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2012년을 앞둔 정세 변화를 읽다

한호석(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강민화(재일 대동연구소 소장)

 

이 대담은 2011년 8월 14일, 일본 도쿄에 있는 강민화 대동연구소 소장이 전자우편을 통해 제기한 질문에 대해 미국 뉴욕에있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1세기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한 정치 일정이 다가오고 있다

강민화 -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접촉하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남측 외교장관과 북측 외무상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곧 이어 북측 외무성의 김계관 제1부상이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하고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모두 이번 일을주목하고 있을 때, <통일뉴스>에 이에 관한 한호석 소장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소장님께서는 그 글에서 남측은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내키지 않았으나 북측과 만난 것이고, 북미 고위급회담은 그 동안 벌어진 북미대결에서 승자(북)와 패자(미)의 만남이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번 일이 우리나라 정세발전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달러제국, 핵제국 미국의 쇠퇴

한호석 - 역사에는 양적인 시간의 축적만 있는 게 아니라, 질적인 시간의 분출도 있습니다. 엄청난 힘이 분출되어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놓는 결정적인 기회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느 민족이나 그런 기회를 살리면 흥성하게 되고, 그런 기회를 놓치면 쇠망하는 법입니다. 인류사에 남겨진 수많은 민족의 흥망성쇠 자취들은 그러한 운동법칙이 작용해왔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민족에게도 21세기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한 정치일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2012년의 의미를 2011년 다음에 오는 연대기적 시간개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정치적 변화의 의미로 측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래와 같은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1946년에서 1948년에 이르는 3년 동안에 우리 민족의 20세기 운명을 결정지은 중대한 정치일정이 집중되었던 것처럼, 2012년 이후 몇 해 동안의 기간은 우리 민족의 21세기 운명을 결정할 또 다른 중대한 정치일정이 집중될 것입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3년 동안 미국은 우리나라를 분할하여 그 절반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우리 민족을 남북대결로 끌고 갔습니다. 미국의 분할지배와 남북대결은 불행하게도 전쟁과 분단의 장기화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60년이 넘도록 우리 민족은 미국의 분할지배, 남북대결, 정전상태로 이어져온 20세기의 고통스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미국의 분할지배, 남북대결, 정전상태로 이어져온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명무명의 투사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렸습니까!

우리 민족이 겪어온 20세기의 고통스러운 운명이 미국의 분할지배, 남북대결, 정전상태로 이어져온 것이라면, 이제 그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반대 순서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 순서는, 정전상태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는 과정, 남북대결에서 벗어나 민족화해를 실현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과정, 미국의 분할지배에서 벗어나 자주화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연이어 펼쳐질 것입니다.

미국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3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고통스런 운명을 강요하였던 시기에 미국의 국력은 인류 역사상 최강 수준이었습니다. 과거 강대했던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의 국력도 당시 미국의 국력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결사적으로 투쟁하였는데도, 미국의 분할지배책동을 저지할 수 없었던 까닭은, 당시 미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국력을 집중하여 우리나라를 분할지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때 강대했던 미국의 국력이 쇠퇴양상을드러냈습니다. 이를테면, 2011년 8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71년만에 처음으로 AAA에서 AA+로 내려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를 지배해온 달러제국의 쇠퇴양상이 객관적 경제지표로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위축을 재촉하고, 위기를 겪는 세계 금융시장은 또 다시 미국의 경제 전반에 타격을 안겨줄 것입니다. 이러한 재촉과 타격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달러제국은 차츰 무너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사상 처음으로 내려간 바로 그 다음날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미국이 보유한 최첨단 전폭기 F-22 랩터(Rator) 158대 전부가 지난 5월 3일부터 무기한 비행금지조치에 묶여 이륙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여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첨단 전폭기는 대당 가격이 4억1,200만 달러나 하는 세계 최강 전폭기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산소공급장치(OBOGS)에서 결함이 나타났고, 스텔스(레이더망을 피하는 위장기술)에서도 허점이 나타난 것입니다. 산소공급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비행 중인 조종사가 의식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고, 스텔스 기술에 허점이 있다는 말은 전폭기 동체에 덧칠한 특수도료가 빗물에 씻겨내릴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F-22는 2009년 3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공을 날다가 사막에 추락하였습니다. 사상 최강이라는 F-22가 시험비행이 아니라 작전비행 중에 추락한 미국 건국 이래 최초의 불명예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2011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을 맞은 바로 그 날, 미국이 실시한 발사실험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III 한 발이 발사대를 떠난 지 5분 뒤에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켜 태평양 상공에서 폭발하였습니다. F-22의 무기한 비행금지와 미니트맨 III의 공중폭발은첨단무기를 휘두르며 세계를 지배해온 핵제국의 쇠퇴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놀라운 사건입니다.

