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성이 지구에 남긴 진귀한 사연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긴급보도는 왜 새벽에 나왔을까?

<조선중앙통신>이 2012년 12월 13일에 보도한 보도사진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진 한 장이 있다. 2012년 12월 12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상신한 ‘인공지구위성 발사준비를 끝낸 정형과 대책적 의견’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표지를 찍은 사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보고서 표지에 “당중앙은 위성발사를 승인한다. 2012년 12월 12일 오전 10시에 발사할 것! 김정은 2012.12.12”라는 친필을 썼다.

이 친필명령에는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광명성 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기까지 있었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북측 외부 언론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사연들, 말해주더라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 그 사연들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우주공간기술위원회에 친필명령을 하달한 시각은 2012년 12월 12일 오전 8시다. 이것은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인공지구위성 발사준비를 끝낸 정형과 대책적 의견’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한 시각이 12월 12일 아주 이른 아침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그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위성발사 준비작업을 완료한 시각이 12월 12일 새벽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12일 새벽에 위성발사 준비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예정된 일정과 계획에 따라 위성발사를 정상적으로 준비해왔더라면, 그처럼 밤을 새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철야작업이란 임박한 마감시간에 쫓기는 비상상황에서 다그치는 작업방식이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왜 마감시간에 쫓기고 있었을까? 그 까닭은,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세워져 발사명령을 기다리던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에서 뜻밖에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위성발사를 준비하던 마지막 과정에서 “일련의 사정이 제기되여 (줄임) 위성발사시기를 조절하는 문제를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때는 12월 8일이었는데, 실제로 그 보도가 나온 시각은 12월 8일 자정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은 12월 9일 새벽이었다. 몇 시간 뒤 12월 9일 아침에도 보도할 수 있었을 텐데, 보도가 왜 자정을 넘긴 새벽에 나왔을까?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한밤중에 <조선중앙통신>에게 보도자료를 보낼 만큼 긴급한 정황이 조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은하 3호를 점검하는 마지막 과정에 심각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어 예정된 발사시각에 발사하지 못하는 난관이 조성된 것이다.

북의 위성발사문제에 ‘정통’하다는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2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12월 8일 낮부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은하 3호에서 심각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된 때는 12월 8일 낮이었던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은하 3호를 세우고 조립하는 작업은 12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5일에 완료되었는데, 그로부터 사흘 뒤에 기술적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기술적 결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기에 그처럼 예정된 발사시각에 위성을 발사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2012년 12월 10일 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운반로케트의 1계단 조종발동기 계통의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여 위성발사 예정일을 12월 29일까지 연장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은하 3호 1단 로켓에 장착된 조종발동기 계통에서 어떤 이상이 생겼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1단 로켓의 조종발동기 계통에서 이상이 생겼으니, 정황은 심각하였다. 겨울철 지상 10km 높이의 한반도 상공에는 초속 100m에 이르는 한랭편서풍이 때로 휘몰아치는 판인데, 은하 3호의 조종발동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발사 직후 은하 3호는 서해 상공의 비행궤도에서 벗어나 남측 상공으로 날아갈 위험도 있었다. 그래서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원래 12월 10일부터 12월 22일 사이에 은하 3호를 발사하려던 발사예정기간을 12월 29일로 미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뜻밖에도, 은하 3호는 12월 12일에 발사되었다. 위성발사예정기간을 12월 29일까지 연장한다는 발표가 12월 10일에 나왔는데,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에 은하 3호를 발사하였으니, 그에 얽힌 깊은 사연을 알지 못한 북측 외부에서는 모두들 어리둥절하였다.

