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야 할 6,740만 건의 보도자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제6핵강국의 최고사령관

2011년 12월 31일, 연말연시를 맞은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목이 유달리 어느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가 바로 김정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색기능을 지닌 인터넷 검색전문 누리집 ‘구글(Google)’에서 검색해보면, 그런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2012년 1월 6일 현재, ‘구글’에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김정은 부위원장에 관해 게시한 영문 보도자료 6,740만 건이 나타난다. 영어권에서 나온 관련 보도자료들이 그처럼 방대하니, 비영어권에서 다른 언어들로 작성된 관련 보도자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부위원장에 관한 영문 보도자료 6,740만 건이 집중적으로 작성, 게시된 시점이다. 그 영문 보도자료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가 세상에 알려진 2011년 12월 19일부터 김정은 부위원장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가 세상에 알려진 2011년 12월 31일까지 12일 동안 집중적으로 작성, 게시되었다. 김정은 부위원장에 관한 영어권 언론계의 보도자료가 12일 동안 6,740만 건이나 나왔으니, 관련 보도자료가 시간당 약 23만 건씩 계속하여 세계 각국에 쏟아져 나온 셈이다. 2012년 1월 초에 ‘구글’에 게시된, 김정은 부위원장에 관한 영문자료가 6,740만 건이므로, 올해 안에 1억 건이 넘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하면, 2007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2008년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 2010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되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공인된 시진핑 부주석에 관한 세계 영어권 보도자료는 지난 4년 동안 109만 건을 기록하였다.

위의 사실들을 살펴보면,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관심이 상상을 뛰어넘어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관심이 상상을 뛰어넘어 최고 수준에 이른 까닭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통제권을 유산으로 계승한 핵보유국의 최고사령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북측은 지난 5년 동안 지하핵실험을 두 차례나 실시한 핵보유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였다. 미국이 북측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황당한 억지주장을 늘어놓았어도, 세계는 북측이 핵보유국임을 알고 있으며, 김정은 부위원장이 핵보유국의 최고사령관임을 알고 있다.

북측이 핵개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겨우 원시적인 핵장치 몇 개를 만들어놓았을 뿐이라는 허위사실이 세상에 유포되는 바람에, 북측이 5대 핵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6핵강국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지만, 그런 허위사실을 걷어내고 북측의 핵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실로 놀라울 지경이다. 이를테면, 북측은 핵탄두를 정밀화, 소형화, 강력화하여 중거리 및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하는 최첨단 군사과학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독자적으로 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라늄농축부문에서 가장 앞섰다는 미국의 우라늄농축기술을 이미 따라잡았으며, 5대 핵강국을 중심으로 세계 핵기술 선진국들이 공동추진하는 핵융합부문에서도 독보적 기술력을 쌓아올려 핵공학기술에서 그야말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북측의 핵공학기술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이지 결코 과장된 정보들이 아니다. 북측이 제6핵강국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 미국은 관련정보를 계속 은폐해왔고, 그래서 세계가 북측의 핵공학기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북측의 핵공학기술수준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상론하였으므로 여기서 재론을 피하겠는데, 북측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핵보유국이 아니라, 5대 핵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선진적 핵기술을 개발한 제6핵강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국가수반들 가운데 가장 젊은 국가수반인 김정은 부위원장이 5대 핵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6핵강국의 최고사령관으로 세계 정치계에 나타났으니,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가 그에게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관심이 상상을 뛰어넘어 최고 수준에 이른 또 다른 까닭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대미 핵협상권을 유산으로 계승한 반제자주국가의 수반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북측은 미국을 상대로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북측과 미국의 핵협상은 7,8년도 아니고, 1993년부터 장장 18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38개국 국가수반들이 참석하는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가 2010년 4월 12일 워싱턴 디씨에서 미국의 주도로 열렸는데, 그것은 미국이 다른 4개 핵강국들과 협력하여 세계적 범위에서 핵개발을 통제하고 핵테러를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진행하는 핵안보 국제협력이므로, 북측과 미국이 진행하는 핵협상과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미 핵협상은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이며, 미국이 한반도에 드리운 핵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핵안보협상이다.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핵안보협상을 진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측이 전무후무하다. 미국이 세계 정치계를 쥐락펴락하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나라들에게 핵위협을 가하는 행패를 부리건만, 미국의 핵위세에 눌린 나라들은 감히 미국의 행패를 제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오직 북측만이 미국의 핵위협을 자기의 핵위협으로 맞받아치며 미국에게 연속압박을 들이대어 결국 핵안보협상으로 끌어내었다.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절대로 다른 나라와 핵안보협상을 하지 않으며, 핵안보협상을 해야 할 아무런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물론 미국은 다른 핵강국들인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도 핵안보협상을 하지 않는다. 핵안보협상 불용원칙은 미국이 자기의 국제적 지위와 명예를 걸고 지켜온 불변의 외교원칙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켜온 불변의 외교원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반제자주정치와 핵안보협상전략에 의해 깨져나갔다. 미국은 자기의 국제적 지위와 명예를 걸고 지켜온 핵안보협상 불용원칙을 폐기하고 북측이 강하게 요구한 핵안보협상에 끌려나갔다. 북미 핵안보협상이 진행됨으로써,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으로 자처해온 미국의 국제적 지위와 명예가 실추되었고, 반제자주국가인 북측의 국제적 지위와 명예가 그에 정비례하여 올라간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이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대북 핵안보협상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유산으로 남긴 대미 핵협상권은 바로 그런 것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미 핵협상권을 가진 반제자주국가의 수반으로 세계 정치계에 나타났으니,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가 그에게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가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그처럼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였으나, ‘구글’에 게시된, 그에 관한 보도자료 6,740만 건 가운데 그가 제6핵강국의 최고사령관이며, 반제자주국가의 수반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보도한 자료는 아마 없을 것이다. 6,740만 건의 보도자료는 다시 써야 한다.

