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연합함대 위협한 북측 공군연합부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북침전쟁계획

2011년 11월 16일 남측 언론매체들은 한반도 군사상황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스쳐가듯이 보도하고 넘어갔다. 남측 정부 소식통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그 기사에는 2011년 10월과 11월 초에 인민군 폭격기가 공대함미사일을 두 차례 시험발사하였다고 씌여있었다. 당시 한반도 군사상황이 매우 긴박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흐릿한 기사를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언론에 나지 않은 놀라운 사실은 이러하였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인민군이 폭격기를 동원한 공대함미사일 시험발사를 2011년 10월과 11월 초에 하였다는 것이다. 11월 초라는 표기는 분명하게 기술한 것이지만, 10월 초인지 아니면 10월 말인지 구분하지 않고 그냥 10월이라고만 표기했으니 막연하다. 10월과 11월 초라고 흐릿하게 표기된 것을 10월 말과 11월 초라고 고쳐 읽어야 뜻이 통한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이 폭격기를 동원한 공대함미사일 시험발사를 2011년 10월 말과 11월 초에 두 차례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남측 언론매체들이 당시 인민군이 폭격기를 동원하여 공대함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다고 기술한 것도 오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08년 10월 8일 <중앙일보>는 인민군 일류신-28이 서해 상공으로 출격하여 공대함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발사한 것은 작전성능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발사가 아니라, 공중무력시위의 일환으로 공대함미사일을 발사한 것이었다. 인민군이 공대함미사일 발사한 공중무력시위를 2011년 10월 말과 11월 초에 전개한 것은, 바로 그 기간에 미국군이 한국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참가시킨 가운데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한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남측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한국군은 2011년 10월 27일부터 11월 4일까지 육해공군 병력 14만 명과 각종 군사장비를 동원하여 ‘호국훈련’을 실시하였다. 그것은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그것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북침전쟁연습이었는데, 그 실상은 이러하였다.

육군 2군단은 인민군이 전방에서 기습적인 포공격을 가하고 특수전 병력이 후방으로 기습침투한 상황을 상정하여 중동부전선에 걸쳐 있는 춘천, 화천, 홍천에서 기계화부대를 동원한 대규모 지상기동전을 연습하였다. 그와 동시에, 육군수도방위사령부 휘하 52사단 병력이 서울방어훈련을 실시하였다. 중동부전선의 기동전연습과 서울방어훈련에 병력 30,000명, 전차, 장갑차, 군용차량 3,100대가 동원되었다.

또한 해군 1함대는 동해에서 구축함, 초계함, 호위함, 고속정을 비롯한 각종 군함 10여 척, 링스(Lynx) 해상작전헬기와 P-3 조기경보기 등을 동원한 대규모 해상작전연습을 실시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경상북도 포항 일대에서는 상륙수송함, 상륙함, 고속상륙정 등 20여 척, 작전헬기 30여 대, 해병대 병력 4,300여 명, 상륙돌격장갑차 60여 대, 전차, 자주포, 견인포, 공격헬기 등이 동원하여 한미합동상륙전을 연습하였다. 여기에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미국 해병대 원정강습단 선발대가 상륙수송함,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을 동원하여 참가하였다.

지상기동전연습, 해상작전연습, 합동상륙전연습은 지난해에도 실시되었는데, 그 이외에 특별한 것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서해 5도 국지전연습이다.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실시된 국지전연습은 해상작전연습, 대공방어전연습, 반(反)특수전연습으로 진행되었다. K-9 자주포와 130mm 다련장포가 실탄사격훈련을 하는 가운데, 육군 병력수송헬기와 공군 C-130 수송기가 공중에서 병력을 투입하였고, 해병대는 전차를 출동시켰고, 육군은 AH-1S 공격헬기를, 공군은 KF-16 전투기를 각각 출격시켰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호국훈련’이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실시한 것처럼 말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올해 ‘호국훈련’에는 미국 해군과 해병대 병력 500여 명과 주한미공군 전투기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은 한국군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는 게 아니라 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다. 미국군사령관은 ‘호국훈련’에 참가시킨 미국군만 따로 지휘한 것이 아니라, ‘호국훈련’ 전체를 총지휘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올해 ‘호국훈련’의 초점이 서해 5도 국지전연습에 맞춰졌다는 사실이다. 서해 5도 국지전연습이야말로 국지전을 핑계 삼아 북침전면전을 도발하려는 매우 위험천만한 전쟁연습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서해 5도 국지전연습이 진행 중이던 2011년 10월 28일 서울에서 제43차 한미안보협의회(SCM)가 열렸는데, 그 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 ‘한미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들어있다. 2010년 12월부터 작성하기 시작하여 현재 완성단계에 들어선 ‘한미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은 한국군과 미국군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군이 작성하는 북침전쟁계획이다. 한국군에게는 북침전쟁계획을 작성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

