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공중우세’와 우매한 ‘맥스 썬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은 대나무로 만든 가건물에서 전투기를 정비하였다

‘베트남 전쟁의 미그-17, 미그-19 부대들(MiG-17 and MiG-19 Units of the Vietnam War)’이라는 제목의 책이 2001년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그 책을 쓴 사람은 당시 헝가리 공군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아이스트반 토퍼쩌(István Toperczer)다. 그는 베트남 인민공군(Vietnam People's Air Force) 박물관에 보존된 전투기록을 열람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과의 면담에서 직접 들은 전투경험에 기초하여 그 책을 집필하였다. 그가 풍부한 사진자료를 곁들여 5년 동안 집필한 그 책은, 베트남 전선에서 벌어진 공중전에 관한 베트남 외부의 기록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가장 자세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 글은 토퍼쩌의 책을 주로 하고 다른 자료들에 들어있는 정보를 약간 더 보충하여 작성한 것이다.

북베트남 공군이 전투력을 처음으로 갖게 된 때는 1964년 2월 3일이다. 그 날 ‘붉은 별’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제921전투비행대가 중국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한 공군 조종사 약 52명과 소련이 보내준 미그-17 36대로 창설되었다. 그 이전에 북베트남 공군에는 전투비행단이 없었으며, 낡은 기종의 수송기 44대를 보유한 제919수송비행단과 낡은 기종의 훈련기 27대를 보유한 제910훈련비행단만 있었다.

1964년 8월 2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구실로 북베트남에 대규모 공중폭격을 개시하여 베트남 전쟁이 확전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북베트남은 당시 중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공군 조종사들을 급히 귀국시켰고, 1965년 여름에는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공군 조종사 30명을 귀국시켜 1965년 9월 7일 두 번째 전투비행단인 제923전투비행단을 창설하였다. 또한 북베트남은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한 공군 조종사들과 북베트남 제910훈련비행단에서 훈련을 받은 공군 조종사들로 1969년 2월 세 번째 전투비행단인 제925전투비행단을 창설하였다.

제921전투비행단에는 미그-17과 미그-21이 혼합배치되었고, 제923전투비행단에는 미그-17이 배치되었고, 제925전투비행단에는 미그-17 4대와 미그-19 9대가 배치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종전단계로 접어든 1974년에 중국이 북베트남에 추가로 보내준 미그-19 24대가 제925전투비행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북베트남 공군은 중국이 미그-19를 면허생산한 J-6 24대를 중국에서 도입하여 급히 실전배치하였는데, 기체에 그려진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표식 위에 베트남 공군 표식을 덧칠하는 바람에 밑에 칠해진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표식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였다.

미국이 북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개시한 1964년 8월, 첫 전투비행단을 창설한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북베트남 공군은 실전경험은 고사하고 숙련도 제대로 되지 못한 초보단계에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 공군은 공군 조종사를 양성하는 공군사관학교도 없었고, 소련과 중국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한 숙련된 조종사도 너무 부족하였고, 그나마 숙련된 조종사들은 후배 조종사들의 훈련을 지도하는 데 열중하여 공중전투에 제대로 참가할 수도 없었다. 북베트남이 중국의 지원을 받아 공군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미그-17 정비공장을 건설하게 된 것은, 종전을 약 1년 앞둔 1974년 2월 22일 북베트남과 중국의 공군지원협정 체결로 가능하게 되었다.

1972년 5월 3일부터 10월 23일까지 미국은 B-52 폭격기를 3,000회나 출격시켜 약 40,000t의 폭탄을 집중투하하였다. ‘라인백커 작전(Operation Linebacker)’이라는 대규모 공중폭격이다. 그 공중폭격으로 북베트남 공군기지들에 주기되었던 훈련기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북베트남 공군은 중국 영토로 피신하여 1973년 말에 가서야 공군 조종사 훈련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공군 조종사 훈련생 10명이 훈련기 한 대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훈련조건이 열악하였다.

또한 베트남 전쟁 시기 북베트남 공군이 운용하는 미그-17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정비사 120명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정비사는 43명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토퍼쩌의 책에는 대나무로 만든 마굿간처럼 생긴 가건물 안에 미그-17을 들여놓고 정비하는 모습을 촬영한 현장사진들이 들어있다.

