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 압축위기, 압축쇠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압축성장을 중단시킨 압축위기

“아시아 위기는 통화위기로 실물경제는 나름대로 견실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실물경제가 큰 문제다. 한국의 위기가 실은 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하다.” 이것은 아시아 개발경제학을 연구하는 와타나베 도시오(渡辺利夫) 당시 도쿄 공업대학 교수가 1998년 6월 10일 남측 경제 전망에 관한 한승동 <한겨레> 특파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남긴 말이다. 와타나베 교수가 남측 경제를 그처럼 비관적으로 전망한 때로부터 13년이 지난 2011년 6월 20일 남측 경제를 연구하는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학 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이뤄냈지만, 가계저축률 저하로 골격이 삐걱거리는 것 같은 ‘압축위기’에 직면해 가는 중”이라고 지적하였다. 13년 시차를 두고 일본 경제학자 두 사람이 진단한 남측 경제의 현실은 실물경제가 무너지면서 압축성장이 멈췄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원래 남측 경제의 압축성장이란, 지난 시기 남측이 일본에서 들여간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생산한 저가제품을 미국의 소비시장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음을 뜻하는 개념이다. 압축성장은 이른바 수출주도형 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의 결과인 것이다.

남측의 수출주도형 산업화에서 손꼽히는 성과는,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기간에 이루어진 중화학공업의 성장이다. 그 기간에 제철공업과 석유화학공업에서 압축성장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포항제철 제2단계 확장건설은 1976년에 끝났는데, 건설자금 8억2,000만 달러 가운데 외국에서 들여간 차관은 5억2,000만 달러다. 포항제철의 기술은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도입하였다. 다른 한편, 대한석유공사는 미국의 걸프 오일에 의존하게 되었고, 여천석유화학공단은 일본 미쯔이 그룹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처럼 산업화의 ‘기초체력’이라 하는 제철공업과 석유화학공업이 미국 기업과 일본 기업에 의존하여 경제종속의 족쇄가 채워졌으니,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 남측 경제의 압축성장은 즉각 중단되고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러한 우려는 예상을 넘어선 수준으로 증폭되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제철공업과 석유화학공업이 압축성장의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자랑하였던 때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뒤에, 압축성장이 중단되고 압축위기에 빠진 것이다.

불편한 진실, 압축위기의 실상

압축위기의 실상을 몇 가지 경제지표를 통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끊임없이 높아지는 기형성이 고착되었다. 2011년 5월 1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측의 2010년도 무역의존도는 무려 87.9%로 높아졌다. 무역의존도란 수출액과 수입액의 합계를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남측의 무역의존도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40% 선에 머물렀는데,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에는 52.8%로 높아졌고, 1998년에는 65.2%로 더욱 높아졌다. 2004년 66.2%, 2005년 64.6%, 2006년 66.7%, 2007년 69.4%로 늘어나더니,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는 92.3%까지 치솟았다가, 2009년에는 82.4%를 기록하였다.

2010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몇몇 국제기구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G20 주요경제지표(PIG)’에 따르면, 2010년을 기준으로 남측의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수출비중은 43.4%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G20 나라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은 의존도다. 또한 수입비중도 38.8%로 G20 나라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은 의존도를 보였다.

둘째, 수출이 늘어날수록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해외유출재화도 늘어나는 변태성이 고착되었다. 2010년 4월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2005년 0.617, 2006년 0.609, 2007년 0.600, 2008년 0.533으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08년에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가 0.533으로 나온 것은, 1,000원어치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 467원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2011년 8월 2일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유사한 산업에 집중하면서 우리나라 수출상품 구조가 선진국보다는 개도국에 가까워지고 있다. 수출상품의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상품의 평균 부가가치는 선진국뿐 아니라 일부 개도국에 비해서도 낮게 나타났다”고 지적하였다.

