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전략 폐기와 미국의 군사패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군 수뇌부가 공개한 8쪽짜리 문건

2012년 1월 5일 미국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를 비롯한 미국군 수뇌부 전원이 한 자리에 모인 국방부 기자회견장, 바로 그 자리에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가 나타났다. 백악관에서 종종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곤 하던 미국 대통령이 국방부 청사에 간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특히 미국군 수뇌부 전원이 배석한 자리에서 군사문제에 관해 입을 연 것은 미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이례적이고 특별한 분위기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에 관한 공식발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군 수뇌부가 참석한 전략회의를 2011년 9월부터 여섯 차례나 직접 주재하면서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정했다. 그 군사전략방침은 미국 국방부가 2012년 1월 5일 공개한 ‘미국의 세계 영도력 유지: 21세기 방위를 위한 우선순위(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ce)’라는 제목의 8쪽짜리 문건에 수록되었다. 그 문건 맨 앞장에는 2012년 1월 3일 오바마 대통령이 쓴 서문과 1월 5일 패네타 국방장관이 쓴 서문이 있다. 문건의 서술순서를 열거하면, ‘서론’에서 시작하여 ‘도전적인 세계안보환경’, ‘미국군의 주요임무’, ‘2020년 합동군 체계를 향하여’, ‘결론’ 순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8쪽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문건에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구체적으로 상론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므로, 유감스럽게도, 그 날 언론에 공개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군사전략에 관한 정보들은 모두 국가기밀이므로, 미국군 수뇌부는 추상적인 어법으로 두루뭉술하게 작성한 간략한 문건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2000년 이후 10년 동안 미국군 수뇌부가 새로운 군사전략을 내오기 위해 논의해온 맥락을 파악해야 그 문건의 추상적 어법에 담긴 뜻을 밝혀낼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영도력 유지’라는 제목의 문건은 미국의 제23대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가 발표하였지만, 그 문건에 나온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준비해온 두 전임 국방장관은 2001년부터 2006까지 국방장관에 재임하였던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 그리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방장관에 재임하였던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였다. 미국군 수뇌부가 지난 10여 년 동안 논의해온 군사전략 전환문제가 그 문건에 추상적 어법으로 표현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을 약화시킨 네 가지 요인

럼스펠드→게이츠→패네타로 이어진 국방장관 3대 재임기간 10년은, 미국의 군사패권이 약화된 시기였다. 지금도 미국은 여전히 ‘초강국(superpower)’이라고 허풍을 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군사패권을 약화시킨 네 가지 요인을 살펴보면 허풍 뒤에 감춰진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첫째, 북측은 미국의 집요한 경제봉쇄와 방해책동을 정면돌파하고, 2006년과 2009년에 지하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를 각각 두 차례씩 실시함으로써 명실공히 핵강국 지위를 확보하였다. 여기서 핵보유국이라는 용어 대신 핵강국이라는 용어를 쓰는 까닭은 북측의 핵무장력이 인도, 파키스탄 같은 비공인 핵보유국 수준을 뛰어넘어 5대 핵강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인데, 그에 대한 서술은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어서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북측의 핵강국 부상이 미국에 의해 50년 동안 장악, 주도되어온 핵확산금지체제에 치명적인 파열구를 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은 파열구가 생긴 핵확산금지체제를 붙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측의 핵강국 부상과 그에 따른 핵확산금지체제 파열은 세계정치사를 다시 쓰게 만든 엄청난 사변이었으나, 세계의 시야가 미국의 정보은폐와 정보조작에 가려져서, 그처럼 엄청난 사변이 일어났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측의 핵강국 부상과 그에 따른 핵확산금지체제 파열은 미국의 군사패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핵패권을 약화시킨 요인이다.

