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팍뚜라 해체와 그 이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 책에서 ‘비밀’이 풀렸다

통일학 연구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 얼마 전 평양에서 출판되었다. 이제까지 북측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정보들이 그 책에 담겨있다. 우선 두 가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책의 집필방식과 출판형식이 파격적이다. 지금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영도(남측에서 쓰이는 용어는 국정운영)를 수록한 북측의 모든 문헌들에는 그가 당과 국가의 고위간부들에게 한 공식 발언만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 나온 책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나눈 담화가 대화체로 수록되었다. 대화체로 쓰인 담화에서는 친근감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북측의 혁명영도 문헌발간사에서 처음 있는, 집필방식의 참신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집필방식만이 아니라 출판형식 또한 파격적이다. 책제목은 ‘장군님과 CNC’다. 기교를 부려 독자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표제에 익숙한 남측 독자들은 ‘장군님과 CNC’라는 책제목에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왜 이 책이 그처럼 소박한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는지도 이 책을 읽노라면 자연히 알게 된다.

CNC란 기계공학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인 컴퓨터 누머리컬 컨트롤(computer numerical control)의 머릿글자다. CNC를 남측에서는 컴퓨터수치제어라고 번역하였고, 북측에서는 콤퓨터숫자조종이라고 번역하였다. CNC는 컴퓨터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각종 제품을 고속으로, 정밀하게, 자동으로 가공하는 첨단 기계공학기술의 집약체다.

책제목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책은 지금 북측에서 진행 중인 CNC화 기술혁명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북측에서 출판된 책들 가운데 제목에 영어 머릿글자가 들어간 책은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과학기술도서를 제외한 모든 공간문헌들에서 우리 글자만 써온 북측이 왜 영문자 CNC를 쓰게 되었는지도 이 책에서 알려준다.

책의 저자는 송미란 로동신문사 논설원이다. 50대 초반인 저자는 감동적이고 수려한 필치로 <로동신문> 정론을 자주 집필해온 북측의 대표적인 여성문필가다. 도서 ‘장군님과 CNC’를 집필한 공로를 높이 평가한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011년 3월 10일 그에게 문필가가 받는 최고 영예인 김일성상을 수여하였다. 2011년 3월 3일부터 3월 26일까지 로동신문사 편집국은 책을 스무 차례에 걸쳐 <로동신문>에 연재하였다. <로동신문>이 책 한 권을 통째로 연재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둘째, 북측의 CNC화 기술혁명에 대해 처음으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글은 2009년 8월 11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였다. 그 글도 송미란 논설원이 썼다. 2010년 1월 1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자력갱생은 어떻게 첨단을 돌파했을까?’는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에서 얻은 정보에 기초하여 북측의 CNC화 기술혁명에 대해 논한 것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CNC화 기술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나의 글은 집필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북측 외부에서는 CNC화 기술혁명의 ‘비밀’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송미란 논설원이 쓴 책 ‘장군님과 CNC’가 그 ‘비밀’을 풀어주었다. 책은 북측에서 추진해온 CNC화 기술혁명,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5년 동안 정력적으로 지도해온 CNC화 기술혁명이 어떤 사연 많은 노정을 거쳐왔는지 생동하게 증언한다. CNC화 기술혁명은 오랫동안 숨겨진 자태를 마침내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민심을 사로잡은 소통정치

책에서 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은, 북측 언론이 보도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북측 언론보도는 언제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는 말로 시작하고, 북측에서 발간되는 모든 문헌도 그렇다. 그와 달리, 책에 수록된 대화체 담화에는 인간미 풍기는 정서가 그득하다. 미국의 제재와 봉쇄에 맞서 경제강국을 건설해가는 매우 어렵고 복잡다단한 경로에서, 뜻과 정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겪어야 했던 고심, 그가 쏟아 부었던 열정, 그가 뭇사람들과 함께 나눈 감동과 환희, 그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결심의 순간을 진솔한 필치로 써내려간 문장이 독자의 눈길을 붙든다.

책에서 만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 독자들이 상상해온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가 언제나 입는 수수한 잠바옷처럼 소탈하고 서민적인 풍모다. 물론 그 책이 나오기 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남측 인사들이 그의 풍모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이를테면, 2000년 8월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평양을 방문 중이던 남측 언론사 사장단을 초청하여 낮 12시부터 3시간 20분 동안 오찬을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장명수 당시 한국일보사 사장은 <한국일보> 2011년 4월 1일부에 실린 대담기사에 체험담을 꺼내놓았다.