미국과의 대결에서 전술적 승리를 거둔 북

달러제국과 핵제국으로 행세하며 세계를 쥐락펴락해온 미국에게 우리나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우리 민족의 강력한 저항을 짓누르며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나라를 분할지배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달러제국과 핵제국으로 행세해온 미국이 쇠퇴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오늘, 북미관계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쇠퇴양상과 북미관계의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치현상일까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북측과 정면대결을 펼쳐왔습니다. 그 대결은 이미 3년 동안 격렬한 전쟁으로맞붙었던 북측과 미국이 장기화된 정전상태에서 각기 국력을 집중하여 벌여오는 운명적 대결입니다. 그 대결은 말싸움이 아니라 국력 대 국력의 충돌입니다.

그러한 북미대결에서 북측이 이번에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미국은 북측의 양자회담 제안을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를 슬그머니 포기하였고, 북측이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해야 한다는 복귀선행원칙도 슬그머니 포기하였고, 결국 북측의 요구에 따라 북미 고위급회담에 끌려나갔습니다. 누가 봐도, 그러한 미국의 행동은 정치적 굴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측과 미국은 1993년부터 '핵문제'를 둘러싸고 정면대결을 벌여왔는데, 그 동안 북측이 여러 차례 전술적 승리를 거두며 정세를 변화시켰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미국은 북측이 거둔 전술적 승리를 번번이 뒤집고 북미관계를 원점으로 돌려놓곤 하였습니다. 지난 시기에 북미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는 듯하다가,다시 주저앉아버린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측이 미국과의 정면대결에서 거둔 전술적 승리는 이전에 거둔 전술적 승리와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뚜렷한 쇠퇴양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와 정반대로 북측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뚜렷한 부흥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바로 그러한 때에 북측이 미국의 오만과 고집을 꺾고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 과거와 다릅니다. 이것은 북측의 이번 전술적 승리가 장차 전략적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미국의 이번 전술적 패배가 장차 전략적 패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합니다. 이 승패문제와 관련하여 객관적 사실을 좀 더 분석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에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미국에게 제시한 의제입니다. 그 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의제는 평화의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측과 미국이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일련의 동시행동을 취하자는 의제입니다.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취할 일련의 동시행동은 결국 평화협정 체결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까지 조미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고, 복잡한 과정도 거칠 것으로 예견하지만, 정세변화가 평화협정과 조미 정상회담을 향해 추진방향을 잡고 첫 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는 위에서 우리 민족의 20세기 운명이 미국의 분할지배, 남북대결, 정전상태 순으로 결정되었다고 보고,그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역순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전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인데, 이번 조미 고위급회담은 바로 그 역순을 밟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가 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역사적인 문서를 찾아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것은 1974년 3월 25일에 발표된 문서입니다. 37년 전에 발표된 이 문서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북측이 그 문서에서 처음으로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였기때문입니다. 북측은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던 1953년 7월 27일 이후 지속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해왔습니다만, 그 때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남측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안을내놓았습니다. 북측은 1974년 3월 25일에 발표한 역사적인 문서에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역사적인 문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가 성과적으로 해결될 때에 조선의 북과 남 사이의 관계에서도 개변이 일어날 것이며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것처럼, 20세기의 고통스러운 운명을 과거사의 역순으로 풀어가는 첫 매듭이 평화협정 체결에서 풀리게 된다는 점을 37년 전에 발표된 이 역사적 문서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측은 왜 1974년 3월 25일 이전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 까닭은, 북측의 표현을 빌리면, "남조선 강점 미제침략군을 오직 무력으로 격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군사적 해결에 확고한 입장을 지녔으므로 미국에게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던 것이죠.

