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상선과 미국 구축함의 해상대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5일만에 세상에 알려진 사건

북측 상선과 미국 구축함이 공해상에서 대치한 사건이 사건발생 15일만에 미국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는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가 공개한 정보에 의거해 작성된 것이어서, 보도기사만 읽으면 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가 미국의 체면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공개한 일방적인 정보는 그 사건을 북측 상선 회항사건으로 규정하였으나, 사건진상은 회항이 아니다.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의 해상대치가 사건진상이다. 그리고 진상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북측 상선이 미국 미사일 구축함과 공해상에서 대치한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남측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북측과 미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 군사적 대결은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의 해상대치사건에서도 반복되었다. 미국의 위험천만한 북침전쟁연습과 그에 맞선 북측의 초강경 대응작전의 불꽃 튀는 대결이 한반도에서 6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이 공해상에서 대치한 사건도 그러한 북미대결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설명은 2011년 6월 13일 마크 토너(Mark C. Toner)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을 통해 나왔다. 그는 국무부 출입기자단에게 미사일 또는 미사일 관련 부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측 상선이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의 추적을 받았다가 북측으로 회항한 사건이 있었다고 간단히 밝혔다. 국무부 부대변인이 그러한 공식설명을 꺼내놓기 하루 전인 6월 12일 <뉴욕타임스>가 그 사건을 보도하였다.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이 해상에서 대치한 사건은 지난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일어났는데, 그로부터 15일이 지난 6월 13일에 가서, 그것도 <뉴욕타임스>가 관련보도를 내놓자, 미국은 그때서야 공식설명을 꺼내놓았다. 국무부의 뒤늦은 공식설명은, 미국이 해상대치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마지못해 뒤늦게 간단한 설명을 꺼내놓은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만일 <뉴욕타임스>가 해상대치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국무부가 공식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그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뻔하였다.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이 해상에서 대치한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물론 백악관까지 나서서 대책을 취하였다. 미국의 긴급대응행동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소속 대량파괴무기 확산 및 테러에 대한 예방사업 조정관(Coordinator for the Prevention of WMD Proliferation and Terrorism) 개리 세이모어(Gary Samore)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백악관까지 직접 개입한 중대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것을 보면, 해상대치사건이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미국의 뒤늦은 정보공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해상대치보다 더 큰 사건이 배경에 깔려있는 있는 것이다.

출항에서 회항까지의 사건경로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건경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2011년 5월 23일 상선 한 척이 남포항에서 출항하였다. 미국이 뒤늦게 공개한 정보는 상선의 출항날짜를 밝히지 않았고, 그 상선이 5월 26일 현재 중국 상하이(上海) 남쪽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었다는 사실만 밝혔다. 그렇지만 남포항에서 상하이 남쪽 바다까지 거리가 대략 1,600km 정도이므로, 상선이 시속 30km의 매우 느린 속도로 항해하였다고 보면, 5월 23일에 출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이 뒤늦게 공개한 정보는 출항지를 남포항이라고 지적하지 않았으나, 해외를 오가는 상선이 드나드는 북측 서해 항구는 남포항 이외에 없다.

미국이 뒤늦게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그 상선은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끼어있는 인구 33만 명의 중앙아메리카 소국 벨리즈(Belize)에 선적을 둔 라이트호(M/V Light)다. M/V라는 약자는 상선(Merchant Vessel)이라는 영어 머리글자를 뜻한다.

라이트호는 서해를 빠져나가 중국 해안을 오른쪽에 끼고 남쪽으로 항해하였다. 라이트호가 북측이 생산한 미사일 또는 미사일 부품을 싣고 미얀마로 향하고 있다고 의심한 미국은 라이트호 항해를 저지하기 위한 긴급행동을 취하였다. <뉴욕타임스> 2011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측이 미얀마에 수출하는 사거리 560km의 미사일이 라이트호에 실려있었을 것으로 의심하였다.

