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인 행동이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격분한 인민군의 이례적인 군사행동

2012년 3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북측은 인민군 실탄사격훈련을 평양 주재 외신기자들에게 공개하였다. 미국의 <에이피(AP)통신> 2012년 3월 6일 보도기사를 읽어보면, <에이피통신> 평양지국 취재기자, 중국의 <신화통신> 평양지국 취재기자 등이 그 현장에 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외신기자들에게 인민군 실탄사격훈련을 공개하는 것도 전례 없는 놀라운 일이지만, 최전방에 주둔하는 인민군 부대가 서해5도 분쟁수역 인근에서 벌인 실탄사격훈련을 공개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위의 <에이피통신>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이 실탄사격훈련을 하는 동안 지역주민들도 어깨 위에 위장막을 걸치고 지냈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 북측의 최전방지역이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음을 말해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북측이 외신기자들에게 공개한 인민군 최전방부대의 실탄사격훈련이 어떠하였는지를 알아보려면, 북측 언론보도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2012년 3월 6일 <조선중앙통신> 누리집에 6분 58초 길이로 편집된 동영상이 게시되었는데, ‘조선인민군 제2, 제4군단 장병들 무자비한 징벌의지를 표명’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이 동영상에 편집된 장면들은 아래와 같다.

인민군 제2군단 전차부대가 출동하는 장면, 인민군 제2군단 자행포(남측에서는 자주포)부대가 산중턱에 있는 표적을 향해 포사격을 하는 장면, 인민군 제2군단 사령관 김형룡 상장(한국군에서는 중장)이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인민군 제4군단 사령관 변인선 상장이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인민군 제4군단 해안포부대가 갱도 차폐문을 열고 해안포를 꺼내 장탄, 조준하는 장면, 연평도 포격전에 참전하였던 연대장 김경수와 방사포 여단장 윤영식이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300mm 12련장 방사포로 무장한 방사포여단이 출동하는 장면,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연병장에서 격술훈련을 하는 장면, 특수전부대 부사령관 안지용이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특수전 병력이 타격대를 내리치며 주먹단련을 하고, ‘리명박’, ‘김관진’이라고 쓴 나무표적에 도끼, 단도, 표창을 던져 명중시키고, 개인화기를 사격하면서 돌격하고, ‘리명박’이라고 쓴 표적을 향해 개인화기를 일제사격하는 장면 등이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날짜로 ‘남진명령만 기다리는 로농적위대 대원들’이라는 제목 아래 로농적위대 대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담은 현장사진 8장을 실었다.

또한 같은 날 <로동신문> 누리집에도 2분 46초 길이의 동영상이 게시되었는데, ‘명령만 내리시라’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인민군 제2군단 사령관 김형룡 상장이 취재기자 앞에서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그리고 전차병, 포병, 여성 방사포병이 각각 대남규탄발언을 하는 장면, 천마호 전차들이 지휘장갑차량을 따라 진격하는 장면, 인민군 포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자행포를 사격하는 장면, 여성병사들이 107mm 24련장 방사포를 발사하는 장면 등이 들어있다.

위의 동영상들에 나온 인민군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대남규탄발언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공격명령만 떨어지면, 정말로 당장 총공격에로 넘어갈 결전태세가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 몇 일 사이에 북측 청년들의 대남복수결의모임이 각지에 확산되었는데, 그 모임들에서 입대 또는 복대를 탄원한 청년들이 194만명이나 되었다. 또한 지난 몇 일 사이에 평양과 각 도소재지들에서 적게는 수 만 명에서 많게는 수 십 만명이 모여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를 향해 격분을 터뜨리는 대남규탄 군중대회가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북모독구호 보도사건

남북관계에서 왜 이처럼 험악한 사태가 조성되었을까? 한국군 어느 부대 안에 붙어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모독하는 구호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져 북측을 극도로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인천에 주둔하는 어느 군부대에 붙여놓은 대북모독구호를 찍은 보도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 “대대 대적관”이라는 제목 아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과 김정은 부위원장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아래에 북측을 극도로 자극한 모독구호가 씌여있다.

인천에 주둔하는 한국군 대대는 해병대 제2사단 제8연대 예하 대대들이다. 인천시 서구 금곡동에 해병대 제8연대 제83대대가 주둔하는 데, 대북모독구호를 써붙인 그 대대가 제83대대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해병대 제2사단 제8연대 예하 대대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알 수 있다.

