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포기한 진보의 미래는 어둡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1년 전과 비교해 뭐가 달라졌을까?

2011년 8월 27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추진위에 참가한 정당과 단체들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구성하겠다고 합의하였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두 개 운동권 정당과 아홉 개 운동권 조직들이 진보정당을 세우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추진위를 구성한 두 개 운동권 정당과 아홉 개 운동권 조직이 세울 진보정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명백하게도, 그들이 세울 진보정당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운동권을 대표하는 진보정당 곧 운동권 진보정당이다. 추진위를 구성한 운동권 정당들과 운동권 조직들은 자기들이 대중의 정치적 대표체라고 자임하지만, 그들이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대중은 소수의 선진적 대중이지 다수의 각계각층 대중이 아니다. 추진위를 구성한 운동권 정당들과 운동권 조직들이 다수의 각계각층 대중을 정치적으로 대표한다고 자인하는 것은 한낱 자기 최면일 뿐이지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현실이 아니다.  

추진위가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하지만, 11년 전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을 가진 운동권 진보정당을 창당할 때와 오늘 그들의 형편을 비교하면 뭐가 새롭게 바뀌었을까? 11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협소한 운동권 안에서, 운동권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을 건설하려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질적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추진위는 그 동안 통합협상과정에 겪었던 우여곡절을 넘어 이제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고무되었지만, 정작 새로운 것은 없고 구태의연을 되풀이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양적 변화인가 아니면 질양적 변화인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진보정당 11년 경험은, 진보정당을 혁신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보의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게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 그리하여 ‘진보정치대통합’이란 말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자기 혁신을 뜻하였다.  

원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생각한 혁신은 분당사태로 나뉘어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다른 진보세력들과 함께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2011년 5월 31일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가 긴 토론 끝에 합의문을 채택할 때까지만 해도, 혁신은 운동권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될 수 없었다. 물론 분당사태로 나뉘어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고, 거기에 다른 진보세력들이 참여하는 것이 혁신임은 분명하지만, 그런 혁신은 운동권 내부의 양적 변화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이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고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혁신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고, 통합의 판을 새로 짜게 된 것이다. 운동권끼리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던 1차 혁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통합하여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2차 혁신이 ‘새 판 짜기 과제’로 나서게 되었다. 1차 혁신이 기존 판을 새롭게 짜는 양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면, 2차 혁신은 아예 판 자체를 새롭게 짜는 질양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하기 위한 소정의 절차를 마친 뒤에 통합진보정당 건설에서 제기된 새로운 쟁점은 명백하다. 운동권끼리 또 다시 운동권 진보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통합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하는 쟁점이 제기된 것이다. 바로 이 쟁점을 둘러싸고 연석회의 안에서 지루하게 논쟁만 벌여오다가 결국 또 다시 운동권 진보정당을 건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연석회의는 질양적 변화를 일으킬 2차 혁신을 추진했어야 마땅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격렬한 내부논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자기들이 결정한 연석회의 합의사항마저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진보신당의 허구적 보수론

질양적 변화를 일으킬 2차 혁신을 거부하면서 격렬한 내부논쟁을 촉발하여 연석회의 합의사항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 일차적 책임은 진보신당에게 있다. 진보신당이 질양적 변화를 일으킬 2차 혁신을 거부한 논리는, ‘사이비 진보’에 대해 구분선을 뚜렷이 긋고 ‘진보의 정체성’을 보전하여 지켜야 한다는 보수론으로 압축될 수 있다. 보수라는 말은 원래 보전하여 지킨다는 뜻인데,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보수론은 양적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질양적 변화는 거부한다는 논리다. 그들의 보수론에 따르면, 질양적 변화는 진보의 혁신이 아니라 사이비 진보의 변질이므로, 혁신과 통합은 양적 변화 이상으로 나갈 수 없고, 나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보수론이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추진위를 구성한 두 개 운동권 정당과 아홉 개 운동권 조직들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때 일어날 질양적 변화가 과연 사이비 진보의 변질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진보신당의 보수론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통합과정에서 일어날 질양적 변화를 사이비 진보의 변질로 끌어갈 만큼 강력한 힘이 국민참여당에게 있다는 것을 진보신당 보수론자들이 논증해야 하며, 두 개 운동권 정당과 아홉 개 운동권 조직이 통합과정에서 국민참여당에게 질질 끌려가 변질위험에 빠질 만큼 허약하다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사리를 분별하는 정상인이라면, 진보신당 보수론자들이 위의 두 물음을 논증할 수 없으며, 되레 반대의 논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보수론은 진보신당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이 우려사항으로 제기할 만한 것이다. 진보신당의 보수론은 너무도 허구적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허구적인 보수론을 들고 나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민주노동당은 그들의 몽니 사나운 허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새로운 판을 짜는 혁신을 포기하고 기존 판을 짜는 보수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17%를 양보하지 못하는 진보정당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신당의 보수론자들은 양적 변화와 질양적 변화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질양적 변화를 거부하고 양적 변화만 추구하고 있다. 무지 때문이 아니라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들이 허구적인 보수론 뒤에 감추고 있는 진짜 사연은, 모든 정당건설사 경험에서 예외 없이 불거지는 당권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의 당직을 50 대 50으로 나누자는 식으로 당권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한 장본인이다. 순전히 산술적 계산법으로 따지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을 주도하는 경우 당권을 50 대 50으로 나눌 수 있지만, 국민참여당까지 통합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당권을 33%씩 나누게 된다. 진보신당은 당권 17%를 국민참여당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당에서나 당권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진보신당이 통합과정에서 당권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도 당연히 당권문제를 중시한다. 하지만 자기들의 당권문제를 혁신과 통합보다 더 앞세우고, 당권추구를 사고와 행동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당권을 추구하되, 혁신과 통합을 위해서라면 당권의 17% 정도는 흔쾌히 양보할 수 있어야 진보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 땅의 수구정당들에게 혁신과 통합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당권추구에 혈안이 되어 혁신과 통합을 서슴 없이 배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을 자처하면서 혁신과 통합보다 당권추구를 더 중시하는 것은 진보정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기배반이 아닐까.

추진위를 주도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국민참여당과 함께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느냐 아니면 구태의연한 운동권 진보정당을 건설하는냐 하는 당면과업은, 진보신당의 허구적 보수론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당권문제에 걸려 실패위험에 빠졌다. 누가 그 실패위험을 돌파하고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민중의 소리 2011년 8월 29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