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시리아 유혈사태의 진상

2011년 4월 29일 유엔인권위원회 특별회의에서 표결이 진행되었다. 찬성 26표, 반대 9표, 기권 7표로 채택된 문서는 시리아 사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 문서에 따르면, 3월 18일부터 계속되는 시리아 사태로 사망자가 약 450명, 부상자가 그보다 네 배에 이르고, 시위군중에 대한 실탄사격이 곳곳에서 자행되었고, 시위참가자들과 인권운동가들과 언론인들이 체포, 구금, 실종되었고, 피구금자들에게 고문과 가혹행위가 가해졌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비롯하여 인권이 유린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5월 13일 유엔인권최고위원 사무실(OHCHR)은 출입기자단을 위해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현황설명회에서 시리아 반정부세력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근거하여 그 동안 시리아 사태로 사망자가 700-850명에 이르고, 피체자가 수 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위참가자들에 대한 무력사용과 대량구금을 중단할 것을 시리아 정부에게 촉구하였다.

유엔인권위원회와 유엔인권최고위원 사무실은, 시리아 반정부세력이 정의의 저항을 하고 있으며 시리아 정부가 폭압통치를 하고 있다는 논조를 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한 논조는 미국과 추종국들이 시리아 사태의 진상을 은폐, 왜곡하여 세상을 속이려는 정보조작의 산물이다. 시리아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시리아 아랍 통신사(SANA)>가 보도한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4월 22일 무장괴한들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의 주베르(Juber) 지역에서 주유소에 방화하고 매복하였다가 진화작업을 하려고 긴급출동한 소방차를 습격하였다. 그들은 소방차 앞유리를 부수고 소방대원 세 사람의 머리, 몸통, 등, 옆구리를 흉기로 난자하여 중상을 입혔다. 뒤를 따르던 다른 소방차들은 급히 현장에서 피하여 화를 면했다.

4월 23일 오후 무장괴한들이 다라(Daraa) 지방의 나와(Nawa)에 있는 검문소를 습격하였다. 검문소에 있던 보안군이 즉각 응사하여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격전에서 군인 7명이 죽고 5명이 부상당했으며, 무장괴한 2명이 죽고 15명이 부상당했다. 또 다른 무장괴한들이 다라 지방의 이즈라(Izraa)에 있는 검문소를 습격하였다. 총격전에서 경비병 2명이 부상당했고, 무장괴한 1명이 죽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 같은 날, 다마스쿠스 외곽의 알무아다미야(Al-Muadamyia)에서도 보안군 2명이 무장괴한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시리아 중부지방 홈스(Homs)의 알나시야(al-Na'asiya)에서도 보안군 1명이 순찰 중에 무장괴한의 저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다마스쿠스 외곽의 조바르(Jobar)에서도 곡물을 거래하던 정부관리 3명이 무장괴한들의 저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4월 24일 자블라(Jablah) 지방의 알파에이드(al-Faeid)에서 주민들에게 식빵을 공급하는 식빵제조공장에 밀가루와 식재료를 배달하던 정부관리들이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괴한들은 정부관리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또한 같은 날 지방정부청사를 경비하던 경찰관에게 무장괴한들이 총격을 가하고 도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4월 30일 시리아군 공식발표에 따르면, 육군과 보안군 합동부대가 다라 지방에서 몇 일 동안 테러집단 색출작전을 전개해 무장괴한 6명을 사살하였고, 146명을 체포하였으며, 수많은 각종 총기류와 실탄을 압수하였다. 작전과정에서 군인 1명이 죽었고, 군인 7명이 부상당했다.

5월 4일 무장괴한들이 하마(Hama) 지방의 살라미야(Salamya)의 아드라이야(Athrayia)에서 총을 난사하여 행인 3명, 경비원 2명, 경찰관 1명이 부상당하고 경찰차량이 불탔다. 경찰과 보안군은 즉각 응사하여 무장괴한 1명을 사살하고, 무장테러단이 습격범행에 사용한 승용차 두 대를 압수하였는데, 승용차 안에서 기관총 한 정과 수많은 실탄이 발견되었다. 무장테러단은 보안군의 추적을 받으며 사막으로 도주하였다.

5월 11일 홈스 지방의 팔미라(Palmyra)에서 한 가족이 타고 가던 승합차에 무장괴한들이 총격을 가해 어린이 1명이 목숨을 잃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주목하는 것은, 시리아 유혈사태가 평화적인 시위군중과 폭력적인 군경의 충돌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보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무장테러단들이 순찰 중인 경찰, 검문소나 정부청사를 경비하는 군경, 진화작업에 충돌한 소방대원, 식품배달에 나선 정부관리, 무고한 시민들을 습격한 것이 시리아 유혈사태의 진상이다.