마지막 결재문건과 첫 결재문건은 똑같았다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비상한 관심이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들이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으며, 미국과 남측의 정보기관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정보들과 반북성향 언론매체들이 유포한 억측만 주로 듣고 있다.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해 알 수 있는 보도자료들은 북측 언론매체들을 통해 나오는데, 북측 외부에서는 그 보도자료들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도 없고 그렇게 하려는 생각도 없다.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세계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해는 불행하게도 왜곡과 억측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곡과 억측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북측의 언론보도를 올바로 해석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직후 북측 언론매체들이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011년 12월 18일, 이 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고 하루가 지났으나 북측이 비보를 아직 세상에 알리지 않은 때다. 북측은 2011년 12월 19일 정오에 특별방송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였다는 비보를 세상에 알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고 하루가 지난 12월 18일 당시 김정은 부위원장이 겪어야 했던 비애와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며, 또한 그가 후계자로서 긴급히 처리해야 할 중대한 문제들이 수없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부위원장이 그처럼 고통스럽고 긴박한 상황에서 결재한 첫 번째 국정운영문건은, 놀랍게도 평양시민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공급하라는 문건이었다.

원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시민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공급하라는 문건을 결재하여 12월 16일 밤 9시 13분에 실무관리들에게 내려보내고, 그로부터 11시간 뒤 현지지도현장으로 향하던 야전열차에서 급환으로 서거하였다. 그런데 실무관리들은 12월 16일 밤에 자기들이 받았던 것과 똑같은 내용의 문건을 12월 18일에 다시 받았다. 문건내용은 똑같았지만, 두 번째 문건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결재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보를 아직 듣지 못한 실무관리들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왜 똑같은 문건을 결재하여 자기들에게 다시 내려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결재한 국정운영문건을 김정은 부위원장이 다시 결재한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첫째,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직후부터 이미 국방위원장 직무를 집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결재한 국정운영문건을 다시 결재할 수 있는 권한을 김정은 부위원장이 행사한 것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국방위원장 직무를 집행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북측에서 ‘권력승계’가 진행되는 중이라느니 또는 한 술 더 떠서 ‘권력공백’이 생겼다느니 하는 식의 엉터리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권력승계’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권력공백’이 생긴 것은 더욱 아니다. 명백하게도,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직후부터 그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국방위원장 직무를 집행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12월 26일 <로동신문>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강인한 의지로 비길 데 없는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시며 당과 군대, 국가의 모든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고 계신다”고 하면서, “이전 시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고 있고,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썼다.

