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양당제 폐기, 통합진보정당이 대중의 희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하나가 되려 합니다.” 2011년 11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감동적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뒤로 하고 마침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선언하였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진보정치를 시큰둥하게 대해오는 수구언론들은 그 선언에 대해 짤막한 보도기사나 쓰고 말았지만, 통합진보정당 건설은 이 땅의 정치사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보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통합진보정당 건설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파문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첫째, 통합진보정당은 정세의 절실한 요구에 따라 건설되는 것이다. 오늘 한반도 정세가 요구하는 것은, 피상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다.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한계상황에 다가섰다는 점에서 그 변화는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에게 절실하다. 길게 논할 필요도 없이, 저임금노동과 대량실업과 농정파탄이 몰고 온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으로 대중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피폐해졌고, 그에 따라 자살, 정신질환, 범죄가 만연하였다.

그런데도 절대다수 대중에게 돌아가야 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이익마저 미국에게 빼돌리고 재벌기업에게 몰아주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목을 맨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모습은, 정세가 재앙적으로 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이제 우린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하고 울부짖는 대중들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1%만 풍요와 환락을 누리고, 나머지 99%는 궁핍과 고통을 겪을 재앙협정을 날치기로 비준해놓고, 비준반대를 외치는 국민들에게 물대포를 난사하는 이명박 정권의 폭거. 그처럼 재앙적으로 악화된 정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처럼 절박한 물음에 대한 답을 대중들이 근본적 변화에서 찾는 것은 아직 아니지만, 근본적 변화만이 궁핍과 고통의 질곡에 빠진 대중이 움켜쥐어야 할 희망의 근거다. 정세가 재앙적으로 악화될수록 근본적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차츰 더 강렬해지는 법인데, 그런 변화요구를 내뿜을 분출통로가 바로 진보정치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건설하는 통합진보정당이 궁핍과 고통의 질곡에 빠진 대중의 변화요구를 내뿜을 진보정치의 직접적인 담당자이며 유일한 수행자로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통합진보정당 건설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세계진보정치사에서 독보적인 새 유형의 진보정당

둘째, 통합진보정당은 낡은 정치지형을 뒤엎고 새 판을 짜는 정치개혁의 주체다. 누구나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교차집권하는 양당체제 정치지형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 수리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폐기대상이다. 지금 민주당이 다른 정치세력들과 통합하여 새 정당 창당의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정치적 변신에 성공해도 낡은 양당체제 정치지형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되레 그 수명을 더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땅의 정치현실에 제기된 당면과제는, 낡아빠진 양당체제 정치지형을 뒤바꿀 새로운 정치지형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썩은 냄새가 나는 수구정치의 낡은 판을 뒤엎고 진보정치의 새 판을 짜야 대중이 갈망하는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중심으로 통합된 새로운 야당에게 그런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양당체제 정치지형 한 쪽에 발을 들여놓은 정당에게 정치개혁을 기대한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명백하게도, 그런 낡은 정치지형과 인연이 없는 정당이라야 정치개혁의 새 판을 짜는 기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개혁의 기대를 받게 될 통합진보정당의 등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이 이 땅의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정치 대 수구정치의 새로운 정치지형을 펼칠 것이라는 점에서, 통합진보정당 건설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셋째, 통합진보정당은 세계 진보정치사에서 독보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이다. 진보정치현실을 폭넓게 바라보면,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진보정당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의 진보정당들을 크게 구분하면, 사회주의강령을 제시한 좌파정당과 사회민주주의강령을 제기한 복지정당으로 양분된다. 지금까지 국제진보정치의 지형을 좌파정당과 복지정당으로 양분하는 것은 불변의 공식처럼 인정되어왔다.

그런데 좌파정당도 아니고 복지정당도 아닌 독보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이 이 땅에 등장함으로써 기존 공식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통합진보정당은 좌파적 요소를 내포하지만 좌파정당이 아니고, 복지담론을 전면에 제기하지만 복지정당이 아니다. 통합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을 좌파정당과 복지정당으로 양분해온 기존 공식에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이다. 기존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이라는 점에서, 통합진보정당 건설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보와 대중의 간극을 메워가는 길에서