“(북측에서) 인터뷰는 안 된다고 했지만 식사 때 대화가 이루어질 것을 대비, 기자 출신의 신문사 사장들은 수십 장의 질문지를 갖고 갔다. 식사 때 헤드테이블에서 사장들이 쉬지 않고 질문을 했는데 김 위원장이 아주 노련하게 대답을 잘 받아넘기더라. 사적인 얘기, 국제정세 등을 가리지 않고 질문이 나오는 데도 잘 받아넘기고 나름대로 유머러스했다. 그래서 돌아와 ‘김 위원장이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한 특강에서 얘기했었는데, 보수 쪽에서 친북좌파라고 욕을 하더라. 기자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책은 그런 단편적 체험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측 기자들의 격의없는 담화가 대화체로 서술되었다. 그 담화를 이 글의 집필형식에 맞춰 재구성하면 이렇다.

기자들 - “장군님, 새 소식이 예견될 때마다 우리 기자들에게 먼저 알려주시지 못합니까? 솔직히 말해서 남보다 먼저 알고 싶습니다. 장군님, 인공지구위성을 쏘면 정론을 쓰려고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국방위원장 - “(유쾌한 표현으로, 그러면서도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소곤거리는 동작으로-원문 표현) 나는 조선로동당원이란 말이요. 당원이 조직의 비밀을 루설하면 안 되지 않소? 그러나 한 가지만은 말해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초저변이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초대변이요!?”
기자들 - “초대변말입니까?...”

책에 실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붙드는 것은, 소탈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유머(humor)다. 이를테면, 그는 오리목장을 현지지도하는 중에 목장지배인으로부터 알깨우기공정을 CNC화하여 온열처리한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오리<한증칸>이 어디요? 오리가 <한증>하는 것은 처음 보오. 오리가 <한증>을 다 하다니...허허허”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CNC기술개발에 공로가 있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자동화공학부 자동화체계연구실 실장을 2010년 6월 대동강과수종합농장 과일말린편공장에서 만나고, 얼마 후 자강도의 어느 공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손으로 가리키며 “동무는 현대판 <홍길동>이요! 김책공대 <홍길동>들이 수고합니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꽃이 피었다.

또한 어느 공장일군이 자금을 적게 들이고도 큰 성과를 거두는 CNC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쾌하게 웃으면서-원문 표현) 재미들었지 뭐”라고 말해 사람들이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또한 어느 공장일군이 중학교(남측에서는 고등학교에 해당)를 갓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온 여성노동자들에게 컴퓨터 기술을 가르쳐 이제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면서, “(그 여성노동자들이) 저희들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그 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디 CNC를 압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옛날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져서 안 되지 뭐. 허허...”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판이 펼쳐졌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유한 정치방식은 현지지도(on-spot guidance)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국방위원장 집무실이 아니다. 그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수한 잠바옷 차림으로 일년 내내 방방곡곡을 돌아보며 각지의 현장을 찾아간다. 북측 언론에 보도된 그의 정치현장을 보면, 공장, 연합기업소, 협동농장, 목장, 협동조합 같은 생산현장, 건축공사가 벌어진 발전소, 아파트단지, 공장, 항구, 간석지 같은 건설현장, 대학의 강의실, 도서관, 체육관 같은 교육현장, 백화점, 국영상점, 대중식당 같은 사회봉사현장, 도시 아파트나 농촌 문화주택 같은 인민생활현장, 전문예술인은 물론 각계층 근로자, 청년학생, 병사들이 출연하는 각종 예술공연현장, 지식인들이 일하는 과학연구현장,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군인들이 지켜선 국방현장 등 나라의 모든 부문에 걸쳐있다. 

북측 외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대해 아는 것은 그의 색안경(sunglass)과 잠바옷이 주는 강렬한 인상 뿐이지만, 책은 현지지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책에서 알려주는 그의 현지지도는 상명하복이 아니라 상호소통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각계각층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그의 특유한 현지지도 방식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각지의 현장을 찾아가 뭇사람들과 소통하고 민심을 읽는다. 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종다양한 질문으로 소통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그는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다.

