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판정패를 당한 ‘백전노장’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지휘소에서 밤을 꼬박 새운 미국군 합참의장

헛소문처럼 떠도는 왜곡보도만 읽으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이후 12월 20일 연평도 포사격훈련까지 격화되어온 국지전 위기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저들의 왜곡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육해공군 타격력을 즉각 동원할 만반의 경계태세를 취한 가운데 예정한 대로 12월 20일 연평도에서 포사격훈련을 강행한 것처럼 보이고, 그처럼 단호한 한국군의 군사행동에 주눅이 든 인민군은 대응 포사격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그것은 왜곡보도가 빚어낸 허상이다. 왜곡보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허상을 주입하였지만, 11.23 포격전 이후 더욱 고조된 국지전 위기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정밀분석하면, 왜곡보도가 빚어낸 허상과 전혀 다른 진상이 드러난다.

연평도 포사격훈련은 12월 20일에 실시되었지만, 국지전 위기는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가 서울에서 열렸던 12월 8일부터 급속히 조성되었다. 이 글에서 분석하려는 대상과 범위는, 12월 20일에 있었던 연평도 포사격훈련에 국한되지 않고, 12월 8일부터 조성된 국지전 위기상황 전반을 포괄한다. 국지전 위기상황을 전반적으로 파악해야 12월 20일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어떻게 실시되었는지, 그에 대해 인민군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알 수 있다.

국지전 위기의 진상을 밝혀줄 중요한 단서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발언에 들어있다. 그는 2010년 12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하여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잔여훈련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NLL(북방한계선)을 지키기 위한 별도의 계획된 훈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2010년 12월 21일) 그의 말은, 12월 20일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지난 11월 23일 인민군의 집중포격으로 중단된 연평도 포사격훈련의 연장선에 있는 잔여훈련이 아니라, 별도로 계획된 포사격훈련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별도로 계획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첫째, 2010년 12월 8일 한국군 합참본부 회의실에서 진행된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마이크 멀린(Michael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이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앞으로 국지전 작전계획과 훈련을 개발하기 위해 한국 군부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Stars & Stripes 2010년 12월 8일)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이 규정한 대로 한국군의 작전계획수립권과 훈련계획수립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이므로, 주한미국군사령부가 12월 8일 이후 국지전 작전계획과 훈련계획을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2010년 12월 8일에 발표된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 공동성명에 따르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식으로 국지전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원래 한미군사관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지원하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는 주종관계이므로, 미국군이 한국군을 최전방에 앞세워 국지전에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군은 이번 국지전 위기에 바로 그런 식으로 대응하였다.

셋째,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단독으로 국지전 위기상황에 대응하지 않고, 반드시 미국군 합참본부의 감독과 지시에 따라 대응한다는 것이다. 미국군은 이번 국지전 위기에 바로 그런 식으로 대응하였다.

남측 수구언론매체들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미국군이 국지전 위기상황을 조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정보는 2010년 12월 20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기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 보도기사는 이렇다. “2010년 12월 19일 밤(한반도 시각으로는 12월 20일 오전) 멀린 합참의장은 포사격훈련을 직접 감독하기(directly monitor) 위해 미국 국방부 청사로 들어갔다. 미국은 그 날 밤 내내 급변사태 통신계획(contingency communications plan)을 유지하였고, 그에 따라 미국 군부는 한국 군부와 지속적으로 연락하였다. (줄임) 멀린과 그의 보좌관들은 그 날 밤 10시부터 미국 국방부 청사 안에 있는 안전한 국가군사지휘소(National Military Command Center)에 머물렀다. 그는 하와이에 있는 로벗 윌러드(Robert Willard) 태평양사령관, 남코리아에 있는 월터 샤프 미국군사령관과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이 보도기사는, 멀린 합참의장과 합참본부 지휘관들이 2010년 12월 20일 정오(한반도 시각)부터 국가군사지휘소에서 국지전 위기를 직접 감독하면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미국 국방부 청사 안에 있는 국가군사지휘소(NMCC)란 어떤 곳일까? 3층으로 된 지휘소에는 현재행동센터(Current Action Center), 비상회의센터(Emergency Conference Center), 합동정찰센터(Joint Reconnaissance Center)가 있고, 300명이 넘는 전문인원이 일하고 있다. 그곳에는 위기관리정보자동화처리체계(Crisis Management Automated Data Processing System)가 작동되고 있으며, 전 세계 미국군 야전사령관들, 미국 핵추진 잠수함들, 각 지역 미국군 전구지휘소들을 연결하는 최첨단 전자통신망이 가동되고 있다.

