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17일 미국은 ‘이중족쇄’를 채웠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비밀전문 폭로로 세상에 드러난 미사일 관련정보

폭로 전문 누리집 ‘위킬릭스(Wikileaks)’에 게시된,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Joseph Yun)이 작성하여 2009년 3월 13일 본국에 보낸 2급 비밀전문 ‘미사일체계생산에 관한 한국의 통보(ROK NOTIFICATION OF MISSILE SYSTEM PRODUCTION)’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9년 3월 12일 조셉 윤이 외교통상부 한미안보협력국 부국장으로부터 미사일 생산에 관한 통보자료를 전달받았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남측이 통보자료에서 미국에 넘겨준 남측의 미사일 생산에 관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통보는 새로운 미사일지침 3항 (a)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미사일 명칭은 NHK-ll PIP다.

셋째, 위의 미사일을 최종적으로 생산하고 조립하는 공장은 대전에 있는 (주)한화(HANWHA Corporation)다.

넷째, 위의 미사일은 2009회계연도에 15기, 2010회계연도에 17기, 2011회계연도에 19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2005년 6월 미국에게 기술자료를 통보한 바 있는 NHK-II PIP 블록(block)-A 미사일의 첫 생산은 이미 완료되었다. NHK-II PIP 블록-B 미사일은 아직 개발 중이므로, 이 미사일의 생산일정은 생산이 개시되는 대로 미국에게 통보할 것이다.

위에 인용한 내용은 남측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군사기밀인데, 주한미국대사관 비밀문건이 ‘위킬릭스’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됨으로서 남측의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이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 내막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남측이 NHK-ll PIP라는 탄도미사일을 2009회계연도부터 생산한다는 것인데, 남측의 회계연도는 1월 1일에 시작하여 12월 31일에 끝나는 데 비해, 미국의 회계연도(fiscal year)는 10월 1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9월 30일에 끝난다. 위의 비밀전문에서 남측이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을 2009년 3월 12일 미국에 통보한 문건에서 2009회계연도 연간생산량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위의 비밀전문에 나오는 회계연도는 남측의 회계연도가 아니라 미국의 회계연도인 것이다. 이것은 남측 정부가 미사일 생산일정을 통보할 때 미국 정부의 회계연도에 맞춰 통보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그야말로 ‘종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남측은 NHK-ll PIP라는 탄도미사일을 2009년 10월 1일부터 1년 동안 15기를 생산하고, 2010년 10월 1일부터 1년 동안 17기를 생산하고, 2011년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1년 동안 19기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마다 2기씩 늘어나는 증산추세를 생각하면, 2012년 7월 현재 이 탄도미사일이 약 60기 생산된 것으로 추산된다.

셋째, 위의 비밀전문에 나오는 NHK-ll PIP라는 미사일은 어떤 미사일일까? <월간조선> 2011년 3월호에 실린 보도기사에 따르면, 남측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2007년에 개발을 시작한 사거리 500km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2B가 있는데, 2009년 말부터 이 탄도미사일을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에 작전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와 위의 비밀전문을 대조해보면, NHK-ll PIP가 현무-2B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남측이 “2005년 6월에 미국에게 기술자료를 통보한 바 있는 NHK-II PIP 블록-A 미사일의 첫 생산은 이미 완료되었다”는 대목이 위의 비밀전문에 있는데, 이미 양산과정에 들어간 NHK-ll PIP 블록-A라는 미사일은 사거리 500km의 현무-3A 순항미사일인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위의 비밀전문에서 2009년 3월 현재 개발 중이라고 서술한 NHK-II PIP 블록-B 미사일은 사거리 1,000km의 순항미사일 현무-3B인 것으로 보인다. <월간조선> 2011년 3월호는 한국군이 2010년 중반에 사거리 1,500km의 순항미사일 현무-3C 개발을 끝내고 작전배치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위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9년 3월 현재 한국군은 현무-3C보다 한 급 아래인 현무-3B 순항미사일을 아직 개발 중이었다. 그런데도 <월간조선>은 현무-3B는 물론이고 현무-3C도 개발이 완료된 것처럼 과장보도를 하였다.

