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공포증 재발과 종북좌파 모략소동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적색공포증 재발한 광란의 시기,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2명의 제명을 노린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 데다가 일단 감염되면 치료하기 힘든 난치성 정신질환이 있다. 붉은 색을 무서워하고, 붉은 색만 보면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는 적색공포증(red scare)이다.

20세기에 이르러 미국 사회가 적색공포증에 걸려 미쳐버린 때가 두 차례나 있었다. 미국 사회가 제1차 적색공포증에 걸렸던 광란의 시기는 1919부터 1920년까지였고, 제2차 적색공포증이 재발한 광란의 시기는 1950년대 초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 식민지 강점을 반대하여 투쟁한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미국은 적색공포증에 걸려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적색공포증은 우연히 발생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었던 노동자 파업투쟁에 두려움을 느낀 수구우파세력에게서 적색공포증이 발작한 것이다. 1919년 1월 21일 미국 서북단 도시 시애틀에서 시작된 총파업, 5월 1일 세계노동절에 일어난 대규모 노동자 시위, 9월 22일에 시작된 철강노조 연대파업, 11월 1일에 시작된 탄광노조 연대파업이 폭발하자 미국의 자본가들과 수구우파정권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수구집권세력과 수구언론계에서 적색공포증이 발작하였다.

적색공포증이 발작한 수구우파세력은 1919년 6월 4일 미국 연방상원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채택되자 여성에 대한 투표권 부여도 ‘공산주의 계략’이라고 비방중상하였다. 적색공포증에 걸린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모든 신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반대한 반전활동가들을 ‘러시아 빨갱이들(Russian Reds)’로 몰아대는 모략소동에 앞장을 섰다. 그처럼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법무부는 ‘극렬분자’로 몰아 체포한 좌파활동가 199명과 러시아계 이민자들이 결성한 러시아노동조합 소속 노조활동가 184명을 1919년 12월 21일 선박편으로 국외추방하는 정치탄압을 자행하였다.

제1차 적색공포증은 의회에서 가장 격렬한 발작을 일으켰다. 1920년 1월 7일 뉴욕주 의회 개원식에 나타난 의장 샛디어스 스윗(Thaddeus C. Sweet)은 “사회당은 확실히 정당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적성국 이주자들과 소수자들을 당원으로 가입시킨 조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방하고, “그런 사회당에 소속된 주의원들은 뉴욕주와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정치강령에 따라 선출되었으므로 제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제의에 따라 뉴욕주 의회는 사회당 소속 의원 5명에 대한 제명절차에 들어갔다. 민주당 소속 뉴욕주 의원 1명만 제명에 반대하였고, 나머지 140명 의원들은 모두 제명에 찬성하였다. 1920년 4월 1일 압도적인 표결로 사회당 소속 뉴욕주 의원 5명이 제명당했다.

그로부터 92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는 미국 사회를 광기와 폭력으로 몰아넣은 적색공포증에 걸려 똑같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92년 전에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적색공포증의 광기와 폭력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발작을 일으킨 적색공포증의 광기와 폭력을 그대로 복제한 듯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통합진보당 소속 정치활동가들을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악질적인 모략소동은, 92년 전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수구언론계가 반전활동가들과 노조활동가들을 ‘러시아 빨갱이들’이라고 몰아갔던 모략소동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까! 이 땅의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고 날뛰는 가증스러운 와해공작은, 92년 전 미국의 좌파활동가들과 노조활동가들에게 ‘극렬분자’ 딱지를 붙여 국외로 내쫓아버린 추방공작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까!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국회의원과 김재연 국회의원을 ‘종북좌파’로 낙인 찍어 제19대 국회에서 쫓아내려고 미쳐 날뛰는 제명공작은 92년 전 미국 뉴욕주 의회에서 사회당 소속 의원 5명을 ‘불순분자’로 낙인 찍어 쫓아냈던 제명폭거와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까!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질병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지만,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질병에 걸리는 법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합진보당의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해 엉터리 진상조사결과를 폭로하여 촉발시킨 당권분쟁에 휘말린 조건에서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면역력이 급속히 약해지는 바람에, 수구우파세력이 적색공포증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광란적인 적색공포증 확산의 책임은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에게 있다. 통합진보당을 와해위기에 몰아넣고, 그들이 명분으로 내건 당의 쇄신이 과연 제대로 되기나 할까?