셋째, 무역수지가 환율과 국제유가에 의해 좌우되는 불구성이 고착되었다. 2010년 1월 20일 현대경제연구원 임상수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에 남측의 무역수지는 404억5,000만 달러 흑자를 내어 2008년에 132억6,000만 달러 적자를 낸 것에 비교하면 흑자규모가 537억1,000만 달러나 되었지만, 그 흑자 가운데 47.3%에 이르는 254억 달러는 환율상승으로 발생한 허수였다. 당시 환율상승폭을 보면, 연평균 환율은 2008년에 달러당 1,103원이었는데, 2009년에는 달러당 1,276원으로 급증하였다. 그와 더불어, 국제유가가 떨어진 것도 남측의 무역수지 흑자에 결정적인 영항을 미쳤다.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2008년에 배럴당 94달러였는데, 2009년에는 배럴당 62달러로 급락하였다. 2009년 남측의 무역수지 흑자규모 537억1,000만 달러 가운데 39.8%에 이르는 213억7,600만 달러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발생한 허수였다. 환율상승과 국제유가하락이 유발한 무역수지흑자는 무려 87.1%나 된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고 국제유가가 오르면, 남측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고, 무역수지에서 계속 적자가 나면 수출주도형 경제는 무너지게 된다. 예컨대, 2010년 4월 28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평균 환율이 달러당 1,276원이었던 2009년의 경우 주력 수출기업의 영업이익 총액은 239억 달러였는데, 만일 환율이 달러당 1,050원으로 떨어지는 경우 55억5,000만 달러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하였다. 요즈음 환율은 1,060원 대를 오르내리는데, 이것은 남측의 수출주도형 경제가 환율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수익성이 악화되어 비틀거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넷째, 농업기반이 파괴되어 식량자급률을 떨어졌고, 그에 따라 식량공급을 수입에 의존하는 위험성이 고착되었다. 남측의 농축수산물 무역을 살펴보면, 2011년 상반기 농축수산물 수출은 34억3,900만 달러이고, 수입은 164억500만 달러다. 농축수산물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는 129억6,600만 달러다.

같은 기간, 남측의 대중국 농축수산물 교역은 수출 5억2,800만 달러, 수입 25억2,000만 달러다. 남측의 대일본 농축수산물 교역은 수출 6억1,400만 달러, 수입 3억3,400만 달러다. 남측의 대미국 농축수산물 교역은 수출 1억9,200만 달러, 수입 41억4,600만 달러다. 남측의 대유럽연합 농축수산물 교역은 수출 1억2,300만 달러, 수입 12억7,700만 달러다.

충격적인 것은, 쌀을 제외하고 나머지 식량을 자급하는 능력에서 남측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남측의 무역수지에서 계속 적자가 나고, 국제식량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남측이 식량난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래의 경제지표는 그런 우려가 차츰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요즈음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작성하는 식량가격지수(CPI)는 해마다 계속적으로 치솟고 있다. 2011년 7월 12일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6월 현재 세계식량지수(FPI)가 234점으로 급등하였다. 세계식량지수는 2008년 200점, 2009년 157점, 2010년 185점을 기록하였는데, 전세계적으로 곡물공급이 크게 부족하여 곡물가격이 급등했던 2008년의 세계식량지수가 200점밖에 되지 않았으나, 올해에는 234점으로 치솟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한 <월 스트릿 저널> 2011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식량가격은 현재 가격보다 30%나 오른다는 것이다. 국제식량가격이 얼마나 급등하였으면, 영어권 언론계에서는 농업(agriculture)이라는 영어낱말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영어낱말을 합쳐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쓰겠는가.

태생적으로 기형성, 변태성, 불구성, 위험성을 지닌 남측의 수출주도형 경제가 실패한 것이 명백한 데도, 남측의 정부당국과 시장주의자들은 무역흑자 기조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가리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감추고 있다. 남측 국민의 63%가 20년 뒤 남측 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다는 최근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는데, 이것은 터무니없는 경제성장 선전공세에 휘말린 결과로 보인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을 비롯한 무역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는데, 압축위기에 빠진 남측이 무역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저항력을 잃은 짐승이 자기 몸을 맹수에게 먹이로 내주는 짓과 다르지 않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 ‘반짝성장’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10년 9월 15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의 대부분을 수출확대에 의존하는 개도국의 경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한계를 점잖은 표현으로 지적하였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출주도형 경제가 이룩한 압축성장은 환율과 국제유가의 영향을 받은 ‘반짝성장’에 지나지 않는데, 남측이 자랑해온 압축성장이 ‘반짝성장’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은 재무제표(財務諸表)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2011년 8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정부외채는 543억 달러, 은행부문 외채는 1,965억 달러, 비은행금융 및 기업부문 외채는 1,123억 달러, 통화당국 외채는 349억 달러다. 이를 모두 합하면 총외채는 3,980억 달러나 된다. 남측의 대외채권이 4,874억 달러이므로, 아직 894억 달러의 여유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 내막을 보면 그런 여유발언이 무의미하다.

