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자 신원은 비밀에 묻혔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은신처 습격작전과 전원사살 명령

2011년 5월 1일 자정을 앞둔 시각, 백악관에서 생중계된 텔레비전방송에서 버락 오바마(Barak Obama) 대통령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는 미국군이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사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례적으로 한밤중에 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중계된 그 발표를 듣고 전 세계가 들끓었다.

미국 언론에 실린 각종 정보를 종합 정리하면,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2011년 4월 29일 오전 8시 20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빈 라덴이 숨어있는 것으로 판단한 은신처를 습격하여 부녀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무조건 전원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빈 라덴 사살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내걸었던 공약이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국가반테러센터 마이클 레이터(Michael Leiter) 소장이 그 은신처에 빈 라덴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42%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 가능성이 60-8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은신처 습격을 명령하였다.

은신처 습격작전을 총지휘한 사람은 리언 파네타(Leon E. Panetta) 중앙정보국장이다. 그는 자기 휘하에 있는 중앙정보국 특수활동부 산하 특수작전단(Special Operations Group)에 습격명령을 내렸고, 합동특수작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윌리엄 맥그레이븐(William H. McGraven) 중장에게 대통령의 습격작전지시를 전하였다. 맥그레이븐 중장이 지휘하는 해군 특수전 개발단(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산하 해군 특수전요원(Navy SEAL)과 중앙정보국 특수작전단 요원 24명이 습격조로 편성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6일 기사에 따르면, “나쁜 놈들이 우굴거리는 작전현장에서 보는 대로 쏴버려라”는 것이 그들의 행동수칙이다.

습격조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잘랄라바드(Jalalabad) 공군기지에서 스텔스 무장헬기 2대에 나눠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 무장헬기는 기존 무장헬기 블랙 호크(Black Hawk)를 특수전에 맞게 개조하여 특수항법장치, 비행소음 억제장치, 열기방출 감소장치, 특수정찰장비, 특수통신장비 등을 장착한 비밀병기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을 넘은 무장헬기들은 이륙 후 52분 동안 255km를 비행하여 은신처 상공에 도착하였다. 파키스탄 군당국에 따르면, 습격조를 태운 스텔스 무장헬기는 파키스탄군 방공레이더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가 저공비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파키스탄 영토를 깊숙이 침투하였어도 포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습격목표물로 정해진 은신처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밑변이 길고 꼭짓점 높이가 낮은 삼각꼴 부지 한 가운데에 3층 건물이 있고 거기에 연결된 초대소(guesthouse)가 부속건물로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넓은 뒷마당이, 서쪽에 그보다 좁은 앞마당이 보인다. 은신처 거주자들은 마당에서 소, 물소, 양, 염소를 기르고 있었고, 텃밭도 일궈놓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다. 은신처 상공에서 초저공으로 비행하며 착륙을 시도하던 무장헬기 한 대가 조종실수로 곤두박질치면서 은신처 마당에 추락한 것이다. 무장헬기에 타고 있던 습격조와 승조원들 가운데 몇 명이 추락충격으로 부상을 당했다. 미국이 최정예라고 자랑하는 특수작전요원들은 3층 건물과 주위 지형지물을 은신처와 똑같이 복제해놓은 야외훈련장에서 여러 차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습격연습까지 하였는데도, 막상 작전현장에서는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채 부상병 신세가 되고 말았다. 너무 창피스러운 사고라서 미국 군부는 기관고장으로 불시착하였다느니 또는 높은 담장에 가로막힌 바람이 난기류를 조성하여 불시착하였다느니 하는 식의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얼버무렸다.

무장헬기 한 대가 마당에 추락하는 바람에, 무장헬기가 건물 옥상으로 접근하여 습격조를 옥상에 내려놓으려던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습격조 전원이 마당에서 1층 출입문을 부수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습격조는 현장에서 무조건 사살하라는 상부명령에 따라 닥치는 대로 총격을 가해 5명을 사살하였다. 작전목표는 생포가 아니라 사살이었다.