북은 왜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을까?

그런데 북측은 왜 1974년 3월 25일 이후부터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해오는 것일까요? 그까닭은, 북측이 우리나라의 근본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북측이우리 나라의 근본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고 해서, 그 근본문제를 군사적으로해결하려는 기존 전략을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근본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기존전략을 유지한 채, 그 근본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정확히 표현하면, 군사력이 안받침해주는 강력한 평화전략을 밀고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측이 이처럼 대미관계에서 새로운 평화전략을 밀고 나가게 된 것은 당시 급변하고 있었던 내외정세를 반영한 능동적 조치였습니다. 그 당시 정세변화를 살펴보면, 1971년 8월 15일부터 미국이 금태환 금지조치를 시행하자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의 통화체제에 의존해온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무너졌고, 1973년 제1차 석유위기가 미국 경제를 강타했습니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미국이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이것은 달러제국과 핵제국으로 행세하던 미국의 지위가 추락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명백하게도, 미국의 금태화 금지조치 시행, 제1차 석유위기, 미국-베트남 평화협정 체결은 미국의 국력이 쇠퇴양상을 드러낸 3대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세계적 범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전폭기가 비행금지조치를 당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오작동을 일으킨 사건이 미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말해준 것과 똑같은 사건들이 1970년대 초에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1970년대 초 북측의 사회주의경제는 최전성기였습니다. 1973년 9월 5일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건설한 평양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1974년 3월 20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최고인민회의제5기 3차회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미 평화협정 제안을 담은 공개서한을 채택한 것과 아울러 세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였습니다. 평양 지하철 개통과 세금제도 폐지는 북측의 경제발전수준이 아주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사변입니다. 오늘 북측에서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섬유를 생산하고, 기계공업의 CNC화를 달성하고, 대형 수력발전소들을 건설하고, 평양에 10만 세대 살림집을 건설하고, 농업과 경공업의 생산능력을 장성시킨 것과 똑같은 경이적인 사변들이 1970년대 초에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북측은 미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북측의 국력이 강해졌던 1974년 3월 25일 미국에게 평화의제를 제시하였고,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오늘 미국의 국력이 더욱 쇠퇴하고 북측의 국력이 더욱 강해진 시기에 미국을 고위급회담으로 끌어내어 또 다시 평화의제를 제시하였습니다. 1974년의 평화의제는 북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미국이 무시해버린 것이었지만, 2011년의 평화의제는 북측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고제시한 것입니다. 미국의 국력쇠퇴와 북측의 국력강화에 비례하여 발생한 엄청난 차이가 돋보입니다.

올 여름부터 북측은 대미협상을 진행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평화의제를 관철할 것입니다. 그것도 앞으로 5년 안에 평화의제를 관철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지 70년이 되고, 북측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지 65년이 되는 2015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남의 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강 - 두 번째 질문입니다. 다음으로, 이남의 정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벌써 권력누수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문제, 미군의 고엽제 매몰 발각, 정부의굴욕외교가 초래한 일본의 독도강탈 움직임의 노골화 등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더 높아가야 하겠는데, 어쩐지 기대에 못 미치는 상태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합니다만, 6.15 통일시대의 흐름을 다시 잇게 할 만큼 통일운동이 앙양될 기색까지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들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을 보고 정치정세발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됩니다만, 이남의 현 정세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남북대결 해소와 민족화해, 평화통일 과제의 해답은 정권교체

한 -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민족의 20세기 운명을 두 번째 순서로 결정지은 요인은 남북대결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이 남북대결에서 벗어나 민족화해를 실현하고 평화통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명쾌합니다.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남북대결로 나아간 이명박 정권을 갈아치우고, 민족화해를 실현할 새로운 정권을 세워야 합니다. 정권교체가 해답입니다.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비록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대결에서 화해로 차츰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족점도 있었지만, 그런 이동현상은 남북관계에서 대결지수를 낮추고 화해지수를 상당히 높혀주었습니다. 평화통일운동사에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민족화해가 어느 수준으로 실현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객관적 지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10년 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민족화해의 공든 탑을 이명박 정권이 무참히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시기 김영삼 정권은 태생적인 반북대결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그쳤지만, 이명박 정권은 반북대결정책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10년 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민족화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쁩니다.