첫째, 남측의 국가채무가 폭증하고 있다. 1998년에 남측의 국가채무는 593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9년에는 무려 399.1%가 급증하여 2,962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미 재정파산을 겪은 그리스는 190.3%의 증가율을, 포르투갈은 180.9%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남측은 400%에 이르는 엄청난 증가율을 보였다.

남측의 국가채무가 이처럼 폭증하자 이자지급액도 덩달아 폭증하였다. 2011년 4월 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채무 이자지급액은 2008년 13조4,000억 원, 2009년 14조4,000억 원, 2010년 20조원으로 급증하였으며, 적자국채 발행액은 2008년 7조4,000억 원, 2009년 35조4,500억 원, 2010년 23조3,000억 원으로 늘었다. 정부예산을 채무이자를 갚는 데 써버리고, 그로써 부족해진 예산은 적자국채를 찍어내어 메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남측의 국제채권발행은 130억5,000만 달러인데, 이것은 중국의 국제채권발행 47억4,000만 달러나 인도의 국제채권발행 42억5,000만 달러를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둘째, 남측 기업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측의 상위 28개 재벌기업의 부채총액은 2008년에 비해 51.24%가 늘어난 350조3,010억 원에 이르렀고, 자본총액은 2008년에 비해 43.4%가 늘어난 220조1,550억 원에 그쳤다. 남측 재벌기업들은 그 동안 수출로 몸집을 불려왔는데, 이제는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성장이 중단되었으니 부채만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2011년 8월 29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유가증권 법인 496개사 가운데 5분의 1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셋째, 남측 국민들이 가계부채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다. 2011년 3월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을 기준으로 남측의 개인금융부채는 937조3,000 원이다. 국민 1인당 2,051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금융부채는 2007년 73조1,000억 원, 2008년 58조1,000억 원, 2009년 58조7,000억 원, 2010년 76조3,000억 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개인의 상거래신용 등 실물경제활동에서 발생한 부채는 51조7,000억 원이다. 가계부채 총액은 996조6,526억 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남측 국내총생산이 1,000조 원이 조금 넘는 데, 가계부채가 그에 육박하였으니 2012년에는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남측에서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국내총생산 증가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위에 열거한 통계자료들은 남측의 정부, 기업, 국민들이 모두 빚더미에 짓눌리는 파산위기에 빠졌음을 말해준다. ‘반짝성장’은 너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압축위기의 근원을 제거해야 압축쇠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측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성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경제의 종속화와 재벌화이고, 다른 하나는 민생경제의 피폐화다. 기업경제의 종속화란 자본과 기술에서 미국과 일본에게 기생하고, 무역에서는 이전에는 미국에, 지금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석유자원을 중동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뜻이다.

또한 기업경제의 재벌화란 대기업들을 묶어 재벌로 육성하고, 그런 재벌들이 시장을 지배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2011년 7월 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대 재벌 계열사는 2007년 4월에 472개사였는데, 2011년 4월에는 64.8%가 늘어 778개사로 급증했다. 날이 갈수록 공룡처럼 몸집이 커지고 있는 재벌은 이 땅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마구 먹어치우고 있는데, 2010년 남측의 4대 재벌인 삼성, 현대차, SK, LG가 거둔 총매출액 5,675억4,500만 달러는 남측 국내총생산의 51%를 차지하였다.