국지전을 핑계 삼은 북침전쟁계획은 군사기밀이어서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지만, 한국군이 초기대응을 맡고, 미국군이 2차 대응을 맡는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미국군의 2차 대응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군의 2차 대응은 주한미국군 포병전력, 주일미국군 공중전력 및 해병대전력이 총동원되는 것이다. 미국 군부가 주한미국군 포병전력, 주일미국군 공중전력 및 해병대전력을 총동원한다는 말은 전면적 북침전쟁을 벌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한미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은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도발적인 북침전쟁계획인 것이다.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동해로 북상한 미일연합함대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때, 대북침공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7함대 항모강습단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호국훈련’이라는 명칭으로 북침전쟁연습을 벌여놓았으니, 대북침공의 주력인 7함대 항모강습단도 ‘호국훈련’과 연계된 더 큰 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호국훈련’이 실시된 2011년 10월 27일부터 11월 4일까지 기간에 ‘2011 연례훈련(ANNUALEX 2011)’이 연계적으로 실시되었다. 남측 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은 ‘2011 연례훈련’은 7함대 항모강습단과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함대로 구성된 미일연합함대가 한국 해군 1함대의 동해 해상작전연습과 연계하여 실시한 한미일 합동전쟁연습이었다.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를 중심으로 미사일순양함 카우펜스호(USS Cowpens), 미사일구축함들인 커티스 윌버호(USS Curtis Wilbur), 드위호(USS Dewey), 래슨호(USS Lassen), 스테듬호(USS Stethem), 웨인메이어호(Wayne E. Meyer), 상륙함 토투가호(USS Tortuga), 소해함들인 가디언호(USS Guardian), 페이트리엇호(USS Patriot), 해상정찰기, 핵추진 잠수함을 망라한 7함대 항모강습단과 동해에 배치된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함대가 미일연합함대로 편성되었다. 미일연합함대는 일본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출발하여 제주도 남쪽 바다를 거쳐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동해로 진입하는 전형적인 북침경로를 따라 북상하였다.

2011년 10월 31일 미국 해군 제7함대 공보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일연합함대는 적대국의 공중공격, 해상공격, 해저공격으로부터 항공모함을 방어하는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것은 항모강습단이 10-20분 사이에 공중, 해상, 해저에서 기습공격을 받는 상황을 가정하여 실시된 대규모 해상작전연습이다.

‘호국훈련’과 ‘2011 연례훈련’을 종합해보면, 서해 5도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북침전쟁연습이 어떻게 실시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수도권과 중동부전선에서 지상전이 벌어지고, 동서해에서 해상전과 상륙전이 벌어진 가운데 미일연합함대가 동해로 전격 진입하여 전면전에 돌입하는 양상으로 실시된 것이다. 언론보도에 떠도는 허위선전밖에 듣지 못한 이 땅의 국민들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연례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지만, 올해 실시된 한미일 합동전쟁연습의 무력규모와 작전범위를 보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이었는지 알게 된다.

미일연합함대에 맞선 14대의 인민군 전투기

한미연합부대와 미일연합함대가 그처럼 위험천만하고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긴장된 시각, 북측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연속적으로 인민군부대들을 시찰하고 군사훈련을 지도하였다. 그 기간에 북측 언론이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적을 보면, 11월 1일 인민군 제789군부대를 시찰하였고, 11월 3일 인민군 공군연합부대 훈련을 지도하였고, 11월 4일 인민군 제322군부대를 시찰하였다. 올해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각지의 생산현장을 계속 찾아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미연합부대와 미일연합함대의 북침전쟁연습이 있었던 기간에는 생산현장시찰을 뒤로 미루고 인민군부대들을 연속적으로 찾은 것이다.

