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독도방어전, 그리고 독도해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일본 함정 격퇴하고 승리한 1954년 독도방어전

1954년 7월 4일 새벽 안개 속에 잠긴 독도 앞바다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1,000t급 경비함 한 척이 해안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당시 독도는 홍순칠 수비대장이 이끄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일본 경비함에 맞서 싸울 중화기가 없었고, 무장이라고는 고작 경기관총과 소총 몇 정, 수류탄 몇 발 뿐이었다. 6.25 전쟁 직후 울릉도로 귀향한 제대군인들이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의용대를 조직하여 독도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사조로 나선 홍순칠 수비대장과 두 대원은 경기관총과 수류탄을 들고 전마선에 뛰어올랐다. 그 전마선은 수비대원들이 먹을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는 1t짜리 소형선박이었다.

경기관총과 수류탄을 든 3인의 결사조는 전마선을 몰고 일본 경비함을 향해 돌진하였다. 1t짜리 전마선과 1,000t급 경비함의 해상대결이었다. 전마선에 탄 결사조의 경기관총이 독도 영해를 침범한 일본 경비함에게 응징의 불을 뿜었고, 독도 해안에서 다른 수비대원들은 엄호사격을 퍼부었다. 결사조는 일본 경비함에 접근하여 집중사격을 하였으나, 총탄은 두꺼운 함체를 뚫지 못하였다.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고 놀란 일본 경비함은 대응사격도 하지 못한 채 선수를 홱 돌려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결사대가 탄 1t짜리 전마선은 일본 경비함이 달아나며 일으킨 거대한 파도에 떠밀리며 뒤집힐 뻔하였다. 1t짜리 전마선과 1,000t급 경비함의 해상대결은 전마선 결사조의 기습공격이 거둔 승리로 끝났다. 일본 경비함을 격퇴하고 제1차 독도방어전에서 승리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너무 감격하여 서로 부등켜안고 엉엉 울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이 눈물겨운 독도방어전 이야기는, 1976년 5월 신병치료를 위해 서울에 머물던 홍순칠 수비대장이 언론에 남긴 회고담이다.

독도를 강탈하려는 일본의 야욕은 집요하였다. 1954년 11월 21일 이른 아침 일본 해상보안청은 경비함 3척을 또 다시 독도로 내몰았다. 4개월 전에 있었던 해상대결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한 일본은 자기들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번에는 경비함 3척을 출동시킨 것이다.

독도를 향해 삼면에서 포위할 듯이 다가오는 일본 경비함들을 순찰하던 도중에 발견한 홍순칠 수비대장은 수비대 막사로 뛰어가 대원들에게 적들의 침입을 소리쳐 알렸다. 막사에서 뛰쳐나온 수비대원들은 박격포와 기관총을 들고 사격진지로 달려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4개월 전에 있었던 첫 방어전에서 일본 경비함을 격침시킬 중화기가 없어 안타까움을 느낀 홍순칠 수비대장은 그 사이에 대구에 있는 경북병사구 사령부와 경상북도 경찰국에 찾아가 발사대 없는, 사거리가 1.8km인 60mm 박격포 1문과 사거리가 2km인 12.7mm 소련제 기관포 1정을 많은 포탄과 함께 넘겨받았다. 6.25 전쟁 직후였던 1954년 당시에는 무기관리가 허술해서, 폐기처분될 노획무기를 구할 수 있었다. 홍순칠 수비대장의 회고담에 따르면, 독도에서 잡은 수컷 물개의 해구신을 담당관들에게 주고 중화기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일본 경비함들이 약 500m까지 접근하였을 때, 수비대장이 쏜 권총 한 발을 신호로 수비대원들은 일제사격을 개시하였다. 박격포탄 한 발이 일본 경비함에 명중하였고, 기관포 집중사격으로 다른 일본 경비함의 함교는 벌집이 되었다.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은 경비함들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황망히 달아났다. 그 날 정오 홍순칠 수비대장이 청취한 일본 NHK 라디오방송 긴급보도에 따르면, 독도의용수비대 기습공격을 받고 퇴각한 일본 경비함들에서 16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식수가 없어 빗물을 받아 먹으며 일본 경비함에 맞서 용감히 싸운 독도의용수비대는 두 차례에 걸친 독도방어전에서 연승하고 독도를 지켰다.

일본의 독도강탈 군사작전은 ‘작전계획 5029’의 일환이다

독도방어전이 있었던 때로부터 58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일본의 독도강탈야욕은 여전하다. 일본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지명)가 일본 영토”라는 도발적인 폭언을 내뱉는 수준을 넘어서 독도를 강탈하려는 도발적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그런 도발적 폭거는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계획적인 행동이다.

