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동-82531호 목선이 말해주는 사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3시간 동안 접적수역 항해한 조그만 목선

개머리라는 낯선 지명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때 남측 언론에 처음 나왔는데, 바로 그 개머리 지역에 부포라는 어촌이 있다.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에 나타난 부포는 이 나라 어느 바닷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작은 어촌이다. 어민들이 사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고기잡이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인다.

아침바다에 갈매기 소리도 상쾌한 2012년 8월 16일 이른 아침, 부포 포구를 떠나 바닷물살 가르며 항해하는 조그만 고기잡이배 한 척이 있었다. 10명 남짓 적은 인원이 타는 그 작은 목선에는 ㅁ-동-82531호라는 배이름이 적혀 있었다. 27마력짜리 발동기에서 통통거리는 동음을 울리며 포구를 떠난 그 목선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타고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작은 목선을 타고 찾아간 곳은 장재도와 무도였다.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먼저 장재도를 들른 뒤 무도에 들렀다.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위성영상자료에서 지구위치확인체계(GPS)로 거리를 측정하면, 부포 방파제 입구에서 장재도까지 직선거리는 7.6km, 장재도에서 무도까지 직선거리는 6.2km, 무도에서 부포까지 직선거리는 7.7km다. 그러므로 직선거리로만 따져봐도,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작은 목선을 타고 21.5km를 항해하였으니, 실제 항해거리는 30km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처럼 작은 목선의 일반적인 항해속도는 시속 10km 정도이므로,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작은 목선을 타고 약 3시간 동안 서해 접적수역을 오간 것이다.

그런데 적진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는 접적수역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탄 목선이 항해하고 있었던 3시간 동안, 미국군 공중정찰망은 다른 곳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대북전쟁연습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 개시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엄습한 접적수역에서 미국군 정찰위성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내려다보는 서해안 인민군 해군기지에서 군함을 타지 않고, 미국군 정찰위성이 감시하지 않는 어촌 포구에서 조그만 목선을 타고 나가 적진 바로 앞에서 3시간 동안이나 오가며 항해한 것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일이었다.

장재도와 무도는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섬이다. 특히 장재도는 무도보다 더 작은 섬이어서, 그 섬에 주둔하는 인민군 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에 나타난 장재도와 무도에는 섬 안에서 곳곳으로 통하는 섬방어대 교통호들이 뚫려있다.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자료에서 지구위치확인체계로 거리를 측정하면, 장재도 북쪽에 있는 인민군 섬방어대 지휘소에서 연평도 북쪽에 있는 한국군 해병대 포진지까지 직선거리는 7.7km이고, 무도 북쪽에 있는 인민군 방어대 지휘소에서 연평도 북쪽에 있는 한국군 해병대 포진지까지 직선거리는 12.7km다. 그런데 한국군 연평부대가 쏘는 155mm 자주포는 사거리가 40km이고, 105mm 곡사포는 사거리가 11km이므로, 장재도와 무도는 연평부대의 사격권 안에서도 아주 가까운 지척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실제로 장재도에 있는 인민군 해안포 감시소에서 연평도 쪽을 바라본, 북측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화면에는 연평도에 배치된 한국군 연평부대의 안테나도 보이고 군사시설들도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한국군 사격권 안에 있는 최전선 섬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인민군 지휘관 4명,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2명, 경호병력 4명만 대동하였다. 만일 더 많은 군지휘관들과 경호병력이 수행하였어도 작은 목선에 다 타지 못하였을 것이다.

8.16 섬방어대 시찰에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사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8.16 섬방어대 시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아래와 같다.

첫째, 8.16 섬방어대 시찰을 보도한 북측 텔레비전 방영화면에는 감격의 만세를 부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맞이하는 섬방어대 군인들의 열렬한 모습이 나온다. 그들이 감격에 겨워 환호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연출이 아니다. 너무 외진 곳에 떠 있는 작은 섬이고, 더욱이 적진의 포성이 수시로 들리는 위험지역이어서 일년 내내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최전선 섬방어대에 자기들이 마음 속에 그리는 최고영도자가 뜻밖에 예고도 없이 찾아왔으니 섬방어대 군인들이 느낀 놀라움과 기쁨이 오죽 컸겠는가. 섬방어대 군인들은 조그만 목선을 타고 자기들을 찾아온 최고사령관이 다시 목선을 타고 섬을 떠날 때, 허리 치는 바닷물에 뛰어들어 감격의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으며, 섬에서 멀어지는 뱃전에 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만세를 부르는 군인들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저어주었다.