위의 보도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북측 언론이 2011년 11월 3일에 보도한 공군연합부대 훈련이다. 북측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적을 하루 늦게 기사화하는 보도관행을 생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군연합부대 훈련을 지도한 날은 11월 2일이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군연합부대 훈련을 참관하였다고 기술한 것이 아니라 지도하였다고 기술한 것이다. 지도하였다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고, 공군연합부대 훈련에 관한 지침을 주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1년 11월 2일은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제주도 남쪽 바다로 북상한 미일연합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기세등등하게 동해로 들어선 날이다. 그런데 미일연합함대가 동해로 진입하고 있던 시각에 맞춰 인민군 공군연합부대는 동해에서 그에 대응한 대규모 공중무력시위를 전개하였다. 당시 이 땅의 국민들은 누구도 몰랐지만, 저 멀리 동해 수평선 너머에서는 인민군 공군연합부대가 인민군에게 도전해온 미일연합함대에 맞선 공중무력시위를 그렇게 전개하고 있었다.

동해에 들어가 북침공격을 노린 미일연합함대에 맞서 공중무력시위를 전개한 인민군 공군연합부대는 어떤 부대였을까? 북측 언론보도는 그 공군연합부대에 망라된 각 부대들의 고유명칭을 밝히지 않은 채, 그 연합부대가 오중흡 7련대 칭호를 수여받았다고 했다. 원래 오중흡 7련대 칭호는 최정예부대에게 주는 것이므로, 그 공군연합부대는 인민군 공군부대들 가운데서 최정예부대다. 북측 언론이 보도한 기념사진에 나온, 비행투구(helmet)를 쓴 전투비행사는 76명이므로 전투기 76대가 그 공군연합부대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결사수호의 비상한 각오로 어려운 비행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조선인민군 공군 제447군부대의 14명 비행사들을 만나주시였다.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조국 앞에 떳떳한 위훈을 세운 그들을 몸가까이 세우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고 보도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명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공개하였다. 위의 인용문과 기념사진을 정밀분석하면, 미일연합함대의 도전에 맞선 인민군 최정예 공군연합부대가 어떻게 공중무력시위를 전개하였는지 알 수 있다.

인민군 공군의 단좌식 미그 전투기에는 전투비행사가 한 명씩 탑승하므로, 그 날 공중무력시위에 참가한 전투기는 모두 14대였음을 알 수 있다. 미일연합함대의 도전에 맞선 공중무력시위에 인민군 전투기 14대가 출격한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14명 전투비행사들은 출격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맹세문을 썼다고 하니, 최후의 결전에 나서는 비장한 각오를 안고 출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비장한 각오를 안고 출격한 14대의 전투기는 동해 상공에서 어떤 공중무력시위를 하였을까?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14명 전투비행사들이 “평시의 훈련을 통하여 다져온 자기들의 높은 비행술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이런 표현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매우 어렵고 격렬한 공중무력시위를 전개하였음을 말해준다. 14대의 전투기들이 전개한 공중무력시위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해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관들 속에 있는 공화국영웅 허룡 동무를 알아보시고 조국의 령공에 침범하였던 미제의 전략정찰기를 격퇴한 그의 과감한 전투행동을 다시금 치하하시였다”고 기술한 보도내용에 들어있다. 이 인용문은 아무런 뜻이 없이 보도기사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암시를 주기 위해 특별히 들여놓은 것으로 보인다.

