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 어디까지 왔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MBC> 오보에 나타난 이면의 진실

2012년 9월 11일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텔레비전방송 <MBC> 보도는 오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 군은 북한이 장사정포 등으로 서울 등 수도권에 선제공격을 당한 뒤에야 반격에 나서는 방어적인 군사작전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연습(8월 20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뜻함 - 옮긴이) 때 이른바 ‘선제적 자위권’ 개념을 처음으로 작전에 적용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명백한 오보다.

한반도 군사정세를 아는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미국의 대북전쟁전략은 한국군을 참가시킨 선제공격으로 대북전쟁을 도발하여 공군력과 해군력으로 인민군을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2000년대에 도발한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그런 식의 선제공격으로 개전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하여 불의의 선제공격을 가하는 대북무력침공 시나리오를 준비해두었다.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감행하는 각종 대북전쟁연습은 인민군의 선제공격을 받은 뒤에 반격하는 방어연습이 아니라 인민군이 선제공격을 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공격연습이다. 그런데 <MBC> 보도는 마치 대북방어를 연습해오던 미국군과 한국군이 얼마 전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한 것처럼 오보한 것이다.

<MBC>의 오보는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보도는 미국이 얼마 전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 적용된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를 간략히 언급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서해 5도 지역에 포격도발을 하고 섬을 강점하는 국지도발상황”이 발생하고, 그와 동시에 “북한군이 전방으로 집단이동하는 상황까지 포착”되자, 그제서야 “전면전 징후가 상당하다고 판단한 한미연합사는 작전개시시간 ‘H-hour’를 선포했고, 곧바로 포병화력 등을 동원해 북한의 전방부대 등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정말로 그런 엉터리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에 따라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실시하였다면, 그것은 전쟁소설보다 더 저급한 전쟁만화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MBC>가 보도한 엉터리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것처럼, 인민군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집중포격하고, 특수전 병력을 동원하여 그 두 섬을 점령하고, 인민군 주력부대가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동하는 식의 시차별 전쟁상황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전쟁만화의 몇 개 장면들이다. 북측 자료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인민군의 ‘조국통일대전’은 불의의 시각에 불의의 장소에서 미국이 상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선제공격으로 개시되는 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예컨대 2012년 4월 23일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대남통고문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북의 ‘조국통일대전’은 “일단 개시되면 3~4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수단과 우리 식의 방법으로” 전개되어 “불이 번쩍나게 초토화해버리는”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속결전이라는 것이다.

<MBC> 보도에 나온 전쟁만화 같은 대북전쟁연습설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지만,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남측 언론에 일부러 흘려주어 보도하게 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미국은 대북선제공격을 줄곧 연습해오면서도 그 연습이 “방어적 성격의 군사훈련”이라는 거짓말을 언론을 통해 유포해왔는데,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지난 8월 말에 실시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민감한 군사정보는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가 제공하여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실제로 그처럼 민감한 군사정보를 언론에 흘려준 이례적인 행동은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고조되어 전례 없이 긴장된 현 상황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이 기획하고, 주도하는 대북전쟁연습과 관련하여,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가 선제공격을 언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측 정부가 대북전쟁연습에 관한 정보를 제멋대로 언론에 흘려줄 만큼 대미관계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직 미국 군부만이 대북전쟁연습의 성격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줄 수 있다.

지난 8월 이후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바뀐 까닭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민감한 정보를 미국 군부가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어 언론에 흘려준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그들이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미국과 남측과 일본에 대한 불의의 선제공격으로 개시되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국 군부는 자기들의 대북선제공격능력을 드러내는 일종의 대북심리전술을 동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뒤집어보면,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위협발언을 넘어 실제행동으로 준비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오늘 북미관계는 전례 없는 전쟁위기상황으로 접어든 것이다.

전쟁위기상황으로 접어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는 근거는 전쟁징후인데, 전쟁징후에 관한 정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극비로 논의되기 때문에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언론보도만 읽고 있는 일반대중은 전쟁위기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만 아는 전쟁징후를 구체적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언론보도를 정밀분석하여 한반도 전쟁징후에 관한 유추해석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런 유추해석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 전쟁징후는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북의 언론에 보도된 대미발언을 정밀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측 언론보도를 주시하면, 최근 북측 외무성의 대미발언이 전례 없이 자주 보도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역을 추적하면 이렇다.