국방장관 편지 한 장으로 미국에 넘어간 미사일 주권

어느 나라에서나 자국산 미사일에 관한 정보는 군사기밀로 되어 있는데, 위의 비밀전문을 읽어보면 남측이 미국에게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을 지속적으로 넘겨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식을 배반하는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측이 그처럼 미국에게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이 남측의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을 자기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해놓은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s)이 있기 때문이다.

남측이 미사일 관련 군사기밀을 미국에게 넘겨주도록 강제하는 미사일지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측 언론에서는 미사일협정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쓰곤 하였는데, 관련정보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제는 미사일지침이라는 정확한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사일지침은 미국과 남측이 대등하게 체결한 협정이 아니라, 명칭 그대로 미국이 남측에게 일방적으로 내려먹인 지침이다.

원래 미사일지침은 1979년 7월 존 위컴(John A. Wickham)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에게 보낸 편지 한 장으로 조작된 것이다. 위컴의 편지를 통해, 미국은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개발 중이던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180km로 제한하고 탄두무게를 500kg으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보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979년 9월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은 위컴에게 보낸 답장에서 남측이 미국의 미사일지침에 따르겠노라고 약속하였다. 1950년 7월 14일 당시 미국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에게 보낸 이승만의 편지 한 장으로 한국군 작전통제권(그 편지에서는 작전지휘권이라는 용어를 썼음)이 미국에게 통째로 넘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1979년 9월에는 위컴에게 보낸 노재현의 편지 한 장으로 한국군 미사일 주권이 미국에게 통째로 넘어갔다. 지난 시기 을사오적은 나라의 주권을 일제에게 넘겨줄 때 회의하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이승만과 노재현은 회의하는 시늉도 하지 않고 그냥 편지 한 장으로 주권을 미국에게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남측의 미사일 주권을 미국에게 넘겨준 미사일지침은 왜 1979년에 나왔던 것일까? 당시 국내외 정세가 극도로 불리해지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1970년대 초반에 NHK-l이라는 이름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개발사업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산 탄도미사일 나이키-허큘리스(Nike-Hercules) 로켓엔진을 역설계하여 모방제작하였고, 다른 핵심부품들도 자체로 만들지 못해서 수입하여야 하였다. 이를테면, 추진제로 쓰는 고체연료는 미국에서 수입했고, 관성항법장치는 영국에서 수입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미사일 시제품을 1978년에 시험발사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사거리 180km의 탄도미사일 현무-1이다. 이처럼 1978년에 남측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남측의 미사일 개발사업을 요람기에 장악, 통제하기 위해 미사일지침을 주둔군사령관의 편지 한 장으로 확정해버린 것이다. 남측이 주둔군사령관의 편지 한 장에 굴복하여 미사일 주권을 넘겨준 미사일지침은 그 내용이 너무 황당하고 충격적이어서 차마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 동안 남측 언론에 간간이 보도된 단편정보를 모아보면 아래와 같은 숨겨진 사실이 드러난다.

미사일지침에 따르면, 남측이 만드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180km로 제한되었고, 탄두무게는 500kg으로 제한되었다. 순항미사일을 만드는 경우에도 사거리는 무제한으로 허용되었지만, 탄두무게는 500kg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미사일지침은 남측이 고체연료를 추진제로 사용하는 것도 통제하고 있는데, 발사단계에서 480t 이상의 추력을 내는 고체연료 로켓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그 날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유도탄사령관 정인구 소장은 김학송 의원이 “크루즈(순항)미사일은 우리가 개발해도 연료가 액체인가, 고체인가?”고 물었을 때, 액체연료라고 답변하였고, 김학송 의원이 “우리가 발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고 말하자 “액체이지만 충전돼 있다. 발사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미사일지침에 따르면, 남측은 신형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처음 시험발사를 하기 전에 먼저 미사일의 추력, 발사중량, 추진제중량, 동체중량, 생산량, 생산시설 명칭과 위치 등에 관한 군사기밀정보를 미국에 넘겨주어야 한다. 이것은 신형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설계단계에서부터 미국이 철저하게 검사한다는 뜻이다.