2011년 5월 26일 라이트호가 중국 상하이 남쪽 바다를 지날 때, 미국 해군의 알레이버크급(Arleigh Burke-class) 미사일 구축함 맥캠벨호(USS McCampbell)가 라이트호를 뒤쫓기 시작하였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함대공미사일, 함대함미사일 등 각종 고성능 미사일 96발을 장착하고, 씨호크(Seahawk) 해상작전헬기 2척을 실은 9,200t급 구축함 맥캠벨호는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 주둔하는 7함대 휘하 제15구축함전단 소속이다. 맥켐벨호는 2011년 5월 1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1년 아시아국제해상방어전시회(INDEX Asia)’에 참가하였으므로, 라이트호를 뒤쫓으라는 긴급명령을 받고 싱가포르에서 출항하여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2011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를 통해 북측에게 라이트호에 대한 승선과 검색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미국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성조(Stars and Stripes)> 2011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승선과 검색을 허락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였고, 세이모어의 말을 인용한 <다우존스 앤드 컴퍼니(Dow Jones & Com)> 2011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그 배(라이트호를 뜻함-옮긴이)가 산업용 화학물질을 싣고 방글라데쉬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국무부는 라이트호가 선적을 둔 벨리즈에 연락하여 라이트호에 승선하겠다고 통보하였고, 백악관은 동남아시아 나라들에게 라이트호가 기항할 경우 검색하라고 요구하였다. 때마침 워싱턴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개리 세이모어 백악관 조정관은 그 회의에 참석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대표들을 모두 만난 자리에서, 당시 항해 중인 라이트호 모습을 공중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문제의 상선이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 기항할 경우 그 나라에서 검색을 실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른 한 편, 미국 군부는 라이트호의 항로와 행선지, 선적화물에 대한 정보를 직접 파악하라고 맥캠벨호에게 명령하였다. 이것은 정선과 검색을 실시하라는 명령이다. 나중에 국방부 대변인 데이브 레이펀(Dave Lapan)이 기자들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정선과 검색을 실시하라는 긴급명령을 받은 맥캠벨호는 라이트호에게 승선허락을 요청하였으나, 라이트호 선장은 그 상선이 벨리즈 상선이 아니라 북측 상선임을 밝히면서 승선허락요청을 거부하였다. <아에프페(AFP)통신> 2011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맥캠벨호는 라이트호에게 승선허락요청을 네 차례나 하였지만, 그 때마다 라이트호는 거부하고 항해를 계속하였다. 북측 상선과 미국 미사일 구축함의 해상대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승선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다가 거부당한 맥캠벨호가 라이트호를 사흘 동안 계속 뒤쫓고 있었던 2011년 5월 29일, 라이트호가 공해상에서 갑자기 항해를 멈추었다.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한 맥캠벨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가운데, 라이트호는 뱃머리를 180도로 돌리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 북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 라이트호가 동중국해를 지나 서해로 들어섰다는 미국군 정찰기와 정찰위성의 보고를 받은 백악관은 그 상선이 남포항으로 회항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 가지 의문을 풀어주는 열쇠

위의 언론보도를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워싱턴포스트> 2011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은 라이트호가 남포항을 출항할 때부터 추적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 정찰위성이 라이트호가 남포항에 기항하고 있을 때부터 계속 감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미국 정찰위성은 남포항에 드나드는 여러 상선들 가운데 왜 하필 라이트호를 감시하였을까? 그 까닭은, 남포항에 기항한 다른 상선과 달리 라이트호가 화물선적과정에서 미국 정찰위성에 포착될 만한 특이한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찰위성의 공중감시를 통해 라이트호의 특이한 화물선적을 포착한 미국 군부는 관련정보를 백악관에 보고하였고, 백악관의 긴급지시에 따라 미국 해군 정찰기를 동원한 공중추적과 미사일 구축함을 동원한 해상추적이 벌어진 것이다.

위의 정황은, 미국 정찰위성이 상시적으로 남포항을 감시하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남포항이 미국 정찰위성의 상시적인 감시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북측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북측은 왜 라이트호에 화물을 선적할 때 미국 정찰위성의 의심을 살 만큼 특이하게 행동하였을까? 만일 북측이 백악관이 의심한 것처럼 미얀마로 미사일 또는 미사일 부품을 수출하려 하였다면, 미국 정찰위성이 뻔히 내려다보고 있는 남포항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부당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측은 다른 나라에 재래식 무기를 수출할 때 검색당할 위험이 없는 항공기를 이용하고 있으며, 미국 해군과 친미동맹국 해군의 해상검색 위험에 노출된 상선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라이트호의 특이한 화물선적은 북측이 미국 정찰위성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은 왜 특이한 화물선적을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하였을까?