“잘 있었소? 오늘은 무엇을 보여주겠소?”
“자체로 만든 거요?”
“써버는 몇 GB짜리요?”
“프로그람을 자체로 짜오?”
“프로그람관리는 어떻게 하오?”
“공장에 제품검사프로그람이 있소?”
“프로그람을 여기서 수정한다? 수정하다 잘못하면 어쩌는가. 수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기술과에서 검토하고 해야 하지 않소?”
“기대의 모든 정보들은 물론 운전특성자료들도 알아볼 수 있소? 례하면 기대공의 무책임성도 발견할 수 있는가 말이요.”
“소재공급을 어떻게 하오?”
“제품이 어떻게 빠집니까?”
“제품을 어떻게 듭니까?”
“공구문제를 풀자면 어떻게 해야 되겠소?”
“지금 프레스가 가동하오?”
“기름회수체계가 어떻게 되여있소?”
“현장감시조건은 좋은데 대면부는 어떻게 구성되여있소?”
“이 기계가 하루 몇 시간 련속 일할 수 있습니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불통은 민심이반을 낳고, 소통은 민심매혹을 낳는다. 책은 북측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통정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북측 노동자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너무도 뵙고 싶어” 자기들이 서 있을 필요가 없는 CNC기대 앞에 우정 서있기도 하고, 공장일군들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너무도 뵙고 싶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기대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모습 등이 책에 담겨있다.

시제품 두 대에서 출발하여 ‘어미기계’를 만들어내다

1998년 8월 31일 북측이 첫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지구궤도로 쏘아올려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광명성 1호’를 탑재하고 지구궤도로 솟구쳐 날아간 추진체가 3단 추진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광명성 1호’와 그것을 탑재한 3단 추진체는 고성능 CNC공작기계가 있어야 제작할 수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측에 고성능 CNC공작기계가 없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비밀을 모두 들여다본다고 큰 소리 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까맣게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을 알지 못했다. 아니 그들의 졸렬한 안목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이 현실세계로 옮겨지기 시작한 때는, ‘광명성 1호’가 발사되기 6년 전인 1992년 7월 15일이었다. 그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들과 기술자들로 CNC기술개발집단을 꾸리도록 하였다. 기술개발집단에 망라된 두뇌진은 이미 1980년대에 소재운반로봇을 만들어냈던 우수한 기술인재들이었다. 로봇개발에 성공한 그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수준에 있는 CNC공작기계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게 되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들의 그런 착상을 높이 평가하여 CNC기술개발집단을 꾸리도록 한 것이다.

CNC기술개발집단은 3년 동안 “간고한 투쟁”을 벌여 1995년 초에 마침내 4축 CNC줄방전가공반 시제품 두 대를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북측이 1994년 7월 8일 대국상을 당한 슬픔에 잠겨있던 때라서 그 성공사실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시제품 두 대를 공장 구내에 놓아두었다. 그 시제품이 장차 CNC화 기술혁명을 불러일으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 당시 아무도 없었다.

1995년 4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공장 현관홀에 들어서면서 한 쪽에 놓여있는 4축 CNC줄방전가공반 시제품을 보자마자 대번에 알아보고, “기쁨과 놀라움이 한데 섞인” 음성으로 “이것이 CNC가 아닌가? 이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누구들이요?”하고 물었다. 그는 “조선사람들의 머리로 만들어낸 CNC기계가 너무도 귀중하여 쓸어보고 또 쓸어보면서 시종 미소를 거두지 못하시였다”고 한다. 기술자들이 즉석에서 가동한 시제품이 놀라운 성능을 발휘하는 것을 바라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쁨에 넘친 박수를 세 차례나 보냈다. 새 기계가 나온 것을 축하하여 환희의 박수를 보냈고, 새 기계를 만들어낸 개발자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고, “우리를 어째보려는 미국놈들을 기술로써 제압하겠”다고 결의하는 개발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 것이다.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CNC기술을 개발한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를 련하기계관리국 책임일군으로 임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조업 전반을 CNC기술로 개조하는, 일찍이 역사가 알지 못하는 거창한 CNC화 기술혁명을 련하기계관리국을 출발점으로 삼고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0년 9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은 련하기계관리국이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9축 선삭가공중심반 제작에 성공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9축 선삭가공중심반이란 2개의 선삭가공주축과 1개의 다기능 후라이스가공주축을 포함하여 모두 9개의 조종축을 가진 고성능 CNC공작기계”다. “중량이 40여t이나 되는 이 설비는 그 어떤 형태의 제품도 높은 정밀도로 가공할 수 있는 것으로 하여 자동차공업, 선박공업, 우주 및 항공공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들에서 제기되는 첨단급 제품생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미기계>”다.