잔혹한 사살극을 마친 습격조는 은신처를 샅샅이 뒤져, 컴퓨터, 휴대전화, CD, DVD, 이동식 저장장치(thumb device), 서류를 노획하였다. 은신처 마당에 추락한 무장헬기가 파키스탄군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습격조는 무장헬기에 폭탄을 설치한 다음, 시신과 노획물, 그리고 동료 부상병들을 급히 무장헬기에 싣고 현장을 떠났다. 추락한 무장헬기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는 강한 폭발음이 밤공기를 찢어놓았다.

습격작전을 마친 무장헬기는 전속력으로 비행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얼마 후, C-2 그레이하운드(Greyhound) 수송기 한 대가 습격조가 사살한 시신을 싣고 잘랄라바드 공군기지를 이륙하였다. 약 3시간 동안 남쪽으로 비행한 수송기는 약 1,400km 떨어진 아라비아해 북부해역에서 대기 중인 미국 항공모함 칼 빈슨호(USS Carl Vinson)에 착륙하였다. 그들은 시신을 항공모함 갑판에서 바다에 던졌다.

은신처 마당에 추락한 무장헬기를 폭파한 폭발음을 듣고 뒤늦게 현장에 달려온 파키스탄 경찰은 습격조가 사살한 시신 4구를 수습하였고, 습격조가 결박해놓고 가버린 부녀자 3명과 어린이 9명을 연행하였다. 그런데 습격조가 부녀자들을 무장헬기에 태워 납치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그들이 습격작전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 원래 작전계획에 따르면 습격조는 부녀자를 모두 납치하는 것이었으나, 조종실수로 무장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다른 무장헬기에 그들을 태울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도피, 잠행, 은신

1957년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Riyadh)에서 모하메드 빈 라덴(Mohammed bin Laden)의 25명 자녀들 가운데 18번째로 태어난 오사마 빈 라덴은 1988년에 국제테러단체 알 카에다(al-Qaeda)를 창설하고 23년 동안 이끌어왔다. 세계 곳곳에 각종 테러단체들이 많은데 미국이 유독 알 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 반테러전쟁까지 벌인 까닭은, 알 카에다가 미국을 주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알 카에다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미국군이 이슬람권에서 철군할 때까지 미국에게 테러공격을 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어난 9.11 테러공격이 알 카에다가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비밀작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비밀작전을 수행한 단위가 미국 중앙정보국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2002년부터 해외 각지에서 불법납치한 수많은 알 카에다 관련 혐의자들을 미국이 점령한 쿠바 영토인 관타나모(Guantanamo) 해군기지 수용소에 감금해놓고 수감자들에게 고문과 악형을 가했다. 지금도 그 수용소에 172명이 갇혀있다.

빈 라덴은 1991년부터 머물렀던 북아프리카 수단을 떠나 1996년 5월 알 카에다를 지지하는 탈레반 정권이 당시 장악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으로 거점을 옮겼다. 미국이 알 카에다를 비호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약하는 알 카에다를 소탕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2001년 10월 7일에 도발한 침략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그러나 미국군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지대 토라보라(Tora Bora)에 거점을 구축한 알 카에다를 공격하기 힘들었다. 정작 알 카에다는 소탕하지 못하면서 탈레반 전사들의 노상폭탄공격으로 쩔쩔매고 있던 미국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무인기(drone)다. 실시간 정밀공중정찰과 공대지 미사일공격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는 무인기를 동원한 미국 중앙정보국의 집요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무인기가 등장한 이후,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는 알 카에다에게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에 잠입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파키스탄에 잠입한 알 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 미국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친미정권과 비밀협정을 맺었다. 그 협정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미국이 자국 영토에서 반테러전쟁을 벌이는 것을 용인하나, 미국군이 파키스탄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은 금하고 미국 중앙정보국의 반테러작전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작전과 반테러작전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밀협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미국은 파키스탄 영토에서 마음대로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전횡을 부렸다. 이를테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2011년 1월부터 5월초까지 파키스탄에서 무인기를 동원한 미사일공격을 26차례나 감행하여 18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알 카에다를 상대로 반테러작전을 전개하려면 산하에 별도의 군사조직을 두어야 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해외첩보기능과 비밀공작능력에 더하여 독자적인 군사작전능력을 갖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 미국 중앙정보국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난 10년 동안 추적해온 1급 지명수배자가 오사마 빈 라덴이다. 2001년부터 그의 목에는 현상금 2,700만 달러가 걸렸고, 2007년부터는 5,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빈 라덴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도피, 잠행, 은신밖에 없었다.