둘째, 라이트호는 길이 91m, 폭 15m의 비무장 상선이고, 맥캠벨호는 길이 155m, 폭 20m의 미사일 구축함이다. 맥캠벨호에는 검색요원을 수송할 해상작전헬기 두 대가 탑재되어 있었으므로, 정선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해상작전헬기를 투입하여 검색요원을 강제승선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맥캠벨호는 해상작전헬기를 투입하지 않고 라이트호에게 승선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말이 승선허락요청이지 실제로는 정선과 검색을 요구한 미국 군부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라이트호는 정선과 검색을 요구하는 압박을 단호히 물리쳤다. 거부한 것만이 아니라, 라이트호에 벨리즈 국기가 게양되어 있지만 사실은 북측 상선이라는 사실을 맥캠벨호에게 알려주었다. 라이트호는 정선과 검색을 요구한 미국 군부의 압박을 네 차례나 물리치면서 항해를 계속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라이트호는 뱃전에 벨리즈 국기를 달았지만 사실은 북측 상선이므로 감히 검색하려들지 말라고 미국 군부에게 되레 경고하는 듯한 당당한 태도를 취하며 맥캠벨호와 대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해상에서 미국 구축함의 정선명령을 거부하는 경우 강제검색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라이트호는 왜 강제검색을 자초할 거부행동을 네 차례나 취하면서 미국을 자극한 것일까?

셋째, 정선과 검색을 요구한 미국 군부의 압박을 네 차례나 물리치고, 맥캠벨호와 미국 해군 정찰기를 사흘 동안 끌고 다니던 라이트호는 2011년 5월 29일 갑자기 뱃머리를 북측으로 돌려 회항하기 시작하였다. 라이트호는 왜 5월 29일에 회항하기 시작한 것일까?

위의 세 가지 의문을 풀어주는 열쇠는, 미국군의 북침공습작전 연습 ‘맥스 선더’를 무력화하기 위해 북측이 2011년 5월 25일에 실시한 요격미사일 발사훈련에 들어있다. 다시 말해서, 라이트호의 출항과 회항은 같은 시간대에 ‘맥스 선더’를 강행하던 미국군을 위협하기 위해 서해로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을 실시한 인민군의 대응군사작전이었던 것이다. 미국군이 실시한 ‘맥스 선더’와 인민군이 실시한 요격미사일 발사훈련에 대해서는 2011년 6월 13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북측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침묵’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군이 2011년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해에서 ‘맥스 선더’를 실시하는 동안 미국 정찰위성과 정찰기가 북측 서해수역을 24시간 집중 감시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인민군이 요격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면, 미국 정찰위성과 정찰기가 인민군의 요격미사일 작전상황을 상세히 포착하게 될 것이다. 인민군이 요격미사일 작전상황을 미국에게 노출하는 것은, 미국군이 대응전술을 개발하도록 군사기밀을 노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측이 자기에게 집중된 미국군의 정찰과 감시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는 전술을 취하면서 요격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군사행동이었다. 미국군의 정찰과 감시를 감쪽같이 따돌리는 기상천외한 유인전술에 라이트호가 동원되었던 것이다.

인민군의 기상천외한 유인전술에 따라, 라이트호는 남포항에서 일부러 의심스러운 화물선적행동을 드러내어 미국군의 정찰과 감시를 자기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라이트호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 빈 철제화물함(container)들이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줄 모르고, 유인전술에 걸려든 미국은 정찰위성, 정찰기, 미사일 구축함을 동원하여 라이트호를 열심히 추적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북측이 정찰과 감시를 유인한 것만이 아니라 맥캠벨호와 해상대치를 계속하면서 미국을 자극함으로써 강제검색도 유인하였다는 사실이다. 만일 맥캠벨호가 라이트호의 유인전술에 걸려들어 검색을 강행하였더라면, 미국 해군 검색요원들은 텅 빈 철제화물함이나 열어보고 망신만 톡톡히 당하였을 것이다. 북측은 미국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강제검색 유인전술까지 준비한 것이다. 2011년 6월 12일 <뉴욕타임스>가 “(검색을 하더라도)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는 함정을 북측이 파놓았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한 미국 정부 관리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것을 보면, 미국은 북측의 유인전술에 걸려드는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포증이 재발한 미국