이처럼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위성발사예정기간을 일주일 연장한다고 발표해놓고 이틀 뒤에 위성을 발사하자, 이명박 정부는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하였다. 예컨대 <조선일보> 2012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위성발사소식을 들은 청와대, 국방부, 외교부 관리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믿을 수 없다. 그게 정말이냐?”고 하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북의 서해위성발사장을 감시하는 임무는 맡은 남측 국방부는, 북의 위성발사를 사전에 전혀 알지 못한 자기들에 대한 책임추궁을 회피하기 위해 우주공간기술위원회의 위성발사예정일 연장발표가 무슨 “고도의 기만전술”이었다느니 무슨 “치밀한 교란작전”이었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북이 기만전술과 교란작전으로 세계를 속였다고 주장한 남측 국방부의 소동은, 은하 3호 발사과정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남측 군부가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었다. 위성발사가 불의의 기습타격을 요구하는 군사작전도 아닌 데, 무슨 기만전술이니 교란작전이니 하는 말을 꺼낸 것부터가 억지이며 소동이다. 북으로서는 그런 억지와 소동을 바라보며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은하 3호에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었던 12월 8일 낮부터 그 기술적 결함이 해결되었던 12월 12일 새벽까지 긴박했던 시간에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일어난 ‘12월의 기적’

<중앙일보> 2012년 1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설치된 높이 50m 정도의 직육면체형 가림막이 발사대에 세워놓은 은하 3호를 가렸다고 한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은하 3호를 발사대에 세우기 시작한 12월 1일부터 검은색 가림막을 발사대에 쳐놓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지난 2012년 4월에 광명성 3호 1호기를 발사할 때는 가림막을 쳐놓지 않았는데, 이번에 가림막을 쳐놓은 까닭은, 남측 정부 당국자들이 말한 것처럼 그 가림막으로 미국 정찰위성의 시야를 가리고 발사준비상황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기만전술과 교란작전을 펼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4월에도 가림막을 쳤고, 이번 12월에도 똑같이 가림막을 쳤다면, 미국 정찰위성의 시야를 가리려고 그렇게 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만, 지난 4월에는 가림막을 치지 않았고, 이번에만 가림막을 쳤으므로 ‘시야차단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발사대에 가림막을 쳐놓았던 것을까?

검은색 가림막은 미국 정찰위성의 시야를 가리기 위한 차단막이 아니라, 바람 세찬 발사대에 올라 장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현장준비요원들이 찬바람을 맞지 않도록 감싸주는 일종의 보온막이었다. 당시 서해위성발사장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이례적인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겨울철 평안북도 해안지대에는 시베리아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발사대에 올라가 일하는 현장준비요원들에게 그런 찬바람을 맞게 할 수 없어서 태양 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검은색 보온막이 필요했던 것이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12월 11일 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보온막을 걷고, 발사대에 세워놓았던 은하 3호를 끌어내려 분리한 다음, 발사장에서 1km 떨어져 있는 조립건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은하 3호를 발사대에서 끌어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은하 3호를 조립건물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방위상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는 12월 12일 방위성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이 발사대에 세워놓았던 위성운반로켓을 발사대로부터 분리하였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위성운반로켓이 발사대로부터 분리되었다고 말하면서도, 분리된 위성운반로켓이 조립건물로 옮겨졌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1일 보도기사에서 남측 나로우주센터 소장은 북이 위성운반로켓을 발사대에서 분리하였으니, “사소한 결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것은 사소한 결함이 아니라 로켓을 해체하여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결함이었다. 그런데 은하 3호는 발사대에서 분리된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발사된 것이다.

위에 열거한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8일 낮에 은하 3호에서 기술적 결함을 발견하였고, 11일 오후에 은하 3호를 발사대에서 끌어내렸고, 12일 새벽에 발사준비를 완료하였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발사준비를 완료하였다는 보고서를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상신한 것이다.

