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회담 준비한 북미 고위급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연쇄압박 끝에 열린 고위급회담

2011년 5월 2일 <통일뉴스>에 나의 글 ‘카터가 실패했어도 북미 양자회담 열린다’가 발표된 때로부터 약 두 달 반이 지나는 동안 북미관계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북미관계의 움직임을 살펴보아야, 2011년 7월 28일과 29일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미국대표부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담의 개최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직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받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하겠노라고 자청하였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외면하는 바람에 2011년 4월 25일부터 28일까지 원로회의(Elders) 방북단을 이끌고 빈손으로 방북하였다. 5월 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에서 나는, 친서외교로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카터의 노력은 실패하였으나, 북미 양자회담은 열리게 된다고 예견하였다. 미국에게 양자회담 개최를 요구하는 북측의 압박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던 것에서 그렇게 예견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근거를 뒷받침해준 ‘물증’이 있었으니, 그것은 2011년 3월 말 북측의 영변 핵시설단지를 공중촬영한 위성사진이다. 그 위성사진은 이미 완공된 경수로 격납구조물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에서 나는, 경수로 격납구조물 완공이야말로 북측이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은 경이적인 속도로 경수로 건설을 맹렬히 추진하면서 미국에게 드센 압박공세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런 해석에 따라, 북측의 강한 압박공세 앞에서 ‘전략적 인내’를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게 된 미국이 머지않아 ‘전략적 인내’를 슬그머니 포기하고 북측의 양자회담 개최 요구에 응할 것으로 예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예견한 때로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북미관계는 아무런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는 듯하였다. 북미관계가 그런 느낌을 준 까닭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최악 상태로 몰아넣으며 북미 양자회담 개최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반북성향을 지닌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매달리면서 남북관계를 극단적 대결상황으로 끌어갔다.

이명박 정부의 반북대결로 남북관계가 사상 최악 상태에 빠진 것을 본 미국은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남북관계가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가망 없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날로 가중되는 북측의 압박공세를 모면하고 북미 양자회담요구에 응하기 위해 형식적인 남북대화를 선행하라고 이명박 정부를 여러 차례 압박하였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5월 28일경 백악관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국장을 서울에 밀파하여 이명박 정부를 은밀히 압박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은밀한 압박을 받고서도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자, 미국은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을 워싱턴으로 불러 반공개적으로 압박하였다. 2011년 6월 24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 외교장관회담은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한 자리였다. <아사히신붕> 2011년 7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6월 24일에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은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에게 이명박 정부가 북측과 끝내 대화하지 않으면 미국이 먼저 북측과 회담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7월 23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 비핵화회담을 하라는 사실상 마지막 압박책을 꺼내놓았다.

위의 사실들은 남북미 3자관계에서 연쇄압박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북측이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였더니,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다시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사실왜곡의 명수’인 수구언론매체들은 정반대의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북측이 남북미 3자관계를 근본적 변화로 이끌어가는 강력한 주도력을 틀어쥐었다고 보는 인식은, 이제껏 남북미 3자관계에서 북측의 외교력을 터무니없이 저평가해온 그릇된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반북대결정책을 고집해오던 이명박 정부는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미국이 꺼낸 마지막 압박책에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아사히신붕> 2011년 7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이런 미국의 태도에 한국이 부담을 느끼고 최근에야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간 만남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6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고 서울에 돌아간 남측 정부 고위당국자는 6월 27일 취재기자들에게 북측과 회담하는 경우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제기하고 사과를 받아내려던 종래 방침을 철회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은 <민주조선> 2011년 6월 28일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남북 비핵화회담 개최문제를 분리하겠다고 밝힌 것을 ‘너절한 잔꾀’라고 맹비난하였다.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에게 드센 압박공세를 퍼부어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북측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의 눈치나 살피다가 미국의 압박책에 질질 끌려가는 이명박 정부는 압박할 가치조차 없어 보일 것이다.