멀린 합참의장과 그의 보좌관들은 그 지휘소에서 태평양사령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계속 연락하면서 밤새도록 상황보고를 받고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미국군 합참의장과 그의 보좌관들이 국가군사지휘소에 들어가 밤을 꼬박 새우며 감독, 지휘한 것은, 미국이 한반도의 국지전 위기상황에 전면적으로 대처하였음을 말해 준다.

국지전 위기상황을 감독하고 군사작전을 지휘할 권한과 능력이 없는 한국군 합참본부는 미국군 합참의장이 국가군사지휘소에서 내리는 작전명령을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통해 하달 받으며 그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처지가 그러하였으니, 청와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때에 알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실시되던 시각, 청와대 경내에 있는 지하층 위기관리센터에도 내려가지 않고 본관 집무실에 머물렀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지전 위기 속에서도 “일부러 아무 일도 없는 척 행동”하였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왜곡이며,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지휘할 권한이 없어서 미국군 합참본부가 포사격훈련을 어서 끝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옳다.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도 똑같은 처지에 있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한국군과 인민군의 정면대립으로 국지전 위기가 조성된 것이 아니라, 인민군과 미국군의 정면대립으로 국지전 위기가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 이후 미국군이 한국군을 앞세워 국지전 위기를 고조시켰고, 인민군이 그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평양에 파견한 비공식 특사

필립 크라울리(Philip J. Crowley) 국무부 대변인(공보담당 차관보)이 2010년 12월 20일 언론설명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국무부, 국방부에서 수 주 동안 현지 상황(한반도 국지전 위기상황을 뜻함)을 면밀하게 감독(monitor)했고,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vens) 주한미국대사와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참여한 여러 회의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크라울리 대변인의 공식 발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원래 국지전 위기를 감독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의 고유한 군사업무인데, 미국 국무부까지 그 문제에 개입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이 국지전 위기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처한 것만이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대처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국방부와 국무부가 공동 대처하였다는 말은, 군사와 외교를 관장하는 최고 권력기관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두 부서를 앞세워 한반도의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였다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으로 국방부와 국무부가 2010년 12월 초부터 연평도 포사격훈련 준비상황을 감독해 왔으며, 그 감독과정에 주한미국대사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참석하는 비상회의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독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연평부대 포사격훈련 강행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처하는 긴급조치를 취하였다는 점이다. 그 내막은 아래와 같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무부에 지시를 내려 연평부대 포사격훈련 강행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외교적 긴급조치를 취하였다. 미국 국무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뉴멕시코주 주지사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였다. 리처드슨 주지사가 급히 평양을 방문한 것은, 외적인 형식으로 보면 그가 국무부에게 자신의 방북허락을 요청하고, 국무부가 그 요청을 허락하는 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과 국무부의 실무집행에 따라 리처드슨 주지사가 급히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국무부가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날은 2010년 12월 8일이고(Bloomberg News 2010년 12월 8일), 그가 민간 항공편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날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한 날짜(12월 18일)를 이틀 앞둔 12월 16일이었다. 그는 자기와 동행하여 평양에 도착한 CNN 방송인 월프 블리쩌(Wolf Blitzer)와 현지 대담을 진행하면서 “이것은 전쟁의 불씨다. 지금 나의 목표는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다. 진정하자. 대응하지 말라. 포사격훈련을 하게 하자. 모든 유관측에 자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12월 17일 북측 관리들이 베푼 만찬 석상에서 리처드슨 주지사는 당시 이튿날로 예정되었던 포사격훈련에 대해 북측이 “극도로 신중하게, 극도의 인내심을 갖고 행동해 달라”고 촉구하였다. (CNN 2010년 12월 18일)