지금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마감단계에서 추진 중인 통합진보정당 건설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꺼내놓은 화두는 대중이다. 대중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비틀거리는 이 땅의 정치현실을 박차고 나아가 진보정치의 주인은 대중이라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진리를 올곧게 구현하려는 고심어린 노력, 바로 이것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여기까지 끌고 온 추진동력이었다. 좀 밋밋하게 표현하면, 통합진보정당 건설과정에서 당의 대중성 확보에 큰 힘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집권준비도, 집권과정도, 그리고 장차 집권하게 되면 집권 이후에도 오로지 대중을 위하여, 대중과 함께, 대중 속에서 움직이는 대중 자신의 정당으로 끝내 남으려는 통합진보정당의 결심이 돋보인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길다면 긴 과정이 있었다. 진정한 진보정당은 대중 자신의 정당이어야 하며, 진정한 대중정당은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명제, 바로 이것이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1년 동안 척박한 정치현실에서 진보정당사를 펼쳐온 끝에 도달한 총적 결론이다. 그리고 통합진보정당 건설은 그 과정에서 획득한 소중한 성과다.

그런데 그런 과정과 결심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통합진보정당이 대중성 확보에 열중하다가 진보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은 부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합진보정당의 등장이야말로 그 동안 너무 벌어졌던 진보와 대중의 틈새를 메워 그 양자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운동, 하나의 실체로 결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양자 결합이 가능하다는 말일까? 두 가지 논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첫째, 통합진보정당의 강령이 진보와 대중의 벌어진 틈새를 메울 양자 결합방침을 뚜렷이 밝혔다. 시공자가 설계도에 따라 건축공사를 추진하는 것처럼, 진보정당도 강령에 따라 진보정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통합진보정당이 제시한 40개조 강령은 매우 중요하다. 통합진보정당의 강령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 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감정이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통합진보정당이 제시한 40개조 강령은 어떠한 것일까? 서술방식을 보면, 그것은 7대 정치강령을 하나로 엮은 40개조 강령이다. 이를테면, 전민복지강령은 1번부터 6번까지 6개조에 서술되었고, 반독점민주화강령은 7번부터 18번까지 12개조에 서술되었고, 민생보장강령은 19번부터 32번까지 14개조에 서술되었고, 정치개혁강령은 33번부터 35번까지 3개조에 서술되었고, 평화-철군-군축-통일강령은 36번부터 38번까지 3개조에 서술되었고, 자주외교강령은 39번에 서술되었고, 과거사청산강령은 40번에 서술되었다.

저임금노동과 대량실업과 농정파탄이 몰고 온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으로 궁핍과 고통을 겪는 이 땅의 대중들을 위한 민생보장강령 14개조, 반독점민주화강령 12개조, 전민복지강령 6개를 제시한 것 자체가 진보와 대중의 벌어진 틈새를 메우려는 고심어린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려는 양대 진보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을 이 땅의 서민대중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7대 부문-40개조 진보강령으로 재구성한 것은, 진보와 대중의 벌어진 틈새를 메우기에 더 얹어놓을 필요도, 덜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알맞다. 통합진보정당이 양대 진보강령을 그렇게 재구성하고 세부화한 것을 보면, 대중성 확보에 열중하다가 진보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 하는 걱정이 얼마나 속좁은 기우였는지 알 수 있다.

둘째, 곧 창당될 통합진보정당이 진보와 대중의 벌어진 틈새를 메우려는 것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려는 단기적 목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대중정치활동을 전개하는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다. 시공자가 설계도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건물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사현장에 나가 노동의 땀을 흘려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통합진보정당도 현장에 나가 노력의 땀을 흘려야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그 현장은 어디인가? 두 말할 나위 없이, 각계각층 대중들이 노동으로 낮과 밤을 이어가는 생산현장이며, 희로애락이 엇갈리는 생활현장이다. 대중정치활동은 바로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진보정당의 고유한 임무이며 최고의 사명이다.

만일 진보정당이 대중정치활동을 소홀히 여기고 여의도 정치권 안에서 맴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쇠약증에 걸린다. 진보와 대중의 결합은, 진보정당이 오직 대중정치활동에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쏟을 때, 그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은 대중이 자기에게 지지를 보내주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는 문제아가 아니라,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대중정치시대의 총아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합진보정당은 창당과 함께 대중정치활동의 기본단위인 지역조직을 확대, 강화하면서, 현지 실정에 맞는 대중정치활동의 참신한 전개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정당이 가는 길은 이 땅의 대중들이 희망으로 자기의 정당을 세우고 보람으로 그것을 키워가는 기나긴 육성과정이다. 그 길고 복잡한 길에서 때로 난관과 역경도 만나겠지만,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을 건설하여 낡은 정치지형을 뒤바꿀 진보정치의 큰 걸음 앞에 승리의 내일이 빛날 것이다. (2011년 11월 25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