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전 위기인가 군사위원회 구성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지전 위기 속에 2011년을 맞은 워싱턴과 서울

다사다난했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2010년이 어느덧 과거 속으로 저물었다. 박두식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표현을 빌리면, “북한이 2010년 내내 동북아 전체를 쥐고 흔들었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28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압축적인 표현이지만, 북측과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제안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외면하였을 뿐 아니라, 대북 대화통로마저 차단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10년 내내 미국군 수뇌부에게 각종 북침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강행하라는 지시를 내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교란하고 정세긴장을 격화시켰다.

오바마 정부가 한반도에서 격화시킨 2010년의 긴장된 정세 흐름에 편승한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평화정책을 내던지고 대북 적대정책을 고집하다가 연말에 이르러 결국 국지전 위기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정세오판이 자승자박의 안보위기로 귀결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주변에 있는 우파 성향 전문가들도 이미 자승자박의 안보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에게 더 심각한 안보위기가 몰아닥칠 것을 우려하였다. 이를테면, 2010년 12월 27일 한나라당 황진하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서울에서 개최한 ‘2010년 대한민국 외교안보통일 송년 좌담회’에 참석한 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장, 김재창 한국국방안보포럼 공동대표, 안광찬 전직 국가비상기획위원장, 홍양호 전직 통일부 차관, 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송대성 세종연구소장 등은 이구동성으로 2011년에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비태세 및 안보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7일)

자승자박의 안보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를 보다 못한 미국은 긴급조치를 취하였다. 이를테면, 2010년 12월 8일 한국군 합참본부 회의실에서 진행된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에서 미국군 수뇌부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된 바,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국지전 작전계획과 훈련계획을 작성하고 군사적 대응에 나섰다. 그들의 군사적 대응은, 2010년 12월 20일 마이크 멀린(Mike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이 연평도 포사격훈련 강행으로 조성된 국지전 위기 속에서 미국군과 한국군의 대북 군사작전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긴급조치로 보호 받게 된 이명박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므로 대책 마련에 서둘러 나섰다. 우선 정치부문 대책은 청와대의 위기관리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2010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진행된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한 고위관리들은 기존 국가위기관리센터를 국가위기관리실로 확대, 개편하기로 의결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에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포함시키기로 의결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8일)

물론 군사부문 대책도 있다. 2010년 12월 29일 국방부는 ‘2011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였는데, 업무보고 직후 장광일 국방정책실장은 기자들에게 “김관진 국방장관은 내년(2011년을 뜻함)에도 반드시 적이 도발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시기와 방법이 문제라고 말했으며, 우선 적의 도발에 대비한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도발하면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도는, 1만5,000명-2만명 수준의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합동군 형태로 지휘할 서북해역사령부를 2011년 후반기에 창설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9일)

다른 한편, 북측은 북측대로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긴장된 작전태세를 갖추고 있다.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는 인민군의 작전태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전선돌파에 앞장서는 최정예 전차사단의 기동훈련이다. 2010년 1월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첫 번째로 시찰한 군부대는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었고, 12월 31일에 시찰한 군부대도 바로 그 전차사단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정예 전차사단의 돌파전 기동훈련현장을 1월 초와 12월 말에 각각 시찰한 것은, 국지전 위기를 조성하여 북측을 자극하는 미국군의 북침기도를 ‘선군혁명의 돌파전’으로 꺾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위와 같은 정보를 종합하면, 2010년에 조성된 한반도 국지전 위기가 2011년에 감소되지 않고 더욱 심각해질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2011년에 한반도의 국지전 위기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말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이명박 정부가 사상 최악의 안보위기에 빠진다는 뜻이다. 그들의 2011년 정세기상도는 연중 내내 매우 흐리고, 때로 우레와 폭풍우를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경축연회로 2010년을 마감한 평양