영국 BBC 텔레비전방송은 리처드슨 주지사를 비공식 특사(unofficial envoy)라고 지칭하였는데(BBC News 2010년 12월 18일), 미국 국무부는 그가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그 너스레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내외 언론매체들은,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목적이 핵문제에 관련된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으로 그가 평양을 급히 방문한 주된 목적은 국지전 위기에 외교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평양에 도착하여 “(인민군) 고위급 군부인사와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희망하건대, 우리는 사격확대를 억제할 수 있다. 북측이 사태를 진정시킬 방도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북측 인사들로부터 받았다....아마 오늘도 그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CNN 2010년 12월 1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는 외교임무를 사적으로 방북한 개인에게 맡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리처드슨 주지사가 평양에 머무는 동안 국제전화를 통해 미국 국무부와 연락하였고,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백악관과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에게 자신의 방북결과를 알려주었고, 국무부가 그의 방북보고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자신이 스스로를 “비공식 통로(unofficial channel)”였다고 자칭한 것만 봐도(Politico44 2010년 12월 23일), 그가 비공식 특사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평양에 비공식 특사를 급파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면 미국이 북측에게 외교적으로 굴복한 것으로 보일 것이므로, 백악관과 국무부는 그가 개인자격으로 방문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리처드슨 비공식 특사가 평양에서 만난 인민군 고위지휘관은 박림수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인민군 중장)이었는데(연합뉴스 2010년 12월 20일), 그 두 사람이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비공식 협상을 진행하였다. 박림수 정책국장과 리처드슨 비공식 특사의 협상은, 긴박한 국지전 위기 속에서 진행된 북측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간접 협상이었다. 리처드슨 비공식 특사는 포사격훈련이 끝난 직후, 포사격훈련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가 조금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 2010년 12월 20일) 비공식 협상에서는 남북미 3자가 참여하는 군사위원회(military commission) 구성을 합의하였다. (CNN 2010년 12월 20일)

국지전 위기대응반을 설치한 미국군 합참본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군 합참본부에 지시를 내려 연평도 포사격훈련 강행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외교적 긴급조치와 함께 군사적 긴급조치도 취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군 합참본부는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는 위기대응반(crisis team)을 설치하였다. (CNN 2010년 12월 20일) 한국군 합참본부가 연평도 포사격훈련 예정일을 발표한 날이 12월 16일이었으므로, 미국군 합참본부가 국지전 위기대응반을 설치한 날은 그 이전인 12월 13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지전 위기대응반은 무슨 일을 하였을까? 그들이 한 일은 국지전에 대비한 군사적 준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1.23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참패를 당한 원인인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에 맞서 전자전 대응작전을 벌였고, 멀린 합참의장이 감독, 지휘하는 국가군사지휘소에서 연평도 일대의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이동식 전자통신망을 설치하는 통신연락작전을 벌인 것이다. 이동식 전자통신망을 연평도에 설치해도 인민군이 전자전 공격을 가하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므로,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에 맞서는 전자전 대응작전은 그들에게 사활적인 문제였다.

