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위기, 재발할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군부의 황당한 소리, 인민군이 웃는다

2011년 2월 15일 주한미국군사령부 공보실이 발표문을 내놓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2월 28일부터 3월 10일까지 ‘키 리졸브(Key Resolve)’라는 작전명의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할 것이고 연속해서 4월 30일까지 ‘폴 이글(Foal Eagle)’이라는 작전명의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할 것이라는 내용의 발표문이다.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그 발표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재래식 공격을 격퇴하는 것을 넘어 일련의 현실적인 시나리오에 대한 동맹 행동을 연습할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를 통해 우리는 동맹의 위기관리, 억지, 도발의 급속한 격퇴와 방어작전을 연습할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말한 것처럼, ‘키 리졸브’와 ‘폴 이글’은 인민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방어전 연습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군이 국지전을 넘어선 전면전 도발을 연습하는 것이고, 재래식 공격전을 넘어선 핵타격전 도발을 연습하는 것이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Stars and Stripes)> 2011년 2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북침전쟁연습에 미국군 13,000명과 한국군 20만 명 이상이 동원된다고 한다. 미국 군부가 동원하는 병력규모로 보나, 무기체계로 보나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핵타격 실전기동작전을 한반도에서 연습하는 것이 확실하다. 미국 군부의 전쟁열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사령부 공보실이 북침전쟁연습 실시 일정에 관한 발표문을 내놓기 전에 한 발 앞서 한국군 당국이 그 연습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미리 언론에 흘려주었다. <연합뉴스> 2011년 2월 4일 보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20th Support Command) 병력이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북침전쟁연습에 동원된다는 점이다. 지난 해 북침전쟁연습에 동원된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 병력은 350명이었다.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 웹싸이트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기들이 중요한 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의 작전임무는 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이라고 부르는 도로매설폭탄을 제거한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탈레반 저항세력이 비포장도로에 파묻어놓고 미국군이 그 길을 지나가는 순간 원격조종장치로 폭파하는 도로매설폭탄은 미국군을 비롯한 다국적 점령군에게 치명적인 살상무기다. 미국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2011년 2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급조폭발물 공격으로 미국군을 비롯한 다국적 점령군 7,8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포장도로를 뒤적이며 매설폭탄이나 찾아내고 있어야 할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가 왜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북침전쟁연습에 동원되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의 군장(軍章)이다. 불꽃이 타오르는 칼 한 자루가 녹색 바탕 한 복판에 그려져 있고, 흰색 별 다섯 개가 칼끝을 감싸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 웹싸이트에 나온 해설에 따르면, 녹색 바탕은 그 부대의 화학전 참전역사를 상징하고, 불꽃이 타오르는 칼은 반테러전쟁 참전임무를 상징하고, 흰색 별 다섯 개는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방사능무기, 핵무기, 고폭탄(high-yield explosive)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군 제20지원사령부의 작전임무는 적군의 대량파괴무기(WMD)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 군부의 시각으로 보면, 인민군이 보유한 대량파괴무기는 곧 핵무기이므로, 북침전쟁연습에 제20지원사령부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미국 군부가 인민군 핵무기를 무력으로 탈취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미국 군부는 인민군 핵무기를 무력으로 빼앗아가는 것을 한반도 비핵화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민군 핵무기를 무력으로 탈취하는 것, 이것이 미국 군부가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다.

만일 미국군이 인민군 핵무기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말을 인민군 군인들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황당한 소리라서 금방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내 웃음보를 터뜨릴 것이다. 12만 명에 이르는 인민군 여군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까르르 웃을 것이다. 미국 군부가 말하는 무력 탈취에 의한 한반도 비핵화는 서쪽에서 해가 뜬다는 소리처럼 사리에 맞지 않는 궤변이며, 119만 명에 이르는 인민군 군인들을 황당한 소리로 웃기는 만담으로 들린다.

