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합의는 평화실현 앞당길 불멸의 이정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이 서술한 9개항, 미국이 서술한 6개항

2012년 2월 29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북미고위급회담 결과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동시에 발표하였다. 발표형식부터 심상치 않았다.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을 취했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는 언론발표문(Press Statement)을 내는 형식을 취했다. 발표형식이 그처럼 달랐으므로 서술방식도 서로 달랐고, 서술방식이 달랐으므로 똑같은 내용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였다.

회담결과를 세상에 알리려면, 외교관례대로 북측과 미국이 공동으로 작성한 합의문을 발표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그처럼 이례적인 발표형식을 취했을까? 북측 외무성 대변인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동시에 발표한 2.24 합의를 정밀분석하면, 왜 그처럼 이례적인 형식으로 발표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말쓰임새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12년 2월 29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동시에 발표된 내용은, 2월 23일과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쌍방이 최종 합의한 결과이므로, ‘2.29 합의’가 아니라 ‘2.24 합의’다.

2.24 합의는 정치합의 기본틀을 탄탄히 짜놓은 것이기는 하나 정식 합의문으로 발표되지는 않았기에, 건성으로 훑어보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북측이 발표한 본문과 미국이 발표한 본문을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읽어야 뜻이 통한다. 2.24 합의는 문안심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기에, 그 합의를 읽으려면 해석적 본문분석(interpretive textual analysis)이 필요하다.

본문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2.24 합의를 세 차례에 걸친 북미고위급회담의 결과라고 좁혀 생각할 게 아니라, 1992년 1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미고위급회담 이후 북미회담 20년사를 총결산한 것으로 넓혀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북미회담 20년 동안 북측이 미국에게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요구와 미국이 북측에게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2.24 합의에 담긴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선이해(preunderstanding)가 없으면, 2.24 합의는 미국이 북측에 ‘영양지원(nutritional assistance)’을 해주고, 북측은 미국에게 우라늄농축 임시중지조치를 취해주기로 상호합의한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2.24 합의에 관한 미국과 남측의 언론보도가 실제로 그런 착각에 빠져있다.

2.24 합의를 담은 북측 본문의 서문은 누가, 언제, 어디서 회담하였는지 밝히면서, “2011년 7월 10월에 진행된 두 차례의 고위급회담의 련속과정인 이번 회담에서는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신뢰조성조치들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보장,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문제들이 진지하고 심도있게 론의되였다”고 덧붙였다. 그와 달리, 미국측 본문의 서문은 “미국 대표단이 미국과 조선이 진행한 제3차 탐색적 양자회담을 마치고 베이징에서 돌아왔다”고 언급하고 나서, 본문에 들어가야 할 합의사항 일부를 중복하여 매우 긴 문장으로 서술하였다.

미국이 본문에 넣어야 할 합의사항을 서문에 넣으면서 의도적으로 강조한 내용은 비핵화 사전조치에 관한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사전조치에 관한 합의사항을 맨앞에 올려놓으면서 강조한 까닭은, 자기들이 관철한 그 합의사항을 세상에 과시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국은 북측에 대한 식량 및 영양식품 제공에 관한 합의사항을 서문에도 넣고 본문의 합의사항에도 또 넣어 의도적으로 크게 부풀렸다. 이러한 ‘과대포장’은 북측이 마치 식량과 영양식품을 제공받기 위해 북미고위급회담을 진행한 것처럼 헷갈리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미국은 정작 강조하고 정확히 서술해야 할 합의사항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생략해버림으로써 2.24 합의의 진상을 감춰보려는 ‘꼼수’까지 썼다. 북측 외무성이 2.24 합의를 9개항으로 서술한 것에 비해, 미국 국무부는 그것을 6개항으로 줄여 서술한 것만 봐도, 그들의 고의적인 생략수법이 드러난다.

