교롭게도 이번 유엔안보리 의장국은 미국이다.

2012년 4월 17일에 발표된 북측 외무성 성명은 미국의 그러한 행동을 “로골적인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2.29 북미합의가 미국의 적대행위로 파기되었으므로 북측도 “더 이상 (그 합의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응이 어렵사리 마련한 2.29 북미합의마저 파기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미국은 2.29 북미합의가 파기위험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대해 적대행동을 취한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상황판단에 어둡지 않으며, 특히 북측의 예상되는 대응행동에 매우 민감하다.

그렇다면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를 적당히 넘기는 것이 자국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미국은 왜 북측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적대행동을 취한 것일까? 당시 상황전개를 발생시간순서대로 배열하면, 4월 13일 북측이 광명성 3호를 쏘아올렸고, 같은 날 미국이 2.29 북미합의에서 약속한 대북식량제공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4월 15일 북측이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하였고, 4월 16일 북측의 위성발사를 규탄하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보면, 북측이 광명성 3호를 쏘아올린 직후에 미국이 2.29 북미합의에서 약속한 대북식량제공을 중단한다고 밝혔으므로, 미국이 2.29 북미합의 이행을 중단한 것이 북측의 광명성 3호 발사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민감한 문제의 내막을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북측이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한 4.15 열병식은 오랜 준비기간이 요구되는 행사였다. 열병식에 등장한 병력과 군사장비들은 하루 이틀 전에 열병식 현장에 도착한 게 아니라 오래 전에 평양 인근의 미림비행장에 집결하여 연습하였다. 언제 어디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싣고 이동하는 8축16륜 발사차량 6대가 4.15 열병식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갱도기지에서 나와 미림비행장으로 갔던 것은 분명하다. 해상도가 크게 떨어지는 상용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에서도 8축16륜 발사차량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는데, 해상도가 뛰어난 미국 정찰위성이 갱도기지 밖으로 나온 8축16륜 발사차량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북측은 8축16륜 발사차량을 은폐한 갱도기지 위치가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면서 그 차량들을 미림비행장까지 이동시켜야 하였다. 그래서 북측은 8축16륜 발사차량 6대가 갱도기지에서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미국 정찰위성의 공중감시를 교란시키기 위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2012년 4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인민군 잠수함 4척이 기동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위성정찰활동을 그 잠수함들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인민군 잠수함이 4척이나 한꺼번에 기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그것은 미국 정찰위성의 감시를 잠수함에 집중시킴으로써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이 은폐된 갱도기지 위치가 미국 정찰위성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교란작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잠수함 4척의 행방을 열심히 추적하던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차량 6대가 미림비행장에 도착한 것을 나중에 알고 허탈하였을 것이다.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차량 6대가 미림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정찰위성을 통해 파악한 미국은 북측에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북측이 사상 처음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미국의 심장부를 핵타격으로 파괴할 강력한 타격수단을 보유하였음을 실물로 입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2.29 북미합의 이행을 중단한 까닭은 북측이 지구관측위성을 쏘아올린 것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심장부를 핵타격으로 파괴할 절대무기를 공개한 것 때문이다.

미국은 모르고 있었을까?

미국은 북측의 전략로케트군 예하 부대들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작전배치되었다는 사실을 4.15 열병식 때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미국군 지휘부는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가 너무 엄청한 비중을 지닌 고급군사정보라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지 실제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에 배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들이 여러 갱도기지들에 분산배치된 뒤에 단 한 대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수는 없으므로, 미국 정찰위성은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이 갱도기지 밖에서 기동하는 모습을 포착하였을 것이다.