이명박 정부는 2011년에 자기들의 안보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암담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데, 그와 정반대로 북측 수뇌부는 낙관적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북측 수뇌부 내부의 분위기를 전해준 언론보도 한 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0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19주년을 맞아 경축연회를 개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1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는데, 그 이후 북측에서는 해마다 12월 24일에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해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2010년 12월 24일에 중앙보고대회가 아니라 경축연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경험을 살펴보면, 12월 24일에 경축연회를 개최한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10주년을 맞았던 2001년이 유일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들에서 국가적 경축행사는 대체로 10년 단위로 개최되는 것이 관례이며 북측에서도 그러한데, 2010년 12월 24일 북측에서는 20주년을 한 해 앞둔 19주년에 경축연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이전과 달라진 점은, 2001년의 10주년 경축연회는 인민무력부가 주최하였는데, 2010년의 19주년 경축연회는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01년 12월 24일에 개최된 10주년 경축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2010년 10월 10일 성대하게 개최된 당창건 65주년 경축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12월 24일에 개최된 19주년 경축연회에 참석하였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19주년 경축연회에 참석한 것은, 그 경축연회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의를 가졌음을 말해 준다. 19주년 경축연회의 정치적 의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19주년 경축연회의 정치적 의의는 그 경축연회에서 있은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연설에 담겼을 터인데, 북측 언론에서 그 연설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을 상기하면 그 의의를 짐작할 수 있다. 북측에서 1991년 12월 24일의 정치적 의의를 중시하는 까닭은, 바로 그 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인민군 최고사령관 지위를 물려받음으로써 군사부문에서 후계자 영도체계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24일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공동주최한 경축연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참석한 것은,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인민군 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되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맡음으로써 군사부문에서 후계자 영도체계를 확립한 것을 특별하게 경축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남측 시각을 잠시 접고 북측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런 상황이 보인다. 후계자로 추대된 김정은 인민군 대장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시한 훈련계획에 따라 한국군 해병대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포사격훈련을 강행하였을 때 대담하고 기습적인 ‘응징전’을 지휘하여 간단히 제압하고, 이어 12월 20일 미국군 합참의장이 직접 지휘한 포사격훈련에서도 담력전을 벌여 미국군 합참의장을 눌렀으니, 군사부문에서 후계자의 영도체계가 확립되자마자 불과 두 달만에 2연승을 거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찌 특별한 경축연회를 개최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패기 넘치는 20대 후반의 후계자가 서해 5도 분쟁수역의 무력대결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2연패를 당한 미국군과 한국군이 2011년에 분쟁수역에서 포사격훈련을 또 다시 강행할 경우, 더욱 공세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명박 정부를 절망적인 안보위기에 빠뜨리고 미국군 수뇌부에게 전술적 연패를 안겨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이 다각도로 설명된다.

국지전은 분쟁수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예감하는 것처럼, 2011년 한반도 군사정세를 바라보는 초점은, 한국군 해병대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또 다시 포사격훈련을 강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초미의 관심사에 맞춰진다. 서해 5도 분쟁수역의 포사격훈련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2011년 그 수역에서 재개될 포사격훈련이 11.23 포격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국지전을 촉발시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포사격훈련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위험을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세상에 알려진 대로, 원래 ‘북방한계선(NLL)’은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에게 그 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그어놓은, 한국군 해상작전의 북상한계를 규정한 통제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남측과 북측의 해상경계선이 아닌 것이다.

둘째, 지난 57년 동안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북측과 미국이 ‘북방한계선’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는데,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도 아닌 남측이 ‘북방한계선’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당사자인 북측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전협정 체제 아래에 있는 한반도에서 해상경계선을 획정하는 자격과 권한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에게 있는데, 그런 자격과 권한이 없는 남측이 우긴다고 해서 ‘북방한계선’이 어느 날 해상경계선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셋째, 미국과 남측이 해상경계선 획정에 무관심한 까닭은, 서해에 해상경계선을 그어놓을 경우 서해 5도가 북측 관할수역 안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고립되고, 서해 관문인 인천이 항구 기능을 잃어버릴 것으로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천에 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FEZ)을 건설하고, 평택항을 평택 미국군기지로 직통하는 군항으로 개조한 뒤에 미국과 남측은 서해 해상경계선을 획정하는 문제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넷째, 북측은 서해에 해상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어놓았지만, 미국과 남측은 일방적인 해상경계선을 그어놓지 않았다. 그에 따라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는데, 첫 번째 결과는 서해 5도 분쟁수역에 북측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해상분계선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결과는 인민군이 서해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측의 해상분계선까지 남하하거나 ‘북방한계선’과 북측의 해상분계선 사이 해상으로 포를 쏘는 경우, 남측은 인민군의 그러한 군사행동을 남측의 해상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할 만한 아무런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과는 반대로, 북측은 서해 해상분계선을 그어놓았으므로, 만일 한국군이 북측의 서해 해상분계선을 넘어 북상하거나 또는 북측의 그 선 북쪽 해상을 향해 포를 쏘는 경우, 북측의 견지에서 볼 때 한국군의 그러한 군사행동은 명백하게도 북측의 해상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서해 5도 분쟁수역의 무력충돌은 여러 차례 일어났다. 1999년 이후 함상포격전이 세 차례 있었고, 201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지상포격전도 있었다. 그렇지만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일어난 함상포격전이나 지상포격전은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지난 시기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일어난 함상포격전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은 까닭은,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협력정책이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고집하고 있으며,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 대화통로를 차단하고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중이며, 최근에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미국군 합참본부의 지시에 따라 한반도 국지전 계획까지 작성하였다. 이것은 2011년에 일어날 서해 5도 분쟁수역의 무력충돌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것임을 예고한다.