그처럼 열악한 조건에서 싸워야 했던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에 비해, 미국 공군 및 해군 조종사들은 6.25전쟁에서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고 베트남 전쟁에 대비한 전투훈련을 받았다. 실전경험과 전투훈련을 비교하면, 북베트남 공군의 항공무력은 미국 공군 및 해군의 항공무력에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정비능력을 살펴봐도, 당시 북베트남 공군의 정비능력은 미국 공군 및 해군의 정비능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였다.

북베트남 공군기들과 미국 공군기 및 해군기들이 공중전을 개시하였던 1965년에 북베트남 공군 주력기는 최고속도가 마하 0.9인 소련산 아음속 전투기 미그-17이었다. 그에 비해, 미국 공군과 해군이 베트남 전선 공중전에 투입한 전투기들은 마하 2.0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F-105(썬더칩), 마하 2.2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F-4(팬텀), 마하 1.8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F-8(크루세이더)이었다. 북베트남 공군의 미그-17에는 37mm 기관포와 23mm 기관포밖에 없었지만, 미국 공군 및 해군 전투기들은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하였다.

북베트남 공군기지도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공군기지마다 활주로는 한 개밖에 없었고, 항공연료 공급도 턱없이 부족하였고, 발동기를 돌려 공군기지의 전력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너무도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항공작전에서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더부문에서도 당시 북베트남 공군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국토의 60%가 밀림으로 덮혀있는 베트남의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북베트남 공군이 보유한 레이더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북베트남 공군이 가동한 레이더는 최장 40km밖에서 비행물체를 포착할 수 있는 성능을 가졌지만, 밀림지대에서는 겨우 4km밖의 공중감시만 가능하였다. 이것은 초음속으로 접근하는 미국군 전투기에 대한 레이더 공중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하였음을 뜻한다.

전투기 보유대수로 보나, 전투기 성능으로 보나, 전투기 조종사 훈련수준으로 보나, 전투기 정비능력으로 보나, 전투기 무장력으로 보나, 불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으로 보나, 북베트남 공군은 미국 공군 및 해군에게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미국식 전쟁관념으로 생각하면, 북베트남 공군의 항공무력은 미국 공군 및 해군의 항공무력에 완패를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베트남 전선의 공중전은 예상을 뒤엎고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모든 면에서 그처럼 열악한 조건에 있었던 북베트남 공군기들은 공중전에서 미국 공군기와 해군기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고, 당당하게 맞서싸우며 결국 미국의 ‘공중우세’를 무너뜨렸다. 미국의 전투기 보유대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망정이지, 만일 북베트남과 미국의 전투기 보유대수가 엇비슷하였다면 미국은 공중전 초기에 이미 참패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창설된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북베트남 공군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미국 공군 및 해군을 꺾어버린 세계 전쟁사의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1965년 4월 3일의 첫 공중전

1965년 초 어느 날, 당시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미국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첫 공중전을 벌이게 된 북베트남 공군 지휘소에서는 조국의 하늘을 사수할 결의와 투지에 불타는 젊은 공군 조종사 몇 사람이 전술토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자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로 맞서싸울 첫 공중전에서 그들이 믿는 승리의 요건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 요건은 자기들이 조국 영공에서 공중전을 벌인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 요건은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긴장된 전술토의과정에서 어떤 공군 조종사는 적기를 향해 돌진하여 충돌하는 자폭전술을 제기하였으나, 그런 전술은 채택되지 않았고 아군기 손실을 줄이면서 이길 수 있는 전술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들의 전술토의에 제출된 중요한 정보는 미국군 전투기들이 폭탄과 공대지 미사일을 잔뜩 싣고, 미리 정해진 공격목표를 향해 항로를 거의 바꾸지 않고 비행한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탑재중량과 고정된 항로비행이 미국군 전투기의 민첩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한계라는 사실을 간파한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이 전술토의에서 내린 결론은, 공대공 미사일이 없는 미그-17이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미국군 전투기와 맞서기 위해서는 미국군 전투기를 가까운 거리로 유인하여 근접공중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300m 거리에서 기관포로 적기를 격추하는 공중전을 연습해오던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은 적기에 150m까지 바짝 접근하여 기관포로 격추하는 대담한 연습을 하면서 첫 공중전을 준비하였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1965년 4월 3일 27,000t급 항공모함 핸콕(USS Hancock)에서 이륙한 미국 해군 제211전투비행단 소속 F-8E 4대가 북베트남 영공을 깊숙이 침범하여 오전 9시 40분 타오(Tao), 도렌(Do Len), 함롱(Ham Long) 등에 있는 다리들에 공중폭격을 개시하였다. 7분 뒤 노이 바이(Noi Bai) 공군기지를 이륙한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 편대가 미국군 전투기 편대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거리에 접근한 시각은 오전 10시 9분이었다. 적기를 발견한 순간,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은 연료통을 투하하여 기체무게를 줄이면서 즉각 공중전에 돌입하여, 미국군 전투기 두 대의 뒤쪽으로 재빨리 기동하였다. 미국군 전투기를 뒤쪽에서 바짝 따라가면서 사거리 안에 들어서는 순간, 북베트남 전투기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기관포에 맞은 F-8E 한 대가 화염에 휩싸여 지상에 추락하였다. 이것은 북베트남 공군 편대장 팜 응옥 란(Pham Ngoc Lan)이 조종한 미그-17이 미국군 전투기 F-8E를 사상 처음으로 격추한 순간이었다.