반북대결정책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이명박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바꾸는 정권교체는 2012년 4월 11일 남측에서 실시될 총선과 12월 19일에 실시될 대선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남측에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편성된 수구정치세력이 여전히 위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보면 수구정치세력은 반통일세력이고, 한미관계에서 보면 수구정치세력은 종미예속세력입니다. 이 세력이 권력과 자본과 언론을 장악, 통제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힘입니다.

야권분열을 무조건 극복하고 연대연합부터 실현해야

그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수구정치세력에 맞서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야당진영은 5개 정당으로 분열되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야권분열은 곧 선거패배를 의미합니다. 내년에 정권을 교체하려면 무조건 야권분열을 극복하고 연대연합부터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야당들이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성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야당들이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야 민심이 떠나버린 이명박 정권을 선거판에서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3당합당으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고, 그렇게 건설된 진보통합당이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실현하여 이명박 정권을 갈아치우자는 것이 2012년의 정권교체 시나리오입니다. 이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권교체 시나리오로 생각됩니다. 지금 남측 정치정세가 그런 시나리오에 따라 착착 전개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이 희망과 요구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2012년 정권교체시나리오를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습니다.

첫째,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은, 진보신당이 3당합당을 반대하여 진보통합당건설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진보신당은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자기들과 민주노동당의 2당합당으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3당합당으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여론지지율에서 민주당을 앞질러 제1야당으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3당이 분열되어 있으면, 민주노동당 6.3%, 국민참여당 5.1%, 진보신당3.3%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기 때문에 모두 합해도 14.7%밖에 되지 않지만, 3당이 합당하면 지지율이 27.8%로 급증하여 민주당의 지지율 21.4%보다 높아집니다. 또한 2011년 총선에서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연대하지 못하고 각각 독자후보를 내세우는 경우 총선후보 지지도는 진보통합당이 26.2%, 민주당이 23.7%을 각각 얻게 되어 한나라당 총선후보 지지도 33.4%를 넘어설 수 없지만,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연대하여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우는 경우 그에 대한 지지도는 51.7%로 급증하여 한나라당 총선후보에 대한 지지도 34.7%를 크게 앞서게 됩니다.

이 여론조사결과가 잘 말해주는 것처럼,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지는 것이 너무도 분명한데, 진보신당은국민참여당을 배제하면서 2당합당이라는 패착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은 2당합당과 관련하여 몇 가지 구실을 대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당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3당합당을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이 분단과 통일, 예속과 자주,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1946년에도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의 진보정치역량은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남측에서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1946년 정치정세에서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이 3당합당을 실현하여야 미국이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단선단정전략을파탄시키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3당합당을 실현하여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3당합당이 1946년이나 오늘이나 사활적 정치문제로 제기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자료에서 나타나듯이, 가장 열성적으로 3당합당을 추진한 사람은 몽양 여운형 선생입니다. 1946년 8월 3일 여운형 선생이 위원장으로 있는 조선인민당 중앙집행위원회는 공식문서에서 "3개 당을 1개 정당으로 통일할 것을 제안"하면서 "로동자, 농민, 소시민, 인테리 등 모든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는 신민당, 공산당, 인민당의 합동은 조선민족통일의 기초를 구축하고 민주진영의 주도체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3당합당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여운형 선생을 암살하였고, 단선단정전략을 밀고 나가 우리나라를 분할지배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원통하기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그로부터 꼭 65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는 또 다시 3당합당이라는 어려운 과업이 주어졌습니다. 65년 전에 있었던 가슴 아픈 3당합당 실패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번에도 3당합당에 실패하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길이 얼마나 더 멀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중대한 합당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제시하고 2000년에 창당된 이후 10년 동안 불굴의 투쟁을 계속해온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을 설득하여 3당합당을 원만히 실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총선준비일정을 계산하면, 설득과 합의에 주어진 기간은 올 9월 초까지입니다. 올해 여름, 우리는 65년 만에 두 번째로 찾아온 중대한 정치적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난재 해결의 힘은 대중에게 있다

