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이콴은 왜 엘바라데이를 지지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

지금 세계의 이목은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권퇴진투쟁에 집중되어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투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계속되고 있다. 남측 독자들에게 나일강과 수에즈운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는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북동쪽에 있지만, 오늘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권퇴진투쟁을 남측 독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2008년 4월에 전개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요구 1,000만명 온라인 서명운동’과 5월에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자연발생적 대중저항운동으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군중촛불집회로 분출되었다. 군중촛불집회는 자연발생적 대중저항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사그러졌지만, 친미독재정권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무바라크 정권 퇴진투쟁과 이명박 정권 퇴진투쟁은 무관하지 않다. 무바라크 정권 퇴진투쟁을 정밀분석하면, 반이명박 군중촛불집회가 왜 중도에 좌절하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반이명박 군중촛불집회가 수구러진 때로부터 3년이 되었으나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불씨’가 남아있는 오늘, 이집트의 정권퇴진투쟁이 남측 정치정세에 주는 의미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북측 대 미국-남측 동맹의 대결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한반도 정세는 아랍민중 대 미국-이스라엘 동맹의 대결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중동 정세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집트에서 정권퇴진투쟁이 승리하여 친미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주의 정권이 등장하면,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1979년 3월 26일 워싱턴에서 체결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이집트에 출현할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주의 정권에 의해 무효화되고, 그에 따라 아랍민중 대 미국-이스라엘 동맹의 대결구도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이 무효화되면, 중동의 깡패국가 이스라엘은 동쪽의 이집트, 서쪽의 이란, 북쪽의 시리아와 헤즈볼라,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로부터 완전히 포위당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중동의 전쟁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일 중동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항모강습단을 지중해에 증강 배치할 것이다. 이집트에 출현할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주의 정권이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무효화하여 중동의 전쟁위기가 고조될 때, 한반도와 중동 두 지역에서 한꺼번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안보위험’을 피하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할 것이다.

정권퇴진투쟁은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집트의 정권퇴진투쟁을 바라보면, 그 나라에서 정권퇴진투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몇 가지 원인이 눈길을 끈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을 분석하면서 두 가지 발생요인을 지적하였다.

첫째,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의 발생원인으로 사회경제적 불안을 손꼽을 수 있다. 1990년대 말 이집트 경제가 파산위기에 빠지자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은 신자유주의를 적극 추종하면서 1998년부터 2005년 사이에 자국 시장을 전면 개방하였고, 공기업을 사유화하여 외국자본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겼다. 2002년 4억2,820만 달러, 2003년 7억60만 달러였던 외국자본의 대이집트 직접투자가 2004년 21억720만 달러, 2005년 39억160만 달러, 2006년 61억1,140만 달러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증가하였다. 시장개방과 공기업 사유화가 그처럼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증가시킨 것이다.

이집트 공기업을 장악한 외국자본은 이른바 기업구조 조정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대량해고를 자행하였고, 그 결과 1998년부터 2005년 사이에 공공부문 취업률은 매해 평균 -2%를 기록하였다. 실업률은 2004년 10.3%, 2005년 11.2%로 늘어났고, 2009년에는 9.4%, 2010년에는 9.7%였다. 이집트 국내 소비시장의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2009년 11.9%, 2010년 12.8%였다. 1997년 말 남측이 외환위기 이후 겪은 것과 똑같은 경제적 피폐화를 이집트도 겪은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무바라크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도 중산층을 몰락시켜 빈부격차를 더욱 증폭시켰고, 이집트 국민을 궁핍과 빈곤으로 내몰았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이집트 경제개발부가 작성한 통계를 종합하면, 이집트 인구 8,300만 명 가운데 3.8%에 이르는 315만 명이 극빈층이고, 40.6%에 이르는 3,370만 명이 빈곤층이다. 지금 남측 국민이 겪고 있는 민생경제파탄을 이집트 국민도 겪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 실패, 외국자본 수탈가중, 대량실업사태 발생, 생활물가 인상, 빈부격차 증폭, 빈곤층 확대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불안요인은 이집트 국민에게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였고, 무바라크 정권에게 등을 돌린 이집트 국민의 불만과 반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민심이반은 어떤 충격계기를 만나기만 하면 정권퇴진투쟁으로 터져나올 폭발력을 잠재하고 있었다.