2010년 12월 17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발언한 바에 따르면, 미국군 해병대와 미8군 연락반 26명이 연평도에 들어갔다. (노컷뉴스 2010년 12월 21일) 미국군 해병대가 연평도에 들어갔다는 말은,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에 대비하여 전자전 방어(ECCM) 임무를 수행할 미국군 전자전부대 병력을 연평도에 긴급 배치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미8군 연락반이 연평도에 들어갔다는 말은, 워싱턴의 국가군사지휘소와 직접 연결되는 이동식 전자통신업무를 수행할 미국군 통신부대 병력을 연평도에 긴급 배치하였다는 뜻이다. 2010년 12월 16일(현지 날짜) 제임스 카트라이트(James Cartwright) 미국군 합참부의장은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군 병력 15명과 6명을 각각 연평도에 배치하였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 공보실 2010년 12월 16일 보도자료) 미국군 26명 가운데 15명과 6명은 전자전부대 병력과 통신부대 병력이고, 나머지 5명은 현장지휘관들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국지전 위기대응반을 설치해놓고서도 우려와 고심을 거듭하였다. 2010년 12월 17일 남북 군사회담 북측 단장이 남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강행하는 경우 “2차, 3차의 예상할 수 없는 자위적 타격이 가해질 것”이고 “그 화력타격의 강도와 포괄범위는 지난 11월 23일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재현시키게 될 것”이라고 엄중 경고하였으니 미국군 합참본부가 심각한 우려와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강행할 경우 국지전을 불사하겠다고 북측이 엄중 경고한 상황에서, 미국군 합참본부는 국지전 위험을 무릅쓰고 포사격훈련을 강행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포사격훈련을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만일 포사격훈련을 포기하는 경우, 11.23 포격전에서 참패한 한국군이 이번에는 포 한 발 쏘지도 못하고 인민군의 위협에 무릎을 꿇는 굴욕을 당하는 것이다. 2010년 12월 21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사격(훈련)을 중단하면 (북측에) 굴종하는 모양이 된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2010년 12월 21일)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군 합참본부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2010년 12월 20일 CNN은 “미국 군부는 북측에게 오해할 만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려고 소극적 태도(low profile)를 취하기를 바랐다”고 보도하였다. 2010년 12월 18일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청와대를 긴급 방문하여 연평도 포사격훈련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미국의 관심사는 한국군의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가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2010년 12월 20일) 이러한 두 가지 보도기사는, 강행과 포기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우려와 고심을 거듭하던 미국군 합참본부가 결국 뒤로 물러섰음을 말해 준다. 뒤로 물러선 미국군 합참본부는 아래와 같이 포사격훈련을 축소, 변경함으로써 국지전 위기상황에서 패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째, 원래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의 포사격훈련은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제6여단과 연평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연평부대가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다. 11.23 포격전 당시에도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포사격훈련을 동시에 실시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력부대인 백령도 제6여단을 포사격훈련에 동원하지 않고, 연평부대만 포사격훈련에 동원하였다. 이처럼 주력부대를 훈련에 동원하지 못하고, 병력규모를 절반 이하로 크게 축소한 것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둘째, 2010년 12월 20일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보도문은 연평도 포사격훈련에서 “계획했던 사격수역과 탄착점까지 슬그머니 변경”시켰다고 지적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그 변경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연평도 포사격훈련의 사격수역과 탄착점이 변경되었다면, 이전에 ‘북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해상을 향해 쏘았던 포사격을 더 남쪽 해상으로 후퇴시켜 실시한 것이다. 이처럼 훈련방식을 크게 후퇴시킨 것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셋째, 연평부대는 인민군 특수부대가 공기부양 고속상륙정을 타고 연평도로 기습상륙하는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하였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21일) 이것은 인민군 해안포 진지를 공격하는 훈련이 아니라 연평도를 방어하는 훈련을 실시하였음을 뜻한다. 이처럼 훈련방향을 소극적 방어로 전환한 것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넷째, 2010년 12월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포사격훈련의 포격발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적에게 잘못된 사인(sign)을 줄 수 있어서 구체적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고(연합뉴스 2010년 12월 21일), 이붕우 합참본부 공보실장도 포사격훈련 직후 기자들에게 “애초 계획된 대로 포탄을 다 쐈지만 구체적인 발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노컷뉴스 2010년 12월 21일)

인민군은 포성을 듣고 포격발수를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인민군에게 포격발수가 알려질 것을 우려하여 포격발수를 밝히지 못하겠다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그의 말은 포격발수가 너무 적었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남측 국민들에게 한국군의 체면을 세우려는 발언으로 들린다.