둘째,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걸림돌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직 한나라당대표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벌써 몇 년째 30%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안정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다른 대권주자들은 10%를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1위와의 지지율 격차가 너무 벌어졌습니다. '선거의 여왕'을 상대할 맞수가 전혀 없는 이런 기현상을 '박근혜 대세론'이라 부릅니다.

'박근혜 대세론'에서 드러나는 더 놀라운 사실은,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야권단일후보중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설문을 가지고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더니, 박근혜 후보 지지율 54.5%, 야권단일후보 지지율 37.1%, 무응답 8.4%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도 '선거의 여왕'을 꺾을수 없다는 뜻입니다. '박근혜 대세론'은 내년 대선에서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넘어야 할 가장 험하고 높은 산입니다.

3당합당으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고,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하고, '박근혜 대세론'을 돌파해야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할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두 말할 나위 없이, 대중에게서 나옵니다. 대중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난제를 풀어줄 역량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그 무한대한 역량을 분출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당면임무입니다.

물론 대중은 아무 때나 자기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거대한 군중이 서울도심에 운집한 촛불시위투쟁에서 경험한 것처럼, 어떤 '뇌관'이 폭발하는 순간 대중의 마음이 움직여 무서운 힘을 분출하는 법입니다. 비록 촛불시위투쟁처럼 무서운 힘을 분출하지는 못하더라도, 선거국면은 언제나 대중의 마음이 움직이는 중요한 계기로 됩니다. 진보통합당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력적인 선거전술을 개발하면, '박근혜 대세론'을 돌파하고 대선승리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진보통합당은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처럼 어렵고 힘든 과업을 수행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문제는, 1980년 대 이후 근 30여 년 동안 남측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우리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이중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투쟁하며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온 남측의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올바른 정세판단과 완강한 실천력이 2012년 정권교체를 향한 우리 모두의 희망의 근거이며 승리의 비결입니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자기 한 생을 바쳐 투쟁하는 이름 없는 그들에게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마음 속에서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낼 것입니다.

'종북'탄압은 현대판 마녀사냥

강 - 세 번째 질문입니다. 요즈음 이남의 언론보도에는 '종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민족 최대 숙원인 조국통일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이 '종북'이라는 말을 조작하고 퍼뜨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북을 추종한다는 것인데,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종북주의자'라는 '불온딱지'를 붙여 정치적으로 탄압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이남에서 벌어지는 '종북주의 탄압소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한 - 지금으로부터 527년 전인 1484년 12월 5일 카톨릭 교황 이노슨트 8세가 마녀의 존재를 인정한 회칙을 발표하였는데, 그로부터 3년 뒤에 마녀를 색출하여 처형하기 위한 지침서가 독일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그 지침서는 교회에 나가기 싫어하는 여자를 마녀로 지목하였고, 교회에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다니는여자도 마녀로 지목하였습니다.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 식입니다. 지침서에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싫어하는 여자나 열성적으로 다니는 여자들이 마녀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고문집행자들은 끌려온 여자들에게서 마녀의 흔적을 찾는다고 하면서 발가벗기고 온 몸의 털을 모조리 깎은 뒤에 고문대에 묶어놓고 온 몸을 바늘로 찔렀습니다. 심판관들은 바늘에 찔리며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마녀라고 판정하였고, 바늘에 찔리면서도 참고 견디는 여자들은 손발을 묶어 마녀욕탕이라는 물 속에 쳐넣었습니다.거기서 익사하지 않고 떠오르면 마녀라고 판정하였습니다. 악독한 중세기 살인마들은 마녀로 판정한 여자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였고, 그렇게 살해당한 여자의 재산은 그 여자를 고문한 관리들이 상금으로 가로채었습니다. 1450년부터 1750년까지 300년 동안 유럽 전역과 독립 이전의 미국에서 마녀재판은 80,000회 이상 열렸고 40,000 명에서 60,000 명에 이르는 무고한 유럽여인들이 마녀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잔혹하게 처형되었습니다. 처형자 수가 100,000 명이 넘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이 중세기 살인마들이300년 동안 저지른 마녀사냥(witch-hunt)입니다. 짐승도 낯을 붉힐 야만과 광란과 포악의 극치입니다. 마녀사냥을 가장 먼저 금지한 나라는 영국인데, 1735년에 가서야 마녀사냥을 법으로 금지하였습니다.

