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폭로전술과 대미협상국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청와대를 강타한 북측의 폭탄급 폭로발언

2011년 6월 1일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폭로발언을 이 글의 논지에 맞춰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1.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011년 4월 하순 대북비밀접촉이 있었다. 그 접촉에서 남측 당국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거론하지 않겠으니 남북정상회담 개최준비를 위한 비밀협상을 진행하자고 북측에 제안하였고, 북측은 그 제안에 동의하였다.
2. “리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추진된 대북비밀협상은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만 알고 있었다.
3. 4월에 있었던 남북비밀접촉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5월 9일 남북비밀협상이 진행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비밀협상에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 홍창화 국정원 국장,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파견하였다.
4.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일정까지 구상하였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2011년 5월 하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어 합의사항을 공개하고, 6월 하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8월 하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고,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여 제3차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이다.
5. 5월 9일에 열린 남북비밀협상에서 남측 당국자들은 4월 남북비밀접촉에서 합의했던 내용과 다른 수정안을 꺼내놓았다. 수정안이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합의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6. 북측 당국자들이 절충안을 거부하자, 남측 당국자들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시해 달라”, “제발 좀 양보하여 달라”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빨리 추진시키자”고 애걸하였고,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만나 비밀협상을 계속하자고 제의하면서 돈봉투를 내밀었다.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폭로발언은 폭탄급 타격력으로 청와대를 강타하였다. 누구보다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은 대북비밀접촉을 지시한 장본인 이명박 대통령이다. 폭로발언이 나온 직후, 청와대에서는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등 대통령 고위보좌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동안 긴급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긴급회의를 진행해 본들 무슨 대책이 나올 리 없었다. 청와대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고, 정치권에서는 진상파악을 위한 논란이 벌어졌다.

5월 9일 비밀협상에서 남측 당국자들이 “비밀접촉에서 오고간 이야기가 이남에 알려지면 좋지 않으니 꼭 비밀에 붙여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는데도, 북측은 왜 폭로발언으로 청와대를 강타하였을까? 그에 대해 남측 언론매체들은 제각기 이러저러한 분석을 내놓았지만, 그런 분석들은 어느 일부만을 건드린 것일 뿐 전모를 깊이 있게 밝혀주지 못하였다. 북측의 폭로발언에 대해 남측 언론매체들이 분석한 내용을 읽어봐도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 까닭은, 남북관계만 단편적으로 분석하였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와 분리될 수 없고,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규정하며, 북미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쪽은 북측이다. 따라서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폭로발언도 북미관계 변화를 주도하는 북측의 의도에서 파악해야 한다. 북미관계를 중심에 놓고 남북관계를 바라보아야 북측이 어떤 배경에서 폭로전술을 취하였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이 대북정책 전환준비를 끝낼 때

2011년 1월 4일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을 방문하여 “진지한 협상이 북한을 다루는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하며 조만간 대북협상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고, 필립 크라울리(Philip J. Crowley)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같은 날 국무부 출입기자단에게 “진지한 협상이 대북전략의 핵심이며 북한과의 대화는 열려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011년 1월 6일자 보도기사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서 전환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서 외교협상으로 전환되는 듯한 조짐은 벌써 2011년 1월 초에 감지되었으나, 그 뒤로 몇 달이 지나도록 미국은 전환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정책의 전환을 알려주는 실제적인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물밑에서 은밀히 대북정책 전환을 준비해왔다.

미국이 대북정책 전환준비를 끝냈음을 말해주는 구체적인 사례는, 2011년 4월 17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미국 국무장관의 청와대 방문에서 드러났다. <아사히신붕> 2011년 4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측과 북측이 먼저 수석대표회담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미국이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남북수석대표회담이라는 절차를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백악관의 대북정책 결정사항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한 것이다.

<아사히신붕> 보도기사만 읽으면 남북수석대표회담과 6자회담만 보이지만, 그 두 회담보다 더 중요한 별도회담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북미양자회담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수석대표회담과 6자회담은 북미양자회담이 성사될 때 그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백악관의 대북정책 결정사항을 전하면서 미국이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혔기 때문이다. 명백하게도,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은 식량문제라는 외피를 쓴 북미양자회담 개최문제다. 북측이 지금 식량난을 겪는 것도 아니고, 북측이 미국에게 식량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이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는 것은, 대북식량지원으로 북미양자회담 개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11년 4월 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이상한 보고서와 북측의 주동적 조치’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요컨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은, 미국이 북미양자회담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그를 위해 대북식량지원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전략적 인내’를 철회하고 북측의 양자회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으며, 북미양자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북측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변화야말로 한반도 정세를 바꾸어놓을 중요한 변화다.