그러한 진상을 은폐한 미국과 추종국들은 시리아 군경이 평화적 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처럼 가짜 정보를 조작하여 전 세계에 유포하고, 그것을 빌미로 시리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유혈사태의 원인은 따로 있다

시리아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이슬람 계파분쟁이다. 이슬람 계파는 크게 시아파(Shia)와 수니파(Sunni)로 나누어졌는데, 전 세계 이슬람 인구 중에 시아파는 10-20%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수니파다. 소수파인 시아파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이란인데, 이란 인구의 90-95%가 시아파다. 이란과 달리, 시리아에서는 수니파가 인구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계파인구비율로 보면 시리아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시리아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알라위트(Alawite)가 시리아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다. 알라위트는 시아파의 한 분파다. 이란과 시리아가 사실상 동맹관계를 맺은 것은, 시아파가 그 두 나라를 각각 통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리아에서 소수파인 알라위트가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으니, 다수파인 수니파가 정치적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라위트와 수니파가 격렬하게 충돌해왔다. 그 충돌은 시리아에 사는 수니파 무장테러단이 일으킨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테러사건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1976년부터 1982년까지다. 그 시기에 일어난 테러사건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79년 6월 16일 무장괴한이 시리아군 포병학교 사관생도들이 모여있는 교내식당에 난입하여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3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1980년 6월 26일 하페즈 알아싸드(Hafez al-Assad) 당시 시리아 대통령은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테러단의 기습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목하는 것은, 무장괴한들이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과격파에 소속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무슬림형제단은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 여러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슬림의 정치조직이다. 1930년대에 창설된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은 1961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10석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1963년 2월 8일 군사정변이 일어나 아랍사회주의부흥당(Arab Socialist Baath Party)이 집권하자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알리 사드레딘 바야누니(Ali Sadreddine Bayanouni)는 1979년에 요르단으로 도피하였는데, 요르단 정부당국이 출국을 요청하자, 2000년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객 신세로 지내왔다.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은 1980년 2월 3일 하마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지역정부관리들과 집권당 지역간부 약 70명을 살해하고 ‘해방구’를 선포하였다. 시리아 정부는 군대를 보내 반란을 진입하였는데, 격렬한 충돌과정에서 민간인 약 10,000명, 시리아군 약 1,000명이 죽었다. 하마 반란사건으로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은 아랍사회주의부흥당의 최대 정적이 되었다. 하마 반란사건은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으나,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과격파의 지속적인 테러공격으로 이어졌다. 근래에 시리아 각지에서 그들이 일으킨 테러사건은 아래와 같다.

2004년 4월 28일 무장테러단이 다마스쿠스에 있는 외교관 거주구역을 기습하여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현장에서 무장괴한 3명, 경찰관 1명, 민간이 1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6년 6월 2일 무장테러단이 시리아 국립텔레비전방송국을 기습하여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현장에서 무장괴한 4명, 경비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9월 12일 무장테러단이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기습하여 수류탄을 던지며 총격전을 벌이고, 폭탄적재차량을 폭발시켰다. 현장에서 무장괴한 3명, 경비원 1명이 목숨을 잃었고, 13명이 부상당했다.

2008년 9월 27일 다마스쿠스에서 수니파 무장테러단 파타 알이슬람(Fatah al-Islam)의 폭탄테러로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9년 12월 3일 다마스쿠스 근교에 있는 시아파 사원에서 운행 중이던 버스에 장착된 폭탄이 터져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에서 언급한 연속적인 테러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은, 오늘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혈사태가 지난 시기에 일어난 연속적인 테러사건의 연장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혈사태는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과격파가 시리아 정권을 뒤집어엎으려고 저지르는 테러범죄다.

테러라는 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미국과 서방세계는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과격파가 일으키는 유혈사태를 규탄하고 그들의 테러행위를 단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반대로 미국과 서방세계는 테러에 맞서 싸우는 시리아 정부에게 비난과 협박을 퍼붓고 있으며, 세계 각국 수구언론매체들은 유혈사태의 책임을 시리아 정부에게 뒤집어씌운 허위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반시리아 언론매체들이 어떻게 허위보도를 내보내는지를 알려면, 무장괴한의 저격으로 자기 조카를 잃은 압둘모인(Abdulmoin)의 사연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4월 23일 다마스쿠스의 주바르 지역에서 수많은 조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자기 조카의 장례식장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난입하여 반정부 구호를 외쳐대면서 급히 동영상을 촬영한 뒤에 도주하였는데, 그 괴한들은 자기들이 찍은 동영상 자료를 영국 런던에 있는 반시리아 위성텔레비전방송 <바라다(Barada) TV>에 넘겨주었다.