련하기계관리국은 독자적인 CNC기술을 개발하여 시제품 두 대를 제작하였던 때로부터 15년만에 세계에 자랑할만한 최첨단 ‘어미기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15년 역사의 갈피마다 남긴 숱한 사연들

4축 CNC줄방전가공반 시제품을 보고 세 차례나 박수를 보내며 CNC기술개발집단을 격려했던 때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2009년 5월 어느 날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장일군들 앞에서 14년 전의 일을 회고하였다.

“나는 <련하>와 첫 상면하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현관홀에 <련하기계>라고 떡 붙인 것이 서있더란 말입니다. 나는 그 때 생각했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훌륭한 CNC기계를 만들어냈을가 하구 말입니다...나는 그 때에 <련하>제품을 처음 보았소.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낸 줄방전가공반을 본 다음부터 나는 결심하였습니다. CNC를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이렇게 힘을 내여가지고 CNC, CNC 하고 가는 곳마다에서 불을 일군 것입니다.” 이 짤막한 회고담에는 난관과 시련을 헤치며 CNC화 기술혁명을 15년 동안 이끌어온 숱한 사연들이 담겨있다.

첫째, 회고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CNC기술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해왔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제품을 보고 대번에 그것이 CNC공작기계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그가 CNC기술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였음을 말해준다. 만일 CNC기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그에게 없었다면, CNC화 기술혁명을 이끌어갈 수 없었을 뿐아니라 그것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련하기계관리국 기술자들이 CNC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 집필한 각종 기술개발자료들을 수시로 받아보고 꼼꼼히 읽으면서 CNC화 기술혁명을 이끌었다.

책은 첨단기술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탐구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만페지 책읽기 운동으로 교정을 들끓게 하시던 10대, 20대 청춘시절보다 더 방대한 폭으로, 더 깊이있게 파고들어가시면서 그이께서는 학습에 열중하시였다. 침략자들이 무서워하는 조선의 최첨단 돌파전의 승리에는 바로 이 위대한 노력이 놓여있었다.”

책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상을 전해준다. 2010년 4월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 2호 교사를 방문하여 과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들, 연구사들과 과학기술문제를 놓고 토론학습을 하였다. 대학교수들과 연구사들이 각기 자기 전공분야의 연구성과를 요약한 커다란 도해판을 벽에 붙여놓고 설명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고 보충도 하면서 토론학습을 진행한 것이다. 도해판은 12개나 되었다. 그 날의 토론학습에 오른 연구과제는, 새로운 소금원료자원에 대한 연구, 폐기물 자원화와 재활용에 대한 연구, 액화가스에 의한 각종 화학재료 생산에 대한 연구, 생태고리형성에 의한 농업생산증대에 대한 연구, 물자원 장기변동 예측과 물관리 대책에 관한 연구 등 실로 다종다양하였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적인 토론학습이 오래 계속되어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긴 시간 토론학습을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교수들과 연구사들에게 결론을 주었다. “12개 판에서 이 4개 판들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들은 당장 도입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 번 해보시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믿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대학교수들과 연구사들이 그에게 와락 달려갔다. 그들은 그를 에워싸고 “장군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오래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헤어졌던 한 식구가 다시 만난 듯, 뜨거운 상봉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들의 양팔을 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곳을 떠날 때,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둘째, 위에 인용한 회고담에서 말해주는 것은, CNC화 기술혁명을 시작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겪은 쓰라린 고심과 그가 내린 비장한 결심이다. CNC화 기술혁명은 시제품 두 대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제조업 전반을 CNC기술로 개조하려면 다종다양한 CNC공작기계를 수없이 만들어내야 하였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야 하였다. 그런데 CNC화 기술혁명을 시작하려고 하였을 때, 그 거창한 국책사업에 투입할 자금이 없었다. 북측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민은 컸다. 국고에 남아있는 자금을 CNC화 기술혁명에 투입하느냐 아니면 식량이 없어 고생하는 북측 인민들을 위해 식량수입에 쓰느냐 하는 고민이었다.