<인천일보> 2012년 3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역의 상당수 부대들은 주적관념 고취를 위해 이같은 표어를 제작, 부착하고 있다”고 한다. 군부대 외부에서는 알지 못하지만, 외부와 차단된 영내에서는 북측을 극도로 자극하는 구호가 일상적으로 나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해병대 제2사단 제8연대 예하 어느 대대 영내에 붙어있는 대북모독구호는 어떻게 외부에 알려진 것일까? 대북모독구호 사진을 보도한 <헤럴드경제> 취재기자가 2012년 3월 5일에 작성한 보도기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사진은 본지 기자가 군이 주관한 한 행사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촬영한 것이다. 당시 많은 민간인이 호기심에 가득 차 구경했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대북모독구호 사진을 보도한 날이 2012년 2월 28일이었으므로, 바로 그 날 해병대 제2사단 제8연대 예하 어느 대대가 영내 행사를 하면서 취재기자와 지역주민을 영내로 초청하였음을 말해준다. 군부대 영내 행사에 외부사람을 초청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므로, 여기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북모독구호가 영내 행사장에 걸려있던 것이 아니라, 내무반 출입문에 붙어있었다는 점이다. 영내 행사에 참석한 민간인들이 취재기자와 함께 우르르 내무반까지 몰려간 것은 아니고, 취재기자만 내무만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군당국이 영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취재기자에게 특별히 내무반까지 보여주었음을 말해준다. 텅빈 내무반에 취재대상이 없는데, 취재기자에게 왜 내무반을 공개하였을까?

내무반에 들어간 취재기자의 눈에 취재할 만한 특별한 것은 없었을테니, 출입문에 붙어있는 대북모독구호밖에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취재기자는 다른 사진은 한 장도 보도하지 않고, 대북모독구호를 찍은 사진만 보도하였던 것이다.

대북모독구호 사진을 보도한 <헤럴드경제> 취재기자가 2012년 3월 5일에 작성한 보도기사에는 “옆에 있던 군관계자는 촬영을 막지도 않았다”고 씌여있다. 취재기자에게 내무반까지 보여준 군당국은 취재기자가 내무반 출입문에 붙어있는 대북모독구호를 촬영할 때도 사진촬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국방부 말대로 내부용 대적관 구호라면 민간인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떼어놓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보안사항으로 외부유출을 제지해야 했다. 그러나 취재진에 그 어떤 협조요청도 없었다”는 것이다.

위의 정황을 살펴보면, 대북모독구호를 고의적으로 보도하게 만들려고 취재기자에게 내무반을 공개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긴다.

우발적인 행동이었을까?

이번에 일어난 대북모독구호 보도사건과 2011년에 있었던 영점표적지 보도사건을 비교하면 고의성에 대한 의혹이 더 짙어진다.

영점표적지 보도사건은 2011년 5월 30일 <노컷뉴스>의 보도기사를 발단으로 하여 일어났다. 2011년 5월 25일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제6포병여단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에 동원된 예비군 400여 명에게 영점표적지를 나누어주고 사격하라고 하였는데, 그 영점표적지에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부위원장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영점표적지를 받아보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예비군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최 아무개 예비군의 언론제보로 세상에 알려졌고, 그 제보를 받은 <노컷뉴스> 취재기자들은 인천에 있는 또 다른 예비군 훈련장 곳곳에도 “섬뜩한 문구”가 적힌 펼침막들이 걸려있는 현장을 확인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위의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인 2011년 5월 31일 <한겨레>는 국방부가 문제의 사격표적지를 쓰지 말고 표준표적지를 쓰라는 지침을 야전부대들에 내렸다고 보도하였다. 사진이 인쇄된 문제의 사격표적지를 사용한 것에 대해 격노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전면적인 군사적 보복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한 날은 2011년 6월 3일이다. 국방부는 인민군 총참모부의 격노성명이 나오기도 전에 재빨리 언론보도를 통해 시정방침을 밝혔던 것이다. 북측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2012년 3월 5일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통일부 출입기자단 앞에서 “북한이 문제 삼는 것은 우리 군내부의 사안”이라면서 “북한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북측이 “(대남)비방부터 즉각 중단하는 것이 기본도리이고 순서”라고 정면으로 맞섰다.

게다가 군부는 통일부보다 한 술 더 떳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2012년 3월 7일 오전 연평도에 가서 그 섬에 주둔하는 해병부대를 시찰한 뒤 “북한의 도발시 원점과 지원부대까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강력히 응징하라”고 명령하였다. 2011년 5월 말에 국방부가 북측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속히 시정방침을 내렸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군부는 북측과 한 판 붙어보자는 식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데, 자칫 무력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그런 위험천만한 움직임들은 우발적 행동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북모독구호 보도사건이 일어난 날이 2012년 2월 28일이었고, 북측과 미국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성과적으로 마친 날이 2월 24일이었다. 한 쪽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북측과 미국의 역사적인 합의가 바야흐로 이행되기 시작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대북모독구호 보도사건을 발단으로 한반도 군사정세가 극도의 긴장 속으로 끌려가고 있다. 나흘 간격으로 있었던 북미고위급회담과 대북모독구호 보도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 (2012년 3월 7일 자주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