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사항 공개 못한 마지막 고위급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미회담 20년, 이제 한 시대를 마감한다

세계 정치계는 매우 특별하게 진행되는 정치회담을 오랫동안 목격해왔다. 그처럼 특별한 정치회담은 앞으로 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진행해온 양자회담이 왜 그처럼 특별한 것일까? 북미회담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어오는 바람에 그 회담의 중요성에 대해 둔감해진 사람도 있지만, 그 회담의 본질을 파악하면 감각이 되살아날 것이다.

첫째, 북미회담은 사회주의국가와 제국주의국가가 각각 자국의 국위와 국운을 걸고 진행해온 것이다. 그래서 중단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회담이고, 어느 한 쪽이 승리하고 다른 한 쪽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회담이다.

지난 냉전시기 소련과 미국이 진행한 핵군축회담이나 중국과 미국이 진행한 국교수립회담도 역시 사회주의국가 대 제국주의국가의 회담이었지만, 그 회담들은 어느 한 쪽이 승리하고 다른 한 쪽이 패배한 그런 회담이 아니었다. 그런 과거 회담들과 달리, 북미회담은 전략적 승패를 가리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가 승리하느냐 아니면 제국주의가 승리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세계 정치사에 유례 없는 사상 초유의 회담인 것이다.

제국주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북측의 반제자주노선과 사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반사회주의전략이 북미회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였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불상용적 사상대결이 그 격돌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 정치사는 북미회담처럼 격렬한 사상대결이 벌어진 그 어떤 다른 회담에 대해 알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벌이는 격렬한 사상대결, 바로 이것이 북미회담의 본질이다.

둘째, 북미회담은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이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지 못한 정전상태에서 정면충돌과 전쟁위기를 숱하게 넘기며 진행해온 핵안보회담이다.

핵강국들인 중국과 러시아는 또 다른 핵강국인 미국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지만, 미국과의 정면대결은 피한다. 미국도 그 두 나라에 대해 그러하다. 그런 까닭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때로 갈등을 빚으면서도 핵안보문제가 양국관계에 제기될 만큼 심각한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북측과 미국은 양국관계에 제기된 심각한 핵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담을 진행해왔다. 핵보복공격력을 가진 사회주의핵강국과 핵선제공격력을 가진 제국주의핵강국이 대결하였으니, 비핵화냐 아니면 핵전쟁이냐 하는 핵안보문제가 북미관계에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미국이 2012년 2월 27일부터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이라는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고, 그에 대응하여 2월 25일에 북측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한 오늘의 현실은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감행하는 북침전쟁연습은 핵선제공격 시나리오를 연습하는 매우 도발적인 행동이므로, 그에 대응하여 발표된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이 대미 핵보복의지를 밝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성명에서 “미제침략군의 본거지들과 반공화국 군사소굴들을 우리의 타격권 안에 집어넣고 움쩍만 하면 일격에 짓뭉개버릴 것이다. 핵무기는 미국만 가지고 있는 독점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전쟁수단과 그 누구에게도 없는 최첨단 타격장비가 있다”고 서슬퍼렇게 경고한 것만 봐도,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문제의 심각성을 직감할 수 있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북미회담을 비핵화회담이라 부르지만, 그런 인식은 그 회담의 본질을 제대로 밝혀주지 못한다. 북미회담의 본질은, 비핵화와 핵전쟁 가운데서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는 뜻에서 핵안보회담이다. 비핵화와 핵전쟁의 양자택일을 앞에 놓고 진행하는 심각한 핵안보회담은 세계 정치사에서 북미회담 이외에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셋째, 북미회담의 최종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서 전변이 일어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강력한 전변의 파급력은 동북아시아 정세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지난 냉전시기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이르렀을 때, 동북아시아 정세에 변화가 일어났지만, 변화의 파급력이 약했기 때문에 중국과 대만 사이의 분단장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최종 합의단계에 이르면, 중국과 대만 사이의 분단장벽보다 더 두꺼운 한반도 분단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동북아시아 정세에서도 전변이 일어날 것이다. 전변이란,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와 북일관계를 뒤집어놓고, 기존 북중관계와 북러관계에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북미회담의 최종 합의결과가 일으킬 전변은 동북아시아 6자관계를 뒤바꿔놓을 것이며, 그 6자관계의 변화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넷째, 북미회담은 장장 20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최장기 회담이다. 김용순 조선로동당 국제부장(1934-2003)과 아놀드 캔터(Arnold Kantor) 국무부 정무차관(1945-2010)이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미국대표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미고위급회담을 진행한 때는 1992년 1월 22일이었다. 그 때로부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2012년 2월 23일까지 2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 20년은 어떻게 흘러갔던가? 사회주의국가가 제국주의국가에게, 패기만만한 신흥핵강국이 노회한 기성핵강국에게 연속강공을 퍼부어 궁지에 몰아넣고, 북미회담 자체를 거부해온 미국을 결국 회담장으로 끌어낸 전술적 승리가 덧쌓여온 기간이었다. 또한 그 20년은 제국주의핵강국이 사회주의핵강국의 연속강공을 줄곧 얻어맞으면서도 합의파기, 공약불이행, 말바꾸기, 트집잡기, 시간끌기로 버티며 전술적 패배를 거듭해온 기간이었다. 또한 그 20년은 조지 H. W. 부쉬, 빌 클린턴, 조지 W. 부쉬, 버락 오바마로 이어진 미국 대통령 4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몸소 지휘한 강력한 대미공세를 당하지 못해 연거푸 쓴 잔을 들이켜야 했던 기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 2012년에 이르러 북미회담 20년사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북미관계는 소리없는 전변을 일으키면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횡설수설하는 엉터리 분석과 빗나간 전망에 익숙해진 이 땅의 국민들은, 북미회담 20년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북미회담 20년사를 관통하는 긴 안목으로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의 전후사정을 심층분석하면, 북미관계에서 일어나는 전변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격동적인 심정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감상적인 문학서술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분석이다.