2012년 7월 31일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서서 우리를 집중적으로 걸고드는 정치적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고 지적하고, “미국의 적대시정책에는 핵억제력 강화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런 담화내용은 표현방식만 조금 다를 뿐 이전에도 언론에 나온 적이 있으므로 ‘일상적’ 논조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대미관계 발언에서 그런 논조를 폈다.

그런데 지난 8월부터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달라졌다. 이를테면, 8월 2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만일 미국이 구태의연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린다면 차례질 것은 비참한 종말 뿐이다. 침략자들의 선불질에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나가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고, 9월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는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우리의 전면전쟁맛을 한번 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누가 봐도 이런 논조는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이 아니라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이나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의 발언처럼 매우 강경한 전쟁경고인 것이다.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8월부터 ‘조국통일대전’을 직접 언급하는 전쟁경고로 전환된 것은 2012년 7월 29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대변인 성명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우리에 대한 비렬한 국가정치테로음모를 선군의 위력으로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히고, (미국이) “우리의 존엄을 건드리는 국가정치테로와 크고 작은 침략전쟁소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면서 미국 본토를 비롯하여 멀리 떨어져있는 그 본거지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쟁경고를 보냈다.

지난 8월 이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북이 미국과 상호연락해오던 것마저 중단하고 ‘조국통일대전’을 준비하였다고 보는 유추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였음을 밝혔고, 야전군부대를 시찰할 때 야전지휘관들에게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힘을 넣으라”고 지시하였을 뿐 아니라, 9월 1일 인민군 군악단 연주회를 지도하는 자리에서도 “앞으로 조국통일대전의 날이 오면 인민군 군악단의 혁명군악을 높이 울리며 진격해나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쟁결심과 전쟁방도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다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측 최고영도자의 군부대 시찰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2012년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 동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군부대를 33차례 시찰하였다. 시찰대상은 육군 21차례, 공군 6차례, 해군 5차례, 전략로케트군 1차례였다. 군부대 시찰만이 아니라, 3월 15일에는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였다.

북측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으나, 비공개 군부대 시찰까지 더하면 40차례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부터 8월에 이르는 기간에 매주 한 차례 이상 군부대 시찰을 계속해온 것이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매우 정력적으로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군부대를 정력적으로 시찰하는 것은 단지 인민군 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인민군 야전군부대들이 전투준비를 제대로 하였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야전군부대들의 전투준비상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것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말해주는 징후로 해석된다. 이보다 더 명백한 전쟁징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전쟁징후는 병력과 무장장비를 이동하여 전선에 배치하고 작전지휘체계의 통신연락이 급증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지금 북에서 그런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착오다. 인민군은 전선에 공격대형으로 이미 배치되어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병력과 무장장비를 전선으로 이동하여 배치할 필요가 없으며, 공격명령을 내리면 언제든지 현재 위치에서 즉각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또한 인민군 작전지휘체계의 통신연락은 2000년부터 무선이 아니라 빛섬유까벨(남에서는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서 하거나 연락병을 파견하기 때문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 정보부대의 통신감청으로는 인민군 통신연락이 급증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미국은 2.29 북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대북협상을 끝내 거부하였고, 북이 6자회담에 나오고 싶으면 저자세를 보여라는 식의 부당한 요구로 북을 자극하였고, 선제공격을 전제로 하는 실전급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였을 뿐 아니라, 테러범들을 북에 잠입시켜 북에서 최고 존엄으로 숭앙하는 동상을 파괴하고 ‘급변사태’를 일으켜 북측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기도하였다. 국가적 자존심과 자주권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북으로서는 그러한 미국의 외교적 폭언과 군사적 악행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였고, 인민군에게 조국통일대전 명령을 내릴 결심을 굳힌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민족의 숙원이며 염원인 조국통일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의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김정은 제1위원장은 2대에 걸쳐 내려온 조국통일유훈을 자신이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게 되었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통해 열어놓은 평화통일의 가능성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정책에 의해 완전히 가로막힌 것으로 보인다. 평화통일의 길이 가로막힌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금강산 관광길마저 가로막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그처럼 꽉 막혀버린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는 책무를 수행하려면 ‘조국통일대전’으로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는 것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너무 막심한 전쟁피해로 민족 전체가 화를 입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을 생각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의 전쟁피해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풀기 힘든 문제를 고심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2012년 3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판문점을 시찰하면서 남긴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전담판 회의장, 정전협정 조인장, 판문각, 통일각을 “잘 보존관리하여 통일된 조국에서 살게 될 후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원쑤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 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판문점 시찰 중에 남긴 말에는 스쳐지나갈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격전으로 가장 먼저 파괴될 곳은 전선이며, 따라서 전선 중에서도 최전선인 판문점부터 파괴될 것이 뻔한 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판문점에 있는 사적물들과 건물들을 잘 보존관리하여 통일조국의 후대들에게 넘겨주자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최전선에 있는 판문점도 파괴되지 않을 만큼 전쟁피해를 최소화한 ‘조국통일대전’을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의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기적 같은 방도는, 얼핏 생각하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방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북의 ‘조국통일대전’ 개전 직후 미국의 무릎을 꿇리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이 바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생각하는 전쟁방도다.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실전급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는 ‘초강대국’ 미국이 다른 나라에 항복하는 ‘기적’을 상상하기 힘든데, ‘조국통일대전’ 개전 직후 북이 미국의 항복을 재빨리 받아내어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그런 기적 같은 방도가 과연 있을까?