첫 공중전은 계속되었다.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 트란 민 푸옹(Tran Minh Phuong)이 다른 F-8E를 향해 기관포를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오전 10시 15분 판 반 툭(Phan Van Tuc)은 오른쪽에 나타난 F-8E에 접근하여 기관포를 발사하였다. 기관포를 맞은 F-8E는 화염에 휩싸이며 추락하였다.

그런데 기체무게를 줄이기 위해 공중전 직전에 연료통을 투하하였던 편대장 팜 응옥 란의 미그-17는 연료가 거의 떨어져 공군기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지상관제소는 그에게 전투기를 포기하고 낙하산으로 탈출하라고 무선으로 지시하였으나, 북베트남 공군에 전투기가 몇 대밖에 없고, 더욱이 앞으로 미국군 전투기들과 맞서싸울 임무가 남아있다고 생각한 그는 전투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비상착륙을 시도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하던 그의 시야에 두옹(Duong) 강변에 길게 뻗은 모래밭이 내려다보였다. 그는 미그-17을 그 모래밭에 비상착륙시킴으로써 첫 공중전을 완승으로 마감할 수 있었다.

공중전에서 승리한 비결

첫 공중전에서 승리한 북베트남 공군은 그 이후 계속된 공중전에서도 연전연승하였다. 그들이 공중전에서 승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북베트남 공군은 전투기 4대를 1개 편대로 편성하여 공중전에 출격시켰다. 원래 편대장 전투기와 편대원 전투기들의 비행간격은 50~100m였고, 편대비행 중에는 100~200m 간격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밀착대형비행은 공중전에 불리하였다. 그래서 편대장 전투기와 편대원 전투기들의 비행간격을 600~800m로 늘이고, 편대비행 중에는 800~1,200m 간격을 유지하는, 공중전에 유리한 비행대형으로 바꾸었다.

둘째,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군 전투기들은 적기 출현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지상표적을 공격하는 폭탄투하에 신경을 썼다. 그에 대응한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은 매복전술과 기습전술로 맞서싸웠다. 그들의 공중전 전술은 적기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도록 무선교신을 꺼놓은 채 저고도 매복비행을 하다가 적기를 발견하면, 연료통을 투하하고 비행고도를 높여 고속으로 상승하면서 적기를 요격하는 저고도 기습전술이었다. 그런 까닭에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에게는 저공비행이 필수적이었는데, 미국군 전투기들은 고도를 3~5km 정도로 유지하며 비행하였던 것에 비해,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은 고도를 1~2km 정도로 낮게 유지하며 비행하였다. 또한 북베트남 공군 지휘부는 자국 공군 조종사들에게 적기가 600m 안으로 접근하기 전에 사격하지 말라는 전술지침을 내렸다. 저공에서 벌어진 근접공중전에서 낡은 기종인 미그-17의 기동능력은 당시 세계 최강 기종이었던 미국군 전투기 F-105나 F-4의 기동능력을 크게 앞질렀다.

