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2호기편으로 극비방북한 백악관 고위관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공군 2호기에 타고 있었던 백악관 실무관리 두 사람

2012년 4월 7일 미국 대통령 특사를 태운 미국 공군 2호기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하였다. 극비방문이라는 말 그대로, 미국 대통령 특사 방북 이후 두 달이나 지난 오늘까지도 그 날 평양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특사가 누구였는지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특사의 극비방문은 북측의 대미공세를 모면하려는 미국의 일과성 행동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중대한 정치적 행동이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고위관리가 미국 언론 취재망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은밀히 움직였다고 해도 대체로 한 두 달 정도 지나면 구체적인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오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지만, 4월 7일의 극비방북은 그런 관례가 통하지 않아 더 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2012년 5월 2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 ‘심층분석-미국 대통령 특사 극비방북’에서 공군 2호기편으로 방북한 미국 대통령 특사가 “웬디 셔먼(Wendy Sherman) 국무부 정무차관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썼다. 그런데 5월 23일 남측 주요언론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군 2호기편으로 방북한 미국 정부관리는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Trani)와 시드니 사일러(Sydney Seiler)였다고 한다. 물론 그 두 관리가 방북하였을 것이라고 한 보도기사도 역시 확인보도는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추측보도였다.

조셉 디트라니는 2010년 1월부터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산하 국가반확산센터(National Counterproliferation Center) 국장(Director)으로 있다. 그는 국가반확산정보 책임자(National Intelligence Manager for Counterproliferation)이며,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을 보좌하는 수석자문관(principal advisor)이다. 디트라니는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국지부장으로 암약하였는데,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윌리엄 케이시(William J. Casey) 밑에서 보좌관으로도 있었고, 2003년 1월 미국 국무부로 자리를 옮겨 같은 해 11월에 6자회담 특사가 되었고, 2006년에 국무부에서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ODNI)로 자리를 옮겨 국가정보국장실 소속 북코리아 담당관(North Korea Mission Manager)으로 일하면서 16개에 이르는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수집한 모든 종류의 대북정보를 종합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아본 경력이 있다.

시드니 사일러는 미국 중앙정보국에서 근 30년 동안 코리아 담당요원을 지내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에 있는 국방어학원 코리아어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북코리아 부담당관을 거쳐 지금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코리아 담당관으로 있다. 최근에 맡은 직책을 비교해보면, 시드니 사일러는 조셉 디트라니의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위의 경력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현재 미국 정부관리들 가운데 대북정보에 가장 정통한 관리가 누구인가를 물으면, 단연 조셉 디트라니와 시드니 사일러를 손꼽을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연합뉴스> 2011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2월 9일 디트라니와 사일러가 오바마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보에 관해 직접 설명하였다. 디트라니와 세일러 같은 국장급 관리가 자기들의 직속상관인 국가정보국장을 통하지 않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정보설명을 한 경우는 매우 특별하고 이례적이다. 중요한 대북정보를 그 분야에 정통한 관리들이 직접 대통령에게 설명해야 할 만큼 긴급한 상황이었으므로, 그처럼 기존 관례를 깬 특별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허용되었을 것이다.

디트라니와 사일러가 2012년 4월 7일에 공군 2호기편으로 방북하였다는 외교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한 남측 언론매체들의 2012년 5월 23일 보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극비방북명령을 수행한 쪽이 미국 국무부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4월 7일에 방북한 미국 대통령 특사가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이었을 것으로 지목한 나의 추측은 빗나간 것이었다.

공군 2호기를 이용하는 백악관 고위관리들

주목하는 것은, 디트라니와 사일러 같은 국장급 실무관리들은 차관급 이상의 고위관리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군 2호기를 타고 해외방문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설령 디트라니와 사일러 같은 국장급 실무관리들이 방북한다 해도 북측 고위관리를 만날 수 없으며, 그들과 대등한 직급인 북측 외무성 미국 국장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북측은 국장급 실무관리를 미국 정부 대표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방북요청을 수락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공군 2호기편으로 방북한 미국 정부 대표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에서 차관급 이상의 직책을 맡고 있는 고위관리였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물론 그 고위관리는 대북정보에 정통한 디트라니와 사일러를 실무관리로 대동하고 방북하였을 것이다. 2012년 4월 7일 디트라니와 사일러를 대동하고 극비리에 방북한 백악관 고위관리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을 풀기 위해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 직급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일러의 직속상관은 대니얼 러셀(Daniel R. Russel)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Senior Director for Asian Affairs)이다. 러셀 선임국장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에 포진한 대통령 특별비서관(Special Assistant to the President) 20명 가운데 동아시아 문제를 담당한 비서관이다. 러셀 선임국장을 포함한 대통령 특별비서관 20명은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겸 수석비서관(Chief of Staff)인 브룩 앤더슨(Brook D. Anderson) 밑에 있다. 브룩 앤더슨과 같은 직급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5명이다. 이들 5명의 부보좌관은 남측 정부직급으로 말하면 차관급 관리들이다.

