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북미합의, 한반도 정세 확 바꾼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것은 20년 북미회담의 결산이었다

2012년 2월 29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2.24 합의가 동시에 발표되었다. 합의문을 발표하지 않고 각기 언론보도문 형식으로 합의사항을 발표한 까닭은, 그 합의사항의 정치적 비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북미고위급회담의 합의문에는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4 합의를 세 차례 북미고위급회담의 결과라고만 좁혀 생각할 것이 아니라, 1992년부터 오늘까지 20년 동안 지속된 북미회담의 결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년 북미회담에서 북측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것은 한반도 평화실현이고, 미국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것은 핵포기다. 이러한 쌍방의 요구는 밀접히 연관된 ‘근본문제’이기 때문에 하나씩 분리해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괄타결방식으로 논의해야 한다. 쌍방의 요구를 일괄타결방식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목표로 설정된 것이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이다. 북을 비핵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북측 요구인 한반도 평화실현과 미국 요구인 핵포기를 다 포괄한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처음 명시한 9.19 공동성명에 그런 포괄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24 합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쌍무적 공약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언론매체들은 북측의 우라늄농축활동 임시중지와 미국의 대북 식량 및 영양식품 제공을 2.24 합의에서 상호교환하였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의제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에서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한 의제는 무엇일까?

첫째,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나, 미국의 이행거부로 7년이 거의 되도록 성과를 내오지 못한 그 성명을 이행할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전환계기가 2.24 합의다. 2.24 합의에서 “조미 쌍방은 9.19 공동성명 리행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이것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한 미국을 힘으로 압박, 강제해온 북측이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였음을 말해준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한 미국을 이행경로로 끌어내기 위해 북측은 2006년과 2010년 두 차례 지하핵실험을 실시했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국군기지들을 위협하는 첨단미사일 발사훈련을 여러 차례 실시했고, 막판에는 녕변 핵시설단지에서 우라늄농축활동까지 추진했다.

둘째, 1992년에 열린 첫 북미고위급회담 이후 20년 동안 미국을 계속 압박하고 강제해온 북측이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할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전환계기가 2.24 합의다. 2.24 합의에서 “조미 쌍방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 합의사항의 의미를 추적하면, 사문화된 정전협정의 법적 효력을 발생시켜 그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길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이 정전협정의 법적 효력을 발생시켜 그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는 까닭은, 정전협정 제4조가 미국군 철군을 위한 북미고위급회담을 개최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에서 정전협정을 유효화하여 정전협정 제4조의 효력을 발생시켰으므로, 이번에 끝난 고위급회담보다 한 급 높은 회담을 3개월 안에 열어야 한다. 그 회담에서 북측과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방도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될 것이다.

2.24 합의의 이행담보는 무엇일까?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6자회담이 언제 재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고, 미국이 9.19 공동성명을 언제부터 이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이행시기를 어느 날이라고 지적하기는 힘들지만, 2.24 합의에 따르면 북측이 녕변 핵시설단지에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을 임시로 중지하는 날부터 미국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여야 한다.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임시로 중지하는 것은 오늘이라도 가능하지만, 걸림돌이 놓여있다. 지금 미국이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이라는 작전명으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이다. 미국은 회담 분위기를 고려하여 항모강습단을 북침전쟁연습에 출동시키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북침전쟁연습이 성격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긴장된 군사상황은, 북침전쟁연습이 끝나는 4월 30일 직후 미국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국제사회에서 ‘공약파기 상습범’으로 낙인찍힌 미국이 2.24 합의를 외면하여 무효화되는 게 아니냐 하고 비관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설명이 요구된다.

국제관계에서 채택된 합의가 이행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 지난 날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을 때, 북측은 미국을 협정준수에로 끌고 갈 강제력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사문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북미관계는 딴 판이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한 미국을 2.24 합의에로 끌고 간 것만 봐도 북측에게 미국의 거부력을 압도하는 강제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지난 날 그들이 ‘주변국’으로 깔본 북측과 합의는커녕 마주앉는 것조차 거부한 적이 있었다. 만일 ‘주변국’이 ‘초강대국’을 회담으로 끌어내어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한 강제력이 없었다면, 2.24 합의는 결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세발전에 조응한 사고전환이 요구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는 것은, 이 시대가 떠맡은 가장 중요한 정치과업이며 한반도적 범위에서 추진해야 할 전민족적 정치과업이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이 한반도 평화실현에 당력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날 참여정부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분리시키고 우선 종전선언부터 발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0.4 선언에 그런 추진방향이 반영되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분리시킨 것은, 참여정부가 당시 평화협정 체결을 반대한 부쉬 정부를 의식해서 꺼내놓은 위축된 방책이었다.

그러나 2.24 합의로 변화된 현 정세는 양자분리방침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런 정세변화를 반영하여 통합진보당에게 요구되는 것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한반도 평화회담에서 동시에 풀어나가는 방책이다. 그런 방책과 남측의 정치현실은 어떻게 상호조응되는 것일까?

올해 말 남측과 미국에서 조성될 대선국면을 생각하면, 한 급 높은 북미고위급회담이 올해 안에 열리고, 한반도 평화회담은 내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한반도 평화회담 추진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인 대결정책에 매달리는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는 무조건 차단되어야 한다. 총선과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연대해야 하는 요구가 절실해지는 대목이다. 양당이 연대하되, 연대 수준을 어디까지 높일 것인가 하는 민감한 문제는 총선결과에 따라 정리될 것이다.

이런 정세변화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제기되는 당면요구는, 한반도 평화실현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보다 전략적 선진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뭐가 다르냐”고 자꾸 묻는다면, 통합진보당이 전략적 선진성을 갖지 못한 것이다. 2.24 합의로 변화되기 시작한 정세는, 통합진보당에게 선진적인 정강과 정책을 내놓고 한 걸음 앞서 나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진보적으로 발전하면 진보정당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진보정당이 정세발전에 민감하게 조응하여 자기의 사고방식을 선진적으로 전환할 때, 정세발전을 주도할 수 있다. (진보정치 제558호 2012년 3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