‘사상검증’과 ‘충성검증’의 광풍이 몰아치다

적색공포증은 난치성 정신질환이어서, 병세가 호전된 이후에도 재발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1919년부터 1920년까지 2년 동안 미국 사회를 광기와 폭력에 몰아넣었던 적색공포증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과 함께 나치 독일 및 일제에 맞서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소련에 대한 적색공포증을 잠시나마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차츰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Semipalatinsk Test Site)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22킬로톤급 핵폭탄 RDS-1 폭발실험에 성공하고,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미국 사회 분위기가 크게 술렁거렸다. 그런 불안한 분위기에 편승한 미국 수구우파세력은 미국 사회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아동노역금지나 여성참정권 같은 사회개혁을 이른바 ‘공산주의 계략’으로 비방하였고, 19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취해진 뉴딜정책도 ‘사회주의 정책’으로 규정하고 반대하였던 미국 수구우파세력은, 세계 역사상 가장 극악한 적색공포증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고 말았으니, 그것이 바로 맥카시즘(McCarthyism)이라는 반공주의 정신질환이다.

1950년 2월 9일 당시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상원 의원이었던 조셉 맥카시(Joseph R. McCarthy, 1908-1957)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작은 도시 윌링(Wheeling)에 있는 여성공화당원 클럽에서 연단에 올라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여기 들고 있는 명단에는 미국 국무부가 공산당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도 여전히 국무부에서 근무하면서 대외정책 수립에 관여하는 205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맥카시가 던진 폭탄선언은 미국 수구언론계를 자극하여 즉각 적색공포증을 유발시켰다. 미국 국무부에 ‘공산당원’ 205명이 잠입하여 암약하고 있다는 맥카시의 허무맹랑한 발언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미친 소리인지는 미국 수구언론계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수구언론계에서는 진실과 허위를 가려보는 이성이 마비되고 광기만 분출되었다.

광기는 삽시간에 미국 정부기관으로 번져나갔다. 미국 연방정부 각급 기관들과 주정부 각급 기간들, 그리고 각종 대기업들은 자기 내부에 침투한 ‘공산당원’을 색출하기 위한 긴급행동에 돌입하여 ‘반공위원회’, ‘충성검증위원회’ 등을 조직하고 ‘사상토론회’를 열었다. 미국 연방상원은 ‘내부안전소위원회’와 ‘수사활동을 위한 상설소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연방하원은 ‘비미국적 행위 색출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미국 사회 전반에 전대미문의 사상검증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맥카시즘이라는 극악한 적색공포증에 걸린 미국 연방하원이 설치한 ‘비미국적 행위 색출을 위한 위원회’가 ‘공산당원’을 색출하겠다고 악을 쓰면서 미쳐 날뛴 광란극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광란극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리웃 영화계를 상대로 벌인 사상검증이었다. 할리웃 영화배우들, 영화감독들, 영화시나리오작가들, 영화제작자들은 ‘비미국적 행위 색출을 위한 위원회’가 던진 이런 물음에 자기들의 ‘사상적 결백’을 입증해야 하였다. “당신은 지금 공산당원인가 아니면 이전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가?”

맥카시즘이라는 극악한 적색공포증에 걸린 미국 연방상원이 설치한 ‘수사활동을 위한 상설소위원회’가 ‘공산당원’을 색출하겠다고 악을 쓰면서 미쳐 날뛴 광란극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광란극은, 미국 군부를 상대로 벌인 사상검증이었다. 군부에 대한 사상검증에는 맥카시가 직접 나섰다.