1급 지명수배자 빈 라덴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추적에 쫓겨 파키스탄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하였으나, 키가 194cm나 되는 장신인 데다가, 얼굴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추적망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매우 불안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의 집요한 추적을 받으며 쫓기는 1급 지명수배자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어떻게 은신생활을 해왔는지 살펴보면 너무 뜻밖의 모습이 나타나 충격을 받게 된다. 그의 파키스탄 생활은 1급 지명수배자의 은신생활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홉 가지 의혹

미국 언론에 보도된 정보를 정밀분석하면, 미국 중앙정보국이 빈 라덴이라고 지목한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긴다.

첫째,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이 언론에 흘려준 정보에 따르면, 빈 라덴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북쪽으로 104km 떨어진 인구 10만명의 아보타바드(Abbottabad)시 외곽에 있는 빌랄(Bilal)이라는 중산층 거주지에 은신처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알 카에다에 연계되어 아보타바드에 잠입한 인도네시아 출신 테러단원 우마르 파텍(Umar Patek)이 올해 초 바로 그 도시에서 체포되었다. 파텍이 체포된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아보타바드 일대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음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만일 빈 라덴이 아보타바드 외곽에 은신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그도 파텍이 체포된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위험해진 은신처를 즉시 떠나 자취를 감추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자기의 은신지역 일대를 집중 감시하고 있음을 알았으면서도 여전히 그 위험한 은신처에 머물렀다. 2006년에 파키스탄 와지리스탄(Waziriastan) 지역에서 빈 라덴 색출작전에 참가한 미국 중앙정보국 출신자 아트 켈러(Art Keller)는 파키스탄 군시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검문소와 순찰활동이 집중된 아보타바드에 빈 라덴이 자기 은신처를 마련한 것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지명수배자의 도피생활은 추적망을 따돌리기 위해 은신처 한 군데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법인데, 빈 라덴이 한 두 해도 아니고 무려 6년 동안이나 위험한 은신처에서 계속 생활한 것은 은신 중인 국제테러단체 수장이 취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은신처는 넓이가 4,000㎡나 되는 부지에 3층 주택을 짓고, 마당 주위에 높이 5.5m, 두께 33cm나 되는 시멘트 담장을 둘렀는데 담장 위에는 철조망까지 쳤다. 또한 주택 2층과 3층에 있는 발코니(balcony)마다 2m 높이의 담장을 둘러 외부시선을 완전 차단하였다. 그런 주택외형은, 주변에 있는 파키스탄 거주민들의 주택외형과 달리, 평범한 살림집이라고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존 브레넌(John Brennan) 백악관 반테러전 담당 보좌관은 그 은신처가 “일종의 요새처럼 생겼다”고 묘사했다. 오죽하였으면,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집에 밀수업자 또는 마약밀매자가 산다는 소문이 나돌았겠는가. 요새처럼 생긴 그 주택이 완공된 때는 2005년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주변에 다른 주택들이 아직 들어서기 전이라서 은신처로 통하는 길은 지저분하고 좁은 길밖에 없었다. 황량한 벌판에 ‘요새’가 홀로 서 있는 꼴이었다.

