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학자들이 설명 못한 2010년의 불가사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순차적인 핵기술 개발공식이 깨지다

2009년 6월 4일 <연합뉴스>가 놀라운 사실을 보도하였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6-7년 전부터 북측 국가과학원이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리튬(lithium)7로부터 리튬6을 분리하는 고난도 핵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는 정보를 남측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이춘근 박사가 다른 나라 핵과학자들을 통해 파악하였다는 것이다.

북측 핵과학자들은 왜 리튬7로부터 리튬6을 분리하는 기술을 연구하였을까? 리튬분리기술은 3중수소(tritium)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다. 리튬6이 없으면 3중수소를 만들 수 없다. 북측이 3중수소를 만들려는 목적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니, 핵융합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2중수소(deuterium)와 3중수소를 주입한 특수한 핵폭탄을 터뜨리면, 상상을 초월한 고열과 고압이 발생하면서 핵융합반응이 일어난다. 핵융합은 고속중성자의 양을 두 배로 늘리기 때문에 핵분열에서 방출되는 킬로톤(kiloton)급 폭발력에 비할 바 없이 초강력한 메가톤(megaton)급 폭발력을 방출한다. 이를테면, 1메가톤이 방출하는 에너지는 2007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평균 1가구가 10만3,474년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 총량과 맞먹는다. 그런데 핵융합에 필요한 2중수소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물질이어서 쉽게 얻어낼 수 있지만, 3중수소를 얻어내려면 리튬분리기술을 개발하여야 한다.

이춘근 박사가 언론에 전해준, 북측 핵과학자들이 2003년 이전부터 리튬분리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정보는, 북측이 2006년 10월 9일에 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핵융합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전 세계에서 핵기술수준이 가장 앞선 5대 핵강국들은 핵폭탄을 제조하여 핵실험에 성공한 다음, 핵폭탄을 3단계 열핵융합탄(수소폭탄)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 핵융합반응을 연구하는 순차적인 기술개발과정을 밟아왔다. 핵폭탄 제조→핵실험 성공→핵융합기술 개발→3단계 열핵융합탄 제조로 이어지는 기술개발과정은 이제까지 세계 핵과학계에서 공인된 공식이었고, 5대 핵강국들은 한결같이 그 공식에 따라 핵기술을 순차적으로 발전시켜왔다. 5대 핵강국들이 핵실험에 성공한 뒤에 3단계 열핵융합탄을 제조하기까지 걸린 개발기간을 살펴보면, 프랑스 8년 9개월, 미국 7년 2개월, 소련 6년 3개월, 영국 5년 6개월, 중국 2년 8개월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시기 5대 핵강국들이 의존한 순차적인 핵기술 개발공식은 북측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5대 핵강국들과 달리, 북측은 핵기술 분야에서 가장 앞선 최첨단기술인 핵융합기술을 핵실험을 실시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개발해온 것이다. 이러한 개발과정의 상이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측이 5대 핵강국들이 밟아온 기존 경로와 방식과는 다른 독자적인 경로와 방식으로 핵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북측은 핵과학 고급정보나 핵공학 핵심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배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 몰래 빼돌릴 수도 없었다. 북측이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하고 독창적인 핵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방과 도식을 싫어하고 창조와 파격을 선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방침에 따른 것이다. 세계 핵과학계는 북측의 핵과학 발전수준이 뒤떨어졌다고 보는 편견과 오만을 버리고, 북측 핵과학자들이 발휘한 저력과 독창적인 핵기술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세계 핵과학계에 쟁점으로 떠오른 2010년의 불가사의

세계 각국 핵과학자들이 2010년 8월 어느 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비공식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핵과학자들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보내온 자료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OT)가 러시아와 일본에 설치한 핵종탐지장비들에서 얻어낸 자료를 놓고 열띤 토의를 벌였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그 회의에 보내준 자료에 대해서는 2010년 10월 1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실시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강원도 거진에 설치한 핵종탐지장비가 2010년 5월 15일 새벽 2시 7분에 포집한 대기 중에서 기체상태의 방사성물질들인 제논(xenon)-135와 제논-133을 검출하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세상에 알려졌지만,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가 러시아와 일본에 설치한 핵종탐지장비들에서도 똑같은 검출결과가 나왔으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방사성물질들이 2010년 5월 중순만이 아니라 2010년 4월 중순에도 검출되었다.

