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적 핵위협과 코리아식 해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핵위협의 비대칭성과 공개적 실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의 비핵화는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말할 때, 핵위협이라는 개념에는 북측이 미국에 가하는 핵위협과 미국이 북측에 가하는 핵위협이 포함된다.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핵위협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북측과 미국이 상대에게 서로 다른 형태의 핵위협을 가한다는 점에서, 핵위협은 비대칭적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핵폭탄으로 공격하여 사상 처음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때부터 지금까지 각종 핵기술을 개발하여 지구 전체를 수없이 파괴하고도 남을 엄청난 분량의 핵탄두를 보유하였고, 6.25 전쟁 시기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북측에게 직접적인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다. 다른 한 편, 미국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북측은 미국의 대북핵위협에 맞서 2005년 2월 10일 핵보유를 선언하고 2006년 10월 9일 지하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신흥 핵보유국으로 등장하였다.

북측은 미국에 비해 61년 늦게 핵보유국으로 등장하였지만, 그러한 시간격차가 북측이 미국에 가하는 핵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핵위협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문제는, 핵탄두 보유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핵탄두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핵전법에 의해 결정된다. 북측은 미국의 급소를 찌르는 독창적이고 치명적인 핵전법을 개발하였는데, 북측의 핵전법에 대해서는 2011년 6월 27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북미대륙 뒤덮을 거대한 전자구름’에서 논한 바 있다.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핵위협이 이처럼 비대칭성을 갖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핵군축회담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군축회담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핵군축은 대칭적 핵위협을 제거하는 방도다.

또한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핵위협이란 북측이 미국에 가하는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와 미국이 북측에 가하는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를 뜻한다. 북측이 미국에 가하는 핵위협의 비공개적 실체가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은 그 실재 여부를 의심하는 것일 뿐 입증하지는 못하므로, 대미핵위협의 비공개적 실체를 제거하라고 북측에 요구할 수 없고 또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조건은 미국이 북측에 가하는 핵위협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미국이 북측에 가하는 핵위협의 비공개적 실체가 있을 수 있지만, 북측은 그 실재 여부를 의심하는 것일 뿐 입증하지는 못하므로, 대북핵위협의 비공개적 실체를 제거하라고 미국에 요구할 수 없고 또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와 더불어 핵위협의 비공개적 실체까지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경우, 한반도 비핵화는 영영 불가능하다.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는,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를 상응적,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비핵화다. 그 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북측의 대미핵위협의 공개적 실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측의 영변핵시설이다. 영변핵시설단지에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기존 핵시설과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최신 핵시설이 있다. 전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들의 정기조사를 받은 바 있고, 후자는 미국 핵전문가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다. 그러므로 북측이 비핵화를 시작하는 경우, 이 두 종류의 핵시설을 해체해야 할 것이다. 영변핵시설 해체는 당연히 비핵화 검증대상으로 될 것이다. 그런데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최신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북측과 미국 사이에 논의한 적이 없으므로, 북측의 우라늄농축시설 해체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북측이 미국과 합의하여 해결할 것이다.

둘째, 북측의 무기급 플루토늄이다. 2008년 6월 26일 북측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보낸 핵신고서에 따르면, 북측은 약 40kg에 이르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였다. 그 가운데 2006년과 2009년에 각각 실시한 지하핵실험에서 사용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제외한 나머지 전량이 핵탄두로 제조되었다. 그러므로 북측이 비핵화를 시작하는 경우, 핵탄두를 해체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분리해야 할 것이다. 북측의 핵탄두는 비핵화 검증대상으로 되지 않지만, 핵탄두에서 분리한 무기급 플루토늄은 비핵화 검증대상으로 된다. 검증작업을 마친 무기급 플루토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는 북측이 미국과 합의하여 해결할 것이다.