북측과 미국이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 합의에 이른 과정

2012년 2월 23일과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은 북측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을 오가며 진행되었다. 북미고위급회담은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이며, 이번 제3차 회담으로 끝났다. 북미고위급회담이 제3차 회담으로 끝났다는 말은, 북측과 미국이 대화를 중단했다는 뜻이 아니라, 고위급회담을 마치고 다른 방식의 회담으로 진전한다는 뜻이다. 고위급회담 이후에 열릴 다른 방식의 회담은 어떤 것일까? 만일 북미고위급회담 이후에 6자회담 재개만을 예견한다면, 그것은 북미관계의 변화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6자회담은 북미회담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고위급회담 이후에 열릴 새로운 방식의 회담은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고위급회담이란 북미정상회담을 뜻한다. 하지만 12년 전에 있었던 일련의 회담경험을 상기하면,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치고 나서 북미정상회담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다. 2000년에 있었던 회담경험은 남북정상회담→북측과 미국의 고위급특사 교환방문과 공동코뮈니케 발표→북미정상회담 준비착수 순으로 진행되었다.

2000년의 회담방식을 12년이 지난 올해에 그대로 답습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명박 정권 시기에 남북정상회담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무지막지하게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특히 국상을 당한 북측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너무 비상식적으로 행동한 것이 결정적인 파탄요인이다. 만일 이명박 정권이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하기만 했어도 남북관계가 이 지경으로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과 류우익 통일부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역적’이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은커녕 상종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한반도 정세에서 극적인 전변이 일어났는데, 남북정상회담이 불가능한 올해는 어떤 형태의 회담이 한반도 정세에서 극적인 전변을 일으킬 것인가? 이 중대한 문제를 해명하려면 아래의 정보를 심층분석할 필요가 있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미국 정부 관리들이 전한 말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2012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한 2011년 12월 17일 이전에 이미 “미국과 북측이 타결에 근접하였다(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were near a breakthrough)”는 것이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에 북측과 미국이 이미 타결에 근접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2011년 10월 24일과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잠정적으로 합의한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사실상 완전 합의한 북측과 미국이 이를 공식화하는 절차만 앞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것은 신뢰구축조치라 하고,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것은 비핵화사전조치라 하는데, 북측과 미국은 2011년 12월 중순에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사실상 합의하였고, 원래 2011년 12월 22일에 개최하기로 예정하였던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그 합의를 공식화하는 절차만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월 3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 개최는 왜 지연되었을까?’에서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북측과 미국이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 이후 4개월 동안 어떤 후속회담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사실상 합의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비록 공식회담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북측 외무성과 미국 국무부는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통해 협의를 진행하였다. 그 협의를 통해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사실상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신뢰구축조치는 무엇이고,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비핵화사전조치는 무엇일까? 북측에 대해서라면 공정보도를 외면하는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비핵화사전조치로서 우라늄농축시설 동결을 북측에 요구하였다는 사실만 편파적으로 보도하였다.

여기서 부정확한 말쓰임새 한 가지를 바로잡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우라늄농축 중지라고 표현하는데, 중지라는 용어는 해체 또는 불능화라는 뜻으로 확대해석될 수 있으므로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기본합의에 나온 동결(freeze)이라는 용어가 정확하다. 동결은 시설을 해체 또는 불능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동을 멈춘다는 뜻이다.