그런데 왜 미국 군부는 그러한 궤변, 그처럼 황당한 만담을 뚱딴지 같이 작전연습에 도입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 군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면, 인민군 핵무기를 무력으로 탈취하려는 군사작전 따위는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할 것인가 아니면 취소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판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내리지만, 북침전쟁연습에 제20지원사령부 병력을 동원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전술적 판단은 미국 군부가 내린다. 북침전쟁연습에 어느 부대를 동원할 것인가 하는 전술적 판단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시시콜콜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황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속셈이야 다르지만 적어도 입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고 있는데 비해, 미국 군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0지원사령부 병력을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군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 거부하는 의사표시다.

미국 군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 거부하는 의사표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침전쟁을 도발하여 북측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 제20지원사령부를 동원하여 인민군 핵무기를 빼앗아가겠다는 뜻이다. 미국 군부가 자기들의 그런 의사를 반영한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해마다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6자회담이나 북미 양자회담의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북침전쟁도발을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북침전쟁도발을 획책하는 미국 군부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미국 군부를 ‘제국주의 전쟁광신자들’이라고 비난해온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미국 군부가 예상한 무력충돌위기들

미국 군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 거부하고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군사정세에서 무력충돌위기를 한층 격화시키는 명백한 평화파괴요인이다. 이처럼 무력충돌위기를 정작 자기들이 격화시켜놓으면서도, 미국 군부는 미국에게 닥쳐오는 군사적 위기를 상정한 각종 시나리오를 작성해놓고 이러쿵저러쿵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 군부가 외부에 공개한 각종 무력충돌위기 시나리오들 가운데 특히 대량파괴무기와 관련된 두 가지 시나리오만 골라내어 분석한다.

2005년 10월 28일 미국 공군 우주사령부가 군사전략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즉속 지구적 타격(Prompt Global Strike)’이라는 제목이 붙은 보고서다. 그 보고서는 미국에게 닥쳐올 네 가지 무력충돌위기를 거론하였다. 재래식 무력충돌이 일어난 전통적(traditional) 위급상황, 테러, 반란, 내전, 극단주의, 호전세력, 강압정치와 충돌하는 세력이 비재래적 방식을 택한 비정규적(irregular) 위급상황, 미국의 적대세력이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거나 획득한 재앙적(catastrophic) 위급상황, 미국의 경쟁국이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갑작스럽게 훼손하는 돌파력을 확보한 파열적(disruptive) 위급상황이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전통적 위급상황이나 비정규적 위급상황보다 재앙적 위급상황이나 파열적 위급상황이 미국에게 훨씬 더 심각한 무력충돌위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군부가 상정한 재앙적 위급상황은 북측이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거나 획득한 상황을 뜻하고, 그들이 상정한 파열적 위급상황은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위력적인 군사력을 확보한 상황을 뜻한다.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대로,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훼손할 만큼 우세한 군사력을 아직은 확보하지 못하였다.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에 맞설 대등한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까닭에,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패권은 여전히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공군 우주사령부가 자기 보고서에서 언급한 파열적 위급상황은 미래상황을 상정한 가상 시나리오다.

그런데 북측은 이미 2006년과 2009년에 핵실험을 실시하여 핵보유를 입증하였고, 2010년에는 녕변 핵시설단지에 설치한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함으로써 기존 핵무기 체계를 더욱 강력한 최신형으로 교체할 수 있는 첨단 핵능력까지 확보하였음을 실물로 과시하였다. 이것은 북측의 핵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 발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북측이 첨단 핵능력을 확보하고 자국의 핵무기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틀어쥔 군사적 패권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재앙적 위급상황이 눈앞에 닥쳐왔음을 뜻한다.

적국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촉발된 위급상황에 대해서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National Defense University) 산하 대량파괴무기연구소(Center for the Study of the 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2009년 6월에 펴낸 소책자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미국 안보를 변형시킬 네 가지 대량파괴무기 위기들(Are We Prepared?: Four WMD Crises That Could Transform U.S. Security)’에서 상론된 바 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대량파괴무기가 촉발하는 네 가지 위기는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위기,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나라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위기, 생물무기를 동원한 테러공격을 받는 위기, 미국의 도시들이 핵공격을 받는 위기라고 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위기 가운데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나라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위기는 실제로 파키스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 파키스탄의 친미정권을 전복하거나 파키스탄군의 핵시설을 점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미국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군에게 해마다 지원금을 보내고, 중앙정보국(CIA) 요원들과 미국군 특수전 병력을 파키스탄에 밀파하여 파키스탄 정권을 위협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을 진압하려는 각종 비밀군사작전에 열을 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또한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위기 가운데 생물무기를 동원한 테러공격을 받는 위기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Ayman al-Zawahiri) 등이 이끄는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al-Qarda)가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알 카에다 테러요원들이 미국이나 친미동맹국에 잠입하여 생물무기로 기습공격을 가하는 경우, 미국이 받을 타격은 막대한 인명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지배체제에 동요와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위기 가운데 북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는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위기, 그리고 미국의 도시들이 핵공격을 받는 위기다.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위기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몇 차례 논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미국의 도시들이 핵공격을 받는 위기에 대해 논한다.

