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3국의 대중투쟁이 ‘촛불’에 던지는 메시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은 촛불을 들지 않는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주코티 공원에서 일어난 월 스트릿 점거투쟁이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금융자본의 아성인 월 스트릿을 정조준한 대중투쟁이 라는 점에서, 월 스트릿 점거투쟁은 세계 각국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대중투쟁은 미국이 아니라 남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폭발력을 내지 못한 채 명맥을 이어가는 미국의 대중투쟁보다, 남유럽 전역을 투쟁열기로 후끈 달구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대중투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의 대중투쟁을 보도할 때도 미국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이 땅의 친미언론매체들의 편파보도를 거부할 때, ‘세계’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땅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지금,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한 대중들을 고무시켜주는 투쟁현장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제헌 광장(Syntagma Square),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태양문 광장(Puerta del Sol Square)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대경기장(Circo Massimo)이다. 남유럽 3국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폭발한 대중투쟁의 실상은 아래와 같다.

첫째, 주코티 공원 점거투쟁이 2011년 9월에 일어난 것에 비해, 그리스의 대중투쟁은 2008년 12월부터, 스페인의 대중투쟁은 2010년 7월부터, 그리고 이탈리아의 대중투쟁은 2009년 7월부터 계속되는 장기투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 주코티 공원 점거투쟁에 참가한 군중은 최대 15,000명 정도인 데 비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대중투쟁에 참가하는 군중은 최대 10만명 이상이다. 또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대중투쟁은 각기 그 나라의 대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대규모 투쟁이다. 이러한 양상은 남유럽 3국의 대중투쟁이 촛불집회나 시위행진 수준을 넘어서 민중항쟁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셋째, 주코티 공원 점거투쟁이 금융자본의 탐욕을 반대하는 수준이라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대중투쟁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를 반대하는 반정부투쟁이다. 금융자본의 탐욕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은 경제투쟁 범위에 머물고, 참된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대중투쟁은 경제투쟁을 넘어 정치투쟁으로 전개된다.

남유럽 3국의 총파업과 군중시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대중투쟁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각계각층 군중시위가 결합된 것이다. 이를테면, 조합원 45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그리스노동자총연맹(GSEE), 조합원 41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좌파노조 전체노동자전선(PAME), 조합원 28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그리스공공노조연맹(ADEDY)이 벌이는 총파업과 각계각층 군중시위가 결합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이탈리아에서도 조합원 570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이탈리아노동연맹(CGIL), 조합원 450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이탈리아노동조합총연맹(CISL), 조합원 217만명이 가입되어 있는 좌파노조 이탈리아노동연맹(UIL)이 벌이는 총파업과 각계각층 군중시위가 결합되었다.

그런데 스페인의 대중투쟁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대중투쟁과 좀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각계각층 군중시위가 노조의 총파업과 결합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된 까닭은, 스페인 노동운동이 조합원 120만명의 노동자위원회(CCOO), 조합원 100만명의 노동자총연맹(UGT), 조합원 6만명의 노동총연맹(CGT), 조합원 1만명의 전국노동총연맹(CNT)을 비롯해 13개 노조로 사분오열되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노동운동이 그처럼 사분오열되었으니 총파업을 벌일 수 없고, 대중투쟁과 결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스페인 대중투쟁을 이끄는 조직은 2011년 3월에 결성된, 한국의 범국민운동본부와 비슷한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Democracia Real Ya!-‘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이라는 뜻)’다. 여기에는 200여 개가 사회단체들과 수많은 개별인사들이 참가하였다.

남유럽 3국의 정치정세와 한국의 정치정세

대중투쟁과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치정세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현 집권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당 계열의 중도우파정당들이고, 이탈리아의 현 집권당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우파정당이다. 그러므로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대중투쟁은 집권 사회당을 반대하는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민들이 사회당을 반대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사회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정당을 정치적 대안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그 두 나라에 존재하는 좌파정당들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선거결과가 말해주는 각 정당별 대중적 지지도는 아래와 같다.

그리스에서 2009년에 실시된 의회선거 결과를 보면, 현재 집권당이며 중도우파정당인 그리스사회운동당이 43.92%, 우파정당인 ‘새로운 민주주의’가 33.48%, 그리스공산당이 7.54%의 득표율을 각각 얻었다. 스페인에서 2008년에 실시된 의회선거 결과를 보면, 현재 집권당이며 중도우파정당인 사회노동당이 43.87%, 우파정당인 국민당이 39.94%, 좌파연합당이 3.77%의 득표율을 각각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2008년에 실시된 상원선거 결과를 보면, 현재 집권당이며 우파정당인 자유국민당이 38.16%, 중도우파정당인 민주당이 33.70%, 무지개좌파당이 3.21%의 득표율을 각각 얻었다.

위의 선거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리스의 좌파정당은 7% 수준에 머물러 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좌파정당들은 3%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민들은 집권 사회당도 반대하고 좌파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정치적 아노미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남유럽 3국에서 대규모 대중투쟁이 장기간 지속되는 데도,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다.

남유럽 3국의 대중투쟁과 정치정세를 한국의 대중투쟁과 정치정세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각계각층 군중시위가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결합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중투쟁 양상은 스페인의 대중투쟁 양상과 동일하다. 또한 우파정당의 우세 속에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양당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정세는 이탈리아의 정치정세와 동일하다. 또한 이 땅의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정치권 전반을 불신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정세는 남유럽 3국의 정치정세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대중투쟁과 정치정세는 남유럽 3국의 대중투쟁과 정치정세보다 전반적으로 더 열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의 정치는 그처럼 열악한 조건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최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의 3자통합을 지지하는 여론이 생겨나고,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통합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결과에 대해 예측하기 힘들지만, 뭇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는 열악한 조건을 넘어설 야권통합에 쏠리고 있다. (민중의 소리 2011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