그러면 백악관의 대북정책을 ‘전략적 인내’에서 외교협상으로 전환시킨 변화요인은 무엇일까? 지난 18년 동안 북미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들이 그러했듯이, 이번에 일어난 변화도 당연히 북측의 주동적 조치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오랜 기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관계에 변화를 일으킨 북측의 두 가지 주동적 조치는, 북측이 북미양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3단계 협상절차를 중국과 합의한 것, 그리고 북측이 자국의 우라늄농축문제에 관련하여 새로운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북측의 그러한 두 가지 주동적 조치가 세상에 알려진 경로는 이러하였다.

2011년 4월 7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을 방문하여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담하였는데, 4월 11일 김계관 제1부상과 만난 직후 우다웨이 대표는 취재진에게 “우리는 한국과 조선 수석대표 간의 회의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에 합의했으며, 조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우선 남북 수석대표 회담, 다음으로 조선과 미국 간의 회담을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측이 남북수석대표회담→북미양자회담→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협상절차를 중국과 합의하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경향신문> 2011년 4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김계관 제1부상은 우다웨이 대표와 회담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이 녕변 핵시설단지에 건설된 우라늄농축시설에 접근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중국에 전했다고 한다. 북측은 우라늄농축문제를 6자회담 안에서 논의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의 우라늄농축시설 접근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북측이 김계관-우다웨이 회담에서 중국과 합의한 두 가지 조치는 중국을 통해 즉각 미국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전달받은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클린턴 국무장관을 서울에 급파하여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서 외교협상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려주었다.