백악관은 왜 라이트호를 강제검색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못하였을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검색을 강행하였다가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면 북측의 유인전술에 걸려들어 망신을 당할까봐 안절부절 못하였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백악관이 강제검색을 지시하지 못한 까닭은, 미국이 검색을 강행하면 이를 “사실상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백배 천배로 보복하겠다”는 북측의 초강경한 경고발언을 들으며 느꼈던 공포가 백악관의 기억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2년 전인 2009년 6월 17일 북측 상선 강남 1호가 남포항에서 출항하여 매우 느린 속도로 남중국해를 향해 항해하였다. 이번에 라이트호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미국은 미사일 구축함과 정찰기를 동원하여 강남 1호를 맹렬히 뒤쫓았다. 강남 1호 추적작전에 미사일 구축함 존 매케인호(USS John S. McCain)가 동원되었는데, 나중에는 맥캠벨호도 추적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미사일 구축함과 정찰기의 집요한 추적을 받으면서도 남중국해를 향해 여유 있게 항해하던 강남 1호는 6월 28일에 뱃머리를 되돌려 회항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 미사일 구축함이 강남 1호를 보름 동안이나 뒤쫓기만 하였을 뿐 검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강제검색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백배 천배로 미국에게 보복하겠다는 북측의 초강경한 경고발언에 공포를 느낀 미국은 혹시 우발적 사고로 북측의 보복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쩔쩔매고 있었다. 미국이 공포를 느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미국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2009년 7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맥케인호가 강남 1호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 멀찌감치 떨어져서 뒤쫓으라고 명령하였고, <뉴욕타임스> 2011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백악관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불꽃이 발화할 것을 두려워하여(fearing a spark that could ignite the Korean Peninsula)” 강남 1호를 검색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이 그처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북측이 2009년 5월 25일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하는 소형 핵탄두를 보유하였음을 실증해보였기 때문이다. 북측이 소형 핵탄두를 보유한 것은 인민군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 핵보복을 가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백배 천배로 보복하겠다는 경고발언을 들은 미국이 어찌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북측이 제2차 지해핵실험을 실시한 직후인 2009년 5월 30일 미국은 세계 최강 전투기라고 자랑하는 F-22 12대를 오키나와(沖繩)에 전진배치하고, 또 다른 F-22 12대를 괌(Guam)에 전진배치함으로써 짐짓 초강대국 위세를 떨쳐보려고 부산을 떨었지만, 북측의 초강경한 보복발언을 듣고 나서는 강남 1호를 검색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허약한 모습을 노출하였다. 이를테면, 2009년 6월 19일 마이크 멀린(Michael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강남 1호 대응작전에 대해서는 똑똑하게 말하지 못한 채 “우리는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를 확실하게 이행하려 하고 있다. 결의안은 북측의 재래식 무기는 물론 분열성 물질과 핵무기 등을 선적할 수 없도록 명확히 규정하였다”는 원칙론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2009년 8월 7일 인도 해군은 원자로 설비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한 북측 상선 무산호가 자국 영해에 들어오자 검색을 실시하였으나 합법적인 선적물만 발견하여 망신을 당한 적이 있는데, 정작 강남 1호 검색을 강행할 것처럼 떠들썩했던 미국은 공포증에 걸려있었다.

2년 전 강남 1호 공포증에 걸렸던 미국 군부는 이번에 그 공포증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맥캠벨호에게 명령하여 라이트호를 뒤쫓게 하면서도 검색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2011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촉발시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라이트호를 검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측의 보복발언에 주눅이 들어 강남 1호를 검색하지 못하고 뒤쫓기만 하는 모습이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망신을 당한 미국은, 이번에 라이트호를 검색하지 못해 또 다시 망신을 당할까봐 추적상황을 언론에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발생 15일만에 <뉴욕타임스>가 뒤늦게 폭로성 기사를 내놓는 바람에 사건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대치사건을 회항사건이라고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북측이 만일 강남 1호처럼 북측 국기를 게양한 상선을 이번에 동원하여 미국의 정찰과 감시를 따돌리는 유인전술을 펼쳤더라면, 미국이 또 다시 속아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측이 벨리즈 국기를 게양한 상선을 동원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은 라이트호를 동원한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미국군의 정찰과 감시를 감쪽같이 따돌리고 요격미사일 작전상황을 미국군에게 노출하지 않으면서 서해에서 요격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였다. 2011년 5월 25일 한반도를 감시하던 미국군 정찰위성과 정찰기가 동중국해를 지나 남행하는 라이트호를 열심히 뒤쫓고 있을 때, 인민군이 발사한 KN-06 요격미사일이 붉은 화염을 뿜으며 서해 상공으로 날아갔다. 거의 같은 시각, 서해에 배치된 인민군 미사일전함에서 육지쪽으로 표적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요격미사일이 표적미사일을 파괴하는 놀라운 장면을 방공레이더망으로 포착한 미국 군부는 그만 아연실색하였다. ‘맥스 선더’라는 이름의 북침공습작전 연습을 지휘하던 미국 군부는 북측의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허를 찔렸고, 북측은 북미대결에서 또 다시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다. (2011년 6월 20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