허룡은 누구일까? 그는 2003년 3월 2일 동해에 출몰한 미국군 전략전자정찰기 RC-135S를 격퇴하여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전투비행사다. 2006년 12월 27일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순서에 출연한 허룡은 그로부터 3년 전에 미그 29 전투기를 몰고 동해 상공으로 출격하여 RC-135S를 격퇴한 놀라운 무용담을 시청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기묘하고 령활한 전술로, 그리고 대담하게 육탄으로 돌입하다시피 해 미제의 최신형 정찰기에 접근했을 때의 거리는 불과 15m 안팎이었다”고 회상하였다. 고속비행 중인 적기를 강제로 착륙시키거나 영공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적기를 위협하는 근접비행술을 ‘부딪기(thumping)’라 하는데, 그가 조종한 미그 29 전투기가 충돌위험을 무릅쓰고 RC-135S 날개쪽으로 15m까지 바짝 접근하여 고속비행한 것은 숙련도와 담력이 없으면 흉내낼 수 없는 고도의 비행술이다.

그런데 2011년 11월 2일 동해에 출몰한 미일연합함대의 도전에 맞선 공중무력시위에서 전투기를 몰고 출격한 14명의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근접비행술을 시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북침공격에 나선 미일연합함대의 맨앞에서 비행하게 될 전자전기(EA-18G Growler)와 함재기(F/A-18E/F Super Hornet)를 격추하는 요격비행술을 시위하였다.

인민군 전투기가 미국군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함재기를 격추하려면, 함재기에 장착한 공대공미사일(AIM-9 Sidewinder)의 사거리 안으로 파고들어 근접공중전을 벌여야 한다. 근접공중전에서 이기려면 담력과 요격비행술이 필수적이므로, 평소에 담력과 요격비행술을 끊임없이 연마해온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근접공중전에는 자신이 만만하다.

레이더탐지망 뚫은 미확인 비행물체들은 바다에서 솟구쳤나?

그런데 인민군 전투기 편대가 무슨 수로 미일 연합함대의 고성능 레이더 탐지망을 뚫고 접근하여 근접공중전을 벌인다는 말일까? 궁금증을 풀어줄 해답은, 2003년 3월 2일 허룡을 비롯한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전투기 4대를 몰고 미국군 전략전자정찰기 RC-135S에 귀신 같이 접근한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군이 운용하는 RC-135라는 이름의 다른 전자정찰기들과 달리, 2003년 3월 2일 동해에 출몰한, 코브라 볼(Cobra Ball)이라 부르는 전자정찰기 명칭 끝에는 S라는 글자가 특별히 붙어있는데, 이것은 그 정찰기가 미국군이 두 대밖에 갖지 않은 최고성능의 전략전자정찰기임을 말해준다. RC-135S에 탑재된 레이더탐지기는 북측 각지의 공군기지들에서 뜨고 내리는 모든 비행물체들의 움직임을 아주 먼 거리에서 샅샅이 포착할 뿐만 아니라, 인민군이 발사한 탄도미사일까지 포착할 수 있는 고성능을 자랑한다. 그래서 미국군에게 두 대밖에 없는 전략전자정찰기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4대의 인민군 전투기가 그처럼 최고성능을 자랑하는 RC-135S의 레이더탐지망을 뚫고 바짝 접근할 때까지 그들은 자기들의 레이더탐지망이 뚫렸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운명의 날, RC-135S는 북측 해안에서 24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이전처럼 태연히 정찰비행을 하고 있었고, RC-135S를 요격하기 위해 이륙한 인민군 전투기 4대가 240km 밖에서 비행하는 RC-135S에 접근하기 위해 6-7분 동안 비행하였다. 비행속도가 초음속 전투기보다 비할 바 없이 빠른 미사일 비행궤적도 포착하고, 크기가 전투기 동체보다 비할 바 없이 작은 미사일도 포착한다는 RC-135S가 1-2분도 아니고 무려 6-7분 동안, 그리고 1-2대도 아니고 무려 4대나 되는 인민군 전투기 편대가 다가가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전투기 동체에 레이더전파를 흡수하는 특수도료를 바르면 적의 레이더전파를 흡수할 수 있어서 인민군 전투기들이 그런 특수도료를 동체에 칠해 스텔스 기능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RC-135S가 쏘아대는 고성능 레이더전파를 100%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비결은, 레이더전파를 발신하는 교신장치와 항법장치를 모두 꺼놓은 인민군 전투기들이 해안에서 곧장 바다쪽으로 뚫린 지하활주로에서 튀어나오듯 이륙하여 해수면을 스치듯이 초저공 밀착비행을 하였던 것에 있었다. RC-135S가 한반도 전체 상공을 레이더탐지망으로 훑으려면, 14km 정도 높은 상공에 떠서 비행해야 하는데, 인민군 전투기들이 해수면을 스치듯이 초저공 밀착비행을 하면 그들의 레이더탐지망에 포착되지 않는다. 지하활주로에서 튀어나온 인민군 전투기들이 교신장치와 항법장치를 모두 끄고 전투비행사의 육안과 감각에 의존해 고속으로 해수면 밀착비행을 하였으니, 아무리 첨단성능을 갖추었다한들 RC-135S가 무슨 수로 그 전투기들의 접근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는가!