2011년 5월 4일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CNN> 기자에게 외형도 매우 특이할 뿐 아니라, 부지면적이 주변의 다른 주택보다 약 여덟 배나 더 넓은 은신처를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주택을 은신처로 택한 것은, 은신 중인 국제테러단체 수장이 취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셋째, 은신처에서는 세 가구가 공동생활을 하였다. 빈 라덴의 심복부하라고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목한 사람은, 2010년 8월부터 자기 가족은 물론 자기 동생 가족까지 데리고 은신처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였다. 어른 7명과 어린이 9명이 공동생활을 한 것이다. 이웃 주민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은신처에 사는 가족들이 일본산 붉은 색 스즈키 7인승 승합차(minivan)를 타고 함께 외출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2010년 8월에 빈 라덴이 그 은신처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생한 정보(fresh intelligence)”를 파악하였다. 빈 라덴의 심복부하라고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목한 사람이 자기 가족은 물론 자기 동생 가족까지 데리고 은신처에 들어간 때가 바로 2010년 8월이다. <뉴욕 타임스>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위의 두 가족이 은신처에 들어간 것을 보고, 그곳에 빈 라덴이 숨어있을 “강한 가능성(strong possibility)”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때부터 미국 첩보위성은 은신처를 24시간 정밀촬영하기 시작하였고, 2011년 초부터 은신처 부근에 안가를 마련하여 감시요원을 상주시켰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추적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잠입한 1급 지명수배자가 자기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부족해서 부하 가족들까지 불러들임으로써 은신처를 노출시킨 것은, 은신 중인 국제테러단체 수장이 취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넷째, 은신처에는 당연히 전화와 인터넷이 없었다. 전화, 휴대전화, 인터넷이 도청될 위험이 있음을 간파한 빈 라덴은 그런 통신수단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은신처에서 피살당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썼다. 습격조가 은신처에서 휴대전화 여러 개를 노획하였고, 지금 미국 전문가들이 그 휴대전화 통화내력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살자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Bob Woodward)가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6일부에 기고한 기사에 따르면, 피살자들은 평소에 자기 휴대전화에서 건전지를 빼놓았다가, 통화할 필요가 생기면 승용차를 타고 90분 동안 운전하여 은신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휴대전화를 켜고 통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자기들이 감시 중인 어떤 사람이 은신처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2008년 8월 어느 날 휴대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내용을 도청하였다. 감시당하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요즈음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자, 그 친구는 “내가 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I’m back with the people I was with before)”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대답한 통화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미국 중앙정보국이 알아내 신원을 파악하였더니 그가 바로 그들이 4년 동안이나 찾고 있었던 빈 라덴의 심복부하였고, 그의 거주지를 추적하였더니 은신처가 나타났다고 한다.

휴대전화 같은 위험한 통신수단을 절대로 쓰지 않는 빈 라덴의 규율과 배치되게 은신처 거주자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은,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다섯째, 은신처에는 무장경호원이 배치되지 않았고, 비상탈출구나 대피공간도 없었다. 언제 피습 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살면서 자기 신변을 보호해줄 무장경호원을 배치하지 않고, 비상탈출구나 대피공간도 마련해두지 않았다면,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습격조가 작전을 시작하자 은신처 3층 건물에 연결된 초대소의 문 안쪽에서 누군가 총을 한 발 쏘았는데, 습격조가 그곳을 향해 집중사격하여 총을 쏜 사람을 사살하였다. 사살당한 사람이 습격조를 향해 총을 한 발만 쏜 것은, 그 총이 권총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한 <ABC News> 2011년 5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습격조는 은신처에서 AK-47 자동소총 3정과 권총 2정을 발견했는데, AK-47 한 정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빈 라덴이라고 지목한 피살자의 방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한 <아페프페(AFP)> 통신 2011년 5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습격조가 빈 라덴의 방에서 AK-47과 권총을 발견하였는데, 빈 라덴으로 지목된 피살자는 마지막 순간에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은신처에 AK-47 3정이 있었다면, 피살자들은 왜 그 총으로 저항하지 않았을까? 습격조는 다른 것들은 잔뜩 노획하면서도 왜 AK-47과 권총을 노획하지 않았을까? 습격조가 떠난 직후 사건현장에 도착한 파키스탄 경찰은 왜 그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습격조가 비무장상태에 있던 피살자들을 잔혹하게 사살한 것을 비난하는 여론이 국제사회에 확산되자, 현장에서 무기를 발견하였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허위정보를 억지로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