미국이 비핵화사전조치로 우라늄농축시설 동결을 북측에게 요구한 것만 대서특필한 편파적 보도는, 북측이 미국에게 신뢰구축조치로 무엇을 요구하였는지는 전혀 보도하지 않으면서 30만t 식량제공문제와 6자회담 재개문제까지 마구 뒤섞어놓는 바람에 이 땅의 국민들은 혼동에 빠졌다.

주목하는 것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에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통해 진행된 북측과 미국의 협의에서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하는 비핵화사전조치를 수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2월 16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국방정보국(DIA) 로널드 버저스(Ronald L. Burgess, Jr.) 국장의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북측 정권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핵프로그램 일부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나,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가 북측이 핵프로그램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보다 더 정확한 정보는 <뉴욕 타임스> 2012년 2월 24일 보도에 들어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직전에 “오바마 행정부가 동결합의에 근접하였음을 믿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하는 비핵화사전조치를 사실상 수용하였음을 말해준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 직후 취재기자들 앞에 선 글린 데이비스(Glyn T. Davies)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회담결과와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전제한 다음, “특히 우리(미국이라는 뜻-옮긴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핵화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북측에 상기시켰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유용(useful)했으며 여러 시간에 걸친 북측과의 회담에서 설명도 많이 했다. 그런 점에서 3차 북미대화는 가치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진전이다”고 말했다. 회담결과를 언론에 공개할 수 없어서, 극히 절제된 외교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그의 발언은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하는 비핵화사전조치를 수용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처럼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비핵화사전조치를 북측이 수용하였으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북측이 요구한 신뢰구축조치를 당연히 수용하였을텐데, 미국이 수용한 신뢰구축조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위에서 인용한 로널드 버저스 국방정보국 국장의 청문회 발언을 읽으면,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우라늄농축시설 동결에 상응하여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신뢰구축조치가 북미관계개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북미관계개선이라는 용어는 적대관계 청산 또는 국교수립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므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미국 국방정보국 국장이 언급한 북미관계개선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밝혀준 것은 2012년 2월 16일 <연합뉴스> 워싱턴발 보도기사였다. 그 보도기사는 북측이 미국에게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문제를 비핵화(사전조치)와 함께 논의하자”고 요구하였음을 살짝 언급하고 넘어갔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미국에게 신뢰구축조치로 요구하였다는 사실은 살짝 언급하고 넘어갈 사소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 문제야말로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하는 비핵화사전조치에 상응하여 미국이 이행해야 할 매우 중대한 신뢰구축조치인 것이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한 신뢰구축조치 곧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미국이 수용하였고, 미국이 북측에게 요구한 비핵화사전조치 곧 우라늄농축시설 동결을 북측이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북측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전민족적 숙원을 우라늄농축시설 동결과 맞바꾸도록 미국을 강하게 압박, 견인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전변의 돌파구를 열어놓은 직후 서거하였던 것이다. 북측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수용한 것을 ‘미국의 항복’이라고 말할 것이다.

북측의 압박공세와 미국의 비장한 결정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수용하도록 북측이 미국을 압박, 견인하였던 결정적인 계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우라늄농축이었다. 북측이 2011년 11월 3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시험용 경수로 건설과 그 연료보장을 위한 저농축우라니움 생산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북측 외무성은 외교파장을 고려해서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식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북측은 고농축우라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한지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2010년을 뜻함-옮긴이) 11월, 내게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는데, 취재기자가 북측이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이 아니라 저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보여준 게 아니었나 하고 되묻자 “북측이 내게 고농축우라늄을 위한 것이라 했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니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으니까 말이다”고 답변하였다. 위에 나온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인용문을 고농축우라늄 생산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는 뜻으로 재해석하면, 그 생산활동은 미국에게 경악과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북측의 대미압박공세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 발표와 때를 맞춰 2011년 11월 29일부터 닷새 동안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들과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경수로건설과 우라늄농축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해설해주었다. 미국인 전문가들이 평양에서 들은 충격적인 정보를 미국 국무부에 전해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은 미국인 전문가들의 방북정보를 즉각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전하였다. 그리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경수로건설과 우라늄농축에 대처하기 위해 안절부절하지 못하면서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식프릿 헥커 박사가 북측이 빠른 속도로 추진하는 경수로건설과 우라늄농축에 대처하여 미국이 “비장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미국인 전문가들의 방북보고를 듣고 비장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이다.

미국에게 비장한 결정이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해온,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신뢰구축조치를 수용하는 결정이었다. 궁지에 몰린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신뢰구축조치를 전격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써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통한 북측과 미국의 협의가 일단락되었다. 그러므로 북측의 국상으로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은 이미 일련의 협의과정을 통해 사실상 합의에 이른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공식화하는 절차였다.

