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중독증 걸린 도둑정치, 재앙협정을 강요하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혹의 망령이 국민들의 머리 위에 떠돌고 있다

전 세계에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들이 많은데, 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즈음 언론에 떠도는 왜곡정보만 듣다보면, 그런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왜곡보도에 이골이 난 이 땅의 수구언론매체들은 한미자유무역으로 교역량이 크게 늘어나면, 수출감소로 어려움을 겪어온 남측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식의 분석기사를 써내고 있다. 한미자유무역에 대한 그런 식의 분석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땅의 국민들을 미혹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 기어 나온 미혹의 망령이 지금 국민들의 머리 위에 떠돌고 있다. 미혹의 망령은 정확한 정보가 없는 공간에서 더 활개를 치는 법이다. 미혹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판단력을 회복하려면,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아래의 정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당수의 나라들이 쌍무적 또는 다무적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거나 협정체결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면 미국은 어떤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을까?

미국이 가장 먼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미국-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때는 1985년이다. 미국이 그처럼 일찌감치 이스라엘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데에는 두 나라의 특별한 동맹관계가 작용하였다. 특별한 동맹관계인 것만큼, 그 두 나라의 자유무역협정도 특수한 것이어서,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미국-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이스라엘 수출은 1985년에 25억8,000만 달러였는데, 2005년에는 288%가 늘어난 97억 달러였고, 이스라엘의 대미수출은 1985년에 22억달러였는데, 2005년에는 663%가 늘어난 168억 달러였고, 2008년에는 222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1985년에 이스라엘과 자유무역을 하기 시작한 미국이 1994년에 두 번째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캐나다와 멕시코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산과 강이 잇닿은 인접국들이므로, 미국이 자기 인접국들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는 것은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 2000년 이전에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특별한 동맹관계에 있는 그 세 나라뿐이다. 이처럼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미국과 특별한 동맹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다. 미국 경제가 침체위기에 시달리게 된 2000년대 이후 미국은 갑자기 자유무역협정의 폭을 세계적 범위로 넓혀가면서 16개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고, 지금도 계속하여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싱가포르와 오스트레일리아, 중동에서 요르단, 바레인, 오만, 아프리카에서 모로코와 각각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특히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라틴아메리카에 집중되었는데,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콜롬비아, 도미니칸 공화국, 칠레, 페루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경과가 말해주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다른 경제선진국들과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대상은 거의 모두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이고 정치적으로 친미약소국들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개발도상국과 경제선진국 사이의 자유무역은 초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의 자유경쟁처럼 극도로 불공정한 교역관계를 통해 상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처럼 극도로 불공정한 무역은 언제나 경제선진국에게는 이익을 주고 개발도상국에게는 손해를 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본주의세계시장을 틀어쥔 경제대국 미국이 개발도상에 있는 친미약소국들만 골라서 자유무역협정을 맺음으로써 ‘통상자유화’라는 미명으로 불공정한 무역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과 친미약소국 사이의 자유무역은 미국이 친미약소국의 노동자, 농민, 서민이 창출한 이윤을 자유무역을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털어가는 이윤탈취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전 시기에 제국주의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낙후한 약소국들을 식민지로 예속하고 군경을 동원하여 식민지에서 자원약탈과 이윤갈취를 자행하는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금 미국은 개발도상에 있는 친미약소국들과 통상을 자유화하여 합법적으로 이윤을 탈취하는 교활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자유무역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는 경우, 어떤 사람들은 합법적인 자유무역을 반미적 시각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미국과 친미약소국 사이의 자유무역 뒤에 감춰진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런 반문이 꼬리를 감추게 된다.

18년 전 미국과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개발도상국

세계 각국이 복잡한 경제관계로 서로 뒤엉켜있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미증유의 붕괴위험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지금, 각국 정부들이 그 붕괴위험을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고스란히 떠넘긴 까닭에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소수 부유층만 엄청난 부를 긁어모았고, 나머지 인구 90%에 해당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저임금노동, 대량실업, 농업파괴로 금식한 궁핍과 고통을 겪고 있다. 극단적 빈부격차,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같은 개념들이 말해주는 참상이 세계적 범위로 확대된 것이다.