서해 5도 분쟁수역의 무력충돌은 그 자체가 국지전이 아니라 국지전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서해 5도 분쟁수역의 무력충돌을 도화선으로 하여 일어날 국지전은 그 분쟁수역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국지전이 어느 지역에서 일어날 것인지 예상할 수 있을까? 쌍방이 중무장하고 대치하는 군사분계선(DMZ) 일대 최전방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는 경우, 중무장한 병력이 충돌하면서 전면전으로 폭발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국지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따라서 국지전은 남측 후방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분계선 최전방 지역에서 중무장한 병력이 충돌하는 고강도 전쟁이 전면전이라면, 후방 지역에서 경무장한 병력이 충돌하는 저강도 전쟁은 국지전이다. 국지전은 서해 5도 무력충돌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저강도 전쟁인 것이다.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는 까닭은, 북측과 미국이 핵억지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장국끼리는 공멸위험이 큰 핵전쟁을 피하는 법이다.

2011년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국지전 시나리오를 간추리면,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11.23 포격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무력충돌이 전개되어 한국군 전투기들이 인민군 해안포 진지를 공습하는 경우, 인민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남측 후방에 기습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최전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 사실상 거의 무방비상태로 방치해둔 남측 후방이 인민군 기습공격으로 뚫리는 것, 바로 이것이 국지전 시나리오의 전개양상인 것이다.

국지전 위기는 어느 정도 심각한가?

국지전 위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는 두 가지 정보가 있다.

첫째,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발언과 그와 관련된 남측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2010년 12월 11일 간 나오토 총리는 “자위대 수송기로 (남측에 있는 일본인을) 구출하려 해도 양국 간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 한국과 안전보장에 관한 협력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만큼 조금씩 협의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한 발언과 관련하여 남측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미국과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의 대피대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대피시키는 대상에 일본인을 포함시키는 문제, 미 군용기를 이용하는 문제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년 12월 13일)

미국과 일본이 남측에 있는 미국인과 일본인을 일본으로 긴급 대피시킬 합동대피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때는 제2차 핵위기가 고조된 2003년 1월이었는데(요미우리신붕 2003년 1월 22일), 지금은 그 합동대피계획에 따른 실행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과 일본이 국지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동향에 대한 한국군 지휘부의 예민한 반응이다. 한국군 소식통은 “북한군 전방사단의 병력들이 얼룩무늬 군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 올해(2010년을 뜻함) 처음으로 식별됐다. 전방의 특수전 병력들이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기습침투에 대비하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8일) 또한 한국군 관계자는 “올해(2010년을 뜻함) 4월 처음으로 북한군 전방사단 병력들이 얼룩무늬 군복을 착용한 것이 식별된 뒤 그 수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년 12월 29일)

특수전 부대는 국지전을 수행하는 전투단위이므로, 한국군 지휘부가 인민군 특수전 부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국지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준다.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은 인민군 특수전 병력은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행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얼룩덜룩한 위장무늬 전투복을 입고, 저고도 방공무기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1개 분대 특수전 전투병력이 병력수송차량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하고 강과 바다와 산악을 넘나들며 적진 후방에 침투하여 군사거점을 파괴 또는 점령하고 적군을 살상 또는 생포하는 고난도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최정예 병력이다.

그런데 열병행진 현장을 찍은 사진을 확대해보면, 열병행진에 등장한 인민군 탱크 ‘천마호’와 ‘폭풍호’ 정면에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 미제침략자를 소멸하라!”는 구호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인민군 전투부대는 그 전투구호를 열병행진 때 전시하기 위해 부착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부착하고 있다. 그 전투구호가 말해주는 것처럼, 인민군의 주적은 한국군이 아니라 미국군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적진 후방에 침투하여 점령하려는 군사거점은 주한미국군기지이며, 그들이 생포하려는 적군은 주한미국군이다. 인민군 특수전 부대가 백령도나 연평도에 기습 상륙할 것이라는 최근 남측 언론보도는 인민군의 특수전 전략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다.

