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는 왜 수구장벽을 돌파하지 못했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총선 향방 좌우한 네 가지 요인들

곳곳에서 손에 땀을 쥐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4.11 총선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이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의외로 선전하여 원내 과반을 살짝 넘는 의석수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수구세력의 정치기반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4대강 삽질, 미디어 악법 채택, BBK 부정비리 의혹, 민간인 불법사찰, 남북관계 파탄 같은 악정과 부패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의 거부감과 반감이 이번 4.11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현실화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정국에서 정권심판론과 야권연대정치로 새누리당을 제압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전 선거들에서도 그러했고 4.11 총선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이 땅에서 실시되는 선거는 네 가지 결정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 향방이 좌우되고 있다. 네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란 지역주의 감정표출, 인기투표식 선거행태, 수구언론의 기만적 여론조작,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지역주의 감정표출과 인기투표식 선거행태와 기만적 여론조작은 유권자들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혼란과 착각을 불러오고,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은 선거제도의 의의를 갉아먹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과 야권연대정치는 4.11 총선정국에서 위의 네 가지 요인들이 뒤엉켜 있는 견고한 장벽을 돌파하지 못하였다. 새누리당은 그 견고한 장벽 뒤에 몸을 숨기고 반이명박 민심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민심의 흐름은 낡은 집의 문짝만 날려버린다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으로 들리는 민심이라는 말을 사회과학적으로 재정의하면, 사회정치현실에 대한 대중심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대중심리가 어느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면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정치에너지가 공급될 때, ‘분위기’는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민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부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민심이 강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심은 바람처럼 사회 전반에 불어오지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견고하게 구축된 낡은 권력체계는 그 정도의 풍력에너지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바람은 진보정치의 깃발을 휘날리게 하고 수구정치의 문짝을 날려버릴 수는 있어도 낡은 집을 와르르 무너뜨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4.11 총선의 결과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낡은 집을 민심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것이 과도한 정세판단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4대강 삽질, 미디어 악법 채택, BBK 부정비리 의혹, 민간인 불법사찰, 남북관계 파탄 같은 이명박 정권의 악정과 부패가 줄줄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반이명박 민심이 형성되기는 하였으나, 민심은 바람에 그쳤고 폭풍으로 강화되지는 못하였다. 바람이 폭풍으로 강해지려면 어떤 폭발적 계기가 급격히 조성되어 강한 풍력에너지가 민심에 공급되어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견고하게 구축된 낡은 권력체계는 오직 민심폭풍으로만 무너진다. 반이명박 민심이 불어오는 수준을 넘어 정권교체의 민심폭풍이 몰아칠 때, 바로 그런 격동적 정세변화 속에서 낡은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할 수 있다. 4.11 총선에서 경험한 것처럼, 선거정국에서는 폭풍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올 뿐이다.

물론 예외가 있었다.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6.25 전쟁 이후 이 땅의 정치사에서 강력한 민심폭풍이 몰아친 예외적인 선거정국은 세 차례 조성되었다. 이를테면, 1960년 4.19 혁명이라는 민심폭풍으로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이 무너진 직후 조성된 격동적인 선거정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라는 민심폭풍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퇴진한 직후 조성된 격동적인 선거정국, 2002년 두 여학생이 미국군 장잡차에 깔려죽은 사건이 촉발한 민심폭풍으로 조성된 격동적인 선거정국이다.

하지만 그처럼 민심폭풍으로 조성된 격동적인 선거정국에서 근본적인 정치변화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1961년 선거정국에서는 진보정당들이 난립하였고, 1987년 선거정국에서는 이른바 ‘양김’이 주도한 야권분열이 일어났고, 2002년 선거정국에서는 민주당이 재집권하였다. 낡은 권력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만한 강력한 민심폭풍이 몰아쳐왔으나, 진보정당 난립, 야권분열, 민주당 재집권은 낡은 정치를 말끔히 청산하고 진보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60년을 헤아리는 이 땅의 정치사에 대한 진보적 시각의 총평가다.

진보정치가 넘어서야 할 마지막 계선

그렇다면 지금 이 땅의 진보정치는 어느 계선까지 진출하였을까? 통합진보당을 창당함으로써 진보정당 난립 가능성을 차단하였고,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야권연대를 실현함으로써 야권분열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그러므로 1961년 선거정국의 패인과 1987년 선거정국의 패인은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매우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이 땅의 정치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이 땅의 진보정치가 넘어서야 할 마지막 계선은 2002년 선거정국의 한계다. 민심폭풍이 몰아친 2002년 선거정국에서 승리하여 재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민심에서 멀어져갔다. 나중에는 정권 지지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할 만큼 민심이 등을 돌렸다. 그런 민심이반현상의 근본원인은 당시 노무현 정권이 새로운 진보정치도 아니고 낡은 수구정치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지점에서 우유부단하면서 오락가락하는 혼동정치를 하였기 때문이다. 혼동정치를 5년 동안 계속하다보니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렸고, 그 틈을 타서 수구정당이 다시 정권을 가져갔던 것이다.

명백하게도, 노무현식 혼동정치는 이 땅의 정치사가 넘어서야 할 마지막 계선이다. 다행하게도, 오늘의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정권상실이라는 뼈아픈 현실에서 교훈을 찾고 나름대로 내부혁신을 추진하여 10년 전의 민주당과 상당부분 달라졌다. 민주당의 그러한 정치적 변신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야권연대를 실현할 수 있었다.

이명박식 수구정치가 박근혜식 유혹정치로 계승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노무현식 혼동정치도 거부하고 이명박식 수구정치도 거부한 민심이 박근혜식 유혹정치에 속아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명박식 수구정치의 거점인 한나라당은 민심이 자기들에게서 떠난 것을 알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인기정치인 박근혜를 내세우는 위장술을 적절히 동원하면서, 자기들이 민생을 챙길 정당이라는 기만선전으로 민심을 유혹하고 있다. 소수재벌들만 이롭게하고 미국과 일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이 땅의 민생을 완전히 파탄시킨 장본인이 민생을 챙길 정당이라는 새빨간 거짓말로 민심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식 유혹정치가 위에서 언급한 지역주의 감정표출, 인기투표식 선거행태, 수구언론의 기만적 여론조작,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결합하여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고, 거기에 더하여 야권연대를 무력화시킬 미국의 치명적 선개개입공작이 가세하는 경우, 올해 12월에 실시될 대선에서 박근혜식 유혹정치가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명박식 수구정치가 박근혜식 유혹정치로 계승되면, 이 땅의 정치사는 노무현식 혼동정치를 넘어서기는커녕 수구정치의 10년 연속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기우가 아니라 근거가 있는 예상이다.

4.11 총선에서 드러난 명백한 사실은 박근혜식 유혹정치가 민심을 끌어당길 위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과 야권연대정치가 박근혜식 유혹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야권연대정치가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 안겨준 정권교체의 희망은 박근혜식 유혹정치라는 높은 장벽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의 정치현실이다.

야권연대정치가 그 장벽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누구도 선뜻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이 땅의 진보정치는 그 난해한 문제를 붙들고 고심해야 하며 반드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진보정치가 해법을 내놓을 때,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정권교체의 희망을 안고 개벽을 예감할 수 있다. (자주민보 2012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