오늘날 그런 참담한 현실이 대중의 분노와 투쟁을 촉발시킨 것은 당연한 이치다. 궁핍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생존권 투쟁의 절규와 함성이 세계 각국에서 울려나오고 있다. 심지어 소시민적 안락감에 젖었던 미국에서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아우성이 들리고 있다.

궁핍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생존권 투쟁이 격화된 나라들 가운데 자유무역과 관련해 특히 주목해야 할 나라는 멕시코다. 멕시코는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미국과 가장 먼저 자유무역을 시작한 나라다. 자유무역의 결과는 한 두 해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정도 지나야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난 18년 동안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온 멕시코의 경험을 분석하면, 미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자유무역이 가져온 결과를 파악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크고 적은 규모의 생존권 투쟁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는데, 올해에 들어와 한층 더 격렬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2011년 3월 28일 멕시코의 40여 개가 넘는 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인 생존권 투쟁이 폭발하였는데,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만 20,000여 명이 대중투쟁에 참가하였다. 2011년 3월 28일에 폭발한 생존권 투쟁은 5월 5일, 9월 5일, 10월 15일로 이어지며 장기화되었다.

멕시코 국민들의 생존권 투쟁이 왜 이전보다 더 격화, 장기화되었을까?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멕시코 국민의 생존권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민생경제가 피폐해진 멕시코의 현실은 아래와 같다.

첫째, 멕시코의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2010년 현재 멕시코 인구는 1억1,232명인데, 그 가운데 빈곤인구는 44.2%에 이르는 4,964만명이다. 멕시코 근로대중의 생산노동으로 창출된 사회적 부 가운데 85%를 극소수 부유층이 걷어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긁어모은 최고 부호는 미국의 빌 게이츠(Bill Gates)가 아니라,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이다. 2011년 현재 빌 게이츠의 자산총액은 590억 달러인데 비해, 카를로스 슬림의 자산총액은 740억 달러나 된다. 1억1,232만 명 멕시코 국민들의 연간 국민총생산 가운데 5%를 카를로스 슬림 한 사람이 가져가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온 멕시코를 덮친 것은 극단적 빈부격차라는 재앙이었다.

둘째, 멕시코의 근로대중은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라 멕시코의 제조업부문에서 취업인구 증가는 70만명에 그쳤고, 미국산 제품이 멕시코 시장에 마구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제조업부문 노동자 13만명이 되레 일자리를 잃었다. 멕시코의 제조업부문 노동자들은 생존에 필요한 소득의 28.6%밖에 얻지 못하는 살인적인 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멕시코 근로대중에게 돌아가는 1일 평균 최저임금은 2010년 1월을 기준으로 약 4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멕시코, 캐나다, 미국은 다른 부문에서는 3국협정 방식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었지만, 이해관계의 충돌이 심했던 농축산부문에서는 3국협정 방식이 아니라 양국협정 방식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다시 말해서, 미국-캐나다 농축산부문 자유무역협정과 미국-멕시코 농축산부문 자유무역협정이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병존하는 것이다. 멕시코가 미국과 농축산부문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결과, 멕시코의 농축산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농업경제휘보(American Journal of Agricultural Economics)> 2008년 8월호에 실린 버지니아공과대학 농업 및 응용경제학 교수 제이슨 그랜트(Jason Grant)의 분석에 따르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농축산부문에 미친 영향은 협정이 발효된 이후 8-12년이 지나서야 전면적으로 나타났는데, 미국의 농축산부문 이외의 여러 부문들에서 관세율이 3-5% 줄어든 데 비해, 농축산부문 수출관세는 평균 40%나 늘어났고, 일부 농축산물 수출관세는 200%로 폭증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농축산부문 자유무역으로 멕시코의 농축산업을 초토화하고, 종속시켰음을 말해준다. 그 결과 200만명이 넘는 멕시코 농민들이 도시빈민으로, 또는 미국 밀입국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멕시코 노동자는 살인적인 저임금과 대량실업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멕시코 농민은 농사포기와 농촌이탈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온 멕시코를 덮친 것은 근로대중의 생존권 박탈이라는 재앙이었다.