또한 민생경제의 피폐화란, 압축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값싼 노동력을 얻으려고 농업기반을 파괴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 착취함으로써 노동자와 농민을 궁핍과 빈곤으로 내몬 것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성장을 추진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그 정권이 대외적으로 친일적이고 친미적인 정권으로, 대내적으로 반민중 친재벌 정권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성장이란 친일과 친미, 반민중과 친재벌의 대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처럼 친일과 친미, 반민중과 친재벌의 대가를 먹고 자란 압축성장은 결국 1997년에 터져나온 외환위기로 중단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외환보유고가 부족하여 부도사태에 빠진 것이 1997년의 외환위기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위기는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성장을 32년 만에 중단시킨 파국적 압축위기였다. 압축성장이 중단되고 압축위기에 빠졌다는 것, 바로 이것이 1997년 외환위기의 본질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속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실현하고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압축위기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회생방도를 신자유주의 수용에서 찾았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압축성장이 중단된 수출주도형 경제의 파국적 압축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대중 정권이 받아들인 신자유주의는 남측 금융시장을 외국자본에게 전면 개방하도록 강제하였다. 김대중 정권이 남측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김대중 정권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간 외국자본에 의존하여 압축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기는 했으나, 사태는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되레 더 악화되었다. 남측의 금융시장이 외국자본의 이윤수탈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자본의 투자 증가추세는 2001년 1,396억 달러, 2005년 2,524억 달러, 2010년 5,690억 달러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러한 추세는 남측 금융시장의 지배권이 외국자본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금융종속이 완결되었음을 말해준다. 남측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압축위기의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수출주도형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회생의 길이 아니라 압축위기를 계기로 하여 압축쇠퇴를 불러온 몰락의 길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시작하고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거쳐 장장 14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 정책은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쇠퇴를 재촉해 왔다. 극소수 부유층과 특권층을 제외한 이 땅의 모든 국민들에게 불행과 고통과 비극을 안겨준 민생경제난의 발생원인은, 박정희 정권 이후 심화된 경제종속이 불러온 수출주도형 경제의 압축위기와 김대중 정권 이후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재촉하는 전면개방형 경제의 압축쇠퇴에 있는 것이다.

요즈음 야권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차츰 강화되고 있다. 민생경제난으로 불행과 고통과 비극을 겪는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따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지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만 폐기한다고 해서 압축쇠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압축성장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므로 그 근본을 바로잡아야 압축쇠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폐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불러들인 압축위기의 근원까지 제거해야 근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압축위기의 근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박정희 정권이 18년 동안 추진해온 수출주도형 산업화다. 수출주도형 산업화는 기업경제의 종속화와 재벌화, 그리고 민생경제의 피폐화를 불러온 직접적 원인이다.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과감하게 폐기하고 새로운 경제발전노선을 찾아야 기업경제의 종속화와 재벌화를 중지할 수 있고, 민생경제의 피폐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야권에서는 민생경제의 피폐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으로 사회복지정책이라는 대안을 제기하고 있다.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포괄하는 3대 복지제도를 도입하자는 정책적 대안이다. 심지어 한나라당마저도 국민들의 복지열망을 끝내 외면하다가는 민심을 완전히 잃고 고립될 수밖에 없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우울한 ‘복지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피폐화된 민생경제를 사회복지정책으로 살리려는 것은 너무 일면적이다. 기업경제의 대외종속을 청산하고 재벌을 해체하지 않으면, 피폐화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성과를 내올 수 없다.

2011년 8월 3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아니라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복지제도 유지에 필요한 재정이 차츰 늘어나게 되어 결국 서유럽 나라들처럼 과도한 복지부담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는, 3대 복지제도를 도입한 남측의 복지제도 유지비용이 국내총생산의 23.5%에 이르러, 서유럽 나라들 수준의 감당할 수 없는 재정부담을 떠맡게 되는 시기가 2050년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니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감당할 수 없는 재정부담을 떠맡게 되는 시기가 2050년보다 훨씬 더 앞당겨질 것이 뻔하다. 서유럽 수준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려면 660억-1,41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 데, 그처럼 막대한 재정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재정파산위기에 처한 남측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피폐화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하는 경우, 되지도 않을 조세부담으로 재원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생경제를 피폐화시킨 압축쇠퇴의 주범인 수출주도형 경제를 접고 새로운 경제발전노선을 펴야 재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새로운 경제발전노선이란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정책은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는, 민생경제를 살리고 사회복지제도를 확대발전시킴으로써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극소수 특권층과 부유층의 이익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로 독립된 주요기업들은 또 다시 특권층과 부유층의 이익확대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로 독립된 주요기업들이 특권층과 부유층의 이익확대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그 주요기업들을 당연히 국유화해야 한다. 기업 국유화는,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부분적이나마 비상조치로 시행하고 있다. 물론 국유화 방식은 각 나라의 실정에 따라 다르다.

종속경제 청산과 재벌 해체로 주요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외국자본의 보복과 국내재벌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국유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과 혼란을 피하기 위한 정밀한 추진방책이 요구되는데, 무엇보다 국유화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 여부가 국유화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진보정권이 세워져야 국유화를 추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013년에 이 땅에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면, 그 정권은 남측 경제를 압축쇠퇴의 길로 끌어간 대외종속을 청산하고 재벌을 해체하여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사회복지정책을 밀고 나가 민생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이 땅의 국민은 그런 진보정권의 출현을 바라고 있을까?  (2011년 9월 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