습격조가 습격작전을 40분 만에 끝내면서도 그 시간 대부분을 노획물을 찾아내는 데 썼던 까닭, 그리고 총격전으로 부상당한 습격조 요원이 한 명도 없는 까닭은, 은신처에 무장경호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제의 피살자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시기 외부에 공개된 빈 라덴의 사진을 보면 그는 언제나 AK-47을 곁에 두고 있었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문제의 피살자는 AK-47은커녕 호신용 권총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은신처 습격작전을 계획하면서 사살대상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완강히 저항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폭탄조끼를 터뜨려 자폭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으나, 문제의 피살자는 폭탄조끼는커녕 방탄조끼조차 몸에 걸치지 않았다.

6년 동안 빈 라덴의 무장경호원으로 일하다가 2000년 12월에 체포되어 전향한 예맨 출신의 나세르 알-바리(Nasser al-Bari)는 자신이 무장경호원으로 일할 때 빈 라덴은 자기가 적에게 생포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경우 자기를 죽이라는 지시를 경호원들에게 내렸다고 말했다. 1979년에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Jeddah)에 있는 킹 압둘 아지즈 대학교(King Abdul Aziz University)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되던 소련군과의 전투에 참가한 때로부터 32년 동안 전투로 단련된 사람이 비무장상태에서 사살당한 것은, 국제테러단체 수장이 취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여섯째, 2011년 5월 8일 몇몇 미국 텔레비전 방송들에 출연한 토머스 도닐런(Thomas E. Donil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습격조가 은신처에서 노획한 자료가 작은 대학도서관을 차릴 만큼 방대하다는 말을 중앙정보국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그처럼 방대한 자료가 모두 빈 라덴과 관련된 기밀자료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미국 중앙정보국의 1급 지명수배자가 언제 급습 당할지 모르는 은신처에 그토록 방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1년 5월 7일 미국 중앙정보국은 습격조가 은신처에서 노획하였다는, 빈 라덴의 생전 모습이 촬영된 영상자료 다섯 점을 공개하였다. 녹음된 소리는 모조리 지우고 공개한 영상자료다. 그런데 빈 라덴의 모습이 촬영된 영상자료는 누구나 아랍나라들 암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정보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일곱째, 2011년 5월 4일 <로이터(Reuters)> 통신은 습격조가 사건현장을 떠난 때로부터 1시간 뒤 파키스탄 정보국(Inter-Services Intelligence) 관리가 촬영한 현장사진들을 보도하였는데, 여러 군데 총상을 입고 사망한 시신 3구를 각각 촬영한 사진들이 있다. 피살자 3명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CNN>은 그 피살자들의 사진을 보도하면서 피살자 가운데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한 사람, 파키스탄 옷차림을 한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관리들은 습격조에 의해 사살된 피살자는 모두 5명인데, 그들은 빈 라덴과 그의 아들, 빈 라덴의 부하 두 사람, 그리고 여자 한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파키스탄 정보국 출신의 아사 무니르(Asa Munir)는 피살된 여자가 아랍인 의사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습격조가 빈 라덴과 그의 아들 시신을 무장헬기에 싣고 가서 바다에 수장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키스탄 정보국 관리들이 현장에서 발견한 시신은 4구인데, 피살자 사진에는 남자 시신 3구만 촬영되었다. 여자 시신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CNN>은 티셔츠를 입은 피살자의 얼굴이 빈 라덴과 닮았다고 지적하였다. 미국 정부관리들은 습격조가 빈 라덴의 아들을 사살하고 그 시신을 무장헬기에 싣고 가서 바다에 수장하였다고 말했는데, 수장하였다는 시신이 현장사진에 나타난 것이다. 습격조가 사살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된 빈 라덴의 아들 칼리드(Khalid)는 1989년생으로, 빈 라덴이 네 번째 아내 시함 사바르(Siham Sabar)가 낳은 네 자식들 가운데 둘째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덟째, 피살자 신원을 밝혀줄 유력한 증거는 피살자 얼굴을 생전 사진과 대조해보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습격조는 빈 라덴 얼굴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의 피살자를 사살한 뒤에 그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을 비교해보고 그 피살자가 빈 라덴이라는 95%의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왜 100% 확신하지 못했을까?