셋째, 북측의 우주발사체(SLV)다. 북측은 1998년과 2009년에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렸는데, 미국은 북측의 우주발사체가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된 것은 아닐까 하고 우려하면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측은 우주발사체를 두 차례 발사하였지만, 정작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실시한 적은 없다. 그러므로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몇 기나 보유하였는지는 미국이 알지 못한다. 미국이 실재 여부를 입증하지 못하는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비핵화 검증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문제는 북측이 우주발사체 발사를 영구히 중지하겠다고 미국에게 통보하는 정치적 해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 2000년 10월 12일 북측과 미국이 워싱턴에서 채택, 발표한 공동코뮈니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으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고 명시한 것을 보면, 북측과 미국이 북측의 우주발사체 영구 중지를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북측이 미국에게 가하는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가 영변핵시설, 무기급 플루토늄, 우주발사체라면, 미국이 북측에게 가하는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측이 미국에게 중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두 종류의 핵위협 실체다.

첫째, 대북선제핵공격을 상정한 미국군의 북침전쟁연습이다. 미국군의 북침전쟁연습이 왜 대북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로 되는가 하는 문제는 너무 명백하므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비핵화를 시작하는 경우,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북측을 상대로 실시하는 각종 북침전쟁연습을 영구 중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군의 북침전쟁연습 영구 중지로 해결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북침전쟁거점으로 설치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산하 주한미국군기지들이다. 주한미국군 주둔이 왜 대북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로 되는가 하는 문제는 너무 명백하므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비핵화를 시작하는 경우,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고, 해체 이후에 그와 유사한 다른 주둔군사령부를 대체설립하지 않고, 주한미국군기지들을 모두 폐쇄하고, 그 기지들에 배치된 병력과 군사장비를 한반도 밖으로 전부 철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국군 전면 철군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의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일본에까지 확장시킬 수 없으므로, 북침전쟁거점으로 존재하는 주일미국군기지들까지 주한미국군기지들을 폐쇄할 때 함께 폐쇄하라는 요구를 북측이 미국에게 제기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한 뒤에도 오키나와(沖繩)나 괌(Guam) 등지에서 비공개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하는지는 북측이 알 수 없으므로, 그러한 비공개 핵위협은 한반도 비핵화의 검증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만이 아니라, 주한미국군기지를 폐쇄하고 전면 철군을 완료한 뒤에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한반도 근해에 출동하는지는 북측이 알 수 없으므로, 그러한 비공개 핵위협은 한반도 비핵화의 검증대상이 될 수 없다.