명백하게도, 북측은 2.24 합의를 자세히 서술하여 합의진상을 세상에 알리려 하였고, 미국은 선별적 강조, 모호한 서술, 생략수법으로 합의진상을 축소하였다. 2.24 합의를 세상에 발표하는 데서 북측과 미국이 그처럼 서로 엇갈린 태도를 취한 것은, 세 차례 진행한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쌍방은 정전협정을 인정한다”고 규정한 합의사항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원래 북측과 미국이 각각 발표한 합의사항들에는 일련번호가 붙어있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도록 편의상 일련번호를 붙인다.

북측 본문 제1항에는 “조미 쌍방은 9.19 공동성명 리행의지를 재확인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고 씌여있다. 그와 달리, 미국측 본문 제3항에는 “미국은 1953년의 정전협정을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인정한다(recognize)”고 씌여있다. 북측 본문 제1항(미국측 본문에서는 제3항)이 바로 북측이 세 차례에 걸친 북미고위급회담에서 관철한 가장 중요한 회담성과다.

그런데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식으로 명료하게 서술하지 않고, 왜 “정전협정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서술하였을까? 정전협정을 인정한다는 말은, 불의의 시각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어떤 국제협정을 공식 인정한 쌍방이 그 협정을 준수할 의무를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정전협정을 인정한다는 합의가 정전협정 준수의사를 포함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쌍방이 정전협정을 인정한다는 합의가 무슨 뜻인지 알려면, 아래와 같은 배경설명이 요구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직후 협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협정을 위반하는 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협정위반행위를 저질렀다. 이를테면, 정전협정에는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륙해공군의 모든 부대와 인원을 포함한 그들의 통제 하에 있는 모든 무장력량이 조선에 있어서의 일체 적대행위를 완전히 정지할 것을 명령하고 또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되었는데, 미국은 지난 59년 동안 세계 최장 기간의 대북군사정찰을 계속해오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해오고 있다. 또한 정전협정에는 “조선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드려오는(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고 규정되었고, “조선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드려오는 것을 정지한다”고 규정되었는데, 미국은 수시로 감행하는 북침전쟁연습 때마다 남측에 수많은 해병대병력과 공군병력을 증원배치하고 전투기, 전차, 장갑차, 무기와 탄약 같은 전쟁수단을 추가배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핵공격 준비태세를 갖춘 항모강습단과 전략잠수함들까지 증강배치해왔다.

이처럼 미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바람에 그 협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작동기능을 멈추었다. 그에 따라 정전협정을 이행하는 법적 주체인 군사정전위원회도 없어졌고, 그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법적 주체인 중립국감독위원회도 없어졌다. 이를테면, 1994년 4월 28일 북측은 외교부(당시 명칭)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여 “정전협정은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이장으로 되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사실상 주인 없는 기구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세우기 위한 북미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미국이 그 제의에 침묵하자, 북측은 1994년 5월 24일 군사정전위원회를 폐쇄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였으며, 1995년 5월 3일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사무실을 폐쇄하고 미국군 군사정전위원회 요원들과 중립국감독위원회 요원들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출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정전협정은 완전히 사문화되고 말았는데, 2011년 7월부터 이번까지 세 차례 진행된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미국에게 정전협정을 인정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관철시켰다. 놀랍게도, 미국이 죽인 정전협정을 북측이 되살려놓은 것이다. 1994년에 사멸된 정전협정이 2.24 합의에 의해 재생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북측은 왜 사멸된 정전협정을 재생시켰을까? 북측 본문 제1항(미국측 본문에서는 제3항)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 합의사항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정전협정을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북측이 사멸된 정전협정을 재생시켰음을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재생시킨 정전협정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삼고, 그 초석 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하였음을 말해준다.

