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납치, 연쇄암살, 테러 종주국은 미국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골나비 거리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2012년 1월 11일 오전 8시 20분 이란 수도 테헤란의 골나비 거리(Gol Nabi Street)는 출근길 교통정체가 심하였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출근차량들 속에서 은색 외제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강한 폭발음과 함께 부서졌다. 그 승용차에 타고 있던 탑승자 두 사람과 행인 한 사람이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피살자의 신원은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의 부소장이며, 테헤란대학교 교수인 32살의 젊은 핵화학자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Mostafa Ahmadi Roshan)과 그의 경호원으로 밝혀졌다.

이란 핵과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암살사건은 2010년 1월과 11월, 2011년 7월에 일어났고,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이란이 공들여 키워온 우수한 핵과학자들이 적대세력의 폭탄테러나 총격테러로 계속 목숨을 잃고 있다. 이란 당국의 경호를 마치 비웃기나 하는 듯이 주요한 핵과학자들만 골라서 표적살해하고 도주하는 치밀하고 잔인한 암살수법을 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모싸드(Mossad)가 이란에 침투시킨 암살단이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이란에 대한 파괴적인 비밀공작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이스라엘 모싸드가 합작으로 저지르는 범죄행위다. 막바지에 이른 이란의 핵개발을 어떻게 해서든지 저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무력침공위협과 경제제재와 사이버공격은 물론, 핵과학자 암살공작에도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핵개발 성패여부는 전적으로 핵기술력 획득여부에 달려있는데, 핵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핵과학자들의 두뇌에서 나오는 피땀 어린 연구성과다. 그러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우수한 핵과학자를 길러내지 못하면 핵개발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설령 우수한 핵과학자를 길러냈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그들의 연구사업을 보장해주지 못하면 핵개발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란 핵과학자들의 신원이 외부에 노출되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암살표적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이란의 핵개발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미국과 나치 독일의 핵개발 경쟁

독일의 ‘핵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토 한(Otto Hahn, 1879-1968), 여성 핵물리학자 리세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 프릿츠 스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핵과학자들이 1930년대 독일 베를린에서 핵개발연구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세계 최초로 핵분열실험에 성공한 때는 1938년 12월이었고, 나치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때는 1939년 4월이었다.

독일의 핵과학자들이 핵분열실험에서 성공하였다는,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어놓은 소식을 듣고 흥분한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연구에 박차를 가한 끝에, 마침내 1939년 1월 25일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의 퓨핀홀(Pupin Hall) 지하실험실에서 두 번 째로 핵분열실험에 성공하였다.

미국과 나치 독일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핵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가 핵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채택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는 1941년 6월 28일 과학연구개발실을 설립하라는 대통령 행정명령 제8807호에 서명하였고, 같은 해 10월 9일 핵무기 개발사업 추진을 승인하였고, 이틀 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당시 영국 총리에게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제의하였다.

1942년 말 미국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맨해튼 사업(Manhattan Project)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국책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핵무기 제조사업에서 행정부문 총지휘는 당시 미국 육군공병단 중장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R. Groves, Jr., 1896-1970)가 맡았고, 개발부문 총지휘는 핵과학자 로벗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1904-1967)가 맡았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Jornada del Muerto) 사막에 세워놓은 높다란 철탑 꼭대기에서 20킬로톤급 내폭형 플루토늄 핵장치가 오렌지빛 섬광을 뿜으며 폭발하였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핵폭발실험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1943년까지 미국이 핵무기 개발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10억 달러(현재 화폐가치로는 127억 달러)에 달했고, 영국이 투자한 금액은 78만 달러(현재 화폐가치로는 1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내 17개소에서, 그리고 캐나다 내 2개소에서 핵무기 개발이 분업적으로, 동시에 추진되었다. 1944년 6월 당시, 각종 핵시설 건설부문 기술자와 근로자 84,500명, 원자로 제작부문 기술자와 근로자 40,500명, 핵시설 보안부문 군병력 1,800명을 포함하여 미국의 핵무기 개발에 동원된 총인원은 84,500명이었다.

1930년대에 나치 독일과 미국의 핵과학기술 수준을 비교해보면, 나치 독일이 결코 미국에게 뒤지지 않았다. 만일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만들어냈더라면, 1940년대 이후 세계 역사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핵과학기술 수준에서 미국과 경쟁하였던 나치 독일은 왜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였을까? 그 까닭은, 파시스트 괴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집권한 1933년 이후, 독일 핵과학계에서 일하던 우수한 유대계 핵과학자들과 핵공학기술자들이 나치 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따라 줄줄이 연구기관들에서 쫓겨났고, 다른 나라로 도피하였다. 핵두뇌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었으니, 그만큼 나치 독일의 핵개발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단납치에서 연쇄암살로 더욱 흉포화된 미국

핵패권을 쥐기 위해 나치 독일과 치열한 암투를 벌이던 미국은 나치 독일이 패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단납치공작을 벌였다. 그 납치공작이 엡설론 작전(Operation Epsilon)이다. 엡설론 작전에 따르면, 미국은 베를린이 함락되었던 1945년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나치 독일의 핵과학자 10명을 색출, 납치하여 영국 갓맨체스터에 있는 팜홀(Farm Hall)로 끌고가서 1945년 7월 3일부터 1946년 1월 3일까지 억류하였다. 미국에게 납치, 억류된 그들은 독일의 핵개발사업을 주도해온 오토 한을 비롯한 당대 최고 수준의 핵과학자들이었다. 당시에 작성된 미국군 정보자료는 미국이 납치한 독일의 이론핵물리학자 베르너 아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가 독일군 10개 사단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인물이라고 평하였다.

미국은 팜홀에 도청장치를 미리 설치해놓고 자기들이 납치해온 독일 핵과학자들의 대화내용을 모조리 도청하여, 독일의 핵무기 개발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파악하였다. 그 도청자료들은 47년이 지난 1992년 2월에 가서야 기밀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미국이 나치 독일의 핵과학자들을 집단납치하기 시작한 때는 이미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가 자살하는 바람에 나치 독일이 더 이상 핵개발을 추진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핵과학자를 집단납치하였다.

다른 나라 핵과학자들을 집단납치하는 비열한 범죄를 가장 먼저 시작하고 가장 많이 저지른 나라는 미국이다. 이전에는 핵과학자 납치를 전문으로 하였던 미국이 지금은 더 포악해져서 핵과학자 암살을 전문으로 자행하고 있다.

이란의 핵과학자가 폭탄테러로 암살당한지 닷새 뒤인 2012년 1월 16일, 이란 각지의 대학생 1,300여 명이 암살당한 핵과학자들의 뒤를 이어 자기들의 전공을 핵과학으로 바꾸겠다고 자원하였다. 이스라엘이 이란 중부지역 이스파한에 있는 핵시설을 공습하겠다고 위협하였던 2011년 11월 16일, 대학교문을 뛰쳐나온 이란 대학생들은 그 핵시설을 둘러싸고 공습위협에 맨몸으로 맞서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주라!”고 절규하였다. 제국주의침략공세에 맞서싸우며 자기 조국을 보위하려는 이란 대학생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돋보인다. 2012년 1월 17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 이란 대통령은 이란 핵과학자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경계령을 내렸다.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과학자들을 표적살해하는 극악무도한 연쇄암살만행에 날뛰고 있지만, 자기들의 심장에 반제사상과 애국심의 불을 달고 분연히 일어선 이란의 청년과학자대오 1,300여 명이 그토록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으니 이란은 머지 않아 핵개발에 성공할 것이며, 깡패국가 이스라엘의 중동지역 핵독점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2012년 2월 2일 자주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