서류검사에 관한 예를 들면, 1990년 2월 10일 미국은 남측에게 현무 미사일 기술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고,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은 1990년 10월 8일 외교부 과장 명의로 작성한 현무 미사일 기술자료를 미사일지침을 준수하겠다고 재확인한 문서와 함께 미국에 보냈다. 또한 미사일 시험발사 사전통보에 관한 예를 들면,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2009년 5월 21일 본국에 보낸 2급 비밀전문 ‘로켓비행실험에 관한 한국 정부의 통보(ROKG NOTIFICATION OF ROCKET FLIGHT TEST)’는, 2009년 5월 20일 외교통상부 한미안보협력국 박소연이 안흥종합시험장에서 NHK-II PIP 미사일을 2009년 6월 3일에 12번째 시험발사하려는 계획을 미국에게 통보하였던 것이다.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안흥종합시험장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제작한 미사일 시제품의 연소시험이나 발사시험을 실시하는 곳이다.

미사일지침은 서류검사만이 아니라 현장사찰도 규정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이 남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기술자료에 대해 의심이 생기면, 미국의 파견요원들이 남측의 미사일 연구시설 및 생산시설을 예고 없이 불시에 방문하여 현장사찰을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사일지침에 따르면, 남측이 신형 탄도미사일 시제품을 다섯번째 시험발사한 뒤에, 그리고 열번째 시험발사한 뒤에 미국은 남측이 미사일지침을 위반하였는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미국이 미사일 개발사업에 이처럼 족쇄를 채운 대상은 전 세계에서 남측이 유일무이하다. 미국과 남측의 관계가 정상적인 국제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예속의 관계라는 사실은 미사일지침에서도 드러난다.

새로운 미사일지침과 미사일기술통제체제 가입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간 뒤로 등장한 남측 역대 정권들은 자기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어보려고 몇 차례 시도하였다. 그러나 ‘족쇄’를 완전히 풀어버리려는 게 아니라, 무거운 ‘족쇄’를 좀 더 가벼운 ‘족쇄’로 바꾸려고 하였다. 미사일지침 개정요청이 바로 그런 ‘족쇄 바꿔달기’였다. 이를테면, 김영삼 정권이 미국에게 미사일지침을 개정해달라고 요청하여, 개정협상이 1995년 말부터 5년 동안 20여 차례나 진행되었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 시기인 2001년 1월 17일에 새로운 미사일지침(New Missile Guidelines)이 워싱턴 디씨와 서울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새로운 미사일지침에 따르면, 남측이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종전의 180km에서 300km로 연장하도록 허용하였으나, 탄두무게는 여전히 500kg으로 제한하였다.

그런데 새로운 미사일지침이 발표된 바로 그 날, “미국은 새로운 (미사일)지침을 고려하면서 대한민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즉각 가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가입을 지지한다는 말은 외교적 표현이고, 실제로는 남측이 미국의 요구를 추종하여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한 것이다. 그런 요구와 추종에 의해서, 2001년에 남측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33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는 사거리 300km, 탄두무게 500kg 이상의 탄도미사일 및 관련기술을 제3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국제협약으로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함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의 양대 축이다. 원래 미사일기술통제체제는 사거리 300km, 탄두무게 500kg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생산할 수는 있어도 그런 탄도미사일 및 관련기술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지는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1993년부터 미사일기술통제체제 회원국들에게 사거리 300km, 탄두무게 500kg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생산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미국 자신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러시아 같은 핵강국들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 회원국이면서도 그런 규정을 받지 않는 예외에 속한다. 핵강국인 중국은 그 체제에 가입하지 않았다.