그런데 280년 전 유럽에서 금지된 마녀사냥이 21세기에 되살아났습니다. 교황의 회칙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마녀가 아니라 진보정치활동가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중세기적 야만과 광란과 포악이 지금 이명박 정권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마녀사냥을 지휘하는 검찰총장의 말을 들어봅시다.

2011년 8월 12일 한상대 검찰총장은 대검청사에서 진행된 자신의 취임식에서 "자유민주적 가치의 우수성이 여실히 증명된 지 오래임에도 아직도 북한에 대한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라고 하면서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하고,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한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총장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을 '종북주의자'라로 몰아 극심한 탄압소동을 피우려고 작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48년 이후 63년 동안 남측에서 역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고문당하고, 투옥당하고, 처형당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신임 검찰총장이 '종북주의자들'과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아예 선전포고까지 하였으니 경악과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63년 동안 남측에서 역대 독재정권들이 날조한 '마녀의 이름'은 시대상황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기에 저들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활동가들을 '빨갱이'라고 불렀는데, 반독재민주화운동이 힘있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는 '급진좌경세력'이라 부르더니,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이 힘있게 전개되자 '친북좌파'라고 바꿔불렀고, 지금은 '종북주의자'라는 신조어를 꺼내들었습니다.

국정원이나 검찰이나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종북주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중세기에 '마녀'들이 그렇게 당한것처럼, '국가보안법'이라는 극악무도한 현대판 마녀사냥법으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100년 뒤 통일공화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우리 후손들은 오늘 이명박 정권의 마녀사냥식 '종북주의자 탄압소동'을 인권이 말살된 잔혹과 광기의 과거사로 기억할 것입니다.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을 '종북주의자'로 몰아 탄압하는 반민중적이고 반통일적인 이명박 정권은 인류의 양심과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받아야 하며, 극악무도한 현대판 마녀사냥법인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하며, '종북주의자'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모든 정치수들은 당장 석방되고 복권되어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악행이 많지만, 마녀사냥식 '종북주의자 탄압소동'을 일으킨 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하여 '마감전투'를 벌이는 북의 정세

강 - 네 번째 질문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놓겠다고 하는 이북의현 정세입니다만, 이제 그 목표까지 1년도 안 남았습니다. 그 곳에서의 '마감전투'에 대해서는 현지를 방문한 재일동포들이나 보도를 통해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놓겠다는말 속에는 2012년에 조국통일의 돌파구를 열어놓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상각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달성한 북에서 경제문제 해결 과제는 왜 나서는가

한 - 세상에 알려진 대로, 내년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놓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하고 국력을 기울여 추진해오는 국가발전전략입니다. 원래 국가발전전략이란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을 강화, 발전시키는 방대한 전략입니다. 북측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부문에서 자주, 군사부문에서 자위, 경제부문에서 자립을 추진해왔는데, 다른 나라들과 달리 사상부문에서 주체를 확립하는 것을 무엇보다 앞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북측에서 말하는 강성대국이란 사상에서 주체를 확립하고, 정치에서 자주를 실현하고, 군사에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고, 경제에서 자립한 나라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측은 이미 사상에서 주체를 확립하였고, 정치에서 자주를 실현하였고, 군사에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북측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달성하였다고 자인하고 있지만,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48년 건국 이래 사회주의계획경제와 민족자립경제라는 두 축으로 경제건설을 추진해오던 북측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뼈저린 시련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북측과 쿠바는 1990년대 중반에 똑같이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만,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쿠바는 여전히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북측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경제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측과 쿠바가 경제위기극복에서 그처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 까닭은, 북측이 이미 1970년대에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북측에서 경제건설이 가장 힘있게 추진된 사회주의공업화의 고도성장기는 1970년대입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6년 동안 연평균 국민총생산(GNP) 성장율은 무려 19.8%에 이르렀습니다. 남측에서 경제건설이 가장 힘있게 추진된 고도성장기는 1983년부터 1988년까지 6년이었는데, 그 때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9.5%였습니다. 남측의 경제성장률보다 두 배나 많은 북측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이적인 고도성장입니다. 또한 북측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동안 전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였습니다. 1986년에 북측의 식량생산량은 711만4,000t이라는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금 북측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건설은 1970년대에 이룩한 경제건설성과를 현대적으로 개조하여 경제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짚어봅시다.

