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궤도 위에 다시 울릴 새벽의 동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의 만류를 들어줄 수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환으로 서거하였다.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으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온 그는 현지지도현장으로 달려가던 야전열차 안에서 갑자기 심근경색이 일어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어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그의 심장은 박동을 멈추었다.

비탄에 잠긴 북측 인민들이 그의 초상 앞에 몰려와 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측의 야당들, 진보단체들, 진보인사들이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차원의 조문단 방북을 요구하였다. 세계 각국의 국가수반들과 정당들과 진보단체들과 진보인사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였고, 유엔 총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를 애도하여 묵념하였다.

북측 인민들이 긍지와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손꼽아 기다려온 “강성국가 건설의 대문을 여는 해” 2012년을 불과 보름 앞둔 그 날 12월 17일은 토요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말에 늦잠을 자고 있었을지 모르는 토요일 이른 아침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야전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강추위가 몰려온 새벽길을 떠난 것이다. 먼 곳에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인민군 병사들과 인민들을 찾아가기 위해 야전열차를 타고 새벽길을 떠나는 것은 그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다.

그 날 평양의 기온은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다. 한 나라를 책임진 국가지도자에게 주어지는 국정운영에 무수히 많은 과업들과 문제들이 제기되었을 터이니, 그가 감당해야 했던 정신적, 육체적 하중은 그 추운 새벽길에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므로, 측근 인사들과 주치의가 그에게 장기휴식과 절대안정을 권하였을 것이고, 건강에 무리가 가는 현지지도일정을 극구 만류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병사들과 인민들에게로 가기를 원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들의 만류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들,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나는 동무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가 없구만. 내가 하라고 하는 대로 동무들이 복종해주어야 하겠소.” 이것이 <로동신문>이 전한 그의 대답이었다.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은 특히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날씨에 더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친 그 날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을 주변에서 또 다시 간곡히 만류하였을 것이다.

그가 입은 야전복에 깃든 사연

영하 13도의 강추위가 몰아친 그 날 새벽에도 평소에 그러한 것처럼 야전열차에 올랐던 그는 현지지도현장을 향해 달려가던 열차 안에서 운명하였다. 검소한 야전복 차림이었다. 지금 그는 바로 그 야전복을 입고 금수산기념궁전에 누워있다. 그가 입은 야전복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생전의 김일성 주석은 서양식 정복인 제낀옷을 입지 않고 닫긴옷을 입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옷을 제멋대로 ‘인민복’이라 부르지만, 남측에서도 닫긴옷을 대학생 제복으로 입었던 시절이 있었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이 외국방문의 길에 오를 때, 이전처럼 닫긴옷을 입고 떠나려고 하였다. 그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국방문길에 닫긴옷보다는 제낀옷을 입고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넥타이를 매는 서양복식보다는 닫긴옷이 더 편하고 좋다고 하면서 그대로 입으려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늘부터 자신이 야전복을 입고 일하겠으니 주석은 제낀옷을 입으시라고 간곡히 권하였다. 그 날부터 김일성 주석은 닫긴옷 대신 제낀옷을 입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닫긴옷 대신 야전복을 입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30년 동안 검소한 야전옷 차림으로 살아오며 그 약속을 지켰다.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와 해외방문을 위해 줄곧 이동수단과 침식공간으로 사용해온 야전열차는 그의 이동집무실이었고, 그가 언제나 입었던 야전복은 그의 근무복이었으니, 그의 서거는 순직이었다. 세계 각국에 국가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근무복을 입고 비바람과 눈서리를 맞으며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국가지도자는 없으며, 더욱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밀려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와 싸우며 집무실에서 근무복을 입고 정력적으로 일하다가 순직한 국가지도자는 없다.

야전열차가 다시 울릴 새벽의 동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무는 무엇이었나? 생전에 그가 심혈을 기울여 실행한 국정과업들과 그가 고심 끝에 해결해야 했던 정치문제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하고 복잡하였으나 결국에는 미래의 지향점에 수렴되었으니, 그 지향은 곧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은 그 어떤 정치담론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 국가지도자들처럼 4-5년 정도 임기를 채우고 나면 퇴임식과 함께 그만두어야 하는 임기 중의 국정과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은 자기 한 평생을 오직 그것을 위해 바칠 투철한 신념과 강인한 의지를 지닌 특출한 국가지도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이다.

또한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역경과 난관을 헤쳐가며 실현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업이다. 말만 잘 하는 정치인은 그처럼 어렵고 복잡한 과업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그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4-5년 정도 재임기간을 채우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식의 임기제로는 어림도 없다. 평생토록 자신을 바쳐 간고분투하는 혁명가만이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의 어려운 과업을 맡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한 직후, 남측 여기저기에서는 그에 대해 극과 극을 오가며 엇갈리는 숱한 이야기들이 들린다. 북측 인민들이 국상의 슬픔에 잠겨있는 것을 알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헐뜯는 정신병자들이 토해내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중상과 악담을 밀쳐내고 말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정치가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군사전략가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는 정치가이고 군사전략가였지만, 그 이전에 그는 혁명가였다.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을 위해 난관과 역경을 헤치고 간고분투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신의 안녕을 접어두고 혁명승리의 미래를 사랑했던 혁명가였다. 엄청난 시련이 북측에 몰려왔던 ‘고난의 행군’ 시기의 험한 가시밭길을 앞장에서 헤쳐가던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그는 “이 길에서 붉은 기를 들고 나가다가 쓰러지면 후대들이 우리를 기억할 것”이라는 절절한 음성으로 혁명의 미래를 말했다. 분단의 질곡에 사로잡혀 혁명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이 땅의 서글픈 현실은 그를 혁명가로 부르기를 주저하지만, 훗날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난 통일조국의 새 역사는 그를 혁명가로 부를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전열차는 지금 평양 역두에 멈춰서 있다. 17년 전 7월 어느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서거 직후 상실의 아픔을 안고 평양 역두에 멈춰선 야전열차에 올랐던 것처럼, 이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승자인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상실의 아픔을 안고 멈춰선 열차에 오를 2012년 1월 어느 날, 야전열차는 새벽의 동음을 다시 울릴 것이다.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의 여명을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려온 두 줄기 강철궤도 위에... (2011년 12월 2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