비핵화 추진동력은 북미양자회담에서 나온다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비대칭적 핵위협을 제거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과 소련의 핵군축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또는 리비아 같은 나라의 일방적인 핵포기 같은 선례에서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방도로 추진되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핵군축이나 일방적인 핵포기로 추진할 수 없으므로, 국제사회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코리아식 해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코리아식 해법을 논할 때 주목하는 것은, 그 해법이 어느 정도 준비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코리아식 해법은 북측과 미국 가운데 어느 일방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상호이행원칙에 따라 동시행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므로, 북측과 미국의 준비정도를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코리아식 해법에 대한 북측의 준비정도를 살펴보면, 북측은 영변핵시설을 폐쇄하고, 무기급 플루토늄을 폐기하고, 우주발사체 발사를 중지할 의사를 공개적으로 오래 전에 미국에게 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의 핵보유선언 이후 넉 달이 지난 2005년 6월 17일 평양을 방문 중이던 정동영 당시 대통령 특사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비핵화를 실행할 의지가 북측에게 있을까 하는 미국의 의심을 해소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한 것은, 북측이 자기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를 수행할 모든 준비를 끝마쳤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북미양자회담이 열려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북측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대미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를 제거하는 비핵화를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코리아식 해법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미국이 조성한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는 아예 입밖에 꺼내지도 않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자기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를 수행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자기 책임을 외면한 미국이 북측에 대해서는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라는 생뚱맞은 요구를 제기해오고 있다. 그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미국은 북미양자회담에 앞서 남북대화부터 해야 한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북미양자회담을 회피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 발표한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였는데도, 6년이 되도록 그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미국은 북측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만 제기할 뿐, 자기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는 수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6자회담이 9.19 공동성명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었는데도 코리아식 해법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까닭은, 미국이 자기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9.19 공동성명 이후 잠깐 추진되다가 6년 동안 사실상 중단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추진동력은 6자회담이 아니라 북미양자회담에서 나온다. 그 까닭은, 미국에게 맡겨진 비핵화 임무, 다시 말해서 북침전쟁연습을 중지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대북핵위협 제거임무가 9.19 공동성명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9.19 공동성명은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대북핵위협 제거문제를 표현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현실이 말해주는 것은, 미국이 선제핵공격을 상정한 북침핵전쟁연습을 계속 강행하고, 주한미국군을 무기한 주둔시키려는 것이야말로 “핵무기 또는 재리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위협행위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9.19 공동성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북침공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 9.19 공동성명에 따른 코리아식 해법은 이행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대북침공의사를 드러낸 모든 군사행동을 중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6자회담에 참가하는 것과 별도로 마땅히 북미양자회담에 나서야 한다. 코리아식 해법이 북미양자회담에서 풀려야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미국은 대북침공의사를 드러낸 위협행동을 중지하기는커녕, 9.19 공동성명 이후 6년 세월을 허송하였다. 미국이 9.19 공동성명을 채택해놓고 언제까지나 시간만 보낼 수 있을까? 6년이 흐른 지금, 미국의 허송세월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미국의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북측이 대미압박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미국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미국은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존 케리 상원의원이 백악관에 권고한 불쾌한 취사선택

북미관계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백악관의 몰골이 얼마나 안쓰럽게 보였으면, 미국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 존 케리(John F. Kerry) 상원의원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11년 6월 26일 부에서 백악관의 진퇴양난 탈출방도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였을까.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경력이 있는 연방상원 지도급 인사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긴 글을 언론에 실은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처한 상황이 그만큼 심각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에는 ‘미국과 북코리아: 불쾌한 취사선택의 나라(U.S. and North Korea:The Land of Lousy Options)’라는 제목을 붙어있다. 글의 제목이 강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백악관이 진퇴양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쾌한 취사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이 그 글에서 논한 백악관의 불쾌한 취사선택은 무엇일까? 그의 견해에 따르면, 백악관의 불쾌한 취사선택은 6자회담 재개도 아니고 중국에게 대북압박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미국에게 가장 좋은 대안은 북코리아를 직접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적하였듯이, 미국이 북측을 직접 상대한다는 말은 북측이 요구해온 북미양자회담에 응한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이 북미양자회담에 나가는 것을 ‘불쾌한 취사선택’이라고 표현하였다. 현재 북미관계의 정곡을 찌른 그 표현에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끌어낼 수 있다.

첫째,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인데, 하기 싫은 일을 강제에 못이겨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 하긴 하면서도 불쾌함을 느낀다. 지금 백악관이 꼭 그런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측과 양자회담을 하는 것은 싫지만, 북측의 강제에 못이겨 억지로 양자회담을 해야 하니 어찌 불쾌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래서 진퇴양난이라 하는 것이다.