차관급 관리들인 5명의 부보좌관의 직속상관으로 있는 장관급 관리가 바로 토머스 도닐런(Thomas E. Donil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직급에 상응하는 청와대 고위관리 직급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다. 미국을 방문한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상대하는 관리가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는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가정보국장, 국가마약통제정책국장과 함께 국가안보보좌관과 재무장관이 참석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였을 때, 토머스 도닐런은 웬디 셔먼과 함께 미국 국무부 검열단장을 지내다가,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을 거쳐 2010년 10월 8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승진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직책은 공군 2호기를 해외방문에 사용할 수 있는 장관급 고위직이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일반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미국 공군 2호기인 보잉 737기를 이용한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2012년 4월 7일 미국 공군 2호기편으로 서해 항로를 따라 방북한 미국 정부 대표단에는 오바마 대통령 특사이며 정부 대표단 단장인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조셉 디트라니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산하 국가반확산센터 국장,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코리아 담당관 등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0월 23일 빌 클린턴 대통령 특사로 매들린 올브라이트 (Madeleine K. 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이 방북하였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이 방북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리, 뜻밖에도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이 평양에 간 것이다.

<한국일보> 2012년 5월 23일 보도기사는 디트라니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방북하여 “북측 최고위층을 면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썼는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대통령 특사는 디트라니 국장이 아니라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이었으므로, 그 기사내용은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이 평양에서 북측 최고위층을 만나 회담한 것으로 바꿔 읽어야 뜻이 통한다.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을 상대한 북측 고위관리는 강석주 부총리였을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 대표단은 4월 7일 오전 8시쯤 평양에 도착하여 밤 12시쯤 평양을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체류시간은 북미고위급회담이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역사적인 그 회담에 어떤 의제가 올랐으며, 어떤 합의를 내왔는지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서해 항로의 보잉 737기, 1971년 파키스탄 항로의 보잉 707기

2012년 5월 22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언한 내용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그 문장을 인용하면 이렇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측에 그들이 제기한 우려사항도 고려하여 우리가 2.29 조미합의의 구속에서 벗어났지만 실지 행동은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수주일 전에 통지한 바 있다. 원래 우리는 처음부터 평화적인 과학기술위성발사를 계획하였기 때문에 핵시험과 같은 군사적 조치는 예견한 것이 없었다.”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위의 문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측이 미국의 우려사항을 고려하여 제3차 지하핵실험을 자제하고 있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려울 뿐아니라, 북측이 제3차 지하핵실험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게 통지하였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과 미국은 6.25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하였으므로 북측에게 미국은 교전당사국이며, 또한 미국은 정전 이후 오늘까지 북침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한반도 군사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는 북측의 최대 적대국이다. 따라서 북측은 미국의 우려사항을 고려해줄 필요가 전혀 없으며, 더욱이 미국이 걱정할까봐 핵실험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게 통지해줄 필요도 전혀 없다. 상대의 우려사항을 고려해주고, 상대가 걱정할까봐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적대관계에서가 아니라 우호관계에서나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북측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전대미문의 ‘이변’을 적대관계에서 일으킨 것이다. 그 어떤 분석가도 북측이 일으킨 전대미문의 ‘이변’을 주시하지 않았지만, 그 ‘이변’에 깔린 정치적 의미는 매우 중대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대미관계에서 일으킨,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전대미문의 ‘이변’은, 2012년 4월 7일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비밀리에 방북한 것에 대한 북측의 ‘호의적 반응’인 것으로 해석해야 전후맥락이 통한다.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의 극비방북과 그에 대한 북측의 ‘호의적 반응’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에 있었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극비 해외방문이 연상된다. 1971년 7월 8일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척하면서 미국 언론 취재망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실제로는 중국을 극비로 방문하기 위해 파키스탄 국적 항공기 보잉 707기에 올랐다. 중미관계 정상화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41년 전 그 날 키신저의 극비방중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시발점이었다.

1971년 6월 30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극비로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대만 주재 미국 대사 월터 맥카나기(Walter McConaughy)에게 전화로 이렇게 지시하였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중국 본토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한 걸음씩(step-by-step)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중국을 뜻함-옮긴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북미관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북측과 미국은 미국 대통령 특사의 극비방북 이후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조용한 준비를 시작한 것일까? (자주민보 2012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