2.24 합의문에 나온 ‘초석’이라는 말은, 기둥을 세우기 위해 놓는 주춧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기 시작한 시공일을 새겨넣은 모퉁잇돌을 뜻한다. 서양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주춧돌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시공일을 새겨넣은 모퉁이돌 한 개를 건물정면 오른쪽 밑에 놓는다. 시공일을 새긴 모퉁잇돌을 놓는 풍습은 서양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모퉁잇돌과 주춧돌을 혼용하면서 한자말로 초석(礎石)이라 통칭하지만, 모퉁잇돌과 주춧돌은 서로 다른 것이다. 2.24 합의에 나오는 초석은 주춧돌이 아니라 모퉁잇돌이다. 우리글로 작성한 북측 본문에는 혼용관례에 따라 초석이라는 한자말을 썼지만, 영문으로 작성한 미국측 본문에는 주춧돌(foundation stone)과 구별하여 모퉁잇돌(conerstone)로 명시했다.

국제관계에서 쓰이는 통상적 외교어법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초(basis)’라고 표기해야 정상인데, 북측이 기초라는 관용어 대신에 외교문서에서 쓰이지 않는 초석이란 특정용어를 2.24 합의에 적시한 것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건축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세상에 알려주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2.24 합의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초석’을 놓고 ‘평화의 집’을 짓기 시작한 ‘착공일’은 2012년 2월 24일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정이 그 날 시작된 것이다. 2.24 합의가 이 민족에게 안겨준 중대한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반도 평화회담은 어떻게 열리는가?

세 차례에 걸친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재생시킨 북측의 의도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북측과 미국이 대등한 지위에서 공정하게 합의한 국제협정이므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면 정전협정에 조인한 쌍방이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는 공식 절차가 필요하다. 2.24 합의는 북측과 미국이 그러한 재확인 절차를 밟았음을 말해준다.

북측과 미국이 재확인 절차에 따라 정전협정을 유효화하면, 어떤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일까? 정전협정 제4조가 국제법적 효력을 발생한다. 정전협정 제4조는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2.24 합의가 정전협정 제4조의 국제법적 효력을 발생시켰으므로, 제4조에 명시된 대로 북측과 미국은 2.24 합의로부터 3개월 안에 고위급 특사를 상호교환하여 이번에 끝난 북미고위급회담보다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개최하고, 평화보장조치를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24 합의는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실현,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이정표’를 세워놓은 것인데, 그 ‘이정표’를 따라가는 쌍무적 이행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문제를 풀려면 당연히 회담진행의 연속성, 합의내용의 일관성, 합의이행의 성실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을 보장할 수 있을까? 세 차례 진행한 북미고위급회담보다 한 급 높은 북미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북측 본문 제8항에는 “쌍방은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조미관계를 개선하며 비핵화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각측의 리익에 부합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회담을 계속해나가기로 하였다”고 씌여있다. 이것은 한 급 높은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릴 것임을 예고한다.

한 급 높은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면, 2.24합의의 ‘이정표’를 따라 평화보장조치에 관한 합의를 내올 것이다. 원래 평화보장조치에 관련한 북측과 미국의 합의는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 디씨에서 발표된 ‘조선과 미국 사이의 공동코뮈니케’에 명시되었다. 거기에는 “쌍방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고 씌여있다. 비록 미국의 불이행으로 북미 공동코뮈니케가 실현 도중에 중단되었지만, 북측과 미국이 그것을 파기하지 않았으므로 국제법상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고 씌여있다. 물론 9.19 공동성명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북미 공동코뮈니케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화보장조치에 관한 합의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 효력을 발생하고 있으므로, 북측과 미국에게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회담을 소집할 정치적 의무가 있다. 미국의 이행거부로 오랫 동안 지체되어온 그 의무는, 이번에 마침내 ‘이정표’가 세워짐으로써 ‘이행의 길’을 찾은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에 따라 한반도 평화회담을 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역사적 사변이 일어날 것이다.

종전선언에 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명시되었는데,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씌여있다.