핵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북측과 미국이 벌인 격렬한 정면대결에서 전술적 패배를 거듭하며 패색이 짙어진 미국은 자기의 군사패권이 약화되고 있음을 알았다. 미국이 2003년 3월 20일에 일으킨 이라크 침략전쟁은, 북미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군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한 전쟁범죄였다. 8년 동안 지속된 그 침략전쟁은 핵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북미대결에서 미국이 완패한 직후인 2011년 12월 18일 미국의 종전선언으로 피묻은 막을 내렸다. 핵강국인 북측을 감히 침공할 수 없었던 미국은, 군사력이 매우 약한 이라크를 ‘희생제물’로 삼았으나, 이라크 침략전쟁은 미국에게 막대한 전비부담을 안겨주면서 미국의 국가재정위기를 촉진시킨 자해적 변수로 작용하였다.

둘째, 북측의 핵강국 부상만이 아니라, 중국의 군사력 증강도 미국의 군사패권을 약화시킨 요인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금 미국에서 제기되는 ‘중국위협론’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으로 군사패권이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핵억지력과 미사일전력이 급속히 강화되었다. 이를테면, 2009년 3월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의 공식발언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여 핵억지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중국이 2007년 1월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지구궤도 859km 상공에 떠있는 폭 1.5m의 낡은 기상위성을 파괴한 것이나, 미국의 제7함대 항모강습단을 공격할 수 있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2009년 10월에 공개한 것은 미국의 군사패권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 군사력의 증강추세를 파악하여 군사적으로 대처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중국과 미국이 무력충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북측의 핵강국 부상처럼 미국에게 치명적인 위험은 아니다.

셋째, 발생원인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2001년 9.11 사태는 미국이 테러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충격사건이었다. 대규모 테러공격으로 발칵 뒤집힌 미국이 즉각보복을 명분으로 내걸고 2001년 10월 7일에 도발한 전쟁범죄가 아프가니스탄 무력침공이다. 이른바 ‘반테러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한 그 무력침공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장기화되었다. 국제테러집단의 반미테러공격과 그에 대항한 미국의 ‘반테러전쟁’은 미국을 상시적인 테러공포에 밀어넣고 미국군을 저강도전쟁의 수렁에 빠뜨려 군사패권을 약화시켰다. 2008년 2월 9일 <AP통신>이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군의 피로도는 상당한 정도로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제3지역에서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도 신속하고 완전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용문에 나온, “미국군의 피로도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식의 표현은 미국의 군사패권이 약화되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넷째, 미국의 금융권 파산과 그에 연동되어 발생한 경제공황도 미국의 군사패권을 약화시켰다. 미국의 주식시장 파산과 그에 연동되어 발생한 1929년의 경제공황이 한 차례의 대형폭발양상으로 터졌던 것과 달리, 미국의 금융권 파산과 그에 연동되어 발생한 2008년의 경제공황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충격을 주는 파상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의 정보은폐와 정보조작에 시야가 가려진 세계는 경제공황기의 대량실업과 빈곤확산에 빠져 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의 근본원인이 경제공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주목하는 것은, 경제공황이 미국의 대폭적인 군비삭감을 강제하고, 그 군비삭감이 미국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군사력 약화가 미국의 군사패권지위를 위축시키는 순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위에 서술한 네 가지 요인들이 미국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혔고, 그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군사패권은 약화되었다. 군사패권이 약화되는 심각한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미국의 몸부림이 바로 군사전략 전환이다. 미국 국방부가 문건 제목을 ‘미국의 세계 영도력 유지’라고 정한 것만 보더라도, 군사패권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절박한 심리가 느껴진다. 2012년 1월 8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에 패네타 국방장관과 함께 대담자로 출연한 뎀프시 합참의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상이한 지정학적 도전, 상이한 경제적 도전, 그리고 경제력과 군사력의 전환 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적응시켜 그러한 전환과 변곡점에 도전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이다.” 그는 절제된 용어로 표현했지만, 미국의 군사패권이 변곡점을 지나 하강곡선을 그리며 10년 동안 추락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읽는 독해법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전략균형을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그 문건에서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균형을 다시 잡을 것”이라 하였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전략균형을 재조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중요도에 따라 그 문건에 열거된 순서를 살펴보면, 재조정의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군사전략균형 재조정이란, 그 문건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미국이 “인도와의 장기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투자하는 것”이다. 여기서 투자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미국이 앞으로 인도에 대한 군사지원을 확대한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둘째, 군사전략균형 재조정이란, 그 문건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면, “핵무기 프로그램을 활발히 추진 중인 북측의 도발을 억제하고 방어하기 위해 우리는 동맹국들 및 다른 지역국가들과 효율적으로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인용문은 난해하다. 핵강국으로 부상한 북측을 핵개발 도상국으로 폄하한 것부터 난해도를 높이는 사실왜곡이며,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한다는 기만적 어법도 역시 난해도를 높인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한다고 표현할 게 아니라 정전체제를 유지한다고 표현해야 옳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서술한 문건에서 유독 한반도 군사문제에 대해서만 현상유지방침을 천명하였다는 점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군사전략 현상유지는 군사전략 전환이 아니다. 군사전략 전환을 서술한 문건에서 왜 한반도 군사전략을 현상유지한다고 서술한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이 한반도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공개할 수 없어서 은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셋째, 군사전략균형 재조정이란, 군사력을 증강하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넷째, 군사전략균형 재조정이란, 중동지역 친미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 지역에서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며, 중동 각국의 정권교체와 내부분쟁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중동지역에서 미사일 및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이며,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유럽,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에 대한 서술도 있으나, 그에 대한 서술은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어서 생략한다.