셋째, 공중전에서 미국군 전투기들이 발사하는 공대공 미사일에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가 격추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은 공대공 미사일 회피기동술을 연습하고 출격하였다. 미국군 전투기들이 공대공 미사일 사이드와인더(AIM-9 Sidewinder)를 발사하면, 날아오는 미사일의 꽁무니에서 화염이 분출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적기의 공대공 미사일에서 화염이 분출되는 것을 본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은 즉각 갈지자형으로 비행하였다. 적기가 발사한 미사일은 시속 700~900km의 속도로 날아오게 되는데, 갈지자형 비행으로 미사일 열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넷째,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를 상대로 싸우는 공중전에서 연전연패하여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미국 공군과 해군은 북베트남 공군기지를 집중폭격으로 파괴하는 새로운 전술로 대응하였다. 공중폭격으로 파괴된 활주로는 북베트남 공병대와 인민들이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었으나, 지상에 주기된 전투기가 적기의 공중폭격으로 손상되는 경우, 공중폭격을 피하여 밤중에 전투기를 해체한 다음 대형수송트럭에 싣고 밀림 속의 정비소로 옮겨 수리하여야 하였다. 또한 미국군의 공중폭격을 피하기 위해 북베트남 공군은 Mi-6 수송헬기로 미그-17을 공중수송하여 공군기지로부터 약 30km 떨어진 밀림 속에 건설한 비밀기지에서 정비하고 연료를 보급한 뒤에 다시 수송헬기로 공군기지까지 공중수송하여 긴급히 출격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북베트남 공군은 자국에 파병된 쿠바 공군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1972년 4월 18일 미국 해군 함대를 공격하였다. 북베트남 연안에 침입하여 함포사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미국 해군 함대를 격침시키려는 과감한 해상공격이었다. 북베트남 공군은 함대공격에 앞서 레이더 기지를 해안가로 은밀히 이동배치하여 미국 해군 함대의 움직임을 파악하였다가, 제7함대 기함인 10,000t급 미사일 순양함 오클라호마 시티호(USS Oklahoma City)와 2,400t급 구축함 힉비(USS Higbee)에 기습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미그-17에는 무게가 250kg밖에 되지 않는 소형폭탄을 탑재하였으므로, 함대공격은 함체 일부만 파괴하는 데 그쳤으나, 미국 해군 함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여섯째, 용맹과 투지로 미국군 전투기들에 맞서 공중전을 벌인 북베트남 공군도 손실을 입었다. 열악한 조건에서 속성훈련으로 배출된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은 미국군 전투기의 공대공 미사일에 격추되기도 하였고, 오인사격으로 아군기를 격추한 경우도 있었고, 조종미숙으로 착륙사고를 일어킨 경우도 있었다.

미국군의 ‘공중우세’는 조작된 전설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미국은 지상전보다 공중전에 훨씬 더 많은 전비를 쏟아부었다. 이를테면, 1969년 한 해 동안 미국군 지상전 비용은 당시 화폐가치로 46억 달러였는데 비해, 공중전 비용은 93억 달러였다. 이것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자기의 ‘공중우세’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북베트남 공군은 자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처럼 보인 미국 공군 및 해군과의 공중전에서 승리하여 미국의 ‘공중우세’를 무너뜨렸다.

미국 군부는 자국군 전투기가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와 맞서싸운 공중전에서 격추되거나 또는 북베트남군의 방공미사일에 맞아 격추된 사실을 지속적으로 은폐하였고, 자국군 전투기가 격상당한 사실도 은폐하였다. 다만 미국 군부는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한 조종사가 지상에 낙하하여 북베트남 지상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경우에만 하는 수 없이 격추사실을 인정하였다. 미국 군부는 자국군 전투기의 손실을 은폐한 것과는 정반대로, 자국군 전투기가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를 격추하지 않았는데도 적기를 격추하였다고 주장하는 미국군 조종사를 표창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여놓은 경우도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은 앞부분에 촬영기를 장착하여 공중전 현장을 영상자료에 담을 수 있었다. 북베트남 공군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미국군 전투기를 격추하는 순간 그 촬영기를 작동시켜 격추한 적기의 기종과 고유번호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영상촬영 덕분으로, 북베트남 공군은 공중전 기록을 시간대에 따라 상세히 작성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출격한 자국기 조종사의 이름과 기종, 그리고 격추 또는 격상된 적기 조종사의 이름과 기종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토퍼쩌의 책에는 공중전을 벌이다가 기관포에 맞아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는 미국군 전투기 모습을 촬영한 현장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