또한 피살자의 키를 확인해보는 방법도 있다. 빈 라덴은 키가 194cm나 되는 장신이므로, 문제의 피살자의 키를 재보면 그가 빈 라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은 피살자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작전현장에 줄자를 가지고 가라고 습격조에게 지시하지 않았다. 습격조 요원 한 사람이 문제의 피살자 시신 옆에 드러누워 키를 가늠했다고 하지만, 문제의 피살자 키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이처럼 아리송한 소리를 들으면,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홉째, <ABC News>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피살자 시신을 무장헬기로 잘랄라바드 공군기지에 운반한 뒤에 그곳에서 DNA 염기배열 견본(sequence sample)을 추출하여 워싱턴으로 전송하였고, DNA 염기배열 실물견본을 항공편으로 미국에 수송하였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위의 보도가 나온 당시까지만 해도, DNA 염기배열 견본을 검사하여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인지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검사결과가 나온 때는 5월 2일 아침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바마 대통령은 DNA 염기배열 검사를 통해 문제의 피살자 신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라고 서둘러 발표해버렸다. DNA 염기배열을 검사한 결과, 문제의 피살자의 염기배열과 빈 라덴 직계가족의 염기배열이 100% 일치하였다는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통해 <워싱턴 포스트> 2011년 5월 2일부에 짤막한 한 문장으로 보도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백악관의 공식발표가 아니다. 문제는, 백악관이 DNA 염기배열 검사결과에 대해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는 판인데, 의혹을 잠재울 결정적인 DNA 증거에 대해 백악관은 왜 이제껏 침묵하는 것일까?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피살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비밀에 묻힌 피살자 신원

습격조가 은신처에 도착한 시각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5월 1일 일요일 오후 4시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빈 라덴 사망에 대해 발표한 시각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같은 날 밤 12시 직전이었다. 미국 국방부 당국자는 “수장 절차가 미국 동부시간 기준 2일 새벽 1시10분께 시작됐으며, 2시께 끝났다”고 말했다. 그들은 습격조가 문제의 피살자를 사살한 때로부터 24시간도 되지 않아 그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문제의 피살자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은, 습격작전을 지휘한 파네타 중앙정보국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시신 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그처럼 서둘러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을까? 미국 언론매체들은 사망 후 24시간 안에 장례를 치르는 이슬람 전통을 따라 그렇게 급히 수장하였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은 오보다. 이슬람 전통에는 어떤 장례시간도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시신을 서둘러 수장하라고 지시한 것은 결정적인 증거를 서둘러 인멸해버린 행동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처럼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으므로, 문제의 피살자 신원을 확인할 방도는 네 가지밖에 남아있지 않다.