1954년 8월 24일 미국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은 1950년에 제정하였던 이른바 ‘내부안전법(Internal Security Act)’을 개악하여, 법안심의를 위한 토론도 생략한 채 압도적인 표결로 이른바 ‘공산주의통제법(Communist Control Act)’을 제정하였다. ‘공산주의통제법’은 미국 노조에 좌파사상이 확산되어 “공산주의전선조직(Communist front organizations)”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고, “적대적인 외부세력의 하수인(agency of a hostile foreign power)” 노릇을 하는 좌파정당을 적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공산주의통제법’은 미국 좌파정당을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의 대행기관”으로 불법화하였을 뿐 아니라, 그런 당에 입당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며, 그런 당의 당적을 가진 사람은 10,0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하든가 아니면 5년 징역형에 처하며, 심한 경우에는 벌금형과 징역형을 모두 받도록 규정하였다. 적색공포증이 재발한 1950년대 초반의 미국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기본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사상검증’을 받아야 한다

1950년대 초반 수많은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끌려갔고, 직장에서 쫓겨났고, 저주와 악담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이를테면, 할리웃 영화계에서 300명이 넘는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으며, 교육계와 법조계의 수많은 진보인사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3,000명에 이르는 항만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집단적으로 부당해고를 당했다.

맥카시즘의 덫에 걸려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은 미국인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진 저명인사들을 손꼽으면 아래와 같다. 오스카상 수상자이며 골든 글로브상을 두 차례나 받은 저명한 작곡가 겸 지휘자인 엘머 번스타인(Elmer Berstein), 세기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Charie Chaplin), 저명한 시인이며 극작가이며 연극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흑인 사회학자이며 역사가인 두 보이즈(W. E. B. Du Bois), 아카데미상 조연여우 수상자인 리 그랜트(Lee Grant), 뮤지컬 배우이며 무용가이며 영화배우인 집시 로즈 리(Gypsy Rose Lee), ‘할렘 문예부흥’을 일으킨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 연극문학 ‘월급쟁이의 죽음’으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 핵폭탄을 개발하여 미국인들에게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던 이론물리학자 로벗 오픈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대중가수로 이름을 날린 피터 시거(Peter Seeger), 재즈음악의 거장 아티 쇼우(Artie Shaw), 단편소설 ‘젊은 사자들’을 창작한 소설가 어윈 쇼우(Irwin Shaw), 미사일기술과 우주항공기술을 개발한 세계적인 중국인 공학자 첸수센(錢學林) 등이다. 맥카시즘의 ‘사상검증’은 누구도 피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서도 ‘종북좌파’라는 누명을 씌우기 위한 ‘사상검증’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북한 인권’과 ‘북한 핵문제’와 ‘북한 수령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종북좌파’로 내모는 극악무도한 ‘사상검증’이다.

수구우파가 그렇게 잘도 떠드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정치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어떤 정치문제에 대한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표를 던질 권리가 있는 법이고, 심지어 사법당국에 혐의자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을 때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기본권이다.

그런데 저들이 ‘종북좌파’로 내모는 ‘사상검증’에서는 그런 기본권마저 모조리 박탈당한 채, 아무런 방어기제가 없는 맨몸으로 ‘사상검증’을 받아야 한다. ‘사상검증’에서 통과하려면, ‘애국가’를 불러야 하고, 대북적개심을 표출해야 하고, 진보적인 정치사상을 포기해야 하고, 수구우파의 발밑에 굴복해야 하는 것이다. 적색공포증이 발작한 이 땅의 수구우파들은 ‘사상검증’이라는 짐승도 낯을 붉힐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맥카시즘 광풍의 배후에 누가 있었나?

지금 이 땅에서 누구나 체험하는 것처럼,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공포와 광기로 몰아넣은 맥카시즘이라는 적색공포증이 재발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집단적 정신질환에 걸리고 말았다. 이른바 ‘종북좌파’를 ‘척결’하자는 수구우파의 악질선동으로 이성과 양심이 마비되고 말았다. 수구언론계, 새누리당, 검찰과 경찰, 국정원, 수구우파단체들은 날마다 쉬지 않고 진보정치활동가들을 무조건 ‘종북좌파’로 내몰아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광분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종북좌파’를 비난하는 기가 막힌 ‘막장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광기와 폭력으로 몰아넣은 맥카시즘 대소동이 어떻게 맥카시라는 한 개인의 모략선동으로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의 수구언론계가 맥카시의 모략선동을 증폭, 확산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위의 물음을 전부 설명하기 힘들다.

