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가 실패했어도 북미 양자회담 열린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초대소로 돌아간 방북단 차량

2011년 4월 28일 오후 2시 10분 전용기 한 대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 착륙하였다. 전용기에는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직 미국 대통령을 단장으로 한 원로회의(Elders) 방북단 성원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4월 26일부터 2박3일 방북일정을 마치고 서해항로를 거쳐 남측에 도착하였다.

남북 연속방문 일정에 앞서, 카터 방북단이 평양에 도착하기 닷새 전인 4월 21일 <경향신문>에 눈길을 끄는 관련기사 한 편이 실렸다. 대북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원로회의 실무진이 2011년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평양에 가서 카터 방북단의 사전준비를 마쳤는데, 카터 전직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가지고 방북할 수 있을 것이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예견하였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카터 전직 대통령은 방북 전에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과 접촉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받으려고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4월 8일 미국 조지아대학교 박한식 석좌교수는 방북 직후 서울에 들러 남측의 ‘북한 전문가’들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카터 전직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승인 없이는 방북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표명하였다고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가지고 방북할 것으로 예견한 것을 보면, 카터 전직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받으려고 애쓴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구두친서를 받아 가지고 방북하려는 카터 전직 대통령의 요청을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2011년 3월 24일 마크 토너 (Mark C. Toner)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 출입기자단을 위한 설명회에서 카터 방북단은 개인자격으로 방북하는 것이며 백악관의 공식적인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원래 카터 전직 대통령은 북측에 방북의사를 전할 때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받아 가지고 가겠다는 의사도 함께 전했고, 그에 따라 북측은 카터 방북단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애초에 기대한 것과 달리,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구두친서를 받아 가지고 방북하려는 카터 전직 대통령의 요청을 외면한 탓에 북미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노력은 좌절되고 말았다. 카터 전직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친서를 받지 못했고 따라서 개인자격으로 평양에 갔으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를 접견할 리 없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상적인 외교는 상호성의 원칙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상호성의 원칙이 깨진 비정상적인 외교를 굴욕외교라 한다. 북측의 외교경험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은 대외관계에서 자주와 존엄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고,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에 대해서는 자주와 존엄을 더욱 강하게 지켜왔다. 카터 전직 대통령이 노력하였으나 실패한 북미 친서외교 추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구두친서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당연히 구두친서를 보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교관례를 뛰어넘어 카터 전직 대통령에게 자신의 구두친서를 전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카터 방북단이 평양을 떠나던 날 아침 그들이 짐을 싸들고 초대소를 떠나 공항으로 가는 도중 리용호 외무성 부상으로부터 급히 초대소로 돌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 턱이 없는 카터 방북단이 초대소로 돌아갔더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그들에게 읽어주었다.

카터 방북단이 평양을 떠나기 전날 저녁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였는데, 왜 공항으로 향하던 방북단 차량을 초대소로 돌아오게 하여 구두친서를 전하였을까? 마치 영화장면을 보는 듯한 극적인 반전은 당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4월 28일 아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카터 전직 대통령과 원로회의 방북단 성원들이 귀국길에 올랐다는 보고를 비서실로부터 받았다. 그 보고를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인자격으로 방북할 수밖에 없었기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카터 전직 대통령을 생각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하여 북미 친서외교를 재개함으로써 북미 양자회담이 하루빨리 재개되도록 86세 노구를 이끌고 애써온 그의 진정 어린 노력을 평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카터 전직 대통령에게 구두친서를 전할 필요가 없었으나, 외교관례를 뛰어넘은 파격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구두친서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카터 전직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친서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상호성의 원칙을 중히 여기는 북측 시각으로 보면, 친서외교를 외면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두친서를 보내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친서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제안이 담겨지지 않은 것이다. 그 구두친서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과 대화를 중단한 것으로 하여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원칙적인 의사표명이 담겨있었다. 구두친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이 미국, 남측, 6자회담 다른 당사국과 “언제든지 모든 주제를 놓고 사전조건 없이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오바마는 왜 카터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카터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여긴 청와대와 미국 및 남측의 수구언론매체들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지 못했고, 북측으로부터 특별한 제안도 받아오지 못한 것을 두고 잘된 일이라고 여기며 그의 방북을 혐오하였다.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노력이 오바마 대통령이 외면한 탓에 실패하였지만, 수구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교관례를 뛰어넘은 파격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함으로써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노력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는 것,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노력을 외면함으로써 북미 양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여전히 가시권 밖으로 밀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요청을 왜 들어주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외교를 실행했던 과거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방북한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자신의 친서를 보냈다. 그 친서에는 6자회담이 재개되면 한반도 평화회담을 6자회담과 병행하여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었다. 당시 친서외교는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마바 대통령의 결정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1년 5개월 전만 해도, 친서외교를 통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의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했던 그가 왜 이번에는 카터 전직 대통령이 구두친서를 전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도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친서외교를 외면하였을까?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친서외교를 재개하였다면, 그는 2009년 12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자신의 친서에서 약속한 내용을 이행할 제안을 이번 구두친서에 담아야 하였다. 다시 말하면, 6자회담 재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제안을 구두친서에 담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9.19 공동성명에 따른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북측이 태도변화를 보여야 한다는 헛소리만 계속 꺼내놓고 있다.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니, 그들이 그처럼 바라는 6자회담도 재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꼴을 자승자박이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자승자박 상태에 있으니 친서외교를 위한 카터 전직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9.19 공동성명에 따른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악관이 취한 두 가지 행동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문제는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려면 북미 양자회담을 반드시 재개하여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이 병행될 것임을 말해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북미 양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와 6자회담 재개문제가 먼저 합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이 중재안으로 내놓고 어떻게 해서든지 성사시키려고 애쓰는 3단계 회담방안도 그러한 회담 추진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미 양자회담 재개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전략적 인내’나 붙들고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2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회담 병행 추진에 대한 의사를 표명한 친서를 전하였는데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략적 인내’를 붙들고 허송세월하는 사이에 미국 국무부는 아무런 실효도 없는 대북제재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고, 미국 국방부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위험천만한 북침전쟁연습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전략적 인내’를 붙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북미 양자회담 재개를 외면하는 것일까? 그 까닭을 설명하면 이렇다.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와 6자회담 재개문제를 결정할 북미 양자회담은 이전에 있었던 부상-차관보급 회담에서 상-장관급 회담으로 격을 높여야 한다.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해온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고위급 회담에 응하려면, 이제까지 자기들이 붙들고 있었던 ‘전략적 인내’를 공식 포기하여야 할 뿐 아니라 북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할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두 가지 선결행동을 취해야 한다.