둘째,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의 또 다른 발생원인으로 외래적 자극요인을 손꼽을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국들은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다섯 나라인데, 리비아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 이집트가, 서쪽에 튀니지가 있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과일노점상 모하메드 봐지지(Mohamed Bouazizi)의 분신자살로 폭발한 정권퇴진투쟁이 격화되더니 투쟁 28일 만인 2011년 1월 15일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대통령의 23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고 튀니지 친미정권이 무너졌다.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벤 알리 친미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 정권퇴진투쟁에서 자극을 받은 이집트 국민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불안요인과 외래적 자극요인으로만으로는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의 발생원인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 불안과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또는 가까운 나라의 정권퇴진투쟁으로부터 자극을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정권퇴진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요인들은 정권퇴진투쟁을 발생시키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불안요인과 외래적 자극요인에 더하여 정치적 대결요인까지 존재할 때, 그 때 비로소 각계각층 대중이 정권퇴진투쟁에 궐기하는 것이다. 만일 정치적 대결요인이 없었다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군중시위가 정권의 폭력적 탄압에 밀려 전국적 정권퇴진투쟁으로 확대, 분출되지 못하고 얼마 가지 않아 위축, 종식되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정권퇴진투쟁을 일으킨 정치적 대결요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결정적인 요인은 이집트 정치정세를 규정하고 있는 적대관계 속에 들어있다. 적대관계란, 온갖 폭력수단을 동원하여 야권을 탄압해온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을 한 편으로 하고,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탄압에 맞서 싸워온 야당세력을 다른 한 편으로 하여 형성되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집트의 정권퇴진투쟁은 양대 정치세력의 오랜 적대관계에서 폭발한 것이다.

적대관계의 연원과 내막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와 그를 당대표로 한 민족민주당(National Democratic Party)을 한 편으로 하고, 무바라크 정부와 민족민주당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야당세력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을 다른 한 편으로 하여 형성된 적대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무슬림 형제단과 무바라크 정권의 적대관계가 이집트 국민의 반정부 시위과 이집트 경찰의 폭력진압 사이의 충돌로 격화되었고, 그렇게 격화된 물리적 충돌이 군중봉기형태의 정권퇴진투쟁으로 확대, 분출된 것이다.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에는 각계각층 각당각파가 참가하고 있지만, 투쟁현장에서 동력을 조직하는 핵심세력은 무슬림 형제단이다. “그들(무슬림형제단을 뜻함)이 (정권퇴진투쟁을) 조직하고 (투쟁군중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으며 물을 나눠주거나 거리를 치우고 연사를 데려오고 있다”는 <아페프페(AFP)> 통신의 2011년 2월 1일 카이로발 보도는, 무슬림 형제단이 정권퇴진투쟁을 주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의 실상을 파악하려면, 무슬림 형제단과 무바라크 정권이 왜 적대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 집권당인 민족민주당은 이집트 제3대 대통령 안와르 엘 사다트(Anwar El Sadat)가 1978년 7월 9일에 창당하였다. 아랍연합공화국 제1대 대통령과 이집트 제2대 대통령을 지낸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1970년 9월 28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부통령이었던 안와르 엘 사다트가 1970년 10월 1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원래 나세르 대통령과 사다트 대통령은 ‘1952년 이집트 혁명’을 이끈 핵심인물이다. ‘자유장교단(Free Officers)’을 조직한 그들은 1952년 7월 23일 군사정변을 일으켜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파룩(Farouk) 1세가 통치하던 입헌군주제를 타도하고 공화국을 창건하였으니, 그것이 ‘1952년 이집트 혁명’이다. 나세르 정권은 반제국주의-비동맹 노선, 주요산업 국유화 정책, 서구식 다당제 배제 등 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닌 범아랍 민족주의(pan-Arab nationalism)를 추구하였으나, 사다트 정권은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나세르주의(Nasserism) 정치노선에서 이탈하여 주요산업 사유화와 서구식 다당제 수용으로 기울어졌다. 또한 사다트 정권은 범아랍 민족주의를 저버리고 이른바 평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친미-친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였다. 사다트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에 따라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빗(Camp David)에서 당시 이스라엘 총리 메나쳄 베긴(Menachem Begin)과 13일 동안 협상한 끝에 1978년 9월 17일 백악관에서 ‘캠프 데이빗 협정’을 채택하였고, 1979년 3월 26일에는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 건설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이스라엘의 전략적 동반자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도발한 제3차 중동전쟁에서 패하여 강탈당했던 시나이 반도를 제4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여 되찾아 놓고서도 자국 영토인 시나이 반도에 이집트 군대를 한 명도 주둔시키지 못하게 규정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에즈운하를 비롯한 이집트 영해의 전략적 요충수역을 이스라엘에게 무조건 개방하도록 규정하였다는 점에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이집트가 이스라엘에게 무릎을 꿇은 굴욕협정이다.