첫째,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한 기반 위에서 경제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공학과 자동화기술을 발전시켜 기계공업의 CNC화를 실현하였습니다. 북측에서 독자적인 CNC 생산체계를 세운 것은, 1970년대에 20세기형 사회주의공업화의 전성기에 이르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첨단화된 21세기형 사회주의공업화의 제2전성기를 전개하기 시작한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자체의 동력자원을 개발한 기반 위에서 경제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CNC화된 기계공업이 생산한 각종 기계설비를 가지고 석탄과 전력을 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 대도시와 주요공업지대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을 주목하는데, 지금 건설 중인 대형 수력발전소들이 곧 완공되면 전력공급이 더 원활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산업발전의 선행부문을 강화발전시킨 기반 위에서 경제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업발전의 선행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석탄을 원료로 하는 제철공업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하였고,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학공업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주체섬유 생산체계를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농업발전의 선행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정리사업, 장거리 물길공사, 간석지 개간, 종자개량사업, 주체비료 개발을 추진하여 농업생산량을늘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도로, 항만, 철도를 신설하거나 정비하고, 3세대 이동통신을 도입하고 국가내부전산망을 전국화하여 교통운수부문과 정보통신부문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았습니다.

넷째, 농업, 축산업, 양식업, 과수업을 발전시켜 식량생산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2005년 50만t, 2006년 25만t, 2007년 30만t, 2009년 10만t으로 급감하였고, 2011년 올해에는 식량지원이 없습니다. 그와 더불어 중국의 대북식량 수출도 급감하였습니다. 북측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중국에서 곡물 14만9,000t을 수입하였는데, 곡물수입 가운데 옥수수 38%, 밀가루 37%, 쌀 17%, 콩 7%입니다. 북측이 쌀이 아니라 옥수수와 밀가루를 75%에 이르는 비율로 수입한 것은, 옥수수와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는 당과류, 국수류, 제빵류 등 가공식품생산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측의 식량자급율은 25.3%, 일본의 식량자급율은 22.4%밖에 되지 않지만, 북측이 연간 100만t 정도의 비상식량 비축분을 생산하는 숨겨진 능력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2005년 이후부터는 식량자급율이 100%를 넘습니다. 북측에서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던 '고난의 행군'이 끝난지가 언제인데,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직 '만성적 식량난'에 빠져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언론보도는 반북수구세력이 날조하여 퍼뜨리는 헛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식량생산량이 줄어들고 국제곡물시장이 불안정해진 오늘, 정작 식량위기를 걱정해야 할 당사자는 식량을 자급하지 못해 식량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남측과 일본입니다. 전세계에서 국가재정적자가 가장 많은 일본이나 외환위기에 가장 취약한 남측은, 세계 금융위기가 몰아치는 경우 식량을 수입할자금이 부족하여 식량난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다섯째, 경공업을 발전시켜 식품가공생산, 피복 및 의류생산, 각종 생활용품생산을 늘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전에는 중국산 경공업제품들이 들어찼던 평양제1백화점이 이제는 판매상품을 전량 국산화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였는데, 이것만 봐도 경공업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섯째, 주택건설과 도시환경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농촌에 문화주택을 건설하고, 평양에 현대적인 고층주상복합아파트와 대형 공공건물을 건설하고, 각 지방도시의 환경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는 이미 3만 세대 살림집을 완공하였고, 8월 현재 5만 세대 살림집을 건설하는 중입니다. 나머지 2만 세대 살림집은 내년 안으로 완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완공된 살림집은 무상으로 각계층 인민들에게 공급됩니다. 서유럽의 경제선진국에서는 무상의료제와 무상교육제라는 보편적 사회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무상주거제는 국가재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감히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회복지제도 발전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는 프랑스에서도 무상주거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저가주택임대제를 시행합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무상주거제를 이미 오래 전에 실현한 유일한 나라가 북측입니다.