미국 군부가 우려하는, 미국의 도시들이 핵공격을 받는 위기는, 북측과 미국이 핵전쟁을 벌이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 북미 핵전쟁 위기는 군사전문가들이 한가롭게 논하는 예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악화된 현실적 위기다.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실장이 2011년 2월 10일 미국 연방하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 ‘하원 정보위원회 상임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세계적 판도의 위협에 대한 미국 정보계의 평가기록에 관한 보고서(Statement for the Record on the Worldwide Threat Assessment of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 for the House Permanent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에 북측과 미국의 핵전쟁 가능성에 대한 미국 국가정보실장의 공식적 평가가 들어있다. “우리는 (북측) 정권이 군사적 패배에 몰리거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통제력을 상실한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면, 비록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평양이 미국군이나 미국 영토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평가한다.”

이 문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 국가정보실이 “비록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albeit with low confidence)”는 단서를 달아놓기는 했어도, 북측과 미국의 핵전쟁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기들의 판단을 국가정보실의 정보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가정보실장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측과 미국의 핵전쟁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북측과 미국이 실제로 아슬아슬한 핵전쟁 위기상황에 다가섰던 과거경험을 되돌아보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실장이 위에서 말한 내용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군사상황의 심층정보는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북측이나 미국이 각기 자기쪽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미국이 촉발한 핵전쟁 위기상황은 북측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매우 은밀하게 전개되는 것이므로 외부에서는 전연 알 수 없다. 2003년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촉발시킨 위험천만한 핵전쟁 위기상황도 그러하였다. 

한반도에 핵전운이 감돌았던 2003년

미국이 2003년에 한반도에서 촉발시킨 핵전쟁 위기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에 관한 간략한 정보를 알려준 자료가 하나 있다. 워싱턴에 있는 국방정보센터(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의 스티븐 베이커(Stephen H. Baker) 선임연구원과 콜린 로빈슨(Colin Robinson) 연구원이 2003년에 작성한 연구보고서 ‘북코리아와의 교착상태: 전쟁 시나리오와 결말(Stand-off with North Korea: War Scenario and Consequences)’이라는 연구보고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인 쌔뮤얼 블랙(Samuel Black)과 셔린 헤이브월라(Shireen Havewala)가 2010년 3월 31일에 발표한 자료 ‘1970년부터 2010년의 핵위협(Nuclear Threats 1970-2010)’에는 2003년의 한반도 핵전쟁 위기상황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오류다. 

지난 시기 한반도의 핵전쟁 위기상황은 언제나 미국의 도발행동으로 조성되곤 하였는데, 2003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위기상황의 발단은, 2002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하여 북측에게 우라늄농축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이었다. 당시 부쉬 정부가 북측에게 우라늄농축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은, 클린턴 전임정부 집권 말기에 추진되었던 북미관계 정상화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하고 대북 압박공세를 퍼부어 북측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보려는 망동이었다. 그런 속셈을 간파한 북측은 부쉬 정부를 상대로 대화와 협상을 당분간 추진하기 힘들어졌다고 판단하였고, 그에 따라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초강경 대응공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2월 5일 북측 외무성은 클린턴 전임정부 시기에 북측과 미국의 합의에 따라 동결된 녕변 핵시설을 다시 가동하고 운영을 정상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03년에 들어서면서 북측이 취한 일련의 대응공세는 부쉬 정부의 압박공세에 기가 꺾일 줄 알았던 북측이 되레 더 강하게 부쉬 정부를 받아친 것이었으므로, 대북 압박공세에 열을 내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난감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클린턴 전임정부 시기에 추진된 북미관계 정상화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하고 북침전쟁위기를 조성하려던 부쉬 정부는 북측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과 녕변 핵시설 재가동을 트집잡아 즉각 전쟁도발태세에 돌입하도록 미국 군부에게 지시하였다. 