묘향산맥 산악지대에 ‘백두산호랑이부대’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 시기에 종합전술훈련을 지도한 군부대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호랑이부대’라고 부른 제630대련합부대가 바로 그 군부대다. 북에서 ‘대련합부대’는 군단급 부대이므로 ‘백두산호랑이부대’는 제630대련합부대라는 단대호로 부르는 군단급 부대다.

한국군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3일 보도와 <조선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를 종합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호랑이부대’라고 부른 제630대련합부대는 ‘폭풍군단’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최정예 특수전 부대이며, 병사 한 명이 맨손격투로 적 15명을 제압하는 격술훈련을 날마다 3시간 이상 받으며 8년 간의 혹독한 ‘지옥훈련’으로 단련된 ‘인간병기’ 60,000명을 12개 저격여단으로 편성한 인민군 제11군단이다. ‘폭풍군단’은 묘향산맥이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평안남도 덕천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한 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직후 제105땅크사단에 이어 두번째로 시찰한 부대가 있다. 그 부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1월 17일에 시찰한 제169군부대인데, 바로 이 부대가 ‘폭풍군단’ 예하 사단급 부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부대를 시찰하면서 야전지휘관들에게 “올해 우리 함께 멀고 험한 훈련길을 달려 어버이 장군님께서 바라시던대로 부대의 싸움준비를 기어이 완성하자”고 당부하였고, 그 부대를 ‘강력한 주력군’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북의 ‘조국통일대전’에서 ‘폭풍군단’이 매우 중요한 전투임무를 수행하게 되리라는 점을 말해준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폭풍군단’ 예하에는 ‘번개’, ‘우뢰’, ‘벼락’으로 각각 불리는 특수전 여단들이 배속되어 있다고 한다. ‘폭풍’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번개’, ‘우뢰’, ‘벼락’은 피하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만큼 찰나에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자연현상들이다. ‘폭풍군단’의 전투임무는 바로 그런 부대별칭이 암시하고 있다.

남측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폭풍군단’의 전투임무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놀랍게도, ‘폭풍군단’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기 전부터 ‘조용히’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폭풍군단’에 배속된 ‘인간병기’ 60,000명은 한국군 복장으로 갈아입고 공중, 산악, 지하에서 남측으로 뚫린 수많은 밀로(密路)를 통해 남측 각지의 급습목표 인근에 사전침투하였다가 인민군의 선제공격개시와 더불어 주한미국군 기지들과 서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을 급습하여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2년 3월 21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군관들과 병사들이 “손들엇(Hands up), 움직이면 쏜다(Don't move. You will be shot)” 같은 간단한 영어회화문장 100가지를 무조건 외우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인민군이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이 내리면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할 급습작전목표를 세워두었음을 뜻한다.