종전선언과 달리,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교체하는 것이므로 정전협정에 조인한 법적 책임주체들 사이에서 체결되는 것이 국제법상 타당하다. 정전회담이 진행되던 당시 남측은 정전회담을 끝내 반대하면서 ‘북진통일’을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넘겨주어 국제법적 지위를 상실하였으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법적 주체로 될 수 없다. 또한 중국은 정전협정 조인에 참가하였으나 한반도에서 오래 전에 철군하였고, 협정이행주체들이 참가하는 군사정전위원회마저 해체되는 바람에 평화협정 체결의 실질적 주체로는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회담에 4자가 참가하여 종전선언은 4자가 하되, 평화협정 체결은 북측과 미국이 법적 주체로 조인하고 남측과 중국이 지지자로 조인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12월 9일부터 10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1차 4자회담에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당시 직책)은 “조미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우리가 4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기초적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14년 전에 그렇게 말하였던 그가 이번에 2.24 합의를 채택한 북미고위급회담에 북측 대표로 참석하였으니, 앞으로 열릴 한반도 평화회담의 방향을 예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미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걸다

2.24 합의는 북측과 미국이 관계개선을 추진하기로 하였음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북미관계개선과 관련하여 북측 본문 제3항에는 “미국은 조선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으며 자주권 존중과 평등의 정신에서 쌍무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재확언하였다”고 씌여있다. 미국측 본문 제1항에는 “미국은 조선에게 적대의사를 갖지 않았으며, 주권과 평등을 상호존중하는 정신으로 양자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재확인(reaffirm)하였다”고 씌여있다.

위의 합의사항에서 주목하는 것은 ‘재확인’이라는 낱말이다. 재확인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북측과 미국이 이전에 이미 공약한 적대의사 포기와 관계정상화 추진을 이번에 다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북측과 미국이 이전에 공약한 적대의사 포기와 관계정상화 추진은 2000년의 북미 공동코뮈니케와 2005년의 9.19 공동성명에 각각 들어있다. 이를테면, 북미 공동코뮈니케에는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공약을 확언하였다”고 씌여있다. 9.19 공동성명에는 “북측과 미국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씌여있다.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면, 관계개선 분위기부터 조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측 본문 제4항에는 “미국은 문화, 교육,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조치들을 취할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씌여있고, 미국측 본문 제5항에는 “미국은 문화, 교육,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 교류(people-to-people exchanges)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씌여있다.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를 세상에 발표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북측 6자회담 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의 방미일정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미국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미국 정부관리들이 방북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2.24 합의에 따라 북측과 미국의 상호방문 기회가 올해 각 분야로 확대되면서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한 활발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런 분위기 조성에는 상호방문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식량제공도 포함된다. 북측 본문 제5항에는 “미국은 조선에 24만t의 영양식품을 제공하고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으며 쌍방은 이를 위한 행정실무적 조치를 즉시에 취하기로 하였다”고 씌여있다. 미국측 본문 서문에는 “우리는 영양지원 배분에 필수적인 집중감시체계에 의거하여 우리가 제안한 24만t 규모의 영양지원활동을 진전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행정적 세부절차를 매듭짓기 위해 조선과 만나기로 동의하였다”고 씌여있다. 미국의 대북식량제공문제는 영양식품을 제공하느냐 아니면 곡물을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북미회담에서 잠시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24만t의 영양식품을 제공하고 추가로 곡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2012년 2월 29일 보도를 읽으면, 미국은 대북식량제공이 인도주의 문제이므로 비핵화 문제와 분리해서 다루자고 주장했고, 그 동안 북측도 똑같이 주장해왔는데, 북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식량제공문제를 2.24 합의에 넣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이번에 그 합의사항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은 왜 식량제공문제를 2.24 합의에 넣었을까?