남북미 3자관계에서 일어난 연쇄압박으로, 남북 비핵화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었다. 2011년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고 있었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하는 형식을 빌어 6자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두 시간 동안 만났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그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룬 회담이 아니었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회담은 더욱 아니었다. 위성락 본부장은 미국의 강한 압박에 굴복하여 내키지 않는 자리에 나갔고, 리용호 부상은 미국과 양자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남측 대표를 잠깐 만나주는 척하였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위성락 본부장은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만 중얼거리다가 망신만 당했다. <월 스트릿 저널> 2011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위성락 본부장은 그 회담에서 북측의 핵프로그램 폐기를 전제로 경제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꺼내놓았더니 리용호 부상이 “냉담하게 거절했다”고 하면서, “북측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처럼 알맹이 없는 남북 비핵화회담을 내심 크게 반긴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남북 비핵화회담이 선행되어 미국이 북미 양자회담에 나설 명분을 얻게 된 것이 그녀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를 떠나던 날, 그녀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두었던 중대조치를 언론에 전격 공개하였다. 그 중대조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뉴욕으로 초청하여 북미 양자회담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뉴욕으로 초청하였음을 공식화한 국무장관 명의의 성명이 2011년 7월 24일 워싱턴에서 발표되었다. 김계관 제1부상의 뉴욕 방문과 북미 양자회담 개최는 북측의 강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미국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미 양자회담 개최문제를 놓고 그처럼 장기간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온 북미대결에서 마침내 북측은 승리의 축배를 들었고, 미국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초강대국의 졸렬한 홀대연출

지난 5월 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 ‘카터가 실패했어도 북미 양자회담 열린다’에서 나는 머지않아 열리게 될 북미 양자회담은 고위급회담이 될 것으로 예견하였다. 원래 북측에서 대미협상은 다른 외교사안들과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지휘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문제이므로,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 양자회담을 속히 재개하되 이번에는 고위급회담으로 열자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였음을 알 수 있는데, 지금 북미관계는 그의 그런 의도에 따라 변화국면에 접어들었다.

부쉬 정부 시기에 몇 차례 열렸던 북미 양자회담은 부상-차관보급 회담이었다. 부상-차관보급 회담은 실무회담 성격을 띈 것이므로, 그런 격의 회담에서는 어떤 중대한 정치적 합의를 내오기 어렵다. 김계관 당시 외무성 부상은 본국의 훈령을 받은 뒤에야 합의할 수 있었고,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당시 국무부 차관보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이번에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은 외무성 제1부상과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만난 고위급으로 승격되었다. 내각 부총리로 승진한 강석주 당시 제1부상 후임에 김계관 당시 부상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때는 2010년 9월 23일이었다. 북측 외무성 제1부상은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대미협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를 받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다. 1994년 클린턴 정부 시기에 강석주 당시 제1부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를 받으며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 편,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미국의 대북협상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방북한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자신의 친서를 보낸 바 있다.

2007년 3월 6일 김계관 당시 부상은 국무부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뉴욕을 방문하였는데, 그에 대한 국무부의 영접과 경호는 대단하였다. 국무부는 그가 공항에서 일반여행객 입국장을 거치지 않고 특별입국수속을 밟도록 배려하였고, 리무진 의전차량을 북측 대표단 성원마다 한 대씩 배차하였고, 국무부 외교경호실(DDS) 요원들이 체류기간 동안 삼엄한 경호를 펼쳤고, 호송차량과 구급차량을 동원한 뉴욕 경찰병력도 배치되었고, 취재기자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한 경찰 저지선까지 쳐놓았었다.