이스라엘 편만 드는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을 추종한 사다트 정권이 그처럼 굴욕협정을 체결하였으니, 이집트 국민과 아랍국가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랍국가연맹(League of Arab States)은 이집트를 연맹에서 축출하였고, 이집트 국민과 아랍국가들은 사다트 대통령을 아랍민족의 배신자로 규탄하였다.

다른 한편, 1929년 이집트에서 결성된 이슬람 형제단은 이슬람주의(Islamism)를 배반한 친미독재정권을 전복하고 이슬람주의 정권을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결성된 정치단체다. 이슬람 형제단을 아랍어 약칭으로 알 이콴(Al-Ikhwan)이라 부른다.

1954년에 무슬림 형제단이 나세르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였다는 혐의를 제기한 나세르 정권은 그 단체를 불법화하고, 그 단체의 정신적 지도자 사이드 쿳브(Sayyid Qutb)를 국가전복 기도죄로 수감하였고, 1966년에 교수형에 처했다.

남측의 역대 친미정권들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탄압수단으로 하여 진보정치세력을 짓누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에도 ‘비상사태법(Emergency Law)’이라는 악법이 있다. 이 악법은 나세르 정권이 1958년에 제정한 것인데,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중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혐의자를 임의로 체포하거나 수색하고, 언론과 출판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의사표현수단을 검열, 통제하고, 기업과 기관의 사유재산을 압류하고, 민간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고, 교통을 통제하고 주민을 소개시키는 권한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집트의 역대 정권들이 이 악법을 틀어쥐고 지난 50여 년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탄압해온 대상이 무슬림 형제단이다.

1981년 10월 6일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가 사다트 대통령을 살해한 직후 무바라크 당시 부통령이 권좌에 올랐는데, 무바라크 정권도 사다트 정권과 마찬가지로 친미독재의 길을 걸었다. 무바라크 집권기에 무슬림 형제단은 탄압을 뚫고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장하였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각지에 노동자, 농민, 빈민을 위한 보육시설, 교육시설, 의료시설, 생계지원시설 등 각종 서민복지시설을 운영하여 대중적 지지를 받는 위력적인 대중정당으로 장성하였다. 현재 1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둔 이슬람 형제단은 이집트 국경을 넘어 범아랍권으로 조직을 확대하여 세계 최대 이슬람 정치조직으로 되었다.

이집트의 역대 정권들이 불법단체로 규정한 무슬림 형제단은 2005년에 실시된 의회선거에 자기 당 후보들을 무소속으로 출마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무슬림 형제단 후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던 민족민주당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기기간 중에 무슬림 형제단 당원 수 백명을 체포하고 불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슬림 형제단은 88명을 당선시켜 의회 전체 의석 가운데 20%를 차지하였다. 만일 탄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선거가 실시되었다면 무슬림 형제단은 전체 의석 가운데 50% 이상 차지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무슬림 형제단이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대안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음을 뜻한다.