2001년 1월 17일 리처드 바우처(Richard Boucher) 당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국무부 성명으로 발표한 ‘새로운 대한민국 미사일지침(New Republic of Korea Missile Guidelines)’은 “대한민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가 규제하는 사거리와 탄두무게를 가진 미사일을 새로운 미사일지침에 따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 규제를 준수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안보와 세계 비확산 원칙을 동시에 존중하게 되었다”고 명시한 바 있다.

비단 남측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미사일 생산국들도 자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을 어쩔 수 없이 중도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2001년부터 남측은 대미관계에서 새로운 미사일지침의 통제를 받는 한 편, 국제관계에서도 미사일기술통제체제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미국이 남측에게 그러한 ‘이중족쇄’를 채운 것은 북미관계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었다. 2000년 10월 남측 언론매체들은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이 타결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 보도가 나온 때는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북계획이 추진되고 있던 때다. 만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직전에 새로운 미사일지침이 발표되었더라면, 당시 추진 중이던 북미 정상회담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새로운 미사일지침을 만들어놓고서도 발표를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북미관계 정상화를 반대하는 미국의 수구세력들에게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계획이 결국 취소되자, 미국은 2001년 1월 17일에 새로운 미사일지침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당시 미국이 북측의 중거리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중지시키고, 사거리가 300km 이상이 되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남측의 움직임도 차단하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남측의 미사일 개발사업에 단단한 ‘이중족쇄’를 채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이중족쇄’ 조치는, 미국이 남측의 미사일문제를 남측과의 양자문제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사일기술통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비확산문제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의 내막

<신동아> 2010년 10월호에 실린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상반기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게 보고서 작성을 맡겼는데, 한국국방연구원은 2010년 가을에 보고서 작성을 끝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이 이명박 정권의 요청에 따라 2010년 말에 시작되었다.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은 그 협상을 개시한 때로부터 1년 반을 훌쩍 넘긴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은 왜 그처럼 지루하게 장기화된 것일까? 그 동안 간간이 산만하게 보도한 남측 언론보도기사를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은 내막이 드러난다.

첫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에서 미국은 남측이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km 이상 늘이고 싶으면 탄두무게를 500kg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명박 정권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km 이상으로 늘이면 그에 반비례하여 타격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사거리를 늘이는 것과 함께 탄두무게도 늘여야 탄도미사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예컨대, 만일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 이상 늘이면, 타격정확도는 거의 반감하기 때문에, 사거리를 늘이는 것과 함께 탄두무게도 1,000kg 이상 늘여야 하는 것이다.

2010년 말부터 계속되는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에서 이명박 정권은 처음에 미국에게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1,000km로 늘이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하였다가 미국이 그 간청을 들어주지 않자 나중에는 사거리를 800km로 늘이도록 허락해달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이명박 정권이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까지 늘이도록 허락해달라고 미국에게 간청하는 까닭은, 인민군이 전방에 배치한 방사포 공격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한국군 탄도미사일이 인민군 방사포 사거리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군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중부지역에 탄도미사일을 배치해야 한다. 중부지역에서 함경북도 최북단까지 거리가 650km이므로, 한국군이 중부지역에서 북쪽으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는 800km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이미 사거리 1,000km의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으면서, 왜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이려는 것일까? 한국군이 작전배치한 순항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추진제로 쓰는 바람에 발사준비에 1시간씩이나 걸리는 데다가, 발사 뒤에도 시속 80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매우 느린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인민군 대공방어망을 뚫지 못하며, 더욱이 무게 450kg 이하의 재래식 탄두밖에 탑재하지 못해서 파괴력이 너무 약하다. 1,000km를 날아간다고 하면서 그렇게 약한 파괴력밖에 갖지 못한 한국군 순항미사일은 군사작전에서 쓸모가 없다.