2003년 2월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칼 빈슨호(USS Carl Vinson)를 주축으로 한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출동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남단에 있는 샌디에고(San Diego)를 모항으로 삼은 칼 빈슨호는 원래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동태평양을 작전구역으로 맡은 제1항모강습단에 배속된 항공모함이다. 한반도에서 해마다 실시되는 북침전쟁연습에 동원되는 항모강습단은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삼은 제7항모강습단인데, 미국 군부는 2003년 2월에 제7항모강습단 이외에 제1항모강습단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처럼 두 개 항모강습단을 동원한 것은, 미국 군부가 연례적인 북침전쟁연습 수준을 넘어서 매우 도발적인 북침준비태세를 취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 2월 28일 <뉴욕 타임스>는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이 (북측에 대해) 외과수술식 미사일 공격, 대량폭격, 심지어 전술핵무기 사용까지 모두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였다. 두 개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출동시켜놓고 전술핵무기 사용을 검토하는 중이라는 말을 언론에 흘려준 것은, 미국이 자기들의 군사적 압박 앞에 무릎을 꿇거나 아니면 자기들과 전면전으로 맞붙거나 양자택일을 하라는 최후 통첩을 북측에 보낸 것이었다. 

남측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2003년 2월 18일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와 2월 27일에 있었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내각명단 발표에 온통 쏠려있을 때, 한반도 상공에는 무시무시한 핵전운(核戰雲)이 감돌고 있었다. 만일 미국이 이 땅에서 핵전쟁을 도발하는 경우, 왜 죽는지도 모르고 무참히 희생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국민들이 전혀 느끼지 못한 가운데 핵전쟁 위기가 격화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실로 가슴 아픈 비극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측에게 최후 통첩을 보낸 것은 큰 오판이었다. 북측의 표현대로, 워싱턴의 ‘제국주의 호전광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핵전쟁 도발위협으로 나오자, 되레 더 대담한 대응행동으로 반격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반도 상공에 핵전운이 감돌던 2003년 2월과 3월의 긴박한 정세는 이렇게 전개되었다. 

2003년 2월 20일 북측 미그 전투기 한 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상공을 넘어 비행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명령으로 대공미사일을 쏠테면 어디 한 번 쏴봐라는 식의 대담한 군사행동을 취한 것이다. 인민군은 그로부터 닷새 뒤인 2월 25일에 이번에는 동해에서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였고, 3월 10일에도 동해에서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또 다시 실시하였다. 인민군의 연속적인 지대함 순항미사일 발사는 제7항모강습단과 제1항모강습단이 동해에 나타나기만 하면 지대함 순항미사일로 수장시켜주겠다는 서슬퍼런 경고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정밀타격 순항미사일을 가득 실은 미국 해군 순양함 한 척만 나타나도 기가 꺾여 잠잠해질 터인데, 북측은 두 개 항모강습단이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다가갔는데도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대담한 군사행동으로 받아쳤다. 특히 미국군 정찰기를 나포하기 위해 전개한 인민군의 기상천외한 군사행동은 2003년의 핵전쟁 위기상황을 미국군에게 불리하게 뒤집어놓은 대응작전의 압권이었다. 