지금 무슬림 형제단이 무바라크 정권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바라크 대통령 즉각 퇴진, 의회 해산, 과도정부 수립, 유혈사태 진상조사, 폭력진압 책임자 처벌이다.

‘불끄기’에 분주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린 남측 민중의 반이명박 전선은 남측 민중 대 이명박 정권의 대립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대립상황에 개입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에서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남측에는 주한미국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남측 민중 대 이명박 정권의 대립관계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개입 정도가 심한데, 이집트에는 미국군도 없고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도 없으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개입 정도가 남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친미독재정권을 붕괴, 몰락시키는 정권퇴진투쟁이 일어난 상황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에 직접 개입하여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을 또 다른 친미정권으로 교체하는 이른바 평화적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정권퇴진투쟁의 ‘불’을 끄려고 집중적인 정치공작을 벌이는 중이다.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이 정권퇴진투쟁으로 무너지는 경우, 그 투쟁을 주도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이 새로운 정권 수립도 주도하게 될 것이고, 무슬림 형제단의 주도로 수립된 새로운 정권은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방식의 정권교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끔찍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에게 다가올 악몽을 피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비상대책을 서둘렀다.

첫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이 더 이상 격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른 시일 안에 끝나게 만드는 ‘불끄기’에 분주한데, 그 내막은 이렇다.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은 정권퇴진투쟁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보안군(전투경찰)을 투입하여 투쟁에 참가한 군중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유혈사태를 일으켰으나, 군중의 강력한 저항에 밀린 보안군은 패퇴하였다. 보안군 패퇴로 붕괴위기에 빠진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출동시켜 정권퇴진투쟁을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무바라크 정권의 무력진압작전 계획을 가로막았다. 만일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의 의도대로 계엄군이 출동하여 무력진압작전을 강행하는 경우, 정권퇴진투쟁은 내전으로 격화되고 무력진압에 대한 국제여론이 악화되어 무바라크 정권의 완전 붕괴를 도리어 재촉할 것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집트 군부가 무력진압작전을 강행하지 않도록 긴급조치를 취하였다. 이를테면 2011년 1월 28일 미국 국방부가 이집트군 참모총장과의 회동에서 이집트군의 ‘자제’를 요구하였고, 1월 30일에는 마이크 멀린(Michael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이 이집트군 참모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로이터> 통신 2011년 1월 31일 워싱턴발 보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러한 긴급조치를 서둘렀음을 말해준다. 마이크 멀린 미국군 합참의장은 2011년 2월 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에 출연하여 “이집트군 수뇌부와 대화했는데 이집트군이 이집트 시민들에게 발포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해 주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를 통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긴급조치를 하달받은 이집트 군부는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하지 않고 출동시켰으며, 진압작전을 하지 말고 질서유지에 전념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집트 군부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말을 그처럼 고분고분 듣는 까닭은, 사다트 정권이 1979년에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대가로 미국이 지출하는 연간 15억 달러의 대이집트 지원금 가운데 13억 달러를 이집트군이 30년 동안 해마다 받으면서 친미성향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고찰하면,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정권퇴진투쟁을 경찰력으로 유혈진압하다가 투쟁양상이 더욱 격화되었을 때,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 군부에게 계엄군 출동을 지시하면서도 실탄을 일절 지급하지 않고 질서유지에만 전념하도록 조치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의 완전 붕괴를 막았던 ‘불끄기’가 오늘 이집트에서도 똑같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집트의 항쟁국면을 선거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항쟁국면을 선거국면으로 전환시키려면, 무바라크 대통령을 즉각 사임시키고 그의 측근세력을 내세워 과도정부를 세우도록 하고, 그 과도정부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선을 실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뉴욕 타임스> 2011년 2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사임과 과도정부 수립에 관한 방안을 이집트 정부관리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는 “오마르 술레이만(Omar Suleiman) 부통령이 주도하고 이집트군 참모총장 사미 에난(Sami Enan) 중장과 모하메드 탄타위(Mohamed Tantawi) 이집트 국방장관의 지지를 받는 과도정부를 내세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즉각 추진하는 계획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집트 정부와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2011년 2월 3일 조 바이든(Joseph R. Biden) 미국 부통령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태해결방안을 논의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워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야권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무바라크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른바 점진적 정권이양 시나리오를 추진하는 것이다.