열 가지 군사임무를 제시하고,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하다

미국군 수뇌부는 ‘미국의 세계 영도력 유지’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군사전략균형을 재조정하기 위한 열 가지 군사임무를 열거하였다.

1) 반테러전 및 비정규전 수행
2) 침략 억지와 격퇴
3) 반접근 및 지역거부 도전(anti-access/area denial challenges)에 맞선 대응작전 수행
4) 대량파괴무기 개발 및 확산 저지
5) 사이버공간과 우주공간에서의 작전력 향상
6) 핵억지력 유지
7) 본토 방어와 국내치안 지원
8) 해외전력주둔 및 해외군사훈련 지속
9) 안정화작전 및 반란진압작전 수행
10) 인도주의 및 재난구조를 위한 작전 수행

위의 10대 주요임무들 가운데서,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에 직결된 것은 2번, 3번, 4번, 5번, 6번, 8번이다. 그런데 그 여섯 가지 임무들보다 반테러전 및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더 중시하여 맨앞자리에 앉혔다.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에서 이러한 군사임무의 우선순위 설정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2번, 3번, 4번, 5번, 6번, 8번은 모두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는 정규전에 관련된 군사임무들이다. 그와 달리, 1번은 비정규전 군사임무이고, 9번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수행한 군사임무다. 비정규전 군사임무를 첫 번째로 서술한 것은 그 군사임무를 가장 중시한다는 뜻이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서 수행한 군사임무를 아홉 번째로 서술한 것은 그 군사임무를 사실상 기피한다는 뜻이다.

미국군 수뇌부가 정규전 군사임무보다 비정규전 군사임무를 더 중시하여 맨 앞자리에 앉힌 것은, 미국의 군사전략방침이 정규전 중시에서 비정규전 중시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해설한 2012년 1월 5일부 기사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장기화된 반란진압전에 재래식 지상군과 해병대 병력을 보내는 것 대신에, 반테러 비정규전에 적합한 맞춤형 전력에 더 집중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하였다.

미국군 수뇌부가 ‘미국의 세계 영도력 유지’라는 제목의 문건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전쟁개념을 대규모전(major war), 지역전(regional war), 반테러 비정규전(counterterrorism irregular war)으로 구분한 것은 분명하다. 대규모전이란 전면전이고, 지역전이란 국지전이고, 반테러 비정규전이란 반미저항세력을 진압하는 비정규전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이 전면전이나 국지전보다 비정규전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전환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두 개의 전쟁전략(two-wars strategy)을 공언해왔다. 물론 미국은 두 개의 전쟁전략을 공언하였을 뿐 실행에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기의 군사패권을 상징하는 그 전쟁전략에 대해 곧잘 언급하곤 하였다.