그런데 김계관 제1부상의 이번 뉴욕 방문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부상에서 제1부상으로 승진한 그에게 국무부는 의전차량도 제공하지 않았고, 외교경호실 요원도 배치하지 않았고, 뉴욕 경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뉴욕 케네디 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국무부 관리가 한 사람도 영접을 나가지 않는 바람에 김계관 제1부상은 일반 여행객들 속에 섞여 입국장에 들어서야 하였고, 입국장 밖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100여 명의 취재기자들이 그에게 몰려드는 바람에 발걸음을 멈추어야 하였다. 4년 전 그는 북미 양자회담 직전에 뉴욕에 도착하여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공연 중인 가극(musical)을 관람하고, 뉴욕의 관광명소 마천루(Empire State Building)에도 오르고,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있는 식당에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만찬도 나누었으나, 이번에는 국무부가 경호요원을 배치해주지 않고 홀대하는 바람에 회담을 마친 뒤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숙소에만 머물렀다.

4년 전, 부상-차관보급 회담이 열렸을 때 융숭한 영접과 경호로 환대하였던 미국 국무부는 이번에 승격된 제1부상-특별대표 고위급회담이 열렸는데도 왜 그처럼 무관심했던 것일까? 고위급회담을 급히 준비하던 국무부가 의전상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명백하게도,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홀대연출이었다. 두 가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 국무부는 북측의 강한 압박공세에 밀려 ‘전략적 인내’를 포기하고 고위급회담에 끌려나간 초강대국의 초라한 몰골을 감추고 싶었고, 초강대국의 추락한 위신을 일으켜세우고 싶었다. 국무부의 그런 의도가 김계관 제1부상의 뉴욕 방문에 관련한 홀대연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고위급회담에 끌려나간 초강대국의 초라한 몰골은 그런 연출로 감추려 해서 감춰지는 것도 아니고, 초강대국의 추락한 위신도 그런 연출로 일으켜세우려 해서 일으켜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북미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주목하면, 미국이 완강히 집착해온 ‘전략적 인내’를 강력한 압박공세로 포기시키고 고위급회담을 기어이 성사시킨 북측의 외교력이 돋보이는 것은 감출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처럼 명백한 사실을 어설픈 홀대연출로 감추려고 한 것 자체가 너무 졸렬해 보인다.