전투비행사들이 항법장치를 끈 채 순전히 육안과 감각에 의존해 무려 240km나 되는 장거리를 해수면에 밀착하여 비행한 것은, 고속도로에 들어선 자동차 운전자가 두 눈을 감고 240km를 주행하는 것처럼 목숨을 내건 결사적 담력비행이었고, 고도의 숙련비행이었다. 허룡을 비롯한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RC-135S가 날아가는 쪽으로 비행방향을 잡고 육안과 감각에 의존하여 6-7분 동안 해수면 밀착비행을 하다가 이동목표물에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항법장치를 켜고 급상승하면서 RC-135S가 어디에서 날고 있는지 찾아야 하였다.

그런데 그 전투기들이 항법장치를 켜는 순간, 마치 바닷속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4개의 미확인 비행체가 RC-135S 레이더화면에 갑자기 나타났다. RC-135S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미국군 27명은 자기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4개의 미확인 비행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그 미확인 비행체를 정찰기 창문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고 너무 놀라 나자빠질 뻔하였다. 그들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미확인 비행체는, 은빛 삼각날개 위에 붉은 오각별을 선명하게 새긴 인민군 전투기들이었다. 인민군 전투기들이 강제착륙을 유도하고, RC-135S 앞에 바짝 붙어 전방시야를 가로막다가 재연소장치(After Burner)를 켜서 화염을 방사하고, 제한속도를 넘어 전속력으로 줄행낭치는 RC-135C를 향해 공대공미사일 발사장치를 가동하는 등 세계 최강의 전략전자정찰기를 20여 분 동안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전설적인 무용담이 전해지고 있다.

2003년 3월 2일 동해에 출격한 인민군 전투기 4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2011년 11월 2일 동해에 출격한 인민군 전투기 14대도 결사적 담력비행과 고도의 숙련비행으로 해수면을 스치듯이 날아가 미일연합함대의 전자전기와 함재기를 격추할 신출귀몰의 요격비행술을 시위하였다.

대함공격기의 공대함미사일로 ‘무적함대’ 격침한다

실제 전쟁상황에서 만일 인민군 전투기 편대가 미일연합함대의 전자전기와 함재기를 격추해버리면, 미일연합함대는 두 손이 묶인 권투선수 신세가 될 것이다. 인민군 전투기들이 신출귀몰하는 해수면 밀착비행과 근접공중전으로 항모강습단의 전자전기와 함재기를 격추하여 미일연합함대의 손을 묶어버리면, 인민군이 출격시킨 또 다른 기종이 나타나 함대를 공습하게 된다.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을 공격할 또 다른 기종이 바로 남측 언론매체들이 부정확하게 인민군 폭격기라고 보도한 바로 그 기종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인민군 폭격기가 2011년 10월 말에 서해 상공으로 출격했고, 11월 초에도 또 다시 서해 상공으로 출격한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오보다. 10월 말 서해 5도 국지전연습이 실시되던 때에는 인민군 폭격기가 당연히 서해 상공으로 출격하였지만, 11월 2일 미일연합함대가 동해에 진입하였을 때는 동해 상공으로 출격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동서해 상공으로 두 차례 출격한 인민군 폭격기가 일류신(Ilushin)-28이라고 보도하였다. 승조원 3명이 타고, 제트엔진을 장착한 일류신-28 폭격기는 폭탄창에 폭탄 3t을 실을 수 있는데, 시속 900km, 비행거리 2,100km, 비행고도 12,300m의 성능을 지녔다. 일류신-28은 소련이 1950년에 작전배치하여 40여 년 동안 사용하다가 1980년대에 퇴역시켜 지금은 전쟁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폐기된 기종이다. 일류신-28을 아직까지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인민군이 그처럼 오래 전에 폐기된 일류신-28을 아직도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인민군은 1950-1970년대에 사용한 낡은 폭격기를 아직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장비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미국 공군이 1950년대에 사용하던 B-52 전략폭격기를 첨단장비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민군은 일류신-28 폭격기를 전자전기, 대함공격기, 대잠공격기로 각각 개조하였다. 2011년 10월 말과 11월 초에 서해와 동해에 각각 출격한, 일류신-28을 개조한 기종 가운데 전자전기나 대잠공격기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 글에서는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함공격기에 대해서만 서술한다.