1998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심 끝에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남아있는 자금을 CNC화 기술혁명에 투입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그 해 1월 어느 날, 다급한 식량수입을 뒤로 미루고 CNC화 기술혁명을 시작하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간 곳은 북방의 기계공업지역 자강도였다. 자강도는 식량수입에 써야 할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금을 받아안고, 눈물겨운 험로를 헤쳐간 CNC화 기술혁명의 발상지였다.

밥상에 죽그릇이 덩그러니 놓였던 혹독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처럼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CNC화 기술혁명은, 난관돌파로 CNC강국을 건설하려는 원대한 방략이었고, 첨단돌파로 세계 과학기술패권을 쟁취하려는 담대한 도전이었다.

셋째, 위에 인용한 회고담이 말해주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방곡곡 돌아보며 몸소 CNC화 기술혁명의 불꽃을 지펴주었다는 사실이다. CNC화를 실현한 어느 공장지배인에게 그가 말했다.

“맞았소. 동무 솔직하구만. 내가 처음에 CNC를 도입하라고 할 때만 해도 동무는 무슨 소린가 해서 의아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멋쟁이 지배인이 되었소. 노래까지 하게 되지 않았소. CNC노래(북측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겨 부르는 ‘돌파하라 최첨단을’이라는 노래를 가리킨 말이다-옮긴이)를 말입니다. CNC노래 한 번 불러보겠소? 다음에 동무를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CNC노래를 시켜보겠소.”

또한 책에는 그가 2007년 6월 평안북도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공장일군과 주고받은 대화도 들어있다.

국방위원장 - “내가 전번에 와서 봤을 때 CNC설비가 2대 뿐이였지?”
공장일군 - “예, 그렇습니다.”
국방위원장 - “그런데 오늘은 5대지?”
공장일군 - “그렇습니다.”
국방위원장 - “그럼 다음 번에는 15대가 되겠소?”
공장일군 - “장군님의 의도대로 공장을 현대화의 본보기로 꾸리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CNC기술로 개조된 그 공장을 다시 찾아가 공장일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멋있는 공장이요. 멋쟁이공장! 얼마나 좋소. 현대화된 멋이란 바로 이런 것이요.”

‘마누팍뚜라’를 해체하고 무인화로

“내 오늘 동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로동자한테는 무쇠마치와 주먹밖에 없다는 소리가 이젠 맞소, 안 맞소? 로동자들의 로동도구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로동자가 직접 물질생산을 하였지만 지금은 로동자가 컴퓨터를 가지고 프로그람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로동자들이 짠 프로그람에 따라 CNC기대가 물질생산을 한단 말입니다.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기름 묻은 옷을 입어야 로동계급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복을 입고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면서 기계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로동자들의 기술수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단 말입니다.” 이 인용문은 자신이 일하는 기계공장을 CNC기술로 개조한 어느 공장일군에게 들려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이다.

