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고립주의와 결별하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문제를 놓고 곳곳에서 논쟁과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양당 합당을 반대하는 날선 목소리가 들린다.

양당 합당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진보신당 통합파와 통합해야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가 합하면 아주 손쉽게 통합진보당을 건설할 수 있다. 이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당 합당도 실패한 주제에, 만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가 합한다고 한들 그런 모습으로 출현한 정당에게 대중이 얼마나 관심과 지지를 보내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관심과 지지는 고사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의 냉대나 받을 것이다. 어쩌면 냉대조차 받지 못하고 관심 밖으로 아예 밀려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진보정치는 정파들끼리 모여앉아 수군덕거리는 ‘골방정치’가 아니다. 진보정치는 진보정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받고,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실현해야 하는 대중 자신의 정치다. 진보정치의 주인은 대중이다. 만일 각계각층 대중으로부터 냉대와 무관심을 받는 진보정치가 현실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보정치가 아니라 진보의 깃발을 든 고립정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시야를 넓혀보자. G20에 속한 나라들의 형형색색 좌파정당들이 각기 자국 대중으로부터 냉대와 무관심을 받으며 고립되어 있는 한심한 처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좌파정당사 100년을 헤아리고, 나라가 분단되어 있지도 않고, ‘국가보안법’으로 짓눌려 있지도 않은 G20 나라들의 좌파정당들이 왜 그 모양일까? 불우한 좌파정당들의 실패경험은, 이른바 좌파정당의 독자적 성장발전론이라는 교조(dogma)를 신주 모시듯 떠받들고 대중과 불통하면서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였기 때문이다. 교조가 좌파정당에게 들씌운 고립주의가 좌파정당과 대중을 분리시키고 좌파정당을 왜소무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만일 민주노동당이나 국민참여당이 각계각층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한나라당과 힘을 겨루는 제1야당이라면, 양당 합당은 논할 필요가 없고 각자 독자적 성장과 발전을 꾀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창당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어느 정도까지만 저성장, 저발전한 뒤에 정체되었고, 앞으로도 더 이상 성장발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G20 나라들의 좌파정당이 겪은 100년 실패경험과 민주노동당의 10년 정체경험은 독자적 성장발전론이 정치현실에서 동떨어진 교조였음을 말해준다.  

진보는 교조가 아니다

진보는 독자적 성장발전론으로 분칠한 교조가 아니다. 진보야말로 허위의 분칠을 벗겨내고 그 속에 웅크린 교조를 꺼내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자기 혁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자기 혁신을 추구하는 진보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은 연합전선의 혁신적 실현이다. 연합전선론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부연설명을 하면, 연합전선론이란 이질적인 정치세력들이 합하여 더욱 크고 강력한 정치적 실체를 구성하기 위한 원칙과 방도를 해명하는 정치이론이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이 연합전선의 혁신적 실현으로 된다고 말하는 논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약간 설명이 요구된다. 원래 민주노동당도 독자적 성장발전론이 아니라 연합전선론에 의거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건설되어야 하였지만, 11년 전 창당주역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운동권 정파들이 결집한 정파연합당을 건설하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11년 전 당시 민주노동당 창당주역들이 연합전선론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운동권 정파들이 결집한 것도 일종의 연합전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대중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정파연합전선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식으로 창당된 정파연합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진보정당도 아니고 진보적 대중정당은 더욱 아니며, 진보적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정파연합당이다.  

그런데 그 정파연합당은 10여 년이 지난 오늘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을 기약하지 못하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 한계를 돌파하는 길은,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연합전선을 혁신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파연합당의 낡고 왜소한 틀을 버리고 진보적 대중정당의 새롭고 건장한 틀을 세우는 자기 혁신이다.   

본디 연합전선이란 정치이념이 대동소이한 정치세력들이 합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합하는 것이다.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합해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대중이 참여할 수 있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이질적인 정치세력들이 대중의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연합전선의 절묘한 이치다. 자기, 타자, 대중의 공동목적, 이 3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견인, 타협, 절충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통합과정을 이해하여야 연합전선의 절묘한 이치를 알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참여당은 정치이념이 서로 다르지만, 연합전선론에 의거하여 합당할 수 있고, 또 합당해야 마땅하다.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해야 자기 혁신을 실현하는 것이지, 정치이념이 대동소이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가 합하면 또 다시 정파연합당의 낡고 왜소한 틀에 갇히는 꼴이 될 것이다.

한 편, 연합전선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쪽의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할 수 있다면, 왜 민주당까지 포함해서 3당 합당은 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간명하다. 상대적으로 당세가 너무 큰 민주당까지 포함하여 3당 합당을 하는 경우 자기, 타자, 대중의 공동목적 3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견인, 타협, 절충이 막히고, 민주당 안으로 다른 두 당이 흡수통합되어 종당에는 민주노동당 출신 세력이 변질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명백하게도, 흡수통합은 연합전선이 아니다.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3당 합당을 거부하는 견해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양당 합당을 요구하는 견해와 마찬가지로 연합전선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양당 합당으로 출현하는 새로운 정당이 진보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우경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연합전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꺼내놓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양당 합당은 어느 한 쪽으로 우경화 또는 좌경화되는 변질이 아니라, 연합전선의 원칙과 방도에 따라 견인, 타협, 절충하는 것이다.

견인, 타협, 절충으로 실현될 양당 합당은 고립을 털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전진이며, 정체를 벗고 발전을 추동하는 변화이며, 낡고 왜소한 틀을 버리고 교조를 타파하는 혁신이다. 그와 정반대로, 고립주의자들이 안주하려는 정파연합당의 낡은 틀은 대중이 떠나버린 고립이며, 성장과 발전이 멈춘 정체이며, 자기 혁신에 등돌린 교조다. 민주노동당의 10여 년 정체경험이면 족하지, 언제까지나 정파연합당의 낡고 왜소한 틀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몰이해인가 아니면 억지인가.

독자적 성장발전론의 낡고 왜소한 틀을 깨뜨리라! 연합전선을 배제하는 정파적 고립주의와 결별하라! 그리고 진보정치의 주인인 대중에게 다가서라! (민중의 소리 2011년 9월 23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