첫째, 현장사진들이 있다. 2011년 5월 3일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CNN> 기자에게 문제의 피살자 시신을 촬영한 “아주 생생한(very graphic)” 사진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ABC News> 2011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얼굴인식기술(facial recognition technology)을 동원하여 문제의 피살자를 찍은 얼굴사진과 생전의 빈 라덴를 찍은 얼굴사진을 비교하였더니 90-95% 일치하였다고 한다. 왜 100% 일치한다고 말하지 못하였을까?

무엇이 켕기는지는 몰라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문제의 피살자를 찍은 얼굴사진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시신을 찍은 사진이 참혹하게 보여서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2003년 7월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의 두 아들 시신도 미국군이 사살하여 참혹한 꼴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시신은 장의사가 손질한 뒤에 사진을 찍어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문제의 피살자 시신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으니 그의 신원은 비밀에 묻혔다.

둘째, 현장목격자들이 있다. 은신처에서 함께 생활해왔으며, 사살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부녀자 3명이 문제의 피살자 신원을 밝혀줄 수 있다. 그런데 현장목격자들은 파키스탄 정보국이 어디론가 연행하였다. 파키스탄 정보국에 따르면, 은신처에서 습격조의 총격으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여자가 연행되어 라왈핀디(Rawalpindi) 군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여자는 누구일까? 미국 언론매체들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군인병원에서 치료 중인 여자가 빈 라덴의 다섯 번째 아내인 아말 아흐메드 알사다(Amal Ahmed al-Sadah)라고 보도하였다. 1982년생인 예맨 출신 알사다는 2000년에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결혼하였고, 슬하에 자녀 3명을 두었다.

그런데 습격작전 직후 현장에 들이닥친 파키스탄 경찰이 은신처에서 여권 한 개를 발견하였다. 그 여권에 적힌 이름은 아말 아흐메드 압둘파타(Amal Ahmed Abdulfattah)이고, 여권에 적힌 출생년도는 1982년 3월 27일이다. 이름은 같은 데 성이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가족이 사는 거처에 빈 라덴이 함께 살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위에서 논한 것을 생각하면, 빈 라덴의 아내와 자녀들만 그 은신처에서 빈 라덴 심복부하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서, 빈 라덴과 그 가족, 빈 라덴 심복부하 두 사람의 가족들이 은신처에서 공동생활을 하였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판단은 오판이었으며, 빈 라덴은 은신처에 살지 않았고, 빈 라덴의 아내와 그 자녀들이 빈 라덴의 심복부하 3명과 여자의사 한 명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은신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제의 피살자는 빈 라덴 가족을 보호해주던 그의 심복부하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정보국은 현장에서 연행된 세 여자들에 관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하였다. 파키스탄 정보국의 그런 정보차단으로 안달이 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사건 이튿날인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에 특사를 급파하여 그 세 여자의 신원을 알아내려고 하였으나, 파키스탄 정보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그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벌어졌다. 앞으로도 파키스탄 정보국은 그 세 여자를 심문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므로, 문제의 피살자 신원은 비밀에 묻히고 말았다.

셋째, 미국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과 알사다 사이에서 태어난 올해 12살 난 막내딸이 사건현장에서 파키스탄 정보국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 9.11 사태 직후, 빈 라덴은 파키스탄 언론인 하미드 미르(Hamid Mir)를 만난 자리에서 곧 태어날 자기 딸 이름을 사피야(Safiyah)로 지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피야는 아직 9살밖에 되지 않았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여자아이와 빈 라덴의 딸은 3살 차이를 보인다.

파키스탄 정보국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사건현장에 도착한 파키스탄 경찰에게 어떤 여자아이가 “나는 사우디인데, 오사마 빈 라덴이 우리 아버지다(I am Saudi...Osama bin Laden is my father)”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여자아이가 문제의 피살자를 자기 아버지라고 지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빈 라덴의 딸이라고 신원을 밝혔다는 점이다. 9살짜리 아이의 증언능력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파키스탄 정보국이 그 아이를 심문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므로, 문제의 피살자 신원은 비밀에 묻히고 말았다.