2011년 4월 17일 클린턴 국무장관을 통해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하였음을 알게 된 이명박 대통령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2009년부터 북측의 지속적인 대화제안을 거부하면서 대결정책을 고수하며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환상에 도취되었던 그에게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7일 이후 다급하게 추진한 것이 대북비밀접촉이다.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폭로발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4월 하순에 있었던 대북비밀접촉을 통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조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준비를 위한 비밀협상을 진행하자고 북측에 제안하였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거론하지 않겠으니 남북정상회담 개최준비에 들어가자고 제안하였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5월 9일에 대북비밀협상을 하고, 6월 하순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매우 급진적인 추진일정을 구상한 것은, 그가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서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껏 북측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줄곧 고집하다가 느닷없이 대북비밀협상을 급진전시킨 것은, 북측의 대화의지를 떠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강력한 외부요인에 떠밀려 남북정상회담을 급히 추진하려고 서둘렀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2011년 5월 9일에 진행된 남북비밀협상에서 남측 당국자들은 4월 남북비밀접촉에서 합의했던 내용과 다른 수정안을 꺼내놓았다. 수정안이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합의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그러한 ‘말바꾸기’는 북측에게 통하지 않았다. 적당하게 ‘말바꾸기’를 해도 북측에게 통하리라고 예상한 것 자체가 상황오판이었다. 대남비밀협상에 나온 북측 당국자들은 말이 되지 않는 ‘말바꾸기식 절충안’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궁지에 몰린 남측 당국자들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시해 달라고” 애걸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빨리 추진시키”기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만나 비밀협상을 계속하자고 제의하면서 미화 1만 달러를 넣은 돈봉투까지 내밀었다. 관료사회에 만연된 뇌물수수관행에 익숙한 그들은 북측 당국자들에게 돈봉투를 건네주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될 줄로 착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물그릇은 깨지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바꾸기’는 이미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린 덫으로 되었다. 궁지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든 판에 ‘말바꾸기’의 덫에 스스로 걸렸으니 회생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백악관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는 친미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북측에 제안하면서 ‘말바꾸기’를 하였더라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같으면 북측이 폭로전술까지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북측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애걸한 이명박 대통령의 비굴한 모습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충격발언은 단순한 폭로전술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는 배격선언이다.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폭로발언이 이명박 대통령을 배격한 선언이라는 점은, 폭로발언이 나오기 이틀 전인 2011년 5월 30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대변인 성명에서 확인된다. 이명박 정권을 맹비난한 대변인 성명은 “리명박 역적패당의 반공화국 대결책동이 극한점에 이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세 가지 “원칙적 립장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원칙적 입장이란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을 것”이고, “리명박 역적패당의 반공화국 대결책동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거족적인 전면공세에 진입할 것”이고, “당면하여 역적패당의 대결소동에 맞서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변인 성명에서 언급한 ‘실제적인 행동조치’가 바로 이틀 뒤에 나온 폭탄급 폭로전술에 의한 배격선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였다면 폭로전술까지는 동원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번에 북측은 왜 그처럼 폭탄급 폭로전술을 동원한 배격선언을 발표하였을까? 원래 북측은 이명박 정권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정권과 북측이 마주앉는다 한들 무슨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북미양자회담을 재개하려면 어차피 남북정부당국회담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한 번쯤 거쳐야 하리라는 점을 북측은 알고 있었다. 미국이 북미양자회담을 재개하기 전에 남북정부당국회담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측이 올해 초에 포괄적인 남북대화를 개최하자고 제안한 까닭은, 미국이 북미양자회담 개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대북식량지원을 시행하는 것에 발맞춰 북측도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5일 북측이 발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련합성명’은 “남조선당국을 포함하여 정당, 단체들과의 폭넓은 대화와 협상을 가질 것을 정중히 제의한다”는 것, “우리와 손잡고 나가려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다”는 것, “대화와 협상, 접촉에서 긴장완화와 평화, 화해와 단합, 협력사업을 포함하여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것, “당면하여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서로의 비방중상을 중지하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제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대북식량지원을 반대하고, 남북대화 재개도 반대하면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기어이 받아내고 북측이 먼저 핵포기 선행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고집스런 반북대결정책에 매달렸다. 이를테면, 2011년 4월 17일 클린턴 국무장관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이명박 대통령에게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수석대표회담을 먼저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수석대표회담 전에 북측의 성의를 확인하는 ‘예비회담’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한의 성의가 확인될 때까지는 만날 수 없다”고 주장했고,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국 정부가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북식량)지원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북측이 ‘대남무력도발’에 대해 사죄부터 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명박-클린턴 회담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게 당당히 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덫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그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통하지도 않을 헛고집을 부린 데 있었다. 이명박-클린턴 회담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대북정책 전환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통보해주고 따라오라고 요구한 회담이었으나, 헛고집을 부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백악관의 요구를 따를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을 열렬히 칭송해오던 그가 이제와서 왜 백악관의 정책적 요구를 따르지 않고 헛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그 까닭은, 그가 그 동안 반북대결정책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반북대결정책을 대북협상정책으로 급전환하려면, 이명박 대통령은 반북대결소동을 벌여온 측근 고위관리들부터 갈아치워야 한다. 통일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국정원장, 청와대 고위보좌관들이 모조리 반북대결소동을 일으켰으니, 아무리 친미적인 대통령이라 해도 그런 판에서 갑자기 백악관의 정책전환 요구를 어떻게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백악관의 정책전환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백악관은 자기들이 결정한 대북정책을 실행에 옮기게 되어 있다. 백악관과 청와대의 관계가 상하관계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기묘하게 전개되는 남북미 삼각관계의 변화양상을 더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평양에 나타난 ‘반공화국 인권모략책동’ 주모자

북미관계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는, 이명박-클린턴 회담 이후 약 한 달만에 조성되었다. 2011년 5월 20일 마크 토너(Mark C. Toner) 국무부 대변인이 뜻밖에 로벗 킹(Robert King) 국무부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일정을 공개한 것이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이 대북인권특사 방북이 불러일으킬 변화파장을 알면서도 일부러 말을 아꼈는지 아니면 그의 방북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북인권특사 방북은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비해 언론계의 관심을 그닥 끌지 못했다. 그러나 대북인권특사 방북은 지미 카터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계기였다. 그 까닭은 이렇게 설명된다.