2003년 3월 1일 인민군 요격기 넉 대가 동해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미국군 정찰기 RC-135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였다. 요격기 한 대는 미국군 정찰기로부터 1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까지 아슬아슬하게 접근하여 정찰기 전방을 가로막고, 재연소 장치(afterburner)를 갑자기 켜 제트엔진 방출열기로 정찰기에 충격을 가하는 식으로 위협비행을 하면서 강제착륙시키려고 하였다. 기겁한 미국군 정찰기가 전속력을 내며 일본 쪽으로 달아나자 또 다른 인민군 미그 요격기가 미국군 정찰기를 격추하려고 공대공 미사일을 조준하였다. 전투기는 적기를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할 때 먼저 레이더파를 쏘는데, 정찰기나 전투기에는 적기가 자기를 레이더파를 향해 쏘았는지를 알려주는 탐지장비가 장착되어 있어서 적기의 레이더파를 탐지하는 순간 자기가 공대공 미사일 조준을 받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 때 만일 인민군 요격기가 미국군 정찰기를 동해 상공에서 격추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은 공격태세를 갖추고 대기시킨 두 개 항모강습단을 즉각 동해로 북상시켜 그 요격기들이 출격한 함경북도 어랑 공군기지를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하였을지 모른다. 만일 미국군이 어랑 공군기지를 공격하였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격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인민군이 미국군에게 어떤 보복작전으로 타격을 안겨주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북측이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쏘고 미국군 정찰기 공중나포를 기도하는 등 초강경한 무력시위를 벌이며 전면전을 불사할 반격태도를 취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북침전쟁무력을 더욱 증강하였다. 2003년 3월 13일 미국은 F-117 스텔스 전폭기 6대를 전라북도 군산 공군기지에 긴급배치하였고, B-1 장거리 폭격기 편대와 B-52 장거리 폭격기 편대를 괌(Guam)에 긴급배치하였다. 미국 군부의 명령으로 긴급히 전진배치된 전폭기 편대들은 한반도를 파괴할 전술핵폭탄을 무기창에 가득 싣고 있었다. 

2003년 당시 미국은 북측이 원시적인 핵무기 몇 기만 가졌을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하였고, 자기들과 전면전을 벌일 첨단 핵능력이 인민군에게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국은 그처럼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핵전쟁 도발위협을 가하면 북측이 결국 무릎을 꿇을 것으로 타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에게 패배를 안겨준 오산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북측의 첨단 핵능력과 강력한 핵전쟁 수행능력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두 개 항모강습단과 전술핵폭탄을 실은 전폭기 편대를 철수함으로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의 오산을 스스로 인정하였고, 한반도는 핵전쟁 위기를 또 한 차례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고위급 군사회담 거부하고 북미관계를 파국으로 끌어가는 미국

그로부터 여덟 해가 지났다. 그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도 진행되었고, 2005년에는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길을 밝힌 9.15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측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북측과의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위기만 고조시키는 대북 제재와 압박에 골몰하고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2011년 1월 14일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 방문 중에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연합해상훈련을 계속해 나간다”고 하면서 북침전쟁연습 강행의사를 재확인하였고, 1월 15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미국 국무장관은 국무부에서 행한 연설 ‘미중관계의 미래’에서 “북코리아가 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때까지 중국과 국제사회는 유엔 대북제재를 강력히 이행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국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이 이처럼 거의 같은 시각에 서울과 워싱턴에서 대북 강경발언을 꺼내놓았지만, 북측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11년 1월 25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명의로 미국 국방장관에게 통지문을 보내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측의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핵타격전 연습을 주축으로 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 준비를 다그쳤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어느 쪽이 평화 파괴자이고, 어느 쪽이 평화 수호자인지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한때 ‘미국의 변화(Change for America)’를 외치며 출범한 오바마 정부가 어느덧 임기 말에 다가가고 있는데, 그들은 교착된 북미관계를 변화시키기는커녕 북측과의 기존 대화통로마저 막아놓고 대북 제재조치를 추가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었다. 명백하게도, 오바마 정부는 부쉬 전임정부가 대북관계에서 저지른 전략적 오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북측의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북침전쟁연습 준비를 다그친 것은, 교착된 북미관계를 결국 파국으로 몰아가려는 의사를 드러낸 것 이외에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힘들다. 미국이 그처럼 북미관계의 파국을 원한다면, 북측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하나 뿐이다. 북측의 선택은 군사회담 제안마저 거부하고 북침전쟁연습 준비에 열을 올리는 미국에게 군사적 충격요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측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고질적인 전략적 오판을 깨뜨릴 어떤 군사적 충격요법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직답하기는 힘들지만, 북측이 오는 2월 28일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북침전쟁연습을 예리한 시각으로 주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2003년의 위기가 올해 재발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문득 떠오른다. (2011년 2월 2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