이 땅의 대중들은 일본이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도발적인 폭언을 반복하지만, 그들이 설마 독도에 쳐들어 오겠냐고 하면서 방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심은, 1954년 독도방어전의 역사적 경험을 망각한 오판이며, 일본이 속에 감추고 있는 흉계를 알지 못하는 착오다.

1954년 독도방어전 당시 일본은 해상보안청 경비함을 독도침범에 내몰았지만, 지금은 해상보안청이 아니라 자위대가 ‘독도강탈 군사전략’을 세워놓고 실전연습을 통해 그 전략을 수정, 보완해오며 독도상륙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일본 자위대가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를 점령하려는 독도강탈전쟁을 실제로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일본 자위대의 독도상륙이 소설적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70년 3월 23일 <마이니치신붕>에 실린 보도기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기사를 요약하면, 일본 자위대는 “조선반도 유사시에 조선반도의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과 쓰시마해협(대한해협의 일본식 명칭-옮긴이)을 봉쇄한다는 것, 북조선이 한국을 선제공격할 경우에 조선전쟁에 참전한다는 것, 조선반도 유사시에 미군이 조선반도에서 작전하는 경우, 그리고 재한일본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조선반도에 상륙한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에 나와있는 것처럼,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고 한반도 해상을 봉쇄한다는 말은 독도를 완전히 강탈한다는 뜻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동해안을 봉쇄하려면 우선 독도부터 점령하여야 하기 때문에,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해상봉쇄가 독도강탈로부터 시작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일본은 이미 1905년에 러시아와 동해에서 전쟁을 벌이기 위해 독도를 강탈한 전과범이 아닌가.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라는 말을 쓰고, 미국군은 한반도 급변사태라는 말을 쓰는 데, 그 두 말은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해상봉쇄는 미국군이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유발하여 한반도 전쟁을 도발하려는 ‘작전계획(Operation Plan) 5029’의 일환인 것이다. 미국군의 북침전쟁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해상봉쇄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작전계획 5029’에서 일본 자위대가 맡을 주요작전임무는 한반도 해상봉쇄인 것이다. 일본 자위대가 지난 5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연습해온 것이 바로 한반도 해상봉쇄이고, 한반도 동해안을 봉쇄하기 위한 독도강탈 군사작전이었다.

이 땅의 대중들이 일본의 독도강탈야욕에 분노하는 반일감정을 표출하면서도, 정작 일본의 독도강탈을 보장하는 미국의 ‘한반도 급변사태’ 도발책동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 것은 인식혼동이다. 이 땅의 대중들이 일본의 독도강탈야욕에 분노하는 것만큼, 아니 그 보다 더 강렬하게 미국의 ‘한반도 급변사태’ 도발책동에 분노하여야 정상인 것이다. 미일동맹군이 한통속으로 공모결탁하여 전쟁위험을 조성하고 있으므로, 한반도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독도를 수호하려는 이 땅의 대중들에게 반일운동과 반미운동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운동이다.

14년 동안 독도상륙전 준비해온 일본 자위대

1994년 7월 북측 최고영도자가 서거한 직후, 북측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오판한 미국과 일본은 북측의 혼란을 변란으로 증폭시켜 북측 정권을 무너뜨리는 이른바 ‘급변사태’를 상상하였다. 그런 오판에 따라 도발적인 무력침공작전을 준비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이 ‘한반도 급변사태’를 구실로 북침전쟁을 도발하여 인민군 대량파괴무기(WMD)를 탈취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개념계획(Concept Plan) 5029’의 비밀스러운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 8월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존 틸럴리(John H. Tilelli)가 그런 전쟁계획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발언을 통해서였지만, 이미 1994년 7월 이후 미국은 ‘개념계획 5029’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미국 군부가 1994년에 ‘개념계획 5029’이라는 비밀전쟁계획을 작성한 것과 보조를 맞춰, 일본 방위청(당시 명칭)과 자위대 통합막료감부도 1994년에 ‘K-반도 사태 대처계획’이라는 비밀전쟁계획을 작성하였다. 그 비밀전쟁계획의 개략적인 내용은 일본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03년 2월호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바 있는데, 인민군과 일본 자위대가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개념계획 5029’와 일본의 ‘K-반도 사태 대처계획’의 상호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자가 본계획이고 후자는 부속계획이다.