<바라다 TV>는, 무장괴한의 저격으로 피살된 사람의 장례식을 보안군의 총탄에 피살된 시위참가자의 장례식으로 둔갑시킨 그 동영상을 그대로 방영했다. 그런 식의 비열한 정보조작이 해외 언론매체들을 통해 전파되는 것에 격분한 시리아 군중 300여 명이 아랍권 위성텔레비전방송 알저지라(al-Jazeera) 다마스쿠스지국 청사 앞에서 지국폐쇄를 요구하며 장기간 연좌시위를 벌였다.

누가 반정부세력의 배후에 있는가?

2011년 5월 7일 시리아 내무부는 시리아 각지에서 체포된 폭동가담자가 553명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지금 시리아에서 무장테러단이 저지르는 유혈사태만이 아니라 반정부폭동도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반정부폭동은 무장테러단이 아니라 반정부세력이 일으키는 것이다.

시리아 반정부세력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슬람 사원에서 열리는 기도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종교의식을 마치고 사원 밖으로 몰려나오는 군중들 속에 들어가 반정부구호를 외치며 선동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처럼 사원 기도회에 모인 이슬람 교도들을 선동하여 일으키는 반정부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시리아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면서 강제로 해산하지만 군중들에게 총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시리아의 종교지도자 모하마드 사이드 라마단 알부티(Mohammad Saiid Ramadan al-Bouti)는 2011년 4월 24일 <시리안(Syrian) TV>가 방영한 연설에서 금요일이 두려움과 테러와 공포의 날이 되었다고 개탄하였다.

시리아 반정부세력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2005년 10월 16일 시리아의 5개 반정부단체와 반정부인사 250여 명이 발표한 이른바 ‘민주국가적 변화를 위한 다마스쿠스 선언(Damascus Declaration for Democratic National Change)’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선언에 주목하는 까닭은, 거기에 서명한 반정부단체들과 반정부인사들이 지금 시리아 각지에서 반정부폭동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선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시리아 현 정권은 전체주의적이고 압제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것, 그리고 과감한 정치개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리아에 사는 소수민족 쿠르드족(Kurds)의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언에 서명한 5개 반정부단체는 시리아 민주민족단, 쿠르드 민주동맹, 쿠르드 민주전선, 시민사회부흥위원회, 미래당이다.

그 선언에 나타난 반정부운동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친미세력의 반정부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쿠르드족의 반정부운동이다. 반미국가인 시리아에서 친미세력이 반정부운동을 벌이는 것은, 반미자주정권을 뒤집어엎고 친미예속정권을 세우려는 것이다.

또한 다민족국가인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이 반정부운동을 벌이는 것은 소수민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함이다. 시리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170만 명이다. 이들은 시리아에 이주하면서 부당한 방법으로 시민권을 취득하였는데, 시리아 정부는 1962년 그들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그에 따라 공공부문 진출과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였고, 친미세력과 공조하여 반정부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2011년 4월 7일 시리아 정부는 시리아에 사는 쿠르드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이처럼 시리아에서 친미세력과 쿠르드족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반정부폭동을 일으켰는데, 폭동을 주도하는 쪽은 친미세력이다. 2011년 3월 26일 시리아 정부가 폭동가담자 260명을 석방하였는데, 그 가운데 쿠르드족은 16명밖에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친미세력이 주도하는 시리아 반정부운동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였다는 사실이다. 2011년 5월 13일 레바논의 중도좌파정당인 독립나세르주의운동(Independent Nasserites Movement) 지도자 무스타파 함단(Mustafa Hamdan)은 <아뚜니아(Addounia) TV)>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시리아는 2005년 이전부터 미국과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George W. Bush)와 그 일당이 노린 목표로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반미저항의 중심부에 있는 아랍나라들 특히 시리아를 겨냥하여 꾸며진 극도로 위험한 음모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지금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반정부폭동이 미국의 정권전복음모에 의해 촉발되었음을 말해준다.