연평부대가 쏜 1,600여 발 가운데 1,500여 발은 벌컨포가 쏜 소구경 포탄이었고, 나머지 100여 발 가운데 인민군 해안포 진지를 타격할 수 있는 주력화기인 K-9 자주포 1문이 쏜 것은 4발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21일) 나머지 96여 발 포사격은 연평도에서 황해남도 해안까지 날아가지도 못하는 곡사포와 박격포를 쏜 것이다. 이처럼 포격발수를 결정적으로 제한한 것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다섯째, 포사격훈련은 오후 2시30분에서 시작하여 3시30분까지 1시간 동안만 진행되었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0일) 4시간 이상 계속되었던 11월 23일 포사격훈련에 비해, 12월 20일 포사격훈련은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처럼 훈련시간을 크게 줄인 것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여섯째, 미국군 합참본부는 포사격훈련을 개시하는 시점을 놓고 우려와 고심을 거듭하면서, 오전 11시→오후 1시10분→오후 2시30분으로 자꾸 미루었다. 표면적인 연기이유는 당시 연평도 일대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적인 연기이유는 인민군이 어떻게 대응할지 예측하지 못하여 포격 개시 시점을 뒤로 자꾸 미루면서 인민군의 동향을 주시한 것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군사작전에서 심리적 위축은 패퇴하였음을 뜻한다.

국지전 위기에 대처한 인민군 군사작전은 누가 지휘하였을까?

2009년 이후, 한반도 군사상황에 대한 북측 입장을 공식 발표한 기관은 인민군 총참모부였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2009년 1월 17일, 2월 2일, 3월 9일, 4월 18일에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였고, 2010년 1월 24일에는 총참모부 성명을, 8월 15일에는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각각 발표하였다.

그런데 11.23 포격전 이후 조성된 국지전 위기상황에서는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전면에 나섰다. 이를테면,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11.23 포격전 직후 한국군의 “군사적 도발에 (줄임)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였다”고 밝힌 보도문을 발표하였고, 12월 20일 연평도 포사격훈련 직후에는 “앞에서 얻어맞고 뒤에서 분풀이하는 식의 비렬한 군사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서 “우리 혁명무력의 2차, 3차의 강위력한 대응타격은 미국과 남조선괴뢰호전광들의 본거지를 청산하는 데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보도문을 발표하였다.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한반도 군사상황에 대한 북측의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한 때는 2009년 11월 10일이었다. 그 날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상무력충돌이 일어나자,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북측 관할수역에서 한국군이 “무장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고 비난하는 보도문을 발표한 바 있다.

2009년 11월 이후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군사적 충돌과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이처럼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전면에 나서 보도문을 발표한 것은,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는 인민군 군사작전을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지휘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국지전 위기에 대처하는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지금 북측의 군사부문에서 후계자의 영도체계가 확립되었으므로, 김정은 ‘청년대장’이 국지전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군사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11.23 포격전 이후 더 한층 고조된 국지전 위기 속에서 김정은 ‘청년대장’이 지휘한 군사작전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서해 5도 분쟁수역에 인접한 황해남도 각지 해안진지들에 배치된 인민군 해안포가 포문을 열고 사격준비태세를 갖추었고, 지대함 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이 황해남도 곳곳에 추가 배치되고 발사준비태세를 갖추었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1일) 또한 백령도를 마주한 황해남도 옹진군 해안, 연평도를 마주한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 강화도를 마주한 황해남도 연안군 한강 하구 일대에 방사포 수십대가 전진 배치되었다. (노컷뉴스 2010년 12월 21일, 조선일보 2010년 12월 22일) 주목하는 것은, 인민군이 전진 배치한 방사포가 11.23 포격전에 동원했던 122mm 방사포가 아니라 그보다 파괴력이 훨씬 더 큰 240mm 방사포였다는 점이다. 또한 남측 언론매체들은 보도하지 않았지만, 미그 전투기들이 공중전에 대비하여 출격태세를 갖추고 갱도식 활주로에서 비상대기하였을 것이다.