은하 3호를 발사대에서 끌어내린 때를 12월 11일 오후로 보는 까닭은, 미국 정찰위성이 매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서해위성발사장 상공을 지나면서 공중촬영을 하므로, 바로 그 시간대에 은하 3호를 발사대에서 끌어내린 현장을 정찰위성이 포착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은하 3호를 발사대에서 끌어내린 12월 11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시간으로부터 위성발사준비작업을 완료한 12월 12일 새벽까지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고 해도, 은하 3호에서 발견한 심각한 기술적 결함을 무슨 수로 15시간 만에 해결하면서 발사준비를 그처럼 초고속으로 완료할 수 있었을까? 발사대에 세워놓은 은하 3호의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발사대에서 끌어내렸다가 다시 발사대에 세워 조립하려고만 해도 사흘 이상 걸릴 판인데, 어떻게 15시간 만에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고 발사준비까지 완료한 것일까?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물론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며, 북측 내부 사정을 모르는 외부 시야에 기적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기적 같은 사연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발사예정일이 임박한 은하 3호에서 심각한 기술적 결함을 발견하였을 때, 극도로 긴장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하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광명성 3호 2호기를 지구궤도에 올려놓느냐 올려놓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주개발사업의 성패문제이기 전에, 그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로 맹세한 가장 중대한 과업이기 때문이었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따르면, “<광명성-3>호를 꼭 올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 장군님의 유훈”이라는 것이다. 태양절 100주년을 맞은 지난 4월 13일 광명성 3호 1호기를 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으므로, 태양절 100주년인 2012년이 지나가기 전에 4월의 실패를 만회하고 위성발사에 반드시 성공해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따르면, 겨울철에 과연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겠는가 하는 기술적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해야 합니다. 우리는 2012년이라는 이 해를 절대로 넘기지 않겠습니다. 과학기술위성인 <광명성-3>호의 성공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유훈입니다. 장군님의 서거 1돐 전에 우리는 기어이 이 위성을 쏴올리겠습니다!”고 굳게 맹세하였다는 것이다. 북측 외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 유훈관철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과업이다.

그런데 그처럼 유훈관철에 힘쓰던 위성발사준비작업 막판에 뜻하지 않게 심각한 기술적 결함이 나타나, 위성발사예정기간을 한 주간이나 뒤로 늦출 수밖에 없었고, 그로써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주기가 되는 12월 17일 이전에는 은하 3호를 발사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들의 맹세와 의지가 뜨거웠던 것만큼 그들에게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걱정도 많았을 것이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은 유훈관철의 맹세를 결사적으로 지키기 위하여 24시간 초긴장한 ‘강행군 전투’를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 상부에서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그렇게 하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초긴장한 ‘강행군 전투’를 밤낮을 이어 계속한다고 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주기가 되는 12월 17일 이전에 위성발사준비를 완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남측 군부의 로켓 전문가는 <연합뉴스> 2012년 12월 11일 보도에서 “로켓을 해체하고 점검한 뒤 다시 장착하는 데만 1주일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자기들 가슴을 태우는 안타까운 시간이 한 초, 한 초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은하 3호의 심각한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결사적인 ‘강행군 전투’를 개시하려 한다는 긴급보고를 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수리작업을 하다가는 12월 17일 이전에 발사할 수 없으므로 결함이 생긴 은하 3호 1단 로켓을 다른 예비로켓으로 대체하고 쏘아올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앙일보> 2012년 12월 13일 보도기사를 주의 깊게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은하 3호를 발사하기 전날인 12월 11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미국의 위성사진 분석가들이 머리를 갸우뚱할 만한 이변이 일어났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차량들과 인력이 분주히 드나들”면서 보온막을 걷어내고 있었고, 위성발사대에 설치된 대형 탑식 기중기가 은하 3호를 잠시 들어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위성사진 분석가들은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은하 3호를 왜 잠시 들어 올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위성사진 분석가들이 이해하지 못한 사정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은하 3호 1단 로켓을 다른 예비로켓으로 교체하기 위해,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이 은하 3호를 잠시 들어 올리고, 1단 로켓을 다른 예비로켓으로 교체하였던 것이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따르면, 지난 4월 위성발사가 실패하였을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크고, 과학은 실패 속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그러나 실패를 너무 많이 하면 소화불량에 걸립니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따뜻이 격려해주었고, “위성발사에 참가한 전체 성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시고 녀성과학자들에게 고급 화장품까지 선물로 보내주”며 그들의 신심과 의지를 북돋아주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들이 유훈관철의 맹세를 지킬 수 있도록 1단 로켓을 수리하지 않고 통째로 교체하는 비상대책을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2월의 기적’은 바로 그렇게 일어났다.