미국 현 정권의 집권 이전에도 북미양자회담이 몇 차례 열린 바 있는데, 백악관은 왜 이제 와서 그 회담에 나가기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북미양자회담이 열리는 경우, 백악관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코리아식 해법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 이후 북미양자회담은 9.19 공동성명 이전 북미양자회담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성명을 분수령으로 북미양자회담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까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코리아식 해법을 추진하느먀 마느냐 하는 문제가 북미관계의 현안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코리아식 해법에 따르면, 북측과 미국은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오래 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가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코리아식 해법은 북측과 미국이 핵위협의 공개적 실체를 제거하는 과업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적대정책을 상응적으로 폐기하는 과업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성을 제거하려면, 미국이 단독으로 또는 유엔안보리를 통해 북측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각종 제재를 중지해야 한다.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북측은 미국에게 제재를 가한 적이 없으므로, 제재해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것과 더불어, 종전을 공식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해야 한다. 대북제재해제,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북미국교수립은 북측과 미국이 핵위협을 제거하는 비핵화 임무를 수행할 때, 병행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현안들이다. 그 중요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북미양자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무기한으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수 없게 된 백악관은, 존 케리 상원의원이 불쾌한 취사선택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북미양자회담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백악관에게는 불쾌하고, 북측 국방위원회에게는 유쾌한 북미양자회담이 머지 않아 열리게 것임을 예고한다.

둘째, 존 케리 상원의원이 불쾌한 취사선택이라고 표현하였을 때, 취사선택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취사선택이란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리는 행동을 뜻하는 말인데, 백악관이 북미양자회담에 나서기 위해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북미양자회담에 나서기 위해 백악관은 회담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전조치를 챙겨야 하고, 회담 분위기 조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저버려야 한다.

백악관이 북미양자회담에 나서는 경우, 북측과 양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불쑥 발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발표 전에 회담 분위기를 조성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북미양자회담 지지여론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이 북미양자회담 분위기를 사전에 조성하는 절차는 대체로 비정치적인 외피를 쓰고 진행되는데, 민간교류와 식량지원이 그러한 외피역할을 한다. 북미민간교류와 미국의 대북식량지원과 관련한 최근 움직임을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목해야 할 백악관의 최근 움직임들

북미양자회담 지지여론을 형성하는 데는 미국 민간단체들의 방북보다는 북측 민간단체들의 방미가 더 효과적이다. 2011년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북측 태권도 대표단이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 대도시를 순회하며 대규모 시범공연을 펼쳤다. 지난 시기에도 북미관계가 경색국면에서 벗어날 때, 북측 태권도 대표단이 미국 대도시를 순회하며 시범공연을 하였던 적이 있다. 이를테면, 2007년 12월 3일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에 도착하기 두 달 전인 10월 4일부터 15일까지 북측 태권도 대표단이 미국 서부와 남부 5개 도시를 순회하며 대규모 시범공연을 하였다. 4년 전, 북측 태권도 대표단을 이끌었던 배능만 조선태권도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번에도 북측 태권도 대표단을 이끌고 방미하였다.

북측 태권도 방미대표단의 순회시범공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2011년 6월 25일 조선중앙통신사 김병호 사장이 이끄는 방미대표단이 뉴욕에 있는 합동통신(Associated Press) 본사를 방문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김병호 사장은 “조선중앙통신사와 AP통신 사이에 협정, 협조문건들이 조인된 것은 두 통신사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조미 두 나라 인민들의 호상리해를 도모하고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북미민간교류는 북미양자회담이 머지 않아 열릴 것임을 예고하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북미민간교류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식량지원도 북미양자회담이 머지 않아 열릴 것임을 예고하는 긍정적인 신호다. 반북수구언론들이 반복하는 왜곡보도만 읽은 사람들은, 북측의 만성적인 식량난이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는 헛소문에 속고 있으며, 미국이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그대로 믿고 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북측에서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미국이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11년 4월 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이상한 보고서와 북측의 주동적 조치’와 2011년 4월 18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경제선진국 따라잡을 북측의 10개년 계획’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2011년 6월 30일 마크 토너(Mark C. Toner)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이 국무부 출입기자단에게 “아직 대북식량지원 여부에 대한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한 평가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그런데 2011년 3월 1일 미국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011년 1월 북측이 2009년에 중단한 식량지원을 재개해달라고 미국에게 요청한 이후 식량지원 필요성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두 관리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2011년 2월부터 대북식량지원 평가작업을 해오면서 넉 달이 넘도록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왜 그처럼 시간을 끌고 있을까? 그 까닭은,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이 식량지원이라는 외피를 쓰고 북미양자회담을 열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조치라는 점을 간파한 미국 공화당과 이명박 정권이 대북식량지원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을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과 이명박 정권은 실제로는 북미양자회담을 반대하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북미양자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데 비해,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 북측이 사과하는 조건에서 열릴 남북대화를 선행하지 않는 북미양자회담을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이 북미양자회담에 나서기 위해 저버려야 할 것은, 미국 공화당과 이명박 정권이 설치해놓은 북미양자회담 반대라는 장애물이다.