무력충돌의 긴장감이 팽팽히 감도는 최전선에서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이 아무런 격식을 차리지 않고 해안포 병사들과 만나 그들을 노고를 알아주고 그들에게 격려와 보살핌을 안겨주는 극적인 장면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바라본 100만 인민군 장병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8.16 섬방어대 시찰 직후 북측 언론에 나온 인민군 장병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8.16 섬방어대 시찰의 극적인 장면을 바라본 인민군 장병들은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에게 더욱 굳은 충성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북측 외부에서는 거의 외면하거나 경시하고 있지만, 바로 그러한 최고사령관과 장병들의 사상정신적 결합이야말로 북측에서 ‘선군정치’의 중핵을 이루는 것이다. 북측 시야에서 보면, 8.16 섬방어대 시찰 같은 최고영도자의 현장정치활동에 의해서 ‘선군정치’가 더욱 심화되고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외부에서 북측의 ‘선군정치’를 무력증강정책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부분적인 이해다.

둘째, 8.16 섬방어대 시찰을 보도한 북측 텔레비전 방영화면에는 젊은 여성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달려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젊은 여성들은 섬방어대 군인 아내들이고, 그 아이들은 섬방어대 군인 자식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군인가족들인 것이다. ‘선군정치’를 시행하는 북측에서 군인가족은 사회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집단이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8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이들의 볼을 다정히 쓸어주시며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가도 물어주시면서 태여난지 6개월 된 정항명 어린이를 사랑의 한 품에 안아주시”고, “포성을 들으며 사회주의조국을 지키는 투사로 억세게 자라나고 있는 어린이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무력충돌위기가 감도는 때에 최전선을 시찰하는 긴박한 느낌이 아니라 마치 평화로운 시기에 후방에 있는 유치원을 방문하는 따사로운 느낌을 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사랑과 축복을 안겨주는 장면은, 적진이 지척에 있는 섬방어대의 긴장된 분위기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조적인 장면이다. 북측 시야에서 보면, 바로 그러한 극적인 대조가 8.16 섬방어대 시찰을 감동의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요소다. 만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섬방어대 군인들만 만나고 그들에게 격려와 보살핌을 안겨주는 예사로운 현지시찰을 하였더라면, 그 날의 섬방어대 시찰에서 북측 인민들이 느끼는 감동은 그처럼 절정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무력충돌위기의 긴장감이 감도는 최전선에서 아이들에게 사랑과 축복을 안겨주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장면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바라본 2,400만 북측 인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북측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선군혁명의 진두에 서 계시는” 자기들의 최고영도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끝까지 선군혁명의 길을 함께 가려는” 북측 인민들의 의지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이러한 인민적 의지의 강화현상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전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군대와 인민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현지시찰을 통해서 사회 전체를 최고영도자를 중심으로 결집시키고 단합시키는 강력한 통합정치를 시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측의 모든 가요와 시들이 ‘수령을 중심으로 화목한 사회주의 대가정’을 노래하고, 모든 언론의 논조와 예술의 주제가 그러한 ‘사회주의 전민통합’으로 집약되는 것은, 북측에서 통합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며, 전민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힘써왔는지를 말해준다. 8.16 섬방어대 시찰은 북측에서 ‘사회주의 전민통합’이 얼마나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포탄이 떨어졌던 자리에서 흐름을 멈춘 연평도 포격전의 시간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무도 섬방어대를 시찰하면서 감시소로 가는 길에 2년 전 연평도 포격전 당시 한국군 연평부대가 쏜 포탄이 떨어졌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살펴보면서, “연평도의 적들이 멸적의 불줄기가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고 무도에 무모한 포탄을 날렸다가 이곳 방어대 군인들이 치솟는 증오를 안고 퍼부은 백발백중의 명중포탄에 호되게 얻어맞았다”고 하면서, “그 날 한 명의 군인도 상하지 않고 적들에게 백두산 혁명강군의 총대맛을 보여준 방어대 군인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무도 방어대 1포에 영웅칭호를, 무도 방어대에 영웅방어대칭호를 수여할 것을 제의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무도 방어대를 그처럼 높이 평가한 것은 2010년 11월 23일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전을 회상하게 한다.