막판에 이명박 정부의 뒤통수를 친 미국

대북위성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남측 군부는 2012년 12월 11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2월의 기적’이 일어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남측 국방부는 은하 3호가 발사대에서 들어 올려진 것만 알았을 뿐, 1단 로켓을 예비로켓으로 교체하고 재빨리 다시 세워놓은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 대한 미국 정찰위성의 집중감시는 독보적이다. 일본 정찰위성도 있지만 수량도 적고, 미국 정찰위성에 비해 성능도 떨어져서, 일본은 서해위성발사장을 감시한다고 떠들기는 하지만, 집중감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측 국방부가 서해위성발사장에 대한 위성정보를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하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미국이 남측에게 대북위성정보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미국은 은하 3호가 발사대에서 분리되었다는 정보를 남측 국방부에 알려주었지만, 은하 3호가 얼마 뒤에 발사대에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는 남측 국방부에 알려주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은 그 결정적인 정보를 일본 방위성에게는 알려주었으면서도 남측 국방부에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관련정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2월 13일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이 은하 3호가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남측 국방부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외무상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는 2012년 12월 12일 외무성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는 (북의 위성발사가) 없을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는데도, (일본 정부가) 경계수위를 낮추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발언함으로써, 은하 3호가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았음을 넌지시 인정하였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본 자위대 요격미사일부대 간부는 “12일에 (은하 3호가) 발사될 수도 있다고 보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은하 3호 발사에 대한 경계태세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남측 군부는 북의 은하 3호 발사에 대비하려고 만들어놓은 통합대책반의 정상가동을 멈춰놓고 연말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통합대책반 책임자의 직급을 소장급에서 준장급으로 내리고, 근무인원까지 축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위성발사대에서 끌어내려진 은하 3호가 상당 기간 동안 수리작업을 받고 12월 하순에 가서야 재장착될 것으로 착각하였음을 말해준다. 은하 3호 1단 로켓이 통째로 다른 예비로켓과 교체되고, 신속히 발사대에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하였으니, 남측 군부가 그런 착각에 빠진 것은 불가피한 노릇이었다.

미국으로부터 은하 3호가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였다가, 갑자기 은하 3호 발사 소식을 들은 남측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임박한 징후는 포착하지 못했다. 북한도 발사기간을 1주일 늦췄기 때문이 이번 주 발사할 것으로는 사실상 판단하지 못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허둥대면서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은하 3호 재장착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일본 방위성에게는 알려주면서 남측 국방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한국 정부가 분별없이 (북의 위성발사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유출하는 데 불만을 품은” 미국이, 은하 3호가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남측 국방부에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 정부 고위관리의 해석이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대북적대감에 사로잡힌 남측 군부가 은하 3호 발사를 방해하려고 구축함까지 서해에 배치해놓았고, 그에 대처하여 북도 군사적 대응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긴장된 상황에서, 남측 군부가 은하 3호 발사예정일을 미리 알아내는 경우, 무슨 일을 저지를지 미국으로서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지난 12월 3일에 북은 국제해사기구(IMO)에 은하 3호 발사에 관해 통보하면서, 발사예정시간이 오전 7시부터 정오 사이가 될 것이라고 알려준 바 있으므로, 남측 군부가 발사예정일을 알아내면 발사예정시간대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대선정국 막판에 이른바 ‘북풍’을 조작하여 여당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황을 조성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가 은하 3호 발사를 방해하려 하다가 뜻밖의 ‘대형사고’를 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데 지금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남측의 제18대 대선에서 북과 대화할 수 있는 후보,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8.25 경축연설에서 조국통일대전을 선언하고 미국을 ‘핵절벽’으로 끌고 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후통첩 앞에서 오바마 정부가 2013년 이후에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권이 결국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로 좁혀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2월 1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극적인 변화 일어난 대선국면과 북미관계’에서 논한 바 있다.