노동활동과 기계공정이 상호결합된 생산현장을 공장(factory)이라 한다. 16세기 말부터 18세기 말에 이르는 자본주의 생성기 200년 동안 서유럽의 초기공장들에서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제품을 제작하였기에, 수작업(manual)이라는 말과 제작(facture)이라는 말이 합해져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이라는 합성어가 생겼다. 19세기 100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과학기술이 생산현장에 도입되면서 생산공정이 기계화, 대량화, 분업화되었고, 공장제 수공업은 기계제 대공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써오던 공장제 수공업이라는 합성어가 그대로 제조업이라는 뜻으로 오늘날까지 쓰인다. 제조업을 영어로 ‘매뉴팩처’라 하는데, 외래어를 거의 쓰지 않는 북측에서는 ‘매뉴팩처’를 러시아어 발음으로 ‘마누팍뚜라’라고 부른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5년 동안 ‘마누팍뚜라’를 해체해왔다. 그가 이끄는 CNC화 기술혁명이 고도화되면서, 재래식 제조업이 막을 내리고 비재래식 제조업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누팍뚜라’를 해체하고, 고속화, 정밀화, 자동화된 비재래식 첨단제조업을 건설하는 거창한 기술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속화, 정밀화, 자동화된 21세기형 첨단제조업은 과학기술패권을 장악한 미국, 유럽, 일본 같은 기술선진국들이 먼저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본주의기술선진국의 21세기형 첨단제조업은 대형 제조업에서만 통용된다. 거대자본이 금융과 기술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중소자본은 자기의 재래식 제조업을 첨단제조업으로 개조하기 어렵다. 제조업 전반을 고속화, 정밀화, 자동화의 CNC기술로 개조하지 못하고 대형 제조업만 개조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기술선진국은 재래식 제조업을 전반적으로 해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와 달리, 금융독점과 기술독점이 존재하지 않는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는 자본투자와 기술개발이 균형적으로, 계획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대형 제조업과 중소 제조업의 격차를 두지 않고 제조업 전반을 고속화, 정밀화, 자동화의 CNC기술로 개조하는 기술혁명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북측은 ‘마누팍뚜라’를 해체하는 CNC화 기술혁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제1단계는 재래식 공작기계를 들어내고 CNC공작기계로 바꾸는 단계다. 지금 북측에서는 CNC공작기계 10,000대를 생산하는 대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련하기계종합공장은 빠른 속도로 각종 CNC공작기계들을 대량생산하여 북측 각지의 생산현장들에 보급하였다. 오래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1단계의 의의에 대해 말했다. “CNC화를 이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대학입학시험을 친 것이고 이제는 대학론문을 쓸 때가 되였습니다. CNC화에 한 계단 더 박차를 가하여 다음 고지에 올라가야 합니다.”

제2단계는 CNC공작기계를 들여놓은 가공구역을 자동화된 유연생산구역으로 개조하는 단계다. 북측 각지의 생산현장은 이미 이 단계에 진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젠 다음 단계문제요. CNC화의 1단계를 거친 공장들은 2단계를 거치게 되고 2단계를 거친 공장들은 다시 3단계에 들어서게 되는데 공장별로 재투자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타산을 잘 세워야 합니다. 재투자를 하는 경우에 무엇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계획을 말입니다. 타산을 세우고 경제적 효과성을 따져 종합해보아야 합니다.”

제3단계는 공장 전체를 통째로 CNC화하여 통합생산체계를 세우는 단계다. 북측의 대형공장들과 연합기업소들은 이미 이 단계에 진입하였다. 통합생산체계란 생산공정관리, 소재관리, 실적관리, 기술관리, 도면관리, 기대관리, 제품관리, 경영관리가 하나로 통합되고 컴퓨터에 의해 생산활동 전반을 조직지휘하는 첨단생산체계다. 2008년 12월 1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합생산체계가 완성된 표본공장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보시오. 기술혁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요. 이제는 우리 사람들의 사고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우리는 통합생산체계를 실현함으로써 세계적인 높이에 확고히 올라서게 되었소. 이것은 우리가 높은 단계의 CNC화 목표를 드디여 점령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소.”

제4단계는 생산공정을 무인화하는 최고 단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마누팍뚜라’를 해체하고 무인화를 실현하는 최첨단 수준으로 CNC화 기술혁명을 끌어올리기 위한 최고 단계 개조사업을 밀고 나가는 중이다. 그는 “2-3년 안으로 세계를 디디고 올라설 대담한 목표를 세우고 투쟁하여야 합니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표본공장으로 개조된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에 큰 글씨로 써있는 ‘첨단을 돌파하라!’는 구호를 보면서 공장일군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첨단>이라는 글자 앞에 <최>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돌파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최첨단이란 말입니다.”

2010년 7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CNC화를 높은 수준에서 완비한 어느 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기업소일군들에게 말했다. “CNC화의 가장 높은 단계인 무인화는 우리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것입니다. 우리가 한 10여 년 투쟁해서 이제는 통합생산체계를 실현하는 높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무인화까지 하면 우리는 세계의 앞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소? 무엇이 걱정되오? 로력이 걱정되오, 기술이 걱정되오? 무인화에로 갑시다!”

지금 북측에서는 ‘마누팍뚜라’를 해체하고 제조업 생산공정을 무인화하는 기술혁명 제4단계가 추진되고 있다. 그들의 최첨단 돌파전이 전진할수록,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망치를 든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컴퓨터를 작동하는 기술자 몇 사람만 생산현장에 남게 된다. 그들의 전진속도는 강성대국 건설 속도다. (2011년 4월 1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