그러한 네 가지 방사성동위원소들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고, 반드시 인위적인 핵분열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분열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방사성동위원소들이 2010년 4월 중순과 5월 중순에 각각 검출된 것은, 북측이 핵분열실험을 두 차례 실시하였음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로 된다.

그런데 비엔나 비공식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 핵과학자들을 한참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2010년 4월부터 5월까지 북측에서 핵폭발로 일어난 인공지진이 지진발생기록에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측이 당시 핵폭발실험을 실시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로 된다.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핵실험에서 생성하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대기 중에 방출된 불가사의한 현상이 2010년 4월 중순과 5월 중순 북측에서 일어난 것이다. 비엔나 비공식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 핵과학자들은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한채 회의를 마쳤다.

그런데 그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국방연구국(Defense Research Agency)의 대기학자 라스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가 있었다. 그는 비엔나 비공개회의 이후 1년 동안 각종 관련자료들을 정밀분석한 끝에 마침내 불가사의한 현상의 비밀을 풀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비밀’을 2012년 2월 3일 국제과학전문지 <자연(Nature)>에 발표하였다. 데예르의 설명에 따르면, 2010년 4월 중순 제논-133과 제논-135가 검출된 것은 북측이 비공개 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2010년 5월 중순 바륨(barium)-140과 란타눔(lanthanum)-140이 검출된 것 역시 북측이 또 다른 비공개 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북측이 실시한 두 차례 비공개 핵실험은 기존 핵무기의 폭발력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재래식 폭약(TNT) 50-200t에 해당하는 아주 약한 핵폭발을 일으킨 고농축우라늄 핵실험이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2012년 2월 6일 <경향신문>은 데예르의 논문을 검토한 익명의 과학자가 그의 결론에 반박하기 힘들다고 말하였음을 보도하였다.

데예르의 견해가 발표되자 세계 각국 핵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는데, 미국과 유럽의 핵과학자들은 데예르의 결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데예르는 북측이 고농축우라늄 핵실험을 실시하였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핵과학자들은 그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까? 당사자인 북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2010년 5월 12일 북측은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북측은 “우리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 제작되고 핵융합반응 기초연구가 끝났다”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북측이 발표한 핵융합반응 성공이란 북측 핵과학자들이 설계, 제작한 독특한 열핵반응장치를 두 차례 시험가동하여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로동신문>은 2010년 5월 15일 보도기사에서 “우리 과학자들이 새 에네르기 개발을 위한 돌파구로 되는 핵융합반응을 우리식의 독특한 방법으로 성공시킨 것은 참으로 자랑할만한 성과”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북측의 발표내용과 데예르의 설명을 종합하면, 북측 핵과학자들이 설계, 제작한 독특한 열핵반응장치에서 50-200t급 폭발력을 가진 고농축우라늄 핵폭발을 일으켜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열방출에 견디고 폭발압력을 흡수하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견고하고 거대한 열핵반응장치 안에서 재래식 폭약 50-200t에 해당하는 아주 약한 핵폭발이 일어났으므로, 남측, 일본, 러시아의 지진파탐지장비들에는 그 핵폭발이 매우 약한 인공지진으로 나타났을 것이고, 데예르는 당시의 지진발생기록을 정밀검색하여 바로 그 매우 약한 인공지진기록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것이 세계 각국 핵과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한 불가사의였던 것이다.