그가 폭로한 내용은 미국 언론보도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비밀폭로 전문 웹싸이트 위킬릭스(WiKiLeaks)가 폭로한 기밀문서를 인용하여 2011년 4월 17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중동협력구상(Middle East Partnership Initiative)’이라는 사업명칭을 내걸고 시리아 반정부세력에게 은밀히 재정지원을 해왔고, 시리아 반정부활동을 집중보도하는 위성텔레비전방송에도 재정지원을 하였다. 미국 국무부가 시리아 반정부세력에게 직접 재정을 지원하기는 힘들었으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우파단체 ‘민주주의협의회(Democracy Council)’를 통해 재정지원사업을 벌였다. 2009년 4월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낸 기밀문서에 따르면, ‘민주주의협의회’는 ‘시민사회강화구상(Civil Society Strenthening Initiative)’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리아 반정부세력 지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 국무부로부터 630만 달러를 받았다.

2009년 4월부터 영국 런던에서 송출을 시작한 <바라다 TV>가 바로 미국 국무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위성텔레비전방송이다. 유럽 각국에 흩어져 있던 시리아 망명객들을 규합하여 런던에서 창설된 해외반정부단체 ‘정의와 발전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Justice and Development)’이 그 위성텔레비전방송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온건파가 결성한 그 해외반정부단체의 목표는 바샤르 알아싸드(Bashar al-Assad) 시리아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이 시리아 정권을 뒤집어엎고 시리아를 친미국가로 만들기 위해 시리아 반정부세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시리아 정권을 뒤집어엎으려는 미국이 실제행동을 취한 때는 부쉬 정부 시기였다. 2004년 5월 부쉬 정부는 이미 ‘테러지원국’으로 규정된 시리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자, 2006년 2월 부쉬 정부는 시리아 주재 대사를 소환하여 시리아와 미국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시리아의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5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배정하겠노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미국 국무부 에드가 바스퀘즈(Edgar Vasquez) 대변인은 2005년부터 ‘중동협력구상’에 750만 달러가 배정되었다고 밝혔지만,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낸 기밀문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시리아 반정부세력에게 제공한 자금은 어림잡아 1,200만 달러가 넘는다. 이처럼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압박공세를 강화하는 틈을 노린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6일 시리아 알키바르(al-Kibar) 지역에 있는 군사시설을 폭격하였다.

2008년 10월 ‘다마스쿠스 선언’ 전국위원회 주동자 12명이 미국에게 시리아 공격을 요청한 레바논 거주 반시리아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시리아 사법당국은 그들에게 각각 최소 6개월에서 최장 2년을 선고하였다. 그러자 부쉬 정부는 경제제재를 넘어 군사행동으로 시리아를 위협하였다. 2008년 10월 26일 미국 군부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라크로 침투하는 근거지를 파괴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라크 영토를 침범하였다. 그날 오후 4-5시 사이에 무장헬기 4대에 분승한 미국군 특수부대가 시리아-이라크 국경에서 약 8km 떨어진 시리아 동부의 알수카리아(al-Sukaria) 마을을 습격하여 어린이 4명을 포함한 민간인 8명을 살해하였다. 만일 시리아군이 자국 영토를 침범한 미국군 특수부대에 반격을 가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 군부는 그것을 빌미로 시리아군을 공격하였을 것이고, 확전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부쉬 정부의 시리아 정권전복음모는 오마바 정부에 의해 계승되었다. 부쉬 정부보다 오바마 정부가 더 교활한 까닭은, 오마바 정부가 앞에서는 시리아와 관계를 개선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시리아 정권전복음모를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교활한 시리아 정책은 이러하였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9년 2월 미국 연방상원 존 케리(John F. Kerry) 외교관계위원장이 시리아를 방문하였고, 이어 3월에는 오바마 정부의 시리아 특사가 다마스쿠스를 방문하여 시리아-미국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었고, 부쉬 당시 대통령이 시리아 주재 대사를 소환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2010년 2월 16일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주재 대사를 임명하고 시리아와 관계를 개선하는 척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노리는 진짜 목표는 관계개선이 아니라 정권전복이다.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아온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온건파가 폭동을 일으키고, 시리아 무슬림형제단 과격파가 테러를 자행하자 미국은 그러한 사태를 빌미로 ‘인권문제’를 걸고 들면서 시리아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무력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테러와 폭동이 급변사태로 악화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리비아에서 그러한 것처럼, 시리아에서 테러와 폭동이 급변사태로 악화되면 미국은 미국군과 추종국 군대를 동원하여 시리아 공습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술레이만 암살사건이 말해주는 것