첫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에서 ‘전략적 인내’를 주장해온 관리들을 새로운 인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전담하는 관리들을 교체하였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의 대북정책 추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인데, 바로 그 직책에 대한 인사교체가 최근에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코리아 및 일본 담당 보좌관도 바꾸었다. 또한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와 수석부차관보도 바꾸었고, 국무부 6자회담 특사가 바뀔 것이라는 교체설도 나돌고 있다. 이처럼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관리들을 교체한 것이 ‘전략적 인내’를 포기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집권 말기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물갈이’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정책 담당관리들을 교체한 것은 일단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할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식량이 부족한 북측을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지원하는 국제자선사업이 아니라, 북미 양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외교활동이다. 북측은 2008년 이후 식량부족을 해결하였고, 따라서 미국에게 식량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2009년 3월 북측이 기존 식량지원사업을 중단시켰는데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미 양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에 따라 대북 식량지원으로 위장한 외교활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이 북측에 식량을 보내는 것은, 북측이 식량난에 처해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무슨 인도주의가 갑자기 발동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 북미 양자회담 재개의사를 실제행동으로 북측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2011년 4월 29일 세계식량계획(WFP)이 대북 식량지원 재개를 발표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2012년 5월까지 1년 동안 식량 35만t을 북측에 보내겠다고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세계식량계획이 추진해온 대북 식량지원보다 규모가 무려 네 배나 급증한 2억 달러 규모의 식량지원이다. 2009년에 세계식량계획 대북사업에 대한 미국의 재정지원이 중단된 탓에 대북 파견요원 규모를 줄이고 북측 각지의 현장사무소도 폐쇄한 세계식량계획에게 누가 갑자기 2억 달러를 제공하였을까? 세계식량계획은 자금출처에 대해 입을 다물었지만, 그 거액의 자금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으로 미국 정부예산이 세계식량계획의 대북사업에 조용히 지출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익명을 요구한 미국 연방의회 소식통이 2011년 4월 1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해준 정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 재개여부와 관련해 논의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4월 말에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의 현실은, 그가 전해준 정보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2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해 놓고서도, 미국 국무부 정책계획국장은 4월 29일 국무부 출입기자단을 위한 설명회에서 대북 식량지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실행에 옮길 계획은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북측에게 먼저 회담을 요청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백악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서, 그런 어설픈 촌극을 벌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북미 양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치이므로, 식량지원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즉각 회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고 얼마동안 뜸을 들일 것이다.

백악관 상황실의 긴급보고와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2011년 2월 9일 백악관 지하에 있는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백악관에서 대북정보에 가장 정통하다는 실무관리 두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보고를 한 것이다.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만 들어갈 수 있는 백악관 상황실에 하급관리가 들어간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것은 직급이 낮은 실무관리가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보고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대면보고를 한 실무관리는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NCPC) 소장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Trani)와 국가정보국 북코리아 담당 부조정관 시드니 사일러(Sydney A. Seiler)다.