백악관은 그 장애물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미국 연방의회 소식통의 제보를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오는 8월 연방의원들이 여름휴가에 들어간 틈을 타서 대북식량지원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백악관이 연방의회 저지선을 우회돌파하는 그런 식의 강행수법은 이전에도 가끔 사용한 적이 있다.

백악관은 이명박 정권의 북미양자회담 반대라는 또 다른 장애물도 넘어야 하는데, 그 방식은 우회돌파가 아니라 은밀한 압박이다. 청와대에 은밀한 압박을 가해 이명박 정권의 우매한 행동을 눌러버리는 식이다. 이명박 정권이 남북대화를 하기 전에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 사과부터 하라고 북측에 요구한 것은 우매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혐의 자체를 부정하는 북측이 그런 사과요구를 받아줄 리 만무하고, 이명박 정권이 그런 사과요구에 집착하는 바람에 남북대화마저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은밀한 압박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7월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 축사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로 불안한 정세가 조성됐지만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이명박 정권의 우매한 대북정책이 어떻게 파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2011년 6월 6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대남폭로전술과 대미협상국면’에서 논한 바 있다.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이 올 여름에 재개된 뒤에 북미양자회담이 열릴 것이다. 최근 백악관의 인사정책에서 그러한 전망을 엿볼 수 있다. 2011년 6월 24일 백악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대통령은 성 김(Sung Kim) 6자회담특사를 주한미국대사로 임명하였고, 2011년 7월 1일 백악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웬디 셔먼(Wendy Sherman) 전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권을 국무부 정무차관(수석차관)에 임명하였다. 성 김과 웬디 셔먼은 오는 8월부터 각각 주한미국대사와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경력이 눈길을 끈다. 성 김은 국무부 코리아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7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핵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단 단장으로 방북하였고, 2007년 11월 1일에는 미국 핵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단을 이끌고 다시 방북하였다. 당시 영변 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원자로,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공장을 불능화하는 실무단을 이끌었던 책임자가 바로 그였다. 2008년 5월 10일 그는 북측이 제공한 핵개발 프로그램에 관한 자료를 들고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넘어가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직행하였다.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사람은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직 대통령과 성 김 당시 국무부 코리아과장 두 사람 뿐이다. 그런 그를 주한미국대사에 임명한 것은 북미양자회담 재개를 반대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된다.

다른 한 편, 웬디 셔먼은 2000년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에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수행하였다. 그 무렵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 가운데 86%가 북미국교수립에 찬성하였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웬디 셔먼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은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성 김 6자회담특사와 웬디 셔먼 전직 대북정책조정관을 주한미국대사와 국무부 정무차관에 임명한 것은, 백악관이 북미양자회담에 나설 불쾌한 취사선택을 곧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안겨준다. 올 가을에 북미양자회담이 열리면, 극단적인 반북대결정책을 어리석게 고집해온 이명박 정권만 고립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08년 6월에 비밀해제된, 1974년 8월 27일 백악관 대화록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74년 8월 루마니아를 통해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제안하였던 북미정상회담은, 26년이 지난 2000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다시 추진되었는데,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기 직전에 중단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11년이 지났다. 올 가을에 북미양자회담이 재개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일정에 오르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2011년 7월 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