원래 연평도 포격전에서 인민군이 122mm 방사포를 발사한 포격원점은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 해안이었다. 무도 방어대에는 방사포가 없고 해안포만 있다. 연평도 포격전은 1차 공격과 2차 공격이 13분 간격을 두고 나뉘어 지속되었는데, 북측 관할수역으로 쏘는 한국군 연평부대 자주포의 포성을 하나둘 세고 있던 인민군은 한국군이 포탄을 재장전하기 위해 사격을 마치고 한숨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교란전파를 방사하는 것과 함께 개머리 해안에 배치한 122mm 방사포를 한국군 연평부대를 향해 기습적으로 발사하였다. 3축6륜 차량에 탑재된 사거리 30km의 122mm 방사포는 40발을 연속발사하는 위력적인 무기다.

<동아일보> 2010년 12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한국군 연평부대의 대포병레이더(AN/TPQ-37)가 “(인민군의 전파교란으로 오작동을 일으켜) 공격원점을 찾지 못하고 ‘먹통’이 되는 바람에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3문은 실제 공격원점인 개머리 진지 대신 무도 진지로 50발을 대응사격했다.”

처음에 무도 방어대는 해안포를 한 발도 쏘지 않았지만, 한국군 연평부대가 엉뚱하게도 무도를 향해 마구잡이로 자주포를 50발이나 쏘아대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포격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군 연평부대가 무도를 향해 쏜 포탄 50발 가운데 무도에 떨어진 포탄은 고작 15발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35발은 행방불명되었다.

행방불명된 35발은 무도에 있는 타격목표를 맞추기는커녕 무도도 맞추지 못하고 바다쪽으로 빗나갔다. 한국군 연평부대가 쏜 155mm 자주포의 사거리는 40km이고, 무도 북쪽에 있는 인민군 방어대 지휘소에서 연평도 북쪽에 있는 한국군 연평부대 포진지까지 직선거리는 12.7km인데, 사거리 40km짜리 자주포를 쏘아 12km 밖에 있는 큰 섬도 맞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선제기습포격을 받아 당황하였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군 연평부대의 사격실력이 너무 저조하지 않은가.

그러면 무도에 떨어진 포탄 15발은 어느 타격목표물을 맞추었을까? <연합뉴스> 2010년 1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연평부대가 쏜 “15발이 무도 안에 있는 해안포 부대(중대본부) 진지 안에 떨어졌다”고 하면서 “중대본부 내 15발이 떨어져 상당한 인명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런 추정은 실제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그 날 국정원이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바다에 인접한 쪽의 진지에 포탄 10발이 집중적으로 떨어졌으며, 나머지 5발의 흔적은 막사와 지원시설로 추정되는 건물 사이에 일렬로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한국군 연평부대로부터 포사격을 받은 인민군 무도 방어대는 76.2mm 해안포로 즉각 대응사격을 하였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무도 방어대가 쏜 76.2mm 포탄 12발은 연평도 면사무소, 보건소, 파출소에 명중하였고, 14발은 민간거주지에 떨어졌는데, 민간거주지에 떨어진 14발 가운데 해안도로 방벽에 떨어진 1발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에 명중하였다. 개머리 지역에서 쏜 방사포는 연평부대 주둔지와 군사시설을 조준한 것이었고, 그와 달리 무도에서 쏜 해안포는 연평도에 있는 관공서를 조준한 것이었다.

그 날 인민군 무도 방어대가 쏜 76.2mm 포탄은 화약과 분말 알루미늄을 혼합하여 폭발력을 높인 고폭탄(HE)이었다. 또한 타격목표에 부딪쳐 터지는 재래식 충격신관이 아니라, 타격목표 4~7m 앞에서 터져 파괴력을 높이는 근접신관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런 근접신관을 장착한 포탄은 전파를 쏴서 타격목표와 비행포탄 사이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측정하는 데, 연평도 주거지 허공에 널려있는 전깃줄들이 근접신관 전파를 간섭하는 바람에 근접신관이 오작동하여 터지지 않은 불발탄이 몇 발 있었다.