놀랍게도, 일본은 ‘K-반도 사태 대처계획’을 작성한 1994년부터 해마다 한 두 차례씩 독도 영해를 침범하기 시작하였다. 한일 두 정부의 정보은폐로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이 1994년부터 연례적으로 독도 영해 침범을 계속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준 문서는, 폭로전문 누리집 ‘위킬릭스(Wikileaks)’에 게시된, 주일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Joseph Y. Yun)이 작성하여 2006년 9월 13일 본국에 보낸 3급 비밀전문 㰡한국-일본, 한 차례 해저조사에 합의(KOREA-JAPAN ONE-TIME AGREEMENT ON SEABED SURVEY)㰡‘였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일본은 1994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씩 해양조사 명목으로 독도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것이다.

독도 영해를 침범해오던 일본 정부는 1998년 4월에 이른바 ‘주변사태법’, ‘자위대법 개정안’, ‘미일물품역무 상호제공협정’을 일본 국회에 상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법률제정은 ‘K-반도 사태 대처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법률적 정비’를 갖춘 것이었다.

이처럼 일본은 ‘K-반도 사태 대처계획’이라는 이름의 비밀전쟁계획을 작성하고, 그와 관련된 법률적 정비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실전급 전쟁연습을 벌였다. 1998년 11월 15일 일본 육해공 자위대가 이오지마(硫黃島)에서 병력 2,400명, 군함 11척, E2C 조기경보기 등 작전기 20대를 동원하여 3군합동상륙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이오지마 3군합동상륙훈련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53년만에 처음으로 실시한 3군합동상륙훈련이다. 당시 자위대 통합막료감부는 “어느 나라가 점령하고 있는 일본해(동해의 일본식 명칭-옮긴이)의 한 섬을 탈환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합동상륙훈련을 실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일본 자위대가 독도강탈 군사작전을 실전급 규모로 연습하였음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일본 자위대는 2000년대에 들어와 독도상륙전 준비를 계속하였다. 2004년 12월 서울 용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 청사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작전계획 5029’ 보완작업을 2005년 안에 끝내기로 하고 그 보완작업에 관한 중간평가를 하였는데, 그러한 미국 군부의 북침전쟁계획 작성에 발맞추어 일본 방위성도 2005년부터 ‘방위백서’에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도발적 내용을 집어넣었다. 일본 외무성이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도발적 주장을 늘어놓는 차원에서 한 술 더 떠서 일본 방위성이 그런 도발적 주장을 늘어놓은 것은, 일본이 외교부문에서만이 아니라 군사부문에서도 독도강탈책동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2006년 4월 17일에 해상보안청 측량선을 독도 앞바다에 보내 해양탐사를 하겠다는 구실을 내건 일본은, 측량선을 보내기 직전에 첩보선과 초계기를 독도 인근 해상으로 먼저 보내 한국 해양경찰청 경비동향을 살폈다. 그에 대응하여 한국 해양경찰청 경비함 18척이 독도로 급파되어 쌍방이 해상대치를 벌였다.

2008년 3월 26일 일본 자위대는 육상자위대 예하에 즉응집단군을 창설하였다. 즉응집단군은 헬기 구축함에서 이륙하는 강습헬기를 타고 적진에 침투하는 특수기동부대다. 독도에는 상륙함정이 아니라 강습헬기를 타고 상륙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즉응집단군의 강습헬기 침투대상이 독도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처럼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4년 동안 일본 자위대가 추진해온 독도상륙전 준비는 즉응집단군 창설로 완료되었다.

독도해전 가상시나리오

일본 자위대가 독도상륙전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해서, 곧바로 독도에 쳐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독도 앞바다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을 빌미로 독도강탈 군사작전에 돌입할 것이다. 독도 앞바다에서 일어날 충돌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가상시나리오를 논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바라는 북측의 정권 붕괴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과 일본이 바라지 않는 남측의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될 가능성은 있다. 남측에서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는 정치세력이 결집하여 이미 2000년에 진보정당을 건설하였고, 그 진보정당은 12년 만에 제3당으로 부상하였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제3당으로 부상하자마자 내홍과 외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고비를 넘기고 정상화될 것이며,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한미관계와 한일관계를 중심에 놓고 정세발전추세를 전망하면, 남측에서 장차 실현될 진보적 정권교체는, 뼛속까지 친미적이고 친일적인 예속적 수구정권이 반미정책과 반일정책을 추진하는 자주적 진보정권으로 교체된다는 뜻이다. 물론 남측에서 반미정책과 반일정책을 추진하는 자주적 진보정권이 앞으로 몇 해 안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정치 시각에서 정세발전추세를 전망하면 예속적 수구정권의 퇴장과 자주적 진보정권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국군이 단계적으로 철군하는 정세격변 속에서 등장할 자주적 진보정권은 당연히 독도수호정책을 밀고 나갈 것이다. 이것은 한일관계에서 미증유의 대결분위기를 촉발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남측에서는 각계각층 대중들이 격렬한 반일시위를 벌이고, 일본에서는 극우세력이 격렬한 반한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일본 극우세력의 ‘다케시마 상륙선단’이 독도 영해를 침범하게 된다. 그들을 저지하는 한국 해양경찰청 경비함들이 일본 해상보안청 경비함들과 충돌하여 쌍방에 많은 사상자가 나고, 그로써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정면충돌로 치닫게 된다.