북미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지난 시기에 대북식량제공은 인도주의 문제로 되었지만, 일단 북미관계가 개선되기 시작되면 그 문제는 관계개선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치로 성격전환을 일으킨다. 2.24 합의로 변화된 오늘의 상황에서, 대북식량제공은 미국이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touchstone)으로 전환되었다. 2012년 3월 7일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로벗 킹(Robert King)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미국의 대북식량제공에 따르는 행정실무조치를 마무리짓는다 했으니, 이전과 달리 관계개선의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신뢰조성조치를 어떻게 합의하였을까?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에서 적대의사 포기와 관계정상화 추진을 재확인하였으므로, 그것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한 사전조치부터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북측 본문 제2항에는 “쌍방은 또한 조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련의 신뢰조성조치들을 동시에 취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씌여있는데, 미국측 본문에는 이 항목이 빠져있다. 북측은 신뢰조성조치라는 용어를 쓰고 미국은 비핵화 사전조치라는 용어를 쓴다. 미국측 본문에는 자기들이 관철시킨 비핵화 조치만 써넣고, 북측이 관철시킨 신뢰조성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불명확하게 표현하였다.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신뢰조성조치는 북침전쟁연습 중지와 대북경제제재 해제인데, 2.24 합의에는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한다는 명시적 표현이 없으므로, 북침전쟁연습 중지는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합의내용에 내포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금지한 정전협정을 2.24 합의를 통해 공식 인정하여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되었으므로, 미국은 앞으로 북침전쟁연습을 벌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만일 미국이 또 다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면 그것은 2.24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는 것이므로, 북측은 미국에게 합의파기책임을 엄중히 물어 응징적 군사행동으로 치명타를 가할 것이다.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이 벌어진 긴장된 시기에, 김정은 인민군 총사령관이 매우 이례적으로 전략로케트사령부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연이어 시찰하면서 인민군에게 ‘전쟁이 벌어지면, 원쑤를 격멸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미국이 2.24 합의를 깨고 북침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하는 사태에 대비한 경고조치로 보인다.

다른 한 편, 미국의 대북경제제재에 관련하여, 북측 본문 제6항에는 “미국은 대조선제재가 인민생활 등 민수분야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고 씌여있고, 미국측 본문 제6항에는 “미국의 조선에 대한 제재는 조선인민의 생활(livehood of the DPRK people)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씌여있다.

대북제재가 민수분야를 겨냥하지 않는다니, 도대체 군수분야와 민수분야를 구별하여 군수분야에만 피해를 집중시키는 경제제재가 있을까? 그런 자동판단기능을 갖춘 경제제재는 이 세상에 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경제제재는 제재대상국에 총체적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경제제재가 북측 인민의 생활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인정한 합의사항은, 경제제재가 제재대상국에 총체적 피해를 입히는 현실과 배치되는 모순논리로 보인다. 왜 그런 모순논리가 2.24 합의에 들어간 것일까?