인민군 해안포가 포문을 열고, 240mm 방사포가 전진 배치되고, 지대함 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이 추가 배치되고, 미그 전투기들이 비상대기한 것은, 김정은 ‘청년대장’이 인민군에게 국지전 전투태세 명령을 내렸음을 뜻한다. 인민군이 전투태세를 취하였음을 남측 언론이 처음 보도한 때는 12월 18일이었으므로, 김정은 ‘청년대장’은 적어도 12월 16일 이전에 인민군에게 국지전 전투태세를 명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평도 포사격훈련이 시작되자, 인민군은 11.23 포격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강력한 전자전 공격을 가했다. 남측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군의 GPS(위성항법장치) 교란으로 훈련 당일 우리 군이 정찰을 위해 투입한 무인정찰기가 제 역할을 못했다. 무인정찰기를 철수시키고 다른 정보자산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에 전자전으로 대응하면서 한국군의 레이더와 전자장비를 보호하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0년 12월 23일) 그의 말은, 전자전 방어(ECCM)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군 전자전부대 병력이 연평도에 배치되어 전자전 방어전을 벌였음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군이 동원한, 성능이 좋다는 전자전 방어장비는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을 차단하지는 못하고 그 효과를 약간 감소시킬 뿐이다.

‘청년대장’과 ‘백전노장’의 첫 대결

인민군은 11.23 포격전 때와 달리 두 가지 특이한 군사행동을 취하여 미국군 합참본부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첫째, 인민군 포병부대가 가짜 방사포를 곳곳에 배치하였다. <조선일보> 2010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백령도와 연평도를 각각 마주한 황해남도 해안 곳곳에 가짜 포가 배치되었다. 가짜 방사포가 배치된 것은 미국군 합참본부가 예상한 일이었지만, 이상한 것은 엉성하게 만든 가짜 방사포가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인민군이 기만전술 효과를 기대하였다면, 가짜 방사포를 진짜 방사포와 구별되지 않을 만큼 거의 똑같이 만들었어야 정상인데, 미국군 정찰위성과 고공정찰기가 가짜 방사포를 식별할 만큼 엉성하게 만든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진짜 방사포로 위장한 가짜 방사포를 배치하였어도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이 적에게 알려지면, 기만전술은 무효하게 된다. 적을 속이지 못하는 기만전술은 되레 화를 불러오는 실패작이다. 가짜 방사포를 진짜 방사포와 구별하지 못할 만큼 거의 똑같게 만드는 제작기술이 인민군에게 없는 것이 아닌데, 엉성한 가짜 방사포를 만들어 배치한 것은 기만전술을 위해 가짜 방사포를 배치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기만전술용이 아니라면, 무엇에 쓰려고 가짜 방사포를 배치한 것일까?

일부러 엉성하게 만든 가짜 방사포를 배치한 것은, 인민군이 기만전을 넘어선 지략전를 펼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인민군 방사포를 파괴하는 타격임무는 한국군 전투기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인민군이 가짜 방사포를 배치한 것은 한국군 전투기들의 공습을 반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신호를 미국군에게 보내는 지략을 발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짜 방사포를 배치함으로써 한국군 전투기 공습을 대공미사일과 공중전으로 반격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공미사일과 공중전으로 반격한다는 말은 국지전을 불사한다는 뜻이다. 인민군의 공습 반격태세는, 김정은 ‘청년대장’이 미국군 합참본부가 지휘하는 연평도 포사격훈련 강행에 국지전으로 대응할 결심을 하였음을 말해 준다.