미국의 군사패권을 상징하는 두 개의 전쟁전략에서 두 개의 전쟁이란 어떤 급의 전쟁을 뜻하는 것일까? 오래 전 냉전기에 미국이 말했던 두 개의 전쟁전략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면전과 국지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전쟁전략이었다. 그와 달리, 냉전기가 막을 내린 뒤에 미국이 군사정세변화에 맞춰 변형시킨 두 개의 전쟁전략은, 유럽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대규모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없으므로, 아시아로 집중되었다. 아시아에 집중된 두 개의 전쟁전략은 한반도와 페르시아만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전쟁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반도에서 북측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면서 동시에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을 상대로 국지전을 벌이는 전쟁전략이었다. 미국군 수뇌부가 냉전기 이후 1990년대에 작성한 ‘작전계획 5027’은 그러한 한반도-페르시아만 동시전쟁전략에 기초한 북침전쟁계획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북측의 핵강국 부상은 미국의 변형된 두 개의 전쟁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군 증원병력 69만명을 투입한다는 ‘작전계획 5027’이 무용지물로 폐기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북측이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을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추었다는 충격적인 군사정보를 미국이 파악한 이후, 미국은 한반도-페르시아만 동시전쟁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군 수뇌부가 야전사령관들과 군사전문가들을 참가시킨 가운데 10여 년 전에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준비하기 시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작전계획 5027’이 무용지물로 폐기된 이후, 미국이 만지작거린 것이 ‘개념계획 5029’인데,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계획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급변사태를 상정한 것이어서 차마 작전계획으로는 격상시키지 못한채 개념계획으로 남겨두고, 언론에 관련정보를 흘려주는 식으로 체면을 차리고 있다. 북측의 핵강국 부상으로 미국이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하고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을 준비해왔다는 것, 바로 이것이 미국군 수뇌부가 초강국을 자처해온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말할 수 없었던 북미관계의 은폐된 진실이다.

그렇다면, 한 개의 전쟁전략은 어떤 것일까? 2012년 1월 3일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한 미국이 한 개의 전쟁전략을 수립하였을 것으로 보고, 그 새로운 전쟁전략을 ‘원 플러스 전략(one-plus strategy)’이라 불렀다. 그것은 미국이 한 지역에서 국지전을 벌이는 동시에, 다른 적대국이 또 다른 지역에서 국지전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억지한다는 뜻이다. 2012년 1월 4일 <블룸버그 통신>은 한 개의 전쟁전략에 대해 보도하면서 미국이 중국과 이란에 전쟁전략의 초점을 맞추었다고 지적하였지만, 그런 지적에는 착오가 섞여있다. 미국은 핵강국들인 중국이나 북측과는 전쟁을 하지 못하며, 미국이 국지전을 도발할 상대는 비핵국가인 이란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국지전을 도발하는 경우 이란의 강력한 반격으로 입을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하지는 못하고 엄포만 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 개의 전쟁전략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미국의 군사패권도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평화회담 개최를 눈앞에 둔 한반도 정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2008년 10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수뇌부는 2011년까지 지상군을 54만7,000명 수준으로 유지하고, 해병대를 앞으로 몇 년 안에 20만2,000명 수준으로 증원하려고 하였다. 당시 미국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적정 병력수준을 높게 잡으면서, 지상군 75만명, 해병대 25만명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꺼내놓기도 하였다. 실제로 미국군 수뇌부는 2008년부터 5년 동안 지상군 병력 74,000명을 증원하는 계획을 세웠고, 첫 증원조치로 2008년 9월 12일 태평양지역에 지상군 4,200명을 증원배치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3년 전까지만 해도 병력을 증원하였던 미국군 수뇌부는 지금 병력감축의 덫에 걸렸다. 미국에 몰아친 경제공황이 군비삭감과 병력감축을 강제한 것이다. 이를테면, 2012년 1월 26일 패네타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육군 병력 8만명을 감축하여 57만명을 49만명으로 줄이면서 전투여단 45개를 32개로 줄이고, 해병대 병력도 2016년까지 20만2,000명에서 2만명을 감축하여 18만2,000명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상군 병력 10만명을 감축한다는 뜻이다. 2012년 2월 16일 미국 국방부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미국군 병력 11,000명을 2017년까지 철군한다고 밝혔다.