그 답은 북측 본문 제7항에 나와있다. 제7항에는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에 대한 제재해제”를 “우선적으로 론의하게 될 것”이라고 씌여있다. 이 말은 경제제재 해제문제를 북미회담이 아니라 6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뜻이다. 경제제재 해제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하려는 까닭은, 미국이 대북경제제재를 유엔안보리로 끌고 가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제1718호와 제1874호를 채택하도록 만들었고, 제재상황을 감시하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대북제재 결의안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 가운데 미국, 중국, 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에서 대북경제제재 해제문제를 합의하고,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를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바로 그런 다자합의절차를 밟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북측과 미국은 경제제재 해제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2.24 합의를 환영하였으므로, 6자회담이 열리면 그 두 나라는 유엔안보리 대북경제제재 결의안을 폐기하려 할 것이고, 영국과 프랑스도 결의안 폐기를 반대할 명문이 없다. 따라서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신뢰조성조치는 그렇게 6자회담과 유엔안보리에서 연속적으로 이행될 것이다. 미국이 단독으로 걸어놓은 대북경제제재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해제할 수 있으므로 신뢰조성조치 이행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2.24 합의에 들어있는 신뢰조성조치는 대북경제제재 해제만이 아니라 북측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북측 본문 제7항에는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에 대한 제재해제와 경수로 제공문제를 우선적으로 론의하게 될 것”이라고 씌여있다. 원래 경수로 제공문제를 합의한 것은 9.19 공동성명인데, 거기에는 “조선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에 대한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고 씌여있다. 북측과 미국이 2.24 합의에서 “9.19 공동성명 리행의지를 재확인”하였으므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당연히 9.19 공동성명에 따라 북측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지금 북측은 녕변 핵시설단지에서 시험용 경수로를 한창 건설하는 중인데, 이번 2.24 합의에 따르면 북측은 시험용 경수로 건설을 임시로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2.24 합의를 끝까지 충실히 이행하면, 북측은 시험용 경수로 건설을 영구히 중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경수로 건설 영구 중지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북측에 경수로를 건설해주어야 한다.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측에 ‘신포 경수로’를 건설하다가 중단한 경험이 있으므로, 그 때 중단했던 경수로 건설공사를 재개하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렵지 않다. 미국이 2.24 합의를 이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경수로 건설문제를 결정하게 될 것이고, 경수로 건설공사가 시작되는 경우, 막대한 공사경비는 대부분 남측이 떠맡게 될 것이다.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어떻게 합의하였을까?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비핵화 사전조치는 미국측 본문 맨처음에 명시되었고, 북측 본문 맨끝에 명시되었다. 미국측 본문에 들어있는 비핵화 사전조치와 관련한 합의사항은 이렇다.

“조선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우라늄농축활동을 포함한 녕변의 핵활동에 대한 임시중지조치(moratorium)를 취하기로 동의하였다. 또한 조선은 녕변의 우라늄농축활동에 대한 임시중지조치를 검증하고 감시하며, 5메가와트급 원자로와 관련시설들의 불능화상태를 확인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들의 복귀에도 동의하였다”고 씌여있다. 북측 본문에는 “우리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조미고위급회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결실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핵시험과 장거리 미싸일 발사, 녕변 우라니움농축활동을 림시 중지하고 우라니움농축활동 림시중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씌여있다.

여기서 말쓰임새를 하나 바로잡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외교문서에서는 사람이름이나 땅이름 같은 고유명칭을 상대의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 그러므로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북측 표기법을 따르면, 영변이 아니라 녕변이고, Yongbyon이 아니라 Nyongbyon이다. 그런데 초보적인 외교관례도 모르는 미국 국무부와 남측 외교통상부, 그리고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제멋대로 영변 또는 Yongbyon이라고 부른다.

2.24 합의에 담긴 비핵화 사전조치는 북측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녕변 핵시설단지의 우라늄농축을 임시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녕변 핵시설 복귀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합의한 비핵화 사전조치가 북측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미국에게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친미성향 언론매체들은 비핵화 사전조치를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여 관철시켰으니 그 조치가 당연히 미국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만일 북측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녕변 우라늄농축을 임시로 중지한 것이 아니라 영구히 중지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북측 본문에 명시된 것처럼, 북측이 “결실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 한정하여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므로, 그 사전조치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 이행과정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2.24 합의 이행과정에서도 시간을 끌면서 아무런 성과도 없는 회담을 공전시키는 경우, 북측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들을 출국시키고 녕변 우라늄농축을 재개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에게 악몽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측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녕변 우라늄농축을 임시로 중지한 것은 미국에게 회담성과로 되었지만, 그 임시중지조치가 미국의 뒷덜미를 잡고 2.24 합의이행을 강제하는 압박요인으로도 된다. 북측의 시각에서 다시 읽으면, 2.24 합의에 나온 비핵화 사전조치는 합의이행의 불가역성을 보장해주는 강력한 안전장치로 보인다. (2012년 3월 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