만일 2011년에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기습 점령하는 대상은 국지전 수행의 핵심거점인 주한미국군기지들이다. 서울에 있는 용산기지(Yongsan Garrison)와 경기도 평택시 송탄에 있는 오산기지(K-55)가 국지전 수행의 핵심거점들이다. 용산기지에는 국지전을 지휘하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있고, 서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미국 공군기지인 오산기지에는 미국군 5,300여 명과 미국군 가족 등 11,0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아무리 국지전이라 해도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떨어진 용산기지와 오산기지를 인민군이 기습 점령하는 시나리오는 전쟁소설에서나 나올 이야기라고 그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것은 인민군의 국지전 대응전략을 모르는 소리다. 만일 미국군이 한국군을 앞세워 국지전을 도발하는 경우, 인민군 특수전 병력은 공중, 수상, 수중, 지상, 지하를 망라하는 5차원 기습침투로를 용산기지와 오산기지를 향해 방사선형으로 뚫고 기상천외한 ‘총폭탄 기습점령전’을 벌여 순식간에 점령할 것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인민군 특수전 병력을 단련시켜온 각종 고강도, 고난도 훈련은 그 두 기지를 기습 점령하는 실전연습이었다.

그런데 용산기지와 오산기지에는 미국군 제8헌병여단 산하 제728헌병대대가 담장과 철책을 지키고 있을 뿐, ‘총폭탄 기습점령전’을 막아낼 자체 방어력을 갖추지 못했다.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만일 2011년에 국지전이 일어나 용산기지와 오산기지가 인민군 특수전 병력에게 기습 점령당하면, 교전과정에서 수많은 미국군이 살상당하고 미국군 10,000여 명이 기지 안에서 생포될 것이다. 생포된 미국군을 구출하는 작전은 한국군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미국 본토에서 미국군 특수전 병력을 긴급히 공수 투입해도, 인민군 특수전 병력과 미국군 특수전 병력의 치열한 공방전에서 미국군 포로들은 전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자국 포로를 구출할 방도는 없다. 미국이 자국 전쟁포로를 구출할 유일한 방도는 북측과 직접 협상을 벌이는 것밖에 없다.

북측과 미국의 직접 협상, 바로 그것이 북측이 2011년 국지전에서 얻을 최상의 ‘전리품’이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듯이, 북미 직접 협상은, 북측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담보하고, 미국이 북측에게 간청하는 미국군 전쟁포로 석방을 담보하는 정치적 합의에 이를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선 2011년의 양자택일

북측 시각으로 바라보면, 미국군이 한국군을 동원한 가운데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북침전쟁연습이 가뜩이나 불안한 정전체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전체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 인민군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억지한 상태, 바로 이것이 현 시기 한반도 군사정세다. 만일 인민군의 전쟁 억지력이 약해지면, 불안정한 정전상태는 깨지고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군이 대응연습에 열중하는 이른바 ‘급변사태 시나리오’에 나오는 ‘급변사태’란, 인민군의 전쟁 억지력이 약해지는 상황을 뜻한다.

북측이 군사력을 강화하여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고, 그 억지력으로 미국군이 주도하는 각종 북침전쟁기도를 억지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은 평화체제가 아니라 정전체제다. 전쟁 억지력으로 유지되는 정전체제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 만인이 바라는 진정한 평화가 실현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려면,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책임 당사자들이 만나 평화협정 체결을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합의해야 한반도 비핵화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비핵화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북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제안과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제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2010년 1월 11일 북측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은 맨 마지막 문장에서 “정전협정 당사국들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 비핵화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더 이상 자국의 리익부터 앞세우면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대담하게 근원적 문제에 손을 댈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였고, <로동신문> 2010년 7월 19일부에서는 “미국은 현실을 통하여 그 취약성과 허황성이 드러난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의 공명정대한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하루빨리 성근하게 응해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촉구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미국이 태도를 바꿔 북측 제안에 응하면 문제는 아주 간단히 풀릴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인식전환과 태도변화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태도를 바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북미 정치회담을 개최하기로 결정하면, 평화협정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는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급진전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정치적으로 합의하는 정치회담을 한반도 평화회담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반도 평화회담에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각종 군사문제를 조절하고 해결하기 위한 협의기구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 협의기구를 군사위원회라고 부를 수 있다. 2010년 12월 국지전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비공식 특사로 평양을 급히 방문한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당시 뉴멕시코주 지사는 방북을 마친 뒤 미국 기자들에게 “북측, 남측, 미국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군사위원회 구성을 고려하기로 북측이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CNN 2010년 12월 20일)

국지전 위기인가 아니면 군사위원회 구성인가. 북측 국방위원회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양자택일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2011년 1월 3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