넷째, 빈 라덴의 사망이 알 카에다의 공식성명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2011년 5월 6일 <아에프페> 통신은 “지하디스트 인터넷 포럼들(jihadist Internet forums)”에 게시된 알 카에다의 성명을 찾아낸 싸이트 인텔리전스 그룹(SITE Intelligence Group)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알 카에다가 빈 라덴이 사망하였음을 인정하고 미국에 대한 보복의사를 밝힌 성명을 발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발표자를 명시하지 않은 그 성명은 5월 3일자로 작성되어 5월 6일에 이슬람 무장단체 웹싸이트들에 게시된 것이다. <합동통신(AP)>은 “그 성명의 신빙성을 독자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나, 알 카에다가 흔히 자기들의 메쎄지를 게시하는 웹싸이트들에 게시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성명 발표자들이 빈 라덴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고 유족에게 인도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봐서, 이번 사살사건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어떤 빈 라덴 지지자가 개인의견을 발표한 것이 분명하다. 알 카에다 지지자들이 ‘자유게시판’ 같은 곳에 올려놓은 글을 알 카에다의 공식성명인 것처럼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번 습격작전에서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고 가정해도, 알 카에다는 그의 피살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을 것이다. 2011년 5월 3일 탈레반 대변인 자뷸라 모자헤드(Zabiullah Mojahed)는 “오바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고 주장하였으나 그는 자기 주장을 입증할 만한 어떤 확실한 증거도 갖지 못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최측근 소식통들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것은 문제의 피살자 신원이 비밀에 묻히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부토의 발언에 주목하는 까닭

2007년 11월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파키스탄 전직 총리는 자기를 암살하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시도가 실패한 직후 <알 저지라(Al Zazeera)>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오마르 쉐이크(Omar Sheikh)가 빈 라덴을 살해하였음을 언급한 바 있다. 부토 전직 총리 자신도 그 텔레비전 언론대담 직후인 2007년 12월 27일 선거유세 도중 결국 암살당했다.

오마르 쉐이크는 누구일까? <워싱턴 포스트> 2002년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오마르 쉐이크는 파키스탄 정보국 비밀요원이다. 또한 9.11 사태에 대한 방대한 저작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인 저술가 폴 톰슨(Paul Thompson)이 2002년 9월 4일에 발표한 글 ‘9.11 사태의 의혹: 여러 얼굴을 가진 사이드 쉐이크’에 따르면, 오마르 쉐이크는 199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 카에다 훈련기지를 운영하면서 빈 라덴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이중간첩인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종합하면, 빈 라덴이 이중간첩의 손에 죽었고, 그 사실을 부토 전직 총리가 언론에서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토 전직 총리의 그런 발언을 사실로 인정하는 경우, 위에서 제기된 의혹들이 풀린다. 아래와 같은 추리가 가능하다. 빈 라덴이 오래 전에 이중간첩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파키스탄 정보국은 빈 라덴의 아내와 자녀들이 지난 6년 동안 은신처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정보를 오판하여 은신처를 급습하였는데, 습격조가 사살한 문제의 피살자는 빈 라덴이 아니라 빈 라덴의 심복부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신원이 판명되었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습격조가 빈 라덴을 사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빈 라덴이 오래 전에 이중간첩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빈 라덴이 죽었다고 발표했어도, 빈 라덴이 다시 영상자료에 나타나 텔레비전 방송에 나올 가능성은 없다. 백악관의 비밀은 유지되는 것이다.

문제의 피살자가 빈 라덴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파키스탄 정보국은 문제의 피살자 신원을 영원히 비밀에 묻어버렸고, 빈 라덴이 죽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를 믿어버린 미국 국민들의 오바마 지지율은 최대 11% 포인트까지 수직상승하였다. (2011년 5월 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