셋째, 멕시코를 등지고, 살 길을 찾아 미국 국경을 넘는 인구이탈사태가 크게 악화되었다. 미국으로 넘어간 멕시코인 밀입국자는 2000년에 840만명이는데 2008년에는 1,190만명으로 늘어났다. 멕시코가 미국과 자유무역을 시작한 1994년부터 15년 동안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도중에 사망한 멕시코인은 최소 3,861명에서 최대 5,607명에 이른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에 밀입국한 뒤에도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인 채 각지를 떠돌며 미국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허드렛일과 외국인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온 멕시코를 덮친 것은 대량 인구이탈이라는 재앙이었다.

넷째, 마약밀매와 조직범죄가 만연하며 사회적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멕시코 군경은 마약밀매범죄와 조직범죄에 연루된 범죄자 22,700명을 사살하였고, 121,199명을 구속하였다. 2011년 1월부터 9월까지 마약밀매에 연루되어 사망한 멕시코인은 10,022명이다. 멕시코 국민들은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과 총격사건의 생지옥 보도를 날마다 들으며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온 멕시코를 덮친 것은 마약밀매와 조직범죄라는 재앙이었다.

친미중독증 걸린 도둑정치가 재앙협정을 강요하였다

멕시코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재앙소식들은 이제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멕시코처럼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야 하는 이 땅의 국민들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붕괴위험에 처한 오늘, 한미자유무역협정까지 발효되면 이 땅의 국민들은 대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자동차산업을 틀어쥔 현대, 전자산업을 틀어쥔 삼성과 LG 같은 몇몇 재벌기업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하청계열 중소기업들만 경쟁에서 살아남아 재앙을 겪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에서 그런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상위 부유층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 90% 국민들은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궁핍과 고통을 겪을 것이고, 재벌기업과 그들의 하청계열 중소기업들을 제외한 산업 전반은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초토화될 것이다. 특히 국제적 경쟁력이 취약한 이 땅의 농축산업, 서비스업, 금융업에 피해가 집중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그가 숭앙하는 미국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인구 10%를 차지하는 상위 부유층을 위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강행하였고, 청와대의 거수기를 자처하고 나선 한나라당은 날치기 국회에서 협정 비준을 강행하였다. 이명박 정권의 재앙협정 체결강행은 이 땅의 절대다수 근로대중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이익을 빼돌려 미국에게 넘겨주고, 이 땅의 상위 부유층에게 몰아주는 친미중독증에 걸린 도둑정치(kleptocracy)의 범죄적 산물이다. 친미중독증에 걸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도둑정치가 재앙협정을 낳았고, 그 재앙협정이 이 땅의 국민들을 재앙에 몰아넣을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의 4대 재앙을 겪는 멕시코에서 올해 들어 전국적 범위의 생존권 투쟁이 폭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재앙이 밀려오게 될 것임을 직감한 이 땅의 대중들도 “비준무효 명박퇴진”을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친미중독증에 걸린 도둑정치의 집행자들은 시위군중에게 진로봉쇄, 물대포 난사, 강제연행으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이 땅에서 벌어지는 재앙협정 폐기투쟁은 며칠동안 하다가 유야무야 그만둘 싸움이 아니며, 재앙협정 비준을 무효화할 때까지 계속될 싸움이다.

재앙협정을 어떻게 무효화할 수 있을까? 재앙협정의 끔찍스러운 실상을 직시한 각계각층 국민들의 줄기찬 폐기투쟁이 재앙협정을 무효화하는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 국민들의 투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재앙협정 폐기투쟁만으로는 재앙협정을 무효화하기 힘들다. 대중투쟁은 저항운동에서 정치변혁으로 상향발전되어야 한다.

야당과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앙협정 체결을 강행한 친미적 도둑정치를 들어내고 자주적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정치변혁, 바로 거기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재앙협정을 폐기하려는 각계각층 국민들과 진보정당의 결합력만이 친미적 도둑정치를 들어내고 자주적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정치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성난 민심의 재앙협정 폐기투쟁과 더불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이 그런 정치변혁의 기회다. (2011년 11월 28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