비교적으로 고찰하면, 남측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내걸고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정권퇴진투쟁이 폭발하였던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기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에게 맡겼던 역할, 즉 야권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정권퇴진투쟁의 ‘불’을 끄는 역할을 오늘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맡긴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우는 까닭은, 그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의 반테러전략을 추종하는 ‘충실한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권퇴진투쟁으로 궁지에 몰린 무바라크 대통령은 궁색한 자구책으로 그를 부통령에 전격 임명하였는데, 원래 술레이만 부통령은 1993년 이래 오늘까지 이집트 정보국장으로 줄곧 재직하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중동과 유럽 각지에서 불법 납치한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대한 고문을 정보국장인 그에게 맡길 정도로 그를 신임한 바 있다.

그러나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워 과도정부를 수립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계획은 두 방향에서 저항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저항은 무바라크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저항은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야권이 술레이만 부통령 중심의 과도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러한 저항력 앞에서 고심을 거듭하며 안절부절하고 있다.

이집트에 과도정부가 세워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면 즉각 선거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선거국면을 미국에게 유리하게 조성하려면, 야권 대선후보를 여러 명 출마하도록 배후에서 공작하여 야권이 선거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야권분열을 획책할 필요가 있다. 야권을 분열시켜야 무바라크 정권의 친미-친이스라엘 정책을 계승한 민족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고찰하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이 붕괴위기에 빠졌을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 대선을 실시하도록 압박하고, 대선국면에서 야권을 김대중계와 김영삼계로 분열시켜 노태우 친미독재정권을 출범시킨 것과 똑같은 정치상황이 오늘 이집트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측에서는 범야권 연대전선을 형성하여 2012년 선거국면에 대응하여야 하는데, 1987년 6월 민중항쟁의 경험을 상기하거나 오늘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의 전개양상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12년 남측의 선거국면을 야권 사분오열과 한나라당 집권연장으로 유도하려고 은밀히 획책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노숙하고 세련된 집권전략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으므로, 이집트 야권은 이제부터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의 탄압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공작을 돌파하여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들어서고 있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추진하는 정치공작의 목표는 무바라크 대통령을 사임시켜 항쟁국면을 선거국면으로 하루빨리 전환되게 만들고 그렇게 하여 조성된 선거국면을 야권 사분오열과 민족민주당 집권연장으로 유도하려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러한 정치공작에 맞선 무슬림 형제단은 어떠한 대응전략을 추진하고 있을까? 무슬림 형제단의 유연한 전략적 대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집트의 친미정치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10년 2월 24일 그는 이집트 야권인사들과 만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여러 정치세력들이 협의체를 결성하자고 합의하였는데, 그 합의에 따라 등장한 것이 ‘변화를 위한 전국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for Change)’다. 엘바라데이는 이 협의체 대표다. 이 협의체가 2010년 2월에 등장한 것은, 정권퇴진투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반무바라크 범야권 연합전선이 이미 구축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해온 무슬림 형제단이 엘바라데이를 비롯한 친미인사들의 주도로 결성된 ‘변화를 위한 전국협의회’에 적극 참가하였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무슬림 형제단이 그 협의체에 참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갔다는 점이다. 2011년 1월 30일 무슬림 형제단은 엘바라데이를 대정부 협상대표로 내세우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엘바라데이를 반무바라크 범야권 연합전선의 대정부 협상대표로 선출하는 것은,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이후 그를 차기 정권의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이 차기 대권 도전을 스스로 포기하고, 친미인사를 범야권 대권주자로 밀어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변화를 위한 전국협의회’ 10인 운영위원회는 2011년 2월 1일 엘바라데이 대표를 대정부 협상대표로 선출하였다. 그가 대정부 협상대표로 선출된 날, 마거릿 스코비(Margaret Scobey)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가 즉각 그를 만났다.