남측의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YTN>은 ‘대북 정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2012년 4월 14일 보도에서 북측이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4개월 동안 함경북도 무수단리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수평으로 눕혀놓고 추진제를 연소시키는 시험을 네 차례 실시하였다고 하면서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이름이 ‘KN-08’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4.15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를 공개하기 바로 하루 전인 4월 14일에 남측의 ‘대북 정보 소식통’이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YTN>에 전해주었다는 점이다. 그 보도가 전파를 타던 시각, 북측의 미림비행장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8축16륜 발사차량 6대가 참가한 가운데 인민군 열병식 최종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이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 자의적으로 붙인 별칭은 ‘KN-08’이다. 원래 미국은 북측의 미사일에 대해 ‘노동’이니 ‘대포동’이니 하는 식으로 자의적 별칭을 붙인 바 있었는데, 2003년 2월부터는 ‘KN 계열의 미사일’이라는 또 다른 자의적 별칭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2003년 2월부터 그처럼 자의적 별칭이 변경된 까닭은, 그 무렵 북측이 고체연료를 쓰는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붕> 2003년 2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은 북측이 동해위성발사장에서 고체연료를 쓰는 미사일 엔진분사시험을 실시한 흔적을 2003년 1월에 처음으로 포착하였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북측이 적어도 2003년부터 액체연료를 쓰는 미사일들을 고체연료를 쓰는 도로이동식 미사일들로 교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교체과정에서 액체연료를 쓰는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고체연료를 쓰는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교체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북측의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때는 2009년 10월이다. 제임스 카트라이트 당시 미국군 합참부의장은 2009년 10월 1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측이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몇 기(a certain number)를 보유하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4.15 열병식에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가 등장한 것은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교체되었음을 말해준다. 4.15 열병식에 등장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이름은 화성 13호다.

무용지물로 된 ‘확장된 핵억지’와 그 이후의 변화 가능성

미국군 지휘부는 북측이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교체하려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2015년 이후에나 교체가 가능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2011년 6월 21일에 발행된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에 로벗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의 대담기사가 실렸는데, 그는 대담기사에서 북측이 수직갱도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기 전에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미국군 지휘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북측은 2015년 이후에나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미국군 지휘부의 예상을 뒤엎고 2012년 4월 15일에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를 공개하였던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군 지휘부의 예상이 단지 예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4.15 열병식에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가 등장한 것으로 하여, 미국군 지휘부는 미사일방어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미사일방어계획을 중심으로 작성된 기존 군사전략을 수정한다는 뜻이다. 한반도 군사상황에 대응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말하면, ‘확장된 핵억지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확장된 핵억지’란 북측이 남측을 공격하면 미국이 북측에게 핵보복을 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선제핵공격능력으로 북측을 위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북측이 4.15 열병식에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를 공개함으로써 미국의 ‘확장된 핵억지’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다. 왜냐하면, 만일 미국이 북측에게 선제핵공격을 가해도 갱도기지에 은폐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거할 수 없으며, 북측이 미국의 대북핵공격 조짐을 포착하는 경우 북측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을 먼저 기습적으로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확장된 핵억지’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미국이 위태로운 정전상태를 마감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정세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음을 뜻하며, ‘확장된 핵억지의 인계철선’으로 존재해온 주한미국군을 철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북측과 미국은 북측의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세상에 공개되기 이전에도 2.29 북미합의를 채택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혀주었는데, 북측의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개로 미국의 ‘확장된 핵억지’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되었으니 한반도 정세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확실해진 것이다.

문제는 북미관계에 조성된 현재 분위기다. 미국은 대북식량제공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북측은 2.29 북미합의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서 북측과 미국이 2.29 북미합의를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대북식량제공을 중단한다고 말하였을 뿐이고 2.29 북미합의가 백지화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북측도 2.29 북미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고 하였지 그 합의가 백지화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과 미국은 2.29 북미합의 이행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지 그 합의 자체를 파기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얼마 지나면, 북측과 미국은 2.29 북미합의 이행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올 11월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으므로 어떤 급격한 정세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피하고 당분간 언행을 조심하면서 현상유지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북미관계에서 긴장이 완화되면서 2.29 북미합의 이행이 재개되기는 하겠지만, 그 이행범위가 획기적인 정세변화까지 미치지 못할 것임을 말해준다.

물론 북측이 어떤 예상치 못한 대미압박공세로 북미관계를 뒤흔드는 경우, 2.29 북미합의의 이행범위가 의외로 확장될 가능성은 있다. 지금으로서는 북측이 대미관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예상하기 힘들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개 이후 자극적인 언행을 자제하는 까닭은 북측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소리 2012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