장재도 북쪽에 있는 인민군 방어대 지휘소에서 연평도 북쪽에 있는 한국군 연평부대 포진지까지 직선거리는 7.7km이고, 무도 북쪽에 있는 인민군 방어대 지휘소에서 연평도 북쪽에 있는 한국군 연평부대 포진지까지 직선거리는 12.7km다. 그런데 연평부대에 배치된 105mm 곡사포 사거리는 11km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 포탄은 무도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장재도까지만 날아간다. 그런데도 연평부대는 장재도를 향해 곡사포를 쏘지 않았고, 그에 상응하여 장재도 방어대도 연평도를 향해 해안포를 쏘지 않았다. 만일 연평도에서 가장 가까운 장재도 방어대까지 연평도를 향해 해안포를 쏘았더라면, 연평도는 치명적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북측의 모든 해안포 진지들이 그런 것처럼, 무도 방어대 포진지도 갱도화되었으므로 포격전이 개시되는 순간 무도 해안포병들은 모두 갱도로 뛰어들어 사격태세를 취했다. 그러므로 무도 방어대 앞마당에 떨어진 연평부대 포탄 5발은 앞마당에 조그만 구덩이를 다섯 군데 파놓은 것에 불과하였다. 북측에서 인명피해나 건물피해는 없었다. 개머리 지역에 떨어진 포탄도 논밭에 구덩이만 몇 개 파놓았을 뿐이다.

무도 방어대에 배치된 76.2mm 해안포는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 함선을 향해 쏘는 것이어서 사거리가 13km밖에 되지 않고, 무도 방어대 포진지에서 연평도 민간거주지까지 거리는 15km나 된다. 이것은 무도 방어대가 사거리를 2km 정도나 넘어선 사정권 밖의 타격목표를 향해 해안포를 쏘았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무포 방어대가 사정권 밖으로 해안포를 쏘았는데도 명중률이 뛰어났던 것이다. 바로 그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8.16 섬방어대 시찰 중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즉석에서 무도 방어대 제1포에 영웅칭호를, 무도 방어대에 영웅방어대칭호를 수여할 것을 제의한 것이다.

‘통일전쟁’ 총결사전 준비를 명령한 최고사령관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8.16 섬방어대 시찰 중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무도 방어대 군인들에게 “적들이 감히 서툰 불질을 해대며 우리의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고 지시하였고, “만약 침략자들이 전쟁을 강요한다면 서해를 적들의 최후무덤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이 또 다시 일어날 경우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을 벌여 한반도를 통일하라는 남진준비명령이고, 미국 제7함대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앞세우고 서해에 출동하여 북측을 공격하는 경우 제7함대를 수장해버리라는 격침준비명령이다.

2011년 1월 8일 북측에서 방영된 기록영화 ‘위대한 령장을 모시여 26’에는 북측 인민들 누구나 부르는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악보가 화면에 나오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악보 위에 쓴 활달한 필체를 읽을 수 있다. “전군이 이 노래를 어깨겯고 심장으로 더 높이 부르도록 합시다.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과의 총결사전에서도 전군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남진의 길을 가야 합니다. 김정은 2010.9.11”이라고 쓰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처럼 북측의 무력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한다는 ‘통일전쟁’ 총결사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인민군에게 내린 까닭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도, 한반도 전쟁위기의 원인과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이 땅의 대중들이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9.19 공동성명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되레 ‘작전계획 5029’로 북측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대북테러작전을 노리고 있고, 이명박 정권은 대북적대정책에 매달리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폐기하였다. 미국의 대북테러작전과 이명박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으로 ‘동까모’와 ‘5.24조치’가 생겨난 기막힌 현실 앞에서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져버렸으므로, 통일전쟁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 북측의 전략적 판단이다.

2012년 8월 20일부터 이 땅에서 미국군이 강행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이라는 대북전쟁연습은 북측을 통일전쟁 총결사전으로 떠미는 자극요인이 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작은 목선을 타고 접적수역을 항해하며 기상천외한 전선시찰을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사령관의 통일전쟁 총결사전 준비명령을 받은 인민군도 미국과 이명박 정권이 전쟁을 강요하는 경우 미국군의 정찰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비대칭전력으로 심장부 허점을 기습적으로 찔러 전신마비에 빠드리는 기상천외한 작전방식으로 통일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담력과 배짱으로 통일전쟁 총결사전을 개시할 결심을 하는 것이다.

2012년 1월 초 북측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방영된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성품과 관련하여 “그의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배짱이 센지 어떤 때에는 나도 탄복할 정도입니다. 신념과 의지에 있어서나 담력과 배짱에 있어서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고 말하였음을 전하는 해설대목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타고 서해 최전선으로 나아간 27마력짜리 작은 목선은, 원자로 2기와 초대형 증기터빈 4대로 움직이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의 침입을 꺾을 수 있다는 담력과 배짱의 상징으로 보인다. (자주민보 2012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