그런데 만일 남측 군부가 은하 3호 발사시간을 알아내어 무슨 ‘사고’라도 치면, 오바마 정부의 제18대 대선구상과 2013년 이후의 대북정책구상은 시작도 되기 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것이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가 그런 ‘대형사고’까지 일으켜 정세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남측 군부에게 은하 3호가 재장착되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각계각층 민심이 외면하는 바람에 불행한 퇴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자기들이 ‘보호자’로 믿고 따르던 미국으로부터 막판에 뒤통수까지 얻어맞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으로 수많은 광명성들이 우주공간에 날아오를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은하 3호를 오전 10시에 발사하라는 친필명령을 오전 8시에 하달하고, 오전 9시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도착하였고 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위성발사준비정형을 ‘료해’하고 직접 발사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사명령을 받은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는 오전 9시 49분 46초에 강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흰 눈 덮인 대지를 박차고 우주공간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발사 후 9분 27초가 지난 9시 59분 13초에 태양동기극궤도에 가볍게 올라섰다.

그 광경을 위성관제종합지휘소 전광판을 통해 바라보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시야에, 그리고 그 곁에서 감격의 만세를 부르던 과학자, 기술자들의 시야에는, 태양광선을 받아 찬연히 은빛을 발하는 위성 한 기가 4월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12월의 기적’을 불러일으키며 우주공간으로 솟구쳐 오르는 장관이 비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위성을 운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따르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맹세를 기어이 지키기 위해, 지상에서 우주로 날아가는 유훈관철의 은빛 동체였다. 2012년 12월 13일 <조선중앙통신> 취재기자는 광명성 3호 2호기가 태양동기극궤도에 올라서는 순간 위성관제종합지휘소의 과학자, 기술자들 속에서 “폭풍 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그들의 두 볼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우러르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고 썼다.

2012년 12월 12일, 인류에게 100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이 특별한 날은 북의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 2호기가 세계 우주개발사에 새로운 기록을 써넣은 날이다. 요즈음 세계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있지만, 그 날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솟구쳐 오른 북의 첫 실용위성만큼 전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위성은 없었다. 그래서 북의 첫 실용위성은 다른 나라의 실용위성들과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의 시각으로 보면, 자기의 최대 강적인 북이 북에서 말하는 ‘21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일으키며 마침내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였으니 근심과 걱정이 태산 같이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북의 위성발사가 성공하였다는 긴급정보를 받은 백악관은 그 정보를 받자마자, 미국 동부 시간대로 한밤중인데도 긴급성명을 내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다른 한 편, 북측 시각으로 보면, 북의 첫 실용위성은 북에서 말하는 ‘21세기 산업혁명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100% 자력갱생의 위성이어서 특별하고, 미국과 추종국들의 온갖 제재와 세계 최장기 봉쇄를 무력화시킨 부전완승(不戰完勝)의 위성이어서 특별하고,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 실용위성을 꼭 발사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실현한 유훈관철의 위성이어서 특별한 것이다.

북은 앞으로 그런 특별한 위성을 계속 쏘아올릴 것이다.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광명성 3호 2호기는 크기가 작은 위성이지만, 그 작은 위성이 북의 우주개발분야에서 열어놓은 미래는 밝다. 우주강국을 향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지가 강렬하고,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들의 충정과 실력이 대단하기에 밝아 보이는 것이다.  (2012년 12월 1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