시리아 항구도시 타터스(Tartous)에서 북쪽으로 14km 떨어진 휴양지 리말 알자하비예(Rimal al-Zahabieh)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중해 바닷가에 주말별장 한 채가 있다. 2008년 8월 1일 지중해의 아침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잔잔한 물결 위에 유항선(yacht) 몇 척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유항선 한 척이 주말별장 바닷가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조용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뱃전에서 갑자기 총탄이 날아왔다. 암살범이 쏜 저격총탄 세 발을 맞고 현장에서 숨진 사람은 시리아 육군 준장 모하메드 술레이만(Mohammed Suleiman)이다. 암살범이 소음장치가 달린 저격총을 쏘는 바람에 현장에 있었던 호위병들은 방어행동을 취하기는커녕 총성을 듣지도 못했다. 암살범이 탄 유항선은 저격 직후 전속력으로 현장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리아 정부당국은 암살범 체포에 실패하였고, 암살범 정체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암살사건은 시리아의 적국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드러내주었다. 술레이만 준장은 바샤르 알아싸드 시리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온 군부요인이다. 술레이만 준장이 바샤르 알아싸드 대통령을 보좌한 임무는 시리아군 무기개발사업이었다.

술레이만 암살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시리아군은 미사일 부문에서 두 가지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07년 1월 28일 시리아가 자체로 생산한 사거리 700km의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것이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시리아가 그 미사일을 자체로 생산하기까지 북측이 기술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시리아군이 사거리 700km의 지대지 미사일을 자체로 생산하여 실전배치한 것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제조해온 네게브 핵연구소(Negev Nuclear Research Center)를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뜻한다.

또한 시리아는 사거리 700km의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던 2007년에 러시아제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계약에 따라, 러시아는 해수면 위 5m 높이에서 마하 2.5 속도로 300km를 날아가 300kg의 고폭탄두로 전함을 타격하는 초음속 대함미사일 야혼트(Yakhont) 72기를 시리아에 제공할 것이다. 이것은 시리아군이 이스라엘 방공망을 무력화하고, 시리아로 접근하는 적국 전함들과 전투기들을 격추할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임을 뜻한다. 또한 시리아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방공미사일을 수입하였고, 이란에서 고성능 방공레이더를 수입하였다.

술레이만 암살사건은 시리아의 숙적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국방력 강화를 저지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책동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시리아가 국방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까닭은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영토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에서 10일까지 일어난 제3차 중동전쟁을 도발하여 시리아에서 골란고원을, 이집트에서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요르단에서 웨스트뱅크와 동예루살렘을 빼앗아 강점하였다. 1973년 10월 6일 시리아와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협공하여 빼앗긴 영토를 찾으려고 제4차 중동전쟁을 개시하였으나, 영토탈환에 실패하였다. 1981년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을 자국 영토에 합병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골란고원(Golan Heights)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굽어보는, 수자원이 풍부한 고원지대인데, 그처럼 중요한 전략요충지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시리아는 국가방어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골란고원을 탈환하는 것이 시리아의 당면목표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5월 15일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강점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해 4명을 살해하였다.

시리아는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사회주의(Islamic socialism)와 범아랍 민족주의(pan-Arab nationalism)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미국의 압박공세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리비아는 미국의 집요한 압박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으며, 미국의 사탕발림 외교술에 속아 넘어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였다. 그러나 시리아는 미국이 압박공세를 강화할수록 반미자주노선을 더욱 강하게 견지하면서 국방력 강화에 국력을 기울였다.

시리아와 리비아가 그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결과는 오늘 상반된 현실로 나타났다. 리비아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배후조종을 받은 반란군이 내란을 일으켰고, 그런 급변사태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미국과 추종국들은 즉각 리비아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리비아는 최악의 붕괴위기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런데 시리아는 리비아와 달랐다. 시리아 무장테러단이 급변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테러를 자행하고, 미국 국무부의 재정지원을 받은 반정부세력이 폭동을 일으켰지만, 미국은 추가 경제제재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였을 뿐 시리아를 침공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3월 27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에 출연하여 시리아 상황과 리비아 상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2011년 5월 6일 바샤르 알아싸드 대통령이 유엔 인권최고위원회 고위급 진상조사단의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하였고, 5월 9일 시리아 정부당국이 폭동가담자 5명을 석방한 것을 보면, 시리아에서 일어난 테러와 폭동은 머지 않아 중지되고 정세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사태가 주는 교훈은, 리비아처럼 반미자주화노선을 포기하면 미국과 추종국들에게 자주권을 짓밟히게 되고, 시리아처럼 반미자주화노선을 견지하면 미국과 추종국들의 무력침공을 미연에 방지하고 자주권을 수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리아와 리비아가 각기 겪고 있는 상반된 현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반미자주화노선에 의해 좌우된다는 진리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2011년 5월 1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