그 의문을 푸는 열쇠는 뉴욕에 있는 예쉬바 대학교의 미국사 교수인 엘렌 쉬렉커(Ellen W. Schrecker)가 풀어주었다.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이 발효되면서 미국 정부기관들의 비밀문서고 깊숙한 곳에 감춰졌던 비밀문건들이 세상에 공개되어 경악과 충격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1950년대 연방수사국(FBI)이 작성한 비밀문건들도 있다. 쉬렉커 교수가 기밀해제된 연방수사국 비밀문건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맥카시즘이라는 적색공포증을 발작시킨 장본인은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맥카시 자신이 아니라 맥카시 광풍을 배후에서 은밀히 불러일으킨 ‘막후 실력자’였다. 맥카시즘의 ‘막후 실력자’가 바로 당시 연방수사국장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였다.

말 많은 상원의원 맥카시는 언론을 상대로 모략소동을 피웠고, 말 없는 후버는 광풍 뒤에서 제거공작을 벌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에게 ‘충성검증’과 ‘사상검증’을 실시하는 검증사업을 제안한 장본인도 후버였고, 자기 휘하 연방수사국 요원들 총동원하여 수천명 공무원들을 내사하고, 체포하고, 공직에서 추방한 장본인도 후버였고, 민간인 불법사찰을 총지휘한 장본인도 후버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50년대 적색공포증을 맥카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며, 후버리즘(Hooverism)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할 것이라는 쉬렉커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게 된다.

1950년대의 후버리즘 광풍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작한 적색공포증도 분명히 배후조종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정보자유법’이 발효된 이후 연방정부기관들이 보관해온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배후조종자 후버의 정체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런 법이 없으므로 배후조종자의 정체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통일된 뒤에 가서야 그 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 맥카시즘의 광란 뒤에서 후버가 ‘검증공작’과 ‘제거공작’을 총지휘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수구언론계, 새누리당, 검찰과 경찰, 국정원, 수구우파단체들의 광란 뒤에서 ‘검증공작’과 ‘제거공작’을 총지휘하는 배후조종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숨어있는 배후조종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광풍 속에서 더 밝게 빛난 이성과 양심의 불빛

광기와 폭력만이 출렁이던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이성과 양심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맥카시즘 광풍이 제아무리 소란과 난동을 부려도 이성과 양심의 불빛을 꺼뜨릴 수는 없었다. 광기와 폭력의 흑암을 깨뜨리고 더 밝게 빛난 이성과 양심의 불빛은 어디서 비치고 있었던 것일까?

맥카시즘 광풍에 홀로 결연히 맞서 저항한 이성과 양심의 불빛, 그것은 당시 <CBS> 텔레비전의 저명한 방송인이었던 에드워드 머로우(Edward R. Murrow, 1908-1965)였다. 1953년 10월 20일과 1954년 3월 9일에 <CBS>가 방영한, 그가 진행자로 고정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제는 보라(See It Now)’는 맥카시즘 광풍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1953년 10월 20일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당시 미국 주방위군 공군 중령으로 복무를 하던 중 맥카시즘 모략소동에 걸려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쓴 밀로 라둘로비취(Milo J. Radulovich)의 억울한 사정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1954년 3월 9일에 방영된,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에 관한 보고(A Report on Senator Joseph McCarthy)’라는 제목으로 편성한 30분 짜리 텔레비전 방송에서 머로우는 맥카시의 모순된 행적을 파헤치며 매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내용을 다룬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신문광고를 통해 알리는 광고비용을 <CBS>측에서 지출하지 않았고, <CBS> 회사명칭도 광고에 내지 말도록 금하는 바람에, 머로우는 사비를 들여 신문광고를 내고 방영을 강행하였다. 머로우 같은 용감하고 양심적인 방송인만이 아니라, 전국변호사협회(National Lawyers Guild)에 소속된 진보성향의 변호사들도 맥카시즘 광풍에 결연히 맞서 저항한 이성과 양심의 불빛이었다.

통합진보당에서 세칭 ‘자주파’로 알려진 진보정치세력에게 ‘종북좌파’ 누명을 씌워 그들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리고, 이석기 국회의원과 김재연 국회의원에게 ‘종북성향 국회의원’ 누명을 씌워 그 두 사람을 국회에서 내쫓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모략소동과 제거공작이 광란하는 오늘, 미칠대로 미쳐버린 암흑사회에 이성과 양심의 불빛을 켜들고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에드워드 머로우 같은 용감한 방송인은 없을까? 전국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 같은 용감한 사회인사들은 없을까? (자주민보 2012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