일곱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북측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1,000억 달러를 투자하여 경제강국을 건설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국가경제규모가 두 번째로 큰 중국은, 경제개발자금이 부족한 북측에게 자금공급통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통일 문제와의 연관

이제는 북측의 경제발전이 평화통일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측의 반통일 정권들은 '부유한 남측'이 '가난한 북측'을 흡수통일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경우 천문학적 통일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한 술 더 떠서 통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통일세를 걷어야 한다는 망발까지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헛소문에 속아 넘어간 남측 국민들은 요즈음 민생경제파탄으로 자신들도 생활고를 겪는데, 통일세까지 부담해야 하고, 통일이 되는 경우 엄청난 비용부담으로 '가난한 북측'을 먹여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통일을 바라지 않는 통일혐오증이 생겨납니다. 반통일정권이 통일비용부담론과 통일세징수론을 들먹이는 것은, 6.15 공동선언 이후 남측 국민들 속에서 싹튼 통일염원을 잘라내고 통일혐오감을 심어주려는 고도의 대국민 심리전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북측이 경제강국을 건설하였다고 선포하고, 실제로 인민생활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진 현실이 남측에 알려지면 통일비용부담론과 통일세징수론 따위의 헛소리는 자연히 꼬리를 감추게 될 것이고, 평화통일을 향한 희망과 염원과 의지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북측의 경제발전이 평화통일을 촉진시키는중요한 요인으로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담 한 자락 남기면서 긴 답변을 마칠까 합니다. 북측에서 4박5일 관광을 마치고 2011년 8월 2일 저녁 고려항공편으로 중국 상하이에 도착한 중국인 여성 양 아무개(55살) 씨가 남측 통신사 <연합뉴스>의 현지 특파원을 만나 대담하였습니다. 그 중국인 여성은 자기 남편과 함께 북측에서 촬영한 사진 2,000여 장을 특파원에게 보여주며 "너무 만족스러웠으며 큰 감동을 받은 여행이었습니다. 북측 주민들은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도 크게 활성화한 것으로 보입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중국인 여성은 상하이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다 은퇴하였고, 그의 남편은 은행업에 종사하다 은퇴하였다니 중국에서 해외여행을 즐기며 넉넉히 사는 상위 중산층에 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비친북측은 자기들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북측에 대한 비난선전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그의 체험담은, 북측 인민들이 중국의 상위 중산층보다 소득수준이 더 높아서 행복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북측의 소득수준이 아직 낮지만 정부에서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물가상승, 돈벌이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면서 물질문명에 찌들어있는 중국인들보다 행복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깨달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돈 많은 부자는 사치와 향락을 즐길 수 있으되 인생의 진짜 행복은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돈벌이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걱정, 근심, 불안 같은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살인적인 경쟁을 알지 못하고 협동정신으로 화목하게 살고, 복지제도가 완성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면 그것이 곧 중국인 여행자가 말한 진짜 행복이 아닐까요?

우리가 열망하는 21세기 통일공화국은 빈부격차와 생존경쟁이 없이 화목하게 살며 누구나 골고루 행복을누리는 선진국으로 건설될 것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평화통일운동에 조금씩이라도 이바지하여 후손들에게 그런 자랑스럽고 행복한 조국을 물려줍시다.  조국광복 66주년이 되는 2011년 8월 15일을 그런 심정으로 맞이합니다.

강 - 바쁘신속에서도 시간을 내시어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년 8월 15일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