둘째, 4년 전 뉴욕에서 부상-차관보급 회담이 열렸을 때, 미국은 회담장소를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로 정했다. 그 호텔은 뉴욕을 찾는 국빈급 인사들이 묵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열린 제1부상-특별대표 회담은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청사에서 열렸다. 26층 짜리 이 청사는 2011년 3월 최고 수준의 보안시설을 갖춘 철통요새로 개조되었다. 이번 고위급회담은 철통요새 22층에서 열렸다. 4년 전 미국이 부상-차관보급 회담장소를 호화호텔로 정한 것은 전시용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고, 이번에 미국이 제1부상-특별대표급 회담장소를 최고 수준의 보안시설에서 진행한 것은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7월 29일 북미 고위급회담 직후 취재기자들에게 “건설적이고 실무적인” 회담이었다는 짤막한 총평을 전한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발언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전시용 효과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였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탐색회동이 아니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포기시킨 북측의 외교적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외교적 승리로 성사된 이번 고위급회담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번 고위급회담으로 시작된 북미관계의 변화가 과연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북미협상의 최종 성과를 예견하려면, 이번 고위급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철통요새 안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하고 어떤 합의를 보았는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미국을 편드는 언론매체들이 자의적 억측관행으로 써내는 식상한 추측기사들만 눈에 띌 뿐이다. 이번 고위급회담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그 회담이 북측의 외교적 승리와 미국의 외교적 패배로 열렸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그 회담은 일차전에서 맞붙어 이미 승부를 가른 승자와 패자가 만나 협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틀 동안 이어진 회담 분위기에 대해 말한다면, 승자로 회담장에 나온 북측 외무성 대표단은 적극적, 공세적이었고, 패자로 회담장에 나온 미국 정부 대표단은 소극적, 수세적이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회담장으로 향하던 김계관 제1부상은 취재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공세에 “침착하게 답변”했으나, 회담장으로 향하던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취재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공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노 코멘트(논평할 게 없다는 뜻-옮긴이)’라는 짤막한 답변만 남기고 회담장으로 들어갔다.” 승자의 여유와 패자의 무언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고위급회담의 내용을 분석할 때, 분위기 파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파악해야 회담내용을 알 수 있다. 2011년 7월 24일 워싱턴에서 발표된, 김계관 제1부상의 뉴욕 초청을 공식화한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의 성명에 이번 고위급회담에 나서는 미국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성명에서 이번 고위급회담이 “탐색회동(exploratory meeting)”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문장만 읽고 말았지만, 그것은 전체 맥락을 읽지 않고 특정부분만 확대해석한 오독의 전형이다. 북측과 미국이 양자회담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탐색회동이라니 당치 않은 소리다. 원래 탐색회동이란 상대가 어떤 의제를 꺼내놓을지 모르는 형편에서 열리는 첫 회담을 뜻하는데, 지난 시기 북측과 미국은 몇 차례 진행된 양자회담에서 자기의 견해와 입장을 충분히 주고받았고, 6년 전에는 9.19 공동성명이라는 합의문까지 채택하였는데, 이제 와서 또 다시 탐색회동을 한다는 말은 미국이 제 속셈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언론의 시야를 가린 연막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장관 성명을 정독하면, 미국의 태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문장 한 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 정부관리 합동조(interagency team of U.S. officials)와 만나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를 협의할 것”이라고 적은 문장이다. 이 문장을 정밀 분석하면, 미국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첫째, 위의 문장을 읽으면, 미국 정부관리 합동조가 북측 외무성 대표단을 상대로 협상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합동조’에는 누가 망라되었을까? 국무부는 이번 고위급회담에 참가한 합동조 성원들이 누구인지 끝내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무부, 국방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한 주요관리들로 구성된 합동조가 고위급회담에 나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미관계에 제기된 중대하고 포괄적인 의제를 이번 회담에서 다루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처럼 중요한 고위급회담에 나온 북측 외무성 대표단은 김계관 제1부상, 리근 미국국 국장, 최선희 미국국 부국장 단 세 사람 뿐이다. 미국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무부, 국방부의 주요관리들로 ‘합동조’를 구성한 것에 비해 북측 대표단이 그처럼 단출하게 구성된 것은, 북측이 협상의제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자신만만하게 회담에 나갔음을 뜻한다. 이를테면, 7월 28일 김계관 제1부상은 회담장으로 가는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몰려든 취재기자들이 회담준비를 많이 했는냐고 묻자 “준비하긴, 다 한 것인데, 뭘 또 한다고 그러겠어”라고 답변하며 철저하게 준비하였음을 암시하였다.

둘째, 클린턴 국무장관의 성명에 나온 그 문장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next steps)를 협의”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협의하겠다고 표현하지 않고, 6자회담 재개에 필요한 다음 단계를 협의하겠다고 표현했다. 왜 다음 단계를 협의한다고 표현했을까? 이 주목할 만한 표현은,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의제가 6자회담 재개문제가 아니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리용호 부상이 이번 고위급회담에 참석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의제가 6자회담 재개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7월 25일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 국무부 부대변인은 출입기자단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우리(미국이라는 뜻-옮긴이)는 6자회담 재개에 필요한 것에 대한 기대만이 아니라 미국과 조선의 직접적 관여(direct engagement) 개선에 필요한 것에 대한 기대도 매우 분명하게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눌런드 부대변인의 답변에 따르면,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의제는 북미관계 개선에 필요한 조치였던 것이다. 북미관계 개선에 필요한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58년만에 역사적인 4자 평화회담 열린다

지난 5월 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에서 나는 머지않아 열릴 양자회담에서 북측과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를 합의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였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의제는 6자회담 재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였다. 다시 말해서,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의제는 북측이 이미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한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이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을 역사적인 한반도 평화회담을 어떻게 개최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북측 외무성의 발언을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김계관 제1부상은 7월 26일 뉴욕 케네디 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자기에게 몰려든 수많은 취재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락관합니다. 지금은 온 세상 모든 나라가 화해하고 살아가야 할 때니까 그 방향에서 락관해야죠. 목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6자회담을 통해서 비핵화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의 즉석 답변에서 강조점은 6자회담 재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회담에 찍혀있음을 알 수 있다.