그처럼 약한 파괴력을 보완하려면, 정밀타격능력이라도 갖춰야 하는데 한국군이 처한 오늘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다. 사거리 1,000km의 순항미사일이 정밀타격능력을 갖추려면 정치적으로, 기술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발사지점부터 타격목표까지 1,000km의 지형을 위성에서 촬영한 3차원 입체영상자료를 바둑판처럼 구획하여 미사일에 내장된 컴퓨터에 입력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공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순항미사일은 미리 입력된 지형을 따라 비행궤도를 수정하면서, 지상으로부터 50-100m 저고도의 수평비행으로 타격목표까지 날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형을 정밀촬영하는 군사정찰위성을 보유하지 못하였다는 데 한국군의 말 못할 고민이 있다. 한국군이 순항미사일을 쏘려면 반드시 북측 지형을 정밀촬영한 위성정찰정보를 미국군으로부터 넘겨받아야 하는 데, 미국군이 그런 고급정보를 한국군에게 넘겨줄 리 없다. 그러므로 한국군이 보유한 사거리 1,000km의 순항미사일은 미국군 허락이 없이는 단 한 발도 쏘지 못하는 것이다.

핵심부품은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2010년 말부터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에서, 미국은 사거리를 기존 300km에서 200km만 더 늘여 500km로 제한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800km 연장간청을 물리쳤으며, 만일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이고 싶다면 그 대신 탄두무게를 500kg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사거리를 300km에서 500km로 늘이는 것도 무의미하고, 사거리를 800km 늘이는 대신 탄두무게를 500kg 이하로 줄이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2012년 3월 12일 <아사히신붕>은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에서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이는 문제가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도하였고, 2012년 6월 4일에는 <중앙일보>가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하려는 남측의 간청을 미국이 받아주어 합의에 이른 것처럼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사거리를 연장하되 500km로 제한해야 한다는 미국의 견해표명을 사거리 연장에 합의한 것으로 오보한 것이다.

왜 이러한 오보가 자꾸 나오는 것일까? 2011년 4월 1일 국제위기그룹(ICR)의 분석가 대니얼 핑크스턴(Daniel Pinkston)이 쓴 글 ‘남코리아의 탄도미사일 사거리(South Korean Ballistic Missile Ranges)’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은 한국군이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여 인민군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남측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헛소문을 간간이 언론에 흘려준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둔군사령관의 편지 한 장으로 조작된 미사일지침은 협정이 아니므로 사실상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실제로 미사일지침에는 남측이 그 지침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미국에게 통보하는 경우, 통보시점으로부터 6개월 뒤에 미사일지침이 자동적으로 무효화된다는 조항까지 들어있다. 그런데도 남측이 미사일지침 앞에서 쩔쩔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모든 종류의 한국군 미사일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 미국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남측이 미사일지침을 더 이상 준수하지 못하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경우, 미국은 남측에 대한 미사일 핵심부품 공급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전배치한 한국군 미사일은 핵심부품을 구하지 못해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 고철로 되어버릴 것이고, 남측의 미사일 생산공장은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은 한국군에게 재앙이다. 그런 재앙을 두려워하는 이명박 정권은 미사일지침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남측에게 미사일지침을 강요하지 않아 남측이 미사일을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왜냐하면 한국군에게는 작전통제권이 없으므로, 남측이 사거리 800km의 미사일을 만든다고 해도, 그런 미사일을 군사작전에 동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전통제권이 없는 군대는 미사일 개발권을 가졌어도 소용이 없다. 탄도미사일을 사용할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남측이 사거리를 800km로 연장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남측과 미국 사이에서 형성된 지배와 예속의 모순관계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뼛속까지 친미라는 세간의 비난을 받는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미사일지침 개정을 미국에게 구걸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이 땅의 주권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미예속의 족쇄를 풀어버려야 할 것이다. (자주민보 2012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