2012년 2월 8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북의 기록영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에는 ‘폭풍군단’ 특수전 병력이 모형 시가지에서 습격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영상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가지 습격훈련에는 당연히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하는 습격훈련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인민군 ‘폭풍군단’ 특수적 병력의 급습에 대비하여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용감한 통로(Courageous Channel)’라는 작전명으로 재한미국인 소개작전을 해마다 연습하고 있다. 주한미국군 병력은 28,500명 수준이고 재한미국인은 130,000명 수준인데, 주한미국정부기관 근무자들과 주한미국군 가족들 약 10,000명이 최우선 소개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재한미국인 약 140,000명을 추가로 소개해야 한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 2009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재한미국인 소개작전연습은 2박3일 일정으로 실시되는데,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로 집결시킨 다음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피신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개작전연습이 하나마나한 것이라는 점은 이집트에서 벌어진 미국인 소개작전에서 드러났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소요사태가 폭발하였던 2011년 1월 31일부터 미국이 이집트에 있는 미국인을 터키와 이탈리아로 대피시키는 소개작전을 3일 동안 벌였으나, 1,900명밖에 대피시키기 못하였다. 그렇게 된 까닭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공항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한국군 복장으로 갈아입고 선제공격이 개시되기 전에 오산지역에 사전침투하여 공격명령을 기다릴 ‘폭풍군단’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오산공군기지를 급습할 것이다. 오산공군기지 습격전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경비력이 약한 오산공군기지는 순식간에 뚫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2012년 7월 17일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미공군기지가 어이없게도 노동자 한 사람에게 뚫린 사건이 있었다. 군산에 사는 40대 남자가 곡괭이로 기지 철조망 밑을 40cm 정도 파내어 기지 안으로 잠입하고, 기지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급히 현장에 달려간 미국 헌병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진 그는, 미국군기지에 들어가면 미국으로 망명되는 줄 알고 잠입하였다고 하면서 이 땅을 떠나고 싶어 그러했노라고 경찰에게 진술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주한미국군기지 경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났다. 중요한 군사전략거점인 군산의 미공군기지가 민간인의 곡괭이 한 자루에도 뚫려버렸으니, 혹독한 습격훈련으로 단련되고 각종 습격군사장비로 무장한 인민군 ‘폭풍군단’의 급습에는 너무도 간단히 뚫릴 것이다. 물론 오산공군기지만이 아니라 남측의 모든 공군기지와 민간공항이 ‘폭풍군단’의 급습목표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11년 5월 22일 파키스탄 탈레반 무장대원 6명이 카라치에 있는 해군기지에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어 들어가 습격하였다. 파키스탄군은 17시간 동안이나 치열한 교전을 벌려 가까스로 격퇴하였는데, 교전 중에 탈레반 무장대원은 4명이 전사했는데 파키스탄군은 10명이나 전사했으며, 해상초계기 P-3C 오리온 2대가 탈레반 무장대원들의 로켓탄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카라치 해군기지 습격사건은 탈레반 무장대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습격작전능력을 지난 인민군 ‘폭풍군단’의 급습에 주한미국군기지들이 모조리 뚫릴 것임을 예고해준다.

미국군기지들이 그렇게 습격당할 것이므로,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폭풍군단’의 무더기생포작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서울 거주 미국인들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면 교통이 막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폭풍군단 특수전 병력은 교통두절상태에 빠진 서울의 외국인 거주지를 급습하여 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대피시키려고 소개작전에 전세기들을 동원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충격적인 예상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1979년 11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학생들이 미국대사관에 쳐들어가 70명을 생포하였다. 생포된 그들은 외교관 32명, 대사관 경비병력인 해병대원 18명, 현역 군인인 대사관 무관 13명, 중앙정보국 정보원 4명, 통신요원 2명, 민간인 1명이었다. 그 가운데서 18명은 조기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52명은 1981년 1월 20일까지 1년 79일 동안 억류되었다. 두 손을 결박당하고 머리를 흰 천으로 동여맨 미국인 인질들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미국 텔레비전에 방영되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결국 미국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세력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란혁명 중에 미국인 70명이 생포되자 1년 70여 일만에 항복하였지만, 이 땅에서 주한미국군기지들과 외국인 거주지들이 급습당하여 미국군과 미국인이 무더기로 생포되면 미국은 북에게 즉각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이런 급습작전 준비를 완료한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개전 직후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의 항복을 받아낼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한 것이다.  (2012년 9월 2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