둘째, 국방위원장 직무를 집행하기 시작한 김정은 부위원장이 결재하여 실무관리들에게 내려보낸 첫 문건은 양력설을 맞는 평양시민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공급하라는 문건이었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그 문건을 다시 결재하지 않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재한 문건을 이미 받은 실무관리들은 당연히 평양시민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공급하였을텐데, 김정은 부위원장은 왜 그 문건을 다시 결재하여 내려보낸 것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결재한 문건을 김정은 부위원장이 다시 결재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변동과 지체가 없이 그대로 따른다는 강한 유훈관철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 날에 남긴, 인민생활을 세심하게 돌보고 보살피는 유훈을 자신의 첫째가는 임무로 수행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하면, 역대 남측 대통령들은 그 누구도 서울시민들의 식탁에 해산물이 올라가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었으며, 그런 문제는 청와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실태를 알아보고 결재할 만큼, 평양시민들에게 해산물을 공급하는 문제를 중시하였다. 왜 이런 천양지차가 있는 것일까?

서울시민들의 식탁에 해산물이 올라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청와대 국무회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틀어쥔 극소수 자본가들이 결정한다. 시장경제를 틀어쥔 극소수 자본가들은 자기들의 무제한 이윤추구를 판단기준으로 삼고 서울시민들에게 해산물을 판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러나 북측에는 시장경제도 없고 자본가들도 없기 때문에, 평양시민들에게 해산물을 공급하는 사업은 국정기관이 결정하고 국영상점을 통해 집행한다.

평소에도 국영상점들은 해산물을 인민들에게 공급하지만, 특별한 명절에는 더 많이, 더 싼 값으로 집중공급하는 것이다. 청어와 명태 몇 마리를 공급받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하고 남측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시장경제만 알고 계획경제를 모르는 무지와 편견이다.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아래의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에서는 돈이 있는 소비자들만 해산물을 즐겨 먹고, 빈곤층은 해산물을 먹고 싶어도 사먹을 수 없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2012년 1월 현재 남측의 대형상점에 설명절 예약판매로 나온 제주도산 굴비 한 마리 값은 무려 90달러다.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이 4달러밖에 되지 않고, 실질 최저임금은 그보다 더 낮은 남측에서 한 마리 값이 90달러나 되는 굴비를 사먹을 부유층 인구는 1%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시장경제를 호화롭게 치장한 겉모습을 걷어내면, 그처럼 사회구성이 1%와 99%로 갈라지는 치명적인 불평등과 모순이 드러난다. 그에 비해, 북측의 계획경제에서는 소득의 양극화가 없기 때문에 소비의 양극화도 생기지 않으며, 따라서 해산물이 생산되는 만큼 인민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해산물 생산은 수산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풍부해지는 법인데, 북측에서 평양시민 260만명에게 양력설에 즈음하여 청어와 명태를 집중공급하는 것을 보면 북측의 수산업이 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어선과 냉동시설과 운반차량을 가동하는 데 막대한 석유자원을 소모해야 하므로, 그처럼 막대한 분량의 해산물을 공급하는 것은 북측의 석유사정이 좋아졌음을 말해준다.

평양시민 260만명에게 해산물을 집중공급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므로, 그러한 명절공급문제는 경제실무관리들이 결정할 수 없으며 반드시 최고영도자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평소공급은 일상적인 경제사업이지만, 명절공급이 중요한 정치사업으로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실제로 청어와 명태의 공급은 국상 중이었던 12월 23일부터 시작되었다. 2011년 12월 26일 <로동신문>에는 국영상점에서 청어와 명태를 합성수지그릇에 담으며 흐느끼는 여성들과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건네주는 상점 봉사자들의 모습이 담긴 보도사진이 실렸다.

계승정치의 본질과 사회주의문명의 건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 날에 남긴, 인민생활을 세심하게 돌보고 보살피는 유훈을 자신의 첫째가는 임무로 수행한 김정은 부위원장의 국상 중 국정운영은 해산물 공급사업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연은 이러하였다.

2011년 12월 22일은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다. 자기 미풍양속을 잃어버리고 미국 풍습을 따르는 남측에서는 ‘발렌타인스 데이’에 미국인들처럼 초콜렛을 주고받는 젊은이는 많아도, 동짓날을 기억하는 젊은이는 드물고, 동짓날에 팥죽을 찾는 사람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남측이 미국의 정신문화적 지배를 얼마나 심하게 받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런 남측과 달리,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고유한 풍습을 지켜오는 북측에서는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각지의 급양봉사망(식당)들에서 팥죽을 봉사해왔다.