2006년의 경이에서 2010년의 불가사의까지

관심을 끄는 중요한 문제는, 북측이 50-200t급 핵폭발을 일으키는 저출력(low-yield) 핵분열폭발기술을 과연 개발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핵공학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미국도 5킬로톤(5,000t)급 핵폭발을 일으키는 핵탄두밖에 제조하지 못하는데, 북측이 그 핵폭발력에 비해 100분의 1 이하로 내려가는 핵폭발을 일으키는 고난도의 극저출력(ultralow-yield) 핵분열폭발기술을 개발하였을까? 기성 핵공학기술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 난해한 문제를 풀려면, 북측이 2006년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에 관한 자료를 다시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2006년 10월 16일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발표한 공식성명은, 북측이 2006년 10월 9일 재래식 폭약 1킬로톤(1,000t) 이하의 폭발력을 지닌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20일 미국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 Institute for Security and Sustainability)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북측의 2006년도 핵실험 폭발력 규모가 재래식 폭약 500-900t에 해당한다다고 추산하였다. 재래식 폭약 550t에 해당하는 폭발력이었다고 추산한 자료도 있다.

북측의 핵과학 발전수준이 뒤떨어졌다고 보는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힌 서방세계 핵과학자들은 그 핵실험이 폭발하는 듯하다가 이내 꺼져버리는 불발현상(fizzle)이었다고 깎아내렸다.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해도 믿으려 하지 않으므로, 재래식 폭약 500-900t에 해당하는 핵폭발력을 현장에서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도록 ‘특별배려’를 해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백하게도, 북측이 출력을 가장 약하게 만든 초소형 핵무기를 터뜨린 2006년의 지하핵실험은 세계 핵무기 개발사에서 처음 있는 경이적인 실험이었다.

이처럼 북측이 이미 2006년 10월에 재래식 폭약 약 550t에 해당하는 저출력 핵분열폭발을 일으키는 고난도 실험에 성공하였으므로,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0년 4월과 5월에 재래식 폭약 50-200t에 해당하는 극저출력 핵분열폭발을 일으키는 실험에 성공한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전혀 아니다.

북측 핵과학자들이 설계, 제작한 독특한 열핵반응장치에서 극저출력 핵분열폭발이 일어났으면, 그에 연속해서 핵융합도 일어났을까? 북측이 열핵반응장치 시험가동에 성공하였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핵융합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북측이 열핵반응장치 시험가동에 실패하였다면, 시험가동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측이 시험가동에 성공한 것은, 극저출력 핵분열기술을 개발한 북측이 독창적인 방식의 핵융합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융합기술은 인공태양이라 부르는 핵융합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도 쓰이고, 수소폭탄이라 부르는 3단계 열핵융합탄을 제조하는 데도 쓰이는 이중용도의 최첨단기술이다. 3단계 열핵융합탄은 킬로톤급 핵폭탄을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으로 크게 증강하는 기술로 만들어내는 3세대 전략핵무기다.

핵분열제어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핵분열원자로 건설이 핵분열폭탄 제조보다 더 쉽지만, 핵융합제어기술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개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핵융합반응로 건설이 3단계 열핵융합탄 제조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다면, 핵융합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측 핵과학자들은 3단계 열핵융합탄을 만들었을까?

3단계 열핵융합탄을 만들려면 반드시 고농축우라늄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 <마이니치신붕> 2012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이 우라늄농축을 시작한 때는 놀랍게도 1998년 4월이다. ‘선군혁명’을 가장 큰 긍지와 자부심으로 여기는 북측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기술, 핵폭탄을 제조하는 기술, 그리고 열핵반응장치를 만드는 기술 등 고도의 핵공학기술을 가졌는데도 3단계 열핵융합탄을 만들지 않고 열핵반응장치부터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예컨대 중국은 열핵반응장치를 아직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던 1967년 6월 17일, 3단계 열핵융합탄 폭발실험에 성공하였는데, 독창적인 첨단기술로 열핵반응장치를 만든 북측이 3단계 열핵융합탄을 아직 만들지 못하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서 6축12륜 대형 발사차량에 실려 등장한, 탄두부가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꼬리날개 없는 그 익명의 최첨단 미사일이야말로 북측이 3단계 열핵융합탄을 제조하는 단계를 지나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마지막 단계로 이미 진입하였음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다. 왜냐하면,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기술은 3단계 열핵융합탄 제조기술을 습득해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이 세계 무대에 제6핵강국으로 등장하였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12년 2월 16일 자주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