그런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친 북측과 미국은 그 회담에서 공식합의한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결과를 왜 그렇게 꽁꽁 감추었을까? 그 까닭은, 양측 회담 대표들이 회담 직후 제3국에서 성급히 발표하기에는 사안의 중대성이 너무 커서, 국가안보를 책임진 최고위급에서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마지막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데이비스 특별대표는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친 직후 취재기자들에게 “논의된 내용을 워싱턴으로 가져가 우리가 현재 어느 지점에 있으며 어디로 갈 수 있을지를 평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공식합의한 신뢰구축조치와 비핵화사전조치를 북측과 미국의 회담대표들이 각자 자기 본국으로 가져가 최종 승인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치고 취재기자들 앞에 선 데이비스 특별대표가 “외교란 때로 업무처리에 필요한 얼마 간의 시간을 요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알쏭달쏭한 말은 남긴 것은,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 합의사항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들린다.

북측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그 합의사항을 최종 승인할 것이고,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 합의사항을 최종 승인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북측과 미국은 그 합의사항 가운데 6자회담에서 처리할 만한 것을 6자회담으로 넘겨 다시 합의하는 요식절차를 밟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2012년에 거대한 전변이 일어난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친 직후 취재기자들 앞에 선 데이비스 특별대표는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동결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진전이 있었는가고 묻는 물음에 대해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I think we made a little bit of progress)”고 짤막하게 답변하였다. 중대한 핵안보문제에 관한 회담내용을 외교관례상 언론에 공개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그가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바람에,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그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해석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그들의 ‘해석’을 인용한 분석기사가 언론에 넘쳐났다. 하지만 위에서 논한 것처럼,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합의에 이르렀으므로, 한반도 전문가들이 약간의 진전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러저러한 분석결과를 내놓은 것은 모두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완전한 합의에 이르렀음을 해명한 이 글의 논지에 대해 그래도 긴가민가하는 느낌이 든다면, 2012년 2월 13일 미국 국무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자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2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2012년 10월 1일부터 시작하여 2013년 9월 30일에 마감되는 2013회계년도의 국무부 예산안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있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안보외교와 정책목표를 서술한 대목이 그 예산안에 들어있는데, “북측의 비핵화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북측과 경제교류, 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직접 연관된 당사국들과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을 포함하여 양국의 관계 정상화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런 내용이야말로 미국이 올해 안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 북미관계 정상화를 시작할 것임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준다.

비단 미국만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게 아니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기 닷새 전인 2012년 2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가 발표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결정서에 따르면, 2012년 4월 중순에 당대표자회의를 소집하게 된다. 당대표자회의는 나라의 최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만 소집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2012년 4월 중순에 열릴 당대표자회의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관련된 중대사가 결정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로동신문> 2008년 1월 26일부에 실린 논평기사에 따르면, 북측이 한반도 평화에 관한 각종 제안을 지금까지 3백 수 십 차에 걸쳐 미국에게 보냈으나, 미국은 모조리 거부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완강히 거부해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은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성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회담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약화되었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다. 미국이 그토록 반대해온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측과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뜻을 합하였다는 점에서, 10.4 선언은 거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10.4 선언에 서명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직후 이명박 정권의 보복성 사법처리에 걸려 괴로움을 겪다가 고향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0.4 선언에 수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병을 앓으면서도 인민군대 강화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현지지도를 계속 강행하던 중 야전열차에서 급성심장질환으로 순직하였다. 10.4 선언을 합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하였으나, 그 두 분이 남긴 한반도 평화실현을 향한 강렬한 유지는 올해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가 이 민족에게 강요해온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이 땅에 평화를 실현하는 과업이 민족 전체의 절실한 요구이며 간절한 염원이건대, 어찌 실현되지 않겠는가!

2012년은 역사적인 한반도 평화회담이 개최되는 전변의 해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1954년 4월 21일 제네바에서 열린 고위급 정치회담에서 북측이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때로부터 무려 58년만에 역사적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어떤 전변이 일어나는 것일까? 미국은 핵공격시나리오에 따라 감행해온 각종 북침전쟁연습을 영구 중지할 것이고, 북침전쟁의 인계철선으로 남겨둔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에 상응하여 북측도 영변에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을 자진 철거할 것이다.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문제는 북측과 미국의 등가적 동시행동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문제가 해결되면, 북미관계가 곧바로 정상화될 것이고, 그와 더불어 올해 남측에서 정권교체가 실현되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이 급진전되어 평화통일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최근 북미관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거대한 변화는, 이 민족이 그 실현을 위해 67년 동안 피눈물 흘리며 분투해온 자주적 평화통일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가슴 벅찬 소식을 알려주었다. (2012년 2월 2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