패네타 국방장관이 발표한 10만명 감축계획은 4,970억 달러의 군비를 삭감하는 잠정적 방안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군비삭감이 4,970억 달러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경제공황이 더욱 악화되고 그 기간이 늘어날수록 군비삭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의회가 1조5,000억 달러의 재정절약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군비삭감은 4,970억 달러에서 9,750억 달러로 배증된다. 그처럼 대폭적인 군비삭감을 실행하려면, 10만명 감축계획으로는 어림도 없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하여 항공모함을 한 척도 줄이지 않고 11척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은 군비삭감이 해군이 아니라 지상군에 집중된다는 뜻이므로 지상군 병력은 20만명 정도 감축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국군 병력현황을 보면, 유럽에 78,359명, 아시아태평양에 68,443명, 중동 및 아프리카에 16,105명, 미국을 제외한 남북미주에 1,672명을 배치하였으니, 해외주둔병력은 모두 16만4,579명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에서는 일본에 39,222명, 남측에 28,500명을 배치하였고,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에는 각각 200명 미만씩 배치하였다. 주한미국군 28,500명은 지상군 19,755명, 공군 8,815명, 해군 274명, 해병대 242명으로 편성되었다.

세계 각국의 미국군 병력배치현황에서 유달리 특수한 조건을 지닌 해외배치 미국군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주한미국군이다. 주한미국군이 지닌 특수한 조건이란, 강력한 미사일전력, 특수전전력, 사이버전력으로 무장한 인민군의 비대칭전력 앞에서 주한미국군이 군대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였음을 뜻한다. 인민군의 강력한 비대칭전력이 주한미국군의 전투능력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다. 인민군의 비대칭전력에 대한 서술은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어서 생략하지만, 2011년 10월 28일 서울에서 진행된 제43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비대칭 군사위협 증가”를 명시한 것만 봐도, 그런 사정을 알 수 있다.

전투능력을 봉쇄당한 주한미국군은 정치임무만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정치임무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주한미국군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호장치가 있으니, 그것이 핵우산이다. 미국발 허위선전만 들어온 사람들은 핵우산이 ‘북한의 남침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지켜준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핵우산은 이 땅에서 군사지배권을 행사하는 주한미국군을 지켜주는 핵패권이다. 다시 말해서, 핵우산은 주한미국군이 이 땅에서 행사하는 군사지배권의 핵패권적 보호장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은 핵패권을 틀어쥐고 남측을 자기의 군사지배권 안에 결박해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것처럼, 미국의 핵패권은 북측의 핵강국 부상으로 치명상을 입었고, 미국은 상호핵위협을 제거하는 핵안보회담을 북측과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11년 7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세 차례 진행된 북미고위급회담이 바로 핵안보회담이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북미핵안보회담 의제는 미국이 핵우산을 철거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측이 핵시설과 핵물질을 폐기하는 상호동시행동원칙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다. 그런데 미국은 북측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북미핵안보회담이 진전되어도 북측에게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못하고, 북측의 핵시설과 핵물질 폐기만을 공개적으로 요구할 뿐이다. 미국은 북측에게 핵무기 폐기요구를 비공개로 은밀히 제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측의 핵강국 부상으로 핵패권에 치명타를 맞은 미국이 장차 북미핵안보회담에서 핵우산을 철거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주한미국군을 지켜주는 핵패권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핵우산 철거는, 미국군 수뇌부가 핵패권으로 보호하지 못하게 된 주한미국군의 운명이 철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012년 2월에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은 북측이 요구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사실상 수용하였다. 그에 상응하여 북측도 미국이 요구한 녕변 우라늄농축 임시 중지를 수용하였다. 그 역사적 합의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세계의 시야를 가린 채 은밀하게 주한미국군 철군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반제군사전략을 수행하는 사회주의핵강국과 맞붙은 정면대결에서 패한 미국은 6자회담을 재개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대폭적인 군비삭감으로 주한미국군 철군이 불가피해졌다는 식으로 적당히 둘러댈 것이다. 한반도 정세는 평화회담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12년 3월 2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