원래 미국 대통령에게 국가안보문제와 관련해 대면보고를 하는 임무는 토머스 도닐런(Thomas E. Donilon) 국가안보보좌관이 수행한다. 국가안보보좌관 밑에 국가안보부보좌관이 있고, 그 밑에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있고, 그 밑에 북코리아 담당 조정관이 있고, 그 밑에 북코리아 담당 부조정관이 있는데, 무려 네 단계 직급을 뛰어넘어 북코리아 담당 부조정관이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였으니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백악관 상황실에 들어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한 두 사람은 북측 핵문제에 관한 최고급 정보를 다루는 정보부문 관리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북측 핵문제에 관한 정보를 보고하였을 것이고, 매우 특별하게 대면보고까지 한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한 핵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다급한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2월 9일에 그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급히 보고해야 했던 북측 핵문제에 관한 긴급정보는 무엇이었을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11년 3월 8일 한반도 상공을 지나던 미국 상업위성이 놀라운 광경을 찍은 위성사진을 지상수신소에 보냈다. 영변 핵시설단지를 공중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에는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조물 지름은 약 21m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위성사진을 뒤늦게 입수한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4월 27일 원통형 구조물의 정체에 대해 언급하면서, 실험용 경수로가 들어갈 격납구조물로 보기에는 너무 크지만, 경수로 격납구조물의 일종일 가능성이 있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구조물은 명백하게도 경수로가 들어갈 격납구조물이다. 경수로 공사현장에 경소로가 들어갈 격납구조물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다른 무엇을 건설하였다는 말인가. 과학국제안보연구소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 소장은 2010년 10월 20일 <자유아시아방송> 기자에게 영변 핵시설단지를 공중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냉각탑이 건설되고 있다는 추측발언을 꺼내놓았는데, 그 이후 건설공사가 더 진척된 2011년 3월 8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위성사진에 건축물 형체가 나타난 것을 보니 냉각탑이 아니라 경수로 격납구조물이었던 것이다.

2011년 4월 7일 <KBS>는, 2011년 3월 말에 촬영한 위성사진에 나타난 영변 핵시설단지의 경수로 공사가 외형상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북측은 2010년 7월에 경수로 건설공사를 시작했고, 2012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시공한다고 밝혔으니, 2011년 4월 말 현재 경수로 격납구조물을 완공한 것은 경수로 건설공사가 시공일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격납구조물에 들어갈 경수로는 영변 핵시설단지에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밀공장에서 제작하는 것이고, 제작을 마친 뒤에 영변 핵시설단지로 운반하여 설치될 것이다.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밀공장에서 제작되고 있는 경수로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는지 알 길 없으나, 북측이 내년까지 경수로를 완공하겠다고 밝힌 것을 생각하면 경수로 제작공정이 40% 완공계선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정황은 북측이 경수로 건설공사를 초고속으로 다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측이 강성대국 대문을 열어놓겠다고 선포한 2012년 하반기 어느 날, 영변 핵시설단지에서 성대한 경수로 준공식이 진행된다면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년 11월에 재선을 노리고 출마한 오바마 대통령은 북측 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미국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공화당의 비난공세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선에 도전하는 자신의 정치일정 때문에, 리비아 공습을 자행하고서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 다른 전쟁수렁에 빠져 재선가도에 먹구름이 끼일 것을 우려한 나머지 슬그머니 뒤로 몸을 뺀 오바마 대통령인데, 그처럼 대선준비에 들어간 그에게 북측 경수로 완공이 안겨줄 충격은 치명적일 것이다.

북측의 경수로 완공일정과 2012년 미국 대선일정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측 국방위원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목덜미를 힘껏 틀어쥐고 있음을 뜻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이 재집권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북미 양자회담을 재개하라는, 보이지 않는 강한 압박공세가 북측으로부터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18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북측과 미국의 대결경험에 나타난 것처럼, 북측은 미국에게 언제나 회담제의와 압박공세를 동시에 꺼내드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월 25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미국 국방장관에게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게이츠 국방장관은 북미 양자회담에 앞서 남북 정부당국 회담이 선행되어야 하며, 한반도 군사문제는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이 아니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북측 제안을 거절하였다. 중요한 것은, 북측이 고위급 군사회담을 미국에게 제의한 것과 영변 핵시설단지에 경수로 격납구조물을 완공한 것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북측이 미국을 향해 회담제의와 압박공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4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이것은 그가 미국 국민들에게 자기의 치적을 과시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11월 대선일정을 생각하면, 적어도 2012년 6-7월쯤에는 자기의 치적을 미국 국민들에게 과시해야 선거운동 막바지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과시할 만한 치적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출발은 화려하였지만 그의 집권기간 동안 과시할 만한 치적은 하나도 없다. 치적은커녕 실정을 비난받아야 할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오죽 한심했으면, 그가 재선도전 의사를 표명한 직후 미국 통신사 <맥클랫치 뉴스페이퍼즈(McClatchy Newspapers)>가 2011년 4월 8일 부에 그의 실정을 폭로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겠는가. 오바마 대통령이 그처럼 국민적 지지를 상당히 잃어버렸지만, 만일 그의 임기 마지막 기간에 한반도 평화회담이 성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미국 국민들에게 과시할 가장 큰 외교치적이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북미 양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을 받아야 한다. 때마침 리언 파네타(Leon E. Panetta) 중앙정보국장이 국방장관에 새로 지명되어 2011년 7월 1일부터 국방장관직을 수행하게 되고, 마이크 멀린(Michael G. Mullen) 합참의장도 9월에 교체된다고 하니, 군부 수장을 전부 교체하는 것을 계기로 올해 하반기에는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2011년 5월 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