그보다 앞서 7월 23일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하고 있던 박의춘 외무상은 장관급회의 연설에서 “정전협정 당사국인 조선과 미국이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적대관계가 존재하는 한, 언제가도 호상불신을 가실 수 없으며 비핵화도 순조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이 좌절과 실패를 거듭한 6자회담 과정이 보여준 교훈이다. 우리가 이미 지난해에 제안한 평화협정 체결은 조미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신뢰조치로 되며 나아가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실현을 담보하는 힘있는 추동력으로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2011년 7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박의춘 외무상이 장관급회의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 날, 그와 함께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 중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와 만난 자리에서 남, 북, 미, 중이 참석하는 4자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4자회담은 4자 평화회담이다.

위의 정보들을 종합하면,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4자 평화회담 개최 문제를 제안하고 집중적으로 논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이 미국에게 제안한 4자 평화회담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공동성명이 명시한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연단)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씌여있다. 또한 북측이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에게 제안한 4자 평화회담은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채택,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명시된 과업이다. 10.4 선언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씌여있다. 10.4 선언에 따르면, 4자 평화회담은 남, 북, 미, 중 정상회담이다.

이처럼 6자회담에서 합의하였고,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합의한 4자 평화회담 개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고, 누구나 지지해야 하고, 하루빨리 추진해야 할 당면과업이다. 아물지 않은 전쟁상처를 안고, 긴박한 전쟁위험을 느끼며 60여 년 살아온 이 나라 칠천만 겨레에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회담만큼 절실하고 절박한 과업은 없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4자 평화회담 개최를 적극 지지할 것이며, 이성을 잃고 반북대결에 날뛰는 극소수 호전광들 만이 그 회담을 반대할 것이다.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놓을 4자 평화회담을 가시권 안으로 성큼 끌어당긴 것, 바로 이것이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얻어낸 감동적인 성과다. 4자 평화회담은, 아직 종전을 하지 못한 정전상태에 있는 신흥 핵보유국과 최대 핵보유국의 협상을 중심으로 58년 만에 열릴 역사적인 평화회담이며, 4자 정상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고 수준의 역사적인 정치회담이다. 또한 그 역사적인 평화회담은 북측과 미국의 정상회담과 철군담판을 결정적으로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다.

김계관 제1부상의 뉴욕 초청을 공식화한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의 7월 24일자 성명은, “우리(미국을 뜻함-옮긴이)가 이미 합의한 것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끄는 협상(protracted negotiations)에 대해 우리는 흥미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4자 평화회담 개최문제를 놓고 북측과 지루한 협상을 벌일 생각이 없음을 말해준다. 오바마 정부가 2012년 11월 대선 이전에 미국 유권자들에게 꺼내놓을 가장 큰 외교성과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 철군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열리는 4자 평화회담이 될 것이다. 미국만 4자 평화회담의 신속한 개최를 요망하는 게 아니라, 북측도 4자 평화회담 개최문제를 놓고 미국과 지루한 협상을 벌이려고 하지 않는다.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 역사적인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수령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북측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북측과 미국의 그러한 내부사정은 4자 평화회담이 머지 않아 단 한 차례 열리는 것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4자 정상들이 몇 차례 걸쳐 회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4자 평화회담이 성사되면, 치명타를 입는 쪽은 반북대결정책을 붙들고 ‘급변사태’를 중얼거리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다. 최근 채무불이행 위험이 키운 재앙적 위기로 더욱 세력이 강해진 미국발 ‘초대형 태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남측 경제가 2012년에 실제로 ‘태풍피해’를 입게 될 판인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4자 평화회담 성사로 치명타까지 받을 경우,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 전망은 한결 밝아질 것이다.  (2011년 8월 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