그러나 북측 전역이 오열과 통곡에 몸부림치던 국상 중에 문을 연 식당은 없었고, 식당에 가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은 부위원장은 동짓날을 맞아 예전처럼 모든 식당들에게 팥죽 식재료를 정상 공급하여 인민들에게 팥죽을 봉사하도록 지시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인민을 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의 뜻이었음을 깨우쳐주었다. 그리하여 식당들이 문을 열고 팥죽을 쑤어놓았으나, 국상 중에 식당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종업원들은 커다란 팥죽통을 실은 차량을 몰고 각지에 있는 조의식장으로 찾아갔다. 2011년 12월 26일 <로동신문>은 “더운 김이 피여오르는 죽그릇을 들려주는 봉사자들의 두 볼에도, 그것을 받아들고 어깨를 떠는 시민들의 두 볼에도 격정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썼다.

국상 중에 있었던 놀라운 사연은 계속된다. 국상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정이 안치된 조의식장이 북측 전역 곳곳에 설치되었는데, 북측 인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영정 앞에서 오열과 통곡을 터뜨렸으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조의식장을 찾는 인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이 장례식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인민들은 자기들이 아버지처럼 믿고 따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였는데 어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조의식장에 남아 슬퍼하였다. 원래 우리 민족에게는 초상집에서 상주를 위해 초상일을 맡아주는 고유한 풍습이 있는데, 이를 호상차지라 한다. 흔히 호상을 선다고 표현한다. 국상을 당한 인민들은 호상을 서는 것이 자식된 자기들의 도리라고 여긴 것이다.

국상기간 중 한반도 날씨는 수은주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정도로 매우 추웠는데, 그런 강추위 속에서 먹지도 않고 모자나 장갑조차 거부하고 조의식장에서 호상을 서는 인민들 가운데서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과 혼절하여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이런 눈물겨운 사정을 파악한 김정은 부위원장은 2011년 12월 22일 친필로 작성한 긴급지시문을 당조직들에게 보냈다. <로동신문> 2012년 1월 7일 정론에 따르면, 그 긴급지시문에는 “장의행사기간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 호상을 서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보장대책, 더운물 보장대책을 철저히 따라세우고 일군들이 인민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해야 하겠다는 따뜻한 가르치심”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각지 조의식장 인근에는 강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간이시설물들이 세워졌고, 엔진을 켜고 실내를 훈훈하게 한 대형버스들이 주차하였고, 봉사매대들이 설치되어 우유, 더운물, 콩물을 무상공급하였다. 당간부들이 강추위 속에서 조의식장에서 호상을 서는 인민들에게 털모자, 장갑, 불돌, 발열붙임띠를 안겨주었고, 의사들은 동상방지용 고약을 귀에 발라주고 귀마개를 씌워주면서 현장의료봉사를 시작하였다. 오래도록 조의식장을 지키고 호상을 서는 인민들에게 방송선전차들이 간이시설물이나 주차된 버스에 들어가 몸을 녹이라는 권유방송까지 하였으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당간부들과 의사들이 조의식장을 지키고 호상을 서는 인민들을 만나 설득하면서 간이시설물과 주차된 버스에 들어가 몸을 녹이라고 잡아끌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 날에 남긴, 인민생활을 세심하게 돌보고 보살피는 유훈을 자신의 첫째가는 임무로 수행한 김정은 부위원장의 국상 중 국정운영은 강추위를 녹일 듯한 뜨거운 감정이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위에 수록한 김정은 부위원장의 국상 중 국정운영에 관한 사연들은 단순한 몇 가지 사례들이 아니다. 그것은 김정은 부위원장의 계승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첫 사변들이었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인민생활을 세심하게 돌보고 보살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계승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어 인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한평생 현지지도를 계속하면서 형성한 영도자와 인민들의 결속관계에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측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영도자가 인민들을 하늘처럼 사랑하는 애민사상과 헌신적 복무, 그리고 인민들이 영도자를 하늘처럼 믿고 사는 옹위정신과 절대적 충정, 바로 그 양자가 상호결합된 사회주의인간관계인 것이다. 사상과 감정이 통하는 그런 결속관계야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필생의 노고를 바쳐 후대에게 남겨준 사상정신적 유산이며, 북측 외부의 시야에는 잘 보이지 않는 혼연일체의 사상정신적 유산 위에 사회주의문명이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1월 4일 <로동신문>에 실린 ‘김정일 동지의 전사, 제자들이여!’라는 제목의 정론에 따르면, 김정은 부위원장은 “우리에게 달라질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이후 북측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응큼한 기대를 품고 있는 서방세계에 주는 책망으로 들린다. (2012년 1월 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