극도로 험악한 분위기에서 주일한국대사관과 주한일본대사관은 각각 폐쇄되고, 불안에 떠는 재일동포들이 남측으로 급거귀환하고 주한일본인들이 일본으로 집단대피하는 가운데, 일본 기동함대가 독도로 출동하게 된다. 마이즈루(舞鶴)항을 근거지로 삼고 동해 작전을 담당한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 함대가 독도를 기습하는 것이다. 이지스구축함 2척, 강습헬기 탑재 구축함 1척, 구축함 5척으로 편성된 제3호위대군은 일본 해상자위대 중에서도 최정예 기동함대다. 일본 기동함대가 독도를 포위한 가운데, 강습헬기를 동원한 즉응집단군이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 경비병력을 제압하고 독도를 점령한다.

동해항을 근거지로 삼고 동해 작전을 담당한 한국 해군 제1함대가 독도를 탈환하기 위해 긴급출동하지만, 진해항을 근거지로 삼고 남해 작전을 담당한 한국 해군 제3함대는 일본 잠수함대가 대한해협을 봉쇄하는 바람에 증원군을 독도에 보내지 못하고 남해에서 대치상태에 들어간다.

<연합뉴스> 2012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 초로 예정된 독도수호전 연습에 투입되는 한국 해군 제1함대는 3,200t급 구축함 1척, 1,800t급 호위함 1척, 1,200t급 잠수함 1척, 3,000t급 해경 경비함 1척이다. 그런데 제1함대의 호위함이나 해경의 경비함은 일본 기동함대에 맞설 전투력이 없으므로, 한국 해군은 구축함 1척과 잠수함 1척으로 맞서야 한다. 무장력에서 그처럼 열세인 한국 해군 제1함대는 일본 기동함대에게 상대가 되지 않지만, 일본에게 강탈당한 독도를 탈환하려는 결사각오를 안고 독도해전에 나서는 것이다. 쌍방 함대의 함대공 미사일을 우려한 쌍방의 전투기는 독도해전에 참가하지 못한다.

2005년 3월 한국해양전략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독도해전이 벌어지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한국 해군이 패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제1함대의 무장력이 일본 기동함대에 비해 크게 열세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요인은 일본과 한통속인 미국이 한국군에게 제공해오던 군사정보를 차단해버리는 바람에 제1함대는 동해 해상작전에 관한 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독도해전에 나서게 된다는 점이다.

독도를 탈환하려는 결사각오를 갖고 출전한 제1함대는 일본 기동함대에 맞서 사투를 벌였으나 모두 격침당하고, 잠수함 1척만 살아남아 악전고투하며 일본 구축함 4척을 격침하는 기적적인 전과를 올렸는데, 결국 533mm 어뢰 24발을 모두 쏘고 나서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로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정체불명의 잠수함대가 일본 함대의 배후에 맹렬한 어뢰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독도해전 전황을 듣고 동해의 지하잠수함기지에서 긴급출동한 인민군 잠수함대였다. 몇 척인지 알 수 없는 인민군 잠수함대가 집중발사한 어뢰에 맞은 일본 기동함대는 거대한 물기둥을 일으키며 모조리 격침되었고, 독도에 상륙한 일본 즉응집단군 병력은 강습헬기 구축함마저 격침되는 바람에 전원 포로로 붙잡혔다.

즉응집단군 포로를 송환받는 대신에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영구히 주장하지 않는다는 항복각서를 써야 하였다. 독도해전에서 승리하고 독도를 탈환하고 일본의 항복각서까지 받아내어 한반도 전역이 전승의 환희로 들끓던 날, 자주적 진보정권은 한국군과 인민군이 외세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공동방어할 민족연합군을 창설하기로 북측과 합의하였다. (자주민보 2012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