첫째, 북측이 ‘반공화국 인권모략책동’ 주모자로 지목하고 배격해온 미국의 대북인권특사에게 방북을 허용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이 ‘반공화국 인권모략책동’ 주모자로 지목한 두 범인은 유엔 인권이사회(UNHRC)의 북코리아 인권특별보고관과 미국 국무부의 대북인권특사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북인권특사는 미국의 ‘북코리아 인권법’에 따라 북측의 ‘정치적 자유’를 촉진하고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북측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들에게 미국 정부의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에 자문을 해준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북측이 왜 그를 배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유엔 인권이사회 북코리아 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을 계속 거부해온 북측은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갑자기 허용하였다. 왜 그랬을까? 북측의 전향적 조치에 얽힌 사연은 아래와 같다. 

미국이 북측에 식량평가단을 파견하였다는 언론보도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미국은 식량평가단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식량평가단이라는 명패를 단 국무부 대표단을 파견한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은 대북인권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국무부 대표단을 북측에 파견한 것이다. 만일 백악관이 식량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대표단을 북측에 보내려 하였다면, 북측이 배격하는 관리를 대표단 단장에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대북인권특사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EAP) 대북정책실(North Korea Policy Office) 소속이라는 점이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대북정책실에는 대북인권특사 이외에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성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가 소속되었다. 대북인권특사가 대북정책실 소속이라는 사실은 그가 ‘인권문제’만이 아니라 북미양자회담에도 관여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대북인권특사는 북미양자회담에 참가할 정부당국의 일원인 것이다. 

2011년 5월 31일 마크 토너 국무부 부대변인은 국무부 출입기자단에게 “킹 특사는 이번 방북기간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리용호 부상, 리근 미국국장 등 북측 고위당국자들과 만나 식량상황과 함께 식량지원 감시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평가팀은 6월 2일까지 북한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식량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방북한 것으로 알려진 대북인권특사를 만난 북측 인사들은 식량문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리용호 부상 등이다. 이것은 대북인권특사가 미국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평가단을 각 지방에 보내놓고 자신은 평양에서 북측 고위관리들과 별도회담을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북측과 미국은 대북인권특사 방북을 계기로 협상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움직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첫째, <아사히신붕> 2011년 6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방북 중인 대북인권특사와 회담하면서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에 관한 미국의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북측이 미국의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북미양자회담의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북측은 대북인권특사를 다시 초청하였고, 대북인권특사도 다시 방북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북미 두 나라가 협상국면으로 나아간 것이 분명하다. 

둘째, 대북인권특사가 식량평가단이라는 명패를 단 국무부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도착한 5월 24일, 그의 방북에 때를 맞춰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CERF)은 북측에서 활동하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1,000만 달러의 긴급지원금을 대주었다. 그보다 앞서 4월 29일 세계식량계획은 2억 달러의 식량을 북측 주민 350만 명에게 지원하는 사업을 개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세계식량계획에 가장 많은 자금을 대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평균 15억 달러의 자금을 세계식량계획에 대주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지금까지 4억3,900만 달러밖에 대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계식량계획이 시작한 2억 달러의 대북식량지원사업은 미국 정부가 올해 안에 세계식량계획에 제공할 나머지 10억 달러의 자금 가운데 일부를 가지고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이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대북식량지원을 이미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측 인민들에게 지원하는 식량이 인민군대 식량으로 전용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가 미국 연방의회에서 들리고 있다.

북측은 이명박 대통령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배격선언을 발표하였고, 미국은 북미양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고,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준비를 끝냈다. 반북대결정책에 매달려온 이명박 정권만 궁지에 몰리고, 덫에 걸려 허덕이는 꼴이다. 이명박 정권을 옥죄는 것이 어디 그것뿐인가. 정권 임기말에 관행적으로 나타나는 권력누수현상이 일찌감치 나타났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성난 민심이 부글부글 끓다가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으며, 대통령 지지율은 곤두박칠쳤다. 반북대결정책에 병적으로 집착해온 이명박 정권은 내우외환보다 더 절망적인 내환외환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북측의 폭로전술로 강타를 얻어맞고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통일부는 여전히 북측의 ‘급변사태’를 예상하며 ‘위기관리반’을 신설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자기 옷에 흙탕물이 몇 방울 튀어 묻은 사람은 그것을 닦아낼 생각이라도 하지만, 진흙탕에 푹 빠져버린 사람은 자포자기하기 마련인데, 지금 ‘급변사태’를 중얼거리는 통일부가 꼭 그런 꼴이다. 내환외환에 빠진 이명박 대통령은 북미양자회담이 열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6자회담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으면 대표단이나 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남측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다. (2011년 6월 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