위의 보도기사에 나온 한국군 소식통은 인민군이 스틱스(Styx) 함대함미사일을 개조한 공대함미사일을 일류신-28에서 시험발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대함미사일이라면 스틱스 미사일밖에 아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잘못 추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군이 미일연합함대를 격침시키기 위해 특별히 개발한 공대함미사일은 스틱스를 개조한 것이 아니라, 전혀 차원이 다른 최첨단 순항미사일이다.

인민군 대함공격기에 장착된 공대함 순항미사일은 어떤 성능을 지녔을까? 그 미사일은 지금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공대함 순항미사일 Kh-35와 성능이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민군 대함공격기가 타격목표로부터 130km 떨어진 상공에서 공대함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면, 그 미사일은 적의 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항법장치를 끈 상태에서 110km를 비행한다. 그리고 타격목표로부터 20km 떨어진 상공에 이르렀을 때 해수면으로 급강하하여 밀착비행으로 전환한다. 해수면 밀착비행으로 14km를 날아간 뒤, 타격목표로부터 6km 떨어진 해수면 위에서 항법장치를 켜고 이동목표물을 향해 추적비행을 하다가 정확히 타격한다.

인민군 대함공격기에 탑재된 공대함 순항미사일에는 미일연합함대의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을 격침시킬, 파괴력이 매우 강한 특수탄두가 장착되어 있다. 그 공대함 순항미사일 한 기의 무게가 약 600kg이므로, 인민군 대함공격기 한 대마다 공대함 순항미사일이 5기씩 실려 있다. 인민군이 보유한 대함공격기는 30여 대로 추산되므로, 미일연합함대를 모조리 격침하고도 남을 150기의 공대함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침공, 리비아 침공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군은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집중 발사하는 공습을 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에 맞선 인민군은 미일연합함대를 격침시킬 대함공격기와 공대함 순항미사일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10월 말 서해에서, 11월 초 동해에서 공대함 순항미사일 발사로 무력시위를 한 인민군 대함공격기는, 인민군 전투기들과의 근접공중전으로 손이 묶인 미일연합함대를 격침시킬 매우 위력적인 무기다.

한편, 대북정찰능력이 제한적인 한국군은 인민군 대함공격기가 공대함미사일을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한 줄도 모르고 ‘호국훈련’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인민군 전투기의 해수면 밀착비행과 대함공격기의 공대함미사일 발사에 관한 정보분석을 통해서 미국 군부는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직감하였다. 언필칭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라 자처해온 미일연합함대가 격침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들이 어찌 심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김관진 국방장관은 2011년 11월 18일 군지휘관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대북)적개심을 불태우며 절치부심”하고 있다면서 북침공격준비를 재촉하였다. 그처럼 대북적개심을 고취하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국군 지휘부가 상황을 오판하고 겁도 없이 군함들을 서해 5도 가까이 북상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 군부는 대함공격기의 공대함미사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한국 군부에게 급히 알려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인민군 공군연합부대가 동해에서 미일연합함대에 맞서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던 날로부터 닷새가 지난 2011년 11월 7일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 로널드 버지스(Ronald L. Burgess)가 극비 방한하여 한국군 지휘부를 만나 쑥덕이다 돌아간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버지스 국장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11월 16일에 가서야 인민군 대함공격기의 공대함미사일 발사에 관한 부정확한 정보가 뒤늦게 남측 언론에 보도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1년 11월 2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