둘째, 무슬림 형제단은 2011년 2월 3일 아랍권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알 저지라(Al Jazeera)>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현 정권이 전복되기를 요구하고, 모든 정파들이 참가하여 거국적으로 단합된 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 성명에 따르면, 무슬림 형제단의 정권교체전략은 무슬림 형제단의 단독집권이 아니라 각당각파가 참가하는 민주연립정부 수립이다. 이슬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80년 동안 피어린 투쟁의 길을 걸어온 무슬림 형제단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 기회를 만난 오늘, 단독집권전략을 접고 공동집권전략을 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무슬림 형제단이 추진하는 민주적 정권교체는 엘바라데이 대표를 대통령으로 하는 민주연립정부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무슬림 형제단의 그러한 전략적 대응행동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해온 무슬림 형제단은 왜 친미정치인 엘바라데이 대표를 지지하였을까? 이집트 국민의 지지기반이 확고한 야권 최강 정당으로, 정권퇴진투쟁을 주도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왜 단독집권전략을 접고 민주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공동집권전략을 택한 것일까?

이집트 정권퇴진투쟁이 승리하여 무바라크 친미독재정권이 무너진 뒤에, 만일 무슬림 형제단이 자기들의 지도자인 모하메드 바디에(Mohammed Badie)를 대통령으로 하는 이슬람주의 정권을 세울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집트군, 미국 중앙정보국, 친무바라크 잔당을 동원하여 신생 이슬람주의 정권을 뒤집어엎는 군사정변과 전복공작을 자행할 것이 뻔하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유지에 사활적 이익을 걸어놓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협정을 위협하는 이슬람주의 정권이 이집트에 출현하는 것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군사정변과 전복공작은 불가피할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러한 속셈을 간파하고 있다. 범야권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여 친미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내세운 민주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것 이외에 민주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다른 대안이 없는 정치현실을 무슬림 형제단은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으로 고찰하면, 1987년 6월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을 붕괴위기로 몰아넣은 정권퇴진투쟁이 일어나 이 땅에 역사상 처음 민주적 정권교체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남측 야권은 민주당과 평민당으로 갈려 서로 자기들이 단독집권하겠다고 경거망동하다가 결국 대선에서 민정당에게 완패를 당한 뼈저린 실패경험이 있다. 야권분열과 민정당 재집권을 획책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민주당과 평민당의 경거망동과 비교하면, 지금 무슬림 형제단은 80년이 넘는 자기 연륜에 걸맞게 노숙하고 세련된 집권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만 노숙하고 세련된 집권전략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도 정권교체의 결정적 기회인 대통령 선거가 내년으로 성큼 다가왔다. 남측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할 전환기를 앞두고 실시되는 대선이라는 점에서, 2012년 대선은 지난 시기에 있었던 그 어떤 대선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 야권은 2011년 9월에 실시될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반무바라크 범야권 연합전선인 ‘변화를 위한 전국협의회’를 2010년 2월 말에 결성하였는데, 이 땅의 야권은 2012년 12월에 실시될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반이명박 범야권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문제에 대해 잠잠하다. 정치탄압을 뚫고 강력한 제1야당으로 등장한 무술림 형제단은 민주연립정부를 세우기 위한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론조사에서 5% 안팎의 정당지지율밖에 얻지 못하는 이 땅의 진보정당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난제를 여태 풀지 못한 채 공동집권과 연립정부 구성의 공론화를 시작하지 못하였다.

친미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연립정부를 수립할 정권교체 기회가 이집트 정치사에 오직 한 차례만 주어지는 것처럼, 남측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할 전환기를 앞두고 조성되는 정권교체 기회도 이 땅의 정치사에 오직 한 차례만 주어진다. (2011년 2월 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