예컨대, 베트남 전쟁 시기 1965년 3월 3일부터 1968년 10월 31일까지 북베트남 공군 전투기들은 1,602회 출격하여 19종의 다양한 미국군 전투기, 폭격기, 수송기 218대를 격추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군 전투기들이 북베트남 전투기 121대를 격추하였고, 미국군 작전기는 50대만 격추되었다는 것이다. 공중전 기록을 조작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공군기 가운데 군용헬기 이외에 1,627대가 격추 또는 파괴당했고, 해군기 가운데 530대가 격추되었으며, 해병대 작전기 가운데 군용헬기 이외에 193대가 격추되었다. 그러므로 격추 또는 파괴된 작전기는 모두 2,350대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군 공군 및 해군 전사자는 5,152명(공군 2,587명, 해군 2,565명)이고 실종자는 935명(공군 566명, 해군 369명)이다. 공군과 해군의 전사자 및 실종자를 합하면 6,087명이나 되는데, 격추 또는 파괴된 공군기 및 해군기가 2,350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공군과 해군의 전사자 및 실종자가 약 6,000명이라면, 격추 또는 파괴된 공군기 및 해군기도 약 6,000대가 되어야 이치에 맞는다. 미국이 베트남 전선 공중전에서 패배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약 6,000대의 손실을 2,350대로 크게 축소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공중우세’가 조작된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맥스 썬더’는 우매한 짓이다

북베트남 공군기들이 미국 공군기 및 해군기들과의 치열한 공중전에서 승리하기 15년 전에 미국의 ‘공중우세’를 사상 처음으로 무너뜨린 또 다른 전쟁기록이 있다. <로동신문> 2012년 4월 25일에 실린 보도기사 ‘공군무력창설의 첫 기슭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에 따르면, 1945년 11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창설된 항공구락부인 신의주항공협회에서 비행술을 익힌 인민군 공군의 1세대 비행사들은 5년 뒤에 벌어진 6.25 전쟁에서 용맹과 투지로 미국군 전투기에 맞서싸웠다고 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미제침략자들이 ‘하늘의 공중요새’라고 자랑하던 ‘B-29’를 쏴떨군 추격기 비행사 리문순 영웅, 수 십 차례의 공중전에서 오만한 미군 비행사들을 불굴의 정신력으로 제압하며 조선인민군 비행사의 기개를 떨친 백기락 영웅, 적의 구축함 두 척을 격침, 격상시킨 리희영 영웅”을 비롯한 공화국 영웅 4명이 자그마한 신의주항공협회에서 배출되었다고 한다.

2012년 2월 북에서 출판된 ‘선군태양 김정일 장군’이라는 책에는 1972년 12월 인민군 공군부대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대 지휘관과 오랜 시간 담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그 공군 지휘관은 자신이 1951년 2월에 입대하여 6.25 전쟁 중 항공학교에 다녔다고 하면서, 1956년 황해북도 동쪽에 있는 신계군 상공에서 벌어진 미국군 전투기들과의 공중전 경험담을 이야기하였다. 당시 미국군 F-51 두 대가 황해북도 신계군 상공까지 깊숙이 침입하였는데, 인민군 전투기 두 대가 출격하여 2.4km 상공에서 “주체적인 공중전법에 기초하여 과감한 돌격과 추격전으로” 격추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 공군 지휘관은 베트남 전선에 출전하여 “‘하늘의 왕’이라고 자처하던 미제 침략군의 비행기들을 쥐락펴락하며 답새겼다”고 한다. 미국군이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에 벌어진 공중전에서 인민군에게 사실상 패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2010년 3월 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미국이 공중전에서 패한 두 전쟁’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 공중전에서 연패한 미국 공군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공군은 2012년 10월 26일부터 한국 공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이 땅에서 ‘맥스 썬더(Max Thunder)’라고 부르는 한미 공중종합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2008년부터 해마다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실시해오는 이 대북공중전 연습에 올해는 주한미공군기와 한국 공군기 62대가 동원되어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강되었다.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에서 실전경험을 쌓았고, 미국의 ‘공중우세’를 꺾을 ‘주체전법’을 끊임없이 연마해오면서 그에 부합하는 각종 전투기들과 강력한 방공전력과 견고한 지하요새와 투철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을 미국 공군과 해군의 항공무력이 이길 수 있을까? 창설된지 6개월밖에 되지 않는 북베트남 공군과 싸워서도 패한 미국 공군과 해군은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에게 무참히 깨질 것으로 보인다. ‘맥스 썬더’는 한반도 상공에서 공중전이 재개되는 경우 승리하지도 못할 미국 공군이 무모하게 북을 자극하기만 하는 참으로 우매한 짓이다. (2012년 10월 2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