둘째, 인민군 포병부대는 240mm 방사포를 황해남도 연안군 한강 하구 일대에 전진 배치하였다. 한강 하구 남쪽 김포반도에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데, 240mm 방사포를 한강 하구 북쪽에 전진 배치한 것은 하구 건너편에 있는 해병대 제2사단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이것은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 연평도 해병대 연평부대, 김포반도 해병대 제2사단을 동시에 240mm 방사포로 공격하는 인민군 포병부대의 작전준비가 끝났음을 뜻한다. 240mm 방사포 전진 배치는, 김정은 ‘청년대장’이 미국군 합참본부가 지휘하는 연평도 포사격훈련 강행에 맞서 국지전으로 대응할 결심을 하였음을 말해 준다.

2010년 12월 18일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청와대를 긴급 방문하여 연평도 포사격훈련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남측 정부 소식통은 그들의 청와대 긴급 방문과 관련하여 “미군은 그 동안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군이 한국군의 사격훈련에 반드시 대응사격을 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년 12월 20일) 미국군이 인민군의 대응사격을 예상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인민군이 국지전 준비태세에 돌입하였음을 뜻한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인민군이 가짜 방사포를 배치하고, 한강 하구에 240mm 방사포를 전진 배치하였다는 정보를 듣고 인민군 지휘부가 국지전을 결심하였음을 간파하였다. 인민군이 가짜 방사포를 배치하고, 240mm 방사포를 전진 배치하였음을 알려주는 군사정보를 미국군 합참본부가 간파한 12월 16일 이후,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미국군 합참본부의 정면대립은 국지전을 결심하여 상대의 기를 꺾어놓느냐 아니면 상대의 기세 눌려 패퇴하느냐 하는 치열한 담력전으로 전개되었다. 국지전 결심과 굴욕적 패퇴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담력전의 긴박감이 멀린 합참의장과 그의 보좌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위기상황을 간파한 중국과 러시아도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임스 카트라이트 미국군 합참부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은, 미국군 합참본부가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기세에 눌려 결국 패퇴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 준다. 김정은 ‘청년대장’의 국지전 전투태세 명령에 따라 인민군이 가짜 방사포를 배치하고, 240mm 방사포를 전진 배치한 직후인 2010년 12월 16일(현지 날짜)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카트라이트 합참부의장은 “만일 북측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연평도와 백령도에 반격하는 대응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은 포격과 대응포격의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무력충돌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우리가 (무력충돌의) 단계적 확대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공보실 2010년 12월 16일 보도자료)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미국군 합참본부가 격돌한 담력전은, 국지전도 불사한다는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기세에 눌린 미국군 합참본부가 연평도 포사격훈련을 크게 축소, 변경하도록 명령하며 뒤로 물러섬으로써 승패가 갈렸다. 국지전 위기 속에서 벌어진 담력전은,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우세승을 거두고, 미국군 합참본부가 판정패를 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64세인 ‘백전노장’은 20대 후반의 ‘청년대장’과 벌인 지략전과 담력전에서 충격의 판정패를 당하였다. 일찍이 22살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대서양 항모강습단 지휘관, 미국 해군 유럽사령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함대사령관, 미국 해군작전참모장을 거치며 훈장을 11개나 탄 미국 제17대 합참의장 마이크 멀린 해군대장은, 자기의 군인생활 42년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첫 패배를 당한 것이다. 2010년 12월 20일 국지전 위기를 넘긴 직후 발표한 보도문에서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 패장을 가리켜 “소리만 요란하게 낸 천하 비겁쟁이”라고 불렀다. 인민군이 지략전과 담력전에서 이겼으니 ‘비겁쟁이’들에게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지략과 담력으로 맞붙은 ‘청년대장’과 ‘백전노장’의 첫 대결은 ‘청년대장’의 우세승으로 끝났지만, 미국군 합참본부가 조성한 국지전 위기상황은 미국이 북측과의 전략적 협상에 복귀하는 날까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군 합참본부가 대북침공 작전계획을 폐기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지략전과 담력전에서 쓴 잔을 마신 ‘백전노장’ 멀린의 연이은 전술적 패퇴는 불가피할 것이다. (2010년 12월 28일 통일뉴스)